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인지메이커 혁명

Rippling

   
베벌리 슈왈츠(역자: 전해자)
ǻ
에이지21
   
16000
2013�� 03��



■ 책 소개
급변하는 격동의 시대!
우리 사회와 지구촌 전체의 기반을 파괴할 듯한 이 심각한 문제들을 과연 어떻게 다룰 수있는가?

저자 베벌리 슈왈츠는 아쇼카의 글로벌 마케팅부사장이다. 아쇼카(Ashoka)는 전 세계의 사회혁신가를 발굴하고, 혁신을 위한 그들의 노력을 지원하고 있는 국제 네트워크다. 아울러사회혁신가들이 체인지메이커들에게 변화에 대한 새로운 영감을 불어넣음으로써 그들을 통해 변화의 물결이 점차 더 큰 세상으로 퍼져나가도록, 그파문이 지속될 수 있도록 함께 지원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책에서 저자는 심도 깊고, 지속적이며, 체계적인 변화를 이루기 위해 개인 리더 혹은 조직 누구나 응용할 수 있는 모델을 선보인다. 오랜 세월에걸쳐 유효성이 입증된 모델은 다섯 가지 원칙에 기초한다.

* 제도적 규범을 구조 조정하라.
* 시장의 역학을 변화시켜라
* 시장의 원리로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라.
* 세상 누구나 완전한 시민권을 누리게 하라
* 공감 능력을 키워내라

이 실행 가능한 원칙들은 책 속에 소개되는 사례와 함께 생생하게 전달된다. 이야기의 주인공들은 세계 곳곳에서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어낸 보통 사람들, 체인지메이커들이다.

이 책을 통해 저자는 어떻게 효과적인 체인지메이커가 될 수 있는지 예증해 보인다. 어디의 누구든, 한 사람 한 사람의개인이 지닌 힘으로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을 건강하고 안녕한 세상으로 만들어준다는 것이다. 사회문제, 환경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가장 혁신적이고효과적인 접근방식들 가운데 일부를 보여주며 공감, 창의성, 열정, 끈기가 함께할 때, 삶을 바꾸는 의미 있는 진보가 가능하다는 것을 실례를 통해확실하게 입증하고 있다.

■ 저자 베벌리슈왈츠
아쇼카의 글로벌 마케팅 부사장이며, 사회혁신가를 연구하는 행동과학자이기도 하다. 실천적으로는 다양한 사회문제와관련된 정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가운데 사회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아쇼카에 합류하기 전 그녀는 사회적 이슈를 다루는 공공마케팅 전문가였다.영리와 비영리 관련 커뮤니케이션과 미디어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했던 그녀는 수많은 대규모 마케팅 프로젝트를 이끈 바 있다. 특히 그녀는포괄적인 소셜 마케팅 캠페인을 주도했던 베테랑이다. 그 가운데서도 건강과 교육 관련 이슈들은 그녀가 헌신해온 분야다. 덕분에 그녀의포트폴리오에는 이와 관련된 다양한 주제들, 흡연 예방과 비흡연자의 권리 보호, 시력 관리와 시력 상실 예방, 마약 예방, 교육에서의 양성평등,교육과 환경 개혁, 에이즈에 대한 인식 전환 및 예방 등을 다루는 프로젝트와 캠페인이 주를 이루고 있다. 
그녀가 아쇼카에 합류한 것은 2007년. 지금 그녀의 도전 과제는 세상 모든 곳의모든 이들이 세상을 바꾸는 긍정적인 세력이 되도록 그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일이다. 

그녀는 학부에서 교육학을 전공했으며, 대학원 석사과정에서 행동과학을 전공했다. 미네소타 대학과 뉴욕의 시티대학에서 이학 석사학위 취득. 뉴욕 출신인 그녀는 그동안 미니애폴리스, 샌프란시스코, 애틀랜타를 거쳐 지금은 워싱턴 DC에 살고 있다. 전세계로 출장길에 오를 때마다 그녀와 가장 자주 동행하는 친구로 스킨 스쿠버 장비를 소개할 만큼 열혈 다이버이기도 하다.

■ 역자전해자
국어국문학과 커뮤니케이션 사회학을 전공하고, 졸업 이후 20여 년간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로 일해왔다. 주된 업무는,국내외 기업들을 위한 광고 캠페인에 이어 정부 기관 및 비영리단체와 함께한 공공 캠페인. 그 사이 이름 앞에 카피라이터,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수석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캠페인 디렉터라는 단어가 찍힌 명함을 차례로 가졌었다. 현재는 관계 변화를 위한 커뮤니케이션을 주제로, 비영리단체와청소년 대상으로 강의와 퍼실러테이팅을 하고 있다. 

