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소개
어떤 리더에게나 시련은 찾아온다!
우화로 꿰뚫는 경영의 본질과 위기 극복의 지혜!
우화가 몇 천 년의 시간을 넘어 계속 회자되는 이유는 뭘까? 사건의 핵심을 찾고, 문제를 단순화하는 데 최적화된 도구이기 때문이다. 우화에서 얻을 수 있는 지혜는 어려운 때일수록 최선의 해답이 된다. 또한 비유와 상징을 활용하기 때문에 듣는 사람에게 호기심과 심미적 쾌감을 주며, 거부감이 생길 수 있는 내용까지도 쉽게 납득시킬 수 있다.
저자 장박원은 매일경제에서 20년 넘게 흥미로운 경영 사례들을 모아온 경제전문 기자다. 다양한 현실 문제들이 그의 시선 속에서 옛 이야기꾼들의 이야기와 결합됐다. 우화 속에 숨겨진 진리는 그 자체로도 의미가 있지만, 현실에 적용될 때 더 큰 시너지 효과를 낸다.
■ 저자 장박원
저자 장박원은 고려대 영문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1995년 매일경제에 입사해 산업부와 정치부, 국제부 등을 거쳐 현재 논설위원으로 있다.
다양한 산업 분야를 출입하며 흥미로운 경영 사례를 취재했으며, 딱딱한 경제와 산업 지식을 재미있게 전달하기 위해 인문학적 상상력을 가미한 집필 활동을 펼치고 있다.
저서로는 『현대자동차 왜 강한가』『대한민국 부동산 경제학』『부동산 필수지식』『인문학, 주식시장을 이기다』『새판을 짜다』『춘추전국의 전략가들』『우화경영』이 있으며 번역서로는 『진보의 진화』『미국을 만든 비즈니스 영웅』 등이 있다.
■ 차례
시작하는 이야기
PART 1 경영은 판단력에 달려 있다
1 유튜브, 플랫폼에 ‘공유’를 더하다
2 벤치마킹은 단순한 베끼기?
3 돌팔이 의사와 ‘펀더멘털’
4 운명은 능력보다 힘이 세다
5 정체성을 잃은 대가
6 잠재 역량은 백조를 탄생시킨다
7 변동천하, 세상의 변화를 읽어라
8 돼지와 양의 입장 차이
9 ‘비효율의 늪’ 탈출법
10 애플맵스, 돼지 목에 진주목걸이?
11 위대한 부수효과
12 과거의 영광은 잊어라
13 분식경영과 실속경영의 차이
14 진짜 도움 vs 가짜 도움
15 치아 스케일링 한 사람에게만 보너스를?
16 진정한 친구는 기적을 만든다
17 리더라면 누구나 한 번쯤 억울해진다
18 한눈판 리더의 말로
19 순수한 의도는 없다
20 구글은 사무실부터 다르다
21 삼성 임원이 되면 무엇이 달라질까?
22 집착의 끝
23 어부, 절실함으로 바다를 건너다
24 짝퉁의 역습
25 폭풍우를 극복하는 힘
26 나무 그루터기 옆에서 ‘다이아몬드’ 기다리기
27 오뚝이 경영자와 신발장수의 공통점
28 회사에 가장 기여한 사람은 누구?
29 회사를 살린 ‘구리무’
30 까칠한 참모의 순기능
PART 2 결단과 용기로 실행하라
1 ‘연봉 1달러 클럽’의 약속
2 욕심 많은 개는 뼈다귀를 잃는다
3 제 몫 챙기기에 급급하다가는?
4 학자를 이기는 ‘기업 농부’
5 무리수의 부메랑
6 늑대처럼 경영하라
7 ‘로켓배송’의 진짜 라이벌
8 30대 주부, 매출 100억 원대 CEO가 된 비결
9 폭스바겐은 왜 당나귀가 됐을까?
10 ‘갑질’의 다음을 생각하라
11 글로벌 금융위기를 만든 양치기의 거짓말
12 좀비기업이 크고 있다!
13 CEO의 간섭은 독?
14 ‘나쁜 돈’은 반드시 배반한다
15 허당 경영자와 악당 경영자
16 포기할 것은 포기하라
17 남 좋은 일만 시키고 싶다면?
