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윈웨이

   
선웨이펑(역자: 김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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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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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09��



■ 책 소개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업체알리바바그룹의 CEO 마윈. 그는 단돈 2,000달러로 온라인시장에 뛰어들어 중국 전자상거래시장의 80%를 점유한 거상이 되었다. 이 책은마윈과 알리바바그룹의 자회사인 ‘타오바오닷컴(taobao.com)’의 성공스토리를 통해 CEO 마윈의 치밀한 승부 전략과 리더십, 남들이 가지않는 길을 개척하는 파괴적 혁신 경영법을 보여준다. 

 


‘이베이이취(ebay易趣)’가 중국 온라인시장의 90%를 장악하고 있는상황에서 불과 3년 만에 경쟁구도를 뒤집어 ‘골리앗을 무찌른 다윗’에 비유되는 타오바오닷컴. 타오바오닷컴의 성공 전략의 근간이 되는 중국고객들이 지닌 욕구에 대한 정확한 파악, 독창적인 기업 문화와 가치관의 세 가지를 마윈의 리더십과 접목하여 설명한다. 빌 게이츠, 조지 소로스등이 주목하고 있는 마윈의 독특한 경영 방식과 가치관을 소개하는 이 책을 통해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고 위기 극복의 해법에 대한 유용한 지침들을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 저자 선웨이펑
1970년대에 태어나베이징국제관계학원과 베이징대학을 졸업했다. 주로 비즈니스와 트렌드에 관한 경제서를 집필해왔으며 「징화시보(京華時報)」 등 10개의 신문에 칼럼을연재한 바 있다. 현재 영국 「파이낸셜타임즈」 중문판 특파원이자 「중국신문주간(中國新聞週刊)」의 칼럼리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홍루몽의 직장철학(職場紅樓)』과 『김용의 직장철학(職場金庸)』이 있다.


■ 역자 김창우
한림대학교 역사학과를졸업하고 북경대학교 역사학과에서 수학하였으며 한국외국어대학교 통번역대학원 한중과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금융 관련 컨설팅 및 전문 통번역가로활동 중이다. 역서로『중국문화: 민가』『중국문화: 문물』이 있다. 


■ 차례
한국의 독자들에게 -알리바바그룹 CEO 마윈
프롤로그 - 타오바오는 세계 1위 온라인기업 이베이를 어떻게 이겼을까?


PART 1 거꾸로 뒤집으면 성공이 보인다
코끼리를 쓰러뜨린 개미의 지혜 | 중국 전자상거래 시장의 흐름 | 예기치 못한 곳에서 나오는 영감 | 소프트뱅크 CEO손정의와 만나다


PART 2 매출 1위안으로 시작된 타오바오의 기적
베일에 싸인 출발 | 지상 최대의 타오바오 상륙작전 | 전화위복의 기회가 된 ‘사스’ | 타오바오에는 없는 물건이 없다


PART 3 ‘농촌’에서부터 ‘도시’를포위하라 
돈이 있어도 쓸 곳이 없다 | 얼음은 녹기 시작했으나 봄은 오지 않았다 | 생존이최우선이다

PART 4 무엇보다 신용이 우선이다
마윈의 야심작 ‘즈푸바오’ | 회피할 수 없는자금이동 문제 | 이베이와 페이팔의 빅딜 | 즈푸바오 하버드 보내기 대작전


PART 5 모든 것은 커뮤니케이션에서시작된다
고객확보는 윈도쇼핑에서 시작된다 | 스카이프를 인수한 이베이의 반격 | 새로운 전장을 개척하다


PART 6 타오바오 불패신화의원동력
위대한 비즈니스모델 | 알리바바의 출발점 | 힘차게 펄럭이는 무료화의 깃발 


PART 7 IT회사가 아닌 서비스기업이되라
물고기가 없으면 양식을 하라 | 커뮤니티를 통해 사이트를 키운다 | 확실한 목표에 집중하는 삼장법사의리더십


