쾌도난마 한국경제

   
장하준·정승일(엮음 : 이종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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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07��



■ 책 소개
세계적인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뮈르달 상과 레온티예프 상을 잇달아 수상한 젊은 경제학자 장하준 케임브리지 대학 경제학과 교수는 화려한 이력과 더불어 한국 경제를 보는 특유의시각으로 국내외 학계의 주목을 받는 소장학자이다. 그가 『쾌도난마 한국경제』라는 제목의 좌담집을 선보였다.

박정희 개발독재의 공과를둘러싼 논란에서 재벌 체제의 득실, 그리고 신자유주의의 본질에 이르기까지 한국 사회의 주요 의제를 정승일 국민대 교수와의 좌담 형식으로 엮은 이책의 장점은, 균형 잡힌 시각에 있다. 근로자들을 헌신짝 버리듯 "자르는" 국내 재벌 기업의 행태는 물론, 노동계 인사들의 상황 인식 부재를질타하는 그의 목소리에서 이데올로기적 편향의 흔적을 찾기는 어렵다.

 


투기자본을 편드는 국내 노동계 일각에 대한 그의 비판에 귀기울여보자.


한국노동운동의 큰 착각은 반재벌 투쟁과 반신자유주의 투쟁이 동반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것이다. 재벌을 타도한다고 노동시장 유연화가 극복되고, 신자유주의를 저지할 수 있을까.


경영권을 둘러싼 SK 최태원 일가와 소버린의 싸움에서 소버린의 손을 들어준 노동계 일각의움직임은 주적을 혼동한 것이다. 그는 국내 재벌 그룹에 대해서도 비판을 아끼지 않는다. 일본 기업들이 고용 안정을 바탕으로 장기 불황의 파고를극복하는 데 성공한 반면, 손쉽게 근로자들을 해고해 인건비를 줄이는 데 주력한 국내 기업들은 노사관계 악화 등 적지 않은 대가를 치르고 있다는것이다.


박정희 개발 독재의 공과를 둘러싼 분석도 흥미롭다. 8·3사채동결 조치에서 알 수 있듯이박 전 대통령은 결코 시장주의적인 지도자가 아니었지만, 그의 이러한 반시장주의적인 성향이 경제발전에는 오히려 도움이 되었다고 장교수는 지적한다.특히 미국식으로 개방됐다면, 우리나라에는 지금 삼성이나 현대같은 기업은 없었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장교수의 주장에 대해서는 사실 논란이 적지않다. 하지만 좌나 우 편향에서 벗어나 한국 사회를 갈라 놓는 주요 이슈들에 대해 균형잡힌 시각을 원하는 독자들이라면 한번쯤 읽어봐야 할필독서이다.


■ 대화 장하준·정승일
장하준은 서울대 경제학과를 나와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경제학 석사 및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1990년 이래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경제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2003년 신고전파 경제학의 대안을 제시한 경제학자에게 주는 뮈르달 상을,2005년 경제학의 지평을 넓힌 경제학자에게 주는 레온티예프 상을 최연소로 수상함으로써 세계적인 경제학자로서 명성을 얻었다. 주요 저서로는『사다리 걷어차기』(Kicking away the Ladder, 2002, Anthem Press)를 비롯하여 『The PoliticalEconomy of Industrial Policy』(1994, Macmillan Press) 『Globalization, EconomicDevelopment and the Role of the State』(2003, Zed Press) 『개혁의 덫』(2004) 등이 있다.


정승일은 서울대 물리학과를 다녔으며 1980년대에 민주화운동에 투신했다. 1991년 독일로 유학을 떠나 베를린 훔볼트 대학 사회과학부에서 석사 학위를, 그리고 베를린 자유대학에서 정치경제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베를린사회과학연구소와 한국자동차산업연구소, 금융경제연구소에 근무했으며 시민 단체인 대안연대회의에서 활동했다. 현재 국민대경제학부 겸임교수이다. 저서로는 『Crisis and Restructuring in East Asia』(2004,Palgrave/Macmillan)가 있다.


■ 엮은이 이종태
이종태는 연세대 영문학과를졸업한 뒤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경제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1995년 대구 『매일신문』에 입사, 경제부와 사회부를 거쳤으며 2001년엔"한국전 직후 민간인 학살" 관련 기사로 한국기자상을 수상했다. 2000년 3월 진보적 시사 종합지인 월간 『말』로 직장을 옮겨 2002년1월부터 2005년 4월까지 편집장을 지냈다.


