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은 뛰어난 문체를 뒷받침하는 인간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이다. 특히뛰어난 개인들의 전기를 다룬 70편의 『사기열전』이 돋보인다. 사마천은 그 인물의 내밀한 부분과 참모습까지 파고들어 성공과 실패의 원인,두려움과 자만심의 근원까지 짚어냄으로써 하나하나를 잊을 수 없는 개인들로 만들어놓았다.
이 책은 『사기열전』이 지닌 "사유와 통찰의 에너지"를 고스란히 뽑아내서 현대인을 위한생각경영법으로 제시해보고자 하는 시도이다. 그것은 조직을 경영하고 상대방을 설득하고 이익을 나누는 일에 있어 2천 년간 인류를 지배해온 가장근본적인 틀이 무엇인지 밝히는 일이다. 이를 위해 관찰, 비교, 종합, 직권, 성찰, 통찰 등 6개의 장으로 구분해서 재구성했다. 사마천의역사해석을 그대로 반복하지 않고, 키케로, 에리히 프롬, 르네 지라르 등 서양의 사유전통과 이탁오 등 동양 후대의 사유전통과 비교해가며객관화시키고 재음미하고자 노력했다.
■ 저자
김원중 - 충북 보은에서 출생하여 충남대중문과와 동대학원을 거쳐 성균관대 중문과에서 중국 고전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중국 대만 중앙연구원 중국문철연구소 방문학자와 중국대만사범대학 국문연구소 방문교수를 역임했다. 현재 건양대 중국언어문화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한국중국문화학회 부회장도 맡고 있다. 2002년MBC 느낌표 도서로 선정된 『삼국유사』를 비롯해 『정사 삼국지』(4권)『사기열전』(2권)『한비자』『정관정요』『사기본기』『당시』『송시』『염철론』등 굵직한 고전원전 번역을 통해 고전의 한국화, 현대화에 기여해왔다. 또한 『허사대사전』(문광부 우수학술도서)『중국문화사』중국문학이론의세계』(학술원 우수학술도서)『중국문화의 이해』(문광부 우수도서)『혼인의 문화사』 등의 단행본을 저술하고 30여 편의 학술논문을 발표했다. 앞으로『사기』를 주축으로 하여 동양 주요 고전들의 인문학적 재해석과 고전 속의 인물군상을 통섭의 시각에서 재조명하는 작업을 해나갈계획이다.
강성민 - 동국대 국문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원래 시를썼으나 신춘문예 최종심에 겨우 오르기를 몇 번 하다가 시와 멀어졌다. 『삼국지』의 번역자이자 이상(李箱)을 능가하는 난해시로 유명한 김구용을연구해서 석사논문을 썼다. 출판저널에서 2년간 기자로 근무했고 교수신문으로 자리를 옮겨 5년간 기자와 편집국장을 역임했다. 현재 「인물과사상」에 우리시대의 주목받는 저술가들의 책을 분석·비평하는 ‘탈脫 아카데미 저자열전’을 연재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학계의 금기를 찾아서』가있고 기획한 책으로 『고종황제 역사청문회』가 있다.
■ 차례
머리말
제1강 관찰력
이익과 화근의 뿌리를 파악하라 :6개국의 재상을 지낸 종횡가 소진
논증을 위한 수단은 널려 있다 : 종횡가 장의의 ‘설득술’
불복종으로 이익을 끌어내는 법 :진나라 왕을 두 번 혼낸 조나라의 인상여
예외를 만들면 위험하다 : 흉노의 묵돌이 혁명에 성공한 이유
제2강 비교력
진짜 욕망과 가짜 욕망을 구분하라 :네 개의 눈으로 사물을 꿰뚫어본 유경
장군이 되려면 적과 엉켜 싸우지 마라 : 한나라의 영원한 선발대장 이광
보이지 않는 권력이오래가는 법이다 : 초나라의 숨은 현자 사마계주
보수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아라 : 지혜로운 2인자의 생존기술 한안국
제3강 종합력
상인이 공부하면 무서워진다 : 한 번움직여 다섯 나라의 운명을 바꾼 자공