옮긴책으로는 『넥스트 마켓: BOP 시장을 개척하는 5가지 성공 전략』(에이지21)과 『이상한 나라의 연애학 개론: 남녀관계 리셋솔루션』(행성비)이 있다.

■차례
서문: 아쇼카 창립자 빌 드레이튼의 질문
추천의 글: 아쇼카 한국 대표 이혜영
프롤로그 : 가지 못했던길, 그들과 나를 갈라놓은 것은-

1부제도적 규범을 구조 조정하라
01장 평범한 시민들에게 에너지 권력을 - 독일
02장 가르치는 법을 가르치다 -미국
03장 인력거 노예에서 주인으로 - 인도
04장 미망인에게 씌웠던 투명인간 베일을 벗기다 - 네팔
2부 시장의 역학을 변화시켜라
05장 역발상의위탁경영으로 경제의 빗장을 풀다 - 과테말라
06장 ‘옥수수 411’ 전화로 달라진 소농의 삶 - 케냐 
07장 대안 경제로지역공동체 재정에 활력을! - 브라질

3부시장의 원리로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라
08장 쓰레기에서 황금으로 - 페루
09장 착한 자본주의를 디자인하다 -미국
10장 똥 치우는 일만큼 중차대한 일은 없다 - 나이지리아
11장 지구가 원하고 서민이 원하는 서민 주택 -프랑스

4부 세상 누구나 완전한 시민권을누리게 하라
12장 거리의 아이들에게 재정 자립 능력을! - 세계
13장 ‘우리’와 ‘그들’ 사이의 벽을 넘어서다 -독일
14장 능력이 된 자폐증 - 덴마크
15장 미치광이들, 친근한 이웃이 되다 - 아르헨티나
5부 공감 능력을 키워내라
16장 갓난아기가가르치는 공감의 교실 - 캐나다
17장 종교 간 갈등과 싸울 투사를 육성하다 - 미국
18장 아름다운 저항 -팔레스타인





체인지메이커 혁명


제도적 규범을 구조 조정하라

평범한 시민들에게 에너지 권력을 - 독일

독일의 검은 숲, 슈바르츠발트 지역에는 슈나우라 불리는 오지 마을이 있다. 2,500명의 주민이 살고 있는 이 작은 마을의 한가운데 있는 교회 첨탑에 올라가서 마을을 내려다보면, 반짝이며 빛을 내는 수백 개의 태양열판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마치 깜빡깜빡 신호를 보내며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우리가 해냈어! 우리가 해냈다고! 마침내 전력 독점을 깼어! 이제 우리가 쓸 전기는 우리가 직접 만들어 쓰게 되었지. 슈바르츠발트 지역에서 쓸 전기도 모두 우리에게 맡겨."


별로 놀라울 것도 없이 슈나우는 슈나우 전력공장, 즉 EWS의 대표 우르술라가 가족과 함께 살고 있는 곳이다. 하지만 그녀의 가족 구성은 좀 놀랍다. 남편과 아이들 외에도 수천 명의 식구들이 더 있기 때문이다. 그들 모두는 EWS의 주인이자, 동료이자, 회원들이다. EWS는 20년 전 우르술라가 만든 전력회사. 원자력과 석탄 에너지를 재생 에너지로 대체하기 위해서였다. 그녀는 무슨 생각으로 이런 일을 하게 된 걸까?


그저 평범한 주부일 뿐

체르노빌은 우르술라의 터닝 포인트였고, 후쿠시마는 그녀의 티핑 포인트(tipping point, 작은 변화들이 어느 정도 기간을 두고 쌓여, 이제 작은 변화가 하나만 더 일어나도 갑자기 큰 영향을 초래할 수 있는 상태가 된 단계-옮긴이)였다. 25년이라는 간격이 있지만, 두 원전 사고는 지구상의 에너지 문제를 사람들이 마음속에 깊이 각인시켰다.


1986년 우르술라는 그녀의 표현대로라면 그저 가정주부일 뿐이었다. 당시 많은 유럽인들처럼 그녀도 체르노빌 가까이에 있다는 것에 대해서, 그 재해의 여파가 행여 그녀의 마을, 그녀의 주변, 그리고 그녀의 자식들에게 미칠까봐 걱정스러웠고 두려웠다.


우르술라는 체르노빌 핵 누출 시기에 대퇴골 골절로 막 치료를 받았던 터라 나설 입장이 아니었다. 방사성 입자가 그녀의 집에서 멀지 않은 길과 도로에 떨어졌을 때도, 그녀는 그저 밖에서 놀고 있는 자식들을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볼 수밖에 없었다. 그때가 바로 그녀의 삶에서 방사성 낙진의 위험성을 깨닫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우르술라는 원자력을 종식시키는 데 나서기로 맹세한다. 뜻하지 않은 폐해투성이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우선 그녀는 남편과 함께 같은 마을에 사는 친구들을 설득해 그들의 아이들을 안전하게 지켜낼 대안을 강구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설립한 것이 핵 없는 미래를 위한 부모 모임이었다.


