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전략 논쟁사

   
미타니 고지(역자: 김정환, 감수: 김남국)
ǻ
엔트리(메가북스)
   
28000
2013�� 11��



■ 책 소개
이 책 한 권이면 경영전략의 역사를 마스터할수 있다!
포지셔닝과 케이퍼빌러티 그리고 이노베이션. 경영전략을 논할 때 빠지지 않는 개념이다. 이 책은 컨설턴트와 학자,기업가들이 다져온 경영전략 100년의 역사를 담고 있다. 20세기 초 매니지먼트의 원류부터, 1960년대 시작되어 1980년대까지 압도적인우세를 보인 포지셔닝파와 그 이후 우세를 나타낸 케이퍼빌러티파, 21세기 이노베이션의 시대에 등장한 적응 전략까지. 최근 100년 동안비즈니스의 새 장을 열어온 세계 최고 기업들과 경영인들의 경영 논쟁사를 담고 있다. 

■ 저자 미타니 고지
K.I.T 도라노몬 대학원 교수이며와세다 대학 비즈니스 스쿨과 글로비스 경영대학원 객원 교수. 1964년에 오사카에서 태어나 후쿠이에서 성장했으며, 도쿄대학 이학부 물리학과를졸업하고 INSEAD MBA를 수료했다. 보스턴 컨설팅 그룹에서 일하다 액센츄어로 자리를 옮겼고, 2003~2006년에는 액센츄어 전략 그룹의총괄을 담당했다. 현재는 사회인 교육 외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에서 학생과 보호자, 교원을 대상으로 한 교육 활동을 중심으로활약 중이다. 또한 에이헤이지 고향 대사, 방과 후 NPO 애프터스쿨, NPO 법인 3keys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CRM, 고객은거기에 있다』『관상력~공기는 왜 투명한가?』『한순간에 중요한 내용을 전하는 기술』『측정하는 고동학』『초도해 전사고법 카탈로그』 등이있다.

■ 역자 김정환
건국대학교를 졸업했으며 일본외국어전문학교 일한통역과를 수료했다. 현재번역 에이전시 (주)엔터스코리아 출판기획 및 일본어 전문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옮긴 책으로는 『온기: 마음이 머무는』『청춘명언』『영원한청춘』『마흔 버려야 할 것과 붙잡아야 할 것들』『스펙이라는 거짓말』『손정의의 선택』『살아 있는 동안 꼭 읽어야 할 46권의 교양 고전』『한권으로읽는 핵심 삼국지』『10세부터 배우는 상대성 이론』『미국 대통령의 거짓말』『회사가 원하는 1등 인재』『얼라이언스: 나보다 남을 키워라』 외다수가 있다. 

■차례
감수의 글
머리말

제1장근대 매니지먼트의 세 가지 원류(1910~30년대)
제2장 근대 매니지먼트의 창세(1930~60년대)
제3장 포지셔닝파의대발전(1960~80년대)
제4장 케이퍼빌러티파의 군웅할거(1980~90년대)
제5장 포지셔닝과 케이퍼빌러티의 통합과정합(1990년대~)
제6장 21세기의 경영 환경과 전략론(2000년대~)
제7장 최후의 해답 ‘적응전략’(2010년대~)
보충장 전체 부감을 위한 B3C 프레임워크(1996년대)

후기
인명 색인
단체ㆍ브랜드명색인
서명 색인
전략 용어 색인





경영전략논쟁사


근대 매니지먼트의 세 가지 원류(1910~30년대)

페이욜은 ‘기업 활동’을 정의하고 기업의 ‘통치 프로세스’를 만들었다

광산 경영의 전문가가 밝힌 경영의 프로세스

프랑스의 실업가 앙리 페이욜(1841~1925)은 프랑스 교육의 최고봉인 그랑제콜 중 한 곳을 19세에 졸업하고 25세에 탄광 기사에서 주임 기사로 승진했다. 31세에는 광산 부문의 임원이 되었으며 37세에는 광산의 경영을 맡게 되었다. 그리고 10년 뒤에는 기술 혁신과 자원 고갈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고전을 면치 못하던 본사의 사장직에 취임했다. 그는 47세의 젊은 나이였지만 이미 광산 경영의 전문가였다.


