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를 리더로 만든 CEO 군수, 김흥식 리더십

   
김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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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과리더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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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05��



■ 책 소개
이 책은 공무원을 대기업 회사원처럼 바꾼김흥식 전 장성군수의 리더십을 소개한다. 지난 2005년 출간된『주식회사 장성군』에서는 장성군의 혁신 스토리가 소개되었다. 『모두를 리더로 만든CEO 군수, 김흥식 리더십』은 지방자치의 성공작이라 불리는 장성군의 스토리를 가능케 한 김흥식 전 장성군수의 이야기다.

 


행정공무원, 교육위원, 기업체 CEO를 거쳐 공무원 조직과 기업의 생리를 잘 알았던김흥식은 행정에 경영 마인드를 접목해 이름 없는 농촌 마을을 전국이 주목하는 대표적인 혁신 도시로 만들었다. 이 책은 장성군의 다양한 혁신사례들을 통해 "갈등을 원칙과 소신으로 풀어나간" 한 리더의 명쾌한 해법을 소개한다.


또한, 장성군 공무원과 군민들을 변화시킨 장성 아카데미, 관행과 관료주의에 원칙과 소신으로맞섰던 스토리, 장성군의 대표 브랜드 홍길동 이야기, 인재 배치방법 등이 담겨 있다. 또한 처음에 욕을 먹어도 나중에 좋아할 일이라고 판단되면과감히 집행했던 수많은 사례들도 수록되어 있다.


■ 저자 김흥식
주식회사 장성군 CEO, 김흥식 전장성군수. 대한민국 공무원 중 저자의 이름과 업적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장성군의 혁신 사례를 소개한 『주식회사장성군』을 읽고 감동 받아 공무원들에게 추천하여 더 유명세를 탔다. 그는 광주사범학교 졸업 후 초등학교 교사와 행정 공무원, 교육위원을 거쳐기업체에서 CEO를 지냈다. 그래서 공무원과 기업 생리를 잘 알았고 행정에 경영 마인드를 접목해 이름 없는 농촌 마을을 전국이 주목하는 대표적인혁신 도시로 만들었다. 1995년 지방자치 민선 1기부터 연속 3선으로 전라남도 장성에서 군정을 이끈 김 군수의 지식경영은 삼성경제연구소의연구목록에도 올라 있다. 2006년 6월 군수 직을 퇴임하고 현재는 기업체와 각종 기관에서 장성군의 혁신 사례들에 대해 열정적인 강의를 하고있다.


■ 차례
추천사


프롤로그 - 군수가 아닌 주식회사 장성군 CEO로 뛰었던 11년


제1부 교육, 사람을 변화시키는 무한 에너지
가슴으로느끼고 배우고 실천하라
생각을 바꾸고 관행을 바꾸자
지식발전소 : 최고의 강사, 최상의 강의가 있는 장성 아카데미
장성아카데미의 숨은 힘


제2부 청렴, 투명함과 올바름을 지킨다
저녁식사는반드시 집에서
바른 원칙, 바른 생각
옳지 않다면 옳은 것으로 바꿔라
부당한 압력에 굴하지 말고 일하라
무엇을 두려워할것인가


제3부 원칙 중심, 독종이라는 별명을 얻다
결정은신중하게, 실천은 소신 있게
현장의 혁신에서 문제의 해답을 찾는다
끝까지 포기해서는 안 되는 두 가지, 기본과 원칙
참여의 힘,시너지의 힘


제4부 도전, 목표는 언제나 더 베스트(TheBest)
"대한민국 최초"의 기록이 많은 이유
목표는 언제나 최고, 최선
더 높이 날아 더 멀리보라
글로벌 마인드가 세상을 움직인다
잠재자원과 가능성을 발굴하라
컴퓨터 교육위원?


