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0일의 스캔들

   
민병국
ǻ
황금부엉이
   
13000
2012�� 03��



■ 책 소개
위기의시대, 이기는 경영의 답은 현장형 리더에게 있다!
 

재단에서는 곧 없어질 병원이라 투자를 꺼려하고 병원 직원들조차도 회생이 어렵다고 포기한 병원에 부임한 한병원장의 살아 있는 경영 이야기가 담긴 책. 평생 의사로만 살아와 경영에 문외한이었던 그가 죽어가던 병원을 어떻게 생기 있고 살맛나는 일터이자경영혁신의 모범사례로 바꾸었는지 보여주는 생생한 현장의 사례들이 담겨 있다. 그가 직원들과 소통하며 겪은 ‘에피소드’들은 어떤 경영 교과서에서도얻을 수 없는 살아있는 경영 표본서다.

위기를 극복하는비법은 거창한 경영 원칙이나 전략이 아니다. 이미 잘 알고 있지만 너무나 작고 기본적인 것이라서 거들떠보지 않는 곳에 실마리가 있다. 저자는“0.1%의 변화만이라도 꾸준히 이뤄 낸다면 혁신은 가능하다”고 말한다. 

■ 저자 민병국
現중앙대학교 의과대학 교수로 재직 중인 민병국 교수는 2005년부터2010년까지 중앙대학교 용산병원장으로 근무했다. 그가 병원장으로 근무하던 시절, 실로 병원에는 하루하루 그로 인한 스캔들이 끊이지 않았다.그가 6년 동안이나 병원장으로 근무할지 알 수 없던 4년 임기 마지막에 그의 아내는 이런 그의 시절을 두고 ‘1500일의 스캔들’이라말했다.

책을 통해 작은 것도 그냥 지나치지 않고,들으려 해야 들리고 보려고 해야 보이는 고객의 작은 목소리, 작은 필요에도 하나하나 응답하며 끝까지 쉬지 않고 변화를 추구했기에 날마다 새로운일들을 벌이고, 낡은 것들을 쇄신한 그의 열정과 추진력, 고객과 함께 일하는 동료들에게 대한 변함없이 성실한 사랑을 볼 수 있을것이다.

■차례
PROLOGUE - 둔탁한 도끼보다 섬세한 바늘이 되라 

1장 ✚ 변화는 나로부터
곧 망할 병원에 발을 내딛다 
생각의 틀부수기 
병원에 중독된 병원장
전셋집 살면 청소도 안 합니까? 
시력이 아닌 마음으로 봅니다 


2장 ✚ 함께 가는 길
마중물 같은 서비스를제공하라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 흘리는 바가지 
여기가 정말 신관입니까? 
병원은 환자만 오는 거 아니잖아요
이제시작입니다 
자연스러움은 연출에서 나온다 

3장 ✚ 일신우일신의 길
고객의 불만은 우리의 힘 
병원장은 벼슬이아니다
차가운 규칙보다 따뜻한 위반이 낫습니다 
직원도 가족이다
모두 여러분 덕입니다


4장 ✚ 미래는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다가가는것
무슨 일을 했는가? 얼마나 잘했는가! 
즉시 한다, 반드시 한다, 될 때까지 한다 
롱테일의 법칙
단순하지만 명쾌한 서비스로 승부하라 
끝은 새로운 시작

내가 바라본 민병국 병원장님
EPILOGUE - 팀보다 훌륭한 선수는 없다 
부록 - 6년간의 발자취를 담은말들  

 




1500일의 스캔들


PROLOGUE - 둔탁한 도끼보다 섬세한 바늘이 되라

때는 2005년 봄. 환자를 진료하고 교단에 서는 것이 삶의 전부였던 내게 경영자란 역할이 주어졌다. 당시 용산병원은 종합병원치곤 협소한 데다 시설이 낙후되고 환경은 열악했으며, 조만간 없어질 거라는 소문까지 나돌았다. 고객들조차 하나둘씩 발걸음을 돌리던 이곳에 초짜인 내가 병원장으로 부임한 것이다.