취임 후 페이욜은 채산성이 없는 부문을 매각하고 신규 사업과 고수익 부문에 집중하는 등의 사업 전략뿐만 아니라 증자와 사채 발행 등 효과적인 재무 전략으로 도산 직전에 몰렸던 회사를 우량 기업으로 탈바꿈시켰고, 이후 30년 동안 최고 경영자로서 책무를 다했다. 그리고 50대 후반부터는 자신의 풍부한 경영 경험을 독자적인 경영 이론으로 정리하고 그 이론을 교육, 보급하는 데 힘썼다. 그 이론이 집대성된 책이 1917년에 출판된 『산업 및 일반 관리』다.


기업 활동을 여섯 가지로 나누고 경영 관리를 독립, 분리시키다

페이욜은 기업에 반드시 필요한 활동을 6가지로 분류, 정리했다([ ] 안은 각각에 대응하는 현대의 활동명).


① 기술 활동 = 개발, 생산, 성형, 가공[개발, 생산]

② 상업 활동 = 구매, 판매, 교환[판매, 구매]

③ 재무 활동 = 자본의 도달과 운용[재무]

④ 보전 활동 = 자산과 종업원의 보호[인사, 총무]

⑤ 회계 활동 = 재고 정리, 대차대조표, 비용 계산, 통계[경리]

⑥ 경영 활동 = 계획, 조직화, 지령, 조정, 통제[경영 기획, 관리]


68년 뒤 마이클 포터가 제창한 가치 사슬(Value Chain)과 똑같다. 특히 ‘경영 활동’은 획기적이었다. 페이욜은 비즈니스의 방향성이나 경영 방침을 정하는 일, 각종 활동 간의 조정 등을 전부 경영 활동으로 정의했다. 또 그는 조직 단계가 높아짐에 따라 경영 활동의 비율은 증가해야 하며, 사장은 시간과 능력의 50퍼센트를 경영 활동에 사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동시에 그는 대기업(또는 국영기업)이 될수록 경영 활동의 비율이 높아짐을 간파했다.


기업 경영, 관리의 보편적이면서 불변적인 프로세스를 제기하다

페이욜의 또 다른 중요한 공적은 기업의 경영 관리 프로세스를 제시한 것이다. 그는 경영 활동을 5가지 요소로 나눴다.


① 계획 : 미래 예측이나 경영 자원을 바탕으로 활동 계획을 세운다.

② 조직화 : 작업에 맞는 조직을 만들고 사람과 물자, 돈을 제공한다.

③ 지령 : 종업원의 상황을 자세히 알고 생산성 최대화를 꾀한다.

④ 조정 : 각종 활동 간의 균형과 타이밍을 잡는다.

⑤ 통제 : 피드백을 통해 에러를 줄여 각 활동이 계획대로 수행되게 한다.


기업을 경영, 관리한다는 것은 그 사이클을 지속적으로 돌리는 일이며, 이는 모든 조직을 막론하고 보편적이라고 그는 주장했다. 그는 애초에 전문 경영자였기 때문에 기업 전체가 관리 범위였다. 그래서 경영, 관리라는 의미로 ‘매니지먼트’가 아니라 ‘애드미너스트레이션(administration)’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그는 인간관계론이 나오기 전에 이미 인간 이해와 관계 관리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었다. 그래서 관리자들에게 "항상 종업원과 조직의 상태에 주의를 기울이시오 "라고 요구했으며, 그 유명한 ‘14개 관리 원칙’에서는 ‘원칙 11 공평 : 공평이란 공정하게 배려하는 것’이라고 규정했다. 규칙을 지키면서도 사려 깊은 배려를 할 때 기업을 통치할 수 있다는 것이 경영자로서 그가 얻은 교훈이었다.



포지셔닝파의 대발전(1960~80년대)

전쟁과 경영 전략 - 클라우제비츠, 란체스터, 손무

나폴레옹 전쟁이 탄생시킨 『전략론』

전략은 원래 군사 용어다. 이것을 기업 경영의 세계에서 사용하기 시작한 시기는 1950~60년대였다. 나폴레옹 전쟁(1803~1815)은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1832)을 탄생시켰고, 이 책을 통해 비로소 ‘전쟁 목적’에 관한 논의가 시작되었다. 클라우제비츠는 전쟁을 정치가들이 국가 간 분쟁을 해결하는 수단 중 하나로 봤다. 그렇지 않다면 ‘절대적 전쟁’, 즉 상대를 전멸시킬 때까지 싸우는 전쟁밖에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것을 기업 경영의 관점에서 생각하면 ‘전략에는 목적이 필요하다’는 뜻이 된다. 상대방의 철수인가, 아니면 일정 점유율이나 이익의 확보인가.


