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는 외환은행이 불법 매각되는 과정을 그와 관련된 문서와 함께 시간대별로 제시하고,재정경제부, 금융감독위원회, 금융감독원, 외환은행의 고위 간부와 법무법인 김&장, 회계법인 삼정KPMG, 그리고 투기자본의 얽히고설킨복잡한 인맥과 이들이 어떻게 하나의 네트워크를 이루어 외환은행 매각에 관여하고 있는지 보여주고 있다. 투기자본의 악랄한 "기업사냥" 실태와투기자본과 신자유주의 금융 세계화의 다양한 폐해 및 대안방안을 제시한다.
■ 저자 이정환
성균관대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한겨레경제주간지 「이코노미21」의 기자로 재직 중이다. 진보적이면서 동시에 경제적인 관점에서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현장이면의 본질적인 대안에접근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특히 금융과 자본시장 문제, 그리고 양극화와 기회의 불평등, 고용 없는 성장을 해결할 대안사회 모델에 관심을 갖고있다. 2004년 5월 삼성만 잡으면 된다라는 기사로 사회적 타협 논쟁을 촉발시켰고 외환은행 불법 매각과 한국씨티은행의 불법 신용공여,BIH의 브릿지증권 약탈작전 등에서 특종을 만들어 냈다. 2005년 11월에는 올로프 팔메 센터 초청으로 스웨덴을 방문, 스웨덴 대안사회 모델에대한 특집 기사를 쓰기도 했다.
■ 차례
제1장 론스타는 어떻게 외환은행을 집어 삼켰나
1.누가 왜 거짓말을 하는가
2.론스타는 어떤 조직인가
3.프로젝트 나이트의 전말을 밝힌다
4.여전히 풀리지 않는의혹
5.외환은행 문서검증 보고서에서 드러난 진실
6.론스타가 유일한 대안이었을까
7.김&장과 론스타, 칼라일,소버린, 골드만삭스
8.론스타, 처벌할 방법 없나
9.외환은행 매각의 주역, 이강원은 누구인가
10."론스타 게이트"인가,"모피아 게이트"인가?
제2장 투기자본의 악랄한 "기업사냥" 사례들
1.뉴브리지, 단돈5000억 원으로 제일은행을 먹다
2.한미은행을 덮친 미국 군수자본 칼라일
3.KT&G의 비극
4.매틀린패터슨에 팔려나간 오리온전기의 최후
5.씨티뱅크와 한국씨티은행의 이상한 거래
6.BIH의 브릿지증권 약탈작전 전모
7.남김없이 털린 극동건설
8.대한통운에 뻗친 론스타의 야욕
9.로스차일드펀드에 놀아난 정부와 만도기계
제3장 투기자본과 신자유주의 금융 세계화
1.조세회피지역, 세금 없는 투기자본 천국
2.소버린이 억울해 하는 이유
3.한국 경제 역동성 빨아먹는외국자본
4.주주 자본주의가 경제 말아먹는다
5.한국 경제 뒤흔들 초대형 M&A 시나리오
6.한국판 골드만삭스, 그무모하고 허황된 꿈
7.파생상품, 그 위험천만한 매력
8.한국투자공사, 그 부질없는 욕망
9.달러 경제와 미국 자본주의의위기
제4장 어떻게 저항할 것인가
1.대형 할인점의 가격파괴는 사기다
2.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맞서는 하벌라르 커피의 실험
3.은행에 사회적 책임 강제해라
4.대출 꺼리는은행에 불이익 주는 법 만든다
5.세계는 결코 평평하지 않다
6.장하준 교수의 국민경제 이론
투기자본의 천국 대한민국
제1장 론스타는 어떻게 외환은행을 집어 삼켰나
누가 왜 거짓말을 하는가
2003년 9월, 자산 규모가 62조 6033억 원에 이르는 은행의 소유권이 단돈 1조 3834억 원에 넘어갔다. 이 은행은 2년 반 뒤에 6조 4180억 원에 다시 팔려나갈 전망이다. 환차익을 감안하면 론스타의 시세 차익은 무려 4조 5008억 원에 이른다.
