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바뀐다 미래가 바뀐다

   
서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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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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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01��



■ 책 소개

 

희망 전북을 만들어가는 원동력은 무엇인가? 교육이 살아야 전북이 산다!

 

이 책은 서거석 전북대 전 총장(15대, 16대)의 어린 시절과 성장 과정을 가감 없이, 그리고 교육철학을 소개하고 있다. 서거석 전 총장은 전북대 재임 시절, 중앙일보가 발표한 대학 평가에서 전북대학교가 국립대 1위로 선정되는 성과를 일궈 냈으며, 여기에는 그의 특유의 경청과 소통의 리더십, 그리고 균형 감각과 조정 능력에 있었다. 서거석 전 총장의 재임 기간, 전북대는 전국 대학 중 ‘학생만족도’와 ‘잘 가르치는 대학’ 1위에 올라설 정도로 학교 구성원들의 만족도와 자부심이 높았다.

 

이 책은 서거석 전 총장이 그동안 살아온 내력에 대한 보고서인 동시에 40여년 교육 현장에서 느꼈던 고민과 그에 대한 해답을 찾아가는 고뇌의 역정을 3부로 나눠 담았다. 서거석 총장의 치열한 삶, 그리고 전북과 우리 교육의 미래에 대한 고민과 대안을 담아낸 생생한 열정의 기록이다.

 

* 추천사 - 정세균 국회의장
“서거석 전 총장은 제 신흥중학교 후배였습니다. 우리 두 사람 모두 공부는 곧잘 했지만 형편이 어려워 학비를 직접 해결해야 하는 동병상련의 처지였습니다. 당시 교장 선생님의 따뜻한 배려로 학교 매점에서 같이 빵을 파는 일을 하며 서로를 다독였던 기억이 50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도 생생합니다.

 

학업을 마치고 교육자의 길로 들어선 서거석 전 총장은 항상 겸손한 자세로 타인을 섬겨 왔습니다. 차가운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따뜻하게 소통해 온 사람입니다. 추진력 또한 대단합니다. 전북대 총장으로 재임하던 8년은 전북대의 중흥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눈부신 발전을 이뤄냈습니다.

 

우리 서거석 전 총장은 언제 어디서나 ‘교육’과 ‘고향’을 말해왔습니다. 가난하고 힘겨웠던 어린 시절을 보냈기에, 고향 전북의 미래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교육을 통해 대안을 모색해온 것입니다. 책을 일독하며 ‘교육을 통해 전북을 살려야 한다’는 교육입도론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질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공동체의 내일을 생각하는 모든 분들의 일독을 권합니다.“

 

■ 저자 서거석 박사
전북대학교 제15대·16대 총장
제19대 한국대학교육협의회(전국 203개 국·사립 대학총장협의회) 회장
더불어포럼 공동대표
가천대학교 석좌교수(현)
한국 소년법학회 회장
한국 비교형사법학회 회장
미국 프린스턴 대학교 방문교수
일본 도쿄대학 객원 연구원
독일 막스프랑크 외국형법연구소 객원교수
중국 서북정법대학 객좌교수
국가교육과학 기술자문회의 교육분과 위원장
한국-러시아 대학 교육분과 위원장
제15대 전국 국공립대 대학총장협의회 회장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회 위원
정부 사회통합위원회 위원
헌법재판소 자문위원회 위원
정부 새만금위원회 위원
교육부 대학발전기획단 자문위원
교육부 대학구조개혁위원회 위원
전북발전협의회 의장
전주지방법원 시민사법위원회 위원장(현)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전북후원회장 겸 전국부회장(현)
전주 고등법원 유치추진위 공동집행위원장
전주국제발효식품엑스포 조직위원장
전라북도선거관리위원회 선관위원
전라북도 행정심판위원회 위원
전라북도 소청심사위원회 위원
KBS 전주방송총국 시사토론 사회자
전주완산고 학교운영위원회 위원장
민주통일 전북협의회 자문위원(현)
민주통일 전주시협의회 자문위원(현)
전북장애인복지문제연구소 고문(현)
전북대 민주화교수협의회 회원

