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다윗의 군대가 시대에 뒤처진 비즈니스 모델을 벗어던지고, 어떻게 새로운 지구를 만들고있는지를 보여준다. 전 세계적으로 불고 있는 문화 변화의 원동력을 똑바로 이해하는 데 필요한 정보를 제공한다. 저널리즘과 오락, 국토안보와테러방지, 제조업과 과학연구에 이르는 사회 각 분야에서 기술이 어떻게 보통 사람들에게 힘을 실어주었는지, 장차 기술이 세상에 어떤 영향을 미칠것인지에 대해 재기발랄하면서도 심도 깊게 통찰한다.
업그레이드되는 컴퓨터와 그 주변 환경 속에서 발 빠르게 적응하며 진보하고 있는 개인들과변화하는 세상에 대해 아이디어를 얻고, 전세계적으로 불고 있는 문화 변화의 원동력을 똑바로 이해하는 데 유익한 정보와 통찰을제공한다.
■ 저자 글렌 레이놀즈
테네시 주립대학교 법학과 교수인글렌 레이놀즈는 최고의 블로그로 손꼽히는 인스타펀딧을 맡고 있는 뛰어난 블로거이기도 하다. 「TCS데일리」의 기고 편집자이며,「뉴욕타임스」「파퓰러미캐닉스」「워싱턴포스트」「월스트리트저널」, 살롱닷컴, 어브 등 각종 매체를 통해 글을 발표하고 있다. 또한 『우주 : 법과정책 문제』와 『윤리전쟁이 빚은 폐해』의 공동 저자이기도 하다.
■ 역자 곽미경
이화여자대학교 통·번역대학원을 졸업하고현재 전문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미 국가안보국 NSA』『바디블루스』『데카르트의 아기』,개성의 탄생』 등의 책을 번역했다.
■ 차례
서문 - DIY 열풍이 불고 있다
1장 개인이 힘을 갖게 되다
분업과 장악 | 대규모사업의 그늘 | 데스크톱 혁명 | 잃어봤자 칸막이 책상이 전부
2장 이제 작은 것이 큰 것이다
안락의자에 앉은노동자 | 장밋빛 미래 | 딜버트의 몰락? | 서비스를 받고 계신가요?
3장 구매하는 곳이 아니라 머무는 곳이다
안전하고안락한 공공장소 | 스타벅스에 메일 좀 보내주세요 | 매력이 관건이다 | 쇼핑의 자유?
4장 함께 만들어봐요, 아름다운 음악을
쉽고 저렴하게듣기 좋은 음악을 | 한 번의 클릭으로 이루어지는 거래 | 애플도 출발점은 차고였다 | 살진 고양이를 경쟁에서 보호해야 하나
5장 무리가 아니라 공동체다
전자해적의 시대 | 가장강력한 것은 학습곡선이다 | 국가의 몫을 대신하는 시민들 | 전문가에게만 맡겨서는 안 된다 | 아마추어의 열정과 끈기 | 불씨 지키기
6장 미디어에서 위디어로
다윗의 돌팔매와 화살 |지름길의 대가 | 임시변통 저널리즘 | 웹 세상에 ‘공유지의 비극’은 없다
7장 권력역학이 변하고 있다
평범한 사람들이 이룬혁명적 현실 | 수평적 지식의 물살 타기 | 빅 브라더 vs. 호송차 | 우리가 보고 있다
8장 가상세계는 경험의 범위를 확장시킨다
엑스박스전사들 | 괴짜들은 군사 지식을 좋아한다 | 컴퓨터게임에서 모든 것을 배우다 | 아이들은 괜찮다
9장 신기술로 유토피아를 꿈꾸다
“햇빛과 흙만으로”| 무시무시하거나 불가능해 보이거나 | 문제는 사람들에 대한 불신이다 | 나노기술이 편재하는 세상
10장 만수무강하소서!
숙녀 여러분, 돈 주앙옹을소개합니다 | 은퇴라니! | 불멸에 관한 인터뷰
11장 우주는 더 이상 정부의 전유물이 아니다
주요쟁점들 | 별 속에 파묻히다 vs. 서류더미에 파묻히다 | 더 많은 바구니에 더 많은 달걀을 | 화성이 아니면 죽음을! | 내 행성이니 못내어놓겠소이다 | 화성헌법 | 떠오르는 붉은별? | 우주의 골리앗 | 미래의 우주
12장 우리는 모두 슈퍼맨이다
기술의 진보를 막을수는 없다 | 더 이상 미래가 아니다
결론 - & 장밋빛 미래를 꿈꾼다
이베이 국가 | 아마추어의 힘 | 수평정치| 자신을 표현하라 | 특이점의 도래 | 하나로 연결된 세상 | 우리가 아는 세상
다윗의 군대, 세상을 정복하다
이제 작은 것이 큰 것이다
산업혁명 이전에는 장인들이 집안에서 혹은 집에 달린 일터에서 일을 했기 때문에 아이들이 이를 지켜보거나 돕는 일이 많았다. 그러나 산업혁명 이후 일꾼들은 공장으로 격리되었고, 이곳의 특수설비는 신기술과 그로 인해 가능해진 규모와 범위의 경제의 혜택을 보았다. 대장장이들은 소량으로 강철제품이나 철제기구를 생산했지만 주조장에서는 보다 나은 솜씨로 보다 싼 가격에 이를 생산해 냈다.