교과서적 행동은 왜 위험한가 : 편작과 창공이 말하는 앎의 기본
철저히 계산하고 대범하게행동하라 : 36년 외척 정치를 물리친 진나라 재상 범저
무엇이 자연스러운 것인가 : 사마천의 좋은 정치와 나쁜 정치
베풀지 말고순환시켜라 : 투자에 대한 사마천식 방정식
제4강 직관력
기회는 만년에 한 번이라는 생각으로잡아라 : 진나라 이사의 처세학
보완할 수 있는 대체물을 준비하라 : 명을 거스를 때마다 고속 승진한 원앙
운명은 인간 심리의 가장약한 속살이다 : 백이숙제의 완만한 자살과 그 교훈
제5강 성찰력
준비되지 않으면 일어서지 마라 :진시황의 턱밑에서 좌절한 형가의 비극
지나친 정확성은 인심을 잃는다 : 손무는 과연 오왕에게 이겼는가
법의 역설에 대비하라 :국가주의자 상앙의 성쇠
엘리트주의를 경계하라 : 굴원에게 비극의 책임을 묻다
제6강 통찰력
군주를 알아야 대중을 다스릴 수 있다: 춘추시대 최고의 심리학자 한비
몸과 이름을 함께 보존하는 방법 : 인간의 자존감에 호소해 이긴 노중련
문무의 길항관계 조율하기 :정나라 명재상 자산이 남긴 유언
너무 곧은 것은 굽어 보이는 법 : 유식한 숙손통이 무식한 왕을 설득한 방법
강한 자는 드러내지않는다 : 노자가 공자에게 해준 충고의 의미
부록 - 사기어록史記語錄
발분에 관한 어록 |승부·성패에 관한 어록 | 경제에 관한 어록 | 능력·인재에 관한 어록 | 결단에 관한 어록 | 의리에 관한 어록 | 처세에 관한 어록 |현명함에 관한 어록 | 민심에 관한 어록 | 기회에 관한 어록 | 생각에 관한 어록 | 직분·질서에 관한 어록 | 원칙·법도에 관한 어록 |자존에 관한 어록
참고문헌
2천년의 강의
관찰력
예외를 만들면 위험하다 : 흉노의 묵돌이 혁명에 성공한 이유
“묵돌은 명적으로 자기 애마를 쏘았다. 좌우에서 감히 쏘지 못하는 자가 있자 묵돌은 자기 애마를 쏘지 않은 자를 그 자리에서 베어 죽였다. 조금 뒤 애첩을 향해 명적을 날렸는데 좌우 군사들 중에 감히 쏘지 못하는 자가 있자 그들도 목을 베어 죽였다. 얼마 뒤 사냥하러 나가 선우(왕)의 명마를 쏘았는데 곁에 있던 자들이 일제히 그 말을 쏘았다. 묵돌은 그의 좌우에 있는 자들이 모두 쓸만하게 된 것을 알고 그 아버지 두만 선우를 따라 사냥하러 나갔을 때 명적으로 두만을 쏘았다. 그러자 그 부하들도 명적이 맞힌 곳을 따라 두만 선우를 쏘아 죽였다. 묵돌은 그의 계모와 아우 및 자기를 따르지 않는 대신을 모조리 죽이고 스스로 서서 선우가 되었다.” -『흉노열전』
인용한 부분은 입이 떡 벌어지는 가공할 만한 왕위 찬탈의 한 장면이다. 묵돌은 누구이고 그에게 죽임을 당한 두만 선우는 또 누구인가. 진나라 후기 제후들이 반란을 일으켜 중국 본토가 혼란에 빠졌을 때 이 틈을 타서 흉노가 강성해졌다. 진나라가 국경 방비를 위해 보냈던 병사들이 속속 돌아가고 북방으로 쫒겨났던 흉노는 숨을 돌리며 차츰차츰 황하를 건너 남쪽으로 내려와 중국과 경계를 맞대게 되었다. 두만 선우는 이때 흉노의 왕이었다. 그에게는 묵돌이라는 태자가 있었다. 그런데 두만 선우는 뒤에 애첩에게서 작은아들을 얻게 되자 묵돌을 폐위시키고 작은아들을 태자로 세울 목적으로 묵돌을 월지국에 볼모로 보냈다. 묵돌이 월지국에 볼모로 있을 때 두만 선우는 갑자기 월지국을 공격했다. 월지국에서 묵돌을 죽이려 하자 그는 그 나라의 가장 좋은 말을 훔쳐 타고 도망쳐 돌아왔다. 두만 선우는 그 용기를 장하게 여겨 기병 1만 명을 거느리는 대장으로 삼았다.
보통 사람이라면 볼모에서 장군으로 회복된 신분을 유지하며 삶을 이어나갔을 것이다. 그러나 묵돌은 야망 있는 사람이었다. 이미 자신은 왕에게 버림받은 몸이라 다시 태자로 복귀될 가능성은 없었다. 그러나 그에게는 다른 기회가 있었다. 아버지인 왕을 제거하면 태자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왕이 될 수 있었다. 그는 냉철하게 쿠데타를 준비했다.
