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기업의 기원을 18세기 합리주의적 사회공학에서 비롯된 것으로 밝히고,우리 시대를 지배하고 있는 핵심가치체계와 도덕적 상대주의, 소비주의, 현재의 (거대)기업의 문화풍토 등의 기원 역시 거기서 비롯된 것으로파악하고 있는 이 책의 저자는 탐욕과 투기, 도덕적 해이가 만연하고 있는 기업자본주의를 바탕으로 한 우리 사회의 경제현실을 반드시 풀어야 할숙제라고 강력하게 주장한다. 어떻게 몇 가지 잘못된 심리학적 개념들이 탐욕과 이기적인 행동을 사회에 유익한 것으로 관습처럼 규정하게 됐는지, 그과정과 문제점들을 명확히 드러내 보인다.
■ 저자 웨이드 로우랜드
1944년캐나다의 몬트리올에서 태어난 웨이드 로우랜드는 문학 논픽션 분야의 일급 작가로서, <위니펙 프리 프레스&&, <토론토텔레그램&&을 거쳐 캐나다의 양대 방송사인 <국영방송 CBC&&와 <민영방송 CTV&&에서 오랫동안 저널리스트로 일했다.방송 현장을 떠난 이후, 독자들에게 흥미진진한 자극과 도전적인 만족감을 불러일으키는 특유의 필력과 생생한 문제의식으로, 『웹의 정신(Spiritof the Web)』『오컴의 면도날(Ockham"s Razor)』『갈릴레오의 실수(Galileo"s Mistake)』 등 10여 권의 역저를펴내 명성을 얻었다. 토론토의 요크 대학 커뮤니케이션 및 문화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라이어슨 대학 미디어 윤리학과에서 맥클린 헌터교수(Maclean Hunter Chair)로 커뮤니케이션 기술 사회사를 강의하기도 했으며, 현재 요크 대학 커뮤니케이션학 교수로 재직하고있다.
■ 역자 이현주
서울대학교 인문대학서양사학과를 졸업하고, 매일경제신문사 편집국 편집부에서 근무했다. 현재 인트랜스 번역원 소속 전문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슈퍼클래스』『유혹과 조종의 기술』『매니저의 업무 기술』『뉴미디어의 제왕들』『에펠』『팀장 정치력』『리서치 보고서를 던져버려라』『남자의미래』『엄마, 나도 영재예요』『뉴스에 내가 나왔으면 정말 좋겠네』『혁명적으로 지식을 체계화하라』『2007 세계대전망』(공역) 등이있다.
■ 차례
감사의 말
옮긴이의말
서문
주(Notes)
Part 1 경제는 어떻게 도덕성을 강탈해 갔는가, 왜 이 문제가 그처럼 중요한것인가
1장 한 순례자의 일대기
2장 꿀벌의 우화
3장 기계 같은 도덕성
4장 이기심의 학문
5장윤리와 시장
6장 도덕성의 의미
Part 2 별나고 1차원적인 기업세상, 기업은 어떻게 우리의모든 것에 영향을 미치는가
7장 현대 비즈니스 기업의 출현
8장 이곳의 대장은 누구인가?
9장 기업 노동자의딜레마
10장 인공적 인격체를 위한 인공적 윤리
11장 소비주의와 기업
12장 위기의 기업
13장 누가 책임을 져야하는가?