작은 것도 소중히 하는 병원, 작소병원. 먼저 잘할 수 있는 일을 잘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정체성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나는 병원 이름을 작소병원이라고 붙였다. 큰돈을 들여 거대하고 화려하게 꾸밀 수는 없었지만 깨끗하고 친절하고 신속하게 서비스할 수는 있었고, 곧 그것이 우리만의 강점이 되리라는 믿음에서 탄생한 이름이었다.


그렇게 우리의 변화는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실제로 내가 다른 곳에서 서비스를 받아보아도 나를 화나게 만드는 일은 아주 사소한 실수들이었다. 고객을 존중하지 않는 직원의 태도라든가, 불결한 화장실, 정성이 깃들지 않은 음식 등 아주 사소한 것이지만 불쾌하기 그지없었다. 그건 누구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아주 쫀쫀하게 디테일한 것부터 바로잡았다. 더러워진 침대 시트를 수시로 교체하는 일, 고객의 주차를 대신 해주는 일, 환자들을 잠 못 이루게 하는 모기들을 소탕하는 일, 비 오는 날 고객에게 우산을 빌려주는 일 등 고객의 걸음걸음을 방해하는 신발 속의 모래알 같은 것부터 털어내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일은 결코 탁상행정으로는 불가능하다. 두 눈을 크게 뜨고 두 귀를 크게 열고 현장을 꼼꼼히 살펴야 비로소 고객의 가려운 곳이 어디인지, 고객들이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자나 깨나 병원을 머릿속에 넣고 살았다. 그것은 스트레스가 아니라 일상의 활력이었다. 언제나 새로운 것이 없을까 고민하는 그 자체를 즐겼기 때문이다.


고객들의 평가는 실로 적나라했지만, 충분히 감동적이었다. 진심을 다해 작은 것도 소중히 여기는 서비스가 통한 것이다. 그리고 병원은 2007년에 환자만족도 최우수병원, 2006년, 2007년 연속으로 응급의료센터 우수병원으로 선정되는 영광을 안았다.


가끔 후배들이 도대체 이렇게 변할 수 있는 비결이 뭐냐고 묻는다. "항상 고객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작은 목소리일수록 더 귀하게 듣고 즉각 반응해라. 작은 것이라고 우습게 알지 말고, 그것부터 바꿔라. 그러다 보면 언젠가 크게 달라져 있을 것이다."


보통은 큰 것부터 바뀌어야 눈에 띄는 줄 안다. 하지만 고객들이 바라는 것은 정작 그런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혹자는 물고기를 잡으려면 물고기처럼 생각하는 낚시꾼이 되라고 말한다. 경영도 똑같다. 고객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이 중요하다. 인간관계에서도 작은 일에 서운해서 등 돌리는 일이 허다하듯, 고객들도 마찬가지다. 옛말에 도끼 가진 놈이 바늘 가진 놈 못 당한다고 했다. 도끼는 힘이 세지만 둔탁하다. 섬세함에 있어서는 바늘을 결코 이길 수 없다. 그러니 진심을 다해 고객들의 마음을 섬세하게 읽어라. 그들의 마음에 작은 꽃을 피우려는 노력과 정성이 있다면 결국 승자가 될 것이다.



변화는 나로부터

전셋집 살면 청소도 안 합니까?

고객들은 과연 병원의 서비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과연 내가 보고 느낀 것들이 그들의 생각과 일치하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장님 코끼리 만지기 식으로 헛다리만 짚어서는 곤란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직접 고객들의 목소리를 들어보기로 했다. 가만히 살펴보니, 병원의 각 층마다 고객 소리함이 있었다. 하지만 허울만 좋을 뿐, 아무도 그곳에 쪽지를 넣지도, 확인하지도 않는 것 같았다. 얼마나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았는지, 가는 거미줄이 힘없이 늘어져 있는 모습은 딱하기 그지없었다.


"고객 소리함을 적극 활용합시다. 눈에 잘 보이는 곳에 다시 걸고 문구도 새로 써놓을 테니, 수시로 확인하세요."


