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저격수의 고백

Confessions of an Economic Hit Man (2004)

   
존 퍼킨스 (역자 : 김현정)
ǻ
황금가지
   
15000
2005�� 04��



■ 책 소개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파나마, 그리고 이라크까지 미국의 국익이 걸린곳에는 항상 경제 저격수(economic hit man)가 있었다. 그들은 외교관도, 첩보원도 아니다. 그들은 민간 기업의 엘리트 사원으로일하며 전 세계를 누빈다. 그들은 미국의 이권이 걸린 곳이라면 어디든지 찾아가서 그 나라 정부에 막대한 차관을 주선하며 대규모 경제 개발 계획을추진하도록 설득한다. 그리고 미국의 거대 기업들이 사업 계약을 따 내 모든 이익이 미국으로 환수되도록 배후에서 은밀하게 조종한다. 그들이 바로경제 저격수다. 

 


이 책은 1971년부터 경제 저격수로 활동하며 이후 경제 저격수의 전형적인 행동 지침을마련한 존 퍼킨스의 실제 경험담이다. 그는 사우디아라비아 왕조의 돈세탁 프로젝트, 이란의 팔레비 국왕 축출, 오마르 토리호스 파나마 대통령사망, 미국의 파나마 침공, 2003년 이라크 전쟁 등 현대사에서 가장 극적인 사건들을 배후에서 조율하거나 현장에서 직접 주시했다. 그의 생생한증언을 통해 이제껏 세계 경제를 지배해 온 기업정치(corporatocracy)의 실체가 폭로된다.


■ 저자 존 퍼킨스(Jhon Perkins)
1945년미국 뉴햄프셔 출생. 보스턴 대학교에서 경영학을 전공했다. 미국 국가안보국(NSA)에서 훈련을 받고 1971년부터 10년 간 인도네시아,사우디아라비아, 이란, 파나마, 에콰도르 등의 국가에서 "경제 저격수(Economic Hit Man)"로 활동했다. 1980년 표면적으로는 민간컨설팅 회사로 위장한 NSA 하부조직인 메인(MAIN)에서 은퇴했고 이후 몇 번이나 경제 저격수의 정체를 밝히는 책을 집필했으나 협박과 뇌물에뜻을 이루지 못했다. 2001년 9·11테러를 목격한 이후 스스로의 양심에 따라 세계 경제를 지배하려는 미국의 음모를 폭로하는 책을출판했다.


■ 역자 김현정
한양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 2005년현재 삼성경제연구소(SERI)에서 일하고 있다. 동 연구소에서 발간하는 최고 경영자와 오피니언 리더들을 위한 영문 경제 분석지를 편집하고있다.


■ 차례
서문 
고백을 시작하며 


제1부 1963-1971 
1장 경제 저격수의 탄생 
2장 마음대로 그만둘 수있는 일이 아니에요 
3장 첫 번째 표적: 인도네시아 
4장 한 나라를 공산주의로부터 구해 내다 
5장 돈을 위해 영혼을 팔다


제2부 1971-1975 
6장 반둥의 미국인 조사관 
7장 시련 앞에 선 문명
8장 낯선 얼굴을 한 예수 
9장 일생일대의 기회 
10장 파나마의 영웅 토리호스 
11장 파나마 운하의 약탈자
12장 창녀와 군인 
13장 토리호스와의 대화 
14장 세계 경제에 어둠이 드리우다 
15장 사우디아라비아 돈세탁프로젝트 
15장 왕자, 뚜쟁이, 그리고 오사마 빈라덴 


제3부 1975-1981 
17장 파나마 운하 협상과 그레이엄 그린 
18장이란의 왕중왕 
19장 고문당한 남자의 고백 
20장 왕중왕의 몰락 
21장 콜롬비아로 가다 
22장 공화국 대 세계 제국
23장 조작된 이력서 
24장 석유를 위해 싸우는 에콰도르 대통령 
25장 그만두다 