PART 8 이베이에게 아직 먹을 파이가남았는가
이베이가 흘린 첫 번째 눈물 | 현지화 전략의 부재로 인한 도미노식 패배 | 미로와도 같은 중국시장 & |다시 도약하는 이베이의 미래


PART 9 파괴적 혁신기업의 미래
돌격! 돌격! 돌격하라! | 글로벌 산업사슬에서의 타오바오


에필로그 - 다음 경쟁상대는누구일까




마윈웨이

프롤로그 - 타오바오는 세계 1위 온라인기업 이베이를 어떻게 이겼을까?
타오바오닷컴(Taobao.com, 이하 타오바오)은 중국의 ‘토종’ 인터넷기업인 알리바바의 젊은 피들이 주축이 되어 설립한 온라인경매사이트이다. 현재 중국 온라인 시장점유율 80%를 차지하고 있는 타오바오는 세계 1위 온라인경매사이트인 이베이가 중국시장에 무려 1억 달러를 투자하며 한때 최고의 시가총액을 자랑하기도 했던 ‘이베이이취(ebay易趣, eachnet.com)와의 경쟁에서 승리하여 ’골리앗을 무찌른 다윗‘에 비유된다.


타오바오가 불과 3년 만에 이베이이취를 물리칠 수 있었던 비결은 과연 무엇일까? 참신한 비즈니스모델이나 콘셉트가 반드시 인터넷사업의 성공을 보장해주지는 않는다. 이는 타오바오를 통해 후발주자에게도 분명 기회가 있다는 사실이 증명되었다.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는 중국 인터넷시장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탄탄한 자금력이나 합리적인 비즈니스모델만 갖추어서는 안 되며 여러 가지 효소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 그것은 바로 시장에 대한 이해와 분석, 뛰어난 팀워크, 그리고 경쟁력 있는 마케팅 전략이다. 타오바오의 성공 요인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확실한 전략을 바탕으로 구체적인 전술을 강하게 밀어붙였다. 이베이라는 강력한 선두주자가 군림하고 있던 C2C시장에 도전장을 내민 것은 타오바오의 도전정신과 알리바바의 유전자가 한데 어우러져 역할을 발휘한 것이다. 이베이와 달리 수수료를 없애고, 판매자들이 무료 광고를 할 수 있도록 제공한 것도 성공의 요인이었다. 이베이는 "무료는 비즈니스모델이 아니다"라며 타오바오의 전략을 비웃었지만 타오바오는 무서운 속도로 시장을 점유해나가기 시작했다. 2006년에 이베이는 결국 거대한 손실을 안고 중국 시장에서 물러나야만 했다.


둘째, 중국고객들이 원하는 바를 정확하게 파고들었다. 간단한 웹페이지부터 제3자 신용담보, 그리고 섬세한 고객서비스와 엄격한 보안프로세스까지, 타오바오는 최대한 중국 C2C 고객들의 거래습관과 스타일에 맞춰 서비스를 제공한다. 또한 이를 지속적으로 수정, 보완하여 더 많은 고객을 끌어들이고 그들의 충성도를 높였다.


셋째, 타오바오만의 기업 문화와 가치관이 확립되어 있었다. 타오바오의 전 직원은 물구나무서기를 할 줄 알며 회사 내에서 메신저로 대화하는가 하면, 전 직원이 무협지 아이디를 쓰는 등 타오바오만의 독특한 기업 문화를 가졌다. 한 조직이 기업의 비전과 가치관을 우선순위에 두고 고객을 위한 가치를 실현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젊은이들을 주축으로 이루어진 타오바오는 이를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물론 기술적인 뒷받침과 풍부한 자금, 그리고 모회사의 전폭적인 지지도 중요한 요소였다.