이러한 변화의 결과가 사회에 층층이 반향되었다. 물론 노동자들이 멀리 떨어진 공장에서 시간엄수라든가 조직의 명을 이행하는 능력 따위의 기술을 배우는 동안 아이들에게도 어떤 조처가 필요했다. 이는 두 가지 중대한 변화로 이어졌다. 먼저 예전에는 그저 가정사의 일부에 불과했던 육아가 이제는 전적으로 여성들의 몫이 돼버렸다. 그리고 아이들 역시 집에서 분리되어 대규모 ‘교육 공장’으로 들어갔다. 누가 봐도 공장과 조립라인을 모방한 듯한 공립학교는 점차 틀이 잡혀가고, 학생들은 제품으로 여겨졌다. 더욱이 학생이라는 제품은 장차 훌륭한 공장 노동자로 거듭나기 위한 과정을 밟았다.
대체로는 좋은 일이었다. 산업화의 방식들은 이들이 대체한 방식보다 더 잘, 그리고 더 빨리 업무를 수행했기 때문에 우위를 점했다. 그리고 그 덕에 모든 사람이 부유해지고 전반적으로 더 자유로워졌다. 반면 이러한 변화에 뒤이어 가족과 일터, 그리고 동네에 이르는 사회가 총체적인 변화를 맞았다. 단순히 과거에 비해 뛰어난 업무수행을 위해서가 아니라 새로운 근무환경에 적응해 살아남기 위한 방편이었다.
안락의자에 앉은 노동자
랩탑 컴퓨터와 무선네트워크 덕분에 나는 예전보다 자주 집에서 일을 한다. 집안 여기저기서 일을 한다. 딸아이가 인형놀이를 하거나 숙제를 하는 동안 의자에 앉아서 일을 하는 경우도 자주 있다. 그 아이는 내가 아버지와 보냈던 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을 나와 함께 보낸다. 내가 집에서 일을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기술의 발달로 상당수 업무를 집에서 처리하는 것이 용이해지면서 상당수 사람들이 똑같은 전철을 밟고 있다. 대니얼 핑크가 ‘프리에이전트 국가’라고 일컬은 그 길을 우리가 얼마나 왔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일부 직종이 여타 직종에 비해 가내업의 여지가 좀더 많은 것도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리고 버지니아 포스트렐이 암시한 대로, 앞으로는 보다 많은 직종이 미적인 요소(가내업에 부합하는 일)를 갖게 된다면 그러한 추세는 더욱 가속화될지도 모른다. 나노기술과 더불어 컴퓨터응용설계(CAD)에서의 새로운 진보 역시 그러한 추세에 보탬이 될 것이다.
이러한 추세가 사회 전체를 어떻게 변모시킬까? 물론 학교에서도 이러한 동향에 맞게 아이들에게 새로운 직업교육을 시켜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일부에 불과하다. 새로이 얻은 자유와 융통성은 정치적 사안에도 변화를 불러온다. 자영업자들은 관료적 형식주의와 세금을 혐오하는 경향이 뚜렷하지만. 반면 제프 자비스의 지적대로 규모가 큰 기업이 아니고서는 의료보험 등의 혜택을 보장받기 어렵기 때문에 이들의 정치 성향이 민주당 쪽으로 좀더 기울지도 모른다.
서비스를 받고 계신가요
물론 인터넷말고도 작은 것이 큰 것이 될 수 있는 길이 있다. 많은 부와 물질을 소유한 사람들은 서비스 구매에도 관심이 많다. 세탁 서비스처럼 시간을 벌어주는 구매가 있는가 하면 온천욕과 같이 특별한 경험을 시켜주는 구매도 있다. 이러한 서비스는 한때 사람들이 구매했던 재화의 대체물일 수도 있고 재화에 달린 서비스일 수도 있는데, 특히 후자의 경우가 미래의 주류를 이룰 물결이다. 그리고 재화를 구입함으로써 받는 서비스도 있다.