그 후 13년 동안 우르술라와 그녀의 대가족이 해온 일은 지역 주민과 정치인을 움직이는 것이었다. 그들에게 왜, 그리고 어떻게 에너지 소비를 줄여야 하는지, 그리고 원자력 발전에서 손을 떼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설득했다. 다른 한편,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것뿐만 아니라 절약하는 것에 대해 필요한 모든 것들도 배웠다. 그리고 마침내 주민투표에서 그들이 이겼다. 국가 전력망으로부터 슈나우 마을은 독립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리고 재생 가능한 에너지원을 자체 개발했다.


승리로 막을 내린 긴 여정을 끝내고, 우르술라가 깨달은 것이 있었다. 슈나우 주민들이 원하는 정책적 조치를 통과시킬 수 있었던 것은 자신들이 이루어 낼 수 있으리라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는 사실이다. 그들이 해낸 일은 남들이 항상 불가능하다고 말해온 것이었다. 


1991년 우르술라는 앞장서서 지역 전력망(전기 전송 및 배분 네트워크)을 사들이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그것을 대체할 새로운 기업을 세웠다. 독일에서는 물론 유럽에서도, 협동조합형 전력회사로는 첫 번째 사례였다. 6년 후, 언론이 전기 반란군이라고 부른 우르술라와 그녀의 동지들은 독일 전역에서 그들의 전력망을 사들일 기금을 모으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짧은 시간에 기적적으로 기금 마련에 성공한다.


주택 단지 난방 발전소와 태양열판 설치를 시작으로 EWS는 자체 에너지의 일부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백 년간 지속되어온 독일 거대 전력회사들의 독점이 깨진 것이다. 여론은 EWS가 전기와 전력 산업의 전체 구조에 영향을 미친 결과라고 이야기했다. 그로부터 일 년 후, EWS는 독일 전역에 그들의 재생 에너지를 팔 수 있게 된다. 정부가 에너지 산업의 공적 규제를 해제한 것이다. 반짝거리는 태양열판과 함께 EWS는 이제 전국적으로 퍼져갔다.


대체 가능한, 다시 생각하는, 새롭게 거듭나는, 재생 가능한

만일 우리의 미션이 사회 변화에 단단히 뿌리박고 있다면, 한 가지 자유가 주어진다. 바로 사람들을 끌어들여 당신이 꿈꾸는 변화의 움직임을 사회 운동으로 거듭나게 할 수 있는 자유이다. 목표한 대로, 에너지 공급의 분산과 민주화를 위해 우르술라는 기업을 온전히 공영화하기로 결정했다. 누구라도 투자하면 이 기업의 주인이 되고, 기업과 관련된 제반 사안에 대한 의결권을 갖게 될 것이다. 훌륭한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러기 전에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사람들에게 투자하게 만들 동기를 부여해야 했다. 마을 사람들을 대상으로 재생 에너지, 핵에너지, 화력 에너지에 대한 교육을 시작한 이유다.


EWS와 같은 기업은 일종의 혼종 사회 모델이다. 이는 독일에서뿐 아니라 세계 대부분의 지역에서도 결코 흔하지 않은 사례이다. 그러나 일찍부터 우르술라는 이런 운동을 시작하려면 사람들, 그것도 아주 많은 사람들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들은 돈만이 아니라 그들이 가진 능력, 열정도 함께 투자해야만 했다. 우르술라가 제시한 모델 덕분에 이 마을 모든 주민이 그들이 필요한 에너지를 스스로 해결하는 데 동참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의 미래도 스스로 책임질 수 있게 되었다. 이제 그들 모두가 변화에서 없어서는 안 될 일부분이 되었고, 개혁의 성격을 규정짓는 한 요소가 된 것이다. 그리고 작든 크든 각자가 원하는 만큼, 할 수 있는 만큼 체인지메이커가 된 것이다.