1960년대에 현대식 쇼핑몰이 생겨난 이후 이베이는 상품거래 방식에 혁신적인 변화를 일으켰다. 이베이의 매출액은 기존 백화점이나 슈퍼마켓을 뛰어넘었다. 항저우에 본사를 둔 타오바오도 처음엔 항저우에서 제일 큰 백화점의 매출액을 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그러나 실제 결과는 예상을 뛰어넘어 2003년엔 8,0000만 위안, 2004년엔 8억 위안, 2005년엔 80억 위안의 매출을 달성했다. 이제 타오바오의 목표는 월마트와 중국 최대의 가전유통업체인 궈메이(國美)에 도전하는 것이다.


거꾸로 뒤집으면 성공이 보인다
코끼리를 쓰러뜨린 개미의 지혜

세계 최대 B2B전자상거래업체인 알리바바닷컴(Alibaba.com, 이하 알리바바)의 CEO 마윈은 1999년 10월, 세계적으로 유명한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를 필두로 피델리티그룹, 싱가포르정부과학기술발전기금과 InvestAB 등 벤처투자기업에게서 500만 달러의 초기 투자금을 지원받았다. 2000년 1월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투자가인 소프트뱅크 CEO 손정의가 2,000만 달러를 투자하여 알리바바가 글로벌기업으로 도약하는 데 결정적인 도움을 주었다. 이렇게 손정의가 거액을 투자하고, 직접 알리바바의 수석고문을 맡으면서 알리바바와 마윈은 업계에서 점점 명성을 얻었다.


중국인터넷정보센터(CNNIC)가 2006년 5월 15일에 발표한 「2006년 중국 C2C온라인거래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2006년 3월까지 베이징, 상하이, 광저우 세 도시에서 C2C 사이트를 통해 온라인으로 물품을 구매한 소비자는 모두 200만 명이었다. 또 구매자의 숫자와 구매빈도에 근거하여 산출한 2005년 이 세 도시의 C2C 사이트별 시장점유율은 타오바오가 67.3%, 이베이이취가 29.1%였다. 이곳에서 물품을 구매한 740만 명 중 타오바오를 이용한 사람이 500만 명 정도였고, 이베이이취는 200만 명을 약간 넘겼다. 이용객들의 구매빈도를 보면 회원 한 사람당 타오바오는 4.25번, 이베이이취는 3.08번이었다.


두 회사의 앞날이 어떻게 될지도 주요 관심사지만 그보다는 이 경쟁이 어떻게 시작되었는가가 더욱 흥미롭다. 이베이라는 위대한 회사, 좀처럼 져본 적이 없는 거대한 회사를 상대로 마윈은 어떤 생각을 하며 이렇게 과감하게 칼을 빼든 것일까?


처음 알리바바 사무실을 방문했을 때 나를 맞이한 젊은 부사장은 2003년 늦봄에서 초여름까지 회사에 일어난 일련의 일들인 사스(SARS), 물구나무서기 등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알리바바의 모든 직원은 물구나무서기를 할 줄 안다고 한다. 물구나무서기는 알리바바의 특유한 문화이자 가치관을 구체적으로 형상화한 것으로, 처음에는 ‘사스’ 때문에 시작되었다. 사스가 한창 창궐할 무렵, 알리바바의 한 직원이 사스에 감염되었다. 이로써 얼마간 전 직원이 자택에서 근무하게 되었는데 이를 계기로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좁은 공간에서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운동으로 물구나무서기를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마윈은 남녀노소할 것 없이 전 직원이 반드시 물구나무서기를 배우도록 지시했다. 그가 약간 무리라고 여겨질 수도 있는 이런 명령을 내린 데는 그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첫째, 스스로 할 수 없다고 생각한 일도 마음만 먹으면 반드시 해낼 수 있다.
둘째, 혼자서 할 수 없을 때는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는다. 이를 통해 팀워크를 다질 수 있다.
셋째, 물구나무를 서면 피가 머리로 몰리면서 세상을 보는 관점이 평소와는 완전히 달라진다. 즉,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거꾸로 뒤집으면 생각지 못한 방향에서 해결책을 찾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는 물구나무서기가 단순한 운동 차원이 아니라 문화적 차원에서 세계를 인식하는 각도와 방법을 제시하게 된다.


