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소개
‘미는 경영’의 삼성 ‘끄는 경영’의 현대
인문학적 시각으로 바라본 현대경영과 삼성경영. 이 책은 학문적이고 시스템적인 경영학적 한계에서 벗어나 삼성과 현대의 뿌리인 이병철과 정주영의 삶을 속속히 들여다보며 그 속에서 찾을 수 있는 경영의 해법을 인문학적인 관점으로 통찰력 있게 그려낸다.
삼성과 현대는 과연 어떤 성장과 진화의 과정을 거쳐 오늘에 이르렀을까? 누구나 궁금해 하는 단순명료한 근본적 질문을 시작으로, 각각의 기업을 별도로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테마 안에서 함께 비교 분석했다는 것이 이 책의 특징일 것이다.
과거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삼성과 현대의 경영관리 조직은 어떻게 성장하고 진화했는지 기업경영과 조직구조의 변화를 중심으로 면밀히 살펴보았을 뿐만 아니라 그 성장과 진화 속에서 경영관리 조직의 핵심 가치인 기업문화는 어떻게 만들어 나갔는지, 그들 기업문화는 필연적으로 어떤 차별화를 가져다주었는지, 삼성과 현대라는 두 제국의 시작점부터 완성체까지 비교사적으로 두루 설명해내고 있다.
■ 저자 박상하
인간과 조직의 전력은 오래된 지혜에서 나온다는 평소 신념에 따라, 실존의 경험이라는 역사의 넓이 속에서 경영을 발견하고 접목하는 길 찾기 작업을 지속해오고 있다.특히 기업史 분야를 개척한 알프레드 챈들러의 저서에 감화를 받아 기업史를 추적하는 글을 쓰고자 마음먹게 되었다. 향후에는 우리 기업의 역사와 문화 스토리에 대해서도 두루 톺아볼 작정이다.
그 첫 번째 붓질이 새로운 프레임으로 조명한 「이기는 정주영 지지 않는 이병철」이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특히나 글로벌화 된 지구촌을 살아가는 리더들에게 이병철과 정주영의 생애, 철학, 전략 등을 낱낱이 분석해내어, 두 사람의 의미가 현재성과 아울러 미래성을 갖고 있음을 설득력 있는 붓질로 생생히 그려냈다는 평을 받은 바 있다.
건국대학교 교육대학원 국어교육과를 졸업했으며 1995년 허균문학상을 수상하면서 등단, 2000년에는 문예진흥원 소설 부문 창작지원금을 받으면서 줄곧 문학 작품을 써오고 있다. 또한 경영칼럼니스트 활동과 더불어 EBS교육방송의 고정 패널로 출연했으며, 기업과 행정기관 등지에서 리더십을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한국인의 기질」, 「경성 상계史」, 「이병철과의 대화」, 「최초의 근대기업가 박승직 상점」, 「한국기업성장100년史」, 「리더십, 수원 화성에 묻다」 등 다수가 있다. 또 「이기는 정주영 지지 않는 이병철」은 연합뉴스TV에서 다큐멘터리로, 「이건희」는 한국과 중국에서 동시 출간되었다.
■ 차례
제1부 왜 삼성경영 현대경영인가?
제1장 왜 ‘삼성경영 현대경영’인가?
제2장 삼성과 현대의 기업가정신
제3장 세상의 모든 리더는 여우형과 고슴도치형
제4장 삼성과 현대, 그 재才와 평平의 사이
제2부 왕국national의 시대
제1장 창업, 학습과 단련
제2장 자본 축적
제3장 다각화 시대
제4장 왕국의 에토스ethos
제5장 도전과 응전
제6장 100년 경영을 위한 수성
제7장 못다 이룬 완성完成
제3부 제국international의 시대
제1장 리더의 조건
제2장 위대한 스승, 그 아버지
제3장 왕국의 시작점에 다시금 서다
제4장 ‘오리의 발’과 갈라파고스의 섬
제5장 이건희의 ‘창조경영’, 정몽구의 ‘바텀 피더’
제6장 초고속 성장 제국, ‘삼성경영 현대경영’
제4부 일본의 SONY vs 한국의 삼성전자
제1장 SONY의 수성이냐, 삼성전자의 정복이냐
제2장 SONY를 움직이는 힘, 삼성전자를 움직이는 힘
제5부 삼성경영 현대경영의 미래
제1장 삼성경영 현대경영의 과거
제2장 삼성경영 현대경영의 미래
삼성경영 현대경영
왜 삼성경영 현대경영인가?
