경제학자의 인문학 서재

   
김훈민·박정호
ǻ
한빛비즈
   
15000
2012�� 01��



■ 책 소개
경제학자들은 인문학을 어떻게 읽을까?
경제학자의 그물로 건져 올린인문경제지식!

역사,문학, 철학 등 인간의 삶을 반영하는 인문학에 숨겨진 다양하고 재미있는 경제원리를 밝혀낸 책이다. 경제학자의 프레임으로 인문학을 해석한 이 책은가상의 젊은 경제학자가 다양한 인문학적 소재들을 바탕으로 경제용어와 원리들을 설명한다.

인문학은 흔히 접근하기 어려운 텍스트, 공부하기 위한 텍스트로 여겨진다. 하지만 인문학은 사람과 삶에 대해다룬 학문이니만큼 개인이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 그 재미와 깨달음이 달라진다. 자기만의 프레임으로 보다 넓고 다양한 지식을 길어 올릴 수 있다.이 책은 경제학자의 프레임으로 인문학을 해석하여 그간의 인문학과는 전혀 다른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준다. 인문학과 경제학의 낯선 조우는 과연어떤 모습일까. 괴짜 좀머 씨는 왜 그렇게 우울한 얼굴로 돌아다녔을까? 젊은 베르테르는 경제적인 원리를 따르지 못해 결국 자살에 이르렀다? 셜록홈즈의 탐정비에 숨어 있는 똑똑한 경제 논리를 알고 나면 그가 명탐정임을 한층 더 깨달을 수 있다. 해리포터의 마법부에는 오늘날 정부와 기관간의 관계를 설명할 수 있는 흥미로운 경제원리가 숨어 있다.

인문학을 사용해서 경제학의 여러 개념들을 제시할 경우, 독자들은 우리 생활 곳곳에서 경제학적인 개념들이 오래전부터 사용되고있었다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다고 말한다. 이를 통해 독자들은 경제학이 학문적 수단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을 살아가는 해법임을 깨닫게될 것이다.

■ 저자
김훈민 - KDI 연구원으로 중앙대 경제학과와 동 대학원 경제학 석사를 졸업하였다. 소문난 독서광으로 유명하며, 소장하고있는 개인 장서가 2만 권이 넘는다. 특히 경제학 분야 서적에 있어서 개인으로는 본인이 가장 많은 경제학 서적을 보유하고 있는 사람일 것이라는자부심이 대단하며, 머지않아 KDI 도서관보다 본인이 소장한 도서가 더 많아질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읽고 쓰는 활동에 관심이 많아 현재KDI, 한국경제신문, MBN 등 여러 매체에 기고하고 있다.

박정호 - KDI 전문연구원으로 연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경제학 석사,KAIST에서 경영학 석사를 그리고 홍익대 산업미술대학원에서 산업디자인을 공부하고 있다. 하지만 학위 콜렉터라는 말을 가장 싫어하며, 본인이하고자 하는 일을 위해 모두 필요한 것들이라 주장하고 있다. 평소 “배워서 남 주자!”라는 신조를 갖고 있어 EBS, 금융투자협회, 라디오 등다양한 매체를 통해 금융소외계층 등을 위한 강의활동을 전개하고 있으며, 한국경제신문, 사이언스 타임스 등에 자유기고가로 활동하고있다.

 




경제학자의 인문학 서재


프롤로그 
오늘날 경제학은 사회과학의 꽃으로 분류되고 있다. 하지만 경제학이 다른 사회과학과 확연히 구분되는 측면이 하나 있다. 다른 사회과학과 달리 경제학에서 제시하는 많은 개념들을 배우지 않고도 우리가 이미 그것들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강의 중에 만난 한 벤처기업 사장은 경제학 수업이라고는 단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와의 대화 중에 알게 된 사실은 그가 이미 경제학에서 제시하고 있는 이윤극대화의 조건을 활용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또 다른 수업에서는 중견기업 관계자 한 분이 회사에서 출시한 신제품을 설명하며, 이것이 요즘의 시장 상황에 부합하는 제품인지를 나에게 물어왔다. 하지만 제품의 콘셉트를 설명하는 그의 말 속에는 수요곡선이 이동하는 다양한 요인들이 정확하게 고려되어 있었으며, 신제품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대체재와 보완재의 특성들도 정확히 담겨 있었다. 이 기업 관계자 역시 산업디자인을 전공한 분으로 경제학에 대한 지식이 없었기에 내 수업에 들어온 분이었다.