 

* 학력
일본 주오(中央)대학 법학 박사
전북대학교 대학원 법학 박사
전북대학교 법학과
전주고등학교 졸업
전주 신흥중학교 졸업
전주초등학교 졸업

 

* 수상
전북애향운동본부 전북애향대상(2015)
전북일보 올해의 전북인(2014)
TV조선 선정 한국의 영향력있는 CEO(2013)
국민훈장 목련장(2010)
중앙일보 대한민국 창조경영인상(2009)
일본능률협회 글로벌 경영대상(2008)
한국일보 올해의 CEO 대상(2007)

 

■ 차례
글쓴이의 말
추천사 - 정세균 국회의장

 

1부
2부
3부




사람이 바뀐다 미래가 바뀐다


글쓴이의 말

이 책은 나의 어린 시절과 성장 과정을 가감 없이, 그리고 나의 교육철학을 소개한 글이다. 나는 한국전쟁이 막 끝날 무렵 태어났다. 물류업을 하셨던 아버님은 늘 바쁜 와중에도 가족과 대화를 많이 나누려 하셨고, 인자하신 어머님은 항상 칭찬을 아끼지 않으신 분이셨다. 부모님의 영향을 받아 나는 겸손과 섬김, 경청과 소통을 인생의 좌우명으로 삼게 되었다.


초등학교 5학년까지 비교적 유복한 환경에서 자란 나는 아버님의 사업이 파산하며 지독한 가난과 직면하게 된다. 중학교 입학도 1년 미뤄 친척의 도움으로 극적으로 입학하게 되었고, 신문배달과 학교 매점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공부에 매진하여 전주고를 거쳐 전북대 법학과에서 수학하게 됐다. 성장기의 가난은 내 평생 지역발전을 고민하게 하는 밑거름이 됐다.


정국이 혼란스러웠던 대학 시절, 나는 여러 이유로 법대생의 로망인 사법고시 도전을 포기하고 대학원에 진학해 법학자의 길을 걷게 된다. 법대 학장 4년과 법학연구소장 4년 등 8년간 나는 법대 테두리 안에서 많을 일을 시도했고, 과분할 정도의 평가를 받았다.


2006년 12월은 내 삶의 새로운 전환점이었다. 전북대학교 제15대 총장에 취임해, 그야말로 시련과 영광의 또 다른 8년을 시작하는 시점이었다. 나는 평소 ‘교육을 통해서 전북을 되살려야 한다’는, 이른바 ‘교육입도론’을 가슴에 품어왔다. 대학 경영을 통해 나는 ‘교육입도론’이 절대 공허한 메아리가 아님을 확인하게 되었다. 아니, 오히려 교육이 한 지역을 살릴 수 있다는 강한 자신감을 갖게 됐다. 이후 나는 전북교육의 변화를 위해 방향과 목표에 천착하며 각계의 많은 사람과 대화를 나눴다.


되돌아보면, 나의 삶을 관통해온 하나의 키워드가 있다면 그것은 ‘교육’이다. 집안 살림이 어려웠지만 자식 교육에 열과 성을 다하셨던 부모님은 나에게 집념과 도전, 끈기와 인내의 소중함을 가르쳐 주셨다. 덕분에 나는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공부에 매진할 수 있었다. 그것이 곧 가난을 극복하는 길이라는 생각에서다.


나는 모든 것을 포기한다 해도 마지막까지 포기해선 안 될 것이 바로 교육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의 고향 전북은 지금도 가난하다. 정말 천형 같은, 이 지긋지긋한 가난을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나는 수많은 사람과 대화를 나눴고, 답을 찾으려 고민해왔다. 그 결과 ‘교육’만이 해법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교육을 통해 전북이 바로 서고, 교육을 통해 도민들이 자긍심과 자신감을 가질 수 있어야 미래를 기약할 수 있다.