제4부 1981-현재 
26장 영웅의 죽음 
27장 계속되는 암살 행진
28장 에너지 회사 엔론과 조지 W. 부시 
29장 뇌물을 받다 
30장 파나마 침공 
31장 이라크에서 실패한 경제저격수 
32장 9.11 테러가 남긴 것들 
33장 사담 후세인 덕에 살아난 베네수엘라 
34장 다시 찾은 에콰도르
35장 진실을 바라보다 


고백을 마치며 


저자 약력 
저자에 관하여




경제 저격수의 고백


서문 - 고백을 시작하며


2003년, 나는 여느 때와 다른 임무를 띤 채 스바루 아웃백을 타고 키토를 출발하여 쉘로 향했다. 내가 퍼뜨린 전쟁의 불씨를 잠재워야 한다는 생각에서 떠난 길이었다. 우리에게는 돈, 권력, 천연 자원을 얻기 위한 전쟁이었지만 이들에게는 자신의 후손들과 문화의 생존이 걸린 투쟁이었다. 그들의 투쟁은 전 세계를 지배하는 세계 제국을 만들려는 목적으로 몇몇 욕심 많은 사람들이 꿈을 이루기 위해 쏟아 붓는 노력에 비하면 일부분에 불과하다. 이것이야말로 우리 경제 저격수들이 가장 잘하는 일, 즉 세계 제국을 건설하는 일이다. 우리는 전 세계의 금융 기관들을 이용하여 미국의 기업, 정부, 은행이 결탁하여 만들어 낸 시스템에 다른 나라들이 복종하도록 만드는 엘리트 집단이다. 마피아들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먼저 호의를 베푼다. 우리의 호의란 상대국이 발전소, 고속도로, 항만, 공항, 산업 단지 등을 지을 수 있도록 차관을 제공하는 것이다. 차관을 제공하는 조건으로 이 모든 프로젝트를 담당하는 업체가 반드시 미국 기업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차관해준 돈은 대부분 미국 국경을 벗어나지 않는다. 다만 워싱턴의 은행에 있던 돈이 뉴욕, 휴스턴, 샌프란시스코 등지에 있는 토목 회사나 건축 회사로 옮겨 갈 뿐이다.


돈은 다른 나라에 건네지는 즉시 기업 정치 구조의 한 축을 이루고 있는 미국 기업(채권자)으로 흘러 들어가지만, 돈을 빌린 나라는 원금에 이자까지 더해서 차관을 갚아야 한다. 만일 경제 저격수가 성공적으로 임무를 수행해 내면 엄청난 금액의 돈을 빌린 나라는 몇 년 뒤에 도저히 빚을 갚을 수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이럴 때 우리는 마피아와 마찬가지로 그 나라에 빚을 갚지 못한 대가로 더 많은 것을 요구한다. 가령 유엔에서의 투표권을 장악하거나 그 나라 영토 안에 군 기지를 세우고, 석유 같은 중요한 자원이나 파나마 운하의 통제권 등을 빼앗기도 한다. 물론, 그런다고 해서 채무국의 빚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다만 또 한 나라가 세계 제국의 손아귀에서 놀아날 뿐이다.


오늘날 기막힌 방법으로 제국을 건설해 나가는 미국을 본다면 고대 로마 제국의 백부장도, 멕시코와 페루를 정복한 에스파냐의 정복자도, 심지어 18세기와 19세기에 수많은 식민지를 갖고 있던 유럽의 강대국들까지도 모두 고개를 숙이고 말 것이다. 경제 저격수들은 솜씨가 아주 뛰어나다. 우리 경제 저격수들은 역사를 통해 많은 것을 배운다. 하지만 칼을 사용하지는 않는다. 서로를 구분 짓는 갑옷이나 투구를 착용하지도 않는다. 우리는 드러내 놓고 공식적으로 활동한다. 혹은 사람들이 우리를 받아들이도록 그럴듯하게 포장하기도 한다. 이것이 바로 저격수들의 시스템이 작동하는 원리이다. 이 시스템 자체가 일종의 속임수를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외형상으로는 법의 테두리 안에서 작동하기 때문에 우리는 불법적인 일은 거의 하지 않는다.


