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의 미래

The Art of Immersion

   
프랭크 로즈(역자: 최완규)
ǻ
책읽는수요일
   
20000
2011�� 09��



■ 책 소개
color=#400040>엔터테인먼트 산업의 미래를 지배할 스토리3.0!


대중이놀고, 즐기고, 심지어 생각하는 법까지 바꾸어버린 스토리텔링 귀재들의 머릿속을 탐험하는 책. 영화 <아바타&&의 제임스 카메론, 게임<심즈&&의 제작자 윌 라이트, 드라마 <로스트&&의 데이몬 린델로프 등 오늘날의 엔터테인먼트 세계를 움직이는 거장들의 창조적내러티브 기법들과 함께 파워 콘텐츠들의 치밀한 전략과 뛰어난 선각자들의 열정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콘텐츠에 반응하는 사람들의 뇌를 탐구하는 실험실에서 블록버스터 영화의 이벤트 현장,최첨단 게임 개발의 최전선에서 고전 중의 고전 디킨스와 보르헤스 소설 속까지 종횡무진하며, 콘텐츠 속에 숨겨진 재미의 법칙을 하나씩밝혀낸다.

■ 저자 프랭크 로즈(FrankRose)
세계적인 정보통신 기술문화 저널 「와이어드(WIRED)」 객원 편집자이다. 그는 플레이스테이션 3라는 소니의야심에 찬 도박에서 스티븐 스필버그와 오우삼 등 걸출한 스타 감독들이 추앙해마지 않았던 SF 소설의 거장 필립 K. 딕(Philip K.Dick)의 사후(死後) 할리우드 커리어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주제로 글을 써 왔다. 저서로는 애플에서 스티브 잡스가 퇴출된 배경을 다룬1989년 베스트 셀러 『에덴의 서쪽(West of Eden)』과 할리우드의 의리와 배신의 역사를 다룬 『에이전시(The Agency)』 등이있다. 현재 비즈니스 현장과 학계에서 가장 주목하고 있는, 미디어 및 콘텐츠 산업 분야와 IT 분야의 최고 전문가이다. 할리우드와 세계 광고의중심지 매디슨 애비뉴에 가장 정통한 저널리스트이기도 하다.

■ 역자 최완규
한국외국어대학교 영어과와 통역대학원 한영과를 졸업했다. YTN에서방송통역사로 활동했고 영어 전문 포털 네오퀘스트의 대표를 맡기도 했다. 미국 Wiley & Sons의 기술전문 출판부 Wrox의 기술저자 및 리뷰어로 활동했다. 『이 땅에 태어나 영어 잘하는 법』『동사를 알면 죽은 영어도 살린다』『지금 영어 공부하러 갑니다』『대두족장투자병법』 등을 집필하였으며, 『내 친구 헨리』『모드 씨의 비밀노트』『확신하는 그 순간에 다시 생각하라』『차이의 붕괴』『기업, 마음을경영하라』『그들이 위험하다』 등을 번역했다.

■ 차례
프롤로그 - 세상을 유혹한 스토리텔링 귀재들과의 만남

1장 난독증 
최고의 흥행작 영화 <다크나이트&&의 치밀한 계산 

2장 허구 
소설『로빈슨 크루소』와 오타쿠, 그리고 미디어 믹스 

3장 깊숙이 
제임스 카메론의 <아바타&&와 조지 루카스의<스타워즈&& 

4장 통제권
워너브라더스와 전 세계 어린이들의 <해리포터&& 전쟁 

5장 보르헤스의 갈림길 
순서의 세계에서 모호함의 세계로 

6장 열린 세상 
시뮬레이션 게임 <심즈&&에 숨겨진 재미의 법칙 
7장 쌍방향 픽션 
드라마 <로스트&&의 흥행과 마약 중독 과정의공통점 

8장 복수의 플랫폼 
텔레비전도 게임이다

9장 트위터와 허무 
네트워크 세상의 스토리텔링

10장 광고와 브랜드 
버거킹의 ‘복종하는 닭’과코카콜라의 ‘행복 공장’ 

11장 외팔이 강도
수렵 채집 본능을 자극하라! 