1부

칭찬이 칭찬을 부른다

어린 시절, 나는 집안 식구들은 물론 동네 어른들의 귀여움을 받으며 성장했다. 이 무렵을 떠올리면 나는 따뜻함이 따뜻함을 낳고, 긍정이 긍정을 낳고, 칭찬이 칭찬을 부른다는 생각을 절로 하게 된다. 누군가 나에게 시선을 주고, 그 시선의 따뜻함이 느껴지면 절로 나는 누군가의 관심과 보호 속에 놓여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 애정이 사람의 마음을 훈훈하게 데우고 세상 일을 모두 따뜻하게 보게 한다. 한창 성장하던 나는 나를 둘러싼 세상이 모두 나에게 호의적이라는 느낌을 받았고, 자연 나도 이 세상을 호의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며 커나갔다.


칭찬은 말없는 관심이나 은근한 배려와는 또 다르다. 할머니나 어머니의 칭찬은 나를 직접적으로 격려하는 말이었다. 칭찬을 듣는 그 순간마다 불끈 힘이 솟는 듯한 느낌이었다. 칭찬을 통해 나는 내 행동이 누군가를 기쁘게 하고, 또한 내 스스로를 흡족하게 만든다는 것을 절로 깨닫게 되었다.


아버지의 파산과 선너머 언덕배기 맨꼭대기 집

초등학교 5학년까지 내 삶이 비교적 풍요롭고 유복한 환경 내에서 보호와 관심을 받고 있었던 것이라면, 이후 내 삶은 거대한 풍랑에 휩쓸리게 된다. 사업을 하던 아버지의 파산으로 졸지에 우리 집안은 풍비박산이 났다. 큰 집에서 내쫓기듯 빠져나온 우리 가족은 예수병원 아래 ‘선너머(조선시대에 서원이 있었던 곳인데, 서원너머 동네라는 뜻)’ 언덕의 가장 끝자락에 있는 맨꼭대기집에 약간의 세간만 들고 세들어 살기 시작했다.


당시 나라 안에서 서울에 있는 ‘경기중’이 최고 중학교라는 이야기를 듣고는 아버님께 중학교는 서울에 가서 다니게 해달라고 간청하던 패기만만한 모습은 순식간에 시들었다. 당장 도시락을 싸갈 형편이 못 되어, 점심시간만 되면 교실 밖에서 배회하며 전전긍긍 눈치를 보다보니 어깨는 처지고 친구들과 어울리는 시간마저 피하는 신세가 되었다.


병석에서 힘들어 하는 아버지를 원망할 수도, 여기저기 흩어진 가족 걱정에 늘 돌아앉아 눈물을 훔치던 어머니에게 하소연할 수도 없다 보니, 나는 늘 밖으로 나돌다 새로 사귄 동네 친구들과 시시껄렁한 행색으로 어디 서리할 만한 것은 없나, 작당을 하고 있는 악동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만약, 그때 날마다 나를 잡으러 다니고 매섭게 회초리질을 하고 난 뒤에는 품에 안고 다독거리며 울먹이던 어머니가 아니었으면 나는 정말 수습하기 힘든 혼란과 자멸의 길에 접어 들었을지도 모른다.


어머니의 눈물, 가장 순수한 염려의 결정, 얼어붙어가는 어린 자식의 마음을 녹일 수 있는 것은 어머니의 뜨거운 눈물밖에 없었다.