지금까지 나는 타깃, 콜스(중저가인 월마트와 고급품을 지향하는 메이시 사이의 시장을 겨냥한 매장-옮긴이), 슈 웨어하우스 등의 대형 할인매장을 돌아다니며 열 살배기 딸아이에게 구두를 사준 경험이 많다. 그 아이가 어렸을 때는 별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아이가 자라면서 아이의 입맛을 맞추기가 까다로워졌다. 아이가 맘에 들어 하면서 발에도 잘 맞는 구두를 찾는 일(현재 그 아이의 발 사이즈를 딱 맞추는 것은 더 어렵다)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어느 날 토요일 하루 날을 잡아 1920년대부터 옛날 방식으로 구두를 판매하는 것으로 유명한 녹스빌의 코핀즈 슈즈 매장을 찾았다. 척 보기에도 매장에서 일한 지 꽤 됐을 법한 친절한 점원이 아이의 발 치수를 재고, 어떤 신발이 편한지 알아볼 요량인지 각기 다른 모양의 ‘구둣골’로 만든 신발을 몇 켤레 신겨보았다. 그런 다음 안쪽으로 사라지더니 그가 신발을 산더미처럼 들고 다시 나타나 신어보라는 것이었다.
딸아이와 나는 그 신발들을 일일이 살피는 데 30여 분을 소비한 후에야 딸아이가 “지금까지 제일 맘에 드는 신발”이라고 이야기한 새 구두 두 켤레를 들고 매장을 나올 수 있었다. 게다가 딸아이는 신발이 아주 편하다고 이야기했다. 물론 타깃에서 파는 구두보다 가격은 비쌌다. 똑같은 구두였더라도 비쌌을 것이다. 하지만 타깃에서라면 이런 서비스는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뉴욕타임스」에 실린 포스트렐의 칼럼에서 그녀는 미국인들이 서비스의 소비는 늘리고 상대적으로 재화의 소비는 줄이는 추세라고 지적한다. “경제에 관한 논쟁을 귀담아 들어보면, 미국인들이 그다지 물질적이지 않다는 점이 문제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라고 그녀는 적고 있다. 이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인가 여길 것이다. 이 말은 현실과 어떻게 부합하는가. 사실은 꽤 간단하다. “우리는 외식과 유흥, 여행 그리고 건강에는 너무 많이 소비하고, 냉장고?볼베어링?청바지?자동차에는 충분히 돈을 쓰지 않는다.(…) 소득이 증가하면서 미국인의 소비는 무형의 자산에 보다 많은 비중을 두고 재화에는 상대적으로 덜 치중하게 되었다. 그 결과 호텔과 헬스클럽과 병원에는 새로운 일자리가 많이 생겨났지만 공장에는 일자리가 줄어들었다.” 포스트렐에 따르면, 1959년에서 2000년까지 미국인이 서비스에 들인 소득의 비율은 40퍼센트 가량에서 58퍼센트로 증가했다고 한다. “이 수치는 이러한 추세를 줄잡아 말한 것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경우 재화와 서비스는 일괄적으로 따라오기 때문이다.”라고 포스트렐은 말한다.
실제로 내가 구둣가게에서 산 것이 바로 이런 일괄적으로 제공되는 재화와 서비스다. 타깃 같은 곳에는 이런 일괄 제공이 없다. 재화는 얻지만 서비스라는 측면은 빈약하다. 월마트나 코스트코는 더더욱 그렇다. 나는 구시대적인 방식으로 운영하는 구둣가게에서 구두를 샀다. 그 과정에서 나는 서비스를 위한 여분의 비용을 치렀고 그 돈의 가치만큼 얻었다. 이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단순히 TV를 사는 대신 마사지에 돈을 쓰기로 하는 것 이상의 무언가가 있다. 소비자들이 총체적인 구매에 더욱 흥미를 갖게 되면서 다소 저렴한 가격에 훨씬 미비한 서비스라는 전략을 취하는 대형 할인매장이 갖는 매력이 떨어질 수도 있다. 그리고 그 대신 점원들이 제품과 고객을 동시에 파악하고 배려하는 구시대적인 전문매장이 지닌 매력이 다시 부상할지도 모른다.
무리가 아니라 공동체다
불행하게도 기술은 선한 사람뿐 아니라 악당의 역량도 배가시킨다. 테러리스트의 경우만 봐도 그렇다. 신형 폭발물, 컴퓨터, 그리고 통신장비의 발달은 개인이나 소규모 단체가 끼칠 수 있는 피해를 확대시킨다. 반면에 기술은 우리 같은 일반 시민들이 이러한 위협에 맞서 더 잘 대처할 수 있도록 하는 방편이기도 하다. 이 등식의 양변을 다루는 일은 21세기의 커다란 도전과제가 될 것이다. 그런데 현재로서는 그 일을 썩 잘 처리하고 있지 못하는 듯하다. 정부는 이러한 능력을 자신에게 귀속시키고 싶어한다. 게다가 정부는 소규모 접근방식에 능한 편이 아니다. 정부 입장에서는 언제나 큰 것이 더 나은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공격이나 재난에 대응할 때는 정부보다 개인이나 소규모 단체가 훨씬 순발력 있다. 현장의 아마추어들은 정부에게는 없는 커다란 이점을 지니고 있다. 바로 현장성이다. 어떤 상황, 어떤 입장을 막론하고 말이다.