명적은 쏘면 소리를 내는 화살이다. 흉노를 중앙아시아의 강자로 만들어준 무기다. “내가 명적으로 쏘아 맞히는 곳을 일제히 쏘라. 그렇게 하지 않는 자는 베어 죽이겠다.” 묵돌은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묵돌은 처음에는 사냥에 나가서 짐승이나 나무를 쏘아서 부하들을 훈련시켰다. 그리고 따르지 않거나 늦는 자들은 가차 없이 베었다. 어느 정도 시스템이 갖춰지자 이번엔 자신의 애마를 쏘더니, 애첩을 쐈고, 결국 왕의 말까지 쏘았다. 따르지 않는 자들은 모두 죽였다. 묵돌이 요구한 것은 무조건적인 복종이었고, 즉각적인 신체 반응이었다.
왕을 죽이는 일은 순식간에 일사불란하게 해치워야 성공할 수 있다고 묵돌은 판단했다. 그래서 명적을 선택한 것이다. 화살이 쉬익 소리를 내며 날아가면 좌우의 병사들은 마치 파블로프의 개가 종소리를 듣고 침을 흘리듯 자동적으로 활시위를 당기게 되었다. 머뭇거리는 자들을 가차 없이 처단한 것은 혁명이라는 신성한 작업에 약한 인간의 마음이 배어들어오는 것을 미리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이렇게 독하게 반정을 준비해서 묵돌은 왕위에 오를 수 있었다. 왕을 죽이고 왕비를 죽이고 태자의 자리에서 자신을 밀어냈던 배다른 동생도 죽이고 그들을 따르는 신하까지 모조리 죽였다.
사마천이 바라본 흉노의 세계는 어떤 것이었을까.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단순성’이라는 가치다. 문인이 다스리는 한나라가 복잡 다양한 제도의 얽힘 속에서 운영된다면 흉노 사회는 쳐다보는 이의 눈이 베일 것만 같은 극단적인 단순명료함을 그 특징으로 한다. 흉노의 진정한 단순성은 형벌제도에서 빛을 발한다. 이들의 법에 죄는 두 가지밖에 없었다. ‘가벼운 죄’와 ‘무거운 죄’가 그것이다. 물론 어떤 것이 가볍고 무거운지 그것을 나누는 기준은 단 몇 가지에 불과했다. 평상시 칼을 칼집에서 한 자 이상 뽑는 자는 사형에 처했고, 도둑질한 자는 그 가족과 재산을 다 빼앗았으며, 가벼운 죄가 있는 자는 알형을 가했다. 알형은 칼로 얼굴을 가르거나 수레바퀴 밑으로 몸을 넣어 뼈를 부수는 형벌이다. 싸우는 사람들은 웬만해서는 다 죽였다. 상식적으로 볼 때 결코 가벼운 벌이 아닌 것이다. 왜 이렇게 벌이 가혹했을까.
사마천은 그 이유를 유목민족의 떠도는 삶에서 찾았다. 흉노는 목축을 하며 이동하면서 살기 때문에 감옥을 크게 지을 수 없었다. 즉, 신체를 구금하는 일수를 조정해서 지은 죄를 감한다는 관념이 그들에게는 없었다. 사마천은 “옥에 가두는 것은 길어도 열흘을 넘지 않았으며 죄수는 온 나라를 통틀어 몇 명에 지나지 않았다”고 기록한다. 죄를 짓는 즉시 칼로 얼굴을 가르거나 수레바퀴 밑에 밀어넣거나 죽였다는 것이다. 이런 사회에서 왕권은 그야말로 절대적이었다. 흉노의 왕이 죽으면 금은과 갖옷으로 시체를 치장해 관에 넣어 땅에 묻었는데, 이때 함께 순장되는 가까운 신하나 애첩이 많을 때는 수천 명이 넘었다. 쿠데타는 이런 무참한 형벌제도를 움켜쥔 왕권에 대한 도전이었으니 세력을 규합해서 음모를 무르익히고 행동하는 수순을 밟을 수 없었다. 일단 욕망이 굳혀지면 곧바로 행동해야 했다. 생각보다 행동이 앞서는 것, 이것이 흉노의 역사를 수놓는 수많은 왕위 쟁탈 쿠데타를 꿰뚫는 논리다.
종합력
무엇이 자연스러운 것인가 : 사마천의 좋은 정치와 나쁜 정치
“신농씨 이전의 일에 대해 나는 알지 못한다. 시경과 서경에서 말하는 우리 하나라 이래의 것을 보면 귀와 눈은 아름다운 소리와 아름다운 모습을 한껏 즐기려 하고, 입은 소와 양 따위의 좋은 맛을 다 보려 하며, 몸은 편하고 즐거운 것을 좋아하고, 마음은 권세와 유능하다는 영예를 자랑하고 싶어한다. 이러한 풍속은 백성의 마음속까지 파고든 지 이미 오래여서 미묘한 이론을 가지고 집집마다 깨우치려 해도 도저히 교화시킬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세상을 가장 잘 다스리는 방법은 자연스러움을 따르는 것이고, 그다음은 이익을 이용하여 이끄는 것이며, 그다음은 가르쳐 깨우치는 것이고, 또 그다음은 백성을 가지런히 바로잡는 것이고, 가장 정치를 못하는 것은 (재산을 가지고) 백성과 다투는 것이다.”
