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스트리트 성인의 부자 지침서
Enough : Ture Measures of Money, Business, and Life
존 보글이 이 책을 통해 전하고자 했던 ‘충분함’이라는 한마디는 부에 대한숭배와 직업윤리의 타락뿐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인격과 가치의 파괴까지 경고한 말이다. 보글은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며 투자의 의미를 생각하고,우리가 진정으로 충분함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다.
■ 저자 존 보글(John C.Bogle)
투자자의 이익을 최우선하는 철학으로 인해 ‘월스트리트의 성인(St. John)’으로 추앙받는 인물. 워런버핏과도 종종 비견되는 세계 투자계의 거장이다. 1974년 뱅가드그룹을 설립하여 2000년까지 CEO, 회장, 명예회장을 지냈다. 1975년세계 최초로 인덱스펀드를 개발 보급하여 매년 30퍼센트가 넘는 엄청난 수익률을 달성하기도 했다. 이와 같은 공로로 1999년 「포춘」 지는 그를‘21세기 4대 투자 거장’으로 선정했으며, 2004년 「타임」에 의해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의 한 사람으로 뽑힌 바 있다.이밖에도 『인스티튜셔널 인베스터』로부터 ‘종신업적상’을, 프린스턴 대학과 로체스터 대학 등 여러 대학에서 명예 박사학위를 받기도 했다. 현재는보글금융시장연구센터의 대표로서 80세의 고령임에도 연구, 강연, 집필 등 왕성한 활동을 하면서 여전히 월스트리트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있다. 저서로는 2007년 베스트셀러를 기록한 『모든 주식을 소유하라』『만국의 주주들이여 단결하라』『존 보글 투자의 정석』 등이 있다.
■ 역자 이건
투자분야 전문 번역가.연세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캘리포니아 대학 샌디에이고 캠퍼스에서 수학했다. 장기신용은행주식펀드매니저 및 국제채권 딜러 등을 담당했고, 삼성증권 사이버마케팅팀장 등을 거쳐, 마이다스에셋자산운용 기획마케팅 이사로 일했다. 현재는번역가들의 모임인 바른번역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독자와의 만남 공간 왓북(whatbook.co.kr)에서 ‘경영서 골라읽기’ 파트를담당하고 있다. 저서로는 『대한민국 1퍼센트가 되는 투자의 기술』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는 존 보글의 『모든 주식을 소유하라』를 비롯해 『마케팅혁명과 DBM』『전설로 떠나는 월가의 영웅』『시장 변화를 이기는 투자』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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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례
글을시작하면서
돈
1장 비용은 높고 가치는부족하다
2장 투기는 넘치지만 투자는 부족하다
3장 복잡성은 넘치지만 단순성은 부족하다
사업
4장 숫자만 많고 신뢰는부족하다 &
5장 사업행위는 넘치지만 전문가적 품행은 부족하다
6장 상혼만 넘칠 뿐 청지기정신은 부족하다
7장 경영은넘치지만 리더십은 부족하다
인생
8장 재물에는 집중하지만 책임은부족하다 &
9장 21세기 가치는 넘치지만 18세기 가치는 부족하다
10장 성공은 넘치지만 인격은부족하다
무엇이 충분한가
나에게, 당신에게,미국에, 어느 정도면 충분한가
후기 - 나의 경력에 관한 비망록
감사의 말
옮긴이의말
주석
월스트리트 성인의 부자 지침서
글을 시작하면서