전자해적의 시대
알카에다와 여타 이슬람 테러 단체들이 웹을 최대한 활용한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일부 웹사이트는 라디오방송국이 적진의 스파이들에게 암호메시지를 방송할 때와 똑같은 방식으로 암호메시지를 보낸다. 새로운 요원을 모집하고, 선전문구를 퍼뜨리고, 자금을 끌어 모으는 데 일조하는 웹사이트도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기능을 한꺼번에 수행하는 웹사이트도 있다.
미국의 여러 정부기관들도 정보를 수집하고 적의 신원을 파악하기 위해 이들 웹사이트를 주시하고 있다는 데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그들만이 아니다. 실제로 놀랄 만큼 많은 일반 시민들이 여기에 동참해 왔다.
웹사이트 감시를 하면 아무리 못해도 돌아가는 정황은 파악할 수 있으며, 웹사이트 해킹은 테러범이나 테러를 꿈꾸는 사람들이 그들의 웹 운영에 차질이 빚어진 것은 아닌지 끊임없이 노심초사하도록 만들 수 있다. 두 가지 행동 모두 테러범과 그 지지자들에게 훨씬 더 많은 부담을 안겨주고 있음은 물론이다. 이러한 행동이 정부기구에서 하는 일과 어떻게 다른지는 잘 모르겠다. 아마도 우수한 장비를 갖춘 노련한 정부 해커들이 훨씬 정교한 작전을 수행할 것이다. 하지만 존 데이비드의 일화는 그렇지도 않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데이비드가 FBI에 접근해 자신이 알카에다의 웹사이트를 포착했다고 이야기하면서 협조의 뜻을 내비쳤을 때 FBI의 반응은 냉담했다.
그나마 희소식은 부시 행정부가 창의력이 뛰어난 개인이 법집행기관의 전통적인 방식을 보완할 수 있으리라는 사실을 조금이나마 깨달아가는 듯 보인다는 점이다. 백악관 컴퓨터안보 보좌관으로 재직하던 시절, 리처드 클라크는 화이트햇 해킹을 공개적으로 장려하면서 검찰 기소나 소송으로부터 선의의 해커들을 보호하는 데 필요한 법적인 변화를 추진했다. 특히 평판을 우려해 결함을 지적하는 사람들을 되레 처벌하는 소프트웨어 업계의 관행에 비추어보면 더욱 그러하다. 하지만 클라크의 주된 관심사는 아군 시스템을 조사해 취약점을 찾아내는 일이었다. 그의 후임자가 그만큼 협조적인지 모르겠다.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선의의 해커들이 지닌 에너지와 혁신 기술에 바탕을 둔 테러 대항 프로그램이다. 테러는 신속하고 탈중심적인 위협이다. 그러므로 그만큼 신속하고 탈중심적인 대응만이 효과적이다. 관료주의는 못하지만 일반인들은 이야기가 다르다.
불씨 지키기
스티브 스털링의 신작 소설 『암흑의 세상(Dies the Fire)』을 읽고 있다. 물레바퀴나 석궁보다 정교한 기술을 지닌 물건은 모두 하나같이 작동을 멈춰버린다는 내용의 소설이다. 스털링의 소설에서는 물론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지만 문명은 살아남는다. 소설 속 주인공들은 창조적시대착오학회(the Society for Creative Anachronism: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의 삶과 문화를 연구하는 비영리 교육단체-옮긴이)와 ‘땅으로 돌아가자’를 외치는 히피운동 등에서 터득한 지식밖에 의지할 것이 없는 처지였다. 그런데 나는 실제로 이러한 기술을 지닌 사람들을 상당수 알고 있다. 그리고 그 수는 훨씬 많을 것이다. 로마군을 재현한 제24군단의 웹사이트를 살펴보라. 노포(弩砲: 여러 개의 화살을 한꺼번에 쏘는 활의 한 가지-옮긴이)에 관한 웹페이지도 검색해 보라. 기술 진보와 더불어 과거의 혁신 기술에 대한 관심도 증가하는 듯 보인다.