12장 감정 엔진
대중의 뇌와 심장 속으로 파고드는 법 

13장무너지지 않는 우주 
대중이 진정으로 원하는 세계를 창조하라!




콘텐츠의 미래


프롤로그 - 세상을 유혹한 스토리텔링 귀재들과의 만남

대체 스토리란 무엇인가? 인간은 걸음마 단계부터 이미 교감하는 방법을 배운다. 인간의 두뇌는 사람의 얼굴이나 신체, 꽃 등 자연의 시각적 형태에서 패턴을 인식하듯 정보를 대할 때도 패턴을 인식한다. 스토리는 다름 아닌 이런 인식 가능한 패턴들이다. 또 그 패턴 속에서 우리는 의미를 찾는다. 스토리를 통해 주변 세상을 이해하고 그렇게 이해한 내용을 다른 사람과 공유한다. 그런 의미에서 스토리란 잡음 속에서 포착되는 신호이다.


스토리 자체는 보편적이라 하더라도 우리가 스토리를 들려주는 방식은 당대의 기술에 따라 변화하기 마련이다. 새로운 매체가 등장할 때마다 새로운 형태의 스토리 전개 방법이 부상한다. 모두가 요점을 하나하나 세심하게 묘사하고 짚어나가는 순차적 내러티브(narrative)를 소비하는 데 익숙해 있을 무렵 인터넷이 등장한다. 인터넷은 지금껏 미디어 산업에 타격을 준 것도 사실이지만, 미디어 형태 자체를 바꾸어놓고 있다.


인터넷의 영향으로 새로운 유형의 내러티브도 부상하고 있다. 이제 내러티브는 복수의 미디어를 통해 동시에 퍼져나간다. 인터넷을 통해 전달되는 스토리들은 단지 재미에만 그치지 않는다. 몰입도가 뛰어나고 한 시간짜리 TV 드라마나 두 시간짜리 영화 또는 30초짜리 광고보다 더 깊이 빠져들게 해준다. 이런 새로운 방식의 스토리텔링은 재미를 위해 소비자에게 스토리를 제공하는 엔터테인먼트뿐 아니라 상품을 홍보하기 위해 소비자에게 스토리를 제공하는 광고, 심지어 우리 자신의 스토리인 삶의 기록에 이르기까지 모든 내러티브를 뒤바꾸어 놓고 있다.


이 모든 실험의 이면에는 한 가지 엄연하고 불편한 진실이 자리 잡고 있다. 바로 전통적인 엔터테인먼트가 더 이상 먹혀들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북미에서 총 티켓 판매량은 2002년 16억 장으로 정점을 찍은 이후 기록이 깨지지 않고 있다. 2009년 미미한 반등세를 보이긴 했지만, 전반적으로 관객들이 내는 티켓 값은 오른 반면, 실제로 관람하는 영화 수는 오히려 줄고 있다. 이런 현상은 영화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대중의 관심을 잃었던 경우는 과거에도 몇 차례 있었다. 그럴 때마다 업계에 대변혁이 불가피했다. 우리는 지금 너무나도 매력적인 새로운 가능성과 안개 짙은 모호한 현실 사이에 서 있다. 미래는 어서 오라고 손짓하지만 우리는 이제 겨우 그 미래를 만들기 시작했을 뿐이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사람들이 몰입하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스토리에 참여해 나름대로 역할을 떠맡아 자신만의 스토리로 만들고 싶어 한다. 그렇다면 작가는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청중이 스토리를 가로채버린다면 어떻게 될까? 허구와 사실 사이의 경계만 모호해지는 게 아니라 작가와 청중, 엔터테인먼트와 광고, 게임의 경계마저 모호해진다면 또 어떻게 될까?


영화, 텔레비전, 비디오 게임, 광고, 정보 기술 분야에 종사하는 수많은 똑똑한 사람들이 바로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오늘도 눈코뜰 새 없이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다.