우리는 멋지면서도 슬픈 시대에 살고 있다. 민주자본주의가 세계 전체에 이토록 널리 퍼진 적이 없다는 점에서 멋진 한편, 바로 이 민주자본주의가 이토록 과도한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다는 점에서 슬프다. 일류 헤지펀드 매니저들이 10억 달러가 넘는 연봉을 챙기고, 실패해서 쫓겨나는 CEO들을 포함해서 우리나라 상장회사 CEO들이 외설적인(달리 마땅한 표현이 없다) 수준의 보상을 받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고, 과도한 부채를 동원하여 과도한 투기를 일삼는 금융 및 투자산업 그리고 정부 지원을 받는 거대한 모기지 대출기관 페니메이와 프레디맥에 의해 지속되고 있는 위기에도 과도한 모습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그러나 우리 금융 시스템과 기업세계를 삼킬 듯이 위협하는 사나운 탐욕은 단순히 돈 문제만은 아니다. 충분한 줄 모르면 직업적 가치가 타락한다. 투자를 위임받은 수탁자들이 세일즈맨으로 전락하고 만다.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 하는 시스템이 계산을 바탕으로 하는 시스템으로 변질된다. 더욱 나쁜 일은, 충분한 줄 모르면 우리는 인생 전반에서 길을 잃어버리기 쉽다는 점이다. 우리는 성공이라는 헛된 꿈을 좇는다. 결국 아무 의미 없고 무상한 제단에 머리를 조아리느라 계산할 수 없는 정말로 소중한 것을 간직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바로 이 말이 조지프 헬러가 “충분하다”는 강력한 말 한 마디에 담은 의미다. 이는 부에 대한 숭배와 직업윤리의 타락뿐 아니라 궁극적으로 인격과 가치의 파괴까지 경고한 말이다.
돈
투기는 넘치지만 투자는 부족하다
투자란 기업에 대한 소유권을 장기간 보유하는 일이다. 상장기업은 소비자들이 원하는 상품과 서비스를 생산하고, 효과적으로 경쟁을 벌이며, 기업가정신을 발휘하여 번영하고, 변화를 이용하면서 본질 가치를 점진적으로 축적한다. 기업은 우리 사회에 가치를 더해주고, 투자자들에게 부(富)를 더해준다.
투기는 이와 정반대다. 투기는 금융상품(기업이 아니라 종이쪼가리에 불과한)의 본질 가치가 아니라 가격이 상승하기를 기대하면서, 금융상품을 단지 거래하는 행위다. 실제로 이들은 모두 자신이 선택한 주식이 다른 주식보다 더 오르기를 기대한다. 같은 기간 주가 움직임을 나타내는 곡선은 앞의 투자수익 곡선에 비해 훨씬 들쑥날쑥하다.
단기적으로 보면, 투자수익은 투기수익과 거의 관계가 없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두 수익이 같을 수밖에 없다. 가장 훌륭하게 표현한 워런 버핏의 말에 귀를 기울여보자. “오늘과 심판의 날 사이에 투자자 전체가 얻을 수 있는 최대 수익은, 그들이 투자한 기업 전체가 벌어들이는 수익이다.” 그는 40년 넘게 운영하고 있는 상장회사 버크셔 해서웨이(Berkshire Hathaway)에 대해 설명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주가가 일시적으로 기업실적보다 더 상승하거나 하락할 경우, 일부 주주들은 주식을 사거나 팔아서 거래 상대방에게 손실을 입히면서 큰 이익을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버크셔 주주 전체가 얻는 수익이 우리 회사가 얻는 수익과 반드시 일치할 수밖에 없다.”
- 거대한 착각
장기적으로 주식에서 발생하는 수익은 모두 투기가 아니라 투자에서 나온다. 즉, 우리 기업에 투자된 자본의 생산력에서 나온다. 역사를 돌아보면 1900년에서 2007년 동안 주식의 수익률은 연 9.5퍼센트였는데, 이는 전적으로 평균 배당수익률 약 4.5퍼센트와 이익성장률 5.0퍼센트로 구성된 투자수익률이다(이 수익률에는 중개인에게 지불하는 비용이나 인플레이션 효과가 반영되지 않았다).