왜 그런가? 왜 하필 괴짜들이 구시대 기술에 매혹되는가에 대해서는 문화적 설명이 존재하겠지만, 괴짜들이나 공상과학소설 팬들의 모임 어디를 가도 무기에서 갑옷, 양조에서 포도재배, 항해에서 농사에 이르는 과거의 기술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넘쳐난다. 취미삼아 이런 것들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비단 괴짜들만은 아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고대 기술에 흥미를 느끼며 남는 시간과 돈을 투자한다.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이 딱히 지금은 별 쓸모가 없는 온갖 종류의 기술을 익히게 되었다. 여기에는 옛날 기술만이 아니라 천문학이나 미지의 언어와 같은 현대적 기술도 포함된다. 언젠가 쓸모 있게 될지 누가 알겠는가.
진짜 교훈은 이것이다. 우리가 이처럼 다양한 기술을 지니게 된 것은 사회가 그만큼 부유하고 자유로워져 여가 선용의 기회가 생겼기 때문이다. 그 어떤 그럴 듯한 정부 프로그램도 스털링이 묘사하는, 있을 법하지 않은 이런 사회 변화에 적절히 대처하도록 만들 수는 없다. 그러나 만약 로리카 세그멘타타(lorica Segmentata: 로마군단병의 갑옷-옮긴이)를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 오면 그 일을 할 사람이 나타난다. 사실 자유시장의 경이로움 덕택에 사람들은 이미 정부의 도움 없이 자체적으로 자금을 조달하고 있다.(일례로 앨비온 무기 웹사이트에 들어가 보면 로리카 세그멘타타나 날이 넓은 칼을 기꺼이 팔려고 들 것이다. 그것도 상당량을.)
부유하고 자유로운 사회에는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자력으로 다양한 기술을 개발하는 시민들이 있기 마련이다. 이러한 기술은 기술 보유자들에게는 취미거리 이상이 아니지만 사회 전체를 놓고 보자면 어떤 정부 프로그램도 쉽게 개발할 수 없는 자원이다. 그리고 이 역시 일종의 재난 대비책이 된다. 무리에게는 없는 대비책 말이다. 물론 간혹 공동체가 아니라 무리가 되어 약탈자의 불명예스러운 행위(스스로 대비하거나 대피하지도 이도저도 않으려는 칭찬받지 못할 행동)로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휩쓸고 간 뉴올리언스에서의 처참한 결과를 빚어내기도 한다. 기술과 자원과 공공심을 지닌 시민들은 대부분 대피했고, 도시에는 이 중 그 어느 것도 갖지 못한 사람들만이 남아 있었다. 이러한 상황은 정부나 다른 누군가가 만든 사회기반시설도 큰 몫을 한다는 점을 분명히 드러내준다. 사람들은 흔히 스스로 나서서 조직을 구성하지만 상황마다 차이는 있다.
이러한 자가 조직은 공동체 유대가 강한 동네에서는 분명 생겨난다. 일례로 프랑스인 지구의 주민들은 ‘부족’을 형성해 자신들에게 불어닥친 고난을 이겨내는 데 필요한 일거리들을 분담했다. 연합뉴스에 실린 발췌기사는 이러한 비공식 단체들의 활약상이 얼마나 효과적이었는지 말해준다.
일부 사람들이 씻기 위해 강가로 내려간 사이 나머지 사람들은 남아서 가재도구를 지켰다. 술집에서는 바텐더가 강도 피해자의 찢어진 귀를 완벽에 가까운 솜씨로 꿰맸다. 도시 대부분을 삼켜버린 진창에서 곰팡이와 병균이 증식하는 사이 가장 퇴폐적인 이 미국 동네에서는 무언가 다른 것이 싹트기 시작했다. 바로 인간미다. “짐승으로 돌변해 버린 사람도 있지요.” 토요일 아침 버번가의 조니화이트 스포츠바에서 뜨거운 맥주를 홀짝거리며 바실리오아스 트리포나스가 한마디 던졌다. “하지만 우리는 한 단계 더 문명화되었습니다.”
프랑스인 지구 주민들의 경우, 이미 터를 잡은 지역사회에 대한 충성심과 주민들끼리의 친밀감 덕분에 일이 수월했다. 마찬가지로 휴스턴에서는 허리케인 리타가 휩쓸고 지나간 다음 무장한 시민들이 무리를 조직해 약탈행위를 막기도 했다. 일반적으로 부유한 사회의 상호 신뢰와 협동심이 빈곤한 사회보다 강하다. 그러나 신뢰와 협동심은 그 자체로 미덕일 뿐 아니라 모든 종류의 재난, 특히 지금 이 순간 누구도 예측하지 못하는 문제들로부터 사회를 보호해 주는 원동력인 만큼 어느 곳에서나 키워나가야 할 자질이다.
신기술로 유토피아를 꿈꾸다
신기술은 개인에게 힘을 부여한다. 그리고 그 궁극에는 상당히 과장되긴 했지만 그래도 중요성은 여전한 분자 단위의 제조기술인 나노기술과 컴퓨팅 기술이 꼽힌다.