14장 기업에 대한 상식 - 비합리적인 몇 가지 결론들
탐욕주식회사
서문
현대는 최고의 시대이자 동시에 최악의 시대이다. 자유민주주의는 의기양양하게 전 세계로 퍼져 나가고 있고, 기술은 교통과 통신, 정보 접근 방법에 있어서 가히 혁명적이라 할 변화를 일으켜 왔다. 의학은 인간의 수명을 연장시키고 무수한 방법으로 인류의 삶을 개선시켜 왔으며, 소비사회는 인간의 모든 물질적인 욕망을 즉각적으로 만족시켜 주고 있다. 한마디로, 진보가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현대사회의 본질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는 세 가지 트렌드를 짚어낸 이 시론은 먼저 개인주의의 등장을 그 첫 번째 트렌드로 꼽고 있다. “우리는 이기주의 시대에 살고 있다. 개인주의의 등장으로 인해 자기 자신이 주된 관심 대상이자 보편적인 기준점이 되었으며, 자신의 니즈(needs)가 궁극적으로 모든 것을 정당화하는 근거가 되고 말았다.” 두 번째 트렌드는 우리 사회의 모든 국면에 ‘시장’ 개념이 가차 없이 무단 개입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제 시장 논리는 보편화되었고, 신자유주의자뿐 아니라 모든 사람들을 지배하는 이데올로기가 되었다. 결국 인간적이라는 의미는 본연의 통속성을 잃고 빛이 바래가고 있다”는 것이다. 세 번째 트렌드는 통신기술의 혁명적 발달로 점차 “개인의 시간은 줄어들고, 삶의 변화 속도는 급속히 빨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이기적이고 시장 지향적인 사회로부터 받는 무자비한 스트레스에 직면하다 보니 종국에는 인간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가 모두 사라지고 마는 결과가 나타나고 있다. 이기주의와 개인주의의 등장은 필자가 다루려고 하는 문제들의 핵심 요소라고 할 수 있다. 보통 ‘모든 것을 사로잡으려는 욕심’으로 정의되는 ‘탐욕’은 사리사욕이 지나칠 때 나타나는 증상이다.
사회이론가들과 시사평론가들은 사회악의 근본 원인으로 으레 자본주의를 거론해 왔다. 틀림없는 얘기지만, 그렇다면 그 결과는 무엇인가? 우리는 사회의 근본적 규범을 어떻게 고쳐 나가야 하는가? 다시 말해 자본주의를 어떻게 개혁해야 하는가? 필자가 여기서 지적하고 싶은 얘기는 실제로 어떤 조치를 취하기 전에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구조적인 문제의 본질을 분명하게 파악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진정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 자본주의, 더 명확히 말하자면 시장자본주의가 아니다. 문제는 현대의 비즈니스 기업들이 강탈하여 지배하고 있는 자본주의인 기업자본주의다.
우리 모두는 기업들이 지극히 반사회적인 행동을 서슴지 않는다는 점을 알고 있다. 제약회사들은 불리한 테스트 결과들을 숨기기 일쑤고, 정유회사들은 자연환경을 파괴한다. 의류회사들은 어린이의 노동력을 착취하며, 자동차회사들은 디자인상의 결함을 알면서도 그런 차량들을 판매한다. 그리고 미디어 기업들은 어린이들을 상대로 폭력적인 내용을 쏟아낸다.
도대체 기업들은 ‘왜’ 그토록 반사회적인 패륜아처럼 행동하는가? 그에 대한 답은 보통 우리가 알고 있는 윤리적 상식처럼 너무도 분명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흔히 지나치는 문제, 특히 인간의 본성이 이기적인 것인지, 아니면 진정으로 타고난 본능에 따라 자비롭고 이타적인 행동을 하는 것인지와 같은 쟁점을 아주 명백하게 분석, 조사함으로써 찾아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근대 후기 사회의 지배적인 사회제도인 시장경제를 고안하고, 예로부터 전해온 기업 고유의 법적 장치를 시장경제체제에 도입, 적용하도록 뜯어고친 사람들은 도덕성이 사회제도에 의해 생겨난다는 생각을 굳게 믿었다. 18, 19세기에 새로이 등장한 사회과학은 이기주의와 탐욕을 인간의 보편적이고 억제하기 힘든 특성이라고 확신에 찬 주장을 폈다. 그러므로 이러한 인간의 결함을 바로잡는 메커니즘 - 인간 개개인의 부도덕한 본성으로부터 ‘사회적 선(social good)을 기계적으로 만들어내는 - 으로서 고안된 것이 바로 시장과 기업이라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시장과 기업은 인간의 윤리적 행동을 통합하고 조정하는 기계장치인 것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기업이 갖고 있는 문제는 바로 그 기업이 다면적인 인간 심리 가운데 오직 한 측면, 곧 ‘탐욕’만을 모방하도록 고안되었다는 점이다. 기업은 이윤만을 추구한다. 기업은 인간의 도덕적 자극의 산물인 결점이나 실패를 보완하고 만회하려는 인간만의 특성들을 전혀 반영하지 않는다. 뛰어난 사회제도인 ‘시장’에서 실질적인 지배자로 군림하는 기업은 인간의 본성이 갖고 있는 돈에 쉽게 좌우되는 계산적이고 부패한 일면을 구체적으로 드러내고 확산시켰다. 그리고 그 작업을 성공적으로 이루어낸 결과, 1차원적인 이미지로 서구 사회의 대체적인 윤곽을 다시 만들어낼 수 있었다.