제5부 사람 존중, 내 리더십의 원천
경청과 설득의미덕
격려와 기대, 그리고 책임과 위임


에필로그 - 장성군의 혁신 동력은 "교육"




CEO 군수, 김흥식 리더십


제1부 교육, 사람을 변화시키는 무한 에너지
생각을 바꾸고 변화를 바꾸자

-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하다
인사 발령 내용이 알려지자 군청 전체가 술렁거렸다. 물론 가장 놀란 것은 L과장이었다. 한직으로 밀려날 것을 예상하고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한 마당에 승진 발령이 났기 때문이다. 그것도 내무과장이라는 요직으로 말이다! 파격적인 인사 발령에 군청 공무원들은 크게 충격을 받았다. L과장의 승진 발령 외에도 놀랄 일은 한 가지 더 있었다. 그동안 힘깨나 있다고 알려진 선호 부서에서 10년 동안 자리만 차지하고 있던 공무원은 다들 기피하는 부서로 내보내고, 음지에서 묵묵히 일하는 실력 있는 공무원은 당당히 요직으로 불러들였기 때문이다.


첫 인사 발령을 통해 나는 군청 내에 동요하는 분위기를 단번에 가라앉혔다. 첫 번째 민선군수를 뽑는 선거에서 설령 다른 후보를 지지했더라도 주식회사 장성군을 만드는 데 필요한 인물이라면 과감하게 발탁했다. 학연이나 지연 같은 인맥 중심의 인사가 아닌 철저히 능력 중심의 인사 발령하는 것을 보면서, 직원들은 크게 공감했고 술렁이던 군청은 안정을 찾았다.


선거에서 공무원은 중립을 지켜야 한다. 하지만 손바닥만한 장성군에서 마음으로 누가 누구를 지지하는지는 대충 드러난다. 그랬으니 선거에서 나 아닌 상대 후보를 지지한 L과장은 내가 당선된 후 나와 얼굴을 마주치는 것이 적잖이 불편했을 것이고, 속으로는 자신에 대한 보복 인사가 있을 것으로 예상했을 것이다. 주변에서도 그것을 당연한 수순으로 보는 분위기였다.


그렇지만 나는 그런 상식을 선택하지 않았다. 나는 상식이 아닌 그의 능력을 선택했다. 선거에서 누구 편을 들었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의 능력이다. L과장이 선거에서 다른 후보를 지지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건 그의 선택이었다.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보면 그에게는 나의 상대 후보를 지지할 수밖에 없었던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충분히 이해할 만한 상황이었다. 나를 지지하지 않았다고 해서 그의 능력까지 외면할 이유는 없었다. 장성군의 미래를 위해 나는 L과장의 능력을 선택했다. 이것은 앞으로 불게 될 변화의 바람을 보여주는 예고편에 불과했다.


- 예산 타령, 규정 타령
장성군의 첫 번째 민선군수로서 드디어 본격적으로 직무가 시작되었다. 해야 할 일이 많았고, 하고 싶은 일이 많았다. “장성의 역사를 바꾸고, 장성의 지도를 바꾸겠다.” 는 공약을 지키기 위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 하지만 그 어떤 일보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었다. 그것은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었지만, 결코 쉬운 산이 아니었다. 바로 수십 년 동안 굳어진 공무원들의 관행과 업무 스타일이라는 험산이었다.


직무를 시작한 이래 한 달 동안, 나는 거의 모든 사안에 대해 “예산이 없어서 어렵습니다.”, “그런 관례가 없습니다.”, “규정에 나와 있지 않습니다.”라는 말을 수없이 들어야 했다. 철옹성 같은 험산이 사방에 버티고 있어서, 의욕적으로 일을 시작하는 건 엄두도 낼 수 없을 판이었다. 군수가 되어 처음 만난 엄청난 벽이었다. 하지만 이대로 터무니없는 관료주의 벽 안에 갇혀 주저앉아 있을 수는 없었다.


