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 지니어스

Group Genius

   
키스 소여(역자: 이호준)
ǻ
북섬
   
18000
2008�� 01��



■ 책 소개
전신, 비행기, 텔레비전 같은 유명한발명품, 그리고 모토로라 레이저폰, 프링글스 프린트, 리눅스 운영체제 같은 첨단 제품의 이면에 숨겨진 비밀은 무엇일까? 

 


워싱턴대학교 심리학과 교수이자 경영컨설턴트인 키스 소여는 15년 동안 재즈밴드와 즉흥극극단, 중소기업과 대기업을 연구하여 창조성을 이끌어내는 "협력"의 힘을 밝혀냈다. 그는 창의력이란 협력을 통해 생겨난다고 강조한다. 즉 "다수의사람들이 생각과 의견을 교환하는 과정"에서 나온 통찰력은 개인의 통찰력을 합친 것보다 큰 시너지 효과를 발휘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렇게 사람들사이의 협력이 창조적 힘을 자극하여 매우 강력한 통찰력을 이끌어내는 상황을 "그룹 지니어스(Group Genius)"라는 개념으로 정의하였다.


저자에 따르면 "즉흥성" 또한 창조에 있어 중요한 요소다. 즉흥성은 자유로운 사고와 시간에얽매이지 않는 환경에서 만들어진다. 책은 창조적 협력의 원칙을 제시하고, 이런 연구를 바탕으로 창조경영의 당위성을 뛰어넘어 어떻게 하면 창조적인조직을 만들 수 있는지 서술한다.


■ 저자 키스 소여(KeithSawyer)
워싱턴대학교 심리학과 교수이자 경영컨설턴트이다. 창의성과 혁신 분야에서 탁월한 강의와 컨설팅 활동으로 명성을떨치고 있다. 씨티은행과 유에스웨스트를 비롯한 세계 유명 기업들을 대상으로 혁신 자문을 했다. 창의성을 주제로 CNN 특집방송에 출연하여 ‘그룹지니어스(Group Genius)’의 개념을 처음으로 소개했다. 시카고대학교에서 박사 과정을 공부하는 동안 저명한 심리학자 미하이칙센트미하이에게 수학하기도 했다. 지은 책으로는 『창의력 해설 : 인간 혁신의 과학(Explaining Creativity : TheScience of Human Innovation)』이 있다.


■ 역자 이호준
연세대 대학원에서 정신분석비평으로석사학위를 받았다. 사람들에게 정신적·경제적으로 도움을 주는 인문학과 경제경영학에 관심이 많다. 옮긴 책으로 『롱테일 경제학』(공역),『양복입은 원숭이』『음악을 사랑하는 아이로 키우는 법』『햄스터 혁명』『대중음악과 사회』등이 있다.

■차례
추천의 글 - 미래의 창조성은 개인이 아닌 집단의 협력에서 나온다! 
지은이의 글 - 한 명의 천재가 세상을이끄는 시대는 지났다! 


제1부 생각하는 조직, 창조적인 협력 
제1장 협력이지닌 창조적 힘 
산악자전거를 만든 1천 명의 사람들 
대본 없이 연기하는 배우들에게 배워야 할 것 
창조적인 팀의 7가지 조건
IDEO, 구글의 창조성은 어디서 나오는가 

제2장 협력하는 팀의 즉흥적인 대응력 
미국시장을 장악한 혼다의 과감한시도 
재난을 막은 승무원들의 기지 
22초를 2초로 줄인 엔지니어의 대응 
지휘자 없는 오케스트라의 완벽한 연주


제3장 완벽한 심리적 몰입, 그룹 플로 
팀원들을 몰입하게 하는 비결 
그룹플로에 이르는 10가지 조건 
그룹 플로의 심리학 


제4장 그룹싱크에서 그룹 지니어스로! 
여럿이보다 혼자일 때 좀더 창의적이다?
그룹이 브레인스토밍에 실패하는 이유 
그룹싱크의 함정 
단순 결합과 즉흥적 협력의 차이 
시각적 묘사력과 추상적 상상력
팀원들끼리 너무 친해도 창의적이지 못하다 
그룹 지니어스에 대한 보상 


제2부 미래를 여는 생각의 발견 
제5장 창조적 협력의오랜 역사 
작은 메모에서 탄생한 현금자동인출기 
샤워꼭지에서 발견한 허블망원경의 해법 
게슈탈트 학파의 상자 밖에서 생각하기
창의적 섬광을 일으킨 콜리지의 거짓말 
어떻게 통찰력을 얻을 것인가 