우리 경제 저격수들이 실패하면 문제가 더욱 심각해진다. 실패할 경우, 우리가 자칼이라고 부르는 더 사악한 무리가 개입한다. 자칼은 제국이 만들어진 이래로 줄곧 존재해 왔다. 이들은 항상 어두운 곳에 숨어 있다. 이들이 모습을 드러내면 한 나라의 정부가 전복되거나 정부 수반이 우연을 가장한 사고로 사망한다. 만일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처럼 자칼마저 실패하게 되면 더 오래 전부터 전해 내려온 방법이 사용된다. 젊은 미국 군인들을 전쟁터로 내보내 죽고 죽이도록 만드는 것이다.



1부 1963-1971


1971년 1월, 스물 여섯 살이 되던 그 해에 나는 메인에서 경제 전문가로 일해 달라는 제의를 받았다. 스물 여섯 살은 참 많은 의미를 지닌 나이였다. 그러나 확실하지는 않지만 미리 세워 둔 계획에 따라 메인에 들어가게 된 것이라는 느낌도 들었다. 메인은 나를 경제 전문가로 고용했지만 정작 내가 해야 할 일은 그 이상이라는 사실을 금방 알게 되었다. 사실, 내가 메인에서 맡은 임무들은 경제 전문가
의 일이라기보다 제임스 본드의 활약에 가까운 것들이었다.


메인은 법률 용어로 따져 보면 폐쇄 회사라고 할 수 있다. 이천여 명이나 되는 직원들 중 약 5퍼센트가 회사를 소유하고 있었다. 공동 경영자 또는 파트너라고 불린 이들은 다른 직원들이 선망하는 대상이었다. 파트너들은 모든 직원을 지배하는 권력을 갖고 있을 뿐 아니라 엄청난 돈을 벌어들였다. 파트너들은 항상 신중하게 행동했다. 변호사나 심리 치료사를 대할 때와 마찬가지로 컨설턴트가 상담 내용을 공개하지 않기를 바라는 국가 수반이나 기업의 고위급 간부 등이 파트너의 주요 고객이었기 때문이다. 언론 관계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금기 사항이었다. 아니, 언론 관계자들과 대화하는 것 자체가 용인되지 않았다고 말하는 편이 옳을 것이다. 따라서 아서리틀이나 스톤앤드웹스터, 브라운앤드루트, 할리버튼, 벡텔 등 메인의 경쟁사들은 많이 알려져 있었으나 메인에서 근무하는 사람들 이외에는 메인이라는 회사를 잘 알 수 없었다.


나는 경쟁사라는 말에 별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사실 메인이라는 조직은 다른 회사들과 달리 그들만의 독특한 범주에 속하는 회사이기 때문이다. 메인에서 일하는 전문 인력들은 대개 엔지니어였지만, 우리는 장비도 없었고 차고 하나 지어 본 적이 없었다. 메인에서 근무하는 사람들 중 상당수는 군 출신이었다. 그러나 국방부나 다른 군 관련 기관과 계약을 맺고 있는 사람은 없었다. 메인에서 하는 일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업무와 큰 차이가 있었고, 나는 처음 몇 달 동안은 그 회사가 어떤 일을 하는지조차 감을 잡지 못했다. 내가 알고 있었던 한가지는 첫 번째 임무를 인도네시아에서 수행할 거라는 것과 자바 섬의 에너지 공급 계획을 작성하기 위해 인도네시아로 파견되는 열한 명으로 구성된 팀의 일원이 될 것이라는 사실뿐이었다.



