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는 광범위한 독서와 답사를 통해 얻은 삼국지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경제전문가로서, 또최고경영자로서 쌓은 오랜 경륜을 접목하여 이 책을 집필했다. 그는 냉철한 판단력으로 정세를 주도한 조조, 인정과 의리로 인재를 포용한 유비,수성(守成)의 명인 손권의 행적을 하나하나 짚어보며, 조직의 흥망성쇠와 인간관계, CEO의 자세와 역할을 다시금 일깨우고 있다. 또한, 이책에는 삼국지 유적을 직접 답사하며 촬영한 사진들이 실려 있어 영웅들의 생생한 숨결을 느낄 수 있다.
■ 저자 최우석
부산대를 졸업하고 1962년한국일보 기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1972년 중앙일보로 옮겨 논설위원, 경제부장, 편집국장을 지냈다. 1988년 중앙경제신문 창간에 참여하여편집국장과 주필을 역임했다. 1994년 중앙일보, 중앙경제신문 주필 겸 편집인을 마지막으로 언론계를 떠나 1년 동안 일본 게이오대학과일본경제연구센터에서 일본경제정책과 기업경영사에 대해 연구 생활을 했다. 1995년 삼성경제연구소 대표이사 소장으로 취임하여 2005년 부회장으로떠나기까지 10년간 연구소에 재직했다. 지금은 일선에서 은퇴하여 삼성전자 상담역으로 있으면서 경제와 경영에 관한 글을 쓰고 있다.
■ 차례
프롤로그 1 - 왜 『삼국지』인가
프롤로그 2 - 창업형 CEO와 수성형 CEO
제1부 조조 편
1. 위대한 CEO 조조: 타고난 자질과 부단한 담금질로 최강국 건설
2. 조조의 전략적 안목과 결단 : 한발 앞서 생각하고 기민하게 판단, 실행
3.용인(用人)의 천재 조조 : 명분보다 능력 우선, 청탁불문(淸濁不問) 발탁
4. 조조의 감성 리더십 : 인간적 매력으로 포용, "능력이상" 실력 쏟게 만들어
5. 조조의 비정과 냉혹한 결단 : 대권에 거슬리면 가차 없이 제거, 깊은 속 아무도 몰라
6. 조조의시스템 구축과 법치 확립 : 둔전제로 부국강병 기틀 마련, 준법으로 기강 세워
7. 조조의 관도대전 승부수 : 운명의 갈림길 재빨리포착, 전략과 결단으로 강적 격파
8. 뛰어난 인재 조련사 조조 : 숨은 인물 발탁하고 "야생마" 길들여 "준마"로
9. 조조의치밀한 승계 전략 : 아들들 경쟁시켜 후계자 낙점, 긴 포석으로 승계 준비
10. 조조의 위대한 유산 : 말년의 총명으로 후계구도 완성,풍부한 인재와 좋은 시스템 남겨
제2부 유비 편
11. 깊고 큰 그릇의CEO 유비 : 어진 인품으로 인재 보듬고 대기만성 창업
12. 솜에 싸인 강철 유비 : 너그럽고 겸손하지만 결정적 순간엔 행동
13. 유비의 불가사의한 매력 : 한번 보면 심복해 평생을 섬겨
14. 유비의 감성 리더십 : 정성으로 백성 보살피고 아랫사람끝까지 신뢰
15. 변신의 명수 유비 : 야망 숨기고 때론 바보 행세, 통 크게 실리 챙겨
16. 삼고초려의 정성 : 정성과예의로 천하의 인재를 내 사람으로
17. 유비의 부드러운 용인술 : 큰 그릇서 우러난 천부적 인덕, 적들도 거역 못해
18.유비와 공명의 2인3각 경영 : 과감히 힘 실어준 이상적 공동 경영