18 사업가의 세 친구
19 ‘알박기’와 가죽장이
20 어미 종달새의 통찰력
21 랍비는 왜 반지를 왕비에게 돌려주지 않았을까?
22 벼룩의 입장
23 꿀 먹은 곰을 처벌하는 올바른 방법
24 깃털 같은 소문의 위력
25 행동으로 말하는 법
26 에어아시아를 살린 혀
27 유리천장을 깬 여성 신화
28 누가 이 의견을 회장님께 전하겠습니까?
29 의미 없는 경고는 없다
30 희망을 주는 경영이란?
잘나가는 리더는 왜 함정에 빠질까?
경영은 판단력에 달려 있다
벤치마킹은 단순한 베끼기?
어설픈 흉내 내기로 어려워진 기업은 너무 많아서 다 얘기하기도 힘들다. 경영이 어려워진 이유가 꼭 잘못된 벤치마킹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몰락의 속도를 높였을 것은 틀림없다.
STX그룹을 설립한 강덕수 회장은 재벌을 벤치마킹하려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진출한 분야의 업황이 장기 침체에 빠지며 어려움을 겪었다. 만약 그가 진짜 재벌이었다면 축적한 보유 자금이 많아 몰락을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재벌이 아닌 평범한 샐러리맨이었다. 그는 과감한 인수합병과 시장 개척으로 10년 만에 전 세계적으로 6만 명이 넘는 종업원을 거느리고, 20조 원에 육박하는 매출액을 달성하는 대기업 총수가 됐으며, 중국 다롄에 조선소를 설립하며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길을 따라가겠다는 포부를 임직원들에게 밝히기도 했다.
심지어 중요한 일을 총수가 독단으로 결정하는 방식이나 자식들이 지분을 보유한 계열사에 일감을 몰아주며 부를 물려주는 방식도 재벌을 벤치마킹했다. 경기가 장기간 상승하는 시기였다면 강 회장도 삼성이나 현대그룹 설립자처럼 재벌의 반열에 올랐을 확률이 높다. 하지만 시대가 그를 저버렸다. STX그룹의 주력 산업이었던 조선과 해운의 상황이 급격히 나빠지면서 차입에 의존했던 급성장이 부메랑으로 돌아온 것이었다. STX그룹의 주요 계열사는 문을 닫거나 채권단의 자금 수혈을 받으며 구조조정을 거듭했다.
팬택도 대기업을 벤치마킹하려다 실패한 사례다.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하기 위해서는 삼성전자와 LG전자를 모방할 수밖에 없었겠지만 결과적으로 그것은 잘못된 판단이었다. 전략을 바꿔 주력 제품을 차별화하거나 틈새시장만을 공략했다면 생존의 길을 찾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팬택을 인수한 정준 쏠리드 대표도 대기업이 할 수 없는 틈새 비즈니스를 찾겠다고 강조했던 게 아닐까.
물론 적절한 벤치마킹으로 성공한 기업도 있다. 현대차의 토요타 벤치마킹이 대표적이다. 현대차는 2000년대 초반부터 토요타의 장점을 배우려고 노력했다. 정몽구 현대차 회장은 품질경영을 주창하며 궁극적으로 "토요타를 능가하는 자동차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그 후 현대차는 품질이 비약적으로 발전했고, 2005년 이후에는 토요타가 오히려 현대차에서 벤치마킹할 게 없나 모색할 정도가 됐다.
현대차의 성공 요인은 어설픈 베끼기 차원을 넘어 다른 기업의 장점을 적절하게 응용했다는 점에 있다. 토요타의 생산 시스템과 협력업체 관리 방법을 한국 자동차산업의 현실에 맞게 바꿔 적용한 것이 효과적이었다는 의미다. 이런 측면에서 현대차는 창의적 벤치마킹의 길이 무엇인지 보여줬다고 평가할 수 있다. 토요타가 미국에서 대규모 리콜 사태를 겪으며 후진하는 사이, 끊임없이 질주할 수 있었던 힘도 여기서 나왔다. 현대차는 신모델을 개발하며 토요타를 다시 벤치마킹했다고 한다. 이번에는 국내 시장을 누비고 있는 수입차를 방어할 전략을 배우기 위해서다. 현대차 국내마케팅실 임직원들은 과거 토요타가 겪었던 일본내 수입차 공세의 방어 전략을 알아보기 위해 토요타 본사를 방문했다.