제6장 작은 아이디어의 불꽃 
발상의 전환과 다윈의 종의 기원 
위대한혁신가들은 실패를 통해 배운다 
창의성의 대가들은 얼마나 생산적일까 
작은 아이디어 연결하기 
새로운 생각을 만드는 시각적이미지화 


제7장 대화와 정신의 재발견 
유추는 협력의 결과다 
유대관계가 깊을수록통찰력이 빛난다 
창의성과 대화의 관계 
창의성을 자극하는 대화법 
혁신 기업은 다의성을 강조한다 


제3부 창조적 조직으로 가는 길 
제8장 즉흥적인 혁신조직 만들기 
혁신 연구실을 활용하라 
한 사람이 이끄는 혁신을 넘어서 
협력하는 조직의 혁신 비결 10가지


제9장 창조적인 협력망 만들기 
1939년 세계박람회에서 일어난 기적 
IT기업들이 실리콘밸리에 모이는 이유 
위대한 발명품은 협력망에서 탄생한다 
창조적인 협력망의 5가지 특징 
협력망이 조직의 성패를좌우한다 
이상적인 협력망 구조 
리눅스의 열린 혁신 


제10장 고객과 함께 협력하기 
고객이 주도하는 혁신 
고객의 아이디어를활용하는 방법 


제11장 협력하는 경제 만들기





그룹 지니어스


생각하는 조직, 창조적인 협력
창조적인 팀의 7가지 조건

협력이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한다는 것은 비즈니스맨이라면 다 아는 이야기다. 비즈니스 세계는 팀을 만들고 리더십을 기르며 협력관계를 맺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이러한 강력한 트렌드에 발맞추어 사무가구 제조업체들은 기존의 가구 디자인을 재검토하기도 했다. 그 대표적인 예로 스틸케이스(steelcase)의 CEO 제임스 해켓은 그룹 단위의 협력을 촉진하기 위한 형태로 새로운 가구 디자인을 개발했다. 대형 유통업체인 타깃(Target)의 전 트렌드?디자인?상품개발 담당 부회장 로빈 워터스는 “협력은 타깃의 비밀무기다.”라고 말했다. 유기농 전문체인점 홀푸드마켓(Whole Foods Market)은 이른바 ‘홀 피플(whole people) 철학에 따라 움직이는 자기관리팀을 활용하여 성공을 거두었다. 하지만 협력의 힘을 인정하는 경영자들은 대부분 블랙박스 안에 갇혀 있었다. 그들은 팀 내부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조사하는 대신 팀원의 장점이나 성격 같은 팀의 총체적인 특성에만 주목했다. 그러나 성공적인 협력을 이끌어내려면 팀 내부에서 끊임없이 이루어지는 상호작용의 역동성을 이해해야 한다.


▲ 창조적으로 혁신하는 팀이 가지고 있는 7가지 핵심적인 특징
① 혁신을 위한 충분한 시간을 갖는다
즉흥극에서 전체적인 그림이나 플롯을 완전히 이해하고 무대 위에 오르는 배우는 아무도 없다. 연극이 전개되면서 서서히 스토리가 드러난다. 배우들은 자신들이 가진 작은 아이디어를 토대로 대사를 한마디 한마디 표현하며 스토리와 플롯을 만들어간다. 우리는 즉흥극을 보면서 이런 과정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혁신적인 팀의 외부에 있는 사람들은 작고 반복되는 아이디어들이 결합하여 최종적으로 혁신에 이른다는 점을 결코 알지 못한다.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분석을 하지 않으면 그런 협력관계를 알 수 없다. 훌륭한 아이디어와 좋은 구조로 조직이 적절하게 구성될 때 혁신은 성공적으로 이루어진다.


② 상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뛰어난 즉흥극 배우들은 다른 배우들이 즉흥적으로 내놓은 아이디어를 경청하며 그것을 바탕으로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시한다. 이처럼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를 듣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놓는 어려운 작업에는 반드시 그룹 지니어스가 필요하다. 그러나 대다수 사람들은 자기 일을 하느라 다른 사람의 말을 경청하거나 행동을 제대로 지켜보지 않는다.