세잔은 서로 다른 높이에서 본 풍경을 한 화면에 그려 넣어 공간 개념을 타파했다. 피카소는 한 여인이 얼굴을 돌리려는 순간을 포착하여 옆모습과 앞모습을 한 화면에 그려 넣어 옆에서 본 코와 정면에서 본 입술 그리고 기이하게 생긴 세 개의 눈을 동시에 볼 수 있는 그림을 그려 시간 개념을 깨뜨린 입체파를 창시했다. 세상은 원래 이렇게 이루어졌는데 단지 우리가 평소에 생각하지 못하기 때문에 볼 수 없는 것은 아닐까? 어떤 문제가 풀리지 않을 때는 물구나무를 서거나 눈을 가늘게 뜨고 세상을 바라보자.


기업을 경영하는 것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90%의 시장점유율을 차지하고 70억 달러라는 막강한 자금력을 지닌 경쟁사를 상대하는 유일한 방법은 생각을 거꾸로 헤집어 해결책을 찾는 것일 수도 있다. 손을 다리로 삼아 자기가 미처 보지 못한 부분이 어디인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무엇보다 신용이 우선이다
마윈의 야심작 즈푸바오

전자상거래의 핵심은 정보의 이동, 자금의 이동, 물류라는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처음에 마윈은 가장 어려운 자금의 이동과 물류 문제는 회피하고 정보이동 플랫폼 구축에만 힘을 쏟는 듯했다. 그 결과 단시간 내에 정보교류 플랫폼 구축에 성공했지만 진정한 비즈니스가 이루어지려면 자금의 이동 문제를 해결해야만 했다. 사실 마윈은 이 문제를 회피하려 했던 것이 아니며 준비기간을 가졌을 뿐이다. 그 시간에 마윈은 외국에서 사용되는 대부분의 전자상거래 결제시스템을 연구했다.


신용이 발달한 미국사회에서도 전자상거래 기업들은 초창기부터 온라인 결제시스템인 ‘페이팔(PayPal)을 도입했다. 페이팔의 거래 방식은 다음과 같다. 페이팔 계정 소지자는 먼저 수취인의 이메일 주소와 송금액을 입력한 다음 지급 계좌(신용카드 계좌, 은행 계좌, 페이팔 계정: 이 계정에는 페이팔에 신용카드나 은행카드 계좌를 등록하지 않은 이용자도 포함)를 선택한다. 페이팔 계정의 예금을 인출할 경우, 페이팔 계정에서 은행 이체 요청을 하면 지정된 은행 계좌로 이체된다. 이렇게 송금되면 이메일을 통해 돈이 들어왔다는 메시지가 전해진다.


그렇다면 신용평가시스템이 완벽하게 구축된 미국에서 굳이 페이팔 시스템을 도입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공포심 때문이었다. 전자상거래의 경우 대금과 물품을 맞바꾸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오프라인 거래와 성격이 다르므로 사람들은 재산상 손실을 입을 수 있다는 두려움에 떨게 된다. 신용시스템이 제대로 구축되지 못한 중국 전자상거래시장의 여건은 더욱 열악하다. 그래서 중국인은 현금거래나 직거래를 선호하는 경향을 보이며 중국 B2C 사이트들은 대부분 ‘물건을 직접 배송한 후 대금을 받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마윈이 결제시스템 분야에 먼저 뛰어든 중요한 이유는 타오바오 설립 초기에 C2C 시장의 자금 이동의 안전성 문제가 B2B 시장보다 더욱 심각하여 시급한 해결 과제로 부각되었기 때문이다. 한편 2003년에 이베이는 15억 달러에 페이팔을 인수했으며 그 후 페이팔의 실적은 매우 높아졌다. 이베이는 이미 중국시장에 진출했으므로 페이팔의 진출도 시간문제였다. 이 때문에 ‘선제공격’의 대가인 마윈은 페이팔이 진출하기 전에 전자결제시스템을 출시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웠다. 이제 다음 단계는 전자결제시스템을 어떻게 만들지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었다.