19. 유비의 영광과 내리막의 시작 : 절정기 맞고 방심하다 한순간에기울어
20. 유비의 마지막 고집과 파국의 시작 : 균형감각 잃고 명분 없는 전쟁 강행
21. 유비, 공명에게 모든 것을 맡기다: 치명적 패배 후 사심 없는 최선의 포석
22. 유비의 후계자와 제갈공명 : 애끓는 충성으로 목숨 바쳐 부축하다
제3부 손권 편
23. 수성(守成)의명CEO 손권 : 실리 외교와 인재 관리로 발전적 수성에 성공
24. 적벽대전을 준비하다 : 두루 듣고 숙고 후 결행, 모두 승복시켜에너지 결집
25. 적벽대전의 승리와 전후 처리 : 젊은 패기의 통쾌한 승리, 정치적 기반 크게 높아져
26. 형주쟁탈전 :냉철한 계산 위에 최선의 선택, 유비 견제하며 조조에 대항
27. 손권의 유연한 처신 : 버거운 원로 달래며 부려, 옳은 쓴소리엔 깨끗이승복
28. 손권, 지모로써 형주를 무혈 점령 : 뛰어난 전략가 여몽 키워 기습작전으로 형주 탈환
29. 손권의 능란한 외교술 :유비 복수전 대비 수도 이전, 조조에 아첨하며 신하 자처
30. 이릉대전과 뒷수습 : 유비 격퇴 후 추격 자제, 다시 촉나라와 연대 탐색
31. 손권, 다시 위나라와 싸우다 : 탁월한 용인술로 위군 격퇴, 즉위 29년 만에 황제 등극
32. 손권의 절정기와 그늘 :황제 된 뒤 오만과 과욕, 총명 흐려지고 신하들 의심
33. 손권의 후계자 소동 : 후계자 선정에 혼선, 기강 문란해져 망국 초래
에필로그 - 삼국의 마지막 이야기 : 후손들의 싸움과 천하재통일
삼국시대 세CEO의 약사(略史)
집필후기
참고문헌
삼국지 경영학
제1부 조조 편
위대한 CEO 조조 : 타고난 자질과 부단한 담금질로 최강국 건설
조조가 처음 허창(許昌)을 근거로 나라를 만들어 갈 때 사방이 강적들로 둘러싸여 있었다. 강적들을 모두 물리치고 조조가 최강의 위나라를 건설한 것이다. 그 과정에서 조조는 몸소 전장을 누비며 싸움을 주도했다. 어떤 땐 정면승부로, 어떤 땐 꾀와 위계(僞計)와 사술(詐術)로 적을 하나씩 물리쳤다. 마상(馬上)에서 천하를 얻을 수는 있어도 다스릴 수는 없다는 말이 있는데, 조조는 말 위에서 천하를 얻었을 뿐만 아니라 말에서 내려와서도 천하를 잘 다스렸다. 그래서 조조는 서양의 카이사르나 나폴레옹에 비유되기도 한다. 문무겸전(文武兼全)이란 점에서 특히 그렇다. 카이사르나 나폴레옹은 전쟁에서는 출중한 장수였으며, 정치가로서 나라를 잘 다스렸으며, 또 뛰어난 감성을 지닌 문인이기도 했다. 조조도 위대한 전략가이면서 정치가, 행정가이고 시인이었다.
조조의 고향인 안휘성 박주의 조조 기념관엔 밀랍으로 만든 세 개의 조조 상이 있다. 각각 정치가 조조, 군인 조조, 시인 조조 상이다. 정치가 조조는 천하 정세의 흐름을 재빨리 보고 그 변화에 맞춰 시스템을 선제적으로 바꾸고 백성을 잘 다스려 평화와 번영을 보장했다. 군인 조조는 정확한 정세 판단으로 싸울 때와 물러갈 때를 알고 앞선 전략과 출중한 지휘 능력으로 많은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 시인 조조는 타고난 직관에 풍부한 시심까지 갖추어 사물을 꿰뚫어 보고 사람들을 감동시켰다.
