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먼 자들의 경제

The Great Hangover

   
조지프 스티글리츠·마이클 루이스(역자: 김정혜)
ǻ
한빛비즈
   
25000
2011�� 08��



■ 책 소개
조지프 스티글리츠, 마이클 루이스, 니얼 퍼거슨 등 
최고의 저널리스트들이 현장에서 찾은 최고의르포르타주!

미국의금융위기를 중심으로 금융위기 전후에 발생한 사건들의 현장 이야기를 담은 책. 13명의 유명 저널리스트들이 각자의 시선으로 금융위기의 원인을취재한 이 책의 1부에서는 금융위기의 근원지인 월스트리트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대형 투자은행인 베어스턴스의 몰락 과정을 담담히 묘사하면서 과연그들이 사기꾼 집단이었는지 반문한다. 2부에서는 금융위기를 진압하기 위한 워싱턴DC의 이야기를 통해 구제금융의 진정성과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고3부에서는 아이슬란드의 국가부도 이야기를 필두로, 세계의 명문 대학에서 부도 위기로 몰린 하버드대학교의 이야기 등을 들려준다. 마지막 4부에서는역사상 최대의 폰지 사기를 벌린 메이도프의 이야기를 심도 깊게 파헤친다. 

경제위기에는 원인과 결과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수많은 이야기를 포함하고 있기에 이 이야기 속 진실을 눈치 채야 그진실에서 경제위기의 진정한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 책에서 저자들은 위기의 현장에서 탐욕에 눈먼 사람들이 벌이는 결정적인 실수들은항상 반복되기 때문에 이러한 실수들을 이해하고 방지하는 것이야말로 위기를 반복되지 않게 하는 근본적인 대책이 될 것이라고진단한다.

■ 저자 &
조지프 스티글리츠
 - 2001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컬럼비아대학교의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세계은행 수석경제학자와수석부총재를 지냈다. 2001년 출간된 『세계화와 그 불만』은 35개 국어로 변역되어 100만 부가 팔렸다. 그 외로 『스티글리츠의경제학』『이단의 경제학』『끝나지 않은 추락』 등이 있다.

마이클 루이스
 - 9권의 저서 중 8권을 베스트셀러에 올린 작가. 저서로는 금융위기를 왜막을 수 없었는지 추적한 『빅숏』, 메이저리그 구단인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의 성공 이야기를 담은 『머니볼』, 월가 투자은행가로서 자신의 경험을기초로 집필한 『라이어스 포커』등이 있다.

니얼 퍼거슨 - 하버드대학교 역사학 교수이자 경영대학원 교수. 『하이 파이낸셔』『금융의지배』 『증오의 세기』『콜로서스』 등 8권의 저서를 발표했다. 그를 2004년 「타임」은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2005년「포린폴리시」와 「프로스펙트」는 ‘이 시대 최고 지성 100인’으로 선정했다. 

브라이언 버로 - 다양한 분야의 심층보도로 유명한 저널리스트. 1990년「월스트리트저널」의 동료 기자 존 헤일러와 공동으로 『문앞의 야만인들』을 집필했고, 이 책은 「뉴욕타임스」 논픽션 부문에서 39주간 1위를차지했다.

마크 실 -저널리스트. 사기꾼 클라크 록펠러의 믿을 수 없을 만큼 호화로운 생활, 2001년 오스카 절도사건 같은 사소한 사건, 영화 <대부&&의제작과정, 리얼리티 TV의 치열한 경쟁, 이탈리아의 아그넬리 가문 등에 관한 기사를 발표했다.
마이클 쉬나이얼슨 - 저널리스트 겸 작가. 1986년「베니티페어」에 합류한 뒤 75편에 이르는 기사를 발표했다. 저서로는 『어윈 쇼 전기』 『GM 전기차 이야기』 등이있다.

니나 뭉크 -저널리스트. 2001년부터 「베니티페어」의 객원편집자로 활동하면서 비즈니스와 금융에 관한 기사를 보도했다. 현재 아프리카의 극단적인 빈곤을종식시키기 위한 대대적인 노력을 다루는 저서를 집필 중이다.

도널드 발렛, 제임스 스틸 - 저널리스트. 저널리즘 최고의 탐사보도팀으로, 1971년부터함께 활동하면서 퓰리처상과 내셔널매거진상을 수상했다. 

토드 퍼덤 - 저널리스트. 1982년 카피보이로 입사한 뒤 23년간 「뉴욕타임스」에몸담았다. 「뉴욕타임스」를 떠날 당시 그는 워싱턴 지국의 특파원으로서 정책부터 정치 및 대중문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를담당했다.

베서니 맥린 -저널리스트. 그녀는 「포춘」에서 대기자를 지내면서 골드만삭스를 포함하여 수많은 기업과 다양한 주제를 다루었다. 2001년 초 ‘엔론은 돈을어떻게 벌까?’라는 간단한 질문을 던진 그 기사는 엔론에 관한 최초의 비판적인 심층보도로 일컬어진다.

데이비드 마골릭 - 저널리스트. 그는1981~1996년 「뉴욕타임스」의 메트로폴리탄 섹션에서 법률담당 기자로 근무했다. 윌리엄 스미스, 로레나 보빗, OJ 심슨 같은 굵직굵직한소송사건을 담당했다. 