삼성과 현대의 기업가정신
삼성경영 현대경영의 기업가정신
기업가 정신이란 무엇인가? 포드와 태산과 같은 모험이 따르는 새로운 영역에 남다른 생각으로 도전하는 정신을 일컫는다.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통찰력과 위험을 무릅쓰고 새로운 것에 과감히 도전하는, 창의적이고 모험적인 의지로 자아를 실현하는 자세를 뜻한다.
삼성경영 현대경영에도 그 같은 기업가정신이 없을 리 만무하다. 이렇다 할 자본이나 별다른 기술도 없이, 단지 이병철의 생각이나 정주영의 끈기만으로 지금의 삼성경영 현대경영이 탄생했을 리 없기 때문이다.
또 그 같은 현장이 기실 멀리 있는 것도 아니다. 서울 아산병원에는 아산 기념전시실이 있다. 아산 정주영의 생애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다. 전시실의 유품 가운데는 유독 눈에 띄는 게 있다. 낡은 구두 한 켤레와 지금은 거의 볼 수 없는 짐받이 자전거 한 대가 그것이다.
정주영이 첫 직장이었던 쌀가게에서 배달을 할 때 탔다는 짐받이 자전거는, 그가 수많이 넘어지면서도 굽힐 줄 모르는 의지로 우뚝 설 수 있게 했던 고난의 상징물처럼 다가온다. 주인으로부터 성실함을 인정받아 쌀가게를 인수하여 경일상회를 열었던 건 도전의 첫 시작점이었다. 이후 자동차 수리 공장을 설립한 것이 현대자동차의 밑돌이 되었고, 500원짜리 지폐의 거북선 그림을 들이대며 영국에서 차관을 얻어내고, 그리스에서 초대형 유조선을 수주받아 현대중공업을 키워냈다. 여기서 만든 배로 현대상선을 설립했고, 현대상선을 이용하여 현대자동차를 수출하는 등 정주영의 도전정신은 끌을 몰랐다.
고난과 시련이란 뛰어넘으라고 있는 것이지, 걸려 엎어지라고 있는 것이 아니다. 길이 없으면 찾고, 찾아도 없다면 닦아나가면 된다는 게 정주영의 불굴의 기업가정신이었다.
이병철의 기업가정신은 일찍이 대구에서 삼성상회라는 상호를 처음 지을 때1938년부터 분명하게 드러난다. 삼성에서 삼三은 크고 많고 강하다는 뜻이다. 성星은 밝고 높고 깨끗이 빛나며 또 영원한 그 무엇이다. 이런 바람을 담아서 삼성이란 이름을 지을 때 이미 그의 기업가정신이 얼마나 남다른 것인가를 보여주고 있다.
실제로 6.25 전쟁이 휩쓸고 지나간 폐허와 공허 위에서 아직 누구도 꿈꾸지 못하고 있을 때 그는 시대를 앞서 제조업에 뛰어든다. 모두가 시기상조라고 고개를 내저을 때 그는 최초로 상업자본을 탈피하여 산업자본으로 전환한다.
이때 제일제당과 제일모직을 설립한 것은 곧이어 8년여1958~1965년에 걸쳐 건설된 세계 최대 규모의 비료공장 한국비료의 밑돌이었을 따름이다. 왕국의 미래 먹거리로 결정이 되면서 후발주자의 굴레를 무릅쓰고 뒤늦게 전자산업에 뛰어들었을 때 이병철의 도전정신은 마치 태산을 동산이라고 바라보는 듯 대담하기조차 하다.
누구도 추종하지 않았던 그의 도전정신은 73세의 노구에도 멈출 줄 몰랐다. 미국과 일본의 반도체전쟁이 첨예할 때 왕국의 명운을 걸고 첨단의 반도체 산업에 진출하는 과감한 결단은, 지금의 삼성경영을 탄생시킬 수 있었던 그만의 기업가정신이었다.
이병철의 기업가정신, 정주영의 기업가정신
삼성과 현대의 기업가정신은 앞에서 보듯 서로 달랐다. 삼성경영이 사물을 통찰하는 생각의 힘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라면, 현대경영은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끈기의 힘으로부터 비롯되어진다. 그런 만큼 이들의 기업가정신 또한 다른 모습, 다른 형식이었다.