그 뿐인가? 여의도에서 강의가 끝나고 나오는 길에 허기진 배를 달래려고 가끔 들르는 분식점의 아주머니 역시 떡볶이 값을 결정하는 경제학적 메커니즘을 알고 있었다. 그분이 비록 경제학적인 용어를 사용해 세련된 말들로 그러한 메커니즘을 표현할 수는 없지만, 경제학을 몸으로 체득하여 정확히 알고 있다는 사실만은 분명했다. 심지어 유치원에 다니는 조카조차도 그렇다. 아이는 벌써 자신의 장난감 중에서 무엇을 친구의 장난감과 맞바꿔야 하는지 계산하는 방법을 알고 있으며, 친구와의 거래를 통해 자신이 이익을 보았는지 손해를 보았는지 따지는 판단기준이 무엇이어야 하는지 또한 알고 있었다.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경제학 이론을 체계적으로 배우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실생활의 의사결정 과정 속에서 경제학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하고 있다.


법학이나 행정학, 신문방송학에서 다루는 많은 이론들과는 달리 경제학적 담론의 대상이 되는 내용들은 이미 우리의 행동 속에 내재되어 있다. 이러한 측면을 고려할 때 경제학은 사람의 본질에 대해 이야기하는 학문, 그것도 태어나면서부터 주어진 고유의 본성을 다루는 학문일지도 모른다. 즉, 경제학은 사회과학일 뿐만 아니라 자연과학의 한 분파나 인문학에 가까운 면이 많다.


경제학에서 다루는 많은 내용들이 인간의 본성과 관련되어 있다면, 경제학이 태동하기 전부터 그러한 내용들이 목격되어야 할 것이다. 여기에 『경제학자의 인문학 서재』를 쓰게 된 첫 번째 이유가 있다. 인문학 그 속에는 인류가 그간 걸어온 발자취가 담겨 있다. 따라서 경제학의 개념들 또한 인간 스스로 자연스럽게 체득하는 것들이라면, 그 자취들은 우리 자신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신화, 역사, 문학, 문화, 철학 등 인문학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경제학을 한 번도 접해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경제학을 설명하려면 그에 앞서 경제학 공부가 왜 유용한지 납득시키고 어려워만 보이는 경제학에 흥미를 갖도록 유발해야 한다. 『경제학자의 인문학 서재』를 쓴 두 번째 이유는 여기에 있다. 인문학을 사용해서 경제학의 여러 개념들을 제시할 경우 독자들은 우리 생활 곳곳에 경제학적인 개념들이 오래전부터 사용되고 있었다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다. 그것도 우리가 경제학의 용어들을 사용해 정의내리기 이전부터 말이다.




수천 년 전에도 경제는 꿈틀대었다 : 신화 및 설화 속 경제
죽어서 지하세계에 간 인간은 다시 돌아오지 못한다 - 오르페우스의 지하세계 여행과 매몰비용
오르페우스는 아폴론과 뮤즈인 칼리오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다. 오르페우스는 그리스 최고의 음악가였지만 영웅 이아손이 이끄는 아르고 원정대에 들어가 황금양모를 찾는 모험을 떠날 만큼 모험심도 풍부했다. 원정에서 돌아온 이후에는 에우리디케라는 요정과 사랑에 빠져 결혼을 하였다.


결혼 후 친구들과 함께 어울리고 있던 에우리디케는 아리스타이오스라는 양치기와 마주치게 되었다. 에우리디케의 미모에 반한 아리스타이오스는 그녀를 겁탈하려 덤벼들었다. 에우리디케는 놀라 도망쳤지만 그만 풀 속에서 잠자고 있던 독사를 밟고 말았다. 화가 난 독사에게 발뒤꿈치를 물린 에우리디케는 그 자리에서 숨을 거두었다.