- 창조적 파괴 작업
“예산이 없고, 관례가 없고, 규정이 없으니 할 수 없다!” 어찌 보면 너무 당연한 말이다. 예산이 없는데 어찌 일을 할 것이며, 관례가 없는데 무엇을 보고 할 것이며, 규정이 없으니 무엇을 따를 것인가 말이다. 하지만 뒤집어 생각해보면 예산이 있고, 관례가 있고, 규정이 있으면 한다는 말이다. 없는 것은 만들면 된다. 예산을 확보하고, 관례를 만들고, 규정을 정하면 된다. 문제는 ‘없다, 안 된다’에 붙잡혀 있는 고정관념이다. 그런 생각에 매여 있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은 너무나 뻔한 일이었다.


1995년, 관선시대에서 민선시대로 넘어가는 과도기. 무엇보다도 확실한 변화가 필요했다. 공무원 생각을 바꾸는 일이 급선무였다. 발상의 전환! 그것이야말로 가장 시급한 일이었다. 할 수 없다, 안 된다, 불가능하다, 해본 적이 없다는 생각을 버리고 무엇이든 잘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마인드와 자신감이 필요했다. 미국 경제학자 조지프 슘페터는 “혁신이란 기존의 것에 대한 창조적 파괴”라고 말한다. 나는 장성군 공무원을 혁신시키기 위한 행정 내부의 창조적 파괴 작업에 돌입했다.



제2부 청렴, 투명함과 올바름을 지킨다
옳지 않다면 옳은 것으로 바꿔라

- 구태의연함을 혁신하면 달라진다
이비인후과에 가봤더니 오전은 휴진이라며 오후에 다시 오라고 했다. 공중보건의가 진료를 하고 있었는데, 걸핏하면 휴진인 경우가 많아 환자들은 헛걸음치기 일쑤였다. 의사가 자리를 지키지 않는 곳은 이비인후과만이 아니었고, 병원 곳곳에 먼지가 수북하게 쌓여 있어 병원에서 오히려 병에 걸릴 지경이었다. 이것이 바로 90년대 중반의 장성보건의료원의 풍경이었다. 민선군수로 취임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의료원에 들렀을 때 본 여러 상황들은 여러 모로 적자 운영의 이유를 적나라하게 대변하고 있었다. 시도 때도 없이 자리를 비우는 의사, 불친절한 간호사, 무성의한 직원, 더러운 환경, 낙후된 시설 등등. 전체 직원이 100여 명에 이르는 장성보건의료원은 1년에 5억 원 가까이 적자를 내고 있었다.


문제가 심각했다. 나는 의료원장과 간부급 직원들을 따로 만나는 자리에서 인생의 선배로서 최대한 인간적으로 조언을 했다. 간호사나 병원 직원들에게는 기회 있을 때마다 애정 어린 지적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지속적인 권면으로 보건의료원은 서서히 변해갔다. 시설과 서비스가 좋아졌다. 장성군 공무원들이 달라진 것처럼 장성 아카데미와 해외 배낭연수 등 다양한 교육을 받으면서 의사와 간호사를 비롯해 직원들의 생각이 바뀌고 태도가 좋아졌다. 의료원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말 한 마디에 친절함이 자연스럽게 묻어났다. 그럼으로써 의료원을 믿고 찾는 이들이 늘어났고 적자는 크게 줄었다. 1996년만 하더라도 적자 폭이 49%로 뚝 떨어졌다. 1999년에는 드디어 대부분의 적자가 해결되어 의료원 운영이 정상화되었다. 보건의료원의 성공적인 서비스 혁신과 체질 개선으로 적자 운영에서 탈피한 일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었다.


- 돌파구는 내부에 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원칙 중의 하나는, 지방자치단체는 직접 경영수익 사업을 벌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윤 창출’이라는 기업의 존재 이유를 유지하는 것 자체가 너무나 어렵기 때문이다. 기업은 이윤을 내기 위해 그야말로 하루를 25시간으로 늘여가며 일한다. 그렇게 자신의 전부를 걸고 뛰더라도 냉엄한 경쟁사회에서 살아남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지방자치단체는 국민의 세금을 사용하는 데만 익숙한 조직이다. 일정한 돈을 받아 그 돈을 가장 효율적으로 소비하는 것이 지방자치단체의 미덕이다. 지방자치단체는 기업과는 존재 목적이 다를 뿐만 아니라 시스템 자체가 다르다. 지방자치단체는 국민들에게 ‘서비스’하기 위해 일하지만, 기업은 ‘이윤’을 위해 뛴다.