③ 서로 조언하며 아이디어를 발전시킨다.
다른 사람의 말을 경청하면 이전에 나온 아이디어를 발전시켜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들 수 있다. 라이트 형제는 비행기가 한쪽으로 기운다는 사실을 알기 전에는 방향 전환이 가능한 수직 꼬리날개를 만들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들이 새로운 수직 꼬리날개를 개발하게 된 계기는 바로 비행기가 한쪽으로 기울어지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함께 협력했기 때문이다. 비록 어떤 사람이 멋진 아이디어를 내지 못할지라도 그 사람 또한 공통된 목표를 향해 나가는 팀의 일원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④ 아이디어의 의미를 서둘러 규정하지 않는다
아이디어란 다른 사람들이 받아들여 재해석하고 적용하기 전에는 제 위력을 발휘하지 못하므로 하나의 아이디어를 한 사람의 업적으로만 돌릴 수 없다. 개별적인 창의적 행위나 아이디어는 연결되는 다른 행위나 아이디어에 의해 의미를 갖게 된다. 창조적 협력을 하는 개개인은 자신의 행동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모른 채 행동한다. 다만 자신의 행동에 다른 사람들이 의미를 부여할 수 있도록 여지만 남겨둘 뿐이다.


⑤ 새로운 문제를 발견하는 데 탁월하다
어떤 팀이 문제를 해결할 새로운 방법을 생각해내거나 아무도 인지하지 못했던 새로운 문제를 발견하는 순간 가장 혁신적인 창의력이 탄생한다. 이런 방식으로 일하는 팀은 종종 문제를 해결하는 도중에 아이디어를 얻는다. 창의력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관찰한 바에 따르면, 매우 창의적인 팀은 단순히 별 볼일 없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보다는 새로운 문제를 찾아내는 데 더 뛰어나다.


⑥ 끊임없이 아이디어를 내놓는다
즉흥극을 연기하는 배우들은 대사를 하기 전에 자신들이 내놓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평가할 시간이 없다. 그렇다면 평가를 하지 않고 즉흥적으로 내놓는 아이디어가 좋은 결과를 낳게 될지 어떻게 확신할 수 있을까? 즉흥적으로 이루어지는 혁신은 정해진 절차에 따라 진행되는 혁신보다 더 많은 오류를 범할 수 있다. 그리고 훌륭한 아이디어가 만들어지는 만큼 쓸모 없는 아이디어도 많이 나온다. 하지만 훌륭한 아이디어는 이러한 수많은 오류와 실패를 거쳐 나온다.


⑦ 작은 아이디어에서 출발한다
즉흥극은 스토리와 플롯을 즉흥적으로 구성해간다. 감독도 없고 대본도 없이 배우들의 대사와 연기로만 연결되어 완성된다. 마찬가지로, 혁신적인 팀은 다양한 환경의 예기치 못한 변화에 스스로 대처해나간다. 이러한 팀에는 업무 방향을 지시할 강력한 리더도 필요 없다. 이들은 생각이 같은 사람들끼리 서로 알아보고 모여 자발적으로 팀을 구성한다. 그룹 구성원들의 즉흥적인 협력을 통해 개인의 창의력은 그룹의 혁신으로 전환된다. 하지만 기업에서 팀이 자체적으로 구성되도록 여지를 주는 경영자는 많지 않다. 이는 팀의 업무 일정에 따라 수익이 결정되는 기업의 구조상 팀 구성이 늦어지면 수익을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경영자들은 원대한 목표를 가지고 출발한 후에 세부적인 사안을 단계적으로 해결하고자 한다. 즉흥적인 혁신을 추구하는 팀은 세부적인 사안을 가지고 출발해서 최종적으로 원대한 목표에 도달한다. 이는 일반적인 경우보다 위험하고 효율성도 떨어질 수 있지만, 이를 통해 혁신을 이루면 특정한 개인이 결코 달성할 수 없는 놀랍고도 독창적인 성과를 얻을 수 있다.


그룹이 브레인스토밍에 실패하는 이유
1970년까지 브레인스토밍은 연구 대상이 아니었으며 197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연구자들이 매번 상황을 조금씩 다르게 하면서 실제 그룹과 명목상의 그룹을 계속해서 비교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확신했다. 또한 많은 연구자들이 브레인스토밍에 대한 연구를 계속했지만 1958년 예일대학교에서 발견한 연구 결과를 확증했을 뿐이다. 연구는 대부분 실험실에서 이루어졌지만 실제 기업에서 브레인스토밍이 이루어지는 사례를 확인해 보아도 명목집단이 아이디어를 더 많이 냈고 질적으로도 더 뛰어났다.