금융감독위원회는 그때는 론스타에게 넘기는 것 말고는 외환은행을 살릴 방법이 없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급박한 상황이었고 론스타 말고는 돈을 끌어들일 데가 없었다는 것이다. 문제는 론스타 같은 사모펀드는 애초에 은행의 대주주가 될 자격이 없다는 것이었다. 은행법에는 “외국인이 국내 금융기관의 대주주가 되려면 기본적으로 금융회사거나 금융지주회사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다만 은행법 시행령은 예외 규정을 두고 있는데 “부실금융기관 정리 등 특별한 사유가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는 요건을 갖추지 않아도 대주주가 될 수 있다고 돼 있다. 물론 외환은행은 당시 부실금융기관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금융감독위원회는 외환은행이 부실금융기관이 될 위험이 있다고 판단하고 이 예외 규정을 적용했다. 외환은행은 정말 그렇게 위험한 상황이었을까. 아니면 금융감독위원회가 거짓말을 하는 것일까.
그해 외환은행은 2138억 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했지만 그 이듬해인 2004년에는 5221억 원의 당기순이익 흑자로 돌아섰다. 2005년에는 당기순이익이 1조 9293억 원까지 불어나기도 했다. 부실금융기관이 될 우려가 있다던 은행이 1년 만에 흑자로 돌아서 2년 만에 사상 최대의 실적을 기록한 것이다. 하이닉스반도체를 비롯해 동아건설, 현대상사 등의 부실채권이나 보유주식의 가치가 크게 뛰어오른 덕분이었다.
물론 역사에서 가정이란 부질없다. 만약 그때 론스타의 돈이 들어오지 않았다면 외환은행은 훨씬 심각한 위기에 부딪혔을 수도 있다. 그러나 금융감독위원회가 상황을 지나치게 비관적으로 보고 잘못 판단했을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다. 어떤 경우든 고의가 아니었다면 딱히 금융감독위원회의 결정을 문제 삼기 어렵다. 그러나 과연 금융감독위원회는 그때 최선의 결정을 내렸던 것일까. 결정을 내릴 권한이라도 주어졌던 것일까.
외환은행이 부실금융기관이 될 수 있다는 결정적인 자료는 금융감독원 은행검사1국에서 만든 것으로 되어 있다. 이 자료는 외자유치가 되지 않을 경우 외환은행의 자기자본비율이 6.2%까지 떨어질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나는 은행검사1국 백재흠 국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자료의 구체적인 근거가 뭐냐는 질문에 그는 “당연히 근거 없이 자료를 만들 수는 없다”면서 “근거는 얼마든지 제시할 수 있지만 자세한 내용은 국정감사는 검찰조사에서 밝히겠다”고 말했다.
론스타는 어떤 조직인가
론스타가 처음 우리나라에 이름을 알린 것은 IMF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12월, 자산관리공사(당시 성업공사)의 부실채권을 무더기로 사들이면서부터다. 론스타는 4억 7000만 달러(5646억 원)규모의 부동산담보부 채권을 원금의 36%인 2012억 원에 사들였다. 당시 담보로 잡혀 있던 부동산의 경매 가격이 원금의 50~60%에 이르렀다는 사실을 돌아보면 그야말로 알짜배기 투자였던 셈이다.
론스타는 이 거래를 통해 거뜬히 100% 이상의 수익을 올렸을 것으로 추정된다. 론스타는 철저하게 부동산담보부 채권에만 관심을 가졌다. 담보는 확실했지만 IMF 직후 부동산 가격이 바닥을 치던 무렵이라 값은 터무니없이 쌌다. 자금만 끌어들일 수 있으면 무조건 먹는 알짜배기 장사였다. IMF 직후 국내 기업과 금융기관들은 죄다 돈줄이 말랐고 덕분에 론스타는 쏟아져 나오는 부동산담보부 채권을 헐값에 사들일 수 있었다.