-『화식열전』
사마천의 『화식열전』은 아마 오늘날 사람들이 가장 즐겨 인용하는 글 중의 하나일 것이다. 이 열전은 춘추 말기부터 한나라 초기까지 상공업으로 치부한 사람들의 활동을 다룬 것으로, 이 시기 상공업 발전의 면모를 볼 수 있어 ‘화식(貨殖)’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화’는 재산, ‘식’은 불어난다는 뜻으로 재산을 늘리는 방법을 말한다. 사마천은 농업, 공업, 상업 등의 분업은 사회경제 생활에서 중요한 작용을 하는 필연적인 것으로 생각했다. 그는 상업을 의식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길로 보고 농업, 공업과 함께 모든 직업을 중시하는 진보적 면모를 보였다. 그는 ‘중농억상(重農抑商)’의 전통적인 가치관을 부정하고 있다.
서두의 인용한 구절은 화식열전의 첫머리에 나오는 사마천의 논평이다. 잘 먹고 좋은 소리를 듣고 권세를 뽐내려 하는 인간의 보편적인 심리를 확신과 약간의 탄식조를 깃들여 서술하고 있다. 문화인이라면 아름다운 선율과 화려한 색조로 이루어진 예술품의 감상을 금과옥조로 여긴다. 그리고 이것을 먹고 마시는 악다구니와 대비시켜서 계층적 차이를 내면화하고 상류층의 정서를 만끽하고자 한다. 그런데 사마천이 이미 썼듯이 아름다운 모습을 한껏 즐기려 하고 소와 양 따위의 좋은 맛을 다 보려 하는 것은 본래 한통속이다. 눈은 귀하고 입은 천한 것인가? 오십보백보일 뿐이다.
사마천은 가장 높은 수준의 정치를 자연스러움을 따르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 자연스러움은 바로 상업의 자연스러움이다. 이미 2천 년 전에 사마천은 그런 얄팍한 심리적 배타성을 꿰뚫어보았다. 사마천이 말하는 것을 한번 살펴보자. 농부는 먹을 것을 생산하고, 어부와 사냥꾼은 물건을 공급하고, 기술자는 이것으로 물건을 만들고, 장사꾼은 유통시킨다. 이 과정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으로서 사마천은 “이러한 일이 어찌 정치적인 명령이나 교화나 징발이나 기일을 정해놓음으로써 모이겠는가?”라고 말하고 있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능력에 따라 그 힘을 다해 원하는 것을 얻는다. 그러므로 물건 값이 싸다는 것은 장차 비싸질 조짐이며, 값이 비싸다는 것은 싸질 조짐이다. 각자가 그 생업에 힘쓰고 즐겁게 일하는 것이 마치 물이 낮은 곳으로 흐르는 것과 같아, 물건은 부르지 않아도 밤낮으로 쉴새없이 절로 모여들고 구하지 않아도 백성이 만들어낸다. 사마천은 이것이야말로 도와 부합한 것이며, 자연법칙의 징험이라고 말한다. 인간의 상업 행위를 자연법칙으로까지 끌어올리는 사마천의 사고방식은 『주서(周書)』에 근거한다. 거기엔 이렇게 쓰여 있다. “농부가 생산하지 않으면 식량이 모자라고, 장인이 물건을 제대로 만들어내지 않으면 제품이 부족하고, 장사치가 물건을 팔지 않으면 삼보(三寶 : 식량, 제품, 자재)의 유통이 끊어진다. 어부나 사냥꾼이 활발하게 활동하지 않으면 자재가 모자란다. 자재가 모자라면 산과 택지는 개척되지 않는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사마천이 던지는 한마디 말이 화식열전의 서론을 멋있게 마무리한다.
“빈부의 도란 빼앗거나 안겨주어서 되는 게 아니고, 교묘한 재주가 있는 사람은 부유해지고 모자라는 사람은 가난한 것이다.”