유비도 훌륭한 경영자였으나 조조와는 규모 면에서 비교가 안 되었다. 손권은 물려받은 가업을 잘 보전하고 키웠지만, 창업자에 비해선 한 수 아래로 본다. 위대한 경영자를 뽑을 땐 항상 사업 규모가 중요한 기준이 된다. 아무리 보석 같이 알차고 단단해도 그 규모가 너무 작으면 밀릴 수밖에 없다. 일단 사업 규모가 커야 영향력이나 사회 공헌도가 커진다. 조조?유비?손권 세 사람 가운데 당시 천하의 사람들에게 가장 영향을 많이 주고 그들의 삶을 바꾼 사람은 조조라 할 수 있다. 꿈도 원대했고, 또 그것을 실현할 시스템을 마련하고 작동시켰다.
위대한 경영자는 타고나는 것일까, 만들어지는 것일까. 거기에 대한 정설은 없다. 그러나 큰 그릇은 타고나야 한다. 거기에 가혹한 담금질과 부단한 연마가 있어야 훌륭한 경영자가 되지 않나 생각된다. 또 생각이 자유로워야 한다. 시대가 변하는 때에 위대한 경영자가 태어나는데 그들은 기존 가치관이나 윤리의식에 얽매이지 않는다. 파격적인 발상을 하고 그것을 밀고 나갈 배짱과 에너지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조조의 성공은 스스로의 역량에 의한 것이라 볼 수 있다. 경영자로서의 자질이 앞선 데다 노력도 더 많이 했다. 구상력, 결단력, 친화력, 행동력, 임기응변력이 월등했다. 냉철한 계산력에다 시대의 소리를 듣고 따라가는 탁월한 감성까지 갖췄다. 인간적인 매력도 대단했다. 어려서부터 기지와 총명함이 있었으며, 의협심이 강하고 멋대로 놀기를 좋아했다. 덕행과 학업을 닦는 일에 소홀하여 사람들이 그를 뛰어난 인물로 생각지 않았다는 기록이 있다. 위대한 경영자치고 어릴 때 공부만 열심히 한 우등생은 드물다. 그것은 유능한 참모의 몫이다. 그러나 무언가 범상치 않은 자질을 타고나는데 눈 밝은 사람만 그것을 본다.
조조의 모습은 기록에 따라 조금씩 다른데, 유비나 손권에 비해 몸집은 작았으나 에너지가 넘쳐 피곤을 모르고 일하는 타입이었다. 일에 몰두하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매달렸다. 사람들과 즐겁게 이야기하고 놀기도 잘 놀았다. 특히 뛰어난 점은 늘 긍정적으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어려운 문제라도 포기하지 않고 늘 되는 방향으로 생각하여 밝은 분위기를 만들어 부하들의 힘과 용기를 북돋웠다. 위대한 경영자는 항상 되는 방향으로 생각한다. 그러면서도 준비는 빈틈없이 한다. 꽉 막힌 것 같은 상황에서도 한 줄기 가능성을 찾아내고, 그것을 끈기 있게 뚫어 결국 불가능 중의 가능이란 기적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용인(用人)의 천재 조조 : 명분보다 능력 우선, 청탁불문(淸濁不問) 발탁
국가건 기업이건 사람이 가장 중요함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걸 제대로 알기도 어렵거니와 실천하기는 더 어렵다. 기업의 흥망도 대개 인사에 좌우된다. 외환위기 이후 대기업들의 명암이 엇갈렸는데, 가장 큰 원인은 인재를 잘 키우고 활용한 쪽과 그렇지 못한 쪽의 차이라 할 수 있다. 조조의 위나라가 삼국 중에 가장 강성한 원인도 조조의 성공적인 인사에서 찾을 수 있다. 조조뿐 아니라 촉나라의 유비나 오나라의 손권도 인사를 잘했지만 종합적으로 볼 때 조조가 한발 앞섰다. 의리나 인정에만 호소하지 않고 일할 보람과 안정된 자리, 또 물질적 보상을 마련해 주는 현대적 관리 기법을 일찍부터 썼던 것이다.