1980년대에는 심지어 브레인스토밍에 회의적이었던 사람들까지 논의에 가세하여 일반적인 브레인스토밍 원칙만으로는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낼 수 없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하지만 브레인스토밍을 하는 그룹들은 어떤 아이디어가 좋은지를 정확하게 평가하고 IDEO(세계적인 제품 디자인 회사)처럼 세부적인 지시사항을 개선해서 보다 효과적인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심리학자들은 그룹이 창의력을 최대한 발휘하게 하는 방법을 연구했다. 그들은 브레인스토밍 그룹을 운영할 때 생산성을 떨어뜨리는 원인이 무엇인지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브레인스토밍 그룹이 효과적인 모습을 보이지 못하는 이유를 밝혀내면 그룹이 가진 잠재력을 이끌어낼 수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연구자들은 브레인스토밍 그룹이 창의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는 세 가지 이유를 알아냈으며, 그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그룹의 창의력을 향상시키는 기법을 터득하게 되었다. 우선 생산장애(production blocking)가 문제였다. 그룹 구성원들은 다른 사람들의 아이디어를 경청해야 하는데, 의지가 약한 사람들은 새로운 아이디어만을 떠올리려 하다가 집중력을 잃고 오히려 아이디어를 많이 내지 못한다. 또한 다른 사람들이 아이디어를 풀어놓은 바람에 자신의 아이디어를 제안할 타이밍을 놓쳐 허둥댈 수도 있다. 그룹의 인원이 많으면 그만큼 한 사람이 이야기할 시간이 줄어들기 때문에 아이디어를 많이 내지 못한다.


브레인스토밍 그룹이 아이디어를 많이 내지 못하는 첫 번째 이유는 주제에 매몰되기 때문이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명목집단의 경우에는 조금 다르지만 브레인스토밍 그룹에서 나온 아이디어는 몇 가지 범주로 분류되었다. 혼자 브레인스토밍을 하는 사람들과 비교했을 때 브레인스토밍 그룹은 주제에 더 빨리 매몰되었고 한 가지를 논의하는 데 필요 이상으로 많은 시간을 보냈다. 이때 주제에 매몰되지 않으려면 그룹 구성원들과 교감을 나누면서 혼자 일할 시간을 가져야 한다.


두 번째 이유는 사회적 억제(social inhibition) 때문이다. 사람들은 그룹의 다른 구성원이 이미 그 아이디어를 생각하고 있을 거라는 막연한 두려움 때문에 아이디어를 내지 못하기도 한다. 논란의 여지가 있는 정치적인 주제로 브레인스토밍을 할 때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주제로 브레인스토밍을 할 때보다 아이디어를 적게 낸다. 권위적인 사람이나 전문가가 그룹의 일원일 때 혹은 전문가들이 지켜보거나 듣고 있다는 사실을 알 때도 같은 현상이 벌어진다. 만일 상사가 지켜보는 가운데 브레인스토밍을 한다면 그룹 구성원들은 동료들의 생각에 관심을 갖기보다는 자신이 어떤 말을 할지에 신경을 곤두세우게 된다. 사회적 억제에서 벗어나려면 우선 그룹 구성원들이 서로를 동등하게 여겨야 하고 권위적인 인물의 참여를 배제해야 한다.


세 번째 이유는 사회적 태만(social loafing)이다. 일단 그룹을 형성한 사람들은 자신들이 내놓은 아이디어에 대해 혼자 일할 때처럼 책임감을 갖지 않으며, 그룹 구성원들과 책임감을 나눠 가지면 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열심히 고민하려 하지 않는다. 이런 반응이 나타나는 이유는 브레인스토밍 그룹에서는 각각의 아이디어를 누가 냈는지 확인하여 보상하지 않기 때문이다. 실험실에서 이루어진 연구 결과를 보면, 구성원들을 개별적으로 평가하는 그룹들이 아이디어의 양이나 질에서 모두 높은 성과를 보였다.



미래를 여는 생각의 발견
작은 메모에서 탄생한 현금자동인출기

1976년 1월, 존 리드(John Reed)는 카리브 해의 어느 해변에서 쉬고 있었다. 그는 1970년 불과 서른한 살의 나이로 씨티은행 역사상 최연소 수석 부회장이 되었으며, 사람들은 천진난만하고 소년 같은 얼굴을 가진 그를 금융의 신동이라 불렀다. 당시 CEO였던 월터 리스턴(Waltr Wriston)이 그를 승진시켰을 때, 시티은행의 경영진은 그가 8천 명의 직원들이 운영하는 1억 달러의 배당금을 관리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리드가 카리브 해의 어느 해변에서 쉬고 있었던 1976년에도 그를 인정해주는 사람들은 극히 소수에 불과했다. 리드는 주로 은행창구 뒤편에서 컴퓨터로 부기를 하고 고객 정보를 관리하는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은 업무를 담당하고 있었다. 그리고 현재 그가 책임지고 있는 소매금융 부문은 당시만 해도 만년 적자에 시달리고 있었으며 평가도 최악이었다.