이 책은 바로 그들의 스토리이다.



깊숙이 

제임스 캐머런의 <아바타>와 조지 루카스의 <스타워즈>

캐머런은 전례 없는 규모의 영화 제작을 꿈꾸고 있었다. 2억 달러가 넘는 제작비로 할리우드 영화 제작의 판도를 바꿔놓을 참이었다. 실사액션과 컴퓨터 기술을 활용한 이미지를 결합해 영화 전체를 3D 입체화면으로 담아낼 작정이었다. 관객과 스크린 사이의 경계를 무너뜨려 외계인과 인간의 영웅담을 생생하게 그려내고자 한 것이다.


우리는 철도 조차장과 고속도로 사이의 산업 지구에 자리 잡은 멜스시테 듀 시네마라는 영화 제작소에서 만났다. 그때까지만 해도 하반신이 마비된 전 해병대원 제이크 설 리가 판도라라는 머나먼 행성에서 인간 활동을 가능하게 해주는 아바타 프로그램에 차출된다는 스토리는 오로지 캐머런의 머릿속에서만 싹트고 있었다. 특이한 식물과 기이한 동물, 3미터가 넘는 키에 푸른 피부를 가진 인간을 닮은 원시 종족들이 사는 열대 우림의 세계로 판도라를 그려낼 셈이었다. 하지만 정작 관객들이 스크린에서 보게 될 스토리는 캐머런이 상상했던 세계의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캐머런은 판도라의 삶을 설명해주는 바이블을 만들 계획이었다. 판도라의 경제 및 기술, 동식물상, 사회 구조와 관습 등 아주 세밀한 부분까지 그려내려 했다. 그러고 나서 렌더링을 준비하고 캐릭터를 연구했으며 판도라와 그곳에 거주하는 생명체의 모형을 마련한다.


영화의 배경 스토리를 상상해내기 위해 엄청난 수고를 들이는 감독은 캐머런 이전에도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감독의 노트 또는 그림에나 그런 노력의 흔적이 남아 있을 뿐, 제작진 이외에는 아무도 볼 수 없었다. 캐머런은 <아바타>가 그런 전철을 밟게 하고 싶지 않았다. "골수팬이라면 얼마든지 푹 빠져들 수 있는 판타지 세계인 거죠." 캐머런은 오타쿠를 위한 <아바타>를 만들 작정이었다.


"이런 종류의 영화가 해야 할 역할은 일종의 프랙탈 같은 복잡성을 창조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캐머런이 말을 이었다. "평범한 관객이라면 2단계나 3단계의 세부적인 내용까지 파고 들어가지 않아도 충분히 즐길 수 있지요. 하지만 진정한 팬이라면 얼마든지 깊이 파고 들어가서 전혀 새로운 패턴들을 발견하게 되는 거지요. 10의 몇 제곱에 해당하는 수준까지 껍질을 벗겨내도 여전히 관심을 가질 게 있는 구조를 말합니다. 그렇다고 단순히 즐기는 관객까지 모든 걸 알 필요는 없어요. 원하는 팬만 찾아내면 됩니다. 그런 게 내가 생각하는 최고의 공상과학입니다."


개인적으로 <아바타>에서 캐머런의 업적을 완벽하게 드러내준다고 생각하는 장면은 영화 초반에 나온다. 제이크의 아바타가 길을 잃고 밤에 혼자서 적대적인 동물들이 우글거리는 판도라 정글을 헤매고 있다. 마침내 기름을 묻힌 막대기에 불을 지피는 데 성공하지만 수십 개의 희번덕거리는 눈이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는 사실에 크게 놀란다. 눈이 있는 곳에 이빨이 있다. 바로 바이퍼울프 떼의 눈이다.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한, 제이크가 이날 밤 살아날 가능성은 희박하다. 바로 그때 자연스레 네이티리가 등장한다.