사실 기업이 그렇게 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기업이 아니라 시장이 어떤 마력을 발휘해 기업의 탐욕을 공공의 복리로 변화시켜야 했는데, 현재까지 오는 도정의 어디선가, 기업들이 선수를 쳐 주도권을 잡아버린 것이었다. 그 일이 어떻게, 그리고 언제 발생했는지 아는 것이 역사적으로 잘못된 이 상황을 바로잡는 데 필요한 첫 번째 단계이자 필수적인 단계다.
경제는 어떻게 도덕성을 강탈해 갔는가, 왜 이 문제가 그처럼 중요한 것인가
꿀벌의 우화
“인간은 권력을 향해 영원하고 쉼 없는 욕망을 갖고 있다”면서 인간의 본성에 관한 비관적인 견해를 보여준 영국의 철학자 토머스 홉스(1588~1679), 지구가 아니라 태양이 행성운동의 중심이라는 코페르니쿠스의 주장을 망원경을 이용한 관측을 통해 확인시켜 준 갈릴레오 갈릴레이(1564~1642), 그리고 두 사람과 서로 서신을 주고받던 르네 데카르트(1596~1650)까지 합세하여, 이 세 사람은 세상을 향해 새로운 관점을 설파하고 있던 중이었다. 이들 중에서도 데카르트는 근대철학을 탄생시킨 주역으로서, 그로 인해 실체가 없는 이성이 다른 지식과 진실에 대해 우위를 점한다는 결론이 가능하게 되었고, 심지어 그런 결론은 불가피한 것이 되었다.
특히 갈릴레이와 홉스는 역사 속의 그 어떤 인물보다도 자신 있게, 세상과 존재에 대해 알아야 하는 모든 것을 인간의 이성(理性)으로 알 수 있다고 주장했다. 갈릴레이의 표현을 빌리자면, 신이 알고 있는 것을 인간이 모두 알 수 있다는 것이었다. 돌이켜보면, 우리는 여기서 인간의 모든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지적 이정표라 할 수 있는 과학적 세계관의 탄생을 보게 된다. 새로운 세계관에 따르면, 실제로 만질 수 있는 것만이 진정으로 존재하는 것이며, 그 외의 것은 모두 미신이고 무의미했다. 모든 철학적 연구의 대상인 동시에 해답이었던 신은 홉스와 갈릴레이, 데카르트를 선두로 하는 합리주의 사상가들에겐 자상한 시계공에 불과했다.
자연의 관대함에 대한 믿음이 없어지고 인간이 자연을 이해하고 능숙하게 처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새로이 생기면서, 일단 과학과 이성의 힘이 인간사회의 문제들에 적용되고 나면, 갈릴레이나 뉴턴과 같은 과학자들이 물질세계에 대해 입증한 결과처럼 극적인 결과물을 만들어낼 거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자리 잡기 시작했다.
사상가들은 이제 경제활동으로 관심을 돌렸다. 더 이상 세상은 인간이 주의 깊게 관리하지 않으면 인간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지 못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경제 문제가 다소 시급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생각이 중세 시대 내내 유럽 경제를 지배해왔고 당시에도 여전히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던 규범들과 충돌한다는 점을 깨닫게 되었다. 이러한 규칙과 가정들은 당장 합리주의적인 관점에서 철저히 검토되어야만 곧 등장하게 될 자본주의와 조화를 이룰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그들에게 자본주의는 인간의 이익에 도움이 될 합리주의 체제의 지침이 될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었다.
탐욕에 대한 배척은 중세 서양문명이 기초한 유대 기독교 전통의 중심 기둥들 중의 하나였다. 그러나 합리주의자들은 돈에 대한 사랑과 물질적인 부의 추구를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커다란 엔진을 움직이는 데 없어서는 안 되는, 과학적으로 정당화된 동력으로 간주했다.
새로이 등장하고 있던 근대 자본주의 경제가 가진 이러한 도덕적 모순은 네덜란드 출신의 의사 버나드 맨더빌에 의해 폭로되었다. 맨더빌은 1705년에 처음 발표한 「꿀벌의 우화(Fable of the Bees)」를 통해 선행이 위선에 불과하며, 화폐와 자본을 순환시키는 것은 사람들의 이기적이고 탐욕적인 행동, 즉 악행이라고 주장했다.