학교 매점에서 만난 내 삶의 길잡이, 정세균 형

외숙의 도움으로 신흥중학교에 극적으로 입학한 나는 1학기가 끝나고 여름방학이 시작될 즈음부터 ‘다음 학기 등록금 마련’을 위해 신문배달을 시작했다. 그 새벽 시간은 보람된 만큼 힘들었다. 그러나 반드시 그 대가를 요구했다. 학교에만 가면 나는 그제야 밀려오는 피로에 따른 졸음을 이겨낼 수가 없었다. 이러다 보니 선생님들 사이에서 나는 수업 시간마다 조는 학생으로 이름이 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당시 담임 선생님이셨던 전현기 선생님은 나의 이야기를 듣고 ‘거석이가 참 애쓰는구나. 노력한 만큼 보답을 받는 거란다. 지금 땀 흘리는 꼭 그만큼 네게 보람이 찾아올 거다’라며 따뜻한 말씀을 해주셨다.


신흥중 2학년이 되어 새롭게 근무하게 된 학내 매점에서 그때 우리를 지휘했던 신흥고 2학년 알바생이 국회의장이 되어 국가를 이끌었던 정세균 의원이다. 진안에서도 후미진 시골에서 태어난 정세균 형은 집안이 가난해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나무꾼 노릇을 하면서도 향학열을 불태워 고등공민학교 졸업, 검정고시 등의 난관을 통과해 전주공고에 진학했다가 대학 진학을 위해 신흥고등학교로 학교를 옮긴 입지전적인 인물이었다.


당시 중2의 눈으로만 봐도 정세균 형은 내 삶의 모범으로 삼고 싶은 그런 분이었다. 나는 자연스럽게 정세균 형을 친형처럼 생각하고 따르고 의지하게 되었다. 중2, 모르는 것이 얼마나 많고 알고 싶은 것은 또 얼마나 많은 나이인가. 정세균 형은 내가 무엇을 묻든 어떤 일을 상의하든, 당시 내가 찾아낼 수 있는 최적의 답을 제시해주는 그런 분이었다.


돌이켜보면 그게 벌써 50여 년 전의 일. 그때 이후로 난 반백 년 가까운 시간 동안 ‘자수성가’라는 단어만 들으면 가슴이 뭉클해진다. 내가 알고 지내는 사람들 중에 정세균 형만큼 ‘자수성가’라는 단어에 잘 어울리는 사람은 없다.


함께 걷는다는 것, 함께 살아간다는 것

‘사제동행(師弟同行)’, 강단에 서게 된 이후 늘 내 마음에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는 말이다. 같이 걷는다는 것, 진정한 가르침과 배움이란 선생과 학생이 함께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그곳을 향해 함께 전진하고자 할 때 비로소 일어나는 것! 선생은 걷지도 않으면서 학생들만 먼 길을 가라고 등 떠밀어서도 안 되는 일이고, 선생의 걸음걸이가 바르지 않으면 뒤따르는 제자들의 발걸음은 어지럽게 된다. 이때 선생이란 한 발자국 먼저 떼는 사람이다. 한 발 먼저 내딛는다는 것은 때론 과감함을 요구하기도 하고 때론 신중함을 요구하기도 한다.


아직 누구도 발길을 들이지 않은 곳으로 걸음을 옮겨야 하지만 뒤따르는 후학들도 충분히 발 디딜 만한 곳인지도 배려해야 한다. 그리고 어느 시점이 되면 앞서 가던 선생은 걸음을 멈추고, 거기서부터는 후학이 새롭게 선발이 되어 앞으로 나아가며 다른 후학들이 나타나 그 뒤를 잇는 것이다. 그렇게 교육도, 인류의 문명도 한 걸음 한 걸음씩 전진해왔다. 그것이 곧 역사라고 나는 생각한다. 선학의 길을 뒤쫓다가 자신의 차례가 되면 스스로 길을 개척하는 것. 선생은 선생답게, 학생은 학생답게 길을 걷다가 임무를 이어받으며 꾸준히 길을 넓혀나가는 것.


교육에는 어려 목표가 있지만, ‘가난의 대물림’과 같은 악순환을 방지하고 꿈과 의지로 현실적 장애를 극복할 수 있다는 믿음을 청소년들의 가슴에 심어주는 것도 그 목표 중 하나여야 한다. 국가 균형 발전에 관한 이야기가 그동안 많이 나왔지만, 균형 발전이란 곧 교육 균형과 기회의 균등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나는 굳게 믿는다.