그래서 "고객님, 무엇이 불편하신가요?"란 문구를 소리함 앞면에 크게 써 붙였다. 그다음 날부터 나는 각 층의 고객 소리함에 볼펜과 종이가 떨어지진 않았는지 수시로 살폈다.


"병원이 너무 지저분합니다. 좀 깨끗하게 할 수는 없나요?" 고객들의 생각도 나와 같았다. 역시 가장 많은 불만 사항은 내가 처음 병원에 왔을 때 느꼈듯이 병원이 불결하다는 것이었다. 결국 고객들도 가장 기본적인 부분이 지켜지지 않는다는 사실에 화가 나 있었던 셈이다.


"벽 페인트도 다시 칠하고, 침대 시트도 수시로 갈아야 해요. 위생은 곧 환자들의 건강과도 연결되니 최대한 신경 씁시다." 아침 회의 시간에 이렇게 건의하자,


직원들은 또 불편한 표정을 지었다.


"우리 건물도 아닌데, 굳이 페인트칠까지 다시 할 필요가 있을까요? 게다가 건물이 너무 오래돼서 청소해도 티가 안 날 겁니다."

"아니, 전셋집 살면 청소도 안 합니까?"

"지금부터 구석구석 대청소를 하는 겁니다. 오래된 건물이라는 한계 같은 건 짓지 맙시다. 뭐 때문에 안 된다는 핑계를 대다 보면 끝이 없어요. 오래된 건물이어도 깨끗이 유지하고 관리하려고 노력하면, 고객들은 다 알아줍니다."


그렇게 직원들을 설득하여 대대적으로 청소를 시작했다. 결국 몇 달에 걸쳐 매주 일요일마다 환자용 침대를 끌어내고, 이불을 빨고, 바닥을 닦고, 벽에 페인트를 칠하는 등 대대적인 청소를 실시했다. 맘 같아선 하루 날 잡아 몽땅 해치워버리고 싶었지만, 환자들을 생각하면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상황에 맞춰 조금씩, 천천히 해나가야 했다.


병원 로비 청소 역시 일요일에 하기로 했다. 그중에서도 오전 혹은 오후 늦게 한다는 원칙을 정했다.


"원장님, 청소를 하고 나니 진짜 깨끗하긴 하네요."


이마에 흐르는 굵은 땀방울을 닦아내면서, 직원들도 뿌듯한지 이렇게 말했다. 직원 입장이 아닌 고객의 입장에서 생각하니 답이 나온다는 것을 그들도 서서히 이해하는 듯했다. 고객의 마음을 홀릴 만큼의 감동을 선사하지 못할지언정, 그들을 위한답시고 도리어 짜증만 안겨서는 안 될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효율이란 다름 아닌 고객 배려였다. 결국 그것이 우리에게 매출 증대라는 최대 효과를 가져다주지 않겠는가. 그렇게 이곳은 더디지만 조금씩 고객의 눈높이에서 생각하는 훈련을 하고 있었다.



함께 가는 길

이제 시작입니다

힘들 땐 대신맨을 불러주세요!

"원장님, 입원 환자분들을 위해 대신맨 서비스를 해주면 어떨까요?"

"대신맨 서비스? 그게 뭔가요?"

"직원들이 고객의 잡무를 직접 처리해주는 거지요. 공과금도 납부해드리고, 급한 우편물도 대신 부쳐드리고요."

"와, 그거 진짜 좋은 아이디어네요."


이렇게 해서 우리는 대신맨이 도와드리겠습니다 서비스를 실시하게 되었다.