리드는 투자금융, 모기지 대출, 기업 및 외국 정부와 대규모 거래를 핵심 사업으로 추진했다. 그는 10년 이내에 자신이 맡은 소매금융 부문을 씨티은행의 돈줄이 되는 사업부로 키우기로 결심했다. 승진과 동시에 그는 아직 개발되지 않은 두 가지 신기술의 상품화 가능성에 대해 상사에게 자문을 구했다. 두 가지 신기술은 현금자동인출기와 고객이 물건을 사면 카운터에서 바로 구입을 승인해주는 신용카드 결제시스템이었다. 리드는 언제 어디서나 노트북을 가지고 다녔으며 카리브 해변에 갈 때도 마찬가지였다.


뉴욕으로 돌아온 리드는 1976년 3월 9일의 아이디어 메모지에 ‘해변에서’라고 단순한 제목을 붙여서 경영진에게 돌렸다. 이 30페이지짜리 사업계획서 초안은 현금자동인출기 네트워크라는 신기술에 기반한 새로운 성격의 은행에 대한 청사진이었다. 리드는 현금자동인출기와 신용카드, 그리고 오늘날 소비자들이 매일 사용하는 많은 아이디어를 개발하여 현대 금융업을 크게 바꿔놓았다. 1977년 씨티은행은 현금자동인출기 네트워크가 온라인으로 연결되면서 뉴욕의 다른 은행들보다 몇 년 앞서가게 되었다. 1981년에는 뉴욕 전체 예치금에서 씨티은행이 차지하는 몫이 1977년 이전보다 2배나 증가했다. 이처럼 엄청난 변화를 가져다준 리드의 아이디어는 그가 사무실에서 멀리 떨어져서 혼자 있을 때 나왔다. 그렇다면 리드의 놀라운 아이디어도 협력으로 얻은 결과라고 할 수 있을까?


리드가 아이디어를 얻은 상황을 살펴보면 첫째, 현금자동인출기는 자동 수화물 취급회사인 도큐텔(Docutel)의 상품 담당 부사장이었던 돈 웨첼(Don Wetzel)이 이미 몇 년 전에 발명했다. 둘째, 씨티은행은 현금자동인출기를 설치한 최초의 은행이 아니었다. 1969년 9월 2일 뉴욕케미컬은행(Chemical Bank of New york)이 롱아일랜드 노스빌리지 10번가에 위치한 로크빌 센터 지점에 최초의 현금자동인출기를 설치했기 때문이다. 셋째, 비록 창구 뒤편에 설치하여 창구직원용으로만 사용되었지만 1970년대 초반에 이미 씨티은행은 자사의 모든 지점에 씨티카드 네트워크를 설치했다. 넷째, 전국 어디서든 신용카드를 사용할 수 있는 네트워크를 구축하겠다는 리드의 아이디어는 그가 승진한 1970년부터 계속 논의되어왔다.


이 모든 아이디어를 실현할 수 있었던 것은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 및 그룹들이 오랫동안 협력한 덕분이었다. 그는 현금자동인출기, 신용카드, 컴퓨터, 네트워크 같은 다양한 아이디어를 한데 묶어 새로운 개념의 은행을 만들 방법을 알고 있었을 뿐이다. 그 덕분에 그의 아이디어는 더욱 빛날 수 있었다.


심리학자들은 창의적인 생각이 빛을 발하려면 다음과 같은 단계의 협력 절차를 거쳐야 한다고 말한다.


① 준비 단계 : 문제를 연구하고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 논의하며 열심히 일하는 단계다.
② 휴식 단계 : 그룹 구성원들은 환경을 바꾸거나 다른 일을 시작하며 종종 다른 사람들과 대화를 한다.
③ 점화 단계 : 휴식기간 동안 해결책을 찾는다. 혹은 준비 단계와 휴식 단계에서 얻은 지식과 사회적 상호작용을 토대로 해결책을 찾으며 이를 통해 또 다른 아이디어를 만들어낸다.
④ 선택 단계 : ‘아하!’ 하고 번뜩 떠오른 아이디어라고 해서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다. 창의적인 사람들은 끊임없이 추적하거나 다른 사람들과 협력하여 가장 적합한 아이디어를 선별해낸다.
⑤ 노력 단계 : 대개 아이디어로 훌륭한 성과를 올리려면 부수적인 아이디어가 많이 필요하다. 사회적 인간관계와 협력을 통해 그런 아이디어를 적절히 조합한다.