수도권 대학을 나오지 않아도 충분히 자신의 뜻을 펼칠 수 있다고 믿어야 지역 인재들이 지역을 지키고 가꾸는 법이고, 경제적 어려움이나 장애 등으로 인해 최소한 교육의 기회마저 얻지 못하는 이들이 발생하지 않을 때, 사람들은 비로소 우리나라, 우리 지역이 살 만한 곳이라고 여기게 될 것이다.


교육은 미래, 희망과 등가의 가치를 지닌 단어였음을 우리 모두 잊어선 안 된다. 진짜 교육이 있어야 우리 사회가 절망 사회에서 희망 사회로, 우리 지역이 떠나고 싶은 지역에서 살아가고픈 지역으로 바뀔 수 있다.


리더십이란 무엇일까

여러 가지 소중한 덕목 중, 내가 생각하는 가장 중요한 리더십의 요체는 ‘소통’이다. 집단이란 각각의 다른 생각과 이해관계를 가진 개인들이 모여 형성되는 것. 갈등은 피할 수 없다. 요구도 서로 다르고, 공동체의 미래에 대한 기대도 천차만별이다. 따라서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지만,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납득할 수 있는 공감대를 형성하는 일이야말로, 한 집단을 대표하는 리더가 최우선적으로 갖춰야 할 덕목이다. 나는 이를 ‘섬김의 리더십’이라고 정의한 바 있다. 구성원 모두를 나만큼, 아니 나보다 더 귀하에 여기고 존중하는 마음이 있어야만 한 집단을 이끌 수 있다. 대화를 통해 설득해야 하고, 구성원들에게 잠재된 역량을 파악하려면 끊임없이 구성원 한 명 한 명과 소통을 해야 한다.


소통 다음으로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공통의 목표를 제시할 수 있는 ‘비전을 제시하는 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 공동체의 역량을 모았으면, 미래 지향적이고 생산적인 방향으로 그 에너지를 쏟아야 한다.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시급하면 문제 해결을 위해, 새로운 과업 발굴이 중요하면 또 그 방향을 향해 모두가 달려갈 수 있게 만드는 사람이 리더이다. 리더십이란 말도 ‘선도의 책임감’을 의미하지 않던가. 우리는 저기까지 달려갈 수 있다는 목표를 제시하고 함께 달려달 준비를 하고, 달려가는 중에는 뒤처지는 이가 없는지 살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다.



2부

‘교육입도론’을 주장하는 이유

전북의 인구는 줄고 있다. 그 이유는 두 말 할 것 없다. 먹고 살기 힘드니, 수도권 등 타지역에서 생계를 꾸려보자는 ‘탈(脫) 전북 현상’이 심화할 수밖에 없고, 사람이 줄어드니 정치와 경제, 사회, 문화 등 각 분야의 전북 파워도 위축될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그야말로 빈곤의 악순환이 거듭되고 있다.


경제는 제조업 생산과 부가가치 등 각 지표에서 전국대비 2퍼센트 수준을 맴돌고 있다. 점점 위축되는 도세(道勢)를 키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해답은 결국 사람을 키우는 교육으로 귀결됐다. 교육을 통해 전북의 옛 명성을 회복해야 떠났던 사람들이 돌아오고 정치와 경제 등 각 분야도 활성화될 것이란 말이다. 나의 ‘교육입도론’은 이렇게 세워졌고, 시간이 흐를수록 자명해졌다.