꾀가 많아 벤치마킹, 즉 따라 하기를 잘하는 동물로는 원숭이가 최고다. 원숭이가 특히 벤치마킹하고 싶어 하는 대상은 사람이다. 그러나 사람을 섣불리 흉내 내다가 위험에 빠지기도 한다. 이솝우화에는 원숭이를 주인공으로 하는 이야기가 많은데, 주로 재능은 많지만 너무 자만하는 바람에 낭패를 보는 모습을 보인다. 머리가 비상해 남을 잘 관찰하고 어려운 일도 쉽게 처리하지만, 경솔하게 행동하다가 위기에 처하는 것이다. 원숭이와 어부도 이런 측면을 묘사하고 있다.
원숭이가 큰 나무에 앉아 강가에서 그물을 던지는 어부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잠시 후 어부들은 점심을 먹기 위해 그물을 놓아둔 채 자리를 떴다. 그러자 천성적으로 따라 하는 것을 좋아하는 원숭이가 나무에서 내려와 어부처럼 강에 그물을 던졌다. 그러나 그물을 잘 다루지 못했기 때문에, 원숭이의 몸까지 그물에 얽혀 그만 물에 빠져 죽을 위험에 처하고 말았다. 원숭이는 탄식했다.
"이게 모두 내 잘못이지. 먼저 그물 던지는 방법을 제대로 배워야 했는데 그냥 고기를 잡겠다고 덤볐으니 이 꼴을 당한 거야!"
이와 반대로 원숭이의 뛰어난 능력을 강조하며, 어설픈 벤치마킹을 경계하는 원숭이와 낙타 이야기도 있다.
어느 날 동물들이 모여서 회의를 열었다. 회의가 지루해지자 원숭이 한 마리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춤을 추기 시작했다. 참석한 모든 동물들이 원숭이의 춤을 보고 박수를 보냈다. 원숭이가 주목받는 것에 샘이 난 낙타가 동물들 앞에 나섰다. 원숭이보다 더 칭찬을 받고 싶어서였다. 낙타도 원숭이처럼 춤을 추기 시작했지만, 문제는 그가 춤을 못 춘다는 사실이었다. 재미가 없어진 동물들은 낙타를 막대기로 쫓아버렸다.
성공적 벤치마킹의 열쇠는 자기 정체성 파악에 있다. 우리 기업만의 핵심 경쟁력이 없는 상태에서 경쟁사를 벤치마킹하는 것은 단순한 베끼기에 불과하다. 원숭이가 그물 던지는 어부의 흉내를 내다가, 낙타가 원숭이 춤을 따라 하다가 낭패를 당한 것처럼 어설픈 베끼기를 하다간 시장에서 발을 붙이기 힘든 상황까지 올 수도 있다. 벤치마킹의 묘미는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는 문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능력에서 나온다. 벤치마킹 이전에 왜 벤치마킹이 필요한지 냉철하게 분석하는 것이 먼저다. 벤치마킹이 비용과 정력만 낭비하고 끝날 확률이 성공할 확률보다 높기 때문이다.
같은 병을 앓는 환자라도 그 체질에 따라 다른 약을 쓴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임직원들의 성향과 능력, 기존 경영 방식과 재무 여건 등이 제각각이다. 업종이나 규모가 비슷하더라도 숨은 차이점이 있기 마련이다. 그것을 찾아낸 뒤 장점과 단점을 가려 벤치마킹의 상승 효과를 노려야 한다. 그것이 경쟁사의 장점을 취하고 약점은 버리는, 스마트한 경영자가 되는 길이다.