오르페우스는 지하세계에 있는 명부로 가 죽음의 신 하데스에게 억울하게 죽은 아내를 돌려줄 것을 간청했다. 하데스는 오르페우스에게 한 가지 조건을 제시하였다. 에우리디케를 되돌려주지만 지상에 도착할 때까지 절대 뒤를 돌아봐선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오르페우스는 하데스와의 약속을 끝내 지키지 못했다. 지상으로 나가는 입구까지는 잘 참아냈지만, 빛이 보이자 에우리디케가 잘 따라오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순간적으로 고개를 돌리고 만 것이다. 그 순간, 에우리디케는 지하세계로 다시 끌려갔고 오르페우스는 땅을 치며 후회의 눈물을 흘렸다.


엎질러진 물을 다시 담을 수 없다는 진리는 죽음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경제학에서도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바로 매몰비용이다. 매몰비용이란 일단 지출하고 난 뒤에는 어떤 방법을 써도 회수할 수 없는 비용을 말한다. 이름처럼 매몰이 되어버려 되찾는 것이 불가능한 비용이다.


매몰비용은 어떤 선택을 하든 다시 회수할 수 없는 비용이므로 의사결정 과정에서 고려되어선 안 된다. 즉, 매몰비용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하지 말고 앞으로의 선택을 고민해야 한다. 그러나 사실 이를 실천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지출한 비용이 클수록 사람들은 본전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어떤 국책사업이 아무런 효과도 내지 못할 것이라고 예상된다면 정부는 국익을 위해 이를 중단해야 한다. 만약 지금까지 들인 비용이 아까워서 사업을 계속 진행한다면 아까운 세금을 추가로 낭비하는 꼴이 되고 만다. 몇 년 전 새만금간척의 사업성에 대한 논란이 불거지면서 지금까지 투입한 비용을 무시하고 사업을 중단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 적이 있다. 이는 매몰비용의 문제를 이야기한 것이지만 사실 어디까지가 회수가능한 비용이고 어디까지가 회수불가능한 비용인지 따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먼 옛날 제나라의 군주 강태공은 자신을 버린 전처 앞에서 그릇의 물을 쏟아버린 후 이를 다시 주워담으라고 말했다. 만약 전처가 바닥의 물을 그릇에 담으려고 애썼다면 이보다 어리석은 일이 또 있었을까?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위해서는 기회비용을 정확히 계산하고, 매몰비용은 무시해야 한다. 매몰비용에 매달려 산다면 우리는 슬픔에 빠져 지하세계를 맴도는 오르페우스와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역사는 화폐를 따라 움직였다 : 역사 속 경제
글로벌 금융위기의 근본원인은 따로 있었다 - 아편전쟁과 글로벌 불균형
영국이 역사상 가장 추악한 전쟁 중 하나라고 일컬어지는 아편전쟁을 시작한 이유는 무엇일까? 흠차대신 임칙서가 아편을 폐기한 것이 도화선에 불을 붙이는 계기가 되었지만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영국과 중국 간의 무역 불균형이라고 할 수 있다.


영국과 중국의 공식적인 교역은 1689년 동인도회사가 중국으로부터 차(茶)를 수입하면서 시작되었다. 영국 정보는 관세를 높여 차 수입을 줄이려 했지만 수입량은 계속 늘어나기만 했다. 영국은 차 외에도 비단, 도자기, 약재 등을 중국에서 수입했는데 모두 영국 내에서 인기가 매우 높았다. 이 때문에 당시 결제수단으로 사용되던 멕시코 은화는 자꾸 중국으로만 흘러들어갔다.


무역적자를 해결하기 위해 영국이 꺼내든 카드는 바로 아편이었다. 1729년에 중국으로 반입된 아편은 200상자에 불과했으나 1838년에는 무려 4만 상자를 초과하였다. 영국은 아편무역을 통해 18세기의 막대한 무역적자를 해소하고, 19세기에는 무역흑자를 기록하게 되었다. 그러나 영국의 아편 밀거래로 인해 중국에서는 아편 중독자가 수백만 명으로 늘어났다. 청나라 정부 입장에서는 특단의 조치를 내릴 수밖에 없었다. 청나라 도광제는 아편 밀수입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839년 임칙서를 흠차대신으로 임명하여 광저우에 파견하였다. 광저우에 내려간 임칙서는 영국 상인들로부터 아편 2만 상자를 몰수하여 폐기하였다. 이 사건으로 영국 정부가 격노하면서 아편전쟁이 발발하고, 중국은 전쟁에서 패배해 치욕적인 난징조약(1842)을 맺게 된다.