평범한 시민을 끌어 모으다

EWS가 지나온 시간을 떠올릴 때마다 우르술라는 전율을 느낀다. 그녀가 세운 공영 기업 EWS는 2009년 6억 7천만 유로, 2010년 약 8억 2천만 유로의 자산 가치를 지니게 되었다. 그녀의 바람은 앞으로 몇 년 뒤에는 백만 명의 소비자들에게 전력을 공급하는 것이다. 우르술라가 그저 가정주부이기를 포기한 후 25년이 지났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그녀가 여전히 확신하고 이는 것은 이 모델의 핵심은 평범한 사람이라 불리는 시민들이라는 것. 그리고 그들이 이 일을 함께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재정적 투자뿐 아니라 실천적 노력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EWS는 사람들에게 발전용 풍차나 태양열판을 설치하도록 권장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우르술라는 일단 사람들이 협동조합에 자금을 투자하게 되면, 그 투자가 수익과 환경으로 돌아온다는 것을 깨닫게 되리라고 생각한다.


64세가 된 우르술라는 여전히 그녀가 할 수 있는 한, 언제 어디서든지 재생 에너지 의제가 사회적 이슈가 되도록 밀어붙이고 있다. 한편, 몇 달 전 독일은 원자력 발전소를 전부 닫기로 결정했다. 우연이었을까? 판단은 당신이.



시장의 원리로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라

착한 자본주의를 디자인하다 - 미국

폴 라이스는 원더우먼 같은 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남편 없이 혼자 그를 키웠던 어머니는 20세기 초 대공황 시기에 농장에서 컸다. 그러다 열두 살에 고아가 된다. 그 후 저녁을 굶고 잠자리에 드는 것이 다반사인 삶을 살았던 어머니의 인생. 그는 어머니로부터 농장에서의 삶이 어떤 것인지, 그리고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제대로 끼니를 이을 수 없다는 것이 무엇인지 들으며 자랐다. 그러다 보니, 고된 노동에 시달리는 농부들을 생각하면 남의 일 같이 느껴지지 않았다. 어릴 때에도 청년이 되어서도 폴은 가난, 배고픔, 불평등의 현실에 분노가 치밀었다. 이 풍요로운 세상에서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인식도 그를 격분하게 만들었다.


이 뿌리 깊은 빈곤과 기아의 원인은 과연 무엇일까. 의문을 갖기 시작한 폴. 그로서는 정말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 있었다. 식량을 수출하는 나라에서 굶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다니. 왜, 어쩌다가? 대학에 진학한 후 학생운동가가 된 폴. 그의 마음 한구석에는 늘 현 정권의 실정에 대한 분노와 짓밟힌 사람들에 대한 연민이 자리하고 있었다. 현실을 변화시키기 위해 무언가 해야겠다고 결심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었다.


이루어질 수 없는, 그러나 반드시 해야 하는

폴은 처음 7년 동안 자비를 들여 일련의 프로그램들을 시행했다. 하지만 결과는 실패. 그때 그가 했던 프로그램들은 상당 부분, 2차 대전 이후 국제 구호 단체가 빈곤 완화를 위해 시행했던 가장 대표적인 모델과 닮아 있었다. 말하자면, 철저히 상의하달 식 구조로 잘사는 저 위 북반구 사람들이 그들의 워싱턴, 런던, 파리 사무실에 앉아, 못사는 저 아래 남반구 사람들을 위해 선행을 하겠다는 마음으로 수백만의 지원금을 보내는 식의 그 모델. 니카라과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폴이 문득문득 느낀 것은 그러한 방식 때문에 북반구의 원조에만 의존하려는 성향이 늘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런 방식으로는 결코 이곳 마을 사람들이 자신들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를 수 없다는 것이었다.


폴이 보기에, 이러한 실패의 상당 부분의 원인은 원조 프로그램이 오직 생산에만 초점을 맞춘 데 있었다. 이 프로그램들은 어떻게든 농부들에게 교배 종자와 농약을 써서 생산량을 두 배로 늘리는 방법을 가르치려 했다. 덕분에 생산량을 늘리는 데는 성공했다. 하지만 비용이 턱없이 많이 드는 화학 농법 탓에 농부들은 결국 빚더미에 앉고 만다. 그 과정을 지켜보고 나니, 폴은 더 이상 원조 모델의 생각을 믿지 않게 되었다. 단순히 옥수수와 커피 생산량을 늘린다고 해서 농부들이 가난에서 벗어나 가족들을 부양할 수는 없었다. 정말 중요한 것은 수확물을 판 가격이었다. 농부들의 형편이 나아지지 않는 이유는 바로 그것. 그들에겐 소비자와 직거래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고, 지역의 중간상인들은 형편없이 낮은 가격에 그들의 수확물을 팔 것을 강요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장 상황을 간과했던 탓에 폴의 개발 프로젝트는 끝내 실패하여, 농부들이 스스로 가난에서 벗어나게 만들 수 없었던 것이다.