■ 역자 김정혜
한양대학교 화학과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건너가필라델피아 커뮤니티칼리지에서 SLP 과정을 수료했다. 현재는 바른번역 소속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옮긴 책에 『설득의 힘』『체인지리더십』『생각이 차이를 만든다』『위대한 성과의 법칙』 등이 있다. 

■ 차례
서론: 도대체 그 많은 돈이 어디로 갔을까? - 컬런 머피

1부 월스트리트
1장 베어스턴스의 몰락: 누가 베어스턴스를 무너뜨렸나? - 브라이언 버로 
2장 공황 상태에 빠진 거물들 :추락하는 월가 상류 사회 - 마이클 쉬나이얼슨 
3장 월가, 또 다시 알을 낳다 : 파생 금융상품과 수학적 모델 - 니얼 퍼거슨
4장 헤지펀드, 날개가 꺾이다 : 포트리스 이야기 - 베서니 맥린 
5장 월가의 보너스 : 누가 월가에 보너스를 허락했는가? -마이클 쉬나이얼슨 
6장 세상을 파괴한 남자 : 조 카사노와 AIG - 마이클 루이스 
 


2부 워싱턴DC 
7장 혹 떼려다 혹 붙이다 :어이없는 구제금융 - 도널드 바렛, 제임스 스틸 
8장 어리석은 자본주의자들 : 금융위기를 부른 다섯 가지 큰 실수 - 조지프 스티글리츠
9장 헨리 폴슨의 잠 못 이루는 밤 : 장관은 무엇을 했나? - 토드 퍼덤 

3부 혼란에 빠진 세상 
10장 툰드라의 월가 : 아이슬란드의 국가부도 -마이클 루이스 
11장 부자 하버드, 가난한 하버드 : 하버드의 부끄러운 재정위기 - 니나 뭉크 
12장 캐리비안의 해적 : 앨런스탠퍼드 미스터리 - 브라이언 버로 
13장 마크 드레이어의 숙명적 범죄 : 모든 것을 가진 남자 - 브라이언 버로 
14장 월가가보내온 나쁜 메시지 : 금융위기가 세계에 미친 영향 - 조지프 스티글리츠 

4부 메이도프 연대기 
15장 메이도프의 세상 : 지킬박사와 하이드 - 마크 실
16장 “안녕하세요, 메이도프증권입니다” : 비서의 증언 - 마크 실, 엘리노어 스퀴야리 
17장 메이도프의 두 아들은 알았을까?: 아버지의 마지막 부정 - 데이비드 마골릭 
18장 루스의 세상 : 동업자이지만 공범은 아닌 - 마크 실 
저자 소개
 

 





눈먼 자들의 경제


서론: 도대체 그 많은 돈이 어디로 갔을까?

2008년에 금융위기의 본격적인 서막이 시작되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시장이 붕괴하고 신용위기가 시작되자 불안감과 비관론이 월가를 엄습했다. 아직 꽃샘추위가 완전히 물러가지 않은 3월의 어느 월요일 아침, 하나의 사건만 제외하면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대형 투자은행 한 곳에서 유동성 문제가 발생했다는 소문이 주식시장에 들불처럼 번지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겨우 1주일 만에 베어스턴스는 파산이라는 멍에를 안고 역사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베어스턴스를 신호탄으로 붕괴는 전염병처럼 번졌다. 9월 7일에는 국책 모기지업체인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이, 1주일 뒤에는 투자은행인 리먼브라더스와 거대 보험회사인 AIG가 내부에서 시작된 폭발로 맥없이 무너졌다. 이런 연쇄폭발은 급기야 워싱턴으로 옮아갔다. 부시 행정부가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하는 가운데 재무부와 연방준비은행이 금융대란을 막기 위해 총력을 기울였다. 마침내 7천억 달러에 달하는 긴급구제금융안이 의회를 통과했다. 이로써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의 돈퍼주기가 시작되었다.


금융위기의 마수가 닿지 않은 곳이 없었다. 세로로는 미국의 전체 경제에, 가로로는 세계로 위기가 확산되었다. 주식시장의 붕괴는 하버드대학교의 기금운용자회사를 포함하여 가장 막강한 기금관리조직까지도 파괴했다.


이 책은 우리가 대공황 이후 70년 만에 맞은 최악의 상황에 대한 고발이다. 앞으로도 이런 위기는 또 찾아올 것이 분명하다. 현재는 경기회복의 조짐이 어렴풋하게 보일지도 모르겠다. 실업률 증가가 둔화되었고 주식시장이 폭락을 멈추었으며 건설 같은 일부 산업이 살아나는 조짐을 보이니 말이다. 한편 경제를 살리기 위해 미국 납세자들이 2500억 달러의 긴급구제금융을 제공했음을 잘 아는 워싱턴 정가에서는 월가의 남용을 억제하고 금융 시스템의 근간을 더욱 튼튼하게 만들 새로운 금융규제의 필요성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그런 목소리가 일회성으로 끝날지, 아니면 그 목소리의 주인공이 확신을 가지고 단단히 결심을 했는지는 두고 볼 일이다.