맨더빌의 시는 근대 초기 철학자들 중 가장 영향력 있는 학자로 꼽히는 또 다른 네덜란드인 바루흐 스피노자로부터 크게 영향을 받은 것이었다. 스피노자는 “자연계에서는 어떤 내재된 결함으로 인해 일어나는 일은 없다”라고 하였다. 다시 말해, 자연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어떤 목적 때문에 발생하며 필연적이라는 얘기다. 그런 까닭에 어떤 행동은 옳으며 어떤 행동은 나쁘다고 말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따라서 이른바 인간의 악덕에 대한 적절한 철학적인 태도는 그것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그 목적을 찾아내는 것이라고 스피노자는 말했다. 그리고 그 목적에서 중요한 것은 악하거나 ‘열정적인’ 행동을 사회적으로 유용하게 이용하기 위해 인간이 정치적으로 행동하는 것이라고 믿었다. 이러한 정치적 행동은 자신을 보존하려는 열정과 일상적인 사리사욕의 악행 사이에서 원인과 결과라는 아주 기계적인 연관관계에 의해 이루어졌다.
스피노자 이후로 100년, 그리고 맨더빌 이후로 70년 뒤에, 근대 경제학의 아버지인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1776)에서 자본주의 시장이 갖는 놀라운 기계적인 과정을 다음과 같이 서술하였다. “따라서 법의 간섭 없이도 인간이 가진 개인적인 이기심과 열정(즉, 사리사욕과 악덕)으로 인해 모든 사회의 물품은 가능한 한 전체 사회의 이익에 가장 도움이 되는 비율로 나눠지고 분배된다.”
악과 도덕성은 시장이라는 기계 덕분에 다시 가공되었다. 개인의 탐욕이 시장의 자동조절장치에 의해 공공선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거울용 유리의 한쪽 면을 차지한 악덕이 다른 면에서는 선으로, 아니 그보다 더하게, 사회의 필수품이 되었다.
이제 자본주의의 커다란 도덕적인 모순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별나고 1차원적인 기업세상, 기업은 어떻게 우리의 모든 것에 영향을 미치는가
현대 비즈니스 기업의 출현
현재와 같은 다목적 비즈니스 기업의 기원은 뉴욕 주가 1811년에 제정한 회사 설립 법률에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데, 이 법률에 따르면, 창업할 사업을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아도 회사 설립이 가능했다. 이후 1840년대와 1850년대를 거치면서 다른 미국의 주들도 뉴욕 주의 선례를 따랐다. 영국에서는 1844년에 주식회사법(Joint Stock Companies Act)이 제정되면서 기업은 사업 성격에 대한 요약된 설명과 함께 단순한 등록 행위만으로 설립이 가능하게 되었다. 이제 기업은 국가가 직접 세우거나 분명한 공공의 목적을 위해 지정된 독점사업 시행자가 아니었다. 기업은 시장경제 내에서 사업수행을 용이하게 하는 만능의 법적 메커니즘으로 탈바꿈한 것이었다. 따라서 기업은 16, 17세기 초와 달리 더 이상 특허장을 심사받을 이유도 없어졌다. 그리고 1873년의 공황 이후 상사와 개인기업의 수는 급격하게 줄어드는 동시에 새롭고 강력한 공개법인기업들이 다수 탄생했는데, 이 기업들의 주식들은 주식시장에서 거래되었다. 악덕자본가의 시대는 끝나 가고 있었고, 근대 비즈니스 기업의 시대가 개막되었다.
현대 비즈니스 기업에서 가장 놀라운 점은 기업이 공작기계처럼 어떤 목적을 위해 신중하게 계획된 ‘사회적 기술체(social technology)의 일종으로 시작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법률상 인간으로 취급된다는 점일 것이다. 기업은 하나의 실체로서 고소도 당하고 벌금도 물고 세금도 부과될 수 있으며, 이러한 이유 때문에 언제나 생명을 가진 것처럼, 심지어는 그 자체로 인간인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17세기와 18세기 영국의 사법체계 내에서 기업을 대변한 변호사들은 법정에서 자신들의 의뢰인은 인간이 아니라 국가가 허가장을 내줘 만들어진 것이라는 점을 납득시키려고 무진 애를 썼다.