우연인지 몰라도 이 기간의 투자수익률(주가수익비율PER의 증감에 따른 수익률)은 0이었다. 투자자들은 기간 초에 이익 1달러에 대해 15달러(PER=15)를 조금 넘게 지불했었고, 기간 말에도 거의 같은 배수를 지불했다. 물론 장기간에 걸쳐 주가수익비율이 바뀔 수도 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투기수익률 때문에 투자 수익률이 0.5퍼센트 넘게 오르거나 내리는 경우는 드물다.
이 메시지는 분명하다. 장기적으로 주식의 수익률은 기업이 벌어들이는 실제 이익에 거의 전적으로 좌우된다. 시장 참여자들의 변덕스런 인식 변화에 따라 일시적으로 주가와 주가수익비율이 오르내리면서 발생하는 투기수익률은 본질적으로 아무 쓸모가 없다. 장기적으로 주식의 수익률을 결정하는 것은 경제 측면이다. 단기적으로는 정서가 수익률을 지배하지만, 장기적으로는 그 효과가 눈 녹듯이 사라진다. “주식시장은 투자에 대해 거대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사업
상혼만 넘칠 뿐 청지기정신은 부족하다
나로서는 인정하기가 매우 고통스럽지만, 펀드 산업은 여러 모로 사업 가치와 투자가치가 타락한 본보기에 해당한다. 가장 명백한 변화는 펀드 산업이 엄청난 성장을 누렸다는 점이다. 1951년에는 펀드 자산이 모두 20억 달러였다. 오늘날에는 자신이 모두 12조 달러가 넘는데, 이는 50년 넘게 무려 연 17퍼센트로 성장한 결과이다. 다른 사업에서는 이렇게 높은 성장을 기록한 적이 없다. 1951년에 주식형 펀드는 미국 주식의 약 1퍼센트를 보유하는 정도였다. 2008년이 되자 주식형 펀드는 자그마치 35퍼센트를 보유하게 되었으며, 펀드 산업은 미국을 지배하는 금융기관이 되었다. 이에 비해 그다지 드러나지 않는 사실이지만, 펀드 산업에서는 투자의 초점이 크게 바뀌었다.
- 더 나은 세상을 향해서
자산 증가, 투자기간의 단기화, 투자가들의 비생산적인 행태, 실시간 펀드 운용 프로세스, 과민한 투자 전략, 치솟는 비용, 재벌의 펀드 소유, 금융상품의 홍수 등이 결합되어 투자자들에게 심각한 피해를 주고 있다. 간단히 말해서 연금기금, 펀드, 다른 금융기관 등 미국 가정의 투자자금을 위탁받은 우리들은 투자자들의 신뢰를 저버리고 말았다.
우리는 대중의 취향을 교묘하게 이용해서, 시장에 새로운 유행이 일어날 때마다 새로운 펀드를 만들어내며, 인기 펀드의 실적을 과대 선전하여 문제를 확대한다. 한 마디로 상혼이 청지기정신을 눌렀으며, 투자자들이 손실을 뒤집어썼다.
급변하는 자본주의 세계와 특히 급변하는 펀드 산업에서, 이제는 이런 잘못들을 인정하고 정면으로 대처할 필요가 절실해졌다. 상황은 이렇게 긴박한데도, 이런 문제에 대한 공개토론은 너무도 부족하다. 우리는 혁신의 홍수의 빠져 허우적거리면서도, 자기성찰에 대해서는 굶주리고 있다. 우리의 과거 모습을 돌아보고, 우리의 진행 방향을 살펴보며, 투자자들의 신뢰를 얻기 위해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자기성찰에 굶주려 있다.
- 투자자에 의한, 투자자를 위한, 투자자의 펀드 산업
내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청지기정신에 초점을 둔, 즉 오로지 투자자의 이익만을 위해서 투자자의 돈을 신중하게 다루는 펀드 산업이다. 이는 투자자에 의한, 투자자를 위한, 투자자의 펀드 산업을 말한다. 펀드 산업에는 비전과 가치가 모두 있어야 한다. 수탁자로서 의무를 지며 투자자에게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비전이 있어야 한다. 장기투자라는 입증된 원칙에 바탕을 두고 고객에게 정직하게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가치가 있어야 한다.