그렇다면 지방자치단체는 주어진 예산 외에 재정을 늘릴 만한 방법이 전혀 없다는 말인가? 알뜰살뜰 아껴 쓰는 방법 외에는 돈을 만질 수 있는 방법이 과연 없는 것인가? 전혀 그렇지 않다. 행정 내부를 구석구석 찾아보면 한쪽에서 쿨쿨 잠자고 있는 수익이 꽤 있다. 재정이 풍성해진다는 의미가 곧 큰돈을 벌어들이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쓸데없이 새나가는 돈을 줄이는 것도 돈을 벌어들이는 것과 마찬가지다. 제법 긴 시간 동안 묵혀 있는 돈을 똑똑하고 안전하게 굴리는 것도 돈을 버는 것이다.


- 자투리라고 무시하지 말라
환자 중심의 서비스 개선을 통해 보건의료원의 적자를 대폭 감소시키고 운영 정상화를 꾀한 일, 효율적인 이자수입 관리, 공사 목표관리제를 실시해 과다설계 관행을 과감히 개선하여 공사비를 절감한 사례, 자투리 예산을 모아 지역개발 사업에 재투자한 경우 등은 행정 내부로 눈을 돌려, 직접 경영수익 모델을 만들지 않고도 고수익을 올린 경영 실천사례가 되었다. 재정자립도 100%선인 지방자치단체지만 효율적인 경영 혁신을 통해 군 살림살이를 야무지게 한 덕분에 군민이 잘 살 수 있는 길을 모색했다.


나는 민선군수로 취임한 이래, ‘주식회사 장성군’을 내세우며 행정에 기업의 경쟁논리를 도입해 구태의연한 관행을 바로잡아가는 데 역점을 두었다. 그렇다고 해서 장성군이 기업처럼 이익을 내겠다고 직접적인 경영모델을 만들고 수익사업을 벌이지는 않았다. 경영마인드를 가지고 장성군을 움직였다는 말이지, 장성군을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으로 만들겠다는 뜻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행정 내부로 눈을 돌려 잠자고 있는 돈을 깨우고 허투루 예산이 새나가지 않도록 하는 데 역점을 두었다. 한마디로 경영행정의 요체는 행정 내부를 어떻게 바꾸어 나가냐다. 그것이 21세기형 지방자치단체가 추구해야 할 올바른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제3부 원칙 중심, 독종이라는 별명을 얻다
결정은 신중하게, 실천은 소신 있게

- 원칙을 지키는 민주적인 카리스마
“한번 해보자!” 마음먹은 일이 있으면 아무리 어려워도, 처음에 정한 원칙과 기본에 따라 끝까지 해내는 것이 내 스타일이다. 그래서 일을 추진하다가 ‘오만하다’, ‘독선적이다’라는 소리를 종종 듣거나 오해를 받기도 한다. 그렇지만 “한번 해보자!”라고 작정하기까지는 수백 번, 수천 번 최선의 방법을 찾아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다. 지나치게 오래 생각하는 것 때문에, 결정하는 데 너무 시간을 들인다는 비난 아닌 비난을 들을 때도 있었다. 결정이 늦어지는 것은 맞는 말이지만, 그만큼 최선을 찾기 위한 고민과 고뇌의 시간들을 보냈기에 결정한 다음에 후회는 없다.