19세기가 끝나 갈 무렵, 특히 미국의 기업과 기업 변호사들은 정부의 규제를 최소화하기 위해 이전의 전술을 바꾸었다. 기업 비판가들과 개혁가들의 목소리에 점차 힘이 실리고 있는 상황을 맞은 기업과 기업 변호사들은 기업을 인간으로 인정하라며 법원을 압박해 나갔다. 그들이 내세운 구실은 기업이 인위적인 인간이 아니라 자연인이라는 것이었다. 그 구분은 엄청난 중요성을 가지는 것으로, 만약 기업이 인위적인 인간, 즉 국가가 만들어낸 것이라면, 국가는 기업의 활동에 대해 무제한적인 통제력을 행사할 권리를 분명히 갖고 있다. 그게 아니라, 기업이 다른 종류의 자연인, 즉 인간과 같이 자연인이라면 기업과 기업의 기본권은 국가 이전에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기업은 자연인으로서 도시와 사회질서 유지에 필요한 수준 이상의 정부의 간섭으로부터 엄격하게 개인을 보호할 목적을 지닌 원시적인 ‘자연권’을, 즉 ‘인권’을 부여받을 수 있게 된다. 기업에 대한 인권 보호 확대 현상은 미국을 넘어 대부분의 주요 산업민주국가들로 빠르게 확산되었다.
현대의 모든 비즈니스 기업들은 홍보직원들과 컨설턴트를 고용하는데, 그들은 기업의 자동기계장치를 인간의 모습을 가진 것처럼 감추어주고, 필요할 경우엔 부당한 행위들이 윤리적으로 옹호될 수 있다는 점을 대중에게 확산시킴으로써, 기업의 수치심을 최소화시키는 일을 한다. 이는 철저히 인위적인 과정으로서, 진실과 회개와 같은 인간적인 개념은 기업에게 생소하기만 하다. 때때로 이러한 개념들은 수익 감소로 인해 기업이 느끼는 수치심을 최소화하는 데 도움이 되는 홍보활동으로 위장되기도 한다. 그러나 기업이 관심을 갖는 것은 선행 자체가 아니라 선한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평판이 좋다는 것은 -선한 것처럼 보이는 것은- 언제나 이익이 되며, 정의에 따라 언제나 널리 알려지게 되는 반면, 실제로 선한 행동은 다른 사람들에게 전혀 알려지지 않을 수도 있고 기업이 기능하고 있는 합리주의적 구조 내에서는 특별히 도움이 되지도 않는다.
따라서 자신들이 판매하는 진통제 캡슐이 청산칼리로 오염되었던 사실이 알려졌을 때, 타이레놀(Tylenol)을 생산하는 제조회사가 취한 행동이 기업의 미덕을 보여주는 대표 사례로 경영학 참고서들은 칭송하지만, 그 실체는 성공적으로 선행을 가장한 케이스라고 할 수 있다.
1982년 9월 29일, 일곱 명의 피해자들 중 일부가 처음 오염된 캡슐을 복용했고, 존슨앤존슨(Johnson & Johnson)은 10월 5일에 그 사건에 대해 처음으로 성명서를 발표했다. 그리고 10월 7일에는 안전한 포장이 새로이 사용될 수 있을 때까지 전국적으로 3,100만 개의 타이레놀 캡슐 병을 회수한다고 발표했다(보도된 바에 따르면 약 1억 달러의 손해를 입었다고 한다). 그 사건이 터지기 얼마 전에 제약업계는 젤 캡슐이 제품 안전상의 위협이 된다는 점을 인정한 바 있었고, 존슨앤존슨은 이미 그 이유 때문에 안전하게 밀봉된 약병을 구상하고 있었다. 그 사건이 터진 뒤 두 달도 되지 않아 새로운 포장이 도입되었고, 매출은 곧바로 정상 수준으로 회복되었다.