캐머런이 아직 막바지 작업을 하고 있을 때 존 랜도가 보여준 시연 영상에서 처음 이 장면을 감상했던 나는 제이크 아바타의 눈을 보고 깜짝 놀랐다. 바이퍼울프들이 위협을 가해오자 미친 듯이 정글 이곳저곳으로 시선을 던져대는 아바타의 눈은 탄복할 만했다. 몇 달 후 개봉 직전 타임스 스퀘어에서 가진 시사회에서 영화 전편을 봤을 때는 오히려 알아채지 못했다. 그만큼 신통하리만치 효과가 탁월했다.


캐머런은 배우들의 눈에만 신경을 쓰지 않고 관객들의 눈도 고려한다. 그가 개발한 입체 카메라 시스템은 사물을 3차원으로 해석하는 우리 눈의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놀라울 정도로 정교하게 흉내 낸다. <아바타>를 통해 캐머런은 3D를 통해 장난감이 아니라 자신이 창조한 세계 속에 관객들을 끌어들이는 수단으로 만들겠다는 목적을 달성한다. 캐머런은 3D를 이용해 <아바타>에 거의 무한한 깊이를 부여했다. 캐머런이 약속한 대로 10의 몇 제곱으로 빠져들 수 있는 프랙탈의 경험을 선사한 것이다.


1977년 20세기 폭스사가 <스타 워즈>를 개봉했을 당시만 해도 팬들이 아주 깊숙이 탐험해볼 수 있는 공상 과학 우주를 창조해보겠다고 생각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루카스가 만들려는 우주 공간에서 펼쳐지는 오페라를 제작하겠다고 모험을 한 제작사는 폭스뿐이었다. 폭스 역시 워낙 기대감이 높지 않았던 터라 루카스는 속편 제작에 대한 판권은 물론 영화 관련 상품에 대한 권리도 모두 독차지할 수 있었다.


<스타 워즈>는 나름대로 특유한 문제를 안고 있었다. 라이선스 업체들은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많은 제품을 쏟아냈다. 소설, 만화, 광선검, 액션 피겨, 비디오 게임, 라디오 극화 등 없는 게 없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잡동사니나 다름없었다.


로프먼은 새로운 기본 규칙을 정립하기에 이른다. 이제부터 나오는 모든 <스타 워즈> 대하 스토리는 이전 시리즈의 맥을 이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덕분에 루카스필름은 <스타 워즈> 프랜차이즈에 활기를 불어넣을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을 뿐 아니라 오늘날 부각되고 있는, 깊숙이 빠져들 만한 다층 구조 스토리텔링의 원형을 마련할 수 있었다. "영화는 전체 스토리의 극히 일부만 들려주는 겁니다. 단순한 수준의 맛보기 정도에 불과하지요. 파고들자면 무한할 정도로 깊숙이 빠져들 수 있습니다." 바로 이러한 복잡성이 열쇠가 된다. 루카스는 이를 무결점 현실(immaculate reality)이라고 부른다. 1980년대 후반, 상품화 사업 기반을 회복하려 애쓰고 있던 루카스필름에 무결점 현실은 그 디딤돌이 돼주었다.


루카스가 강박적일 정도로 세부적인 내용을 덧붙인 덕에 골수팬들은 훨씬 더 강박적인 모습을 보였다. 물론 저마다 차이는 있었다. 다른 대하 스토리와 마찬가지로 <스타 워즈>의 관객들도 거꾸로 세워놓은 피라미드와 같은 모양새를 취한다. 꼭대기에는 단지 영화를 몇 번 보았거나 <스타 워즈>가 문화적 상징이라는 사실 정도는 알고 있는 수천만 명의 관객이 자리 잡는다. 바로 그 밑으로는 서로 다른 매체를 통한 스토리에 호응하는 수백만 명이 있다. 게임을 즐기거나 책을 읽거나 장난감을 강박적으로 수집하는 이들이다. 역피라미드의 가장 밑바닥을 점유하고 있는 것이 바로 오타쿠들이다. <스타 워즈>라는 대하 스토리에 가장 깊숙이 관여하고 있는 수만 명의 슈퍼 팬들로서, 온라인 포럼에 참가하는 공식적인 하이퍼스페이스 팬클럽 가입자들이며 진정한 <스타 워즈> 오타쿠들을 위해 팬들이 구축한 지식의 보고인 우키피디아(Wookieepedia)를 만들어간다.