가난에서 벗어날 길은 원조가 아닌 무역

어떻게 하면 반비례하는 생산과 가격의 딜레마를 해결할 수 있을까? 고민하기 시작할 무렵, 폴은 유럽의 자칭 공정무역가라 불리는 단체에 대해서 듣게 됐다. 그들의 관심은 보다 공정한 거래를 통한 빈곤 완화와 환경적으로 지속 가능한 발전 및 경제 촉진에 있었다. 그들의 생각은 이랬다. 즉 농부들이 피땀 흘려 일한 노동과 그들의 수확물에 소비자들이 제대로 된 가격을 지불한다면 스스로의 노력으로 생활수준을 높일 수 있다는 것. 국제적 자선이 할 수 없었던 것이 공정 무역 방식이라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듬해, 폴의 공정무역 프로젝트에 함께하기로 서명한 회원들은 350농가로 늘어났다. 그리고 이 프로젝트를 시작한 지 3년째가 되는 그 다음 해에는 회원수가 3000가구로 늘어났다. 니카라과 북쪽 세고비아 지역 주민들 모두가 동참한 것이다. 폴 덕분에, 이제 그들 가족 모두는 함께 모여 커피를 빻고, 직접 수출한다. 그 사이에 세 단계나 더 거쳤던 중간 유통 상인들을 건너뛰고, 이제 소비자들과 직거래를 하게 된 것이다. 이것이 1990년 니카라과의 첫 번째 공정무역인증 협동조합, 프로데코업의 시작이었다.


선행의 수혜자에서 긍정적 변화의 주체가 되다

협동조합은 문화적, 정치적으로 남다른 의미가 있었다. 그들 소농들에게 커피를 재배한다는 것은 단순한 생계수단이 아니다. 그것은 그들의 할아버지, 그리고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께서 물려주신 유산이기도 하다. 즉 커피를 재배했다는 것은 그 자체가 그들을 말해주는 것이라고 여겨진다. 사실 그것 말고 다른 일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단 한 번도! 그러나 이제 그들은 가격을 조정하고 이윤을 늘리기 위해 커피 재배 말고도 다양한 역할을 할 줄 알게 되었다. 커피콩을 갈고 운반하고 수출도 한다. 어디 그뿐인가. 은행원 역할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들의 공정무역이 성공함에 따라 공동체로 유입되는 신규 자금들을 관리할 마을 은행을 세워야 했기 때문이다.


한편, 폴과 농부들은 값도 비싸고, 환경도 파괴하는 화학 약품의 의존을 줄이기 위해서 유기농 연수교육을 시작했다. 또한 회원 자격을 취득하기 위한 프로그램도 마련했다. 한걸음 더 나아가 지역 사회를 위한 프로젝트도 하나 둘 시작했다. 학교를 짓고, 공동 우물도 팠다. 이제 마을 사람들은 그 우물에서 난생 처음 깨끗한 물을 길어 마실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들은 더 이상 정부나 자선단체들이 뭔가를 해 주기를 기다리는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었다. 남들에게 의존하려 했던 모든 것들을 이제는 그들 스스로 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그들이 얻는 것이 또 있었다. 보이지 않는 보상, 바로 자부심과 존엄성이었다. 이것은 자선단체나 구호단체, 그 어느 누구도 결코 나눠줄 수 없는 것이다. 오직 그들 스스로 얻어낼 수 있는 값진 보상인 것이다. 폴이 깨닫게 된 것처럼.


2년이 지나자, 프로데코업은 자리를 잡아갔다. 그 성공에 고무되어, 인근에 또 다른 협동조합, 알데아 글로벌이 설립되었다. 이 협동조합을 세운 이들은 니카라과 북쪽 산악 지대에 있는 22명의 토착 농민들. 그들의 환경을 보호하고,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는 지속 가능한 농법을 홍보하기 위해서다.


현재 1,200여 명의 회원들이 함께하고 있는 이 조합은 협동조합을 키우기 위해 효율적인 영리 추구와 연대, 대안적 신용서비스를 촉진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알데아 글로벌은 전국적으로 협동조합들이 얼마나 성장했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생생한 증거다. 아울러 공정무역이 수천 명의 농부와 그 가족, 마을, 그리고 그들의 미래에 폭넓게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구매하는 것이 돕는 것이다