이제 시계를 현대로 돌려 한 가지 질문을 더 던져보자. 2008년 하반기부터 본격화된 미국발 금융위기의 원인은 무엇일까? 일반적으로는 월가의 탐욕과 미국 정부의 잘못된 금융규제 때문에 금융위기가 초래되었다고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아편전쟁과 마찬가지로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따로 있다. 2008년 금융위기의 근본적인 원인은 중국의 막대한 경상수지 흑자와 미국의 막대한 경상수지 적자로 인한 글로벌 불균형이라고 할 수 있다. 영국에서 미국으로 바뀌었을 뿐 무역의 이익이 중국으로 계속 흘러들어가고 있다는 점에서 이번 금융위기는 18세기와 동일하다.


미국은 경상수지 흑자를 메우기 위해 해외로부터 돈을 빌려야 했다. 이때 중국이 자금 공급자 역할을 담당했다. 중국은 경상수지 흑자로 벌어들인 달러의 상당 부분을 미국 재무부 채권을 구입하는 데 사용했다. 그런데 이것이 미국의 금리 하락과 부동산 등 자산가격의 버블로 이어진 것이다.


미국은 2006년 약 8,000억 달러의 경상수지 적자를 기록했는데, 이 중에서 중국에 대한 경상수지 적자는 2,000억 달러가 넘었다. 옛날 같으면 미국은 중국을 압박하여 위안화를 대폭 절상하는 중국판 플라자 합의를 이끌어냈을 것이다. 하지만 중국은 이미 미국에 이은 세계 제2의 강대국으로 발돋움했다. 게다가 중국은 미국의 국채를 손에 가득 쥐고 있기 때문에 이제 미국은 중국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 이 때문에 미국 내에서는 위안화를 절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는데도 중국은 아랑곳하지 않고 서서히 절상을 진행하고 있다.


너무 오랫동안 지속되는 글로벌 불균형은 어떤 형태로든 큰 문제를 불러올 수밖에 없다. 19세기 아편전쟁과 같이 물리적 충돌은 일어나지 않겠지만 미국 경제가 붕괴되면 세계에 더 무서운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과거의 아편전쟁에 이은 환율전쟁이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지켜볼 일이다.




책 속의 인물들은 경제적으로 움직였다 : 문학 속 경제
로테를 만날수록 깊어지는 베르테르의 고뇌 -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과 시간비일관성
괴테의 서간체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서 주인공 베르테르는 로테를 만난 순간부터 주체할 수 없는 사랑의 감정에 휩싸이지만 로테는 이미 알베르트라는 남자와 약혼을 한 상태였다. 베르테르는 그 사실을 알면서도 로테의 천진난만하고 솔직한 성격에 끌려 매일 그녀를 찾아갔다. 베르테르에게 있어 로테를 만나는 것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기쁨이었다. 하지만 약혼자가 있는 그녀와의 관계가 지속됨에 따라 베르테르의 고뇌는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베르테르의 이러한 딜레마는 경제학에서 말하는 시간비일관성 문제와 연결된다. 시간비일관성이란 어느 시점에서는 최적으로 보였던 행동이 미래에는 최적이 아니게 되는 현상을 말한다. 하루라는 시간만을 놓고 볼 때 베르테르의 입장에서 가장 바람직한 최선의 선택은 로테를 만나 행복한 감정을 느끼는 것이다. 그러나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이것은 결코 최적의 선택이 되지 못한다. 여행 중이었던 알베르트가 돌아온 후 베르테르는 공사관 비서를 자청해 발하임 마을을 떠나지만 이미 깊어진 로테에 대한 사랑을 가슴에서 지워내지 못해 고통 받는다.


시간비일관성 문제는 우리의 일상 속에서도 그 예를 쉽게 찾을 수 있다. 예를 들어 흡연자들은 매일매일 시간비일관성 문제에 부딪힌다. 흡연자들에게 있어 최적의 선택은 하루 동안 흡연을 즐기고 다음날부터는 건강을 위해 담배를 끊는 것이다. 그러나 그 다음날에도 최적의 선택은 전날과 마찬가지로 흡연을 즐기는 것이 된다. 이러한 선택이 반복되면서 흡연자들은 담배를 끊을 수 없게 되고, 결국에는 건강을 해치고 만다.