조조는 사람 보는 눈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사람을 잘 쓸 줄 알았다. 사람의 능력과 잠재력을 정확히 파악하여 적재적소에 활용할 줄 알았던 것이다. 또 사람에 대한 욕심도 많았다. 좋은 인재를 보면 적과 아군을 가리지 않고 맹목적으로 끌어들였다. 더러는 실패할 경우가 있어도 평생 인재 사랑은 변치 않았다. 조조 밑엔 항상 인재가 들끓었다. 정확한 평가를 통해 능력을 길러 주고 거기에 사람을 끄는 매력 같은 것도 있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신상필벌이 엄한 대신 인재라고 생각한 사람에겐 매우 관대한 면이 있었다. 좋은 계측을 내는 참모, 용맹스런 장수, 병참이나 행정에 능한 관료, 글을 잘 쓰는 문장가, 물불 안 가리는 충복들이 즐비했다. 이들을 마치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듯이 자유자재로 써서 나라와 천하를 경영한 것이다.
조조의 세력이 커짐에 따라 세상의 평판도 중요해졌는데, 그땐 이름 있는 명망가를 간판으로 데려다 놓는다. 또 조조는 숨은 인재를 발굴해낼 줄 알았다. 재주가 넘쳐 일찍 발하는 사람은 그들대로, 대기만성형은 그들대로 잘 골라 썼다. 사마의 같은 사람은 큰 그릇이기는 하나 눈에 잘 띠지 않는 타입이다. 하지만 조조는 빨리 알아보고 데려다 쓴다. 사마의를 끌어왔기 때문에 위나라는 촉나라 제갈공명의 거듭된 공세를 막을 수가 있었다.
조조 밑에 사람이 모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 적극적이고 진취적으로 사람을 찾아 나섰다. 조조가 55세가 되었을 때 인재를 모으려고 발령한 구현령(求賢令)을 보면 조조의 인재관이 그대로 드러난다. 그 내용을 보면 “예부터 왕조를 부흥시키거나 치세를 잘한 황제는 모두 훌륭한 인재의 도움을 받았다. 현인을 발견하려면 윗사람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으면 안 된다. 현인은 우연히 만나는 게 아니다. 청렴하고 결백한 선비가 아니면 안 된다느니 하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간 언제 현인을 찾을 것인가. 지금 큰 재주를 지녔지만 한가하게 낚시나 하고 있는 강태공이나 형수와 관계를 가졌으니 뇌물을 받았느니 하는 비난을 받으면서도 한고조의 일등 공신이 된 진평 같은 인재가 어딘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초야에 있는 사람을 찾아내라. 오직 능력만으로 천거하라. 나는 능력 있는 사람을 중요할 것이다”라고 되어 있다. 난세엔 도덕성보다 능력이 더 중요하다는 조조의 인재관이 잘 드러난다.
제2부 유비 편
깊고 큰 그릇의 CEO 유비 : 어진 인품으로 인재 보듬고 대기만성 창업
『삼국지』의 세 주인공 조조?손권?유비 중 유비만큼 불가사의한 인물도 없다. 물려받은 유산이 대단했던 것도 아니고 전란 때 큰 자산인 무용이 뛰어났던 것도 아니다. 또 집안이 좋거나 일족이 많았던 것도 아니다. 그야말로 맨주먹으로 일어나 천하의 3분의 1을 차지했다. 한낱 시골의 협객으로 있다가 20대에 처음 군사를 일으키지만 40대 후반까지 변변한 근거지를 마련하지 못하고 천하를 떠돌았다. 유비는 오랫동안 근거를 못 잡고 뿌리 없이 부평초처럼 떠돌았지만, 다른 군웅들이 다 멸망한 뒤에도 조조?손권과 더불어 셋만 남아 삼국정립 시대를 열었다. 여러 군웅 사이를 떠돌며 필요에 따라 배신도 했지만, 늘 점잖고 훌륭한 사람으로 대접받았다. 본인도 늘 인의(仁義)를 입버릇처럼 뇌이고 지금도 세 사람 가운데 가장 인의군자(仁義君子)로 평가받는다.