사실 병원에서 상주해야 하는 입원 환자들은 여러모로 불편한 일이 많다. 특히 주부이거나 싱글 여성의 경우는 더더욱 그렇다. 병원에 머무는 동안 집안 살림이 마비되기 때문이다. 공과금 하나라도 제때 납부하지 않으면 독촉장이 날아오고, 납기일이 한참 지나면 가스나 전기가 끊길 수도 있지 않은가. 또 아이들이나 남편이 입을 옷을 세탁소에서 찾아와야 하는데, 대신 찾아줄 사람이 없으면 난감하기만 할 것이다. 물론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집안 살림을 대신 맡아줄 사람이 있다면 한시름 놓을 수 있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병원 침대가 가시방석처럼 느껴질 터였다. 맘이 불편하면 당연히 몸의 회복도 더딜 테니, 환자에게 결코 좋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가 직접 그 일을 처리해주는 것이 바로 대신맨 서비스였다. 대신맨의 주요 활동은 대략 이렇다. 첫째, 고객의 세탁물 수거 혹은 세탁소에서 물건 대신 찾아주기, 택배나 퀵을 사용해야 할 경우 대신 불러주기였다. 둘째, 공과금 납부를 대신 해주고, 철도 예약이나 인터넷 발권 역시 대신 해준다. 급하게 보내야 할 팩스나 문서 복사 역시 신청하면 곧바로 신속하게 처리해준다. 셋째, 입원 수속이 끝나면 짐이 많은 경우 고객의 짐을 병동까지 직접 운반해준다.


대신맨 서비스를 이용한 고객들은 당연히 칭찬의 말을 아끼지 않았다. 병원에서 이런 일까지 해줄 것이라고는 아예 기대조차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해야 할 일을 응당 하는 것만으로는 고객 감동을 일으키기 어렵다. 기본은 안 지켜졌을 때 심각한 문제를 초래할 뿐이니, 기본을 지키게 됐다고 해서 생색을 내서는 곤란하다. 고객이 기대하지 않았던 것까지, 기대 이상의 서비스를 행하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가 지향해야 할 진정한 서비스였다.


병원 한 바퀴만 돌면 답이 나온다

우리는 환자들의 신경을 거슬리는 소음을 없애기 위해 노력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건물이 워낙 낡은 탓에 천장이 조금씩 내려앉다 못해 비가 오는 날은 빗방울이 샜던 것이다. 당장 천장 공사를 해야겠는데, 환자들이 그 소음을 견딜 수 있을지 걱정스러웠다. 그렇다고 곰팡이가 슬고 있는 천장을 그대로 놔둘 수는 없는 노릇이니, 결국 층별로 차례차례 공사하되, 층마다 한꺼번에 하지 않고 반절씩 나누어서 하기로 했다. 물론 공사를 시작하기 전에 환자들에게 양해를 구해야 했다.


나는 당장 손볼 층의 위아래층에 머무는 환자들 한 분 한 분에게 일일이 사과 한 알씩을 건네드렸다.


"웬 사과예요?"

"실은 저희가 천장 공사를 합니다. 더 깨끗한 병원을 위해서 하는 일이니, 시끄럽더라도 조금만 참아주세요. 염치없는 부탁을 하는 입장이니 사과의 마음으로 사과를 드립니다."

"하하, 그럼 사과를 받아야겠네요."

"받아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렇게 사과를 돌린 덕에 전 층 천장 공사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천장 공사뿐 아니라 수도 파이프도 교체해야 했다. 워낙 낡아서 물이 새고 겨울에는 동파의 위험도 높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공사를 하다 보면 몇 시간씩 단수가 된다. 그런 날은 미리 환자 전부에게 생수를 건네드렸다.


"오늘 몇 시간 단수가 될 겁니다. 파이프를 교체하거든요. 그래서 생수를 드립니다."


이렇게 미리미리 챙긴 덕에 고객의 불편함을 막을 수 있었다.


이 모두 고객 입장에서 생각해본 결과 떠오른 아이디어였다. 어쨌든 병원이 몸이 아픈 환자들이 있는 곳이니, 어떤 곳보다도 섬세하게 서비스를 해야 한다. 몸이 건강한 사람의 시선으로 생각했다간, 고객에게 큰 불편함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온도 하나를 맞추더라도, 건강한 사람 기준으로 맞췄다가는 큰일난다. 면역력이 떨어진 데다가 얇디얇은 환의를 입은 환자들이니만큼, 추위를 더 타리라는 것을 감안해야 하지 않겠는가. 매사 고객과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야 진짜 고객에게 필요한 서비스가 무엇인지 알게 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도대체 왜 환자수가 주는지 그 원인을 모르겠어요."