나노기술은 나노미터, 즉 1미터의 10억 분의 1에서 유래된 이름으로 원자와 분자 단위에서의 물질 조작을 가리킨다. 나노기술의 바탕 개념은 간단하다. 지상의 모든 물질은 원소의 가장 작은 입자인 하나 혹은 그 이상의 원자로 된 분자로 구성된다. 물질을 구성하는 분자와 그들의 상호작용은 곧 그 물질의 모든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개개의 원자와 분자를 조작하여 특정한 배열로 결합시킬 수 있다면 바라는 것은 무엇이든 만들 수 있다는 뜻이 된다.
무시무시하거나 불가능해 보이거나
최근 나는 나노기술에 대한 논의가 이뤄진 EPA 과학자문위원회회의(EPA Science Advisory Board)에 참석했다. 나는 여기서 그저 따라가기에도 급급한 나 같은 사람들이 봐도 나노기술 연구가 매우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 회의석상에서 「국가 나노기술계획서: 차세대 산업혁명을 뒷받침해 주는 연구 및 개발」이라는 제목의 대통령 예산요구서의 첨부자료가 배포되었다.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박테리아의 세포막에 구멍을 뚫어 박테리아를 죽이는 펩티드[고리] 나노튜브」에 관한 보고서였다. 이것은 일종의 기계로 된 항생물질이라고 보면 되는데, 보고서는 “이러한 고리를 만드는 데 이용되는 펩티드 유형을 제어하여, 숙주의 세포에 해를 가하지 않고 박테리아의 세포막만을 골라서 구멍을 뚫는 나노튜브를 설계할 수 있다”라고 적고 있다. 그리고 뒤이어, “이론상으로 이러한 나노바이오 약제는 기존의 항생물질보다 박테리아의 내성 형성이 훨씬 덜하다”라고 지적한다. 게다가 그러한 내성이 나타난다고 하더라도 대항하기가 훨씬 용이하다고 한다. 재래식 항생물질에 대한 내성이 폭발적으로 증가한 사실을 감안하면 희소식이 아닐 수 없다.
오염된 지하수 정화에 철 나노입자를 사용하는 사례도 있다. 오염물질 트리클로로에틸렌(TCE)을 겨냥한 어느 실험에서 이 나노입자가 보인 결과는 꽤 인상적이었다. “연구원들은 공단지역에서 선보인 현장 실습에서 트리클로로에틸렌이 함유된 지하수에 나노입자를 주입해 오염수치를 96퍼센트까지 감소시켰다”고 적고 있다. 계속해서 보고서는 “염소화탄화수소, 살충제, 폭발물, 폴리염화바이페닐(PCB)과 과염소산염을 비롯한 다양한 오염물이 실험실 테스트와 현장테스트 모두에서 성공적으로 분해되었다”고 전한다. 괄목할 만한 성과다. 여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특정 세균과 화학물질을 판별해 내는 나노센서와 나노모터의 개발, 그리고 소재에 있어서의 극적인 진보는 하나같이 과소평가될 수 없는 것들이다.
자주 잊어버리는 경향이 있는데, 기술은 정점에 도달하기 전에 이미 혁명적인 성과를 거두기도 한다. 일례로 고강도 소재의 영향력은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깨닫고 있는 것보다 훨씬 클 가능성이 크다. 재료공학은 말하자면 로봇처럼 매력적이지는 않지만 항공기나 우주선, 심지어 자동차를 열 배 혹은 열다섯 배 정도로 무게를 줄이거나 강도를 높인다면 그 결과가 어떨지 상상해 보라. 세균을 재빨리 죽이거나 탐지해 내는 일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종류의 일은 실질적인 분자제조기술만큼 자극적이지도 혁명적이지도 않지만, 다른 것들과 비교해 여전히 중요하고 여전히 혁명적이다.
과학자문위원회에서 강연을 하는 자리에서 나는 나노기술을 다음의 범주로 세분화했다.
?사기 부문 : 나노 바지에서 보듯 마케팅 용어에 불과한 분야
?단순 부문 : 고강도 소재, 센서, 코팅재 등 중요하긴 하지만 매력적이지는 않은 분야
?주요 부문 : 진짜 조립기에는 못 미치는 첨단 소재
?무시무시한 부문 : 조립기와 그 관련 기술.(햇빛과 흙으로 무엇이든 만들어낼 수 있는, 각설탕보다 작은 슈퍼컴퓨터를 생산해 낼 수 있는 진짜 분자나노기술.)