골수팬들이 직접 나서서 더 많은 정보를 체계적으로 담은 백과사전과 같은 사이트를 만들게 된 것이다. 티머시 잔의 소설에 처음 등장한 행성 크기의 도시 코러스칸트에 대한 데이터 뱅크 항목은 1400단어에 불과하지만 우키피디아 항목은 거의 9000단어에 달하고 단 한 번이라도 이 도시를 언급한 적이 있는 모든 책, 영화, 만화 및 기타 자료들(모두 490개에 달한다)에 대한 링크까지 포함돼 있다. 우키피디아의 루크 스카이워커 기사는 놀랍게도 3만 1000단어로 쓰여 있다.



쌍방향 픽션

드라마 <로스트>의 흥행과 마약 중독 과정의 공통점

<로스트(Lost)>가 중요한 의미를 갖는 이유는 단지 시청률이 높았기 때문만은 아니다. <로스트>는 군집 심리(hive mind, 벌이나 개미처럼 군집을 이루는 생명체들의 의식이 연결되는 현상으로, 개개인이 집단의 목적에 부합하는 행동을 자발적으로 하는 것이 그 한 가지 예-옮긴이)에 호소한 텔레비전 드라마였다.


드라마는 정장을 입고 정신이 나간 듯 멍한 표정으로 갈팡질팡하는 한 남자를 바로 코앞까지 클로즈업해 보여주면서 시작된다. 시청자들은 넥타이가 비뚤어지고 만신창이가 된 잭 셰퍼드가 열대 섬 같은 곳의 대나무 숲에서 정신이 드는 모습을 지켜본다. 324명의 승객을 싣고 시드니에서 로스앤젤레스로 향하던 오세아닉 항공 815편이 공중에서 파괴돼 무인도에 추락하는 사고가 일어났는데 알고 보니 정장을 입은 사내도 이 사고의 생존자 중 한 명이었다. 허청거리며 검게 그슬려 연기가 피어오르는 비행기 동체 중간부가 추락한 해변으로 향한 잭은 다른 생존자들을 발견한다. 그중에는 생명이 위독한 이들도 있고 자기만큼이나 정신 나간 이들도 있다. 누군가 여전히 맹렬하게 돌고 있던 제트 엔진 속으로 빨려 들어가면서 해변은 온통 불똥과 파편으로 뒤덮인다. 잭은 무전기가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감에 동체 앞부분을 찾아 정글로 들어간다. 조종실을 발견하지만 기장을 빼고는 모두 숨져 있다. 잠시 정신을 차리는가 싶던 기장은 날카로운 소리의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하늘로 빨려 올라간다.


분명 예사롭지 않은 섬이었다. 그럼 정확히 어떤 섬이란 말인가? 바로 시청자들이 알아내야 할 부분이었다.


"<로스트>는 쌍방향이라는 환상을 만들어냅니다." 어느 날 오후 데이먼 린델로프가 한 말이다. 영화 및 텔레비전 제작자인 제이 제이 에이브럼스와 <로스트>를 함께 만든 린델로프는 왜소한 체격과 자란 지 사흘밖에 안 된 듯한 짧은 머리에 넘쳐나는 열정을 주제하지 못하는 인물이었다. 그는 다른 드라마들의 경우 최대한 미해결 문제들을 남겨두지 않기 위해 애를 쓴다고 지적한다. "<로스트>는 모호하지요. 무슨 뜻인지 설명하지 않아요."


<로스트> 역시 인터넷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기 시작한다. 드라마를 시청한 사람들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이해를 도와줄 수단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러기엔 인터넷이 제격 아닌가? 조지 루카스가 <스타 워즈>를 통해 거의 무한대에 가까운 여타 내러티브들을 의도적으로 생산해낸 게 아니듯이 에이브럼스와 린델로프도 계획적으로 벌인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스토리를 순서에 구애 없이 조각조각 던져주고 관객이 퍼즐을 맞추도록 함으로써 두 사람은 본질적으로 쌍방향 픽션을 창조했다 할 수 있다.