■ 차례
서문을 대신해서 -장하준


1부 우리의 과거를 어떻게 평가할것인가?
1장 개혁 강화는 종속 심화라는 아이러니
2장 박정희의 개발 독재를 어떻게 볼 것인가?
3장 재벌문제, 과연 해답은 없는가?
4장 도대체 무엇을 위한 시장 개혁인가?


2부 우리는 후대를 위해 무엇을 할것인가?
1장 주주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의 본질 
2장 서로 자기 발등을 찍고 있는 자본과 노동
3장 국가와국가주의, 관치에 대한 오해와 편견
4장 우리 모두를 위한 사회적 대타협을 그리며


이 책을 마치며 - 정승일





쾌도난마 한국경제


서문을 대신해서 - 장하준
본인과 정승일 박사가 펼치는 견해는 사안에 따라 보수였다가 진보였다가 수구였다가 극좌 민족주의자이기도 한 것처럼 보여서 지난 몇 년 간 본의 아니게 여러 사람을 혼란스럽게 만들어 왔다. “도대체 정체가 모냐?”는 소리도 많이 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당연한 해결책은 일반 독자들이 이해하고 즐길 만한 방식으로 우리의 입장을 자세히 설명하는 책을 쓰는 것이다.


이 책이 왜 본인이나 정승일 박사 같은 사람들이 여러 가지 오해를 사고 욕을 먹어가면서까지 한국 경제,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세계 경제에 대한 ‘복잡한’ 이야기를 하는지에 대한 독자들의 의문을 해소하는 데, 그리고 원컨대 우리 사회를 더 좋은 사회로 만드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1부 우리의 과거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개혁 강화는 종속 심화라는 아이러니
이종태 :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개혁 세력들이 그릇된 판단으로 주주 자본주의를 수용했고, 그 결과 불평등과 대외 의존의 심화가 나타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대외 의존의 심화는 종속을 가리키는 것이겠지요. 먼저 ‘자본 종속’의 정의를 내려 주셨으면 합니다.

장하준 : 자본 종속이란 자본의 소유가 외국으로 넘어가 있는 상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실상 경제 자체가 넘어갔다는 이야기지요. 이게 바로 외국인 직접투자와 차관의 차이입니다. 차관은 이자만 주면 됩니다. 외국인들이 기업 운영에 간섭할 수 없는 거죠.


정승일 : 1997년 이전에는 대부분의 외국 자본들이 소유권을 지향하는 주식 형태가 아니라 은행 대출(차관) 형태로 들어왔습니다. 주식은 바로 소유권입니다.


이종태 : 예컨대 한국 경제에서 주요 부문의 키를 모두 외국인들이 잡게 되었다는 것 아닙니까? 많은 경우 주식의 절반 이상이 외국인들에게 넘어간 상태이기도 하고요. 그러고 보면 주주 자본주의와 종속이라는 현상들은 꽤 유기적으로 얽혀있다고 할 수 있겠군요.


장하준 : 1980년대 후반에 나온 통계를 보면 우리나라에서도 당시 수출자유지역의 경우에는 외국인의 100% 소유를 인정했습니다. 그런데도 실제 100% 소유 기업은 6%에 불과 했어요. 반면 남미의 경우 외국인이 100% 소유하고 있는 경우가 50%가 넘었었죠. 남미와 우리는 완전히 다른 경제였던 겁니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대단한 경제 성장을 이루어 냈죠. 그런데 역설적인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겁니다. (개혁 이후) 자본이 종속되어 버렸거든요.


이종태 : 두 분 말씀은 오히려 당시가 종속적인 색채가 덜했고, 개혁 세력들이 개혁을 추진한 결과 종속 구조가 더욱 심화되었다니, 그것 참…. 그렇다면 개혁 세력의 경제관에 상당히 문제가 있다는 이야기가 되나요?


정승일 : 외국 자본 자체는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닙니다. 다만 우리가 어떤 제도와 조건을 가지고 받아들이는가에 따라 상황이 달라집니다. 그런데 경제 개혁론자들은 외국 자본에 대해 무조건 후한 점수를 주는 것 같다는 게 문제입니다. 설사 외국 자본이 더 합리적이고, 기술과 문화도 더 뛰어나다 해도 외국 자본을 천사처럼 볼 필요는 없는 겁니다. 실제로 천사도 아니고요. 그런 전철을 밟았던 남미를 보세요.