‘교육입도론’을 한 마디로 요약한다면, 교육을 통해 전북의 인재를 양성하고, 이들이 전북과 한국, 나아가 세계 곳곳에서 미래를 개척해 나갈 수 있도록 교육 전반을 변화시키자는 것이다. 교육명가로 이름을 떨쳤던 과거의 명예를 회복하고, ‘돌아오는 전북’을 만들자는 것이 근본취지다. 나아가 교육 현장에서 선생님들이 자존감과 자긍심을 가지고 신명나게 학생을 가르칠 수 있도록 교권과 학생인권이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하고, 여기에 맞는 여건과 시스템도 구축하자는 말이다. 이런 모든 것을 통해 교육으로 전북을 되살리는게 바로 ‘교육입도론’의 골자이다.


그런데 지금의 현실은 어떠한가? 전북교육이 위기라는 말이 끊이지 않는다. 지식의 초대 위에서 창의력도 키우고, 주도적 학습능력과 문화적 공감 능력, 민주시민 자질 함양 등도 이뤄져야 하는데, 이를 무시하는 우를 범하고 만 것이다. 이러다 보니 기초학력 저하 등의 문제를 낳고 말았다. 여기다 교육행정과 불통과 중앙정부의 재정적 지원 감소 등 복합적인 문제가 노출되고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진로교육

기술과 산업의 발전에 따라 미래의 직업이 사라지고 생기는 것은 당연하지만 이를 가볍게 웃어넘길 일은 아니다. 급변하는 미래 사회에 적합한 인재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진로교육의 방향을 설정해야 한다. 진로교육은 청소년들이 일생동안 수행하게 될 일과 직업을 준비하고 행복한 삶을 설계할 수 있도록 돕는 교육이다.


청소년이 자신의 진로를 선택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다양한 진로체험을 통한 사회적 경험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러나 청소년 진로선택의 현실을 들여다보면, 청소년 개인의 적성과 진로설계를 반영하지 못한 진학 및 진로 선택, 주요 진로 전환기(고교선택, 대학 학과 및 전공 선택 등)에 있어서 비효율성 증가, 사교육시장 팽창, 청년 실업 등의 사회적 폐해 등이 발생하고 있다.


그렇다면 청소년들이 다가오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적합한 인재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어떤 역량을 갖춰야 할까? 미래사회에 대한 적응력,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는 능력, 균형적 사고 등이 미래 역량으로 강조되고 있다. 세계적인 대기업들도 이미 고학력이나 화려한 스펙보다는 문제해결능력, 인성, 주인의식, 소통능력 등을 갖춘 인재상을 내세우고 있다. 결국 진로 교육의 방향도 이러한 역량을 키워주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 건 당연하다.


학생 한 명 한 명의 꿈과 재능을 살리는 개인 맞춤형 진로를 설계하고, 일, 배움, 삶이 연계되는 진로체험 활동을 통하여 다양한 직업세계를 경험하고 바람직한 직업관을 가질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이제는 유망한 직종만을 찾는 직업교육을 넘어 4차 산업혁명을 대비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수립하고, 전 생애 동안 행복한 삶을 설계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진로교육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미래에는 평생 하나의 직업을 갖는 경우보다 여러 분야에서 다양한 직업을 가지게 될 확률이 더 높다. 깊은 통찰력과 자기주도적 문제해결력으로 학생 자신의 미래를 주도해 나갈 역량을 키워나가도록 학교교육이 도와주어야 할 것이다.


결국 교육이 희망이다

이젠 개천에서 용이 나지 않는다. 요즘은 ‘강남에서만 용이 난다’고 한다. 언젠가부터 가난은 대물림되었고, 교육은 신분과 계층을 공고화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전북의 상황 역시 별반 다르지 않다. 계층별, 도·농간 교육격차는 점점 심화되고 있다. 저소득층 및 교육취약계층의 비율이 타 시도에 비해 더 증가하고 있다. 실제로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은 학생이 대학입시에도 우수한 결과를, 기초생활수급 학생이 많은 학교가 적은 학교보다 낮은 학업성취도를 보이고 있다. 학습결손이 누적되어 상급학교로 갈수록 학습에 흥미를 잃거나 수업을 따라가지 못하는 현상도 심화되고 있다.