가령 이병철과 정주영, 두 사람 앞에 꽃과 달이 있다고 치자. 둘의 반응은 어땠을 것 같은가?
모르긴 해도 이병철은 달이 아닌 꽃을 집어 들었을 게 틀림없어 보인다. 반면 정주영은 미련 없이 달을 덥석 집어 들었을 것으로 믿어진다. 이병철이 활짝 핀 꽃을 바라보는 것은 그 생기 넘치는 꽃의 마음을 감상하는 것이지, 밖으로 드러난 붉은 색이라든다 자색이라든가 하는 색깔이나 향기에 취해서가 아니다. 정주영 역시 달을 바라보는 것은 청명한 기를 감상하는 것이지, 달이 둥글다거다 이지러지고 밝았다가 다시 어두워지는 것을 애써 찾는 게 결코 아니다.
이 같이 둘은 정신의 첫 시작점부터 뚜렷이 엇갈린다. 바라보는 지향점이 서로 판이하게 달랐다.
그런 만큼 결정하고 작용하는 에너지 또한 전연 다르기 마련이었다. 그 같은 결과를 이끌어내는 과정 또한 전혀 다른 문법일 수밖엔 없었다. 때문에 이병철은 세밀하고 정교한 노력에 집중할 수 있었다. 느긋한 일은 재빠르게, 반대로 다급한 일은 천천히 하는 남다른 역량을 갖게 된 것이다. 반면 정주영은 대담하고 끈질긴 노력에 집중케 된다. 내 앞의 일은 마땅히 밝은 달이나 청명한 바람처럼 시원시원하고 산뜻하게 대하는 게 좋다는 남다른 역량을 가질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이병철은 믿음을 얻으면 안 되는 일이 없다고 생각하기에 이른다. 믿음만 얻을 수 있다면 곧 천하를 얻을 수 있다고 확신케 된다. 물론 사람들로부터 믿음을 얻기란 결코 쉽지가 않다. 제아무리 좋은 말을 하더라도 사람은 실천할 것을 보고 비로소 믿음을 준다. 아니 실천보다 진정성을 느낀 뒤라야 비로소 신뢰하기 시작한다. 그러므로 자신의 진정성으로 사람들이 느낄 수 있게 하기란 퍽 어려운 일이다. 사람들로부터 믿음을 얻어내기란 실로 지난한 일일 수밖에는 없다.
삼성에게 이 같은 믿음이란 곧 첨단 기술을 뜻했다. 나중에 기술 제일주의로 삼성전자가 첨단산업을 이끌 수 있었던 것도 딴은 여기서부터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그에 반해 정주영은 뚝심을 획득하면 안 되는 일이 없다고 생각하기에 이른다. 바람과 구름, 비와 천둥처럼 멈추지 않는 근면이 곧 조직을 움직인다고 확신케 된다. 하기는 구름은 끊이지 않고 모여든다. 바람과 비 역시 그치지 않고 하늘로부터 새어나오며, 천둥 역시 멈추지 않고 진동한다. 제아무리 멈추려고 애써도 멈출 수가 없는 지극한 근면의 작용이다. 때문에 그 같은 작용을 획득하기란 결코 쉽지가 않다. 남다른 뚝심을 지닌다는 게 실로 지난한 일인 것이다.
현대에게 이 같은 뚝심이란 곧 대담한 도전을 뜻했다. 나중에 특유의 뚝심을 획득하여 현대자동차나 현대조선조와 같은 중공업을 이끌 수 있었던 것도 딴은 여기서부터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흔히 삼성경영은 이유는 없다. 명령은 내가 한다!라는 황제경영으로 일컬어진다.
현대경영 역시 이유는 없다, 나를 따르다!라는 정벌경영으로 일컬어지곤 한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순전히 기업가정신에서 움터 오른 서로 다른 행동의 방향 에너지였음을 알 수 있다.
만개한 꽃과 둥근 달과도 같이 이병철과 정주영의 기업가정신은 전연 다른 모습, 다른 형식을 띠었다. 또 그 같은 차이가 오늘날의 삼성경영과 현대경영을 낳게 한 모태였으며, 중후장대형의 산업을 중심으로 한 현대왕국과 경박단소형의 산업을 중심으로 한 삼성왕국을 세우게 한 숨은 힘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삼성경영 현대경영의 미래
삼성경영 현대경영의 미래
삼성경영의 3세, 이재용은 누구인가
삼성전자 부회장 이재용은 1968년 서울에서 삼성그룹 회장 이건희와 삼성미술관 리움 관장 홍라희의 1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할아버지 이병철과 아버지 이건희로부터 누구를 만나든지 경청하고 주의 깊게 들어라 라는 가르침을 받았다. 그래선지 재계에서도 예의 바르고 남의 얘기를 잘 듣기로 소문이 났다.