유비를 한번 보면 대개 그의 인품에 반한다. 유비가 그토록 궁핍하게 지낼 때도 천하의 인재들이 유비 곁을 떠나지 않았다. 당시는 좋은 주인과 더 나은 대우를 찾아가는 인재들의 이합집산이 심할 때인데도 유비에게 한번 온 사람은 좀처럼 떠나지 않았다. 개성이 독특한 이들을 잘 달래 조화를 이루고 상승 에너지를 내게 하는 유비의 능력은 가히 천재적이다. 타고난 리더십이요, 인간적 매력이라고 할 수 있다.
조조가 법가적 엄격함으로 철저한 능력주의를 채택한 데 비해 유비 집단은 인정과 의리로 뭉쳤다고 할 수 있다. 유비는 한번 인연을 맺은 사람과 끝까지 갔다. 세력이 보잘것없을 때나 촉나라의 황제가 되었을 때나 한결같았다. 대개 위대한 창업자는 고생은 같이 해도 같이 즐기지는 못한다는 말이 있다. 권력과 부는 나누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보통 창업의 기틀이 잡히고 나면 대대적인 숙청이 벌어진다. 그러나 유비는 창업 공신들을 죽이거나 핍박한 예는 거의 없다.
유비는 전란의 와중에도 원칙과 도의 겸손을 지키려고 애를 썼다. 그래서 유비를 덕 있는 사람이라 일컫는다. 그것은 유일한 비교우위라 할 수 있다. 다른 사람과 같이 권모술수로 승부를 겨루었으면 경쟁에서 이길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다른 사람이 안 세우는 덕을 무기로 내세웠기에 천하의 주목을 받고 사람을 모을 수 있었을 것이다.
유비가 인의와 덕을 내세웠지만 행동도 늘 그렇게만 한 것은 아니다. 더러도 패도(覇道)적 요소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은 불가피한 예외에 불과하고 대부분 정도로 가려고 했다. 그 어려운 전란 중에도 이상과 꿈을 갖고 바른 길을 가려하고, 또 실천한 유비의 존재가 돋보인다. 당시의 실력자 조조에게 굴복하지 않고 끝까지 대항한 유일한 사람이 바로 유비다. 한실(漢室)의 부흥을 외치는 유비로선 한나라를 찬탈하려는 조조에게 굴복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위대한 경영자는 당장 손해를 보더라도 이상과 원칙을 지키는 뱃심과 결의가 필요하다. 적당히 타협하면 보통의 경영자는 될 수 있어도 위대한 경영자는 될 수 없다. 유비가 실천한 원칙이나 바른 길은 당장은 바보스럽고 답답해 보이지만 길게 보면 오히려 좋고 빠른 길이 되었다. 제갈공명이나 방통 같은 참모가 좋은 계책을 건의해도 유비가 차마 인의상 그럴 수 없다고 거절하여 애를 먹고 답답해하는 장면이 많이 나오는데, 길게 보면 유비의 판단이 옳은 경우가 많았다. 유비는 마음대로 판단하고 행동해도 도리에 맞고 지혜롭다는 최고의 경지에 자신도 모르게 도달해 있었던 것이다. 유비야말로 타고난 CEO라 할 수 있다.
유비와 공명의 2인3각 경영 : 과감히 힘 실어준 이상적 공동 경영
성도 무후사 입구엔 ‘명량천고(明良千古)’란 편액이 크게 걸려 있다. 유비와 공명이 같이 이루어낸 업적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말이다. 영명한 군주와 좋은 신하가 힘을 합쳐 역사에 남을 큰일을 하였다는 뜻이다. 여기에 대해선 시대를 넘어 모두 공감하는 바다. 사실 촉한은 유비와 공명이 2인3각으로 만들어간 합작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두 사람 다 훌륭한 점은 1인자와 2인자가 끝까지 사이가 좋았다는 것이다. 처음에 잘 시작했다가도 마지막까지 좋게 가기는 쉽지 않은 법이다.