리더라면 누구나 한 번쯤 억울해진다
일본 수출 중소기업 사장에서는 키코(KIKO)라는 말이 악몽과 동의어로 들린다. 환율 변동에 대비한 환헤지(換hedge) 상품인 키코가 이런 취급을 받게 된 것은 2008년에 발생한 금융위기 때문이다. 녹인, 녹아웃(Knock-In, Knock-Out)이라는 영문 첫 글자에서 따온 키코는 환율이 일정한 범위 안에서 움직이면 미리 약속한 조건에 따라 달러 등 외국 화폐를 매매하도록 설계한 상품이다. 금융위기 직전 은행들은 일정 범위 밖으로 환율 변동이 일어날 가능성이 낮다며 중소기업들에 키코 가입을 권유했다. 수출 중소기업들은 유리한 조건에서 환헤지를 할 수 있고 은행도 일정 수익을 올릴 수 있어 양쪽 모두 손해 볼 것이 없다고 꼬드겼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런 설명은 사실이 아니었다. 금융위기로 환율 변동 폭이 커지자 키코에 가입한 중소기업들은 감당하기 힘든 손실을 봤다. 1985년 설립돼 국내외 보냉재 시장을 주도했던 화인텍도 그중 하나다. 보냉재는 액체가스가 밖으로 유출되지 않도록 막는 소재를 말한다. 이 회사는 1990년대 세계에서 세 번째로 LNG운반선용 초저온 보냉재 개발에 성공하며 주목을 받았다.
화인텍은 현대중공업을 비롯해 거의 모든 조선업체에 보냉재를 공급하면서 연매출 3,000억 원이 넘는 중견기업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금융위기가 발생하며 불운이 엄습했다. 관련 업체들이 어려워지면서 주문량이 급감하는 동시에 2006년 이후 체결한 키코에서 대규모 손실이 발생한 것이다. 결국 2008년부터 2년 연속 큰 적자를 냈다. 화인텍 대주주는 그동안 쌓아온 명성과 기술, 영업망을 존속시키고 회사를 살리기 위해서는 자금력 있는 곳에 회사를 매각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2009년 11월 동성그룹이 화인텍을 인수해 동성화인텍으로 재출발하게 된 배경이다. 자금 부담을 던 동성화인텍은 이후 보냉재 수요가 다시 살아나면서 성장을 이어갈 수 있었다.
키코로 피해를 입는 중소기업들은 대부분 화인텍과 비슷한 길을 걸었다. 에버다임같이 키코 위기를 극복한 중소기업도 있지만 이 회사의 대표들 역시 키코에 대한 얘기만 나오면 억울한 심정을 감추지 못한다.
키코 판매는 시티은행을 비롯해 외국계 은행들이 주도했다. 금융위기 이후 중소기업들은 이들 은행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지만 이기지 못했다. 그러나 중소기업들은 아직도 법원 판결을 납득하지 못한다. 분명히 은행이 잘못했는데 그것을 인정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은행과 법원 측은 키코가 환헤지에 부적합한 상품이라고 볼 수 없기 때문에 중소기업의 손실에 책임을 질 필요는 없다는 논리를 폈다. 또 이익을 볼 때는 가만히 있다가 손실을 입었다고 소송을 제기하는 것은 상식에도 맞지 않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피해 기업들은 은행들이 키코의 위험성을 충분히 알리지 않은 채 가입을 권유했다고 반박한다. 전형적인 불완전판매였다는 얘기다. 논리적으로는 은행들의 주장이 타당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론 중소기업들의 말이 진실일 가능성이 높다. 키코를 판매했던 은행 담당자들은 대부분 중소기업에 복잡한 상품 구조를 설명하지 않았거나 못했을 것이다. 키코로 손실을 본 중소기업 대표들이 죽을 때까지 억울한 심정을 지울 수 없는 이유다.
키코 소송같이 석연치 않은 판결은 현실에서 수없이 많다. 병원에서 오진 때문에 사망한 사람들 역시 적지 않다. 이런 세태를 폭로한 우화가 바로 크르일로프의 농부와 양이다.
한 농부가 자기가 기르는 양이 닭을 잡아먹었다고 소송을 제기했다. 재판장인 여우는 공정한 재판을 해야 한다며 심리를 시작했다. 먼저 농부가 양을 쳐다보며 말했다.
"오늘 아침 닭장 속 닭을 세어보니 두 마리가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살펴보니 없어진 닭의 뼈와 깃털만 닭장 속에 흩어져 있었지요. 그런데 그때 집안에는 오직 이 양밖에 없었다는 말입니다."
양은 억울하다며 이렇게 해명했다.
"저는 닭을 잡아먹지 않았습니다. 어젯밤에는 계속 잠만 잤거든요."