이재용은 경복고를 졸업한 후 서울대학교에 입학해 동양사학을 전공했다. 경영학을 먼저 배우기보다는 인문학적 소양을 쌓고 경영은 나중에 배우라는 할아버지 이병철의 조언 때문이었다. 이재용이 삼성전자 총무그룹에 입사하면서 제국에 첫발을 내딛은 것은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를 졸업한 23세1991년 때였다. 이후 유학길에 올라 일본 게이오기주쿠대학 경영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거친 뒤, 미국 하버드대학교 경영대학원에서 박사 과정을 마쳤다.
그가 일본과 미국을 거치며 수학한 배경에는 아버지 이건희의 경험이 있었다. 미국을 먼저 보게 되면 일본 사회의 특성, 특히 숨은 섬세함 따위를 자칫 놓치기 쉬워 먼저 일본을 알라는 조언에 따랐다. 하지만 실무에 목말라 하던 이재용은 박사학위까지 따라는 아버지 이건희의 권유를 뿌리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01년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이재용은 2004년 삼성전자 경영기획팀 상무보와 S-LCD 등기이사를 거쳐 2007년부터 본격적으로 경영 일선에 나서기 시작했다. 이후 삼성전자 글로벌고객총괄책임자CCO 전무를 맡으면서 주요 협력사 수장들과 만남을 갖기 시작했다. 오랜 시간 경영수업에 전념했던 그는 당시 전무 직급으로 삼성전자 사장급 이상의 권한을 갖게 되었다.
같은 해 10월, 아버지 이건희의 요청에 따라 해외 순환 근무에 오른다. 중국 상하이에 베이스캠프를 차린 이재용은 중국, 일본, 동남아는 물론 유럽, 북미, 남미를 종회무진했고 인텔.SONY 등의 주요 협력업체와 글로벌 바이어 관리 등 인맥을 쌓아갔다. 아울러 제국을 이끌어갈 신사업 발굴이라는 막중한 임무도 부여받았다.
2010년에는 삼성전자 최고운영책임자CCO사장에 오르면서 10년 만에 국내로 복귀했다. 이때 그가 세계 시장의 곳곳을 순회하며 찾은 제국의 미래 영토가 다름 아닌 자동차였다. 삼성이 자동차 산업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최첨단 정보기술 분야로 자동차가 접근해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차량용 반도체와 디스플레이를 비롯한 거의 모든 IT산업이 결국 자동차와 연결될 것이라는 것이 이재용과 삼성의 판단이었다.
삼성전자 부회장2012년에 오른 이후에도 이재용은 제국의 미래 영토인 자동차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렇다고 삼성전자가 다시금 완성차를 직접 만들겠다는 건 아니다. 자동차가 첨단 IT분야와 결합해가고 있는 만큼, 자동차 내부의 모든 IT핵심 기술을 삼성전자와 계열사가 선점하겠다는 뜻이다. 제국의 미래를 바로 그 지점에서 완성시킬 것이라는 포부다.
현대경영의 3세, 정의선은 누구인가
현대자동차 부회장 정의선은 1970년 서울에서 현대.기아차그룹 회장 정몽구와 이정화의 1남 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현대가의 밥상머리 교육을 받으며 자랐을 뿐만 아니라 할아버지 정주영과는 손자 이상의 각별한 사이였다. 정주영은 다른 손자들에게 매우 엄격했지만 장손인 정의선만은 예외였다. 우선 정의선을 어릴 때부터 청운동 할아버지 집에서 지내게 했다. 정주영은 사람들에게 곧잘 우리 집은 인왕산 계곡물 흐르는 소리와 산기슭을 훑으며 오르내리는 바람 소리가 좋은 터라고 자랑했다. 정의선을 청운동 집에 지내게 한 것은 장손을 가까이 두고 보고 싶은 것도 있었겠지만 그 같은 좋은 정기를 많이 쐬게 하려는 배려이기도 했다.