취약계층을 위한 지원은 비용이 아니라 미래를 위한 투자이다. 이젠 기회의 평등뿐만 아니라 결과의 평등까지 이뤄내야 한다. 경제적으로 취약한 환경에 있는 아이들이 자신의 노력과 재능에 상관없는 사회·경제적 배경 때문에 그 꿈을 키워나가지 못한다면 국가 사회적으로도 큰 손실이다. 교육은 우리 사회의 최후 보루적 성격의 평형수 역할을 해야 한다. 교육복지를 통하여 전북 학생 모두 행복하게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다지는 데 지역 사회 모두가 발 벗고 나서야 한다.



3부

‘소통’은 모든 무장을 해제한다

나는 대학교수 생활 35년과 전북대 총장 8년 재임기간 중 겸손의 힘을 여러 번 확인했다. 실패하는 리더는 대부분 ‘능력 부족’이 아니라 ‘자만’과 ‘독선’ 때문이라는 한 외국계 기업 CEO의 말을 가슴에 새기고 겸손하게 대학 구성원들을 섬김으로써 난제를 풀어갔기 때문이다. 물 잔에 물이 비어있어야 새로운 물을 채울 수 있듯, 겸손은 단순히 자신을 낮추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비우고 상대방을 섬기는 자세에서 나온다.


더불어 겸손만큼 필요한 것이 있다면 소통 능력이라 할 수 있다. 한 경제연구소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CEO들은 불황을 이기는 첫 번째 방안으로 ‘소통 확대’를 꼽은 것으로 나타났다. 경제가 어렵고 위기가 반복될 때마다 조직의 전 구성원이 머리를 맞대고 ‘대면 소통’의 기회를 늘린다면 잠재된 역량이 최대한 발휘되어 불경기도 극복할 수 있다는 말이다. 미래학자 존 나이스비트도 ‘의사소통이야 말로 경영예술의 정점이다’라고 말했다.


나는 대학 총장 때 교수님과 직원, 학생들과 정기적인 대화의 장을 마련했고, 진솔한 소통을 하기 위해 다과를 나누며 대학생활과 교육여건 개선, 그리고 대학의 정책에 대한 건설적인 대화를 끌어낸 적이 있다. 이런 토론과 대화는 회를 거듭할수록 허심탄회한 진정한 소통의 장으로 변해갔다.


머리가 아닌 가슴과 가슴이 만나 솔직담백한 소통에 나서다보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새로운 해법을 모색하는 소중한 경험을 갖고 있다. 교육을 포함한 각 분야에서 ‘겸손과 소통’이 춤을 춰야 미래와 희망을 노래할 수 있다. 자신만이 옳고 타인의 길은 달갑지 않다는 식의 독선이나 독단이 우리 사회를 지배한다면 스스로 자신을 가둬 내일을 포기하는 꼴이 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독서 예찬론

입시에 쫓겨 책을 멀리하는 중고교생을 보면 한쪽 가슴이 아플 정도다. 한 권의 책엔 한 사람의 인생과 철학이 담겨 있다. 책 한 권을 독파하는 것은 다른 사람의 굴곡진 삶의 희비를 섭렵하는 것과 같다는 말은 여기서 나온다. 어느 누가 책을 내면서 무성의하게 글을 쓰겠는가.


어떤 이는 ‘문사철(文史哲) 600권’은 기본이라고 말한다. 문학서적 300권, 역사서적 200권, 철학서적 100권 정도는 읽어야 사람 구실을 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일류 대학의 비즈니스 스쿨을 나와야만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어린 학생이나 중년의 필부필부(匹夫匹婦)도 독서를 통해 자신의 역량을 키운다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 정독과 다독을 교차하며 틈 날 때마다 한 권의 책을 섭렵한다면 우리는 그만큼 빛을 발할 것이다.