양은 이웃집 사람들을 증인으로 신청했다. 그들은 양이 한 번도 무엇을 훔친 적이 없다는 것과 양은 고기를 먹지 않는다는 사실을 재판장인 여우 앞에서 증언했다. 여우는 양쪽 얘기를 다 듣고 판결을 내렸다. 그 판결문을 그대로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양의 해명은 납득할 수 없다. 그의 말을 사실로 인정할 수 없는 이유는 모든 사기꾼이 양처럼 순한 얼굴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조사에서 명백히 밝혀진 사실대로 그날 밤 양은 닭장이 있는 집 안에 머물러 있었다. 닭이 정말 맛있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양이 닭을 잡아먹을 기회를 놓칠 리 없다. 식욕이라는 본능을 참고 닭을 잡아먹지 않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본 재판관은 양심에 따라 판결을 내린다. 닭을 훔쳐먹은 양을 사형에 처한다. 그리고 그 양고기는 본 재판관에게 주고, 가죽은 고소인인 농부가 가져가도록 한다."
사업을 하다보면 양과 같이 말도 안 되는 억울한 상황에 처할 때가 있다. 이런 상황을 피하고 싶지만 비즈니스에는 이해관계가 얽혀 있기 때문에 최소한 한 번은 이런 경험을 하게 된다. 운이 좋으면 한두 번에 그치고, 운이 따르지 않으면 수시로 겪는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억울한 상황에 직면하는 빈도가 아니다.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입장에 놓였을 때 그 상황을 냉정하게 처리하느냐, 아니면 분노를 참지 못해 상황을 더 나쁘게 만드느냐 하는 선택이다. 부조리한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현실을 인정한 뒤, 억울한 일이 일어났을 때 포기할 것은 포기하고 미래를 위해 다시 한 발을 딛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것이 가족과 임직원 등 내 주변 사람들을 살리는 방패요, 삶의 지혜다.
결단과 용기로 실행하라
로켓배송의 진짜 라이벌
2010년 쿠팡을 창업한 김범석 대표는 온라인쇼핑 시장의 후발주자로 성공할 수 있는 길을 배송 서비스의 차별화에서 찾았다. 주문 후 24시간 안에 상품을 무료로 배달하는 서비스인 로켓배송이 그것이었다. 여기에 한 가지를 더 붙였다. 바로 친절함이다. 신속하게 상품을 배송하면서도 구매자가 감동할 수 있는 배려를 제공하는 게 로켓배송의 가치라고 그는 생각했다.
그러나 이 조건을 충족하려면 두 가지가 필요했다. 하나는 고객이 원하는 상품을 항상 구비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래야 주문 하루 만에 배송을 할 수 있다. 쿠팡은 곳곳에 물류센터를 세워 판매할 제품을 미리 확보해놓는 방법으로 이 문제를 해결했다. 두 번째는 친절한 서비스였다. 이 요건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로켓배송을 책임지는 쿠팡맨을 2017년까지 순차적으로 4만 명이나 뽑는다는 청사진을 그렸다.
계획은 좋지만 문제는 돈이었다. 물류센터를 짓는 것도, 배송인력을 대규모로 확보하는 일도 큰돈이 든다. 쿠팡 측은 손정의 회장의 소프트뱅크로부터 투자받은 1조 1,000억 원이 여기에 투입될 것이라고 말했다. 계획이 그대로 진행된다면 쿠팡의 질주는 걱정이 없을 듯 보인다.
그러나 쿠팡의 앞을 가로막는 훼방꾼이 있다. 바로 물류업계다. 이들은 쿠팡맨이 자가용으로 상품을 배송해서는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화물자동차운수사업법을 위반한 것이라고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그들은 국토교통부를 비롯해 각 지방자치단체와 검찰, 법원까지 동원하며 쿠팡의 튀는 행동을 막으려 하고 있다.
지금까지 이 시도는 성과를 보지 못했다. 쿠팡의 로켓배송이 기존 비즈니스 모델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일반 배송은 판매자와 구매자가 있고, 그 사이에서 상품을 전달하는 택배업체가 있다. 반면 쿠팡의 로켓배송은 굳이 비유하자면 슈퍼마켓 주인이 점포에 있는 물건을 구매자의 집으로 배달해주는 형식이다. 판매자가 직접 배송하는 셈이다. 물류업계의 논리를 따르면 슈퍼마켓 주인도 운수사업법을 지켜야 하는 셈이다.