론스타는 특히 자산유동화를 활용했다. 자산유동화란 가상의 서류 회사를 만들어 그 회사가 부실채권을 인수하도록 한 뒤 그 채권의 운용수익을 회사에 투자한 지분비율만큼 주주들이 나눠 갖는 방식을 말한다. 론스타와 자산관리공사는 이 서류회사에 각각 70%와 30%씩 지분을 출자했기 때문에 론스타가 실제로 들인 돈은 원금의 25.2%에 지나지 않았다. 5646억 원 규모의 채권을 1409억 원에 사들였다는 이야기다.
론스타는 이 채권을 자회사인 허드슨어디바이저스에 맡겨 운용했다. 허드슨은 나중에 자산관리공사와 공동 출자로 허드슨캠코라는 자회사를 설립하고 기업구조조정 사업에도 뛰어든다. 헐값에 쏟아져 나온 부실기업들과 부동산이 경기 회복 이후 이들 회사를 통해 비싼 값에 되팔려 나간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론스타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국내 최대의 부실채권 인수 주체로 부상했고 자산관리공사와도 돈독한 관계를 유지했다.
제2장 투기자본의 악랄한 기업사냥 사례들
한미은행을 덮친 미국 군수자본 칼라일
2003년 9월 한미은행이 칼리일펀드에 넘어가게 된 과정도 의혹투성이다. 한미은행은 그해 당기순손실이 3960억 원에 이를 만큼 경영상황이 좋지 않았고 그만큼 자본 확충이 절실했다. 칼라일은 그해 3월 금융감독위원회에 한미은행 주식을 사들이겠다고 신청을 냈다가 거절당했다. 역시 대주주 적격성 문제가 걸렸던 것이다. 칼라일은 사모펀드였을 뿐 금융기관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해 9월 칼라일은 금융기관인 JP모건을 앞세워 금융감독위원회 승인을 받아낸다. JP모건과 50대 50으로 투자를 하겠다고 한 것이다.
한미은행이 주식예탁증서를 발행하면 칼라일과 JP모건 컨소시엄이 이를 인수하는 방식이었다. 발행규모는 4559억 원, 주당 발행가격은 6800원이었다. 이 컨소시엄은 한미은행 지분 36.6%를 차지해 최대주주가 됐고 덕분에 한미은행의 자본금은 1조 500억 원에서 1조 5000억 원으로 늘어났다.
문제는 JP모건이 들러리만 섰을 뿐 실제로 인수 주체는 칼라일이었다는 것이다. JP모건을 내세워 편법으로 금융감독위원회의 승인을 받아냈다는 이야기다.
컨소시엄에 참여한 펀드들의 지분 구성을 살펴보면 흥미로운 점을 발견할 수 있다. 가장 지분이 많은 펀드는 16.3%를 보유한 KAL(한미은행 투자펀드)이었는데 이 펀드는 칼라일과 JP모건이 반반씩 투자한 게 맞다. 문제는 나머지 지분인데, 채드윅과 프리웨이라는 펀드가 각각 3.6%를 보유한 것을 비롯해 스칼렛이 3.4%, 이글이 2.5%, 코란드가 1.0% 등 9개 펀드에 분산돼 있었다. 이 펀드들은 모두 페이퍼컴퍼니로 칼라일이 의결권을 갖고 있었다. 칼라일은 공공연하게 홈페이지에서 이들 펀드와의 관계를 밝히기도 했다.
남김없이 털린 극동건설
론스타는 외환은행뿐만 아니라 극동건설의 최대주주이기도 하다. 극동건설은 2006년 2월 주주총회에서 액면가 5000원의 20%, 주당 1000원의 현금배당을 결정했다. 98.1%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론스타는 260억 원의 배당을 받아갔다. 극동건설의 2005년 당기순이익 274억 원의 95%에 이르는 규모다. 우리나라 건설회사들의 배당성향이 20~30%인 점을 감안하면 엄청나게 높은 배당률인 셈이다.