2부 1971-1975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그 무렵 나는 너무나 순진했던 것 같다. 여러 면에서 우리는 여전히 제국을 건설하기 위한 더 나은 방법을 보여 줬다. 우리 경제 저격수들은 인도네시아나 에콰도르 등지에서 목표를 달성하고 있었지만, 베트남에서의 실패는 세계 제국이 얼마나 쉽게 낡은 방식에 빠져드는지를 보여 줬다. 제국을 건설하기 위한 구태의연한 방법을 바꾸려면 석유 수출국기구의 핵심 국가인 사우디아라비아가 필요했다. 아랍의 석유 수출 중단 조치로 인해 미국의 태도와 정책에 중대한 변화가 나타났다. 미국 정부와 재계는 아랍의 이런 조치를 더 이상 용인할 수 없다고 결의했다. 미국으로서는 원활한 석유 공급원을 확보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1973년 이후 미국은 안정적으로 석유를 확보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기울였다.


석유 수출 중단 조치로 인해 세계 정치 무대에서 사우디아라비아의 위상이 높아졌고 미국은 사우디아라비아가 미국경제에 끼치는 전략적 중요성을 무시할 수 없게 됐다. 게다가 사상 초유의 오일 쇼크 이후 미국 기업 정치의 필두였던 사람들은 석유를 사들이기 위해 지불한 달러를 미국으로 되가져올 방법을 찾기 위해 고심했고, 사우디아라비아 정부는 넘쳐 나는 돈을 관리할 행정적?제도적 장치가 부족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 역할은 사우디아라비아의 사회 기반 시설에 어마어마한 금액의 돈을 쏟아 부으면 어떤 효과가 나타날지 예측하고 어떻게 돈을 쓸지 계획을 세우는 것이었다. 간단하게 말해서 미국의 토목 회사나 건설회사가 사우디아라비아 개발 계획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한다는 전제 아래 사우디아라비아에 수억 달러의 돈을 투입할 정당한 이유를 만들어 내는 것이었다. 물론 그 일의 주요한 목적은 평소에 하던 일과 달랐다. 전에는 표적이 된 나라가 갚을 수 없을 정도의 부채를 빌리도록 설득하는 것이 목표였지만, 이번에는 상당 금액의 석유 달러가 다시 미국으로 돌아올 방법을 찾는 것이 목표였다. 물론 이 과정에서 사우디아라비아의 경제가 어려움을 겪거나 미국 경제와의 관계가 더욱 복잡해져 미국 경제에 대한 의존성이 커질 수도 있었다. 또 사우디아라비아가 점점 서구화돼 미국 경제와 비슷한 면이 늘어나 미국의 시스템 속에 동화될 수도 있었다.


나는 항상 진정한 목적이 무엇인지 잊지 않았다. 내가 보고서를 쓰는 진짜 목적은 미국 회사에 가능한 한 많은 돈이 돌아가도록 하고 사우디아라비아가 미국에 점점 더 많이 의존하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신규 개발 프로젝트를 거의 모두 달성하고 나면 지속적인 개선과 서비스가 필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마찬가지로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므로 원래 개발을 담당했던 회사에 다시 유지 보수와 개선 작업을 맡기게 된다. 단순한 경제 차원을 넘어서 사우디아라비아가 미국에 의존하도록 만드는 또 다른 요인이 있었다. 석유가 넘쳐나는 이 왕국이 현대화를 추진하면서 나타날 반작용을 경제적인 기회로 활용하는 것이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경제가 발달하면 다른 산업, 즉 아라비아 반도를 수호하기 위한 군사적 역량도 커진다. 따라서 미군을 비롯한 미국의 방위 산업체들이 아라비아 반도를 지키기 위해 필요한 여러 가지 활동에 활발하게 참여하게 되고 사우디아라비아는 다시 한 번 미국과 서비스 및 운영 계약을 체결해야 한다. 이 단계에 이르면 또 다른 종류의 토목 및 건설 프로젝트가 필요해지고 공항, 미사일 기지, 인력 기지 등 다양한 부대시설이 생겨난다.