월스트리트 

베어스턴스의 몰락: 누가 베어스턴스를 무너뜨렸나?

베어스턴스는 미국 5위의 투자은행이었다. 베어스턴스의 몰락은 단순한 금융 붕괴와는 차원이 달랐다. 월가 역사상 유례가 없는 일대 사건이었다. 형사고발이나 막대한 분기 손실 때문이라면 덜 억울했을 것이다. 사실과는 거리가 먼 허무맹랑한 소문과 의혹이 신호탄이 되어 투자자들이 대량으로 예금을 인출하는 뱅크런 사태가 불거졌고, 그 결과 거대 투자은행의 날개가 꺾이고 말았다. 비록 2007년 베어스턴스가 자초한 위기로 힘든 고비를 보낸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운명의 2008년 3월 셋째 주에 몰락해야 할 이유는 아무것도 없었다.


주요 투자은행 한 곳의 부회장이 이런 말을 했다. "자본구조가 아무리 탄탄해도 베어스턴스를 무너뜨렸던 공매자들의 융단폭격을 견뎌낼 수 있는 금융기관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베어스턴스는 자본문제로 파산한 것이 아닙니다. 베어스턴스의 파산에 돈을 걸었던 사람들이 악의적인 소문을 퍼트리고, 그 소문에 흔들린 사람들이 베어스턴스에게 등을 돌리는 바람에 파산했습니다."

그는 잠깐 뜸을 들인 다음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 "역사상 가장 악랄한 금융범죄를 꼽으라면 나는 두 번 생각지도 않고 베어스턴스를 꼽을 것입니다."


베어스턴스를 통치한 세 번째 인물은 지미 케인이었다. 1990년대 월가 황금기 시절 금융기관 대부분이 주식시장에서 큰돈을 벌어들일 때, 케인의 리더십 아래 베어스턴스는 월가에서 뒷전으로 밀려있던 채권을 비롯해 어두운 거래에 초점을 맞추면서 돈만 되면 상대를 가리지 않고 손을 잡았다. 베어스턴스는 성장의 고속도로를 계속 질주했고, 2000년대 내내 이익 신기록 행진을 이어갔다. 주가도 케인 편이었다. 케인이 CEO로 재임하던 14년 동안 주가는 거의 6배나 상승했다.


마침내 베어스턴스도 월가의 일원으로 복귀했다. 베어스턴스는 일부 회사들과는 확연히 다른 행보를 취했다. 외부 트레이더가 아니라 사내 트레이더를 발탁하여 이들이 펀드를 운용하도록 맡겼고, 다양한 상품에 투자하는 복합형 펀드보다 각 펀드를 전문화하여 단일 상품에 투자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모든 것이 술술 풀렸다. 랄프 치오피가 어려움에 처하기까지는 말이다.


치오피는 핵심 펀드인 HGSC(High-Grade Structured Credit Strategies)를 주택 모기지론에 연동하는 복잡한 파생상품에 투자했다. 수년 동안 펀드를 운용하면서 치오피는 엄청난 수익률을 올리며 승승장구했고, 매달 수익률도 평균 1%가 넘었다. 그러나 2006년 말 주택시장이 침체기에 빠져들자 결국 치오피의 두 펀드 모두 파산을 신청했다. 이는 베어스턴스의 자본 기반은 물론이고 월가에서 베어스턴스의 평판에도 심각한 타격을 안겨주었다.


11월에 접어들면서 대형 악재가 연이어 터졌다. 가장 먼저 포문을 연 것은 11월 1일자 「월스트리트 저널」이었다. 1면 특집기사에서 케인의 방만한 경영방식을 강도 높게 비판했고, 케인을 회사가 화마에 휩싸여 활활 타오르는 와중에도 느긋하게 대마초를 피우고 브리지에 미친 네로 황제로 묘사했다.


케인은 1월 8일자로 CEO 자리에서 물러나고 후임으로 슈워츠가 CEO 자리에 올랐다. 슈워츠가 가장 먼저 할 일은 2월 말로 마감하는 현 분기에서 반드시 이익을 내는 것이었다. 시장에서는 아직도 베어스턴스의 재정상태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았고, 헤지펀드 파산에 대한 연방정부 차원의 조사가 진행될 것이라는 소문이 이를 더욱 부채질했다. 결국 베어스턴스는 이익을 냈다. 슈워츠는 운이 따라 준다면 이참에 시장에 도는 소문도 잠재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일은 슈워츠의 바람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예전보다 많이 수그러들었다고는 해도 소문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금요일 아침 주식시장이 폐장되었을 때, 지난 월요일 170억 달러에 달했던 베어스턴스의 자본준비금은 고갈되어 거의 바닥을 보였다. 그 즈음, 베어스턴스 본사는 매우 뒤숭숭했다. 잠재 인수자들이 보낸 팀들이 분주히 오가며 회계 장부들을 샅샅이 훑었다. 베어스턴스는 애초에 위험가중자산이 1200억 달러 정도라고 추산했었다. 말이 좋아 위험가중자산이지 악성 자산이라고 해도 무방했다. 일요일 아침 무렵까지 JP모건이 파악한 바로는 베어스턴스의 위험가중자산 총액이 무려 2200억 달러에 가까웠다.