론스타는 2003년 4월에 극동건설을 인수한 이후 3년 동안 2220억 원을 배당과 유상감자로 받아갔다. 론스타가 극동건설을 인수하는데 들인 비용은 1700억 원 정도, 이미 원금 이상을 회수했다는 이야기다. 2004년에는 더 많은 배당을 받으려고 서울 충무로 극동빌딩을 매각하기도 했다. 그 해에는 영업이익 162억 원 보다 많은 240억 원을 배당으로 받아갔다. 2005년에도 영업이익 240억 원의 81%인 195억 원을 받아갔다.
극동빌딩을 매각하고 들어온 돈으로 대규모 무상증자 후 유상감자를 실시하기도 했다. 유상감자는 자본금을 줄여 그 돈을 주주들에게 나눠준다는 말이다. 론스타는 2003년 12월과 2004년 6월 두 차례에 걸쳐 1525억 원을 받아갔다. 건물을 판 돈이 고스란히 론스타에게 빠져나간 셈이다.
극동건설은 한때 현대건설과 대림, 삼환, 삼부 등과 함께 건설 5인방 안에 들만큼 잘 나가던 회사였다. 그러나 1985년 국제그룹이 해체되면서 떨어져 나온 국제건설을 인수한 뒤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IMF 외환위기를 맞으면서 1998년 12월 부도를 내고 법정관리에 들어갔다가 2003년 론스타에 넘어갔다. 극동건설 관계자의 론스타에 대한 평가는 의외로 우호적이었다.
극동건설 관계자는 “당시 론스타 말고는 인수 희망자가 없어 직원 500여 명이 길거리에 나앉게 된 상황”이었다며 “회사가 우량기업으로 거듭나고 직원들의 고용이 유지됐다면 긍정적으로 평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또 “지금은 고율 배당을 할 만큼 회사 사정이 좋아졌다”며 “일정 금액을 회수해야 하는 것이 사모펀드임을 감안하면 회사 사정이 좋을 때 배당을 많이 받아가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제3장 투기자본과 신자유주의 금융 세계화
조세회피지역, 세금 없는 투기자본 천국
이중과세 방지협약이라는 게 있다. 기업이 외국에 나가서 사업을 할 때 어느 한쪽 나라에만 세금을 내는 협약이다. 기업이 원래 거주하고 있는 나라에 내는 방법이 있고 사업을 하고 돈을 벌어들이는 나라에 내는 방법이 있다. 우리나라는 첫 번째 방법을 따른다. 이를테면 우리나라 기업이 말레이시아에 가서 돈을 벌면 역시 자기들 나라에 세금을 낸다. 우리나라는 1982년 말레이시아와 이중과세 방지협약을 맺었다.
문제는 말레이시아의 라부안이라는 지역에 있다. 말레이시아는 1985년 이 지역을 투자자유지역으로 지정하고 파격적인 세금 혜택을 제공하면서 외국 기업들을 끌어 모으고 있다. 이곳에서는 일정 정도의 수수료를 제외하고는 세금을 전혀 내지 않을 수 있다. 라부안은 이른바 조세회피지역이다. 이중과세 방지협약에 따라 우리나라는 말레이시아 기업에 세금을 매길 수 없는데 이 기업 본사가 라부안에 있다면 이들은 말레이시아에도 세금을 내지 않는다.
라부안은 인구 2만 명에, 면적은 98km²로 우리나라 여의도의 10배정도 크기밖에 안 되는 작은 섬이다. 1주일이면 회사를 하나 만들 수 있는데 비용도 1만 달러밖에 안 든다. 이곳에 들어서 있는 수천 개의 회사 가운데 상당수는 서류로만 존재하는 이른바 페이퍼컴퍼니다. 이곳에 회사를 만들고 우리나라에 들어와 사업을 하면 우리나라와 말레이시아 어느 곳에도 세금을 내지 않을 수 있다. 그야말로 조세 천국인 셈이다.