나는 마지막 범주에서만 심각한 윤리적 혹은 규제상의 사안들이 제기될 수 있음을 지적했다. 또한 최근 봇물처럼 터져 나오는 ‘무시무시한’ 나노기술과 관련한 ‘불가능’ 주장들은 특히 윤리적이거나 규제상의 조사에 대한 두려움과 상관이 있어 보인다고 지적했다. 업계 측 사람들은 나노기술의 역량을 미심쩍어하는 쪽으로 연막을 쳐서 이러한 비판을 피해가기를 바란다. 하지만 나노기술이 발전해 점점 더 다양하게 사용되면 이러한 수는 먹혀들지 않을 것이다.
지금까지 나노기술에 대한 화제는 대체로 ‘사기’ 분야(얼룩방지 바지)나 ‘무시무시한’ 분야(말뜻 그대로의 전면적인 분자 나노기술)가 주를 이루었다. 그러나 사기도 무시무시하지도 않은 중간급 나노기술이라고 할 분야가 전개되기 시작하면서, 논쟁의 본질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짙다. 마이클 크라이튼의 소설 『먹이』에서처럼 약탈을 일삼는 나노보트에 대한 우려가 있기는 하지만 질병 치료와 환경 정화에서 나노기술이 이미 활약상을 보이고 있는 마당에, 이러한 우려 때문에 나노기술 금지나 모라토리엄을 거론해서는 안될 일이다.
우주는 더 이상 정부의 전유물이 아니다
항공 우주산업 전반이 곤란한 지경이다. 항공 분야만 하더라도 경쟁이 두드러지는 업체는 몇 안 된다. 그리고 민간 시장에서는 대규모 업체 한 곳, 보잉만이 경쟁력을 지닐 뿐이다. 현재의 항공기종은 내가 태어나던 당시 창공을 지배했던 707기에 비해 어느 정도는 향상되었지만 대체로 답보 상태에 머물고 있다. 우주산업 분야도 마찬가지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 물론 다 나쁜 것은 아니다. 민간업체의 상업적 우주산업도 수익 면에서는 호황을 누렸다. 사실 요즘에는 통신위성과 지구 관측에 투자되는 상업 자본이 정부의 우주프로그램보다 더 클 지경이다. 우주탐사 기술도 1960년대 이래 썩 나아진 것이 없다. 산업집중도는 더욱 하락했으며 나아질 전망도 없다.
국제우주정거장도 우리의 미래를 밝히는 데 별 보탬이 되고 있지 못하다. 애초에 폭넓은 실험과 궤도상에서의 유인구조물과 행성을 오가는 비행체의 건조를 지원하는 장소로 설계된 이 정거장이 이제는 일자리 창출 프로그램에 지나지 않을 정도로 그 위상이 형편없이 추락했다. 고작 여기저기 수리나 하며 일상을 보내는 궤도상의 세 명의 우주 비행사들을 지원하는데 지상의 그 많은 인력을 동원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걸핏하면 고장나기 일쑤인 어마어마한 비용이 드는 우주선도 까놓고 보면 일보 전진이 아니라 일보 후퇴다.
미 항공우주국(NASA)은 야위긴 했어도 초췌한 정도는 아니다. 우주정거장의 확대판이라고 보면 무방하다. 이곳에서 진행되는 과학기술 개발은 뒷공론이 태반이다. 기관의 수입은 일 없이 빈둥거리는 관료들의 관리에 가장 큰 몫이 들어간다. 전적으로 항공우주국만 탓할 일은 아니다. 10여 년의 세월 동안 백악관도 우주사업 정책이 부재했다. 항공우주국은 우주정거장과의 경쟁을 우려하여 부풀린 비용 추정안을 들어 조지 H. W. 부시의 1991년 화성 탐사계획을 성공리에 저지시켰다. 우주정책을 관리 감독하는 국가우주위원회를 폐지한 클린턴 행정부가 내어놓은 지침 역시 인터넷으로 지구 사진을 전송하는 위성 발사 계획이 고작이었다.
주요 쟁점들
정부 측에서 우선 필요한 것은 위로부터의 명령이다. 백악관의 지지 없이 관료계층을 뚫고 무언가를 이뤄내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런만큼 예로부터 부통령을 수장으로 하는 국가우주위원회를 부활시키는 일이 급선무다. 당시 이 위원회의 폐지를 두고 모든 핵심 우주관련단체들이 반대하고 나섰다.
* 집중도 - 경쟁은 역량 향상과 비용 절감을 초래하는 요소이지만 현재의 우주산업에는 경쟁을 조장할 만큼 업체의 수가 충분치 않다. 따라서 법무부가 나서서 일부 업체의 분할을 유도하거나 정부가 나서서 신규 업체의 성장을 도모하거나 하는 방안들이 면밀히 검토되어야 한다. 이러한 전술 그 어느 것도 부당한 시장개입은 아니다. 어차피 작금의 상황도 본질적으로는 정부의 감독을 받는 안전한 카르텔이니 말이다.