로켓배송이 새로운 실험이라는 점에서도 지나친 규제보다는 일단 성공과 실패 여부에 관심을 두고 지켜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쿠팡의 신개념 서비스를 중단시킨다고 물류업계가 크게 이익을 보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사실 쿠팡의 비약적인 성장과 질주에 위협을 느껴야 하는 곳은 물류업계가 아니라 기존 온라인 쇼핑몰들이다. 빠른 배송과 친절한 서비스로 차별화를 했다는 점에서 쿠팡의 실험과 대규모 투자는 고객을 지향하고 있다. 수요자의 선택을 받는 비즈니스 모델은 대부분 성공한다. 쿠팡이 성공한다면 온라인 쇼핑업계에 지각변동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
새로 부상하는 경쟁자를 없애기 위한 시도는 큰 실익이 없는 경우가 많다. 애플이 삼성전자를 대상으로 대규모 특허전쟁을 벌이며 스마트폰 시장을 양분한 것은 예외적인 일이다. 대부분의 경우, 소송에 휘말리면 관련 기업 모두가 어려워지기 마련이다. 효성그룹을 창업한 조홍제 회장은 자식들에게 소송하지 말라는 유훈을 남기기도 했다. 그는 이병철 삼성 회장과 동업하다가 불리한 조건으로 헤어졌지만 깊은 고민 끝에 소송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효성을 설립했다. 결과적으로 이 판단은 옳았다.
이솝우화에 멧돼지와 말과 사냥꾼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말이 함께 생활하는 멧돼지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사냥꾼을 끌어들였다가, 결국 자신의 운명까지 망친다는 내용이다. 경쟁자를 없애고 싶은 유혹이 생길 때 한 번쯤 음미해볼 만한 우화다.
말과 멧돼지가 한 들판에서 같이 살았다. 깔끔한 것을 좋아하는 말은 풀을 뜯거나 물을 마실 때도 조심스럽게 행동하고, 언제나 청결을 유지했다. 하지만 멧돼지는 말과 정반대로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기분 내키는 대로 풀을 뜯었다. 그러다 보니 들판 전체를 마구 짓밟았으며, 더러운 몸으로 아무 곳에나 뒹굴기도 했다. 물을 마실 때도 연못을 마구 헤집어 온통 흙탕물을 만들어버렸다.
말은 멧돼지를 쫓아내고 싶었지만 사납기로 유명한 멧돼지와 직접 싸울 수는 없었다. 고심 끝에 그는 사냥꾼에게 도움을 청하기로 했다. 사냥꾼은 말의 소원을 들어주기로 약속하면서 다음과 같은 조건을 내세웠다.
"멧돼지를 잡기 위해 너의 입에 재갈을 물릴 거야. 그리고 나를 네 등에 태워줘야 해."
말은 오직 멧돼지를 혼내고 싶다는 생각으로 깊게 생각해보지 않고 사냥꾼의 제안을 수락했다. 사냥꾼은 말의 등에 올라타 멧돼지를 공격했다. 결국 멧돼지는 사냥꾼의 창에 찔려 죽고 말았다. 말은 이제부터 깨끗한 곳에서 살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그런데 멧돼지를 잡고 나자 사냥꾼의 태도는 완전히 바뀌었다. 그는 말의 등에서 내리지 않고, 재갈을 물린 상태로 마굿간으로 끌고 갔다. 그 후로 사냥꾼은 말을 마음대로 부려먹었다.
선의의 경쟁이라는 말이 있다. 경쟁업체는 우리 회사를 긴장하게 한다는 점에서 순기능을 한다. 즉, 기업을 매너리즘과 나태에서 구해준다. 우리 회사가 생각하지 못한 시도를 하기도 하고, 조금의 틈만 보이면 공격하기 때문에 기업은 좀 더 분발하고, 완벽에 다가설 수 있도록 노력하게 된다.