공정 거래를 지지하든 아니든 상관없이, 많은 기업들이 공정무역의 성공과 성장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이 모델이 보여주고 있는 지속 가능한 공급망이 사업에도 이롭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한 소비자들에게도 지속 가능한 제품은 구미가 당기는 것이며, 실제로 이러한 제품이라면 비용을 조금 더 비싸게 지불할 의향이 있다는 소비자들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바로 이 점이 다른 많은 경쟁자들, 그리고 새로운 변화를 구상하는 사람들의 마음에 불을 붙였다. 폴의 주장대로 공정무역은 윤리적 구매와 지속 가능한 소비를 향한 장기적이며 일반적인 트렌드임과 동시에 세계 자본주의 체제 안에 중대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보여주는 강력한 사례다. 이제 기업들은 사회적 책임이 있는 노동 현장과 환경 지속성을 만드는 데 관심을 보이고 있다. 자본주의의 새로운 얼굴이라고나 할까? 그 얼굴은 이전보다 책임감 있고 지속 가능해 보인다. 물론 여전히 아담 스미스가 맞다고 소리 높여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소비자 입장에서 지속 가능성에 대한 돈을 지불할 이유가 없다고 그들은 강변한다. 그러나 공정무역이 걸어온 길을 돌아보면 현실은 그와 정반대이다. 즉 소비자들은 기꺼이 지속 가능성이라는 가치에 돈을 지불하고 있다. 그들이 구매하는 것은 제품만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정서적 속성이기도 하다. 공정무역 제품을 사는 소비자들은 자신들이 역사의 옳은 편에 서서 해를 끼치지 않고 긍정적 변화를 만들어가고 있다는 기분을 얻게 되는 것이다.


1994년 미국으로 다시 돌아간 폴. 그가 해야 할 일은 곧 농부들의 역량 강화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의 바람대로 공정무역은 그렇게 할 수 있는 강력한 수단이 되었다. 그럴 수 있었던 데는 무엇보다, 소비자들을 그들의 편으로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다는 점이 주효했다. 소비자들의 위력은 대단했다. 그 힘은 다시 농부들로 하여금 더 나은 제품을 생산하도록 만드는 긍정적인 구매 사이클로 발전했다. 폴은 이러한 과정이 농부들과 노동자들의 역량을 강화시키는 과정임을 깨달았다. 지금까지 경험한 것에 비추어 볼 때, 미국에 사는 사람들 또한 세계의 고통, 기후 변화, 그리고 우리 시대의 모든 사회적·환경적 문제에 무관심하지 않다고 그는 확신했다. 다만 어떻게 도와야 할지 모를 뿐, 이 문제들을 걱정하고 있기는 그들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먹고살기 바쁘다 보니 농부에 대해 깊이 생각할 시간이 없을 뿐이다. 편집자에게 편지를 쓸 시간이 없거니와, 심지어 투표할 시간조차 내기 힘든 것이 그들의 현실. 그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혼자만의 목소리로는 변화를 만들어낼 수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생각해보라. 아무리 바빠도 누구나 먹고, 누구나 옷은 입는다. 그 음식과 옷을 살 때,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마치 더 나은 세상을 위한 투표를 하듯 신중하게 돈을 쓴다면, 그렇게 자신들의 생각을 세상에 알리는 방법이 있다면, 그들이 왜 움직이지 않겠는가?


폴이 확신하는 것은 소비자들이 착한 소비를 할 때 모두가 선순환 고리의 한 부분이 된다는 것이다. 소비자가 일상 속에서 커피 한 잔을 구매하는 순간, 그것은 곧 지구 반대편의 농부 가족에게 도움의 손길을 펼쳐 그들의 아이들이 계속 학교에 다닐 수 있게 됨을 의미한다. 이 단순한 행동이 지닌 힘은 믿을 수 없을 만큼 강력하다. 지금 미국에서는 커피, 바나나, 꽃, 또는 티셔츠 재료와 같은 공정무역 제품의 수요가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이 보여주는 것은 이곳의 소비자들 또한 쇼핑을 할 때 신중하게 결정함으로써 다른 이들을 돕고, 변화를 만들어내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일단 소비자들이 신중한 구매가 지닌 강력한 영향력을 실감할 수 있다면, 그들은 기꺼이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에 동참하고자 한다는 것. 이것이 바로 공정무역의 성공 열쇠다.


자, 이제 우리가 할 일은? 아주 간단하다. 저 커피 대신 이 커피를 선택하라. 저 바나나 대신 이 바나나를 선택하라. 그것만으로도 세계가 다 같이 안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려는 이 놀라운 움직임의 일원이 될 수 있다. 이를 실천하는 모든 소비자들이야말로 진정한 체인지메이커라 할 수 있으니, 우리가 취해야 할 행동은 바로 이것, 착한 소비다.