* 신중 - 기반이 잡힌 우주산업체는 실패를 두려워한다. 실패의 위험이 조금이라도 있는 일은 시도조차 하기 두려워한다. 물론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실패를 통해 배우는 것도 중요하다. 일례로 X-33 단단식 로켓(2 내지 3단의 로켓을 묶어 발사하던 기존의 발사 시스템과 달리 1단 로켓만으로 궤도 진입을 시도하는 발사체-옮긴이) 프로그램은 실패를 통해 몇 가지 중요한 교훈을 던져주었다. 게다가 규모가 비교적 작았던 탓에 심각한 정치적 반동을 불러일으키지도 않았다. 이렇게 얻은 교훈은 그 쓸모를 입증하겠지만, 그나마 프로그램이 있을 때의 얘기다. 우리는 실패를 통한 학습을 제도화 할 필요가 있다. 1950년대에 그래왔던 것과 달리, 오늘날 항공우주국과 항공업계는 별로 그렇지 못한 편이다.
* 민간인 - 지금까지 군이 우주사업을 군의 사명으로 여겨온 데 반해, 항공우주국 이외의 연방정부 관료들이나 항공우주국 내의 상당수는 이같은 절박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이제 우주는 냉전시대의 선전장이 아니다. 경제와 군사력, 그리고 문화전쟁의 핵심이다. 가령 연방통신위원회와 같은 항공우주국 이외의 기관도 더 긴밀한 연관성을 갖고 지원할 필요가 있다.
* 계산 - 따분하긴 하지만 훌륭한 회계 시스템이 있고 없고의 차이는 크다. 정부 내 전문가들과 대화를 나눠보면, 그들은 항공우주국의 재정관리시스템을 “지긋지긋하다”고 말한다. 돈이 어디로 들어가는지 몰라서가 아니라 그 돈을 쓰고 얻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이라는 편이 맞다. 전적으로 우연만은 아니다. 정부 프로그램 치고 이러한 투명성과 책임을 보장하는 경우는 잘 없으니 말이다. 항공우주국 국장 숀 오키프는 경험 있는 노련한 사람이었지만 임기 내에 별 진전을 거두지 못했다. 그리하여 항공우주국은 다른 문제 해결의 열쇠가 되는 첫 발도 아직 내디디지 못한 상태다.
* 비용 - 우주사업의 주요한 걸림돌이 바로 비용이다. 정부는 비용 절감에는 젬병이다. 하지만 자립적인 기반에서 이를 위한 기술적이며 경제적인 환경을 조성해 줄 수는 있다. 안타까운 점은 도와줄 힘이 있는 연방정부가 사태를 그르치는 데 선수라는 사실이다. 항공우주국은 핵심 임무를 재고하여 직접 나서겠다고 덤비기보다는 기술개발이라는 원래의 역할에 중점을 둬야 할 것이다. 가령 우주관광산업을 지금처럼 경쟁 체제로 볼 것이 아니라 자체의 파생물로 봐야 한다. 비용을 낮추는 것은 자유시장의 몫이고, 우호적인 경쟁을 부추기는 것은 우주사업에서 미국의 우위를 드높이는 데 그 어떤 연구개발 프로그램보다 더 많은 보탬이 될 것이다. 게다가 길을 닦기 위해 정부가 해야 하는 일이 또 있다. 연방항공청(FAA)은 상업적 우주사업의 규제를 합리화하고, 연방통신위원회(FCC)는 우주사업체에게 필요한 무선주파수대를 보호하고, 상무부와 국무부는 수출 규제를 잘 활용해야 한다. 사실상 의회가 그 첫 테이프는 끊은 셈이지만 아직은 미비한 점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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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스트리트저널」에서 홀먼 젠킨스가 지적한 대로, 우주사업 주창자들이 인터넷을 이용해 우주정책에 영향을 미치는 이해관계 단체들을 교묘하게 따돌린 점은 가히 희소식이라 이를 만하다. 우주사업을 찬성하는 사람들은 2004년 의회에 압력을 행사해 우주관광법안을 통과시킨 바 있고, 최근 들어서는 항공우주국에서 새로 내어놓은 달-화성 프로그램을 공공연하게 비난해 왔다. 젠킨스의 지적처럼, 정부 하청업체와 항공우주국, 그리고 의회 대표단을 잇는 케케묵은 “철의 삼각지대”가 이제는 “웹 덕분에 목소리가 커진 일반 구경꾼들과 대치하고 있다. 항공우주국을 비난하거나 이래저래 훈수를 두는 수많은 사이트들이 웹에서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이러한 풀뿌리 지지자들은 정부 정책을 비난하는 것만이 아니다. 그들은 나름대로 일을 처리해나가고 있다.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