에스크로(결제대금예치) 분야 진출 초기에 마윈은 페이팔 모방에 반대했다. 세계적으로 성공을 거둔 회사의 시스템이라고 할지라도 중국의 실정을 고려하지 않고 그대로 적용한다면 분명 커다란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페이팔의 프로세스는 개인 대 개인(Person to person) 방식으로 구매자의 대금이 직접 판매자의 계좌로 송금된다. 그러나 송금된 돈은 되돌려 받을 수 없으므로 구매자의 안전은 보장받을 수 없다. 이러한 모델을 중국시장에 적용한다면 고객들의 공포심은 여전히 해소되지 못할 것이다. 게다가 페이팔 시스템은 이메일 주소만 입력하면 되는 등 가입절차가 간편하여 이를 악용하는 사례도 늘고 있었다.


이러한 문제점이 있는데도 페이팔이 해외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중요한 이유는 바로 신용카드시스템과 마찬가지로 신용평가시스템을 엄격하게 구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구매자와 판매자 모두 한 번이라도 규정을 위반하면 블랙리스트에 올라 영원히 페이팔을 이용할 수 없게 된다.


그러나 중국에는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고의로 또는 실수로 판매자를 나쁘게 평가하는 구매자들도 종종 있다. 이러한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단 한 번의 잘못으로 당사자를 영원히 제명시키는 처벌 기준을 중국 시장에 적용하기에는 다소 무리였다. 더욱이 직불카드 위주의 은행카드 소비시장이 형성된 중국에서 카드 대 카드 이체방식은 현실적이지 못하다. 이러한 제반 상황을 고려한 마윈은 반드시 중국인의 소비습관에 부합하는 새로운 시스템을 제작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즈푸바오의 거래방식은 다음과 같다. 구매자가 즈푸바오의 가상계좌에 대금을 송금하고 즈푸바오가 판매자에게 입금 확인 사실을 통지하면 판매자가 물품을 발송한다. 도착한 물품에 이상이 없음을 확인한 구매자는 즈푸바오에 물품 수령과 구매 확정을 통보한다. 즈푸바오가 구매자의 가상계좌에 예치된 대금을 판매자의 가상계좌로 이체하면 판매자는 은행에서 해당 금액을 인출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즈푸바오의 1.0 버전의 기본 기능이다. 타오바오닷컴 오픈 3개월 후인 2003년 10월 즈푸바오는 타오바오의 추천 결제시스템이 되었다.

즈푸바오는 전자상거래 발전의 가장 큰 걸림돌을 제거함으로써 타오바오 거래량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지금까지도 타오바오 직원들은 타오바오가 이베이라는 강적을 물리치고, 중국 내 C2C 시장에서 선두를 차지하는 쾌거를 이룩할 수 있었던 비결은 즈푸바오 덕분이라고 주저 없이 말하곤 한다. 그리고 즈푸바오와 VISA의 협력은 이러한 안전결제시스템이 세계화되는 발판을 마련해주었다.


타오바오 불패신화의 원동력
힘차게 펄럭이는 무료화의 깃발

‘무료’ 전략에 대한 마윈의 생각과 태도는 매우 독특하다. 대다수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무료’가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니며 경쟁에서 이길 수 있던 이유는 ‘무료’와 관련이 있긴 하지만 단순히 ‘무료’ 전략에만 의지한 것은 아니라는 설명이다.