언젠가 한 병원장이 내게 이렇게 하소연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병원 한 바퀴만 돌면 답이 나오는데.


고객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곳은 결국 현장이다. 현장에 가야만 고객이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원하는지 알 수 있다. 그래야 그들과 입장을 바꿔 생각하는 법을 알게 된다. 그것이 내가 현장에서 얻은 교훈이었다.



일신우일신의 길

모두 여러분 덕입니다

함께 나아가기

병원장으로 부임한 첫해부터 병원의 환자 수는 계속 늘고 있었다. 매출이 바닥으로 하락하고 있던 힘겨운 상황에서 다시금 경영이 정상화되고 있었던 것이다. 모두 나를 믿고 따라준 직원들 덕분이다. 게다가 불만 사연은 점점 사라지고 칭찬이 속속 배달되니, 이 또한 고마운 일 아니겠는가.


"직원이 어찌나 생글생글 웃으며 안내를 친절하게 잘하는지, 정말 기분이 좋았답니다."

"병원이 진짜 깨끗해졌어요. 특히 화장실 갈 때마다 기분이 정말 좋아요. 엘리베이터 안도 깨끗하고."


이제 친절과 청결에 대한 의식이 점점 우리 몸에 배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내 입장에서는 이대로 안주할까 봐 슬그머니 걱정이 되었다. 게다가 환자수가 는다는 것은 그만큼 직원들의 업무가 가중된다는 의미이니, 지금은 기뻐할지라도 지쳐 나가떨어지는 사람이 생기면 정말 큰일이었다. 그렇다고 직원을 충원할 형편은 아니었으니, 최대한 직원들의 사기를 끌어올리는 것 외엔 방법이 없었다. 나는 사기 충전을 위한 아이디어를 내야 했다. 마침 개원 기념일이 다가오고 있었다.


대형 영화관을 빌려 영화도 보고, 팀별로 장기자랑을 담은 동영상도 준비해보자. 그렇게 해서 화합을 다지는 의미에서 고맙습니다 문화행사를 가까운 대형 극장에서 열기로 했다.


"우리를 믿고 찾아온 고객님들, 고맙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위해 섬김의 자세로 최선을 다한 우리 직원들, 정말 고맙습니다."


진심으로 내 마음을 담은 문구를 밤새 고민했지만, 역시 정답은 고맙습니다였다. 영화관 좌석으로도 내 고마움을 표현하고 싶어서, 가장 고된 일을 하는 경비반, 미화반 직원들이 가장 상석에 앉도록 배려했다. 이날만큼은 가장 편안한 자세로 영화를 보라는 의미였다. 나와 부서장은 목이 좀 아프면 어떠랴 싶어 맨 앞 줄, 교수진은 두 번째 줄에 앉도록 했다. 우리가 보기로 한 영화 <황진이>가 시작되기 전에 직원들이 <300>을 패러디해 만든 <700>을 먼저 보았다. 우리 병원의 직원 수가 700명인 까닭에 이렇게 제목을 지었다고 했다. 나처럼 나이든 사람은 미처 생각지도 못한 패러디물이라 그저 참신하다며 감탄만 하고 있었는데, 편집과 촬영은 더 뛰어났다. 각 부서별로 야심차게 준비한 동영상들도 수준이 보통 이상이었다. 여기저기서 "오호, 와아"란 감탄사들이 터져 나왔다. 바쁜 와중에 행사를 위해 성심성의껏 준비해준 직원들에게 다시 한 번 고마움을 느꼈다.


유지란 성장이 아니다. 유지는 퇴보일 뿐이다. 이만큼이면 됐다, 하는 순간에 다시 점프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모두가 한마음이 되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합심하여 팀별 영상물을 만들고 함께 영화를 보면서 우리의 에너지는 다시 한 번 하나가 되고 있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아무리 힘들어도 낙오자 없이 병원과 함께 700명 모두 성장하길 간절히 바라고 바랐다.