여기서 이 모든 ‘자연스러움’에 대하여 현대적으로 다시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사마천이 살던 시대는 어디까지나 봉건시대이다. 왕과 일부 귀족층이 국가를 분할 통치하였고 그 외의 상업, 공업, 농업에 종사하는 백성들은 대개 하루 벌어먹거나, 일년 내내 고되게 일하고 먹을 것이 있으면 달게 먹고 없으면 굶는 것이 일상이었다. 굶주림을 걱정하지 않아도 될 사람들은 대부분 그 권력을 세습했으며 한 계층이 다른 계층으로 이동하는 현상이 극히 미미했다. 국가들 간의 영역 다툼은 단지 권력자들의 현안이었지, 일반 백성들은 돌아가는 사정도 몰랐고 국경이 어떻게 변하든, 왕이 누가 되든 근본적으로 삶이 변하지 않았기 때문에 관심이 없었다. 따라서 운명공동체라는 느낌은 오직 살을 붙이고 살았던 자그마한 공동체 내부의 산물이었던 것이다.
사마천이 말한 자연스러움은 바로 이러한 삶의 원리를 내장한 사회에서의 자연스러움이었다. 전쟁이 없는 시기라면, 백성들의 삶에 큰 변화는 없다. 농공상이 자급자족하며 그 안에서 만족할 수 있는 삶이었다. 무려 수천 년을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에 그게 자연스러웠다. 그런데 도시자본이 성장하고 절대왕정 시기를 지나면서 이러한 큰 틀에 변화가 왔다. 예전에는 없었던 ‘자본권력’이 등장하면서 국가와 어깨를 나란히 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물론 신분제의 견고함이 깨졌기 때문에 상업자본이 성장할 수 있었고, 먼 지방을 알아서 제패해주던 제후라는 팔다리를 잃어버린 국가는 자본을 자신의 파트너로 받아들여서 함께 먹고살 궁리를 해야 했다. 여기서 국가와 자본이 결합하게 된다. 국가 고위관료와 자본가들이 이익공동체로 제휴한 것이다.
따라서 사마천이 구분한 정치의 다섯 단계는 현대사회에서는 불가능하게 되었다. 자연스러움을 따르자면 시장경제에 모든 것을 맡겨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빈익빈 부익부가 심화돼 사회가 유지되기 힘들 것이다. 이익을 이용하여 국민을 이끄는 것도 근본적으로 한계가 있다. 고소득층을 대변한다는 말과 서민정부라는 말이 괜히 생겨나는 게 아니듯 말이다. 현대사회에서 전체의 이익은 존재할 수 없다. 가르쳐 깨우치고 백성을 가지런히 바로잡는 것은 과거로 회귀하자는 말이나 다름없으니 거론할 것이 없다. 마지막으로 백성과 이익을 가지고 다투는 것은 만성적자에 시달리는 빈약한 정부 재정을 생각하면 말할 계제가 못 된다.
그러나 우리는 『화식열전』의 첫머리를 읽으며 사마천의 ‘역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비록 이론적으로 볼 때 정부에서 물가와 환율 등 모든 것에 개입하는 이 시대에 봉건시대와 같은 ‘자연스러운’ 유통과 그 속에서의 행복은 상상조차 하기 힘들지만, 지나친 정책의 남발은 경계해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유학이 국교였던 사마천의 시대에도 법가가 세력을 구축하면서 정부가 교화의 의지를 가지고 백성들의 삶을 바로잡고자 시도했다. 그 정책들은 대부분 계몽주의적 의지의 심각한 반영이었다. 가령 법가의 가장 위대한 이론가인 한비는 “형벌이 많으면 백성이 조용해지고, 상이 많으면 여러 가지 간사한 죄악이 생겨난다”라고 했다. 사마천이 볼 때 이것은 분명 자연스러운 삶의 조화를 막는 악덕이자 못난 정치였다.
그런데 오늘날의 삶에서 정부의 일정한 규제는 불가피해졌다. 물가가 오르면 잡아야 하고, 땅값이 오르면 주저앉혀야 한다. 자본의 요동이 무한질주하면 안 되기 때문이다. 사마천이 말한 봉건시대의 악덕이 이 시대에는 필수불가결한 제도가 되었지만, 악덕 자체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그것은 다른 모습으로 부활했다. 바로 국민의 눈을 속이는 각종 눈가림 정책이다. 과거의 정책이 교화나 계몽을 표방했다면, 오늘날 대부분의 정책은 선심(善心)을 표방하고 있다. 물론 절대적이지는 않고 비율적으로 그렇다는 얘기다. 이것이야말로 자본이 확장하고 국가가 규제하는 정교한 시스템을 흐트리는 리스크로 작용하고 있다. 악덕 그 자체가 없어지지 않았듯이, ‘자연스러움’이라는 정치의 본질도 결코 없어진 게 아니라 무엇을 자연으로 규정하는가의 문제가 바뀌었을 뿐이라는 점을 가르쳐준 게 바로 사마천의 역설이 아니겠는가.
