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억의 사나이

   
한원태· 김영한
ǻ
다산북스
   
10000
2004�� 09��



■ 책 소개
지은이 한원태는 청원경찰신분으로 지점 전체 500억 수탁고 중 절반이 넘는 300억을 유치한 인물이다. 고객 한 분 한 분을 정성으로 대하는 "친절"하나로 그는 이런기적을 만들어냈다. 그를 사랑한 고객들과 지점장은 그를 정식지원으로 만들어 달라며 탄원서를 작성했고, 많은 고객들이 임종의 순간 피 한 방울섞이지 않은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유산을 남겼다.

 


이 책은 "친절" 하나로 기적을 만든 한원태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책이다. 혼이 깃든 친절하나가 어떻게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지 이야기하며, 어렵게만 생각했던 "서비스"의 기본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한다.


■ 저자 
한원태
 
안성에서 태어나중학교를 마치고 기술학교를 수료했다. 젊었을 때 여러 직장을 전전하다가 우연히 한국보안공사의 용역직 파견경찰이 되었다. S은행 석수지점에 발령받아 16년간 근무하는 동안 "친절" 하나로 지점 전체 500억 수탁고 중 절반이 넘는 300억을 유치하여 "300억의 사나이"로 불려졌다.


김영한 
삼성전자에서 10년간 근무하면서이병철 회장에게 컴퓨터 사업계획을 승인 받아 휴렛팩커트와의 합작 회사를 출범시켰다. 지금은 국민대학교 경영대학원 교수와 마케팅MBA(주) 대표를겸임하고 있다. 삼성, SK, LG그룹 등에서 마케팅과 세일즈에 관한 강의를 활발히 하고 있다. 이론적인 경영 기법보다는 시장에서 성공한 기업의생생한 경영 사례나 고객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는 제품이나 서비스와 마케팅 노하우를 중점으로 강의한 내용들을 책으로 쓰고 있다. 대표 저서로는「총각네 야채가게」, 「스타벅스 감성 마케팅」, 「삼성전자 고객맞춤 세일즈」, 「점포창업 실전게임」, 「실전 마케팅 플래닝」, 「1page마케팅」, 「타잔 마케팅」 등이 있으며, 번역서로 「마케팅 천재가 된 맥스」 등이 있다. 


■ 차례
프롤로그 : 낡은 대학노트에숨어있는 300억 사나이의 비밀


1장 석수동의 파견 청원경찰
S은행 석수지점의 진풍경
날아 가버린단추
맞벌이 부부의 행상 리어카
거울 속에 비친 괴물
모니터링 보고서
마음을 연 첫 고객


2장 생애 최고의 선물
허물을 벗다
내가 먼저 알아야 한다
“자네한테홀렸어.”
세상에서 가장 값진 추천서
거액의 스카우트
최고의 선물


3장 불혹에 흘린 눈물
가족 소풍
남자의 눈물
예금인출소동
눈으로먹는 보약
간판을 내리다
사람들이 비춰준 내 모습


4장 낡은 대학노트의 비밀
노트를 펼치며
안양 유원지 개척
2천만 원짜리장판 재테크
슈퍼 김 사장님의 꿈
양복 한 벌
소중한 약속
마을금고에서 새로운 시작


에필로그 : 자신을 이겨낸 행복한 사나이, 한원태
고객에게 혼을 바친사나이-김영한(마케팅MBA대표)





300억의 사나이


S은행 석수지점의 진풍경
옛 S은행 석수지점에는 날마다 진풍경이 펼쳐졌다. 은행에 온 고객들이 번호표를 뽑고 순서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은행 한구석에 있는 조그만 책상 앞에 줄을 선 것이다. 책상 위에는 서류가 잔뜩 쌓여져 있고, 놀랍게도 그 일을 처리하는 사람은 은행직원이 아닌 청원경찰이다. 고객들은 늘어선 줄의 긴 기다림 속에서도 전혀 지루함이 보이지 않고, 다른 직원이 대신 일을 처리해주겠다고 해도 막무가내로 듣지 않는다. 도대체 그 청원경찰에겐 어떤 특별한 점이 있기에 고객들은 그만을 고집하는 것일까?