1974년에 우리가 생각해 낸 계획은 이후 산유국과 협상을 할 때 사용하는 근거가 되었다. 어찌 보면 커미트 루스벨트가 이란에서 최초로 선례를 세운 이래 사우디아라비아에서의 프로젝트가 두 번째 발판을 마련한 것이었다. 이 프로젝트는 세계 제국을 건설할 새로운 부류의 병사들에게 정치적?경제적 무기를 정교하게 사용할 방법을 제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우디아라비아 돈 세탁 프로젝트와 합동 위원회는 국제법 체계와 관련하여 새로운 선례가 되었다. 그러나 사우디아라비아가 국제 테러 조직을 재정적으로 지원한 일은 매우 민감한 사안이었으며, 결국 치명적인 결과를 낳았다. 1980년대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일어나자 미국은 오사마 모하마드 빈 라덴이 소련에 대항하여 싸울 수 있도록 사우디아라비아 왕가가 재정 지원을 해 주기를 원했고, 사우디 왕가와 미국 정부는 이슬람 게릴라에게 35억 달러를 제공했다.


2001년 9월 11일 세계무역센터와 펜타곤이 공격당하고 나서 미국 정부와 사우디아라비아 왕가 사이의 은밀한 관계를 밝히는 증거들이 속속 드러나기 시작했다. 나는 부시 일가와 사우디 왕가, 빈 라덴 일가의 관계를 폭로한 기사를 보고도 전혀 놀라지 않았다. 이들의 유착 관계는 사우디아라비아 돈세탁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던 1974년, 조지 H. W. 부시가 미국 유엔 대사(1971~1973년) 및 미 중앙 정보국 국장으로 재직했던 기간(1976~197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나는 그 사실 자체가 아니라 정작 그 사실이 마침내 폭로되었다는 점에 놀랐다.



3부 1975-1981


나는 1975년과 1978년 사이에 이란을 자주 방문했다. 남미나 인도네시아와 테헤란을 오간 적도 몇 번 있었지만, 왕중왕(Shah of Shahs)이라고 불리는 이란 국왕이 제시한 상황은 그동안 우리가 일해 왔던 나라들과 너무나 달랐다. 이란은 사우디아라비아와 마찬가지로 산유국이었으므로 야심 찬 프로젝트들을 실행하기 위해서 외채를 빌릴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사우디아라비아와 달리 이란 국민의 상당수는 아랍 계가 아니라 중동 출신 이슬람교도들이었다. 게다가 이란의 역사는 나라 안팎의 정치적 혼란으로 점철되어 있었다. 따라서 여느 때와 다른 접근 방식이 필요했다. 미국 정부와 재계는 힘을 모아서 이란의 국왕을 진보의 상징으로 변모시키기로 했다.


우리는 미국의 정치적?경제적 이익을 수호하는 동시에 민주적이고 강인한 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 것을 이루어 내는지 세상에 널리 알리기 위한 계획을 세웠다. 사실 왕중왕이라는 칭호에서 벌써 비민주적인 성향이 뻔히 드러나는 데다, 미 중앙 정보국이 당시 국왕을 왕좌에 앉히기 위해 민주적 방식으로 선출된 총리를 몰아내고 쿠데타를 일으킨 것만 보더라도 이란 국왕이 민주적이라고 믿어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당시로서는 이런 사실들이 그리 문제되지 않았다. 메인은 북쪽 카스피해 연안 관광지부터 남쪽 호르무즈 해협 주위의 군사 기밀 시설에 이르기까지, 이란 전역에서 진행되는 수많은 프로젝트를 담당하고 있었다.