조직이 어느 정도 틀이 잡히고 발전하면 권력 집중화 현상이 일어난다. 그러면 1인자는 2인자가 불편해지고 1인자의 측근에서 2인자 격하 작업이 시작된다. 힘 있는 2인자가 있으면 권력을 나누어야 하는데, 그걸 1인자가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2인자가 물을 먹기도 하고 심할 땐 피비린내 나는 숙청극이 벌어지기도 한다. 창업자 오너 중엔 고생은 같이해도 영화는 함께 누리지 못하는 타입이 많다.
공명은 27세에 유비 진영에 참가해 54세로 오장원에서 병사하기까지 27년을 유비와 그 아들을 위해 충성을 다했다. 유비가 63세로 죽기까지 최측근에서 보좌했는데, 두 사람의 의견이 늘 일치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유비는 한결같이 공명을 존중하고 중용했다. 창업자 오너는 싫증을 잘 내 2인자를 오래 두려 하지 않는다. 유비가 공명을 16년이나 2인자로 두었다는 것은 공명의 출중한 능력 때문이기도 하지만, 유비의 통 큼과 후덕함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죽을 때도 유비는 공명에게 아들을 부탁했다. 유비의 라이벌인 조조나 손권이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점이다. 유비는 유비대로 공명을 정성으로 대하며 의존했고, 공명은 공명대로 유비를 지극정성으로 모시며 충성을 다했다. 두 사람의 신뢰와 팀워크는 이상적인 군신 관계로 역사에 길이 남아 있다.
유비는 공명을 얻음으로써 국가 통치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명사와 지식인층의 협조를 얻을 수 있는 통로를 마련했다. 당시는 전란과 혼란의 시기였지만 명사와 지식인들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었다. 이들이 천하의 여론을 형성하고 그 여론에 따라 인재들이 움직였다. 공명이 유비를 위해 가장 먼저 착수한 것은 좋은 인재들을 모으는 일이었다. 유비의 신하들은 크게 세 부류로 나눌 수 있는데, 첫 번째가 유비를 처음부터 따라다닌 창업 그룹, 두 번째가 형주에서 모인 전문가 명사 그룹, 세 번째가 촉나라에 들어간 후 참가한 익주 그룹이다.
유비는 사람을 보는 것이 공명과 약간 달랐지만 대부분 공명에게 그냥 맡겨 두었다. 유비의 위대한 점이다. 공명은 학자 출신이고 빈틈없는 이론가여서 그런 타입을 좋아했다. 그러나 나라를 경영하려면 다양한 인재가 필요하다. 그 다양한 인재들을 모으는 덴 유비가 큰 역할을 했다. 유비의 후덕하고 큰 인품에 반해 개성 있는 사람들이 모여든 것이다. 유비와 공명이 서로의 취약점을 잘 보완했다 할 수 있다.
제3부 손권 편
수성(守成)의 명CEO 손권 : 실리 외교와 인재 관리로 발전적 수성에 성공
조조?유비?손권 중 오나라 손권만 창업주 오너가 아니다. 2세지만 3대째다. 2세지만 물려받은 가업을 잘 발전시켜 위나라?촉나라와 더불어 천하를 삼분한 것이다. 가히 수성의 명인이라 할 수 있다. 기업은 3대를 넘기가 어렵고 나라도 3대째가 가장 고비라는 말이 있다. 3대쯤 되면 초창기의 힘찬 에너지가 소진되어 기득권층이 발호하고 조직 피로가 발생한다. 한번 대대적인 개혁을 해 조직이나 사람을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 참신한 기풍을 일으키고 에너지를 재충전해야 무사안일과 경직화에서 빠져나와 재도약을 기할 수 있는 것이다.
창업도 힘들지만 수성도 그에 못지않게 어렵다. 손권은 영특한 3대로서 수성에 성공한 명CEO라 할 수 있다. 통 크고 신중한 성격으로 물려받은 인적 자원을 잘 관리했을 뿐 아니라 좋은 사람을 많이 초빙하고 키웠다. 또 강동 명문들을 잘 포용하여 그들의 적극적인 협조를 받았다. 실사구시(實事求是)적 성격에다 생각이 유연했다. 원칙 때문에 손해 보는 일을 하지 않았다. 실리를 위해서라면 체면에 별로 구애받지 않고 신축자재하게 행동한 것이다. 특히 외교 감각이 탁월하여 당시 물고 물리는 삼국 관계에서 항상 최선의 선택을 했다. 어찌 보면 손권은 오나라의 3대째 CEO로서는 가장 이상형이라고도 할 수 있다.