미래는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다가가는 것

즉시 한다, 반드시 한다, 될 때까지 한다

한 번 더 비틀어 보기

보통 사람들은 장애물 앞에서 세 가지 반응을 보인다고 한다. 부딪히거나, 뛰어 넘어가거나, 피해 가거나. 고 정주영 회장은 직원들이 "안 되겠습니다"라고 보고할 때마다 "해보긴 했어?"라며 꾸중했다고 한다. 나 역시 그렇다. 일단 시도해본 후 포기해도 늦지 않다고 생각한다. 시도해서 실패하면 그 또한 귀한 경험이 된다. 장애물 앞에서 포기하거나 피해 가는 버릇에 익숙해지면, 변화는 요원한 일이 되고 만다.


"진료받는 시간보다 주차하는 시간이 더 길겠더라. 자리 찾는 데만도 한참 걸렸는데 공간은 또 얼마나 좁은지, 주차하느라 정말 고생했어."


입원실을 돌고 있는데, 한 여성 고객분이 입원한 지인을 찾아 와 이런 불평을 늘어놓고 있는 걸 듣고 뜨끔했다. 사실 직원들 역시 주차가 불편하다는 말을 자주 하곤 했다. 주차 면적이 너무 좁았던 것이다. 그렇다고 없는 공간을 만들어낼 수는 없는 노릇이니, 불편해도 감수하자는 것이 지금까지의 입장이었다.


그날 나는 다시 강박증 환자가 되어 하루 종일 머릿속으로 주차 문제를 고민하고 있었다.


그러다 퇴근 후 지인들과 약속이 있어, 한 음식점에 방문했다. 그런데 입구에서 주차요원이 공손하게 내 키를 받은 후, 차에 흠집이 나지 않도록 세심하게 대신 주차를 해주는 것이 아닌가.


아, 병원에서도 발렛파킹을 실시하면 되겠구나. 결국 고객들이 지닌 불만의 핵심은 좁은 주차장이 아니라 불편한 주차였던 것이다. 그러니 주차를 하면서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우리가 직접 해주면 되는 것이었다. 문제의 초점에 집중하니 답이 금방 나왔다. 효과는 즉각적이었다. 며칠 후, 고객 소리함에 들어온 쪽지에는 이런 내용이 있었다.


"아이가 고열에 시달려서 급하게 병원에 왔는데, 병원 입구부터 차가 막히더라고요. 게다가 밖에는 비까지 오고 있는데, 예약시간은 다 돼가고……. 정말 막막했습니다. 그때 직원 한 분이 오시더니 주차는 제가 안전하게 해드릴 테니, 안심하시고 진료부터 보시길 바랍니다 하는 게 아니겠어요? 그뿐이 아니었습니다. 아이를 안고 있는 저를 보더니, 우산을 씌워 병원 입구까지 데려다 주셨습니다. 아이의 진료를 무사히 마치고 밖으로 나와 보니, 여러 명의 직원분들이 다른 분들에게도 우산을 씌워주고 주차도 대신 해주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병원의 헌신적인 배려에 진심으로 감사드려요."


무엇이든 한 번 더 비틀어 보는 창의적인 빅 싱크(Big Think)의 위력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소설 『빙점』을 쓴 일본 작가 미우라 아야코는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건 익숙해지는 것이라고 했다. 고객으로 하여금 불편에 익숙해지게 해서는 안 될뿐더러 우리 역시 고정관념에 익숙해져서는 안 될 일이었다. 병원 곳곳에 존재하는 모든 고정관념의 뿌리를 뽑아 내고 끊임없이 새로운 모습으로 변해야 했다. 모든 것을 부수고 새롭게 성을 쌓는 일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지만, 기존의 것에서 유용한 부분만 골라내어 최대의 효과를 누릴 수 있게 재구축하는 작업은 노력하면 가능한 일이 아닌가. 그러니 항상 빅 싱크를 염두에 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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