어떻게 하면 이런 비전과 가치를 달성할 수 있는가? 첫째, 단순성의 위력을 믿으면 된다. 투자자들이 성장 기회는 있지만 위험도 수반되는 주식과, 비교적 안정적으로 수익이 발생하는 채권 사이에서 자산배분을 결정하도록 도운 뒤, 우리의 능력을 다해 분산투자하고 비용을 최소화하여 금융시장수익의 공정한 몫을 투자자에게 제공하겠다고 약속하는 것이다.
또한 우리는 금융상품을 범벅으로 만들어내는 펀드회사가 아니라, 어떤 가치를 표방하는 회사를 세워야 한다. 펀드 산업에서는 운용자산 규모, 현금흐름, 시장점유율, 신규계좌수로 성공 여부를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진정한 성공은 그런 숫자로 측정할 수가 없다. 성공은 서비스의 품질과 더불어, 금융시장에 풍족하게 제공하는 수익 가운데 공정한 몫을 투자자들에게 제공하느냐 여부로 평가해야 한다. 또한 성공은 회사의 평판과 가치로 측정해야 하며, 우리의 말이 아니라 행위로 측정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성공은 어렵게 모은 소중한 재산을 맡겨준 사람들로부터 신뢰를 유지하고, 하루도 빠짐없이 외부로부터 이런 신뢰를 획득하는 데 달려 있다. 금융 분야 전반은 말할 필요도 없고, 펀드 분야에는 정말이지 상혼이 차고 넘친다. 미래의 문을 여는 열쇠는 아직 우리에게 충분치 않은 청지기정신 속에 있다.
인생
성공은 넘치지만 인격은 부족하다
조지아의 탁월한 설교자인 프레드 크래독 목사가(목사가 으레 그러듯이 상상해낸 이야기겠지만) 실화라고 주장하는 이야기가 있다. 크래독 박사가 조카의 집을 방문했다. 경주로에서 모형 토끼를 쫓는 늙은 그레이하운드가 있었다. 조카는 전성기가 지난 이 그레이하운드를 다시 집으로 들여놓았다. 크래독 박사는 이 그레이하운드와 대화를 나누었다.
나는 개에게 말했다. “요즘도 경주에 참가하니?”
“아니오.” 개가 대답했다.
“무슨 문제라도 있어? 나이가 너무 많아서?”
“아니오. 아직 얼마든지 뛸 수 있어요.”
“그러면 이유가 뭐지? 성적이 나쁘니?”
“저는 주인에게 100만 달러도 넘게 벌어주었는걸요.”
“그러면 이유가 뭐니? 대우가 나빠서?”
“전혀 아니에요. 경주 기간에는 극진하게 대해줘요.”
“어디 다치기라도 했니?”
“아니오.”
“그럼 왜? 이유가 뭐야?”
“내가 그만뒀어요.” 개가 대답했다.
“네가 그만뒀다고?”
“그래요. 내가 그만뒀다고요.”
“왜 그만뒀는데?”
“토끼를 쫓아 수도 없이 달렸는데, 알고 보니 내가 쫓던 토끼는 가짜였어요. 그래서 그만뒀어요.”
정말 실화인가? 아마 아닐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 대부분은 늙은 그레이하운드의 심정을 이해할 것이다. 우리도 성공이라는 가짜 토끼를 좇으며 경기장을 수없이 돌았지만, 알고 보니 진짜 토끼는 바로 코앞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 명성과 권력
명성을 얻으려는 사람들이 스스로 두 가지 질문만 던져보아도 좋을 것이다. 누구로부터 명성을 얻으려는가? 명성이 무슨 쓸모가 있는가? 물론 스포츠 영웅들의 일시적인 명성과 연예인들의 화려한 명성은 절정기에 도달한 인간의 활약상을 우리에게 선사한다. 그러나 빠르게 움직이는 현대 세계에서, 앤디 워홀이 장담했듯이 명성의 불꽃은 15분을 넘기는 경우가 드물다.