시간비일관성 문제는 경제정책에서도 나타난다. 경기가 침체되어 실업이 크게 증가한 상황을 가정해보자. 중앙은행은 경기를 부양시키기 위해 통화량을 늘리는 확장적 통화정책을 사용하는 것이 가능하지만 이것이 항상 최선의 정책이 되지는 않는다. 중앙은행이 확장적 통화정책을 실시하면 총수요가 증가하고 실업은 감소한다. 실업문제를 비교적 단기간에 해결할 수 있다는 점에서 확장적 통화정책은 정책담당자에게 분명 매력적이다.


그러나 정책담당자가 매번 이러한 유혹에 빠진다면 어떻게 될까? 중앙은행이 경기침체 때마다 확장적 통화정책을 사용하면 사람들은 이를 예상하게 되고, 이로 인해 기대인플레이션이 높아진다. 기대인플레이션이 높아지면 물가는 확장적 통화정책을 쓰지 않을 때보다 훨씬 높은 수준으로 오른다. 경제학의 자연실업률 이론에 따르면 확장적 통화정책을 실시해도 장기적으로 실업률은 결국 원래의 수준으로 돌아오므로 중앙은행의 섣부른 대처는 인플레이션을 키우는 결과만 불러온다. 단기에는 최적으로 보이는 확장적 통화정책이 장기에는 최적의 정책이 되지 못하는 것이다.


다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으로 돌아가보자. 끝없는 절망 속에서 마침내 죽음을 결심한 베르테르는 크리스마스 전날 밤까지 찾아가지 않기로 한 약속을 깨고 12월 21일, 마지막으로 로테를 찾아간다. 마침 알베르트는 부재중이었다. 베르테르는 로테 앞에서 오시안의 노래를 낭독한 후 그녀와 뜨거운 입맞춤을 한다. 그리고 이튿날 베르테르는 권총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시간비일관성의 함정이 비극적인 결말을 불러온 것이다.


만약 베르테르가 시간비일관성의 함정에 빠지지 않았다면 이 소설의 결말도 달라지지 않았을까?


의뢰인에 따라 달라지는 홈즈의 사례금 요구액 - 셜록 홈즈와 가격차별
아서 코난 도일이 창조한 셜록 홈즈는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탐정이다. 명탐정의 대명사가 되어버린 홈즈의 신상 정보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이미 상당 부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홈즈의 경제적 행위, 더 구체적으로 얘기하면 그의 사례금 책정방식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을 것 같다. 사실 도일의 셜록 홈즈 시리즈에서 사례금이 구체적으로 명시된 작품은 얼마 되지 않기 때문에 그 퍼즐을 맞추기가 쉽지만은 않다. 하지만 조각난 정보들을 모아가면서 홈즈를 경제적 관점에서 재해석하는 것은 흥미로운 지적 유희가 될 것이다.


홈즈의 요금 책정방식은 『보헤미아 왕실 스캔들』과 『얼룩 띠』를 비교해보면 좀 더 명확하게 알 수 있다. 『보헤미아 왕실 스캔들』에서 홈즈는 의뢰인인 보헤미아 왕에게 사건 착수금으로만 1,000파운드를 받는다. 반면 『얼룩 띠』에서 홈즈는 당장은 사례금을 낼 능력이 없다는 젊은 숙녀 스토너 양에게 형편이 닿는 대로 자신이 쓸 얼마간의 비용만 지불해달라고 말한다. 사건에 따르는 위험도가 다르기 때문에 요금을 달리 받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다. 보헤미아 왕이 의뢰한 일은 사진을 찾는 것이었고, 스토너 양이 의뢰한 일은 생명의 위협까지도 받을 수 있는 사건이었기 때문에 위험도를 따지는 것은 별 의미가 없을 듯하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낮은 요금을 받는 것은 홈즈가 돈에 연연하지 않고 사건의 흥미도를 중요시하는 캐릭터라는 사실을 암시하는 소설 속의 도구이다. 하지만 경제학적 시각에서 보면 홈즈의 사례금 책정방식은 그에게 더 큰 이득을 가져다주었을 가능성이 높다.