슈워츠는 이사회를 소집하여 이사들에게 다른 대안이 없다는 점을 납득시켰다. 굴욕적이더라도 주당 4달러를 제시하는 JP모건의 손을 잡든가 아니면 파산 절차를 밟든가 둘 중 하나였다. 말이 좋아 파산이지 회사가 공중분해 되는 것이었다. 미국 은행 역사에 한 획을 그었던 대형 투자은행이 그렇게 해서 전례가 없는 인수계약에 서명했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아울러 290억 달러에 달하던 주주가치와 14,000명 직원들의 안정적인 미래도 함께 증발했다. 도대체 베어스턴스는 어쩌다가 이 지경까지 되었을까?


운명의 한 주를 온몸으로 고스란히 경험한 고위 경영자들조차도 베어스턴스의 위기에 대한 생각은 모두 달랐다. 그러나 훗날 앨런 슈워츠가 생각해 낸 시나리오에 고개를 끄덕이는 경영자들이 많았다. 슈워츠가 친구들에게 말하듯이, 실수가 있었던 것도 맞고 재무상의 약점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베어스턴스의 운명을 결정지은 한 주 동안 무대 뒤에서 벌어진 일에 대해 더 많이 알수록 슈워츠는 꺼림칙한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음모였다. 베어스턴스의 몰락으로 이익을 취하려는 금융시장 투기꾼들이 사전에 용의주도하게 계획한 공격에 회사가 맥없이 무너졌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슈워츠의 주장대로라면, 이름 모를 투기꾼들이 복잡한 술책을 동원하여 월가의 주요 금융기관 몇 곳이 어쩔 수 없이 베어스턴스와의 거래를 보류하도록 만들었다. 그런 다음에는 그 정보를 언론에 슬쩍 흘려 금융시장을 교묘히 공황 상태로 몰아갔다. 이런 슈워츠의 주장에 힘이 실리는 것은 슈워츠가 지목한 투기꾼 중 일부가 현재 증권거래위원회의 조사를 받고 있다는 점이다.


이 이론의 핵심은 운명의 화요일과 수요일에 불이 붙기 시작한 경개 요청이었다. 훗날 베어스턴스의 경영자들이 그 거래들을 분석했고 놀라운 점을 발견했다. 당시 거의 모든 경개 요청이 오직 골드만삭스, 크레디스위스, 도이체방크 3곳에 집중되었던 것이다. 슈워츠는 적어도 그들 중 한 곳이 경개 요청 승인을 잠정적으로 중단하도록 사전에 계획한 것이라고, 일은 그렇게 꾸며진 것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도 골드만삭스와 크레디스위스가 그렇게 했다. 거래 중단 소식은 곧바로 월가의 트레이딩 플로어를 강타했다.


어쩌면 증권거래위원회가 베어스턴스가 자연사했는지 아니면 살해당했는지 밝혀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베어스턴스의 사태가 영원한 미궁으로 빠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베어스턴스가 약탈자의 공격에 희생되었다고 믿는 사람들조차도 그것이 명명백백히 밝혀질 것이라는 큰 기대를 하지 않는다.


리먼브라더스의 임원이 말했다. "금융인의 한 사람으로서 나는 증권거래위원회가 반드시 그렇게 해주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이번 사태가 대수롭지 않은 뱅크런 문제로 여겨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 일과 같은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있다면, 어디에 있을까요? 장담하건대 베어스턴스 몰락 사건의 뿌리에서 그 대답을 찾아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다른 어딘가에서 똑같은 일이 벌어질 테니까요."



워싱턴DC 

혹 떼려다 혹 붙이다 : 어이없는 구제금융

2008년 10월 미국 의회는 긴급경제안정법을 통과시켰다. 그 법안의 핵심은 신용경색이 심화되고 금융공황이 절정에 이를 때, 은행들에게 구제금융을 투입할 수 있도록 재무부에 7000억 달러를 제공한다는 것이었다. 그 뒤 3달 동안 재무부는 전국 8,000개 은행 가운데 296개 은행에 약 2390억 달러를 지원했다. 대형은행, 중소은행 할 것 없이 구제금융이 절실했던 은행은 물론이고 정부지원금이 전혀 필요하지 않은데도 무조건 받으라는 재무부의 강요에 울며 겨자 먹기로 수령했던 은행도 있었다. 이게 무슨 횡재냐며 냉큼 받아서는 다른 은행을 인수하는 데 전용한 은행도 있었다. 그들 은행은 많게는 450억 달러, 적게는 150만 달러를 챙겼다. 전체 금액의 67%는 8개 은행에게 돌아갔고 33%를 나머지 은행들이 나눠가졌다. 이처럼 전통적인 은행에 대한 구제금융 말고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백악관에 입성하기 전에 수백억 달러가 다른 금융기관들에게 지원되었다. 이는 미국 역사상 재무부가 금융 시스템에 개입한 것 중에서 단일로는 최대 규모였다.