권력은 직원이나 회사의 자금에 대해 현명하게 행사할 경우 매우 재미있으며, 업무를 완수하는 스릴과 자신감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독단적으로 변덕스럽게 행사할 경우, 과도한 부수입을 올리기 위해서 행사할 경우, 이기적인 합병과 어리석은 자본지출에 행사할 경우, 주주와 종업원, 더 나아가 사회까지도 손실을 입게 된다.
우리는 가치 있는 목적에 권력을 행사해야 한다. 지성을 위해서, 도덕적 행위를 위해서, 동료들의 기술과 사기를 높이기 위해서, 동료를 돕기 위해서 행사해야 한다. 그리고 애덤 스미스의 말대로 “웅장하고 아름다우며 고귀하고, 수고하고 걱정할 가치가 있으며, 산업을 유지하고, 과학과 예술을 발명하고 개선하며, 인간의 생활을 고상하고 아름답게 만드는 데” 권력을 행사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추구하는 권력이다.
그러면 이렇게 뒤섞인 척도들로 어떻게 성공을 측정해야 하는가? 성공은 돈으로 측정할 수도 없고, 권력의 양으로도 측정할 수 없으며, 덧없는 명성으로 측정할 수도 없다. 그러나 성공은 더 나은 세계를 위한 기여로 측정할 수 있고, 동료를 돕는 일로 측정할 수 있으며, 자녀를 사랑을 베푸는 훌륭한 시민으로 키우는 것으로 측정할 수 있다. 간단히 말해서, 성공은 우리가 획득한 재물이 아니라, 사회에 대한 우리의 기여로 측정할 수 있다.
무엇이 충분한가
나에게, 당신에게, 미국에, 어느 정도면 충분한가
이 책을 읽으면서 “보글에게는 어느 정도면 충분할까?”라는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당신에게는 어느 정도면 충분한가? 그리고 우리 사회에는 어느 정도면 충분할까?
이제 나와 당신과 미국의 부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행복과 성공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 조금 더 깊이 생각해보자.
앨버트 아인슈타인은 둘의 관계를 정확하게 지적했다. “성공은 행복의 열쇠가 아니다. 행복이 성공의 열쇠다.” 솔직히 말해서, 거의 모든 사람이 행복의 개념을 매우 잘 알고 있으며, 인생에서 우리의 행복을 얼마나 많이 발견했는지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우리 모두 기쁨과 슬픔, 즐거움과 고통, 빛나는 환희와 깊은 실망을 다 경험해보았다. 그래서 거의 모든 경우 우리는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고 깨닫게 되었다. 우리는 이런 식으로 살아간다. 대개 인간은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선다.
심리학자들은 행복을 결정하는 3대 요소를 매우 정확하게 설명했다. 돈도 행복을 제공하기는 하지만, 우리는 물질적 풍요에 곧 익숙해지므로 돈은 일시적인 행복만을 제공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미국 심리학자(American Psychologist)」 지에 실린 권위 있는 논문에 따르면, 행복을 결정하는 요소는 돈이 아니라 다음 세 가지 요소의 조합이다. ① 자율성. 우리 인생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② 관계 유지. 가족에 대한 사랑, 친구 및 동료와의 우정을 포함해서 우리가 만나는 온갖 계층의 사람들과 개방적 관계를 맺는 능력이다. ③ 능력 발휘. 조물주가 부여한 재능과 자신이 개발한 역량을 힘껏 발휘하는 것이다. 슬프게도 이런 특성을 개발할 수 없거나 개발할 기회가 없었던 불운한 사람도 있다. 그러나 다행히 거의 모든 사람은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이런 특성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 축복을 마음껏 즐기고 있다.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