무료란 무엇인가? 무료란 바로 해자(垓字, 적의 침입을 방어하기 위해 성의 주위를 파 경계로 삼은 구덩이-옮긴이)를 숨기기 위해 적의 주의력을 분산시키는 빨간 깃발과 같은 존재이다. 마윈은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해자 아래에 우리의 오색깃발이 나부끼고 있지만 적들은 이를 보지 못하고 단지 빨간 깃발만 보게 된다. 이것이 바로 ‘깃발 하나가 시야를 가려 천하를 보지 못한다’는 뜻이다. 우리의 진짜 전투력은 해자 안에 있지만 적들은 보지도 못할뿐더러 배우지도 못한다.” 이 때문에 마윈이 생각하는 C2C시장에서 무료는 무기가 아니라 그저 지금 필요한 생존방식일 뿐이다. 그는 경쟁사가 무료를 따라 할까 두려워하기는커녕 오히려 ‘같이 무료화하자’며 느긋하게 제안했다.


2005년 12월 19일, 이베이이취는 점포무료개설 등 가격조정정책을 내놓으며 판매자들에게 ‘제로 비용’으로 판매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 이베이이취의 대변인은 “우리의 온라인 상점모델은 이미 중국 내 수많은 기업들의 기준이 되었다. 개점비용을 면제하는 목적은 전문판매상들이 온라인 점포를 열도록 독려하고 판매비용을 줄여주어 매출을 높이려는 데 있다. 또 판매자들이 경매상품으로 등록하지 않은 기타 상품까지 모두 검색화면에 노출시켜 광고효과를 극대화할 것이다”라고 발표했다.


‘무료’는 비즈니스모델이 아니며 수익을 원하는 인터넷업체에게는 자살과도 같은 행위이다. 하지만 2001년부터 2005년까지 시행한 유료정책은 이취의 생각만큼 효과적이지 못했고 그다지 큰 수익을 가져다주지 못했다. 비록 이베이의 투자를 받아 미국회사가 되기는 했지만 그만큼 중국시장에서의 자체적인 생명력이 떨어져 타오바오에 밀리면서 시장점유율은 점점 떨어지기만 했다.


이베이이취는 유료에서 무료로 전환하는 것은 중국전자상거래에서 역사적 퇴보일 뿐이라고 수차례나 밝혔다. 그러나 이들도 어쩔 수 없이 역사를 거꾸로 되돌릴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이는 중국시장에 대한 심도 있는 연구 끝에 내리게 된 결정이었다.


적잖은 사람들은 무료정책이 양날의 칼과 같아 타오바오가 이베이취를 이 칼로 쓰러뜨렸지만 도리어 자신이 이 칼에 당할 수도 있다는 점을 걱정했다. 무료가 3년 또 3년, 또다시 3년 이렇게 이어지다가 어느 날 타오바오가 유료화를 선언할 때 다른 누군가가 ‘무료’를 무기로 들고 나온다면 타오바오도 쓰러질 수 있다는 경고이다. 그렇다고 영원히 무료화할 경우엔 과연 알리바바가 돈만 잔뜩 들어가고 수익도 내지 못하는 회사를 계속 유지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가 생긴다. 알리바바가 설령 돈이 너무 많아서 주체를 못한다고 해도 이런 회사를 유지할 필요가 있을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러한 의문에 마윈은 매우 흥미로운 대답을 들려주었다. “첫째, 알리바바는 돈을 충분히 갖고 있다. 둘째, 무료정책을 쓴 이유는 경쟁 때문이 아니라 시장과 회원들의 요구 때문이다. 진짜 중요한 무기는 핵심경쟁력이며 이는 경쟁사들이 쉽게 배울 수 없는 부분이다. 셋째, 경쟁사에게 무료화에 동참해달라고 네 차례나 제안했지만 매번 ‘무료’는 시간을 역행하는 것이며 비즈니스 모델도 아니라는 대답만 들었다.”