구제금융이 재무부 현관을 나서고 나자 정부는 더 이상 그 돈을 추적할 수 없었다. 돈의 행선지는 알았지만 그 돈으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전혀 몰랐다. 헨리 폴슨이 재무장관으로 재임하던 시기에 구제금융 대부분이 집행되었다. 지금도 부실자산구제계획 자금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는 중앙 센터 따위는 없다. 이는 어떤 것이든 상세한 정보를 알려면 부실자산구제계획 자금을 지원받은 금융기관을 일일이 찾아 내어 증권거래위원회가 공시한 자료와 연례보고서 등을 포함하여 각종 서류를 샅샅이 조사해야 한다는 의미다. 다른 말로 정부가 등한시했던 표준 실사를 실시해야 한다. 그러자 진흙탕 속에 발가락 끝만 살짝 담갔을 뿐인데도 한 가지 사실이 분명해졌다. 많은 돈이 결국 일부 금융기관의 금고로 들어갔다는 사실이다. 그들 기관은 어렵기도 했지만 분명 말썽이 많기도 했다.


9대 대형은행을 한자리에 불러 모아 그들에게 총 1250억 달러를 지급하는 것은 단추 하나를 채운 셈이었고 그 일에는 고작 몇 시간이 걸렸을 뿐이다. 전국 8,000여 은행들의 건전성을 조사하고 부실자산구제계획의 대상 은행을 결정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게다가 확실한 기본 원칙마저도 없었다. 신용시장에 더 많은 유동성을 공급할 수 있도록 재무상태가 건전한 은행들을 지원할 것인가? 당장 어려움에 처한 은행들을 구해줄 것인가? 아니면 둘 다 해야 하나? 이 두 가지 말고도 해야 하는 것이 더 있을까?


마침내 은행들에게 수십 억 달러 뭉칫돈을 지급하기 시작했을 때도, 재무부에는 수령자들이 반드시 그 돈을 프로그램의 목적에 맞게 사용하도록 관리 감독하는 적절한 정책은 없었다. 재무부의 내부방침은 은행들이 그 돈으로 무엇을 어떻게 하라고 공개적으로 요구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진짜 문제는 부실자산구제계획 자체에 있었다. 부실자산구제계획은 미국 정부 역사상 가장 납득하기 힘든 모험적 사업 가운데 하나였다. 부실자산구제계획은 애초 유독성 자산을 매입한다는 미명하에 채택되었지만 최초 제안자들마저 얼마 지나지 않아 비현실적인 계획이라고 등을 돌리고 말았다. 그러다 보니 부실자산구제계획은 각자 나름의 이해관계와 목표를 가진 수많은 금융기관의 배를 불리는 다목적 비자금에 가까운 무언가로 변질되었다. 게다가 분명하게 공시된 공적 목적을 위해 그 돈을 사용하도록 장려하는 인센티브도 전혀 없었다. 대체로 빅 나인은 부실자산구제계획 자금을 그들의 자본기반에 포함시켰고 대부분은 그 돈의 실제 사용처를 밝히길 거부했다. 단일 금융기관으로는 부실자산구제계획의 최대 수혜자인 AIG는 심지어 은행도 아니었다.


많은 은행들이 처음에는 부실자산구제계획 공적자금을 달가워하지 않았고 또 그들이 부실자산구제계획 자금을 신속하게 상환했다는 점에서 볼 때, 중요한 결론 하나를 도출할 수 있다. 실제로 위험에 처한 금융기관들이 생각만큼 많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폴슨과 재무부는 긴급자금이 필요한 부실 금융기관을 선별적으로 지원하기보다는 철저한 사전 계획도 미래에 대한 책임감도 없이 금융 시스템에 수백억 달러를 쏟아 부었다. 왜 그랬을까? 재무부와 연방준비은행이 지레 겁을 먹어서일까? 많은 사람들이 금융위기에 과민반응을 보였기 때문이었을까? 사상 최악의 투자를 하고도 일부 투자금을 전액 회수한 월가 몇몇 금융기관들을 보호하기 위한 연막이었을까?


막대한 구제금융이 금융기관들의 금고로 흘러들어간 지 5개월이 지났다. 엘리자베스 워렌 의원은 아직 아무도 속 시원한 대답을 내놓지 못한 중요한 질문을 절박하게 물었다. "재무부의 기본 전략이 무엇입니까?" 워렌 의원은 대답을 듣기 글렀다고 판단했는지, 적어도 자신이 아는 한 재무부의 전략은 "돈을 가져가서 맘대로 하세요."라는 것이라고 말을 맺었다.   



혼란에 빠진 세상

툰드라의 월가 : 아이슬란드의 국가부도

2008년 10월 6일, 아이슬란드가 국가부도를 선언했다. 아이슬란드는 2008년 UN이 발표한 인간개발지수에서 1위를 하는 등 내로라하는 세계 부국에다가 국민들의 교육수준도 아주 높았고 이제껏 이성적인 민족으로 알려졌다. 그런 나라가 금융 역사상 가장 광기 어린 행동을 조직적으로 저지른 것이다.


"너도나도 옵션가격결정모델인 블랙-숀즈를 배운다고 난리였습니다." 아이슬란드대학교의 어업경제학 교수인 레이그나 아네이손은 학생들이 어업경제학을 버리고 돈의 경제학을 좇아가는 것을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공대와 수학과에서 금융공학을 개설했고, 많은 학생들이 금융을 배우겠다고 몰렸습니다."