널리 알려진 사건 경위로 보면, 존슨앤존슨은 정직과 투명성을 갖춘, 손해를 무릅쓰고서라도 올바르게 행동하는 기업으로 칭찬받는다. 그러나 이러한 인식은 비록 사건이 발생한 뒤 기업의 홍보팀이 만들어낸 사건에 대한 설명과 일치하긴 했지만 실제 진상과는 상당히 다르다. 투명성 면에서 존슨앤존슨은 그 이야기에 대해 결코 공개적으로 말한 적이 없었다. 이 회사는 기자회견을 열지 않고 대신 수천 명의 기자들의 질문을 개인적인 차원에서 전화로 상대했다. 물론 그러한 대화에서 오간 얘기에 대한 공적인 기록은 없다. 이 사건의 홍보 전략은 존슨앤존슨에게 너무나도 잘 맞아떨어져, 기업의 도덕적 체면을 지켜주고 훌륭한 평판을 유지시켜 주었다.
그러나 이러한 고결한 듯한 미덕과 평판은 2000년 존슨앤존슨의 자회사 라이프스캔(LifeScan)이 한 미국 법원으로부터 유죄 판결을 받아 6,000만 달러의 벌금을 내게 되면서 치명타를 입었다. 죄목은 이러했다. 당뇨병 환자들에게 결함 있는 혈당측정기를 팔면서 환자들에게 그 사실을 알리지 않았고, 미국 식품의약국(FDA)에도 그 결함들에 대해 통보하지 않았으며, 판매 대리점 측에도 잘못된 정보를 제공해 온 것이었다. 이 집단소송에 따르면, 적어도 세 명의 당뇨병 환자들이 이 회사가 판매한 혈당측정기 슈어스텝(SureStep)의 잘못된 수치 판독으로 인해 사망했다고 추정되고 있다.
기업은 올바른 일을 한다는 개념을 이해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바로 그 개념은 기계라는 실체로는 접근할 수 없는 인간의 풍부한 경험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기계에게는 법을 지키는 결정조차도 도덕적 본능이 아니라 추상적인 계산임에 틀림없다. 그리고 복종은 벌금이 수익성에 영향을 줄 정도로 심각할 때에만 따라오게 된다.
기업에 대한 상식 - 비합리적인 몇 가지 결론들
기업의 문제를 다룰 때 가장 중요하면서도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시장과 기업에서 ‘본래부터 타고난’ 것은 절대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깨닫는 것이다. 시장과 기업 모두, 기술들이며, 인간이 일을 하기 위해 만들어낸 도구들이다. 그리고 두 가지 모두 대체되거나 변경될 수 있다. 실제로 그것들은 몇 백 년 전에 건전한 인간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인간에 의해 만들어졌지만, 더 이상 적절하지도 믿을 수도 없는(그리고 실제 전혀 그렇지도 않았다), 사회와 인간 본성에 대한 가정들을 이용했기 때문에 바뀌어야만 한다. 지난 100년 동안 우리는 인간의 행동과 기대를 합리주의적 경제체제에 강제로 적응시키려고 애쓰면서 현실과 그 오래된 가정들 간의 넓은 간격을 메워왔다. 노동윤리와 소비윤리가 그러한 명분 속에 전개되어 왔고, 현대 대중매체에 의해 강력하게 보강되어 왔다.
필자가 주장했던 것처럼, 기업은 하나의 사회적 기술, 다시 말해, 돈을 버는 하나의 수단으로서 간주되어야 한다. 기업은 그 자체로 기술이 가치중립적이라는 생각 - 인간의 도구에는 규범적인 내용이 없으며, 그것들은 단순히 일을 하는 데 필요한 중립적인 도구이며, 도구를 사용하여 발생하는 선이나 악은 전적으로 사용자의 책임이라는 생각-이 틀렸음을 보여주는 생생한 사례이다. 이러한 시각에 따르면, 기술에는 좋고 나쁜 것이 없으며, 단지 착하고 나쁜 사용자만 있을 뿐이다.