리드가 카리브 해변에서 가져온 메모지에서 나온 아이디어는 조직 전체의 적극적인 노력이 뒤따르지 않았다면 실현되기 힘들었다. 씨티은행이 뉴욕 시내에 현금자동인출기를 설치하려면 1억 6천만 달러가 필요했다. 당시 최첨단의 신제품이었던 신용카드를 비자 카드 고객들에게 판매하려면 많은 돈을 투자해야 했다. 하지만 이 모든 투자는 결국 엄청난 성과로 돌아왔다. 씨티은행은 그 후 10년 동안 일반 소비자를 상대하는 은행 부문에서 업계 1위를 차지했다. 1970년대에 리드가 자신이 담당하는 소매금융 부문이 은행 내에서 최고의 사업부가 될 것이라는 예언이 실현된 것이다. 비록 사업계획서 초안을 작성한 사람은 리드였지만, 수백 명의 사람들이 합심하여 협력하지 않았다면 그 예언은 실현되지 못했을 것이다.


유대관계가 깊을수록 통찰력이 빛난다
유추하는 데 활용되는 정신적 개념은 매우 협력적인 성향을 띠는데, 이런 정신적 개념은 모두 대화에서 나온다. 심리학자 아트 마크먼(Art Markman)은 여러 차례의 흥미로운 실험을 통해 이를 증명해 보였다. 그는 실험실에 몇 쌍의 사람들을 모아놓고 레고 우주선을 함께 만들게 했다. 그들은 레고 박스의 완성품 그림에 나와 있는 대로 52개의 조각들을 사용했다. 이때 마크먼은 두 사람 중 한 사람에게는 레고 조각을 조립하지 못하게 했고 나머지 한 사람은 완성품의 그림을 보지 못하게 했다. 따라서 피실험자들은 레고 우주선을 완성하기 위해 끊임없이 이야기를 나눠야 했다.


피실험자들이 레고 우주선을 완성하자 마크먼은 다시 조각들을 그룹으로 분류한 뒤에 이름을 붙여보라고 했다. 그들은 얇은 벽돌 모양의 조각에는 ‘막대’, 평평한 벽돌 모양의 조각에는 ‘타일’, 삼각 기둥 형태의 특이하게 생긴 조각에는 ‘각기둥’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리고 레고 우주선의 뒷면에 붙이는 조각에는 ‘로켓’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등 기능에 따라 조각을 구분했다. 그러고 나서 마크먼은 또 다른 그룹을 대상으로 독립적인 연구를 진행했다. 이번에는 한 번에 한 사람씩 실험실에 데려온 뒤에 레고 우주선을 만들게 했다. 그러고 나서 레고 조각들을 분류하라고 하자 색깔별로 분류했다. 그 결과, 서로 이야기를 나눈 첫 번째 그룹이 혼자 조립한 두 번째 그룹보다 좀더 정교하고 복합적으로 조각들을 분류했다. 이는 사고를 형성하기 위해 사용하는 분류법이나 개념이 협력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이 확인되는 실험이었다. 사실 가장 독립적으로 보이는 창조 활동조차 협력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뉴멕시코대학교의 창의성 연구자 베라 존 슈타이너는 자신의 저서 『창조적 협력(Creative Collaboration)』에서 다양한 성공적 협력 사례를 분석했다. 클로드 모네는 앨프레드 시슬레, 오귀스트 르누아르, 폴 세잔, 에드가 드가, 카미유 피사로 같은 인상주의 화가들과 함께 독창적인 화풍으로 유명세를 탔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인정받지 못하던 초기 시절에 파리에서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서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당신은 항상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사심 없이 질문을 했고 스스로를 채찍질했죠. 게다가 마음속에 간직한 아이디어가 완성될 때까지 몇 주 동안 계속 작업할 정도로 열성적이었어요. 당신은 항상 새로운 목표의식과 명석한 두뇌로 시끄러운 논쟁을 잠재운 뒤에야 집으로 향했죠.


그들은 작업실에서 나와 카페에서 잠깐 동안 휴식을 취하며 가벼운 대화를 나누는 정도가 아니라 함께 시골을 걸을 만큼 유대가 깊었다. 르누아르와 모네는 1869년 여름에 종종 함께 그림을 그린 후 캔버스 위에 나란히 올려놓고 각자가 그린 그림에 대해 조언을 해주며 토론했다. 그들의 작품은 그림을 그리는 기법이 너무 비슷해서 누가 어떤 그림을 그렸는지 확실히 구분하기 어렵다. 또 인상주의라는 혁신을 이끈 사람이 누구인지도 알 길이 없다.