글로벌 금융 야망은 결국 치명적인 약점을 드러냈다. 2008년 10월, 세계적인 규모인 아이슬란드 3대 은행이 붕괴했을 때 손실이 1000억 달러에 이르렀고 아이슬란드 30만 국민 모두는 그 손실에 어떤 식으로든 책임이 있음을 깨달았다. 이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국민 1인당 손실이 대략 33만 달러에 이른다는 계산이 나왔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아이슬란드 국민들은 개인적으로 희한한 외환 투기에 발을 담가 총 수백억 달러를 날렸고 국내 주식시장이 85%나 폭락하면서 손해를 보았다. 결국 아이슬란드 국민들은 GDP의 8.5배에 달하는 부채를 떠안게 되었다. 부채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미국도  GDP의 고작 3.5배에 불과했다. 미국 경제에서 월가가 차지하는 비중과 중요성이 터무니없이 비대해졌다고 해도 금융위기가 닥쳤을 때 납세자들의 혈세로 그럭저럭 구제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아이슬란드의 사정은 달랐다. 파산한 3개 은행 중 한 곳의 손실만도 국민 전체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막대했는데 3개 은행의 손실을 전부 합치면 어떨까? 은행이 파산하고 몇 주 지나지 않아 실시된 어떤 여론조사에서 아이슬란드 국민 3명 중 1명이 이민을 가고 싶다고 응답했다면 대답이 되었을 것이다.


지난 몇 년간 수많은 사람들이 너도나도 위험한 투기에 발을 담갔다. 시중 금리가 15.5%로 치솟고 크로나 가치가 상승하자 사람들은 고가품을 구입할 때는 크로나가 아니라 엔과 스위스 프랑을 빌리는 편이 현명하다고 판단했다. 그들은 엔화 대출을 받아 3%의 이자를 지급했고 크로나 가치가 계속 상승하자 커다란 환차익을 보았다.


"많은 어부들이 통화 차익거래를 알게 되었고 큰돈을 벌었습니다. 그러다가 금융이 어업을 집어삼키고 말았습니다. 부자가 되었는데 굳이 고기잡이를 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지요." 그들의 성공 이야기는 동료 어부들에게 급속하게 전파되었다. 머리 쓸 일 없는 너무나 쉬운 것처럼 보였으리라. 막대한 환차익을 밑천으로 고급 주택과 자동차를 사기만 하면 되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10월 크로나가 붕괴되자 상황이 180도 변했다. 그들이 원리금을 상환해야 하는 통화, 엔과 스위스 프랑의 가치가 몇 배나 껑충 뛰어올랐다. 이제 그들에게는 150만 달러 모기지대출을 안은 50만 달러짜리 집과 10만 달러 대출이 얹혀 있는 35,000달러짜리 레인지로버만 남게 되었다. 이들 중에는 특히 젊은 층이 많았다.


런던에서 활동하는 어떤 헤지펀드 매니저는 아이슬란드의 대출 행태를 냉정하게 꼬집었다. 그는 아이슬란드 은행들이 수상한 레버리지 매수에 자금을 대는 것이 하도 이상해서 아이슬란드 금융 시스템에 과연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조사하기 위해 민간 조사관들을 고용했다고 한다. 결론은 이랬다. 금융 경험이 전혀 없는 일부 아이슬란드인들이 단기 대출 형태로 수백억 달러를 해외에서 조달했다. 그들은 이 돈으로 직접 자산을 매입하거나 친구들에게 자산매입자금으로 재대출해 주었다. 부분적으로는 이들 미치광이를 포함하여 자산 획득에 막대한 돈을 쏟아 붓는 사람들 덕분에 세계의 자산가격이 상승하고 있던 터라 겉으로 보기에는 그들이 돈을 벌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또 다른 헤지펀드 매니저는 아이슬란드의 금융 시스템을 이렇게 설명했다. "당신은 강아지를, 나를 고양이를 가지고 있다고 칩시다. 우리는 강아지와 고양이가 각각 10억 달러짜리로 하자고 입을 맞춥니다. 그런 다음 당신은 내게 강아지를 10억 달러에, 나는 고양이를 당신에게 10억 달러에 팝니다. 이제 우리는 애완동물의 주인이 아닙니다. 10억 달러짜리 새로운 자산을 획득한 자산가들이지요. 아이슬란드 은행들이 바로 이런 거래를 했던 겁니다."


총리는 국민들에게 국가 붕괴사태를 어떻게 설명했을까?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가 아니었을까? 아이슬란드 금융정책결정자들은 금융경험이 턱없이 부족했다. 독립당의 리더들은 금융에 대해 잘 모를 뿐 아니라, 그러면서도 금융전문가의 조언과 도움을 철저히 거부하는 것은 널리 알려진 이야기다. 아이슬란드 출신으로 런던 정경대에서 금융공황을 가르치는 존 다니엘손 교수는 고국에 도움을 제안했다가 보기 좋게 퇴짜를 맞았다. 아이슬란드대학교의 저명한 금융 경제학자 몇몇도 홀대당하기는 매한가지였다. 세계 경제대국의 유능하고 경험 많은 중앙은행 관계자들이 제공한 조언도 무시당했다. 아이슬란드의 총리와 독립당이 여성 유권자들의 외면을 받는 이유는 분명했다. 그들이 어느 정도 익숙한 지형을 찾다 길을 헤맬 때 아내의 불평에도 불구하고 절대 남에게 길을 물어보지 않는 완고한 가장의 모습과 똑같기 때문이다.