장하준 : 설사 외국 자본이 더 합리적이고 경영을 잘한다 합시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외국 자본에게 우리 경제를 맡기는 게 우리나라의 장기적 발전을 위해 좋은 일일까요? 그런 식으로 생각한다면 일찍부터 외국 자본의 100% 소유를 인정해 버리는 것이 좋았겠죠. 또 삼성, 현대 같은 게 무슨 필요가 있겠습니까? 그냥 포드나 GM에게 모든 것을 해 달라고 하면 되지.


이종태 : 그래도 남미의 기업들이 투명해진 건 사실 아닙니까?


장하준 : 솔직히 말하면 남미에는 투명성을 따질 만한 기업도 없습니다.


정승일 : 제조업 부문에 대기업이 별로 없어요. 있어도 주로 하청 기업들이고요.


이종태 : 그러니까 두 분 말씀을 요약하면 이렇게 되겠군요. ‘오늘날 이른바 경제 개혁을 추진한 결과 어처구니없게도 한국의 경제 종속은 더 심화되고 말았다. 그 원인은 신자유주의적 구조를 맹목적으로 도입한 데에 있다. 신자유주의적 경제 체제는 금융 자본을 위한 시스템으로 저성장을 지향하기 때문이다. 선진국으로 도약하고자 열망하는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맞지 않는 제도인 것이다. 과거의 잘못된 구조를 바로잡기 위해 불가피하다 내지는 필수적이라는 주장도 하는데, 그런 주장은 별로 근거가 없다. IMF 사태 직전 몇 년 동안의 과잉 투자는 우리나라 경제 체제의 문제가 아니라 금융 자유화의 결과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외국 자본이 우리나라 기업들의 질적 수준을 높여 준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남미의 경우 외국 자본을 도입하였지만 실질적으로 산업 공동화만 초래하였을 뿐이다.’ 이게 사실이라면 너무나 충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가 지금 빈대 잡자고 초가삼간 태우는 꼴인지도 모르니까요.


박정희의 개발 독재를 어떻게 볼 것인가?
이종태 : 박정희가 경제 개발에 성공했다고 주장하셨는데, 그 말씀이 알려지면 흥분할 분들이 아주 많을 겁니다. 이를 입증해 주셨으면 합니다.


정승일 : 한국의 경제 발전에 대해 박정희가 이룬 경제 성장은 누구나 다 할 수 있었다는 견해가 있습니다. 하지만 경제 발전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노동자들이 희생당하고 착취당한다고 해서 반드시 경제가 발전하는 것도 아닙니다. 물론 박정희 시대에 국가와 자본은 노동자들을 가혹하게 착취했습니다. 그러나 자본주의라는 것은 본질적으로 노동자를 착취해야 성립할 수 있는 체제입니다. 박정희 경제 개발에 대해 말씀드리면, ‘박정희가 자본주의적 경제 성장에 성공했다’ 혹은 ‘세계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비교적 자립적인 자본주의 시스템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의 주장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장하준 : 단기적으로 착취를 많이 한다고 경제가 잘 되는 것은 아니죠. 그 부를 산업 시설, 교육, 사회간접자본 등에 얼마나 잘 투자했는가가 중요합니다.


정승일 : 박정희 시대의 국가는 자본이 노동자를 착취해 수탈한 부를 생산적 방향으로 투자하도록 강요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그 유명한 삼성의 사카린 밀수 사건 때 박정희가 이병철 회장을 불러 ‘당신, 이제부터는 중화학 공업 등 제대로 된 산업에 투자하라’고 강요했던 것 아닙니까? 이런 과정에서 한국의 자본가들은 당장 이익을 거둘 수 없음에도 어쩔 수 없이 정부에 협력할 수밖에 없었던 거죠.