세상 누구나 완전한 시민권을 누리게 하라

거리의 아이들에게 재정 자립 능력을! - 세계

인도의 사회복지사 제루 빌리모리아의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그녀가 담당하는 대상은 소위 거리의 아이들이었다. 그들의 삶을 일부나마 이해해보고 싶었던 그녀. 그들과 한번 같이 지내보기로 결심한다. 그래야만 그 아이들을 어떻게 도울 수 있을지 가장 잘 알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밤에는 거의 모험에 가까운 경험을 통해 그녀는 정말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성과에 스스로도 무척이나 자랑스러웠다. 어느 날 밤, 거리의 아이들 가운데 한 아이가 그녀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저는 거리에서 살고 있어요. 말씀하신 대로 아줌마도 물론 우리와 함께 잠시 이곳에 머물 수는 있겠지요. 그리고 이제 우리를 잘 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고요. 하지만 말입니다. 알고 계시겠지만 아줌마는 이곳을 떠나고 싶을 때 언제든 돌아갈 수 있는 집이 있잖아요. 그건 우리와 같은 경험을 하는 게 아니죠. 아줌마와 같은 사회복지사들은 밤이면 집으로 돌아가잖아요? 그러고 나면 우리는 아무에게도 도와달라고 할 수 없는 상태가 돼요. 그래도 아줌마가 우리와 같은 경험을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그 아이의 말에 그동안 거리에서 보아온 것들이 새삼 하나 둘 떠올랐다. 제루에게는 그때 그 일이 생각의 틀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아이들에게 저축하는 법을 가르쳐주다

아버지가 힘을 실어준 덕분에 위기의 가족을 도울 수 있었던 때를 떠올리면서 이제 제루는 자신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세상 사람들이 아직 모르고 있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아이들에게는 돈 문제를 파악하는 남다른 능력이 있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을 믿는 능력이 있었다. 그들 자신의 삶을 바꿀 수 있는 능력은 그 아이들에게 있었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새로운 계획이 그녀 안에서 다시 꿈틀대기 시작했다. 그것이 바로 아플라툰이다. 아이들이 거리에 나오는 나이는 대체로 열 살 무렵. 조금 빠르다 해도 여덟 살이나 아홉 살이다. 그것은 곧 거리에 나오기 전에 1년 이상은 학교에 다닌 경험이 있다는 말이다. 여기에 제루가 찾고 있던 해답이 있었다. 어떻게 하면 아이들을 거리가 아닌 학교에 계속 다니게 할 수 있을까? 그녀는 우선 아이들에게 돈을 다루는 법, 즉 기초적인 재무 지식을 쌓게 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거리에 나앉는 아이들의 숫자가 점점 늘어나는 것을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이들이 학교에 다닐 동안 참여할 재무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이를 통해 그들 안의 기업가적 기질과 관심을 돈을 벌고 모으는 쪽으로 전환시켜주고 싶었다.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이 프로그램은 아이들에게 엄청난 계기를 만들어주었다. 그저 하루하루 연명해가는 것이 삶이라고 여겨온 그 아이들에게도 미래가 생긴 것이다.

제루가 아플라툰을 시작한 이유는 딱 하나. 거리의 아이들이 저축을 통해 내일을 꿈꾸고 미래를 설계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 위해서다. 방법은 어렸을 때부터 그들에게 재무 기술을 가르치는 것. 이것은 문제가 드러나는 표면이 아니라 저 깊숙이 자리하고 있는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 거기에서 해결책을 모색하는 접근방식이다. 이제 아이들은 아플라툰을 통해 배운 재무 지식과 기량을 활용하여 돈도 벌고 저축도 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거리에 나앉는 아이들도 점점 줄어들 것이라는 것이 제루의 생각이다.


미래를 설계하기 시작한 아이들

아플라툰 역시 지금은 세계 많은 나라에 진출해 있다. 대상은 물론 가난하고 불쌍한 아이들. 이 아이들에게는 저축할 만한 돈도 없지만, 다른 평범한 아이들이라면 다 가져봤을 법한 경험도 없다. 가난한 나라의 아이들도 가져본 그 경험. 바로 적더라도 자기 돈을 가져본 경험 말이다. 부모에게 용돈으로 받은 돈, 특별한 날 친척이나 친구로부터 받은 돈, 장학금이나 상금으로 받은 돈, 혹은 방과 후 아르바이트로 번 돈 등을 가져본 경험이 이 아이들에게는 없다.


아플라툰 사례는 우리에게 모든 인간은 변화의 담지자이며 그들 모두에게는 자신이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나은 존재가 될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아이들 한 명 한 명의 안에 있는 변화를 만드는 능력을 꺼내어주고 이를 개발시켜 줄 도구를 그들 손에 쥐어주면 말이다.