부자 하버드, 가난한 하버드 : 하버드의 부끄러운 재정위기

2008년 5월 초, 나는 매사추세츠 케임브리지에 있는 하버드대학교의 총학생회에 참석했다. 그날 회의의 주제는 비용 절감이었다. 하버드의 최대 학부인 인문사회과학대의 마이클 스미스 학장은 곧장 본론으로 들어갔다. 학부대학인 하버드칼리지, 일반대학원, 공학 및 응용과학대학원을 포함하여 인문사회과학대 전체가 2억 2000만 달러의 예산적자에 직면했다는 것이었다. 2억 2000만 달러라니! 대단한 액수였다. 이는 인문사회과학대에 책정된 현재 예산의 20%를 삭감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교수는 물론이고 조교수, 관리인, 행정지원인력 등 대량 해고가 있을 것이다. 도서관 운영이 제한되고 연구비, 출장비, 도서구입비도 상당 부분 감축될 것이다. 학생들의 쉼터이기도 했던 카페는 사라지고대신에 자동판매기가 설치될 것이며 대학의 2등 운동팀들은 동아리 수준으로 강등될 터였다. 임금을 인상하는 것은 언감생심이고 보너스도 없을 것이며, 건물에 페인트를 새로 칠하는 일도, 카펫을 교체하는 일도 없을 것이다. 쓰레기통은 쓰레기로 넘쳐날 터였다.


하버드는 어려움에 처했고, 누구에게 책임이 있는지, 이제부터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아무도 결정하지 못했다. 한편 캠퍼스 자체도 혼란에 휩싸였다. 교수진들은 분노했고 학생들은 배신감을 느꼈다.


2008년 6월 3일로 마감된 2008년 회계연도에 하버드의 기금 규모는 369억 달러였는데, 이는 1990년 48억 달러에서 무려 7.5배 이상이나 증가한 수치였다. 세계 어떤 대학도 하버드의 기금에는 명함도 내밀지 못한다. 미국의 2위 부자 대학인 예일의 기금도 2008년 회계연도에 229억 달러였고, 이는 하버드 기금의 6할을 조금 넘는 수준이었다. 뿐만 아니라 스탠퍼드는 같은 해 기금이 172억 달러로 하버드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


경기가 좋았던 시절, 모두가 하버드 기금의 가치가 지속적으로 상승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런 그릇된 확실성만 믿고, 이미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흥청망청 대던 하버드는 더욱 미쳐 날뛰었다. 1998년 인플레이션을 감안한 연간 운영예산이 21억 달러이던 것이, 2008년에는 35억 달러로 67%나 상승했다. 문제는 같은 기간 동안 재학생 수는 변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2008년 9월 신학기가 시작하고 하버드의 새로운 재정보조 프로그램이 실시될 즈음 리먼브라더스가 파산을 신청했고 주식시장은 끔찍한 자유낙하를 시작했다. 2008년 말이 되자 다우존스지수는 2007년 최고 수준일 때보다 거의 40% 가까이 추락했고 하버드의 과열된 기금이 동반 추락했다.


1990년부터 2005년까지 하버드매니지먼트컴퍼니를 이끌었던 잭 마이어와 그의 포트폴리오 매니저팀은 하버드의 돈을 온갖 종목에 투자했다. 사모펀드, 부동산, 석유, 천연가스, 고정수익 차익거래, 삼림지, 헤지펀드, IT벤처기업, 해외 주식시장, 신용부도스와프, 금리스와프, 통화스와프, 소비재상품, 벤처캐피털펀드, 정크본드 등 종목을 가리지 않았다. 이국적이고 비유동적인 이런 모든 투자의 이익증대 효과가 성에 차지 않았던지 마이어는 레버리지에도 손을 댔다. 하버드의 포트폴리오는 화려함의 극치였다.


오랫동안 마이어의 대담한 전략은 완벽한 성공을 거두었다. 1990년 회계연도부터 2008년까지 하버드의 기금은 연평균 14.3%라는 놀라운 성장을 기록했다. 잭 마이어가 통치하던 시절에는 돈을 버는 것이 하버드매니지먼트컴퍼니의 유일한 이유였다. 마이어가 하버드매니지먼트컴퍼니를 떠난 시기가 공교롭게도 헤지펀드 광풍이 정점에 있을 때와 맞물렸다. 포트폴리오 매니저와 트레이더가 줄었고 확실한 투자전략이 없었기 때문에 하버드는 어리석은 결정을 하고 말았다. 가장 핫한 신생 헤지펀드에 막대한 자금을 투자한 것이다. 이들 투자의 일부는 재앙이 되고 말았다.


중요한 것은 따로 있다. 하버드의 기금이 하락 추세에 있고 더욱이 투자수익률 전망이 어두울 뿐 아니라 대학의 운영비를 조달하기 위해 기금을 출현해야 한다. 그 때문에 하버드의 기금 규모가 2008년 최고 수준으로 회복하는 데는 10년 이상이 걸릴 것이라는 점이다.