경제학에서는 소비자가 누구인지에 따라 동일한 상품에 대해 서로 다른 가격을 매기는 것을 가격차별이라고 한다. 경쟁이 치열한 시장에서는 개별 기업이 소비자에게 서로 다른 가격을 매기는 것이 어렵다. 따라서 가격차별은 주로 독점시장에서 많이 나타난다. 가격차별이 꼭 독점시장에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지만 가격차별이 실시된다는 것은 해당 기업이 어느 정도의 시장지배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홈즈의 경우 의뢰인들과 상담을 마친 후 경제 형편에 따라 사례금을 요구한다. 이처럼 개인별로 각기 다른 가격을 책정하는 것을 1급 가격차별이라고 한다. 1급 가격차별 하에서 기업의 이윤은 극대화되는데, 셜록 홈즈 시리즈를 보면 이러한 이론이 그대로 적용되는 것 같다. 셜록 홈즈가 왓슨과 함께 베이커 가에서 하숙을 한 것은 혼자서 하숙비를 감당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홈즈는 불과 몇 년 만에 재정적으로 크게 넉넉해진다. 사건을 추리하는 홈즈의 능력이 사례금의 크기에 따라 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그는 의뢰인에 따라 요금을 다르게 받는 시스템을 운영하였고, 결과적으로 자신의 수입을 크게 늘릴 수 있었던 것이다.


가격차별은 기업의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실시되지만 가격차별이 무조건 나쁜 것만은 아니다. 가격차별이 시행됨으로써 지불용의가격이 낮아 상품을 구매하지 않던 사람들이 싼 가격으로 상품을 소비할 수 있는 효과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차별이란 단어가 가지고 있는 부정적인 어감 때문에 가격차별을 비판할 이유는 없다. 기업의 가격차별 전략을 적절히 활용하는 것이 현명한 소비자가 되는 길일 것이다.




예술이 태동할 때 경제가 있었다 : 예술 속 경제
세계적인 명화들은 과시적 소비품이었다 - 명화와 과시적 소비
세계적인 명화를 감상할 때 일반인들이 자주 범하는 오류가 있다. 그것은 해당 그림의 배경, 색감, 구도 등을 순전히 작가의 관점에서만 분석하여 미술품의 의미를 파악하려는 행동이다.


과거의 화가들은 소비자들이 원하는 그림을 그려주는 사람이었다. 소비자들은 그림을 주문할 때 배경이나 주인공 인물의 숫자, 옷차림, 옷의 색깔 등까지 어떻게 그려야 하는지 세세하게 주문하곤 하였다. 그래야 자신이 원하는 그림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당시에는 오늘날과는 달리 염료가격이 비쌌다. 즉, 그림을 그리기 위해 필요한 물감이 고가인 것들도 많았다. 따라서 제품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은 가난한 기능공이자 장인인 화가들이 부담하는 것이 아니라 그림을 주문한 사람이 부담해야 했다.


주문에 의해서 그림을 그려야 했던 처지는 수많은 무명의 작가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같은 세계적인 거장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사람들은 값비싼 염료, 특히 해외에서 어렵게 구한 고급스러운 색감을 갖고 있는 염료를 사용하거나 심지어 보석을 사용하여 그림을 그리도록 주문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거실 등에 걸어둠으로써 방문자들에게 자신의 부를 과시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했다.


경제학에서는 이를 과시적 소비라 한다. 과시적 소비란 소비자가 특정 재화를 구입할 타인의 시선을 고려하여 소비를 결정하는 것을 말한다. 즉, 필요에 의해서 소비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부와 명성 등을 자랑하기 위해 소비를 하는 것이다.


그림을 통해서 자신의 부와 명성을 과시하고자 하는 소비자들이 단순히 고급 염료만으로 자랑할 리는 없다. 그들은 그림에 담아낼 풍경 속에서도 자신의 부를 과시하는 방법을 찾아냈다. 그것은 그림의 풍경에 자기 소유의 땅과 농작물 등을 함께 그려넣도록 강요하는 것이었다. 그럼으로써 초상화나 풍경화를 보는 모든 사람들에게 자신이 부유한 지주라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알리고 싶어 했다.