제일은행 주식을 스탠더드챠터드은행에 넘겨 1조 1800억 원의 시세차익을 남겼던 뉴브리지캐피털도 라부안의 고객 가운데 하나다. 우리나라 같으면 주식 양도세로 30%를 내야 하지만 라부안은 이 같은 자본이득에 대해서는 전면 면세를 해주고 있다. 이곳에서는 법인세도 없다. 우리나라 기업이라면 순이익의 25%를 법인세로 내야 하는데 라부안에서는 순이익의 3% 또는 2만 링깃 가운데 적은 금액을 선택해서 낼 수 있다. 2만 링깃이면 우리나라 돈으로는 600만 원도 채 안 된다.
한국 경제 역동성 빨아먹는 외국자본
이창훈 동원투자신탁운용 상무는 IMF를 거치면서 우리나라 기업들의 패러다임이 성장 중심에서 단기수익 중심으로 옮겨갔다고 보고 있다. 5년 뒤, 10년 뒤가 아니라 당장 올해 얼마나 많은 이익을 낼 것인가에 모든 경영 목표가 맞춰져 있다는 이야기다. 당연히 설비투자도 주춤할 수밖에 없다. 설비투자는커녕 오히려 혹독한 구조조정으로 경비를 줄여 이익을 더 늘리라고 주문 받는다. 그게 자본의 냉혹한 속성이다.
“기업이 설비투자 계획을 발표하면 주가가 떨어집니다. 직원들 자르고 구조조정 하겠다고 하면 주가가 오릅니다. 자사주를 매입하거나 배당을 늘리겠다면 오르고 노동조합이 파업한다고 하면 떨어집니다. 시장의 관심은 다만 주주들에게 이익이 되느냐 안 되느냐에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기업은 결국 투기성 단기 자본의 논리에 종속될 수밖에 없습니다.”
전병서 대우증권 리서치센터 본부장은 앞으로 5년 뒤를 걱정하고 있다. IMF 외환위기 이후 우리나라 대기업의 놀라운 성장은 혹독한 구조조정의 결과 경쟁 업체가 사라진 데 따른 과점 경쟁의 혜택과 그 착시 현상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삼성전자가 과거에 지금처럼 좋은 회사였습니까. 아닙니다. 반도체 회사가 세 개 있다가 두 개 없어지고 사실상 하나 남았기 때문입니다. KT도 마찬가지죠. 1999년에 이익을 3000억 원 내던 회사가 지금은 가입자 수도 줄고 영업 환경이 나빠졌다고 하는데도 이익이 1조원이 넘습니다. SK텔레콤이나 KTF도 마찬가집니다. 통신회사는 여섯 개 있던 거 다 날아가고 두 개 남았고 자동차 회사도 세 개 있다가 하나만 살아남았죠.”
반도체산업을 비롯해 통신, 자동차, 철강, 화학산업 모두 마찬가지다. IMF 사태는 경쟁 시장을 무너뜨리고 업종별로 한두 개 업체만 살려놓았다. 그 결과 지난 몇 년 동안 이들 기업들은 사상 최대의 이익을 냈다.
그러나 정작 문제는 지금부터다. 과점의 혜택은 이미 바닥이 드러나고 있는데 기업들은 새로운 설비투자를 하지 않거나 못하고 있다. 지난 몇 년 동안도 그랬고 그 어느 때보다도 설비투자가 절실한 지금은 더욱 그렇다. 전병서 본부장은 “지금 투자를 하지 않으면 앞으로 5년 뒤에 기업들이 먹고 살 게 없다”고 단언한다. 시장의 위기의식은 자못 심각하다.
제4장 어떻게 저항할 것인가
대형 할인점의 가격 파괴는 사기다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이미 우리 생활 깊숙이 파고들어 있다. 이를테면 대형 할인점은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대표적인 상징 가운데 하나다. 2005년 10월, 월마트 반대운동(anti-Walmart)을 추진하고 있는 국제사무직노조네트워크(UNI : Union Network International) 활동가들이 한국을 찾았다. 나는 국제사무직노동자네트워크의 소개로 이들을 단독 인터뷰할 수 있었다. 이들은 월마트의 가격 파괴 정책의 실상과 노동탄압 실태를 폭로하는 한편, 한국 월마트도 노조 설립을 허용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아울러 한국 소비자들과 노동단체들의 적극적인 동참을 요청했다.