중요한 군정 방향을 결정할 때는 냉정하게 판단하고, 장성의 미래를 위해 이것이 바른 방향이다 싶으면 과감하게 결단을 내렸다. 당장은 대다수 군민들이 반대한다 하더라도 장기적으로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흔들리지 않고 반대를 무릅썼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주민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끝까지 설득했다. 흔히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따르는 것이 민주적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무조건 많은 주민들의 생각과 요구를 들어주는 것이 리더의 바람직한 선택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당시에는 많은 주민들의 의견이라 하더라도 장성의 미래를 생각해볼 때 그런 주장들이 옳지 않다는 판단이 서면, 올바른 방향으로 주민들을 설득하고 이끌고 가는 것이 리더가 갖추어야 할 참된 자질이라고 믿는다.


돌이켜보면, 수십 년 세월 동안 관선시대의 행정 스타일에 젖어 있었던 군청 공무원들이나 주민들에게는 나의 스타일이 당황스러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와 같은 원칙주의자가 가진 강력한 추진력을 그들은 처음 접해본 것이라 거부감부터 드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군청 공무원들이나 주민들은 나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고, 민선 지방자치 시대에 맞는 행정 스타일에 적응하게 되었다.


많은 부분에서 생각이 달라지고 태도가 바뀌었다고는 해도 여전히 고정관념이 남아 있고, 타성과 관행에 젖어 대충 넘어가는 일이 곳곳에 남아 있다. 특히 지방자치라는 미명 아래 지역이기주의에 빠져 목소리를 높이는 일부 주민들을 볼 때는 답답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역이기주의에 무릎 꿇는 것은 리더의 올바른 선택이 아니며 민주주의나 지방자치의 참뜻도 아니다. 지역이기주의를 이기기 위해서는 원칙과 소신을 지키며 민주적인 카리스마로 일을 추진해야 한다. 리더가 원칙과 중심을 지키지 못하고 우유부단한 모습을 보이면 오히려 지방자치단체와 주민들은 혼란에 빠지고 만다.



제4부 도전, 목표는 언제나 더 베스트(The Best)
‘대한민국 최초’의 기록이 많은 이유

-‘ 최초’를 만들어낸 미래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
1995년 전국 지자체 최초로 홈페이지 개설.
1995년 군 단위 지자체 최초로 군 CI 및 BI도입.
1997년 전국 최초로 전자결재 시스템 도입.
1997년 군 단위 지자체 최초로 토지민원행정 종합전산화 추진.


“미래를 꿰뚫어볼 수 있는 통찰력은 어떻게 얻느냐?”라는 질문에 세계적인 미래학자인 앨빈 토플러와 존 나이스비츠는 입을 모아 “관심과 호기심!”이라고 답변했다. 전국의 지방자치단체의 벤치마킹 대상이 될 정도로 장성군이 비전을 가지고 일할 수 있었던 것은, 오직 장성의 미래에 대한 애정과 관심 그리고 호기심에서 비롯되었다고 단언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갖가지 ‘최초’ 기록을 세우며 장성의 역사를 새롭게 써 나갔다.


예전에 장성 사람들은 누가 고향이 어디냐고 물으면 그냥 ‘광주’라고 짧게 대답하곤 했다. 광주에서 20여 킬로미터 떨어져 있으니까 광주라고 해도 거짓말은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곧이곧대로 ‘장성’이라고 대답하면 열의 아홉은 거기가 어디냐고 되묻기 일쑤였다. 강원도냐고 묻는 사람도 허다했다. 하지만 이제 장성 사람들은 당당하게 “장성!”이라고 대답한다. 그러면 사람들은 이렇게 맞장구를 친다.


“아, 홍길동의 고장 장성 말입니까?”
“장성에 장성 아카데미가 유명하죠?”


공무원이라면 “거기가 ‘주식회사 장성군’으로 지방자치에 경영 이념을 도입한 곳, 맞지요?”라고 하기도 한다.


이와 같은 장성의 이미지, 장성만이 가진 브랜드 효과는 이미 전국적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장성군의 이름만을 알리는 지명도 효과에만 주력하지는 않았다. 내적으로 행정의 선진화에도 전심전력했다. ‘전국 최초’의 기록들이 바로 그 증거들이다. 그것은 장성군 공무원들의 땀과 노력이자 장성 사람들의 자부심이다. 맨 처음 시도한다는 부담과 모험은 땀과 노력이 뒷받침이 되었을 때 빛나는 결과로 돌아온다. 우리는 그것이 진리임을 경험으로 이미 알고 있다.