"드라마가 커뮤니티를 만들 구실이 된 거지요." 린델로프의 파트너인 칼턴 큐즈의 말이다. "사람들이 미해결 문제들에 대해 열린 토론을 벌이는 장소가 마련된 겁니다. 의도적으로 그런 문제들을 미해결로 남겨둠으로써 팬들이 드라마에 더 빠져들 수 있게 한 거지요."


4, 8, 15, 16, 23, 42는 수열이 그 한 예이다. 나중에 숫자들[The Numbers(구약 성서의 「민수기」를 뜻하기도 한다-옮긴이]이라고 알려진 이 수열은 첫 시즌 초반부에 처음 소개된다. 또 다른 생존자인, 덩치가 대단히 큰 헐리는 조난을 당해 오랜 세월 섬에 버려져 있던 프랑스 여인의 수첩에서 숫자들을 발견한다. 식습관 장애와 이따금 정서 불안에 시달리던 헐리는 숫자들을 보자마자 굉장히 불안한 모습을 보여준다. 잇따른 과거 회상 장면을 통해 시청자들은 그 이유를 알게 된다.


에이브럼스가 남긴 가장 크고 까다로운 아이디어가 바로 테두리에 숫자들이 새겨진 철제 해치였다. 해치는 미지의 세계로 이어지는 토끼굴이나 다름없었다. "에이브럼스는 잠겨 있는 상자보다 흥분되는 건 없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지요." 린델로프의 말이다. "하지만 상자를 여는 데 오래 걸릴수록 내용물은 구미가 당겨야 합니다."


케빈 크로이는 절묘한 시기에 로스트피디아(Lostpedia)를 출범시켰다. 첫 번째 시즌이 방영된 드라마들은 대개 집단적인 행동으로 이어질 만큼 폭넓고 열정적인 팬 기반을 다지지 못한다. 하지만 두 번째 시즌에 돌입하는 드라마는 사정이 다르다. 특히 <로스트>처럼 시청자들을 캐릭터들에 빠져들게 해놓고 해답 없는 문제들을 던져주는 대박 드라마라면 두말할 나위가 없다.


"<로스트>가 직접적인 쌍방향 드라마는 아닐 겁니다." 크로이가 말한다. "하지만 전체 스토리를 이해하려면 사람들이 서로 대화를 나눠야 하는 환경을 만들어줍니다." 로스트피디아는 바로 그러한 목적으로 사람들이 모여드는 장소가 되었다. 2010년 5월 시리즈가 막을 내릴 무렵 로스트피디이아의 총 글 수는 17개국 언어로 6900건에 달했다.


더 깊이 들어가봐도 <로스트>는 <스타 워즈>와 많이 닮아 있다. 겉보기에는 복잡하지만 내면은 단순하기 짝이 없다. 루카스가 아무리 강박적으로 세부 묘사에 집착한다 해도 결국 그가 만든 스토리는 시공을 초월하는 전형적인 구도로 귀결된다. 선악 대결 구도가 그중 하나이다. <로스트>도 다를 바 없다.


아버지와 불화를 겪고 있는 잭, 유아독존적 로큰롤 생활에서 벗어나려는 찰리, 인정받고 싶어 안달하는 헐리 등 <로스트>에는 시청자들이 군침을 흘릴 만한 세부적인 건더기들이 많다. "드라마가 가진 매력의 중심에는 캐릭터가 있었던 거지요." 호로위츠의 설명이다. "시청자가 숫자들에 그토록 강렬한 반응을 보인 것도 헐리에 애착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헐리는 사람들이 알고 싶어 하는 캐릭터지요. 해답을 찾고 싶어 모여든다고는 하지만, 사실 사람들은 드라마에 함께 빠져들고 싶어 하는 겁니다."