이종태 : 그러니까 박정희 개발 독재의 결론은 대충 이렇군요. ‘박정희라는 인물이 꼭 필요했는지는 모르겠다. 독재의 불가피성에 대해서도 인정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경제 개발이 필요했던 것만은 분명하다. 그것도 박정희의 경제 개발과 같은 적극적으로 목표 지향적인 방식의 경제 개발이. 그 과정에서의 착취와 저임금 구조는 피할 수만 있다면 피했으면 좋겠지만 역사적으로 볼 때 가능한지 모르겠다.’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생각하게 됩니다. 경제학은 정말 우울한 학문 같다고….



2부 우리는 후대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국가와 국가주의, 관치에 대한 오해와 편견
장하준 : ‘정부는 작아야 한다’라는 말이 마치 사회적 합의라도 거친 것처럼 좌우를 망라해 통용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하지만 우리 경제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정부의 역할을 부정하는 것이 ‘정도(正道)’이고 ‘개혁의 길’로 인식되어 버렸다는 것입니다.


정승일 : 금융 시장을 시장 논리 그대로 두는 나라가 어디 있습니까? 저는 소유권이라는 측면에서 은행이 주주의 것이기도 하지만 예금자의 것이기도 하다고 주장하고 싶어요. 예금자의 보호는 정부가 그 역할을 대행해야 합니다. 이 같은 정부의 역할을 관치 금융이라면서 부정한다는 것은, 금융 시장이 자유롭기로 최고라는 미국이라 해도 넘을 수 없는 선을 우리가 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장하준 : 정부의 역할이란 문제와 관련해서 산업 정책에 대한 이야기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 기업들의 경우 따지고 보면 과거 정부가 시장 보호해 주고 보조금 줘 가며 키워 놓은 건데, 그런 정부의 역할도 필요 없었다는 건가요? 만약 정부의 역할이 없었다면 우리나라는 아직 일본에 김이나 팔고, 중동 건설 현장에서 땅이나 파고 있을 겁니다. 어떤 분들은 ‘시장에 맡겨 뒀으면 더 잘됐을 텐데’ 하잖아요. 영미 쪽의 시장 근본주의자들이 동아시아 모델을 비판하는 논리이기도 하구요. 그런데 문제는 현실 속에서 우리나라를 비롯한 소위 동아시아 모델을 추구한 나라들보다 경제 발전을 효율적으로 일구어 낸 나라가 없다는 겁니다. 때문에 이제는 더 이상 국가를 무시하는 일이 없었으면 합니다. 한국이라는 나라는 아직 국가가 할 일이 많아요.


정승일 : 이른바 개혁 세력들은 자기들 스스로를 시장주의자로 믿고 있거든요. 그래서 ‘시장이라는 것도 도구에 불과하며, 시장에 반대되는 정책들도 정당성을 가질 수 있다’고 말할 수 없는 것 같아요.
 
장하준 : 시장에 맡긴다는 것은 돈 많은 사람들 마음대로 하라는 겁니다. 게다가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이른바 자유주의자들은 19세기까지도 반(反)민주주의자들이었어요. 자유주의의 핵심이 ‘시장의 자유와 사유재산권 수호’ 아닙니까?


이종태 : 민주주의와 시장은 옛날부터 그리 좋은 사이가 아니었군요.


장하준 : 힘있는 정부를 불온하게 여기는 것 자체가 박정희에 대한 반사적 거부라니까요. 박정희 정부가 반민주적이었기 때문에 정부에 반대하고, 그렇기 때문에 정부의 힘을 빼는 것이 민주주의라고 고정관념화되어 버린 겁니다. 민중들은 자유주의자들과 투쟁하는 과정에서 민주주의를 쟁취해 냈어요. 그후 자유주의자들은 계속 풀이 죽어지냈는데, 요즘 들어 신자유주의로 다시 힘을 얻게 된 거고요. 지금 신자유주의 세력들이 가장 강조하는 것이 ‘정치로부터 주요 정책 기구의 독립성’이잖아요. 하지만 공공적 영향력이 큰 조직이 국가로부터 독립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겠습니까? 어떻게 보면 신자유주의는 과거에 민주주의로 인해 빼앗긴 권력을 되찾자는 이론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관치는 무조건 나쁜 것이니까, 관료들에게 힘을 주면 안 된다’는 식의 사고가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 이런 식보다는 ‘관치는 불가피하지만 불완전하기도 하니까 여러 가지 장치를 통해 관료들을 견제해야 한다’는 시각이 훨씬 현실적인 것 같아요.