흔히들 인문학이 위기에 처해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결코 그래선 안 된다. 인문학은 시대를 뛰어 넘는 인류의 보고가 아닌가. 상상력의 원천이요, 미래를 내다보는 힘이 바로 인문학이다.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창의력에 동력을 제공하는 에너지다.


21세기형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위하여

레오나르도 다빈치. 500년 전 르네상스 시대를 산 그는 비행기의 설계도를 그리고 인체를 해부할 정도로 과학적 지식이 깊었다. 게다가 그는 지구의 보물로까지 일컬어지는 모나리자를 그린 화가이기도 했다. 한마디로 인문, 예술과 자연과학 모두를 섭렵한 천재였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사람이 있었다. 조선시대 정약용은 사서오경뿐 아니라 서양 과학에도 밝은 당시로서 보기 드문 융합형 인재였다. 그 당시에 비록 각광받지 못했지만 다빈치와 정약용은 지금의 시각으로 보면 대단한 선각자였던 셈이다.


요즘 ‘융합(Convergence)이 대세다. 생명공학이나 정보기술, 나노기술 등 산업 전 분야에서 융합이 확산되는 추세다. 세계적인 미래예측 전문가와 석학들도 “가까운 미래에는 융합을 통해 자식이 생성되고 시장 창출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처럼 사회가 변하면서 사회가 요구하는 인재상도 달라지고 있다.


예전엔 한 분야의 전문지식을 갖춘 I형 인재가 주목을 받았다면, 지금은 전문지식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타 분야의 전문가와 소통할 수 있는 A형 인재가 주목받고 있다.


전북지역 교육계에서는 ‘융합형 인재’를 키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와 관련해 전북대는 몇 년 전부터 이 문제를 심도 있게 고민하면서 방안을 마련해 왔다. 물론 융합형 인재에 대한 개념이나 양성 시스템이 아직은 초기 단계여서 미흡한 부분이 적지 않지만, 전국 대학이 부러워하는 성과들도 꽤 있었다. 그중에서 교과과정을 개편해 이공계와 예체능계를 포함한 전체 학생들에게 글쓰기 과목과 실용영어 과목, 비판적 사고와 논리, 기초과학 등의 강의를 반드시 수강하도록 해 이공계 학생에게는 인문·사회과학적 소양을 갖추게 하고 인문학도들에게는 과학적 사고를 할 수 있도록 했다.


여기에 우리 전통문화에 익숙해지도록 판소리와 단소 중 한 가지는 필수과목으로 듣게 했으며, 과학학 등 11개 융복합 교육과정을 개설, 운영하고 있다. 비교과 교육에서는 ‘다빈치 프로젝트21’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학생들이 다재다능한 능력을 쌓고 취업 경쟁력도 높일 수 있도록 돕고 있다. 학생들은 이를 통해 교수와 함께 책을 쓸 수도 있고 독서와 토론을 접목시킨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등 다양한 실천적 체험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또한 학생들이 세계를 많이 접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국립대에서 가장 많은 학생들을 해외 자매결연대학에 파견하고 있고, 세계 각국의 유학생들을 유치하여 글로벌 마인드를 함양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런 노력으로 전북대는 전국 대학 중 교육역량강화사업 성과가 가장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았으며 각종 프로그램도 우수 사례로 선정되어 일본 메이지대학 등 국내외 대학이 벤치마킹하기도 했다. 하지만 대학과 학생들만의 노력으로 융합형 인재를 기를 수 있는 건 아니다.


기업이나 정부·지자체의 협력이 필수다. 기업은 융합형 인재를 뽑는 데 그치지 않고 융합형 인재를 양성하는 데 유연한 사고로 대학과 협력해야 할 필요가 있다. 정부나 지자체에서는 대학 교육과 연구에서 융합이 활발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이렇게 대학과 기업·정부가 유기적인 관계를 맺고 융합교육의 틀을 세우기 위해 노력한다면 세계를 이끌고 갈 21세기형 다빈치를 배출하는 일이 가능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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