기업 전략의 관점에서 클라우제비츠가 오늘날 가장 높게 평가받는 점은 ‘미리 목표 지점을 정하지 않는’ 유연한 전투 방법에 관한 이론일 것이다.


클라우제비츠에 따르면 나폴레옹이 (처음에) 연전연승한 이유는 승리할 수 있는 (그리고 결정타가 되는) 곳에서만 싸웠기 때문이며, 이 점이 목표 지점을 차지할 생각만 하던 적을 당황케 했기 때문이었다. 1793년, 중요 거점인 툴롱항을 둘러싸고 영국군과 프랑스군이 대치했다. 양쪽 모두 한 발도 물러서지 않았고, 희생자만 계속 늘어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이때 나폴레옹이 한 진언이 (한번은 무시당했지만) 프랑스군을 승리로 이끌었다. 작은 언덕에 위치한 레기에트라는 작은 요새를 공격한다는 작전이었다. 물론 프랑스군은 그 요새를 함락했고, 그곳에서 항구를 향해 캐논포를 발사해 영국 함대를 격침시키고 항구를 차지했다. 목표 지점은 툴롱항이었지만 중요하면서도 적의 수비가 약한 ‘결정타가 되는 장소’는 레기에트 요새였던 것이다. 나폴레옹은 그 사실을 꿰뚫어 봤기에 승리할 수 있었다. 24세의 청년 나폴레옹이 황제의 자리를 향해 첫발을 내딛는 순간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이 탄생시킨 ‘란체스터 법칙’

제1차 세계대전(1914~1918)을 계기로 사람들은 ‘전략’을 이해하는 데 더 많은 노력을 쏟아붓게 되었다. 항공기를 병기로 사용한 최초의 전쟁이기도 했는데, 자동차와 항공기 엔지니어였던 프레더릭 란체스터는 항공기의 전투, 피해 상황을 분석하고 이를 ‘란체스터 법칙’(1914)이라고 부르는 두 가지 법칙을 이끌어냈다.


란체스터 제1법칙(1대1의 법칙) : 한 명이 한 명 하고만 싸울 수 있다면 수가 많은 쪽이 그 차이만큼 앞서며 승리한다.

란체스터 제2법칙(집중 효과의 법칙) : 총기나 화기와 같이 특정한 적을 복수의 아군이 동시에 공격할 수 있을 경우, 한 명이 복수의 상대와 싸울 수 있으므로 전력은 그 수의 제곱에 비례한다. 즉, 적이 3명이고 아군이 7명이라면 전략의 차이는 5.4배에 이르며, 적이 전멸할 때까지 싸워도 아군의 피해는 거의 없다.


따라서 약자(시장 점유율이 낮다)는 한 점에 집중해(틈새 집중 전략) 1대1의 접근전을 유도하고, 무기를 바꾸며(차별화), 자신보다 못한 적을 두들겨야 한다. 자사의 시장 점유율이 2위라면 먼저 싸워야 (혹은 M&A로 흡수해야) 할 대상은 1위가 아니라 3위 이하의 플레이어다. 그렇게 해서 점유율을 빼앗은 다음 1위에 도전하는 것이 약자의 전략이다.


강자는 정반대다. 좁은 곳으로 상대가 도망치도록 놔두지 말고 멀리서 장거리포(상품력이나 광고)로 싸우는 것이 효율적이다. 근접 백병전(영업 등)의 경우도 국소적으로 전력 집중하는 상대에게 재빠르게 대응하고 자원 투입만 게을리 하지 않으면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전쟁론의 고전 『손자』

시계편(始計篇 : 개전 전에 생각해야 할 것)으로 시작해 용간편(用間篇 : 첩보 활동)으로 끝나는 13편의 『손자』(BC 515)에서 손무는 무엇보다도 시계편의 묘산(廟算), 즉 전쟁을 시작하기 전에 적군과 아군의 상황을 분석, 비교하는 일을 중시했다. 이때의 분석 항목이 다음에 소개하는 오사칠계(五事七計)다.