일명 300억의 사나이로 불리는 옛 S은행 청원경찰 한원태 씨는 석수동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는 명물이다. 그가 300억의 사나이가 된 이유는 용역직 청원경찰의 신분으로 300억이 넘는 어마어마한 예금을 유치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북부 새마을 금고의 부장이 되었고, 그의 책이 출간되면서 최근 유명세를 톡톡히 치르고 있다. 누가 보아도 성공한 사람인 그이지만 지극히 평범한 한 사람이었으며, 오히려 남보다 불리한 조건이었던 과거가 있다.


J모직 패션모델, 좌절
누구나 그렇듯이 한원태도 처음부터 특별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과거 집안 형편이 어려워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못하고 간신히 기술학교를 졸업하고 군대에 입대했다. 3년 만에 제대한 그는 어느새 훤칠한 청년이 되어 있었다. 180㎝의 큰 키에 72㎏의 몸무게로, 어디 내놔도 빠지지 않을 다부진 몸을 지니고 있었다.


그는 J모직 총무과에 지원하여 입사하였다. 평소에는 총무과의 업무를 처리했지만, 월등한 신체조건 때문에 정작 그에게 주어진 주 업무는 패션모델이었다. 80년대 당시만 하더라도 패션모델은 낯선 직업이었고, 패션쇼라고 해도 공개된 장소에서 대중을 대상으로 하는 건 아니었다. 그는 회사에서 개발한 새로운 제품의 웨어링 테스트를 맡고 있었다. 대부분 새로운 양복은 출시 6개월 전에 개발되기 때문에, 여름에는 겨울양복을, 겨울에는 여름양복을 입어야 했다.


당시 J모직에는 웨어링 테스트를 전문으로 하는 동료들이 스무 명 가까이 있었다. 그 중에서도 그는 단연 돋보이는 모델이었다. 그가 입으면 옷맵시가 살아났으며, 중역들도 그가 테스트를 위해 양복을 입고 나타나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그는 동료들 사이에서 인기가 좋았다. 그 스스로도 자신의 일에 대해 만족감을 느꼈으며, 무엇이든 자신이 이 사회의 한 구석에서 쓸모 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자랑스러웠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다른 때와 마찬가지로 새로운 제품이 개발되었고 웨어링 테스트가 계획되었다. 총무과장은 그에게 새 양복을 입어보라고 했고 그는 탈의실에 들어가 옷을 갈아입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소매가 꽉 낄 뿐만 아니라 양복 상의의 단추가 채워지지 않는 것이었다. 그는 거울 속의 자신을 바라보았다. 훤칠하고 다부진 청년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한눈으로 보아도 뚱뚱하다고 여겨질 거구의 사내가 들어가 있었다. 그는 다급한 마음에 억지로 양복 단추를 채우려 했다. 그러자 단추가 툭 떨어져 나가며 자신의 발치에 떨어졌다. 또르르 굴러가는 단추를 보며 그는 망연자실했다. 그는 5년 전 입사할 때보다 무려 20㎏이나 체중이 늘어 있었다. 그동안 자신의 일에 만족한 나머지 고인 물은 썩는다는 것을 잊은 채 몸 관리를 소홀히 한 탓이었다. 주위에서 동료들이 조언을 해주었으나 그는 한쪽 귀로 듣고 한쪽 귀로 흘려버렸다. 그리고 그 결과는 퇴사였다.


새로운 시작 : 청원경찰이 되다
아내의 권유로 직장을 알아보던 중 우연히 신문광고를 보게 되었다. 아무래도 용역경비라면 신체조건이 좋아야 했다. 그는 그동안 신체조건은 좋았지만 체력에는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밤낮으로 운동을 시작했다. 아내와 행상을 다니면서 오히려 체력이 많이 떨어져 있었다. 그 일은 사람의 근육을 키운다기보다는 사람의 몸을 갉아먹는 일이었다. 그는 이를 악물고 운동을 했다. 어느 정도 근육이 붙고 체력에 자신이 생기자 그는 용역경비에 지원했다. 다행히 그는 곧바로 채용되었고 6주간의 교육을 받게 되었다.


성적은 기대 이상이었다. 그리고 그 것은 혼신의 힘을 다한 노력 끝에 얻은 결과였다. 6주 동안의 교육 기간 동안 그는 숱하게 코피를 쏟았다. 아침에 세수를 하려고 세면대 앞에 서면 코피부터 흘러내렸다. "아내를 반찬 행상으로 내 몬 주제에 이까짓 고통이 무슨 대수겠는가. 내가 나를 이기지 못하면 나는 영영 아내에게 고통을 주는 못난 남편이 되고 말 것이다." 그는 속으로 이렇게 스스로를 타이르며 교육기간을 견뎌냈다. 교육을 마친 그는 수원의 중소기업은행에 발령 받았다. 그러나 아내와 함께 살고 있는 안양에서 출퇴근하기에는 먼 거리였다. 출퇴근이 힘들다 보니 자연히 근무의욕도 떨어졌다. 몸이 피곤하면 짜증이 나게 마련이고, 짜증이 나면 은행을 찾는 고객들에게 자신도 모르게 인상을 쓰게 마련이었다.