1978년 어느날 저녁, 테헤란에 있는 인터콘티넨털 호텔에서 우연히 만난 이란인 대학친구 파라드의 권유로 나는 갑작스럽게 이란을 떠나야 했다. 그리고 이틀 뒤 나는 이란에서 폭파 사건과 폭동이 연이어 일어났다는 비보를 접했다. 호메이니와 다른 율법학자들은 공세를 취하며 주도권을 잡았다. 상황이 급격히 변해 갔다. 파라드의 아버지가 설명했던 분노가 마침내 폭발하여 이슬람교도들이 봉기를 일으켰다. 국왕은 1979년 1월 고국을 버리고 이집트로 달아났다. 메인은 이란에서 수백만 달러나 손해를 봤다. 경쟁사들도 마찬가지였다. 카터는 재선에 실패했다. 대신 레이건과 그의 러닝메이트 부시가 인질들을 구출하고 율법학자들을 타도하여 이란에 민주주의를 세울 것이며, 또 파나마 운하를 원래대로 되돌려놓겠다고 약속하며 백악관으로 입성했다.


나는 이 사건에서 커다란 교훈을 얻었다. 이란 사건을 통해 미국이 세계 무대에서 스스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또 그 진실을 회피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가 여실히 드러났다. 게다가 비단 국왕뿐 아니라 국왕에 맞서 싹튼 거대한 증오심에 관해서도 어떻게 그토록 잘못된 정보만 믿고 까맣게 모를 수 있었는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 나라에 사무실을 세우고 인력을 파견하고 있는 메인 같은 회사에서 일하는 우리조차 진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는 사실을 믿기 힘들었다. 국가안전보장국과 중앙정보국은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분명히 알고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미국의 정보기관들은 의도적으로 우리 모두가 진실을 외면하도록 만들었던 것이다.



4부 1981-현재


1980년대에 대다수 미국인들은 이라크라는 나라에 관해 거의 알지 못했다. 일반 대중들에게는 정보가 알려지지 않았지만 나는 이라크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 관심이 많았다. 나는 이라크에서는 경제 저격수들이 일하기가 어려울 거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레이건 행정부와 부시 행정부는 이라크를 사우디아라비아처럼 변모시키려고 했다. 사담 후세인이 사우디 왕가의 선례를 따를 거라는 주장은 설득력이 있었다. 후세인이 사우디 왕가가 돈 세탁 프로젝트를 통해 얼마나 많은 이윤을 얻었는지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사우디 사람들이 국제법과 관련해서도 특별한 대우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사담 후세인이 몰랐을 리 없다. 미국 정치인들은 거의 테러에 가까운 급진주의 단체라고 여겨지는 광적인 집단들에 사우디 사람들이 돈을 대 주거나 도망자들을 숨겨 줘도 눈을 감아 줬다. 사실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의 오사마 빈 라덴이 소련에 맞서 전쟁을 벌였을 때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재정적인 지원을 하도록 적극적으로 도와줬다. 레이건 행정부와 부시 행정부는 비단 사우디아라비아 왕가가 돈을 지원하도록 부추겼을 뿐 아니라, 다른 나라들에 도 압력을 행사하여 자금을 지원하거나 혹은 모르는 척하도록 만들었다.