오사(五事)

① 도(道 : 위정자와 백성들이 일치단결한 상태인가?)

② 천(天 : 기후 등의 자연)

③ 지(地 : 지형)

④ 장(將 : 전쟁 지도자의 기량)

⑤ 법(法 : 군의 제도와 군율)


칠계(七計) 

① 적과 아군 중 어느 쪽의 군주가 민심을 잘 파악하고 있는가?

② 장군은 어느 쪽이 더 우수한 인재인가?

③ 천리(天利)와 지리(地利)는 어느 군에 더 유리한가?

④ 군율은 어느 쪽이 더 엄격히 지키고 있는가?

⑤ 군대는 어느 쪽이 더 강력한가?

⑥ 병졸의 훈련은 어느 쪽이 더 잘 되어 있는가?

⑦ 신상필벌은 어느 쪽이 더 명확히 하고 있는가?



케이퍼빌러티파의 군웅할거(1980~90년대)

벤치마킹을 통해 부활한 제록스와 사우스웨스트, 포드

제록스의 반격, 경영자에게서 배워라!

제록스에 1970년대는 고난의 시대였다. 1970년에 캐논이 보통지 복사기 시장에 뛰어들자 리코(RICOH Company)와 미놀타(Minolta)가 그 뒤를 이었고, 1975년에는 미국 기업의 소송으로 기껏 취득한 특허가 의미를 잃고 말았다(1975년에 연방무역위원회는 제록스에 복사기 관련 특허를 경쟁사에도 라이선스하라는 결정을 내렸다). 그 결과 제록스의 시장 점유율은 급락했고, 1982년에는 13퍼센트까지 떨어졌다. 압도적인 포지셔닝의 강점을 순식간에 잃어버린 10년이었다.


그러나 제록스는 쉽게 무너질 회사가 아니었다. 제록스의 경영진은 자사가 ‘품질, 시간, 비용’의 모든 측면에서 일본 기업에 뒤떨어짐을 겸허히 인정하고 기업 혁신을 강력히 추진했다. 이를 위한 수법이 회사 차원의 ‘TQM’ 도입과 ‘벤치마킹’의 활용을 통한 체계적인 업무 개선이었다. 타 부서나 타 기업의 우수 사례에서 목표와 프로세스를 배우는 수법이다.


1979년, 제록스는 먼저 ‘저렴하고 품질이 우수한’ 경쟁사의 제품을 분해해 조사했다. 조사 결과 경쟁사 제품의 품질과 단가에 놀란 경영진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그 비밀을 파헤치고자 먼저 후지제록스에 조사팀을 보냈다. 후지제록스의 도움으로 경쟁자의 개발, 생산, 판매 프로세스를 조사한 제록스는 자신들이 ‘시장 이전에 공장 현장 수준에서 이미 패배한 상태’임을 깊이 깨달았다.


이 교훈은 즉시 생산 활동과 물류 활동에 활용되었고, 결국은 회사 전체의 모든 활동에 걸쳐 ‘벤치마킹’이 표준 과정으로 도입되기에 이르렀다.


업계 외부의 우수 사례에서 배워라!

경쟁 상대의 상품을 분해해 비밀을 파헤치는 ‘리버스 엔지니어링(Reverse Engineering)’으로 시작된 제록스의 벤치마킹은 내부 벤치마킹(사내 비교)과 경쟁자 벤치마킹(업계 내 비교), 기능 벤치마킹(업계 외 비교), 일반 프로세스 벤치마킹(업무 외 비교) 등으로 발전되고 심화되었다.


제록스는 창고 업무를 아웃도어 용품 판매 회사인 L. L. 빈(L. L. Bean)으로부터 배웠다. 다품종화가 진행된 어패럴 관련 회사의 창고에서는 피킹 리스트가 자동으로 작성되고 짐수레의 위치가 지정되며 적재 순서나 상자의 크기도 지정되는데, 이것을 응용함으로써 제록스는 200만 달러 분량의 재고를 줄이는 등의 성과를 올렸다. 또 청구 업무를 아메리칸 익스프레스로부터 배워서 고객 만족도를 38퍼센트 높였을 뿐만 아니라 간접 사무비를 50퍼센트, 자재 조달비를 40퍼센트 절감하는 데 성공했다.