그는 동료 용역경비들을 수소문했다. 마침 집은 수원인데 안양에서 근무하는 동료를 찾을 수 있었다. 한원태는 집이 안양이며 근무처는 수원이었으니 서로 조건이 맞은 셈이었다. 그는 동료와 함께 한국보안공사에 근무지를 바꿔줄 것을 요청했다. 다행히 이들의 요청은 받아들여져 그의 동료가 수원의 중소기업은행으로 오게 되었으며, 그는 S은행 안양 석수지점으로 가게 되었다. 그곳은 집과 그다지 멀지 않았다. 한원태는 무거운 짐을 벗어놓은 듯 홀가분했다. 근무처가 집과 가까우니 이전보다야 훨씬 좋은 조건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제부터 다시 시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보물 1호 낡은 대학노트 : 고객의 신상을 기록하다
친절한 청경으로 사람들에게 알려지며 그 또한 일하는 것이 마냥 즐겁기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은행에 한 할아버지가 들어섰다. "자네 나 모르겠나?" 조금 낮이 익은 할아버지라고 생각한 그는 "아, 지난번에 통장정리해서 아드님 갖다드린다고 하셨죠?"라고 말하며 얼버무리려 했다. 그런데 그 할아버지가 대뜸 화를 내는 것이다. "자네가 좋은 상품이 있다고 한번 오라고 하지 않았나?"


그는 그 일을 계기로 청경이 단순히 친절하다고만 해서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퇴근길에 대학노트를 사서 고객들의 신상을 기록하기 시작했고, 은행직원들에게 밥과 술까지 사는 노력을 들여 은행상품에 대한 공부를 했다. 그렇게 각고의 노력 끝에 그는 신상품에 달인이라는 칭호까지 듣게 되었고, 은행에 온 고객들은 "내가 자네한테 홀렸어."라고 얘기하게 되었다.


새로운 도전 : 안양 유원지를 개척하다
한원태는 S은행에 근무할 때 그의 대학노트에서 한 가지 이상한 점을 발견하였다. S은행 근처에는 안양유원지가 있었다. 그런데 자신이 아는 고객 가운데에는 그곳과 관련된 사람이 한 명도 없는 것이다. 한원태는 곧바로 지점장에게 이 사실에 대해 물었다.


지점장은 잠시 뜸을 들이더니 무겁게 입을 열었다. "글쎄, 나 역시 그 이유를 잘 모르겠어요. 나도 노력을 해보긴 했는데, 이상하게도 유원지의 고객들은 우리 은행을 싫어하시더군요." "무슨 이유가 있겠지요. 그럼, 제가 한번 안양 유원지의 고객들을 유치해보겠습니다." 지점장의 허락을 받은 한원태는 그날 이후로 안양유원지를 찾아다녔다.


그는 우선 유원지 입구에서 가까운 점포부터 들렀다. "안녕하세요." "어서 오세요. 몇 분이세요?" 주인으로 보이는 사람이 한원태를 맞이했다. "저는 손님이 아니라, 저 아래 S은행 석수지점에서 왔습니다." 그러자 대번에 주인이 눈살을 찌푸리며 퉁명스럽게 내뱉는다. "S은행? 지금 바쁘니까 다음에 오세요." "그러지 마시고 잠깐만 시간을 내 주세요." "아, 이 사람이 귀가 막혔나. 한번 말하면 알아들어야지. 바쁜 거 안 보여?" 주인은 이렇게 막말을 하며 그를 내쫓았다. 다른 점포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S은행에서 왔다는 말만 꺼내면 상인들의 태도가 180도 바뀌었다. 그렇게 여러 번 허탕을 치자 그 역시 기운이 빠졌다. 첫날은 아무런 성과도 없이 돌아와야 했다. 이틀 뒤 그는 다시 유원지에 갔다. 지난번에 들렀던 곳은 제외하고 아직 가보지 못한 점포들을 찾아갔다. 하지만 상인들은 S은행이라는 말만 꺼내도 민감하게 반응했다.