성찰력
지나친 정확성은 인심을 잃는다 : 손무는 과연 오왕에게 이겼는가
선진시대에는 두 명의 손자가 있었으니, 그중 한 사람은 춘추 말기 제나라 사람 손무이고, 또 다른 한 사람은 전국시대 손빈이다. 손무는 나중에 노나라의 장군이 되었고, 그 당시 오나라 왕 합려에게 13편의 병법을 바쳤다. 손무의 손자는 『손자병법』으로, 손빈의 그것은 『손빈병법』으로 불리고 있다.
『손자병법』은 ‘적’과 ‘나’ 쌍방의 전쟁 수행 조건을 여러 방면에서 분석한 책이다. 손무에 의하면, 한 치 앞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 적군과 아군의 역량은 고정된 역량이 아니라. 서로의 주관적?객관적 조건과 상태에 따라 변화하고 조절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각종 모순과 대립은 절대적 의미를 갖는 것이 아니라 상대적이라는 말이다.
어느 날 오나라 왕 합려가 병법가 손무에게 군대를 지휘해보길 청했다. 손무는 전국적인 이름을 아직 알리지 못했을 때였다. 손무는 그 자리에서 청을 받들었다. 그런데 이때 합려에게 장난스러운 생각이 들었다. “부녀자로도 해볼 수 있겠소?” “괜찮습니다.” 합려는 뛰어난 이론가들은 많아도 그걸 현실에 그럴듯하게 실천하는 사람은 적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손무를 시험하고자 한 것이었다.
명령이 떨어지자 궁중의 미녀 180명이 몰려왔다. 손무는 그들을 두 편으로 나누고 오나라 왕이 총애하는 후궁 두 명을 각 편의 대장으로 삼았다. 그리고 모든 이에게 창을 들게 했다. 손무는 창을 들고 명령에 맞춰서 대오를 형성해볼 생각이었던 모양이다. 여기서 실험할 것은 정확성과 통일성이다. 정확성은 부대원 개개인이 명령을 정확히 숙지하고 그 한계에 따라 빈틈없이 움직이는 것이다. 그렇다고 통일성이 부대원끼리 움직임을 맞추는 것은 아니다. 통일성 또한 명령을 정확히 수행하는 평준화된 개체들의 단순한 합일 뿐이다. 자율적인 판단이 개입될 여지는 없다. 궁중에서 흐느적거리는 게 일인 여자들이 이런 명령 체계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손무는 줄을 맞춰 늘어선 180명의 미녀들에게 이렇게 물었다. “여러분은 자신들의 가슴, 왼손, 오른손 등을 알고 있는가?” “알고 있습니다.” “앞으로! 하면 가슴 쪽을 바라보고, 좌로! 하면 왼손 쪽을 바라보며, 우로! 하면 오른손 쪽을 바라보고, 뒤로! 하면 등 뒤쪽을 보도록 하라.” “알겠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훈련에 들어가자 궁녀들은 구령에 맞춰 움직여주질 않았다. 키득키득 웃다가 아예 큰 소리로 장난치면서 난장판이 되었다. 오왕이 생각했던 대로 장면이 연출되기 시작했다. 궁녀들 또한 왕이 왜 이런 자리를 만들었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것은 외부에서 온 객장(客將)을 골려주기 위한 자리였다. 일종의 신입 길들이기라고 할까? 아마 오왕은 손무가 수모를 겪으면 오만함을 꺾고 유순하게 오나라를 위해 일해줄 거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손무가 시나리오대로 움직여주질 않았다. 그는 부월(옛날 군법으로 사람을 죽일 때 쓴 은도끼)을 움켜쥐고 말했다. “군령이 분명하지 않고 명령에 숙달되지 않은 것은 장수의 죄이다.” 그러고는 다시 여러 차례 군령을 되풀이해서 외우도록 했다. 궁녀들이 완전히 숙지한 것을 확인하고는 왼쪽으로 행진하도록 했지만 여자들이 깔깔대는 것은 여전했다. 그러자 손무가 “군령이 이미 정확해졌는데도 규정에 따르지 않는 것은 사졸들의 죄이다”라면서 좌우 대장의 목을 실제 베려고 했다. 그녀들은 오왕이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여인들이었다. 깜짝 놀란 오왕이 급히 사람을 내려보내 이를 말리려 했다. 그러자 손무는 말했다. “저는 이미 왕명을 받아 장수가 되었습니다. 장수가 군에 있을 때에는 왕명이라도 받들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결국 두 여인은 목이 잘렸다. 그후에 전개된 상황은 보지 않고도 알 수 있다. 궁녀들은 모두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앞으로, 뒤로, 꿇어앉기, 일어서기 등을 자로 잰 듯 먹줄을 긋듯 정확하게 하며 아무런 불평도 하지 않았다. 동료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놀라거나 슬퍼할 겨를도 없이 궁녀들은 살기 위해 움직였다. 손무는 전령을 보내 오왕에게 군대가 잘 갖춰졌으니 이제 왕의 명령이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뛰어들 거라고 말했다. 하지만 애첩을 둘이나 잃어버린 왕은 슬픔에 젖어 “장군은 관사로 돌아가 쉬도록 하시오. 과인은 내려가 보고 싶지 않소”라고 물리쳤다.