이런 사례들은 업계 외부의 우수 사례를 배우는 ‘기능 벤치마킹’의 좋은 예다. 제록스는 일본 기업이 무의식중에 하고 있던 개선 조사 활동을 ‘벤치마킹’이라는 이름으로 체계화해 일본 기업에 대한 반격을 개시했다. 그리고 1989년에는 시장점유율을 1982년의 3.5배인 46퍼센트까지 끌어올렸다.


 

포지셔닝과 케이퍼빌러티의 통합과 정합(1990년대~)

베조스는 새로운 포지셔닝을 새로운 케이퍼빌러티로 실현했다

빠르게 창업해 천천히 성장한 아마존

아마존(Amazon.com,Inc.)을 창업한 제프 베조스는 압도적인 속도감으로 인터넷 비즈니스에 뛰어들었다. 1994년 봄, 그는 갓 태어난 인터넷의 이용률이 무려 전년 대비 23배라는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상승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이에 베조스는 즉시 ‘인터넷을 커뮤니케이션 이외의 수단으로 사용할 수는 없을까?’라고 생각하고 인터넷에서 팔면 좋을 것 같은 물건 20가지의 목록을 만들었는데, 그 첫 번째가 바로 ‘책’이었다.


당시 책은 이미 서점뿐만 아니라 통신 판매를 통해서도 팔리고 있었다. 따라서 소비자는 인터넷에서 책을 사는 데 저항감이 없을 것이 분명했다. 게다가 책은 품종이 워낙 다양한 탓에 종이 카탈로그에 전부 싣기에는 한계가 있지만 인터넷이라면 효율적으로 목록을 올릴 수 있었다. 경쟁자를 살펴봐도 실물 서점 가운데 1위 기업의 점유율이 20퍼센트도 되지 않았으므로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베조스는 지금이야말로 천재일우의 기회라고 확신했다. 그해 여름, 그는 높은 급여를 받던 헤지펀드의 수석 부사장 자리를 내던지고 아내와 함께 뉴욕을 떠났다. 갈 곳도 정하지 않은 채, 이사 업자에게는 그저 "서해안으로 가 주시오 "라고 부탁했을 뿐이었다. 트럭이 서쪽으로 달리는 사이에 그는 텍사스로 날아가 의붓아버지에게서 중고 쉐보레를 입수했다. 그리고 시애틀로 가서 바로 집을 계약하고 워크스테이션을 3대 수입하며 사업 준비에 착수했다. 이삿짐을 실은 트럭은 아직 도착하지도 않은 상태였다.


이와 같은 빠른 속도야말로 베조스가 성공한 요인이었다. 급속하게 변화하는 인터넷, 특히 전자 상거래 분야에서 누구보다 빨리 노하우를 손에 넣고 그것을 활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터넷 버블이 미국을 뒤덮었던 1999~2001년경, 아마존은 (상대적으로) 천천히 성장했다.


아마존은 절대적인 케이퍼빌리티에 투자했다

2000년, 그때까지 전년 대비 2배 이상 성장하던 매출액이 전년 대비 68퍼센트 증가로 둔화되었고 최종 손실은 마침내 1,000억 엔 돌파했다. 그러나 이것은 베조스의 계획대로였다.


2000년 시점에 아마존은 미국 전역에 8개 물류 센터를 보유하고 있었는데, 이 가운데 6개가 그해에 건설된 것이었다. 건설비는 한 곳당 약 5,000만 달러에 이르렀다. 물류 센터의 총 면적은 3만 제곱미터에서 50만 제곱미터로 확대되었고, 운영을 위해 종업원의 수가 약 8,000명으로 늘었다. 증권 애널리스트들은 베조스의 이런 투자에 비난을 퍼부었다. "물류 센터 투자를 당장 멈추시오 ", "우리는 인터넷 비즈니스에 투자했지 물류 센터에 투자한 것이 아니오 ", "더 빠르게 성장하시오! "


여기에 2000년 4월의 인터넷 버블 붕괴까지 겹치며 아마존의 주가는 계속 떨어졌고, 2001년 4월에는 8달러가 되었다. 최고점을 찍었던 시기에 비하면 1/14에 불과한 수준이었다. 그러나 베조스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거대 물류 센터가 아마존에 압도적인 ‘지속적 경쟁력’을 가져다 줄 것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까지 미국의 소비자에게 다음날 혹은 다다음날까지 확실히 상품을 전달하는 물류 업자는 존재하지 않았다. 만약 고객들이 ‘빠른 배송’을 가치로 여긴다면 이것이야말로 밸류 이노베이션이 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적수는 없다.