초상화의 크기 또한 화가가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루이 14세를 비롯한 대부분의 군주는 초상화를 대형 크기로 그려주길 원했다. 그것은 초상화에 담겨 있는 자신의 모습을 일반인보다 크게 그림으로써 스스로의 위용을 과시하고 권위를 높이고자 하려는 의도였다. 이 그림들은 대부분 자신의 궁궐이나 저택 입구, 사람들이 대기하는 장소, 또는 환담을 나누는 로비 등에 걸려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장소에 그림을 배치해둔 것은 소비자들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구매한 제품(초상화 내지 풍경화)을 본연의 목적에 맞게 사용하고 있는 흔적일 것이다.




철학적인 인간과 경제학적인 인간 : 문화 및 철학 속 경제
한국에도 일찍이 경제학이 있었다 - 다산 정약용과 한국의 경제관
다산 정약용은 애덤 스미스와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경제학적 관점을 가지고 국가관을 세우고 인간의 경제활동을 바라보았다. 사실 시장경제 메커니즘에서 볼 때 다산 정약용이 살아온 시대적 환경이 애덤 스미스의 시대적 환경보다 더 명확하지 못한 환경이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다산이 보여준 통찰력에 더욱 높은 점수를 주어야 할 것이다.


정약용은 애덤 스미스보다 39년 늦은 1762년에 태어났다. 당시 조선의 시대상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 끝난 후 물질적, 정신적 후유증을 극복하는 과정 중에 있었다.


정약용은 명분이 아닌 실질적인 대안을 찾으려 시도하였고 이 대안들을 경세치용학과 이용후생학이라는 두 가지 학문관으로 정리하였다. 그가 이러한 생각을 갖게 된 것은 두 번의 왜침을 바탕으로 조선을 부국강병할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였기 때문이다. 이는 당시 식자층이 보였던 대응 방식과는 사뭇 달랐다. 그리고 이를 위한 실질적인 대안으로 백성들의 노동 방식과 생산 방식에 주목하였다. 그는 애덤 스미스와 마찬가지로 재화의 생산을 늘리기 위해서는 노동생산성을 높여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이를 위해서 분업이 필요하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정약용은 당시 생산성 향상이 이루어지지 못한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자급자족적인 생산활동으로 인해 각 경제주체들이 모든 생산활동을 스스로 전개하는 데 있다고 보았다. 그리고 각각 특별한 기술을 연마할 경우 생산량이 늘어날 것이고, 이는 곧 부국강병하는 데 크게 기여할 것이라는 사실을 제시하였다.


다산은 이에 그치지 않고 사농공상이 철저히 분업화하기 위해서는 동일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특정 한 곳에 모여서 거주해야 한다는 사실을 제시하였다. 이는 오늘날 가장 기초적인 산업입지이론 중 하나인 집적 이익을 고려한 혜안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과정에서 상업도시와 일반도시 등이 구분되어 정착되고 나면 많은 물류량이 발생할 것이다. 다산은 이를 대비하기 위해서는 수레와 배의 규격을 통일할 필요가 있다는 사실 또한 제시하였다.


다산의 경제관이 서양에서 전개되어온 경제관과 다른 점은 뭘까? 바로 일련의 경제적 개선작업이 개인의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서 수행되어야 한다고 보지 않고 국가가 주도해서 수행해야 한다고 주장한 데 있다.


당시 조선에서는 상업이 발달함으로써 가져다주는 혜택을 목격할 수 있는 곳이 단 한 곳도 없었다. 당시의 상업적 거래는 몇몇 거상들에 의해서만 수행되었으며, 거상들은 대부분의 품목에 대한 수급을 조절할 수 있었기 때문에 매점매석의 행패를 부리기 일쑤였다. 즉, 당시 시장은 완전시장의 형태보다는 독과점시장에서 전개될 수 있는 모습들이 더 많이 엿보였던 것이다. 결국 정약용이 시장의 기능에 부정적인 견해를 보이고 국가의 적극적인 개입을 강조한 것은 오늘날 독과점시장으로 인한 시장실패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개입해야 한다는 가장 기초적인 이론과 맥을 같이 한다고 할 수 있다.


애덤 스미스와 불과 몇 십 년 차이를 두고 우리는 그와 필적할 만한 경제관을 갖고 있는 지식인을 보유하고 있었다. 만약 정약용의 학문관과 세계관이 잘 계승되어 지속적으로 발전했다면 경제학의 메카는 영국의 옥스퍼드와 캠브리지가 아니라 성균관이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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