물론 우리 회사를 헐뜯고 뒷다리를 잡는 경우도 있다. 우리 제품이나 서비스를 비슷하게 모방해 모처럼 개척한 시장을 빼앗고 독점적 수익을 박탈하는 곳도 있다. 신사답지 못한 행동으로 화가 나게 만드는 경쟁사도 적지 않다. 하지만 그렇다고 소송이나 국가 권력 등을 이용해 경쟁사를 아예 없애려고 하면 안 된다. 멧돼지를 쫓아내려고 했던 말처럼 자칫 함께 올가미에 걸려들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경쟁업체가 지나치게 변칙적인 행동을 하면 개별 사안에 초점을 맞춰 대응해야지, 전면전을 벌이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다.
희망을 주는 경영이란?
2016년 2월 9일, 미국의 관절염 자문위원회는 제약회사 셀트리온의 램시마를 승인하라고 미국 식품의약국(FDA)에 권고했다. 미국 식품 의약국이 이를 받아들여 승인하면 램시마의 미국 시장 진출이 확정된다. 램시마는 미국 얀센의 류머티즘 관절염 치료용 바이오의약품 레미케이드와 효능이 같은 항체 바이오시밀러(biosimilar, 복제약)로, 2014년 기준 약 11조 8,000억 원어치가 판매됐다. 램시마는 오리지널 의약품보다 30~40%저렴하기 때문에 수조 원대 매출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된다. 램시마는 2013년 8월 유럽에서 이미 판매 승인을 받은 바 있다.
한국에서 개발한 바이오시밀러를 미국과 유럽 등 의약품 선진국에서 판매하는 것은 2002년 셀트리온을 설립한 서정진 회장의 중요한 목표 중 하나였다. 그런 만큼 이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 서 회장의 감회는 남달랐을 게 분명하다.
그의 인생 역정에 대해서는 널리 알려져 있다. 삼성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해, 능력을 인정받으며 생산성본부에 이어 대우자동차에 발탁됐다. 대우차 임원으로 재직하던 시절 그의 기획력과 추진력은 대우그룹 총수인 김우중 회장이 인정할 정도로 발군이었다. 그러나 외환위기로 대우그룹이 해체되면서 백수 신세로 전락할 수밖에 없었다. 사업에 대한 열망과 넘치는 능력으로 그는 2000년 업종을 정하지 않은 채 무작정 창업했고, 약 2년의 모색 끝에 바이오시밀러가 유망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하지만 가지 않았던 길을 선택한 만큼 서 회장에게 생각했던 것 이상의 어려움이 기다리고 있었다. 언제 수익이 날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투자비는 눈덩이처럼 커졌다. 자금 압박으로 인한 극심한 스트레스 때문에 북한강으로 차를 몰고 가 투신하려고 했던 일화는 유명하다. 되지도 않을 바이오 사업에 욕심을 부리는 것은 아닌지, 사기 행각을 벌여 먹고 튀려는 것은 아닌지 의혹의 눈길을 던지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2004년부터 한 외국 제약사의 바이오의약품 원료를 대행 생산하면서 사정이 나아졌지만, 그에게 또 다른 시련이 덮쳐왔다. 2013년 공매도 세력의 공격으로 셀트리온 주가가 휘청거리기 시작한 것이었다. 공매도 방어를 위해 주가를 올리려는 과정에서 주가 조작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고 기소되기도 했다. 이 일로 서 회장은 2년간 천당과 지옥을 넘나들었다.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그는 다양한 종류의 바이오시밀러 의약품을 개발했고, 세계 각국에서 판매 허가를 받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램시마의 미국 판매 청신호는 이런 노력이 서서히 결실을 맺고 있다는 증거다.
서 회장의 과감한 투자에 힘을 얻어 삼성도 바이오시밀러에 투자를 확대하고 있어 한국이 세계 시장에서 의약산업의 새로운 강자로 부상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서 회장은 희망을 주는 기업을 일군 경영자라고 평가할 수 있다.
같은 맥락에서 임성기 한미약품 회장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2010년 창사 후 첫 적자로 고전하던 중에도 한국을 먹여 살릴 신약의 연구개발에 막대한 자금을 투자했다. 생즉사 사즉생(生卽死 死卽生)의 심정으로 2010년 이후 한 해도 빠지지 않고 매출의 10~20%를 연구개발에 할애했던 것이다.