메이도프 연대기

메이도프의 세상 : 지킬박사와 하이드

1월의 뉴욕 어느 저녁 모임에서였다. 당시 나는 버나드 메이도프에 대한 분노가 극에 달해 있었다. 그러다 보니 나도 모르게 일행들에게 내 감정을 속사포처럼 쏟아냈다. 스티븐 스필버그, 엘리 위젤, 모트 주커만 등이 활동하는 여러 재단이 메이도프의 사기극에 걸려 막대한 손실을 입었다는 것은 다들 알고 있었다.


12월 11일은 버나드 메이도프가 FBI 수사관들에게 모든 것이 커다란 거짓말이었다고 인정한 날이었다. 개인과 단체를 합쳐 메이도프 펀드 투자자는 13,500명에 달했다. 크리스마스가 끝나고 해가 바뀌는 동안 피해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믿기 힘들 만큼 많았다. 어떤 비즈니스 리더가 회상했다. "그들은 있는 돈 없는 돈 다 모아 메이도프 펀드에 계속 쏟아 부었습니다. 이름을 밝힐 수는 없지만, 2년 전 금리가 낮았을 때 집을 담보로 재융자를 받아 그 돈을 메이도프에게 몽땅 투자한 이도 있었습니다. 이제 그는 돈도 집도 없는 알거지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그것을 차익실현거래라고 불렀다. 5년 전에 어떤 이가 아스펜에서 대출이 없는 1500만 달러짜리 집을 소유하고 있었다면, 연 4% 이자율로 1000만 달러를 쉽게 대출받을 수 있었다. 이 때, 1000만 달러 대출에 대한 이자는 연 40만 달러였다. 하지만 1000만 달러 모기지대출금을 12% 수익률을 내는 메이도프에 고스란히 투자한다면 이자비용과 수익률의 차이가 8%에 이르고, 이를 금액으로 환산하면 주택 소유자는 매년 80만 달러의 차익을 실현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버나드 메이도프는 완벽한 지킬 박사와 하이드로 이중인격자였음에 틀림없으며 그런 성격은 메이도프가 집안의 돈으로 자기자본거래를 할 때 철저하게 적용되었다고 메이도프의 런던 지점장이었던 스티븐 레이븐이 말했다. 30년 넘게 메이도프를 알아 온 레이븐이 속내를 털어놓았다. "TV에서 그가 체포되던 장면을 보았던 그날 밤 이후 미국인들과 이야기한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얼마나 떨리던지 마치 발밑의 땅이 흔들리는 것 같았습니다. 지금도 믿기지가 않습니다. 언론에서 말하는 버나드 메이도프가 내가 잘 아는 그와 너무 달라 마치 다른 사람을 이야기하는 것 같았습니다."


메이도프의 두 아들은 알았을까? : 아버지의 마지막 부정

버나드 메이도프가 돈을 갈취한 8,000명 이상의 투자자 명단에 메이도프의 두 아들인 앤드류와 마크의 이름도 올라 있다. 그들은 직업, 명성, 전망, 자산, 마음의 평화와 더불어 이연보상금과 직접투자로 1500만 달러 이상을 손해 보았다고 한다.


법과 관련하여 마크와 앤드류의 운명이 어떻게 전개되든 그들의 미래는 암울하게만 보인다. 파산관재인은 그들에게 빌려준 3100만 달러를 포함하여 그들이 소유한 모든 것이 아버지의 불법자금으로 획득된 것이라고 주장할 가능성이 컸다. 수많은 소송이 잇따를 것이고, 좌절감에 몸부림치는 투자자들은 그런 소송을 통해 그들을 발가벗기려 들 것이다. 그런 움직임은 이미 시작되었다.


메이도프 일가를, 그중에서도 로슬린 시절부터 마크를 잘 아는 어떤 투자자는 그들에 관한 진실은 무지와 유죄 사이 어딘가에 존재한다고 말했다. "나는 마크가 무언가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어느 정도인지 몰랐다고 생각합니다." 그녀가 말했다. "그 문제를 모른 체 무시하기는 했을지언정 자, 이 도트 프린터로 가짜 거래들을 좀 꾸며보죠. 같이 적극적으로 개입한 것은 절대 아니었어요. 나는 롤렉스 시계와 낚시 여행 등 마크가 자신의 삶에 그저 만족했을 뿐이라고 생각해요. 사악한 사람이 절대 아닙니다." "가끔 혼잣말을 하죠. 마크는 지금 어디서 뭘 하고 있을까?"


그 사람이 덧붙였다. "나는 마크 때문에 마음이 너무 아파요. 앤드류도 참 안됐어요. 그러나 그들이 자신들의 것이 아닌 삶을 살아온 것에는 화가 나요. 그 돈은 나와 우리 가족과 모든 피해자들의 돈이에요. 바보같이 메이도프에게 속아 투자했던 성실한 사람들 말이에요. 그럼에도 나는 그들이 너무 불쌍해요. 아버지라는 사람이 자식들의 인생을 송두리째 파괴하고 말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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