정주영은 생전에 매일 새벽 청운동 자택에서 온 집안 식구들과 함께 아침 식사를 했다. 소탈한 밥상이었지만 할아버지 정주영은 늘 엄격했다. 정의선은 그 같은 엄격한 가풍을 아버지 정몽구가 그랬던 것처럼 고스란히 물려받았다. 이른 새벽에 다같이 모여 아침식사를 하면서 자연스레 웃어른을 공경하고 남을 배려하는 예절을 배웠다. 교육의 토대가 되고, 경영자로서의 자질이 되는 학습을 일찍부터 익히게 된 것이다.
정의선은 휘문고를 졸업한 뒤, 할아버지 정주영이 19세 때 무작정 상경하여 신축 공사장에서 돌과 목재를 나르는 막노동을 두 달 가까이 했다던 고려대학교에 입학하여 경영학을 전공했다. 졸업하던 이듬해 곧바로 현대정공현대모비스에서 입사1994년, 제국에 첫발을 들여놓았다. 일찍이 아버지 정몽구가 갔던 길을 그대로 이어 밟으며 밑바닥부터 다져 나갔다.
이후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샌프란시스코대학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를 받고 일본 이토추상사 뉴욕지사에 근무하다가 현대자동차 구매본구 구매담당 이사로 복귀1999년했다. 이듬해 중순부터 국내 영업본부에서 영업 및 기획 담당을 맡았다. 2001년에는 상무, 2002년에는 전무로 승진한 데 이어, 2003년에는 부사장에 오르는 등 초고속 승진을 했다.
정의선이 재계의 주목을 받게 된 시기는 2005년 기아자동차 사장을 맡으면서부터였다. 이때부터 현대차그룹의 차세대 리더라는 평가가 나왔다. 하지만 부정적인 시선이 더 많았다. 30대 중반의 젊은 CEO가 과연 기아자동차라는 거대 조직을 제대로 이끌 수 있을지 하는 우려에서였다. 그 같은 우려를 정의선은 한발 앞서 나가는 디자인 경영을 통해 완전히 불식시켰다. 자동차 세계 3대 디자이너 중 한 명으로 손꼽히는 아우디 디자이너 출신인 피터 슈라이어를 디자인 총괄 부사장으로 영입해 디자인이 강조된 박스카 쏘울, 인기 종결자 K5를 연이어 내놓으면서 국내외 자동차 시장에서 돌풍을 일으켰다.
현대자동차 부회장으로 자리를 옮긴 이후에도 성장세를 이어갔다. 2012년 4월 중국 시장에 첫선을 보인 YF소나타가 불과 5개월 만에 월 판매 대수 1만대를 넘어서자 모두 경이로운 눈길로 바라봤다. 현대자동차 이미지가 값싼 소형차에서 비중 있는 중형차로 바뀌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정의선은 현대자동차 부회장에 이어 2012년 봄 또다시 현대제철 부회장 자리에 올랐다. 사실상 자동차와 함께 제국의 또 다른 축인 제철 경영까지 책임지면서 후계 구도의 보폭을 점차 넓혀나가고 있다. 그러면서 정의선의 행보 또한 신중해지고 있다. 2009년 현대차그룹 부회장에 취임했을 때만 해도 글로벌 시장에서 브랜드 강화를 외치기 시작한 그가 관심의 대상을 내수로 전환하였다. 국내 수입차 시장이 몰라보게 커지면서 안방 수성이 최대 관심으로 떠올랐다. 지금껏 모터쇼 경영으로 불릴 정도로 주요 해외 모터쇼에는 빠짐없이 참석했지만 공식적인 해외 방문을 일절 삼가고 있다. 내수시장을 적극 방어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인 셈이다.
전기차.전자제어 등 제국의 미래를 먹여 살릴 신사업이 추진되고 있지만, 정의선은 직접적인 개입을 하지 않고 있다. 아직은 아버지 정몽구가 건재한데다 현대차그룹은 부문별로 부회장 체제가 갖춰져 있기 때문이다.
정의선은 또 할아버지 정주영만큼 기업적 이벤트를 잘 만들어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 2005년 기아자동차 수출 500만 대 돌파 기념식 때 그는 임원들의 넥타이를 기아자동차 상징색인 빨간색으로 통일시키는 이벤트를 연출해서 일사불란하게 단결된 풍경을 보여주었다. 그런가 하면 그는 아버지 정몽구를 그대로 빼어 닮아 직원들과 소주잔을 기울이며 우스갯소리도 곧잘 하는 소탈한 오너, 창의적이고 겸손한 인물로 좋은 평판을 받고 있다. 부하 직원들에게 항상 존댓말을 사용하면서 자신을 낮추려는 모습이 역력하다는 소리다.