아플라툰 프로그램이 시작되고 1년이 흐른 뒤, 벌키노 파소라는 곳에서 온 한 소년은 중고자전거를 한 대 살 만큼의 돈을 모았다. 소년은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빌려줘서 지금은 다섯 대의 자전거를 보유하고 있다. 이렇게 번 돈으로 다른 형제들을 학교에 보낼 수 있게 되었다. 이와 같은 성공담은 무궁무진하다. 아플라툰 프로그램을 이수한 아이들은 부모, 형제와 그들의 공동체까지 자신이 새로 시작한 일에 동참하게 만든다. 자기 아이가 돈을 모으는 법을 배우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엄마들은 생활비의 일부를 아이들에게 저금하라고 쥐어주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돈을 종잣돈 삼아 아플라툰이 관리해 주는 장사를 시작해보라고 하는 부모들도 있다. 어떤 아이는 저축한 돈으로 구슬 재료를 사서 가족들과 함께 장식품들을 만들어 팔기도 했다.


이러한 소규모 사업들은 그 규모가 얼마나 작든 아이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하게 해주었다. 예전에는 결코 써본 적 없는 낯설고 사치스런 그 단어인 언젠가는과 같은 말을 마음에 담고 입 밖에 낼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제 아이들은 미래라고 하는 앞으로의 삶을 그릴 수 있게 되었다. 지금까지는 미래를 그려본다는 것은 악몽을 꾸는 것과 같았다. 아플라툰이 관심 있게 지켜보는 것은 아이들이 얼마나 돈을 모았는가가 아니다. 그보다는 규칙적으로 저축하는 습관을 갖게 되었는지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저축하고, 계획하고, 그리고 예산을 짜는 것. 그런 습관이야말로 당장의 금전적 보상보다 더 큰 결실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들이 미래지향적인 마음가짐을 지니는 것이다. 그러한 태도야말로 금전적인 위기가 닥쳤을 때 그들을 좌절하지 않게 이끌어줄 것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면 빈곤과 빚더미의 덫에 걸려들지 않을 수 있는지 그 방법을 가르쳐주는 것도 바로 그러한 마음가짐이다.


선구적인 사회혁신 기업들을 만들고 이끌면서 쌓아온 방대한 경험을 디딤돌 삼아 제루는 다시 새로운 모험을 시작했다. 그 모험을 위해 우선적으로 선택한 곳은 세계에서 가장 어렵고 가난한 나라 11개국. 그곳에서 제루는 또 다시 믿기 어려울 정도로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그런 뒤, 새로운 목표를 설정한다. 2010년까지 아이들 100만 명 이상의 삶을 변화시키겠다는 것. 결과는? 40만 명을 초과달성하여 140만 명! 이제 아플라툰의 비전과 미션은 점점 멀리 퍼져나가 75개국 이상의 나라에서 프로그램이 실시되고 있다. 가맹 네트워크로 파트너가 된 현지 단체들을 통해 아플라툰은 프로그램을 위한 교과과정과 교재들을 제공하고 있다.


한 번에 한 부분씩, 시스템을 만들어가다

아플라툰은 전 세계 많은 지역에서 교육자들과 정책 입안자들이 청소년을 위한 재무 교육을 그들의 의제로 삼도록 하겠다는 목표가 있었다. 아플라툰 프로그램을 통해 재무 교육을 받고 나면, 학생들은 어떤 방법을 취하는 것이 더 현명한 선택인지 깨닫게 된다. 하지만 저축 계획을 세우거나 장사를 시작하고자 할 때는 여전히 도움이 필요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열여덟 살이 되기 전까지는 마땅히 도움을 요청할 데가 없는 것이 어린 친구들의 고충이었다. 이는 차일드라인 프로그램과도 맞물려 있는 사안이었다.


이에 제루는 두 프로그램, 즉 차일드라인과 아플라툰이 서로 맞물리는 보완 단체를 설립하기로 결심했다. 2011년 출범한 국제 청소년 금융이 바로 그것이다. 목표는 3가지. 첫째, 2015년까지 1억 명의 청소년이 자신들에게 알맞은 저가 금융상품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할 것! 둘째, 2015년까지 1억 명의 청소년이 그들에게 맞는 금융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할 것! 셋째, 국제 청소년 금융이 지원하는 실행 계획을 100개의 나라에서 실천에 옮길 것! 지금까지는 아이들의 금융 관련 욕구와 능력들은 철저히 무시되어 왔거나 부정되어 왔다. 이러한 낡은 인식들을 변화시키기 위해 제루가 계획하고 있는 것은 은행 금융 감사원, 국내 비정부단체, 그리고 정부를 하나로 엮는 것이었다. 그들 모두를 변화를 만드는 공동체의 일원으로 초대하겠다는 것이다. 그 엄청난 노력이라니! 지금까지 제루는 이미 세계적인 스케일의 엄청난 성공들을 거둬왔다. 그녀의 다짐대로 2015년이 전 세계 모든 아이들에게는 굉장한 한 해가 되리라 확신하게 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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