지금까지 전개된 상황을 보면 손무는 오왕의 의도를 이미 간파하고 있었던 듯하다. 궁녀들이 구름처럼 몰려왔을 때부터, 가장 아름다운 두 여인을 좌우 대장으로 삼았을 때부터 이미 그 다음 수순이 머릿속에 그려져 있었을지도 모른다. 다만 군인과 일반인의 인식 차가 그런 의도를 감히 상상할 수 없게 가로막았을 뿐이다.
손무가 보여준 이 참혹한 에피소드는 명령이라는 것의 본질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명령에 의해 움직이는 조직에서 명령은 말이 아니고 법이며 법을 넘어서 칼이다. 하지만 명령이 이런 초월적인 권위를 갖는 것은 명령이 먹히지 않았을 때 그 반대편에는 죽음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불복종을 죽음으로 다스리는 이유는 명을 어겨서 죽으나 적에게 죽으나 죽는 건 마찬가지라는 전쟁 상황 속에서만 합리화될 수 있는 논리에 기반하기 때문이다. 이것을 훈련 상황에도 적용한 것은 훈련은 곧 실전이라는 표어가 말해주듯이 ‘연장된 전쟁’이라는 논리에 기반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상식이었다. 그리하여 오왕은 마치 미치광이처럼 월권한 것으로 보일 수 있었던 손무를 용서하고 물러섰다. 침착하고 냉철하게 생각하는 병법가에게 정치적 수완으로 평생을 살아온 최고 권력자가 당한 것이다.
좀더 정확하고 냉정한 삶이 필요한 이들에게, 스스로에게든 남에게든 아주 가끔 잔인할 필요성을 느끼는 이들에게 손무의 이야기는 무릎을 치게 만들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세상의 모든 진리가 경직된 무기로 쓰일 수 있다고 믿는 이들에게는 두 여인의 죽음은 아무런 의미도 찾을 수 없는 비극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 열전에 제시된 생각들은 우리에게 이렇게도 저렇게도 생각해보게 만든다. 이렇게 생각할 때 우리는 무릎을 치고 고개를 끄덕이지만, 저렇게 생각할 때 권력자들의 정치게임의 틈바귀에서 두 목이 달아난 아리따운 여인들의 어처구니없는 운명을 또한 바라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통찰력
군주를 알아야 대중을 다스릴 수 있다 : 춘추시대 최고의 심리학자 한비
“현명하고 어진 군주에 관해서 말하면 자기를 헐뜯는다는 오해를 받게 되고, 지위가 낮은 인물에 관해서 말하면 군주의 권세를 팔아서 자신을 돋보이려 한다는 오해를 받게 되며, 군주가 총애하는 자에 관해서 이야기하면 그들을 이용하려는 줄 알며, 군주가 미워하는 자에 관해서 논하면 자기를 떠보려는 것으로 여길 것이다. 말을 꾸미지 않고 간결하게 하면 아는 게 없다고 하찮게 여길 것이고, 장황하게 늘어놓으면 말이 많다고 할 것이며, 사실에 근거하여 이치에 맞는 의견을 말하면 소심한 겁쟁이라 말을 다 못 한다고 할 것이고, 생각한 바를 거침없이 말하면 버릇없고 오만한 사람이라고 할 것이다. 이런 것들이 유세의 어려운 점이니 마음속에 새겨두어야 한다.” -「노자?한비열전」-
한비가 지은 「세난」편의 한 대목이다. 그는 날 때부터 말을 더듬었고 자라나서도 유세는 잘 못 했으나 글을 잘 지었다. 한비는 유세의 어려움을 알고 「세난」편을 매우 자세하게 지었다. ‘세난’이란 ‘유세의 어려움’이다. 이 글은 한비 자신이 겪은 시행착오와 고난을 기반으로 하는 데다 인간 심리에 대한 치밀한 분석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오늘날의 관점에서 볼 때에도 완벽한 논리를 갖추고 있는 이 글은 우리에게 여러 모로 흥미로운 사실을 제공한다.