하지만 정의선은 현대차그룹 안에서의 위상 강화에도 불구하고 외부 노출을 극도로 자제하고 있는 편이다. 그는 다른 오너 3세보다 유난히 언론 노출이 적다. 있는 듯 없는 듯 자신의 존재감을 전혀 드러내 보이지 않는다. 이것은 아무래도 아버지 정몽구 회장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아버지 정몽구가 아직 건재한데 아들이 전면에 나서기가 부담스럽다는 이유에서다. 실제로 정의선은 누구보다 아버지 정몽구를 존경한다. 그는 몇 해 전 지인들과 함께 자리한 사석에서 정몽구회장님은 자신의 롤모델이라고 스스럼없이 존경심을 나타냈다. 아버지 정몽구가 할아버지 정주영에게 나타냈던 자세 그대로이다.
삼성제국의 100년 경영
삼성제국의 총수 이건의가 급성 심근경색으로 쓰러졌다2014년. 끊이지 않는 위중설에도 자가 호흡 등 체력적 안정을 되찾은 것으로 알려졌으나 경영일선의 복귀는 어려워 보인다. 그러면서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했던 거목의 공백 속에 삼성제국은 부회장 이재용 체제로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이재용은 우선 지주사 체제로의 재편을 단행했다. 환상형 순환출자 구조에서 삼성물산을 정점으로 전자와 금융의 두 날개를 달았다. 이 과정에서 방산 등 불필요한 산업군을 과감히 정리하는가 하면, 미래를 대비해 바이오 등 새로운 성장 동력을 포진시켰다. 큰 그림으로 볼 때 여기까지 그가 보여준 핵심 철학은 실용주의를 기반으로 한 선택과 집중이다.
물론 사업 조정을 동반한 지배구조 개편은 이건희가 쓰러지기 이전부터 활발했다. 이건희가 쓰러져 입원한 이후에 진행되었던 에버랜드 상장을 비롯하여 중공업과 엔지니어링 합병은 이미 예정된 것이었다. 다만 에버랜드 상장이 경영권 승계를 위한 핵심 절차였다면, 중공업과 엔지니어링의 합병은 경영의 효율성 제로를 위한 사업 조정의 성격이 짙다. 삼성은 이후 대규모 합병 건은 다시는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같은 해 세밑, 화학과 방산 계열사를 2조 원에 한화그룹으로 넘기기로 하는 빅딜을 발표해 시장을 놀라게 했다. 사실 삼성의 화학계열사들은 그동안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삼성의 화학 계열사는 5개사(삼성종합화학.삼성토탈.삼성석유화학.삼성BP화학.삼성정밀화학)에 이르렀지만 LG화학 1개사의 영업이익에도 미치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이어 롯데그룹과의 인수합병도 진행되었다. 선대 회장 이병철이 사업보국 차원에서 진행했던 방산사업을 모두 정리했다.
삼성생명 태평로 사옥 매각2016년도 충격적이다. 자생력의 한계를 보인 광고사업 제일기획도 매각 대상에 올렸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집계한 삼성그룹 기업집단의 계열사 수는 2003년 63개에서 2013년 76개로 증가했다가 2015년 67개까지 줄어들었다.
그렇다고 지난 2년 사이 한계 사업을 정리한 것만은 아니었다. M&A타겟을 해외 기업으로 확대한 것도 특징 가운데 하나로 꼽히고 있다. 삼성전자가 최근에 인수한 것으로 알려진 자동차 부품사 마그네틱 마멜리와 이미 인수 계약을 체결한 미국의 럭셔리 가전업체인 데이코 등이 그것이다. 그동안 삼성전자의 기술력만으로는 쉽게 뚫지 못했던 스마트카와 프리미엄 가전 시장을 정조준했다는 분석이다.
2015년에 인수한 미국의 루프페이는 간편 결제 서비스인 삼성페이로 선보여진 후 상당수의 사용자를 확보하여 모바일 결제 시장 진출에 성공적으로 연착륙했다. 이후에도 중국의 대표 신용카드 은련카드나 중국 최대 모바일 결제 시스템인 알리페이와의 제휴를 통해 세력을 보다 확장시켜나가고 있다. 삼성보다 1년 가량 앞섰던 애플페이를 단숨에 따라잡을 수 있었던 것이다.