화가들과 시인들은 종종 같은 무임에 속한 경우가 많았다. 20세기 초 파리에서, 시인이었던 기욤 아폴리네르는 반데아 피카소의 멤버였다. 파블로 피카소의 자서전을 쓴 작가는 “그들이 그려내는 이미지가 너무 비슷해서 마치 피카소와 아폴리네르가 같은 상상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1907년 아폴리네르는 피카소에게 조르주 브라크를 소개했다. 당시 두 화가는 세잔의 영향에서 벗어나고 있었다.


피카소는 브라크와 협력했던 상황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거의 매일 저녁에 내가 브라크의 화실로 가거나 그가 내 화실로 왔다. 우리는 각자가 그날 작업한 것을 반드시 봐야 했다. 그런 다음 서로의 작품에 대해 비평했다. 우리 두 사람이 이젠 됐다고 느끼기 전까지는 그림이 완성된 게 아니었다.” 긴밀하게 협력하던 시절 그들은 각자의 캔버스 뒤에 두 사람의 사인을 모두 하기로 결정했다. 이것은 작품을 완성하도록 이끌어준 협력이 화가의 개인적인 정체성보다 더 중요하다는 의미였다.


존슈타이너는 공유된 통찰력을 이끌어낸 이런 깊은 유대관계를 ‘통합적 협력(intergrative collaboration)이라 명명했다. 그녀는 연구를 통해 긴밀한 협력관계가 사물을 바라보는 방식을 바꾸어 새로운 통찰력을 이끌어낸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창조적 조직으로 가는 길
위대한 발명품은 협력망에서 탄생한다

1980년대 초반 컴퓨터 네트워크 표준은 두 가지 방식이 경합을 벌이고 있었다. IBM이 지지하는 토큰링(token ring)과 DEC, 인텔, 제록스를 비롯한 소규모 기업들이 지지하는 이더넷(ethernet)이 그것이다. 처음에는 토큰링이 기술적으로 우위에 있었지만, 이더넷을 지지하는 기업들이 새로운 기업들을 자신들의 협력망으로 끌어들이면서 이더넷이 최후의 승자가 되었다. IBM은 다른 기업들이 토큰링에 참여하는 것을 꺼려했으며 협력망을 형성하지 못했다. 주요 장비 공급업체를 목표로 했던 IBM은 다른 기업의 장비를 IBM의 장비와 호환하는 방법에 대해 충분한 정보를 공유하지 않았다.


1989년까지 약 20개의 토큰링 기업들과 200개 이상의 이더넷 기업들이 생겨났다. 1990년대 초, 시스코를 비롯한 새로운 기업들의 참여로 이더넷 기술이 비약적으로 향상되면서 이더넷의 거대한 협력망은 기술면에서 토큰링을 따돌리게 되었다. 수백 개의 소규모 기업들로 구성된 이더넷의 협력망은 여러 개의 강력한 연구실을 운영한 IBM보다 더 혁신적이었다. 오늘날 모든 사람들은 이더넷을 사용하고 있으며 토큰링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협력망은 신기술의 등장으로 갑작스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 것이 아니었다. 역사적인 혁신은 모두 협력망을 통해 이루어졌지만, 우리가 들었던 성공 신화는 하나같이 이와 거리가 먼 것처럼 보인다. 윌버 라이트와 오빌 라이트가 ‘비행’에 대한 특허를 받지 않은 대신 자신들이 개발한 중요한 혁신 결과인 비행기 날개 전체를 앞뒤로 휘게 하는 측면조정기에 대해 특허를 얻었다. 1903년에 이루어진 최초의 비행은 라이트 형제가 협력을 통해 다른 경쟁자들보다 먼저 비행기를 발명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최초의 비행을 마친 후 라이트 형제는 그 협력망을 소유하려 했으며 이로 인해 미국의 항공산업은 고사 직전까지 갔다.