미국 월마트 직원들의 평균 임금은 1시간에 9.7달러로 대형 소매업체 평균 14.1달러보다 31%나 적다. 그가 3인 가구의 가장이라면 미국 정부가 정한 빈곤 상한선에도 못 미치는 생활을 해야 한다. 이들은 또 수당 없는 시간외 근무를 공공연히 요구받고 있다. 월마트는 2001년 미국 콜로라도 주에서 직원들의 집단소송에 패소해 시간외 근무사당 5000만 달러를 물어주기도 했다. 다른 주에서도 비슷한 내용의 법정소송이 진행되고 있다.
복지 조건도 턱없이 열악하다. 회사에서 지원하는 건강보험에 가입하려면 임금의 최대 45%까지 보험료를 내야 한다. 그나마도 비정규직 직원들은 가입이 매우 까다롭게 돼 있다. 당연히 보험 가입률이 낮을 수밖에 없다. 다른 회사들의 건강보험 가입률이 평균 66%인 데 비해 월마트 직원들의 평균 가입률은 41~44% 수준에 불과하다. 문제는 이런 열악한 복지 조건이 비용을 외부화하는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은행에 사회적 책임 강제해라”
은행에 사회적 책임을 강제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게리 딤스키 미국 캘리포니아대학 교수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사회양극화 문제의 해법으로 은행과 지역공동체의 연대를 법적으로 강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딤스키 교수는 한국 은행산업의 미래에 세 가지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첫째는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은행 합병과 대형화 시나리오고 두 번째는 한국이 동북아 금융허브로 자리 잡는 시나리오, 세 번째는 공동체 건설을 지향하는 시나리오다. 딤스키 교수는 한국을 투기자본의 천국으로 방치하지 않으려면 세 번째 시나리오를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먼저 은행 합병의 시나리오는 한국의 은행산업이 안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는 대안이 될 수 없다. 딤스키 교수는 인수합병을 통한 대형화 전략은 미국에서나 통하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한국은 미국과 달리 방대한 부유층도 없고 월스트리트의 대대적인 지원도 없다. 덩치를 키운다고 생존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폐해가 우려된다.
딤스키 교수는 미국과 우리나라 은행의 차이점을 강조했다. 미국에서 은행 합병이 유행한 것은 역사적 배경이 있다. 1970년대 들어 스태그플레이션 속에서 금리가 높아지면서 예금과 대출 고객을 동시에 빼앗기게 된 은행들이 궁여지책으로 부유층 소매금융 전략을 선택했고 수수료 중심으로 수익 구조를 재편했다. 이 과정에서 고객 확대가 절실하게 됐고 인수합병을 통한 대형화가 확산됐다. 인수합병이 지점 신설보다 비용이 덜 들기 때문이다.
199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미국의 대형 은행들은 세계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한국도 그 가운데 하나고 씨티은행이 대표적이다. 씨티은행은 한미은행을 인수하면서 지점이 12개에서 222개로 늘어났다. 고객도 600만 명에 이른다. 이 은행은 다른 동남아시아 시장에서처럼 신용카드와 자산관리를 중심으로 부유층 고객을 집중 공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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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대형화 과정에서 은행의 영업 관행이 바뀌게 된다는 데 있다. 대출은 철저하게 시장의 논리에 따라 결정되고 부유층을 중심으로 소매금융이 핵심 사업이 된다. 규모를 키워서 더 많은 부유층 고객을 끌어들이는 것이 성공의 관건이다. 그 결과 은행은 살아남을 수도 있겠지만 중소기업과 저소득 계층은 금융산업에서 소외될 수밖에 없다. 은행이 은행의 역할을 못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