4차 산업 등 미래 신사업 육성에도 주력한 흔적이 뚜렷하다. 인공지능의 원천기술을 보유한 미국 실리콘밸리 기업 비캐리어스에 2,000만 달러를 투자한 데 이어 이디본.익스펙트램.리액터랩 등 10여개 AI관련 기업과 손을 맞잡았다. 사물인터넷 플랫폼 기술을 확보한 스마트 싱스도 그중하나다. 클라우드 업체 조이언트는 미국 증시에 상장도 되지 않은 기업인데, 삼성이 인수한 기업 중에는 창립한 지 4~5년 안팎의 스타트업초기 벤처기업도 적지 않다.
그가 한계 산업의 많은 계열사를 과감히 정리하고, 동시에 신규 사업을 발빠르게 인수하여 체질을 개선해 나가면서 그려지는 제국의 미래는 너무도 분명한 것 같다. 이재용의 사업 재편 구도는 크게 전자.금융.바이오의 3대 축으로 요약된 선택과 집중이다.
이재용은 아버지 이건희와의 리더십에서도 뚜렷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아버지 이건희가 은둔의 경영자로 불렸다면, 이재용은 현장을 직접 뛰어다닌다. 애플과의 특허전쟁, 중국 반도체라인 신설 등도 그가 직접 현장을 뛰어다니며 비로소 해결 국면에 진입했다.
그밖에도 글로벌 자동차 업계의 CEO를 직접 만나는 등 영업 일선에도 적극적이다. 전세기를 내다 팔고 캐주얼 차림으로 캐리어를 직접 끌며 해외곳곳을 누비는 그에게서 아버지와 같은 은둔의 그림자는 더 이상 찾을 수 없다. 그런가 하면 삼성경영의 전통적인 회장 비서실이 그 모태인 미래전략실도 향후 상당 부분 축소가 예고되고 있다. 보좌에 의존하기보다는 직접 부딪쳐 소통하고, 문제의 현장으로 뛰어가겠다는 의지 표명이다.
그렇다 하더라고 남은 과제는 산적해 있다. 먼저 이재용은 경영권 승계를 위한 마지막 퍼즐을 맞춰야 한다. 반도체와 TV, 스마트폰을 이어나갈 새로운 성장 동력 확보도 시급하다. 흩어져 있는 범 삼성가의 총수로서의 역량도 보여주어야 한다. 무엇보다 미래를 대비해 그가 지목한 바이오분야에서 자신의 혜안이 옳았음을 입증해 보여야만 한다. 이렇듯 삼성제국의 100년 경영을 두 어깨에 짊어진 이재용의 갈 길은 멀기만 하다. 이제 막 그 첫걸음을 떼고 있을 따름이다.
현대제국의 100년 경영
전 세계 고급차 시장을 겨냥해 야심차게 내놓은 프리미엄 브랜드 제네시스는 현대차 그룹의 미래일 뿐 아니라, 한국 자동차의 기술력과 문화를 끌어 올릴 마중 물이다 그리고 2016년 정월, 현대자동차는 미국 디트로이트에서 개막된 북미국제오토쇼디트로이트모터쇼에서 국산차 최초의 프리미엄 브랜드 제네시스를 처음으로 선보였다. 국내에선 이미 전년도에 첫선을 보였으나, 첫 해외 진출 지역으로 삼은 북미 지역에서의 발표는 처음이었다.
이날 발표는 10여년 전부터 프리미엄 브랜드인 제네시스의 개발을 전면에 나서 주도해온 현대자동차 부회장 정의선이 직접 맡았다. 정의선은 이렇듯 국내와 해외에서 제네시스 브랜드 개발에서부터 발표까지 주도하며 본격적으로 역량 검증의 시험대에 오르게 되었다. 세계 자동차 업계가 현대자동차의 프리미엄 브랜드에 비상한 관심을 쏟는 만큼 제네시스의 성공 여부는 곧 정의선의 경영력을 평가하는 시험대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이다.
발표장인 디르로이트 코보센터 제니시스 전용관은 세계 각국에서 언론인 등이 몰려들면서 북새통을 이뤘다. 좀처럼 공개 석상에 나서지 않았던 정의선은 현대자동차의 비전을 직접 발표한 2015년에 이어 다시금 디트로이트 모터쇼의 단상에 올랐다.