10년 동안 1조 원 가까지 투자한 결과는 2015년에 나타났다. 2015년의 매출액은 누적 연결 기준 1조 3,175억 원을 기록했다. 이는 2014년 7,613억 원에 비해 73.1% 증가한 것이며, 국내 제약업계 사상 최대 매출이었다. 영업이익도 2,118억 원으로 514.8%나 뛰었다. 한미약품은 2014년 한미양행에 이어 한국 제약업체 중 두 번째로 1조 클럽에 가입하게 됐다.
그는 희망을 주는 기업을 만들겠다는 신념을 이렇게 표현했다.
"나는 기업인이 아닌 제약인이다. 제약은 생명을 다루고 기업은 이익을 좇는다. 기업이라면 신약 개발이라는 불확실성이 높은 분야에 큰 배팅을 하지 않을 것이다. 100년 제약 역사에서 아직까지 신약다운 신약 하나 개발해내지 못한 것은 치욕의 역사다. 이를 극복하는 길은 투자밖에 없다."
서 회장과 임 회장의 대선배로는 유일한 박사가 있다. 그야말로 국가와 국민들에게 희망을 준 기업가의 대명사다. 1926년 유한양행을 설립한 뒤 그는 당시 한국인들에게 필요한 각종 약을 개발하고 보급했다. 1930년대에 출시된 첫 국산 진통소염제 안티푸라민은 80년 넘게 한국인들의 통증을 완화시켜주는 의약품으로 명성이 높다. 깨끗하고 투명한 경영과 모든 것을 사회에 환원한 그의 모습은 후배 기업가들이 표본으로 삼기에 충분하다.
미국 작가인 트리나 폴러스가 쓴 『꽃들에게 희망을』은 극심한 시련을 통해 자아를 실현해야 세상에도 희망을 줄 수 있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때문에 1972년 출간된 후 40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스테디셀러로 자리매김 중이다. 이 책의 주인공 줄무늬애벌레는 희망을 주는 경영자들과 많이 닮았다.
알에서 깨어난 줄무늬애벌레는 나뭇잎을 먹으며 성장하던 중 삶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의문을 갖게 됐다. 어느 날, 그는 나뭇잎을 떠나 벌판 위에서 높은 탑을 이루며, 서로 먼저 위로 올라가기 위해 경쟁하는 애벌레들을 목격한다. 무엇 때문에 위로 올라가려는지 궁금했던 줄무늬애벌레는 그들의 경쟁에 동참하게 된다. 그곳에서 만난 노랑애벌레는 밑으로 내려가며 그에게 권유했다.
"남을 밟으며 올라가지 말고 함께 내려가자."
하지만 꼭대기에 무엇이 있는지 궁금했던 줄무늬애벌레는 치열하게 경쟁하며 맨 위로 올라섰다. 그러나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비슷한 모양의 탑만 곳곳에 보일 뿐이었다. 허무감이 몰려왔다. 바로 그때 노랑나비 한 마리가 그에게 다가왔다. 바로 노랑애벌레였다. 탑에서 내려온 줄무늬애벌레는 삶의 의미가 남을 밟고 위로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몸을 버리고 나비가 되는 것에 있음을 깨닫는다. 죽을 것 같은 순간들을 참고 견디며 줄무늬애벌레는 마침내 자신의 본모습인 나비로 탈바꿈한다. 줄무늬나비는 노랑나비와 함께 꽃들 위를 맴돌며 희망의 춤을 춘다.
세상에는 사회 전체를 마이너스로 만드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플러스로 발전시키는 사람도 있다. 비즈니스 세계에서도 불필요한 경쟁을 유발해 시장을 망가뜨리거나 축소시키는 인간이 있는가 하면, 새로운 것을 창조해 많은 사람들을 살기 좋게 도와주는 경영자들도 존재한다. 국가 경제가 발전하고 풍요로운 삶을 창조하려면 플러스 경영을 하는 기업가가 많이 나와야 한다.
다행스럽게도 유일한 박사와 같이 몸소 실천한 선각자들이 많다. 꽃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나비가 되는 고통을 기꺼이 견디는 애벌레처럼 결실을 맺기 위해 노력하는 경영자들을 응원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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