그는 상인들에게 자연스럽게 다가갈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 고민했다. 그 뒤로 한원태는 상인들이 내쫓건 말건 상인들의 식당일을 돕기 시작했다. 그가 퇴근하여 안양 유원지에 들를 때가 유원지의 음식점들이 가장 바쁜 시간이었다.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해 찾아 온 단체 손님들이 많기 때문이었다. 대부분의 음식점들은 늘 일손이 딸려 종업원이건 주인이건 뛰어다니면서 주문을 받고 음식을 날랐다. 한원태는 손님들이 식사를 마치고 자리를 뜨자 곧장 그 식탁으로 가서 먹고 난 식기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너무 바빠 아무도 그에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러나 곧 그는 주인의 눈에 띄었다.


5년 만에 얻은 결실
유원지 상인들도 하루 이틀, 한 달 두 달 그의 얼굴을 보게 되니 어느덧 처음과 같은 경계심을 지니지는 않게 되었다. 그는 상인들에게 굳이 은행에 관한 이야기는 꺼내지도 않았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S은행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을 지니고 있는 상인들에게 굳이 그런 이야기를 한다는 건 오히려 역효과를 내기 때문이었다. 상인들 역시 일손이 바쁠 때면 누구의 도움이라도 아쉬운 형편이었기에 이제는 한원태가 음식을 나르고 설거지를 도와주는 걸 모른 척 하기 시작했다. 저러다 제 풀에 지쳐 나가떨어지겠거니 싶었던 것이다.


여름 성수기 동안 한원태는 그렇게 눈에 띄지 않게 상인들의 일손을 도왔다. 성수기가 지나자 저녁시간에도 조금 한산해졌다. 그러자 상인들이 한원태의 말을 한두 마디씩 받아주기 시작했다.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한원태는 왜 유원지의 상인들이 S은행을 탐탁치않게 여기는지 알게 되었다. 상인들이 느끼는 가장 큰 불만은 불친절하다는 점이었다. "우리가 이렇게 여기서 장사를 하다보니 행색이 시원찮은 건 사실이야. 하지만 생각해 보라구. 아침까지, 아무리 빨리 장사를 마쳐도 늦은 새벽인데, 오전은 쉬어야 하잖아. 오후가 되면 그날의 장사를 준비하느라 쉴 틈도 없다고. 그래서 잠깐 짬을 내서 은행에 가는데, 은행 직원들이 불친절하면 얼마나 짜증이 나겠어. 여기 우리 상인들 중에 S은행과 거래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을 걸."


한원태는 이렇게 상인들과 나눈 이야기들을 늘 메모하여 집으로 돌아가면 대학노트에 꼼꼼히 정리했다. 그러다 보니 유원지의 상인들의 신상에 대해서는 줄줄이 꿸 수 있게 되었다. 고객의 신상을 잘 알고 있다 보니 다음 만남부터는 대화가 좀 더 자연스러워졌다. 점차 상인들은 한원태에게 호감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제 유원지의 상인들과는 농담도 주고받는 허물없는 사이가 되었다. 상인들도 그가 자신들의 일손을 도와주는 걸 흔쾌히 받아들였고,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그는 평상시처럼 식당에서 일손을 거들어 주고 있었다. 그때 한 손님이 음식값을 치르고 나가려는데 문제가 생겼다. “손님, 카드 없으세요?" 음식점 사장이 손님이 준 수표를 든 채 손님에게 물었다. 그러자 손님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카드를 놓고 왔거든요. 왜 그러시죠?" "아, 예. 저희가 지금 잔돈이 없어서요. 정말 죄송합니다."


한원태는 자신의 지갑을 꺼내 잔돈을 대신 치러주었다. 그날 밤 한원태는 집으로 돌아와 생각해 보았다. 상인들은 특히 잔돈을 많이 필요로 했다. 하지만 주변 상인들이 모두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마땅히 잔돈을 바꿀 곳이 없었다. 은행까지 가자니 너무 멀었다.


그 뒤 한원태는 일주일에 세 번씩 자동차에 잔돈을 싣고 유원지로 갔다. 만 원짜리, 천 원짜리뿐만 아니라 오백 원, 백 원짜리 동전까지 잔뜩 싣고 가서 상인들이 원하는 만큼 바꿔주었다. 상인들은 대환영이었다. 혼자 그 일을 한다는 건 쉽지 않았다. 직원들은 그를 도와주지 않았고 눈이오나 비가 오나 혼자서 그 일을 다 해야 했다.