이날 정의선은 유창한 영어로 현대자동차는 지난 반세기 동안 소비자들에게 더 좋은 제품을 제공하기 위해 노력해왔으며 이를 바탕으로 최고급 브랜드 제네시스를 만들었다고 밝혔다. 아울러, 전세계 소비자 덕분에 세계 시장을 주도하는 회사로 발전한 현대자동차가 이제 럭셔리라는 새로운 목표를 향해 나아가겠다고 선언했다.
현대자동차는 제네시스 브랜드 발표와 동시에 한 해 앞서 국내에서 출시한 제네시스의 첫 모델인 G90국내명 EQ900을 북미 시장에 첫선을 보였다. G90은 세계 최고의 초대형 럭셔리 세단을 목표로 지난 4년여 동안 1,200여 명의 전담 연구원을 투입해 완성한 현대자동차의 차세대 야심작이다.
한편 북미 시장의 특성에 맞게 G90을 가솔린 3.3과 5.0 모델로 운영할 계획이라고 한다. 연간 판매 목표는 약 5,000대이며, 곧이어 출시할 2세대 제네시스의 상품성 개선 모델인 G80약 2만 5,000대를 합해 브랜드의 전체 판매 목표는 연간 3만대로 잡고 있다. G90은 북미에 이어 중동과 러시아에서도 판매에 돌입했으며, 6종의 후속 모델이 모두 갖춰지는 오는 2020년 북미 시장에서의 목표는 연간 10만 대까지 늘어난다. 이처럼 프리미엄 브랜드 제네시스는 3세 정의선의 시대를 여는 서막으로 보는 관측이 많다. 현대자동차 내부적으로 볼 때에도 그가 이끌어나갈 현대차 3.0의 신호탄이기도 하다.
현대차그룹의 1.0시대는 창업회장 정주영과 전 현대자동차 명예회장 정세영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자동차 보국이란 사명감으로 뛰어든 한국 자동차산업의 시발점인 시기다. 2.0시대는 2세대 정몽구의 이름으로 불린다. 기아자동차의 합병과 아반테.소나타를 쌍두마차로 밑바닥 물고기에서 글로벌5로 도약한 시기다. 3.0시대는 3세대 정의선이 열어나갈 미래다. 글로벌 고급차 시장에 출사표를 던지면서 1967년 창업 이래 새로운 반세기를 준비하는 현대차3.0시대에 도전하고 나선 것이다. 더욱이 프리미엄 브랜드 제네시스의 성공 여부는 정의선의 후계 구도 마무리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제네시스가 고급차 시장에서 자리를 잡게 되면 현대차그룹의 미래를 책임질 정의선의 경영역량도 인정받는 셈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더라도 제국의 경영권을 승계하는 데는 다소 시간이 걸일 것으로 보인다. 업계에선 현대자동차가 야심차게 내놓은 제네시스의 해외 시장 안착이 결국 후계 구도에도 지렛대가 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오는 2020년까지 총 6개 모델로 구성될 제네시스의 럭셔리 라인업이 고급차 시장에서 꾸준히 인정받을 수 있느냐의 여부에 따라 제네시스와 함께 정의선의 명운을 가를 것이라는 게 지배적이다.
물론 북미 시장에서 제네시스가 조기에 안착할지는 미지수다. 현대제국의 100년 경영을 두 어깨에 짊어진 정의선의 미래 또한 아직 미지수다.
다만 정의선은 할아버지 정주영의 도전정신과 아버지 정몽구의 뚝심을 동시에 물려받은 인물로 평가 받고 있다. 현대가 특유의 가부장적 가풍을 이어받아 소박하고 겸손할 줄 알면서도 진중하며 아울러 창의적이라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재계에선 총수의 3세 가운데 가장 뛰어난 경영 능력과 리더십, 책임감 등을 조화롭게 갖춘 인물이라는 평가도 이어진다.
저자 역시 들은 얘기가 있다. 국내외 자동차산업에 정통하다는 U교수와 정의선에 대해 두루 의견을 나눈 적이 있었는데, 대뜸 정의선이 IT분야에 매우 해박하다는 것을 들었다. 미래의 자동차가 첨단 IT분야와 결합해가고 있다는 점에서 기대해도 좋다는 얘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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