1980년대에는 경제 저격수들이 바그다드에서 눈부신 활약을 펼쳤다. 이들은 사담 후세인이 결국 사우디아라비아의 선례를 따를 것이라고 생각했고 나도 그렇게 믿었다. 만일 이라크가 사우디아라비아와 비슷한 조건으로 미국 정부와 거래한다면 사담 후세인은 이라크를 통치할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자신의 영향력을 더욱 키워 갈 수 있었다. 이라크는 미국에게 너무나 중요한 나라였다. 겉으로 드러나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했다.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 달리, 석유가 전부는 아니었다. 물과 지정학적 요인도 함께 작용했다. 오늘날, 이라크를 갖는 사람이 중동 지역을 지배하게 된다는 것도 누구나 알고 있는 기정 사실이다. 무엇보다 이라크는 미국의 기술과 전문 지식을 팔아먹기에 훌륭한 시장이었다. 이라크가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유전 위에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을 고려해 보면 이라크는 엄청난 돈이 들어가는 사회 기반 시설에 자금을 조달하고 산업화를 위해 돈을 투자할 능력이 충분했다. 그러나 1980년대 말 사담 후세인이 경제 저격수가 제시하는 시나리오를 받아들일 가능성이 없다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부시 행정부로서는 몹시 좌절스럽고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2003년 내가 에콰도르에서 돌아온 직후, 미국은 십여 년 만에 두 번째로 이라크를 침공했다. 경제 저격수와 자칼이 모두 실패했다. 그래서 미국의 젊은 남녀들을 보내 적을 죽이거나 사막의 모래 위에서 죽어 가도록 할 수밖에 없었다. 이 침공을 통해 떠오르는 중요한 의문이자 대다수 미국인들은 생각조차 하지 못할 의문은, 이번 이라크 침공이 사우디 왕가에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하는 것이다. 사우디아라비아보다 더 많은 석유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이라크를 점령하면 미국은 1970년대에 사우디아라비아 돈세탁 프로젝트를 통해서 사우디 왕가와 맺은 협정을 더 이상 지킬 필요가 없어진다. 사실 미국이 세계 제국으로 커 갈 수 있었던 이유 가운데 상당 부분은 달러가 세계의 화폐로 인정받고 있으며 미국이 그 달러를 찍어낸다는 사실이다.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미국은 재정이 바닥나지 않을까 걱정해야 한다. 그러나 미국은 지금 정상적인 환경 속에 놓여 있지 않다. 달러를 찍어 낼 수 있다는 사실은 미국에게 엄청난 권력을 준다. 그러나 다른 화폐가 달러를 대신하게 되거나 중국이나 일본 등 미국의 채권국이 부채를 갚을 것을 요구하면 상황은 급변할 것이다. 미국은 순식간에 위태로운 상황에 놓일 것이다.


진실은 미국인들이 모두 거짓된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메인에 있던 내 이력서와 마찬가지로 미국인들은 덮개를 만들어 표피 밑에 숨어 있는 악성 종양을 숨기고 있다. 통계라는 엑스선을 사용하면 이 종양들이 모두 드러난다. 통계치를 보면 역사상 가장 강력하고 부유한 이 제국은 자살, 약물 남용, 이혼, 아동 성추행, 강간, 살인율이 터무니없이 높으며, 악성 종양과 마찬가지로 이런 불행들은 해를 거듭할수록 널리 퍼지고 있다. 이 모든 것이 음모 때문이라고 비난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래서는 안 된다. 제국은 기업 정치를 지탱하는 대형 은행, 기업, 정부가 만든 것이지 음모 때문에 나타난 것이 아니다. 미국인들이 기업 정치를 만들어 냈으며 기업 정치가 바로 미국인 자신들이다. 그래서 기업 정치에 맞서 싸우지 못한다. 왜 나는 올바르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이 시스템에서 벗어나지 못했을까? 어떻게 하면 우리 아이들에게 탐욕스럽고 이기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불쌍하게 여기도록 할 수 있을까? 내 태도와 생각을 바꾸기 위해 어떤 일을 해야 할까?


요즘 같은 시대에 이런 질문들은 매우 중요하다. 우리는 모두 이 질문들에 자신만의 방식대로 명확하고 뚜렷하게 대답해야 한다. 이 시간은 우리 것이다. 우리 모두 전선으로 달려나가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자신만의 답을 찾아 영혼을 들여다보고 행동을 취할 때이다. 우리는 인생의 우연들, 그리고 그 우연들에 대처하기 위해 우리가 내린 선택에 의해 지금 이 자리에 서 있다.

?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