IT회사가 아닌 서비스기업이 되라
커뮤니티를 통해 사이트를 키운다

알리바바를 창업하기 전에 마윈은 동료들과 함께 베이징에서 ‘온라인중국상품거래시장’이라는 사이트를 운영했다. 이들은 베이징에서는 그다지 성공을 거두지 못했으나 투자자를 찾는 과정에서 커뮤니티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알리바바의 한 창업멤버의 말에 따르면 처음에는 커뮤니티에 별 관심이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커뮤니티 게시판의 클릭수가 점점 늘면서 관심을 갖게 되었고 오히려 정성들여 만들어놓은 웹페이지보다 이곳의 방문자수가 더 많다는 걸 깨달았다. 당시에는 그 이유를 찾을 수 없었는데 마윈과 직원들이 베이징을 떠나기로 결정하고 마지막으로 다같이 놀러간 만리장성에서 마윈은 답을 찾을 수 있었다. 바로 중국인은 어느 곳에서든 뭔가를 끼적이거나 쓰기를 좋아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중에 알리바바를 만들면서 찻집 분위기로 커뮤니티를 꾸몄다.


2003년에 C2C 사이트를 만들기로 결정하면서 이를 위해 10명으로 구성된 전담팀에는 엔지니어, 고객관리담당 그리고 포럼과 커뮤니티 담당직원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 사람들의 조합에서 우리는 타오바오의 기본적인 형태를 엿볼 수 있다. “우리는 매일 같이 인터넷상의 커뮤니티를 돌아다니며 살펴보았는데 구성이나 기술적인 측면에서 전부 고만고만하다는 걸 느꼈다. 이 때문에 처음에는 머릿속이 뒤죽박죽이었다. 그러다가 ‘서사호동(西祠胡同)’이라는 사이트에서 영감을 얻었다. 서사호동은 ‘골목’이라는 중국적 정취가 물씬 풍기는 단어였다. 누군가 우리 사이트를 방문하면 이런 느낌을 받길 원했다. ‘당신은 골목 입구에 있다. 고색이 창연하고 예스러운 골목에.’ 입구에는 구부정한 버드나무가 있고 골목 안에서는 사람들의 활기찬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러한 콘셉트로 밀고 나가보자고 생각했다.”


2000년 전후에 등장한 몇몇 IT업계 영웅들의 면모를 보면 모두 일정한 공통점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장차오양, 딩레이 심지어 마윈의 옛 경쟁자인 사오이보 등은 모두 어릴 때부터 천재소리를 듣고 자랐다. 이들은 모두 명문대 출신에 유학파이거나 세계 500대 기업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다. 이들이 이러한 경력과 태평양 건너편 자본가들이 제공한 자금을 가지고 중국에 발을 디뎠을 때 이들은 또 다른 세계의 문명 혹은 전혀 새로운 비즈니스 문명을 상징했다.


하지만 마윈은 달랐다. 그는 진정한 민초이며 일반인이다. 항저우라는 도시의 골목에서 우울한 청소년기를 보내며 자란, 어쩌면 보통사람보다 훨씬 더한 풍랑을 겪은 인물이다. 마윈은 길거리 문화나 서민들의 생존방식과 지혜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며 이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IT업계 영웅들에게 없는 부분이다.


인터넷 열풍이 일어난 지 10년이나 지나자 네티즌들은 이제 인터넷에서 사람의 목소리를 듣고 싶어 했다. 이베이의 창립자인 오미디야르도 새로운 세대의 인터넷 주자들에게 말하길 그의 유일한 바람이 있다면 인터넷에 진정한 사람의 목소리를 심는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는 지금의 인터넷에서 매우 중요한 점이다.


마윈이 이 같은 말을 한 적은 없어도 이러한 일을 직접 하려 했다. 게다가 그는 이러한 사람의 목소리에다 중국적인 요소를 가미하여 마윈 스타일의 독특한 시스템을 만들었다. 이는 처음에는 사람들의 주목을 끌지 못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업계 전문가들은 이런 독특한 커뮤니티 문화야말로 타오바오의 결정적 무기라고 평가했다. 타오바오는 ‘커뮤니티를 통해 사이트를 키운다’는 눈에는 잘 띄지 않지만 효과적인 전략을 펼쳐 성공했으며 더욱 중요한 것은 이 전략은 베끼기가 매우 어렵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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