"다 좋은데, 이봐, 도대체 숫자들의 의미가 뭐냐고?" 2005년 7월, 한 팬이 답변을 요구했다. 패널로 참석한 린델로프는 이 질문을 받고 경솔한 답변을 던지고 만다. "숫자들의 의미는 영원히 모를 수도 있습니다." 그의 답변은 숫자들이 드라마의 핵심 미스터리 중 하나라는 뜻이었다. 열어선 안 되는 상자라는 것이다. 자신도 모르게 린델로프는 팬들의 분노를 사고 만다.


언뜻 보기에는 전혀 유사성이 없어 보이는 <매드맨>과 마찬가지로 <로스트> 역시 정보를 잔뜩 감춰두고 찔끔찔끔 흘리는 효과에 의존하고 있었다. 이따금 드라마 제작자들은 보일 듯 말 듯 커튼을 살며시 들어 올려 보여주며 몇 년은 아니더라도 몇 달 동안은 팬들의 애간장을 녹이기도 했다. 바로 이런 의도적인 정보 억제가 쌍방향의 환상을 만든 열쇠라고 린델로프는 설명한다. 스토리텔링에서 관객이 한몫을 하기는커녕 <로스트>의 참여적인 측면은 도리어 제작자들의 엄격한 통제 결과였다는 것이다.



트위터와 허무

네트워크 세상의 스토리텔링

"인간은 본디 사회적 동물이다." 그 유명한 철학자 스피노자가 일찍이 1677년 방대한 논문집 『윤리학(Ethics)』에서 남긴 명언이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동료 인간들과 네트워크를 형성한다. 아는 사람도 있고 모르는 사람도 있기 마련이지만 이들 모두에게 의존하며 산다. 인터넷을 통해 비유적인 네트워크라는 개념에 익숙하다 보니 현대인들은 17세기 유럽인들과는 사뭇 다른 방식으로 이런 사실을 인식한다. 하지만 소셜 네트워크(social network, 인간관계·인맥)는 소셜 네트워킹(Social networking, 개인적인 인간관계가 한 발 더 나아가 사회적인 네트워크를 형성하게 되는 현상-옮긴이)에 앞서 존재했을 뿐 아니라, 여러 가지 밀접하게 연결된 방식으로 스토리텔링만큼이나 인간 생존에 필수불가결한 역할을 한다.


소셜 네트워크의 근간은 웹에서만큼이나 현실의 삶에서도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유대 관계(링크라고 생각해도 된다)라 할 수 있다. 링크만으로도 자신이 친구가 많은지 적은지, 중심인물인지 주변 인물인지, 혼자인지 무리에 속해 있는지 가늠할 수 있다.


새 직장 동료이든 트위터의 낯선 사용자든 링크를 형성하는 가장 믿을 만한 방법은 정보를 교류하는 것이고, 흔히 스토리를 풀어가는 과정이 포함되기 마련이다. 선진 문명과 금전적 이익을 덜어내고 보면 (다시 말해, 할리우드와 텔레비전, 출판의 관점을 배제하면) 스토리텔링은 단순한 공유 행위이다. 우리는 정보를 공유한다. 경험도 공유한다. 지나치게 공유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왜 공유하는 것일까?


스토리를 공유하면 다른 사람들과 링크를 강화할 수 있다. 가족을 비롯해 사무실, 심지어 광신도 집단에 이르기까지 하나의 그룹 내에서 스토리는 규범을 만들고 잘 정의된 신화를 창조한다.