영원히 블루 오션이기 위해

아마존의 실점포보다 수십 배나 많은 ‘상품 종류’와 적확한 ‘추천’, 그리고 ‘빠른 배송’은 미국의 3억 소비자를 매료시켰다. 베조스는 이것을 거대한 IT와 물류 투자를 통한 케이퍼빌러티(capability)로 실현했다. 세계 최대급의 블루 오션을 완성한 것이다.


2003년, 아마존은 마침내 흑자로 돌아서며 다시 성장 궤도에 올랐다. 그리고 9년 뒤인 2012년, 실물 서점의 일인자인 반스 앤 노블의 도전도 물리친 아마존의 연간 매출액은 611억 달러에 달했다. 그러나 그 여정은 유일무이한 플레이어의 자리를 유지하기 위한 싸움이기도 했다. 판매 상품을 책에서 다른 품목으로 확대하고, 서적의 전자화를 촉진했으며, 클라우드 서비스에 진출했다. 그리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물류와 IT에 더 엄청난 금액을 투자했다.


2012년 7~9월기 결산에서 아마존은 9년 만에 최종 적자를 보고했다. 매출이 전년 대비 27퍼센트 증가했지만 그 이상의 선행 투자를 계속했기 때문이다. 주가는 급락했다가 다시 급반등해 260달러 전후(시가 총액 1,200억 달러)라는 창업 이래 가장 높은 수준을 회복했다. 블루 오션을 만들기 위한 아마존의 싸움은 영원히 계속될 것이다.



최후의 해답 ‘적응 전략’(2010년대~)

유행을 예측하지 않는 의류 브랜드 ZARA

패션 업계의 장대한 산업 가치 사슬의 문제점

패션 의류 업계는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이다. 유행에 맞는 상품을 제공하는 데 성공하면 큰돈을 벌 수 있지만, 유행에서 벗어나면 반값 할인을 해도 팔리지 않는다. 유행했다 싶어도 거리에 똑같은 무늬로 뒤덮인 순간, 유행은 끝난다.


그 이유는 내부 환경인 산업 가치 사슬의 시간적 길이가 외부 환경인 유행의 변화 속도와 전혀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의류의 모양은 마지막에 어떻게든 수정이 가능하지만, 천의 느낌이나 소재, 색은 갑자기 바꿀 수가 없다. 대략 1년 전에는 정해 놓아야 염료 회사가 원료를 확보해 염료를 만들고, 방적 회사가 실을 꼬아 물들이고, 직물 회사가 천으로 만들고, 의류 회사가 기획을 하고, 봉제 회사가 자르고 꿰맨 뒤에 비로소 점두에 진열된다. 그러나 1년 전에 결정한 색이나 천이 그대로 유행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그래서 국제적인 담합이 진행된다. 그것이 바로 패션쇼다. 시즌이 시작되기 몇 달 전에 소비자를 향해 일제히 "올 봄에는 면으로 만든 파스텔컬러 패션이 유행할 겁니다 "라고 발신하는 것이다.


사실 담합은 그보다 훨씬 전부터 시작된다. 2년 전에는 국제 유행색위원회가 유행색을 ‘예측’하고(인터컬러), 1년 전에는 이탈리아에서 실과 천의 견본 시장이 열려 업계 관계자들이 "이것이 유행할 것이다 "라고 ‘합의’한다. 그리고 온 힘을 다해 소비자들을 그쪽으로 유도한다. 그러나 이렇게까지 하는데도 유행을 100퍼센트 예측할 수는 없다는 점이 패션 업계의 무서움이다. 이렇게 리스크가 큰 상품을 어떻게 싸게 팔 수 있겠는가? 그런데 이것을 바꾼 회사가 GAP과 베네통이다.