정승일 : 문제는 국가의 역할과 관료주의를 부인하면 그 대안이 시장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우리 모두가 심각하게 인식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를 위한 사회적 대타협을 그리며…
이종태 : 일찍이 두 분께서 이야기를 많이 해 오신 유럽에서 이루어졌던 사회적 대타협과 관련된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장하준 : 한국에서 수량적 유연성은 더 이상 높아질 수도 없습니다. 선진국 중에 국민의 50% 이상이 임시직인 나라가 어디 있습니까? 한국 경제의 문제점을 수량적 유연성을 높여 해결하려는 길은 이미 끝났다고 봅니다. 앞으로는 오히려 비정규직을 줄여야 할 겁니다. 아무튼 이후 사회적 불안정은 더욱 심화될 텐데, 이를 완화시키는 기제가 없다면 문제가 커질 겁니다.


정승일 : 지금 시장 논리가 우리 사회 전반을 지배하면서 모든 경제 주체가 ‘우선 나부터 살고 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그에 따라 한국 사회가 갈가리 찢겨 나가고 있는 상황입니다. 자본은 주주에 대한 책임만 이야기하면서 공공성 따윈 제쳐둔 지 오래고, 정부도 말로만 공공성을 떠들지 실제로는 글로벌 시장에 대한 책임만 지려고 하는 식이죠. 더욱이 노동자들도 말로는 노동조합의 사회적 책임을 이야기하지만, 실제로는 정규직 간은 물론이고, 정규직-비정규직간의 연대도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산별 노조도 마찬가지죠. 제가 보기에는 노동자와 정부와 자본은 각각 최소한의 수준으로나마 사회를 통합시켜야 하는 책임을 지고 있는 만큼 그 책임의 달성을 위해서도 합의해야 한다는 겁니다. 이게 바로 사회적 타협이라고 생각해요.


장하준 : 스웨덴에 사회적 대타협의 좋은 사례가 있어요. 1938년 잘츠요바덴(Saltsjobaden) 협약에서 사회주의 노동조합들이 생산수단의 국유화를 포기하는 대신 자본 측에서는 소득세를 대폭 올리는 데 동의한 겁니다. 여기서 대타협의 의미는 ‘제한을 두지 않고 타협했다’는 의미죠.


정승일 : 한국 경제는 중국의 추격을 받고 있는데, 이것은 기업과 노동 모두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는 셈입니다. 때문에 기업 측과 노동 측은 어느 정도 타협할 수 있는 공간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타협이란 것이 상호 간의 분쟁을 해결하는 것에서 그칠 필요는 없을 겁니다. 기업 경쟁력 강화와 사회복지 시스템 강화는 서로 맞물려 있는 메커니즘이기 때문에 양측이 그 선순환적 방법에 대해 적극적으로 논의하고 합의해야 한다는 거죠.


장하준 : 지금 기업들은 주식 시장으로부터 경영권을 위협 당하는 관계로 적극적인 투자를 못하고 있고, 그에 따라 생산성이 자꾸 떨어지니까 노동자들의 피땀을 짜내고 있는 거예요. 노동자들을 비정규직화하고, 그래도 안 되면 해외로 떠나 버리는 식으로 말입니다. 이런 메커니즘이 반복되면 한국 경제 전체의 기술력이 떨어지게 되고, 그 결과 국제 경쟁에서 뒤질 수밖에 없게 됩니다. 기업도 망하고 우리 경제도 망하게 되는 거죠. 이 문제는 함께 풀어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차원에서 기업은 경쟁력을 회복하고 경영권 불안도 해소하는 동시에, 노동자들은 일자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사회적 대타협이라고 봅니다.


정승일 : 강한 노동조합이 필요합니다. 이것은 산하 노조들을 지휘할 수 있는 통합적인 능력을 가지는 게 전제가 되어야 합니다. 경영자 단체도 마찬가지입니다. 노동과 경영의 중앙 조직들이 일정한 사회적 합의를 도출했을 때 이를 따르지 않을 수 없게 하는 제도적 장치도 필요할 겁니다. 그래야 합의가 이루어질 수 있을 테니까요. 일정 정도는 사회가 강요를 해야죠.


장하준 : 사회적 타협의 틀은 노?사?정이 아니라 ‘노사정 플러스’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에노사정이 주축이지만 여기에는 농민이나 중소 상인도 포함되는 형식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