한비는 말이라는 것은 그 자체로 어려울 것은 없다고 밝히고 있다. 내 지식으로 상대방을 설득시키기가 어려운 것도 아니고, 내 말솜씨고 뜻을 분명히 밝히기가 어려운 것도 아니며, 또 내가 감히 해야 할 말을 자유롭게 모두 하기 어렵지도 않다. 다만 유세는 왕을 상대로 하는 것이다. 모든 사람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단 한 사람의 절대강자가 바로 왕이다. 왕을 이해시키고 설득하고 움직이게 하는 것은 유세가의 목숨을 담보로 하는 일이다. 한비가 주목한 것은 상대방이 무엇을 원하는가를 알아야 한다는 점이다. “상대방의 마음을 잘 파악하여 내 주장을 그 마음에 꼭 들어맞게 하는 데 있다”고 하는데 여기에 따르자면 시나리오를 여러 개 쥐고 있다가 마음속으로 잘 계산한 뒤에 들이밀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것은 진실된 충신은 왕의 뜻이 잘못되었으면 마땅히 항의해야 한다는 유가적 가르침과는 다르다.
상대방의 심리를 얻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대개 그의 사람됨과 행동거지, 언변의 스타일을 종합하면 대강은 얻을 수 있겠지만 좀더 철저한 유세가라면 관상학에도 정통해야 험한 전국시대를 살아남을 수 있었을 것이다.
왕에게 걸어가는 길은 이처럼 온통 지뢰밭이다. 지뢰는 용케 피해야 하지만 중간중간 상대방의 환심을 살 수 있게 선물을 던져줘야 한다. 장점을 아름답게 꾸미고 단점을 덮어주는 것, 군주가 자신의 결정을 용감한 것이라고 여기면 구태여 반대 의견을 내세워 화나게 해서는 안 된다는 점, 군주가 꾸민 일과 같은 계책을 가진 자가 있으면 그 사람을 칭찬하고, 군주와 같은 실수를 한 자가 있으면 그에게 잘못이 없음을 명확히 설명하고 덮어주어야 한다.
이것이 어디까지나 왕과의 신뢰관계가 전혀 형성되지 않았을 때의 일이다. 오랜 시일이 지나 군주의 총애가 깊어지면 큰 계책을 올려도 의심 받지 않고 군주와 서로 다투며 말해도 벌을 받지 않는다. 그때 유세가는 국가에 이로운 점과 해로운 점을 명백히 따져 군주가 공적을 이룰 수 있게 하며, 옳고 그름을 솔직하게 지적해돼 영화를 얻게 된다. 그때까지는 자기 몸을 수고롭게 하고 천박한 일을 겪어야 한다고 한비는 말한다. 옛날에 재산 이윤이 요리사가 되고 백리해가 포로가 된 것은 모두 군주에게 등용되기 위한 수단이었다고 강조하면서 말이다.
결론을 위해 그는 과거 미자하라는 이의 고사를 빌려온다. 위나라 군주의 총애를 받던 신하였던 그는 부모가 위독하자 함부로 군주의 수레를 끌고 나가기도 하고, 자신이 한 입 베어물었던 복숭아를 임금에게 권하기도 했다. 왕의 혀처럼 굴었고 왕을 믿고 권력을 행사했던 미자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받았다. 그가 수레를 훔쳐 썼을 때 왕은 “효자로구나! 어머니를 위해서 다리가 잘리는 형벌까지 감수하다니”라고 했고, 먹던 복숭아를 줬을 때는 “나를 끔찍이 위하는구나. 제 입맛을 참고 이토록 나를 생각하다니!”하고 감동했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 미자하는 고운 얼굴빛이 사라져 군주의 총애를 잃고 죄까지 짓게 되었다. 그러자 군주는 이렇게 말했다. “이 자는 예전에 나를 속이고 내 수레를 탔고, 또 먹다 남은 복숭아를 내게 먹였다.”
이 이야기는 군주에게 간언하고 유세하는 자는 군주가 자기를 사랑하는가 미워하는가를 살펴본 다음에 유세해야 한다는 점을 말해준다. 한비자는 미자하의 이야기를 마치고 ‘역린’에 대한 한 마디를 덧붙이고 「세난」편을 마무리짓는다.
?
“용이라는 동물은 잘 길들이면 그 등에 탈 수도 있으나, 그 목덜미 아래에 거꾸로 난 한 자 길이의 비늘이 있어 이것을 건드린 사람은 죽는다고 한다. 군주에게도 거꾸로 난 비늘이 있으니, 유세하는 사람이 군주의 거꾸로 난 비늘을 건드리지 않으면 거의 성공적인 유세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