두 가지 극명한 차이를 보이는 스토리텔링 방식이 20세기를 주도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나는 개인적이고, 나머지 하나는 전문적인 스토리텔링이었다. 우리가 전화를 통해서나 집 또는 직장에서 비공식적으로 들려주는 스토리들은 전문적으로 제작된 TV나 영화 속 내러티브와는 사뭇 다른 영역에서 존재한다. 하지만 과거 확연했던 두 스토리텔링 방식 간의 경계가 이제는 모호해졌다. 블로거, 플리커, 유튜브, 트위터 등의 서비스가 우리에게 들려달라고 손짓하는 스토리의 표현 방식은 능수능란하게 전문적이지도 않고 순수하게 생각나는 대로 즉석에서 토해내는 것도 아니다. 5억 명의 사람들이 페이스북에 의존하는 것도 이 서비스를 통해 자신들만의 스토리를 들려줄 수 있고, 그에 따라 자기만족도 향상, 지위 상승, 전략적 입지 구축 등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페이스북은 스토리텔링의 또 다른 면에 접근하게 해준다. 직접적인 장점들에만 치중하지 않고 청중들과의 링크에도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온라인에서 부당한 행동이 자행되는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무례한 행동을 인터넷 탓으로 돌리는 것은 난폭 운전의 책임을 고속도로 탓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충동을 자제하는 능력이 전반적으로 퇴보한 책임을 회피하려는 편리한 핑계에 불과하다. 더 나아가 온라인에서 그런 행동이 난무한다고 말한다면 전반적으로 현실을 왜곡하는 것이다. 현실을 반박하는 사례들이 대단히 자세히 문서화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소셜 미디어의 전반적인 어조는 압도적이라 할 만큼 사회적이다.


좋은 스토리는 감정을 전달한다. 스토리를 들려줌으로써 얻는 이익에만 온 신경을 쏟는다면 삶은 급속도로 지루해진다. 공감은 유대 관계를 맺어야 할 심도 깊은 이유가 되는 것이다.


트위터에는 개인적인 면과 글로벌한 면이 어우러져 있다. 누군가는 커피를 마시러 나간다고 트위팅을 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민간 항공기가 오스틴의 한 사무실 건물을 들이받았다고 트위팅을 한다. 아예 동일한 사용자가 몇 분 만에 두 가지를 모두 알릴 수도 있다. 이런 메시지는 언뜻 무작위로 보이지만 대단히 신기하고 묘한 방식으로 확산된다. 정보를 중계하는 시스템인 트위터는 사용자 간의 거리를 압축해주기 때문이다.


트위터, 페이스북, 유튜브는 저마다의 방법으로 링크 방법을 제공한다. 각 링크는 스토리, 이벤트, 자기만족도 향상, 순간적인 증오의 분출, 공감 행위, 공유 등으로 이어진다. 이 모든 것들이 어우러져 조밀하게 연결된 웹을 형성한다. 링크가 늘어날수록 모든 사람들의 유대 관계는 더욱더 확장된다.


2010년 1월, 트위터의 트래픽은 200년 초 하루 30만 건에서 3500만 메시지로 껑충 뛰었다. 2월에는 5000만 건을 기록했다. 한편, 트위터는 페이스북 등 다른 수많은 소셜 네트워킹 서비스에 스며들었고, 페이스북 역시 상상 가능한 거의 모든 웹 서비스에 기능을 공개했다. 나의 트위터 메시지가 친구들이 로그인할 때 페이스북 페이지에 뜨게 된 것이다. 트위터 메시지는 블로그 등 수많은 다른 공간에 삽입될 수도 있다. 나의 블로그와 페이스북 프로파일, 플리커 사진 공유 서비스가 서로 연결된다. 이처럼 연결된 서비스들은 또 셀 수 없이 많은 다른 사람들의 블로그, 유튜브 채널, 플리커 서비스 등에 링크가 되는 식이다.


새롭게 압축되고 있는 세상에서 우리 모두는 각자 하나의 노드가 된다. 노드가 된다는 것은 어색하고 때로는 고통스럽기까지 하다. 우리는 트위터와 페이스북, 블로거, 플리커, 유튜브 등을 통해 몰입하게 된다. 그 몰입의 대상은 TV 프로그램이나 거기서 광고를 하는 브랜드가 되기도 하고, 사용자 서로가 될 수도 있다. "마케팅 담당자의 꿈이라 할 만하지요." 스티븐 안드레이드가 내게 한 말이다. 그의 목소리에는 어느 정도의 경이로움이 서려 있었다. "하지만 일반적인 통념과는 다른 마케팅입니다. 오히려 사람들이 직접 파헤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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