상인들은 이제 그에게 재테크에 대한 조언을 구하기 시작했다. 당시는 아직 IMF 전이어서 은행 금리가 높은 편이었다. 대부분의 상인들이 재테크와는 거리가 멀어서 단순한 자유저축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 식으로는 상인들이 지닌, 소박하지만 나름대로 소중한 꿈들을 이루기까지 얼마나 많은 세월이 흘러야 할지 몰랐다. 이렇게 한원태가 상인들 각각의 사정에 맞는 재테크 노하우를 설명해주자 상인들이 하나 둘 그의 주위로 몰려들었다. "내가 이번에 만기된 적금이 하나 있는데, 이번에는 그 돈을 자네한테 맡기고 싶네." "걱정 마세요. 제가 가장 좋은 상품으로 골라서 책임지고 해드리겠습니다." 적금을 그에게 넘긴 고객들은 이렇게 덧붙였다. "이건 내 목숨이나 같아. 하지만 자네가 믿을 만 하니 맡기는 거야." 한원태는 이 말에 더욱 힘이 났다. 상인들은 그에게 돈을 신탁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꿈을 신탁한 셈이었다. 누군가의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다는 게 한원태를 신나게 했다.


상인들이 그에게 예금을 맡겼다 해도 문제가 없는 건 아니었다. 상인들은 좀처럼 은행에 갈 여유가 없었다. 사소한 공납금의 납부부터 송금 등 여러 은행 업무를 처리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그래서 한원태는 상인들로부터 통장과 도장을 받아 그들이 필요로 하는 일을 대신 처리해 주었다. 그렇게 처리한 뒤에는 상인들의 이름이 쓰여진 봉투에 분류해서 영수증 등을 정리한 뒤 퇴근한 뒤 다시 유원지의 상인들을 찾아다니며 돌려주었다. 이렇게 해서 유원지의 150여 명의 상인들이 모두 그의 고객이 되었다. 지점장조차 포기했던 유원지의 고객들이었지만, 한원태는 포기하지 않고 그들의 손발이 되어 그들을 고객으로 맞이할 수 있게 되었다. 이처럼 그는 유원지의 상인들을 통해서만 모두 56억의 예금을 관리하게 되었다. 친절과 더불어, 고객이 느끼는 불편함을 스스로 찾아 해결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생애 최고의 선물 : 정식 직원이 되다
그의 고군분투에 89년 개점한 이후 출장소에 불과하던 S은행 석수지점은 수백억 대의 점포로 발돋움하였다. 그리고 고객들과 지점장의 탄원으로 정식직원이 되던 해 은행장상을 수상하였다. 그리고 함께 받은 상금은 모두 무의탁 노인을 돌보는 데 썼다. 그는 평상시에 자식이 돌보지 않는 무의탁 노인을 돌보고 있었다. 쉬는 날 그분들을 돌보느라 가족들과는 소풍 한 번 제대로 가지 못하면서 말이다. 그 중 은행을 이용할 줄 몰라 돈이 있어도 방바닥에 넣어 두신 분들에게 통장을 만들어 드리고, 기억이 가물가물해 적금을 찾지 못한 분들의 적금을 찾아주었다. 그의 헌신적인 노력에 감동한 분들은 돌아가시면서 그에게 유언과 유산까지 남기기도 하였다. 물론 그는 모두 받지 않았고 2,000만원을 주시겠다는 할머니로부터 양복 한 벌 만을 승낙하기도 했다.


그가 우리에게 남긴 메시지
그에게는 그만의 신념이 있었다. 고객을 위해서는 은행 안과 밖을 나누지 않으며, 매일 밤과 낮을 가리지 않고, 부자와 가난한 사람을 나누지 않는다. 이것이 그의 3대 원칙이며 이른바 한원태식 서비스이다. 내 모든 것을 고객에게 바친다.라는 그의 정신이 있었기에 고객은 진정 그에게 유언과 유산까지 남겼던 것이다. 한원태. 그가 우리에게 보여준 것은 성공한 한 인간이 아니라 그가 보여준 진실한 삶 속에서 오늘날 기업의 CEO 및 임직원, 공무원, 학생, 서비스업의 종사자 등 우리 모두가 가져야 할 위대한 정신이다.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