자신들의 새로운 발명을 제대로 선보이기도 전에 그들은 데이턴 시에 몸을 숨기고는 언론의 인터뷰를 거부하고 사진기자들의 접근을 막았다. 그동안 그들은 주로 군대와 계약하는 데 열중했다. 1907년 9월 30일 전화기를 발명한 알렉산더 그레이엄 은 실용적인 비행기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는 비행 전문가들의 모임인 항공실험협회(Aerial Experiment association)를 창설하는 데 2만 달러를 기부했다. 항공실험협회는 직선으로 1킬로미터를 비행할 수 있는 최초의 비행기를 만들어 「사이언티픽 아메리칸」지에서 주는 상을 받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 모임에 소속된 토머스 셀프리지가 디자인한 최초의 비행기 레드 윙(Red Wing)은 1908년 3월 12일, 뉴욕의 해먼드스포츠에서 테스트를 거쳤다. 레드 윙은 라이트 형제의 비행기와 모양이 많이 비슷했지만 라이트 형제가 출원한 특허를 침해하지 않았다. 토머스 셀프리지는 라이트 형제가 발명한 측면조정기를 사용하지 않는 대신 트러스(truss) 시스템을 사용하여 비행기의 날개 전체를 아래위로 휘게 만들었다. 항공실험협회 멤버였던 케이시 볼드윈은 이 비행기에 이어 화이트 윙(White Wing)이라는 두 번째 비행기를 만들었다. 화이트 윙에는 바퀴가 추가되었고 측면 조정을 위해 보조날개가 사용되었다.


항공실험협회의 세 번째 프로젝트는 글렌 커티스의 준 벅(June Bug)이었다. 1908년 7월 4일, 커티스는 준 벅을 몰고 1마일 이상 비행했으며 「사이언티픽 아메리칸」지에서 주는 상을 받았다. 라이트 형제의 비행기는 경쟁에 끼지도 못했다. 그들이 만든 비행기는 바퀴가 없어서 들판에서 이륙할 수 없었으며 특별히 고안된 철도를 따라 이륙해야 했다. 1909년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커티스의 비행기가 이륙하자 라이트 형제는 특허 침해 소송을 제기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특허가 모든 측면 조종 기계에 적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만일 그 주장이 받아들여진다면 그 특허를 침해하지 않고는 어떤 비행기도 하늘을 날아오를 수 없는 상황이었다. 라이트 형제의 주장에 대해 커티스는 자신의 보조날개 디자인은 라이트 형제의 특허와는 무관하다고 주장했다.


윌버 라이트가 장티푸스로 죽은 지 1년이 되던 1913년, 연방법원은 오빌 라이트의 손을 들어주었으며 커티스에게 보조날개를 이용한 비행기를 만들지 말라고 명령했다. 당시 커티스는 새뮤얼 피어폰트 랭글리(Samuel Pierpont Langley)의 1899년 디자인에 기초하여 새로운 형태의 비행기를 만들었다. 랭글리는 비행기를 거의 완성한 상태였는데, 자신의 전문기술을 활용해 나머지 결함을 제거한 후 새롭게 디자인한 비행기를 하늘 높이 날아올렸다. 이로 인해 커티스의 발명은 우선권을 주장할 수 있게 되었으며, 비행기 특허와 관련된 재판은 제1차 세계대전이 벌어질 때까지 계속되었다.


이 기간 동안 비행기 개발과 관련된 협력망이 유럽에서 형성되었다. 영국, 프랑스, 독일의 항공산업은 붐을 타고 있었으며 끊임없는 혁신이 이루어져 미국을 앞서나가고 있었다. 비행기 특허에 관한 법정 공방은 9년 동안 계속되었으며 미국이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1917년이 돼서야 막을 내렸다. 당시 라이트 형제와 커티스의 회사는 각자 발명한 비행기와 아이디어를 공유하도록 강한 압력을 받았다. 결국 커티스와 그의 발명에 협력한 항공실험협회는 협력망을 이루었으며, 그들의 접근법은 곧 라이트 형제의 최초의 디자인을 능가하게 되었다. 커티스는 최초로 다른 사람에게 비행기를 판매했고, 최초로 한 도시에서 다른 도시로 비행했으며, 최초로 비행사 자격증을 받았다. 그가 만든 보조날개는 라이트 형제가 특허를 낸 것보다 훨씬 성능이 좋으며 현재 모든 비행기에 사용되고 있다. 커티스의 비행기는 안으로 접어 넣을 수 있는 착륙 기어와 물위에 착륙할 때 사용하는 플로트를 장착한 최초의 비행기였다. 라이트 형제와 달리 커티스는 자신이 발명한 것을 모든 비행 커뮤니티와 공유했다. 이로써 라이트 형제의 비행기까지 포함된 협력망을 통해 비행기는 진화를 거듭했으며 미국에서 유럽으로 확장되었다. 이 협력망은 라이트 형제의 비행을 전후로 20년 동안 성장했으며 오늘날에도 계속 성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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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