인간이 만든 도구들은 직접적으로, 그리고 분명하게 그 도구들을 세운 사회를 나타내는데, 그 도구들을 만들자는 결정으로부터 그 도구들을 작동시켜야 하는 사람들, 그 도구들이 상호작용하는 방식까지 모든 것을 보여준다. 유전자 변형 및 복제 기술은 인류가 하나의 종(種)으로서 자신의 운명과 다른 종들의 운명까지도 현명하게 이끌어갈 수 있다는 문화상의 가정을 품고 있다. 이러한 기술들이 파멸을 가져올 지나친 자기 오만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그 기술들이 자연스럽고 피할 수 없는 인간의 운명을 반영한다고 보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문화가 기술의 확실한 자리매김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인정하는 태도는 상대적으로 최근에 나타났다. 현대 비즈니스 기업을 설계하고 장려한 사람들은 기업이 도덕적으로 중립적인 기계가 될 것이며, 기업이 사회에 끼치는 영향은 시장경제라는 더 큰 메커니즘에 의해 지배되고 개선될 것이라고 가정했다. 기업 기계는 결코 도덕적으로 중립적이지 않으며, 그럴 수도 없었을 것이다. 기업이 탐욕이라는 악덕을 제도화하고 합리화하려고 했다는 사실은 피해 갈 수 없으며, 기업은 사악할 정도로 효율적으로 이 일을 해내고 있다.
어장과 농지는 고갈되고 있고, 유해 화학품은 지구 곳곳에서 발견된다. 지구 온난화는 극지방의 만년설을 녹이고 있고, 오존층에 구멍이 생기고 있다. 사실 이런 얘기는 끝이 없이 이어진다. 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비즈니스 기업의 활동을 엄격히 제한하는 상황에서 찾아졌다면, 이를 위한 정책 처방은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기업집단의 만만찮은 힘을 고려해 보면, 분명 그 처방들을 이행하기 어렵겠지만, 분명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선진국 정부들의 정치적 의지가 필요하며, 그 의지는 국민들로부터 나와야 한다. 그 문제를 기업이 가진 본성이 아니라, 인간이 가진 본성의 문제로 오해하는 한, 그런 정치적 의지는 결코 도출되지 못할 것이다.
아무도 자동차나 원자로가 스스로를 개혁하리라고 기대할 수는 없다. 기업이라는 도구에 이런 개혁을 요구하는 것이 참으로 이상할 따름이다. 책임은 우리 모두에게 있는 것이며, 우리가 가장 잘 그 문제에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은 정부를 통해서이다. 개혁을 위해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그 개요는 분명하다.
기업에 인격을 부여하는 일은(천부적으로 인간임을 인정함으로써 인간에 대한 접근권을 부여한다) 결코 대중의 합의에 의해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아주 좋지 않은 생각임이 드러났다. 이는 입법조치를 통해 취소되어야 한다.
기업의 관리자들과 기업의 노동자들이 갖는 도덕적 책임은 법률에 명확히 규정되어야 한다. 그리고 기업을 상대로 한 범죄뿐 아니라 기업이 저지르는 범죄에 대한 책임도 규정되어야 한다.
기업은 너무 거대해졌고 강력해졌다. 기업의 규모와 재산에 대해 법률적인 제한을 두어야 한다. 기업의 규모에 제한을 두는 행위나 사적인 이익에 의한 피해로부터 공공 부문을 지키는 데 도움이 되는 현명한 방침은 논쟁을 불러일으키지 않을 것이다. 서구문화는 개인의 권리에 대한 정부의 간섭에 강력하게 대응하기 때문에, 다음과 같이 명확하게 강조하는 것이 중요하다. 기업의 성장을 제한하는 것이 개인의 권리를 제한하는 것은 아니다.
기업의 설립 강령에는 기업이 세워진 사업상의 목표가 명확히 밝혀져야 한다. 이는 기업이 단순히 자사가 발생시키는 수익보다는 자신들이 생산하는 제품과 서비스에 관심을 갖고 있다는 점을 확실히 해줄 것이다. 또한 이는 정부의 규제당국에게 더 많은 통제력을 안겨줄 것이다. 법률은 심각한 범죄를 저지른 기업의 설립을 취소한다는 규정을 담아야 한다. 이러한 ‘치명적인 처벌’은 기업과 같은 무생물의 존재를 다루는 경우에는 윤리적으로 정당하다고 느껴진다. 시장자본주의의 기초는 이른바 독점과 과점의 효율성이 아니라, 바로 이러한 급진적이지 않고 신중한 개혁 과정이다.
우리는 합리주의적인 선조들과 현재에도 그들을 숭배하는 사람들이 실천한 사회공학으로 인해 충분히 힘든 시절을 겪어 왔다. 다시 한 번 소크라테스의 조언에 주의를 기울여야 할 때가 되었다. 중요한 문제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느냐가 아니라, 우리 인간이 어떻게 사느냐이다.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