GAP은 규모의 힘으로 패션 상품의 가격을 낮췄다

1969년, 유대계 미국인인 도널드 피셔와 도리스 피셔 부부는 그때까지 각광을 받지 못했던 10대를 대상으로 리바이스와 레코드를 제공하는 체인점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이 체인점은 1975년에 25점포를 돌파할 만큼 대성공을 거뒀고, 그들은 마침내 독자 브랜드인 GAP을 기획, 판매하기 시작했다.


1986년, GAP은 자신들을 SPA라고 부르게 되었다. 제조 기능은 외주를 주지만 소매점이 기획해 발주하므로 다소 유행에서 벗어났더라도 전부 팔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다점포 전개를 통해 한 아이템당 발주량을 늘릴 수 있었고, 아시아 각국의 공장과 직접 거래함으로써 대폭적인 비용 절감에 성공했다. 또한 서플라이체인의 관리에도 신경을 써서 제고 회전수가 경쟁자의 두 배인 연간 7.5회나 됐으며 신상품도 2개월마다 투입하는 체제를 구축해 압도적인 경쟁력을 확보했다. GAP은 그럭저럭 패션성이 있는 상품을 매우 저렴한 가격에 제공함으로써 대성공을 거뒀다. 포지셔닝과 케이퍼빌러티의 승리다. 1987년에는 600점포를 넘겼고, 매출액은 10억 달러를 돌파했다.


같은 시기에 이탈리아에서 출발한 베네통도 독자적인 컬러 센스와 후염 기술, 그리고 이탈리아 지방 중소 업체의 네트워크를 무기로 패션성 있는 SPA로서 유럽을 석권하기 시작했다.


ZARA는 상품 개발 속도로 패션성을 높였다

1975년, 스페인의 인디텍스는 어려운 상황에 빠져 있었다. 여성용 속옷 회사로 급성장하던 순간에 독일의 도매상이 발주를 대량으로 취소한 것이다. 인디텍스는 고민 끝에 고육지책으로 스페인 전역에 소매점을 전개해 그 상품들을 간신히 팔아 치우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1977년, 인디텍스는 독자 브랜드인 ZARA를 만들고 패션 의류 업계에 SPA로 참가했다. ZARA는 ‘유행을 예측하는 힘’에 의지하지 않기로 했다. "올해의 유행은 이것입니다 "라고 선전(정보 발신이라고도 한다)해서 ‘유행을 창조’하지도 않았다. 그 대신 신제품을 지속적으로 내놓아 소비자의 ‘진짜’ 취향을 찾고 그 취향에 맞춰 나갔다. 시장에 투입해서 일주일 동안 판매가 시원치 않으면 그 아이템은 점포에서 사라지고 추가 주문도 취소된다. 항상 ‘지금의 유행을 좇기’ 위해. 한편 아무리 잘 팔려도 4주 이상은 점포에 진열하지 않는다. 고객이 계속 점포를 찾아오게 하기 위해, 그리고 ‘지금 사지 않으면 다시는 구할 수 없다’는 생각을 심어주기 위해.


그 결과 ZARA 애호가는 1년에 평균 17회(3주에 한 번) 점포를 찾는다고 한다. 다른 브랜드는 연간 4회라고 하니 큰 차이다. 유행을 예측하지 않고 충실하게, 그리고 신속하게 쫓아간다. 그렇게 하면 매출도 안정되고 할인 판매(염가 판매)의 비율이 낮아져 수익성도 높아진다.

인디텍스의 매출은 21세기에 들어와 급성장했고, 2009년에는 마침내 GAP을 제치고 세계 최대의 SPA가 되었다. 신상품을 끊임없이 만들며 실제로 유행을 측정한다. 그 시행착오가 세계 최대의 의류 기업을 탄생시킨 것이다.


* * *


본 도서 정보는 우수 도서 홍보를 위해 저작권자로부터 정식인가를 얻어 도서의 내용 일부를 발췌 요약한 것으로, 저작권법에 의하여 저작권자의 정식인가 없이 무단전재, 무단복제 및 전송을 할 수 없으며, 원본 도서의 모든 출판권과 전송권은 저작권자에게 있음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