제5부 사람 존중, 내 리더십의 원천
격려와 기대, 그리고 책임과 위임

- 공무원이 자산이다
나와 오랫동안 함께 일했던 O과장은 “공무원이 우리 군의 가장 중요한 인적 자산”이라는 말을 임기 중에 내가 가장 많이 했던 말 중 하나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그렇다. 장성군의 가장 소중한 자산은 바로 공무원이다. 군 살림을 책임지고 있는 이들이 어떻게 일하느냐에 따라 장성군은 1등이 될 수도 있고 꼴찌가 될 수도 있었다. 장성군이 1등 군, 장성군민이 1등 군민이 될 수 있었던 데에는 1등 공무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민선군수로 처음 장성군청에 발을 내디뎠을 때 공무원들의 모습은 다소 실망스러웠다. 그렇지만 나를 실망시켰던 공무원의 관료주의는 강산이 한번 바뀌면서 완전히 달라졌다. 그들은 다양한 분야에서 지속적인 교육을 받으면서 서서히 공무원이 처음 되었을 때의 그 실력 있고 성실한 모습을 회복해갔다. 그들이 일할 맛이 나서 보다 적극적인 자세로 일할 때 조직 전체에 생기가 돌았고, 그 혜택은 장성군에 골고루 나누어졌다.


취임하고 나서 첫 1년 동안 나는 공무원과의 전쟁을 선포했을 정도였다. 엄밀히 말하자면 전쟁의 대상은 공무원이라기보다는 타성에 젖어 있는 공무원의 관료주의였다. 당시만 해도 직급이 높을수록 일은 안 해도 월급은 더 많았고 그것이 부끄러운 공직 사회의 현주소였다. 나는 당장 계급이 높을수록 도장만 찍는 그런 식의 근무 태도를 뜯어고치는 데 중점을 두었다. 그래서 장성 아카데미를 통해 교육을 실시하면서, 한편으로는 상급 공무원이 더 많이 일해야 하는 팀제 시스템으로 조직을 바꿨다. 또한 공무원이 하는 일은 무엇이든 적극적으로 밀어주었다. 열심히 일하다가 실수를 하더라도 담당자를 문책하지 않았다. 한번 실수를 문제 삼으면 대부분은 다음 일을 벌일 때 위축되거나 아예 일을 벌이지 않는다.


‘신의’는 살아오면서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온 덕목이다. 나는 사람을 한번 믿으면 끝까지 믿었다. 믿지 않으면 어떻게 같이 일할 수 있다는 말인가. 어렸을 때부터 나는 친구가 되려면 신의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그랬기 때문에 직원들 사이에서 신의를 지키는 사람을 더 눈여겨보게 되었고, 신의를 중요한 인사 기준으로 삼았다. 사람에겐 인성과 능력이 모두 중요한 요소이지만, 인성이 능력보다 중요하다. 신뢰는 인성을 바탕으로 하고, 신뢰받는 사람은 믿음에 부응하기 위해 더 열심히 일한다. 인정받고 있다는 자긍심을 가지고 더 높은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다른 공무원보다 곱절로 신바람 나게 일한다. 장성군 공무원들이 그랬다. 그들은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고 시간이 갈수록 더욱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내가 그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무한한 자신감을 불어넣고 격려와 칭찬을 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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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하는 리더들은 피그말리온 효과를 잘 알고 있다. 격려하는 만큼, 믿어주는 만큼 상대방은 자부심을 갖고 성장한다는 것이다. 매우 단순한 방법이지만, 그것의 효과는 대단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것은 곧 숨어 있는 보석을 발견해 잘 닦아서 보석의 진가를 발휘하게 만드는 것과 같다.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