손권은 젊은 나이로 엉겁결에 CEO 자리에 앉았지만 CEO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선 타고난 자질을 보였다. 손권은 열네다섯 살 때부터 형 손책을 따라다니면 군대 생활을 했다. 그때 손권은 용돈을 많이 쓰겠다고 경리 참모 여범을 졸랐다. 여범은 그럴 때마다 손책에게 보고하고 한 푼도 더 주지 않아 손권은 원망을 많이 했다. 손권이 더 높은 직책에 올라갔을 때 공금을 사사로이 많이 썼다. 손책이 가끔 순시를 와서 장부를 검사해보곤 했는데, 그때마다 경리 참모 주곡이 계산을 맞춰놓아 야단을 피할 수 있었다. 손권은 그 당시엔 주곡에게 감사했다. 그러나 손권이 오나라의 CEO가 됐을 때 여범을 강직하고 충성스럽다고 중용하고 주곡은 장부를 속일 수 있다고 하여 쓰지 않았다. 그러기가 몹시 어려운 일이지만 손권은 공과 사를 확실히 구분해 일처리한 것이다.
손권이 CEO가 되자 가장 먼저 착수한 것은 손책의 급서에 따른 국내의 동요를 진정시키면서 좋은 인재를 끌어들이는 일이었다. 신중한 손권의 인품이 그 일에 알맞았다. 당시 오나라에서 손권 집안의 권위는 확고하지 못했다. 손권은 명문 출신에다 무력을 쥐고 있는 주유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주유는 대대로 높은 벼슬을 한 집안 출신이고 인물도 뛰어나서 강동 사람들의 신망이 높았다. 뛰어난 무장으로서 거느린 군사도 많았다. 손책이 죽고 나서 주유가 독립하지 않고 손권을 받든 것은 큰 행운이었다. 주유를 수하에 안을 정도로 손권의 그릇이 컸다고도 볼 수 있다. 손권은 주유를 매우 정중하게 대하고 주유는 좋은 인물을 많이 추천한다. 대표적인 인물이 노숙이다. 노숙은 탁월한 외교관이자 행정가로 손권의 기반 확장에 크게 기여한다. 현실적인 전략가로서 손권에게 국가 전략과 외교 방향을 적절하게 조언했다. 손권이 노숙 다음으로 중요한 인물이 제갈근이다. 제갈근은 공명의 형으로 성실한 성품이 심지가 굳었다. 유비의 신뢰도 두터워 오나라와 촉나라 사이에 어려운 일이 생길 때마다 제갈근이 나서서 해결하곤 했다.
손권은 노숙과 제갈근뿐만 아니라 여몽, 육손 등 장차 오나라를 이끌고 나갈 기둥들을 발탁해 키웠다. 좋은 사람을 정성을 다해 모셔오는 것도 중요하지만 잠재력 있는 사람을 골라 잘 키우는 것도 CEO의 중요한 몫이다. 그런 점에서 손권은 위대한 경영자라 할 수 있다.
손권의 능란한 외교술 : 유비 복수전 대비 수도 이전, 조조에 아첨하며 신하 자처
손권은 관우를 정벌하고 그토록 바라던 형주를 차지하고 나서 적극적인 민심 수습에 나섰다. 오랜 관리들은 그대로 쓰면서 전란에 시달린 백성을 달래기 위해 그해 세금을 모두 감면했다. 또 번성 싸움에서 관우에게 사로잡혀 강릉옥에 갇혀 있던 위나라 대장 우금과 그 부하들을 석방해 위나라로 돌려보냈다. 그리고 오나라 군사에 대한 대대적인 논공행상을 실시했다.
손권이 승리에 취해 있을 때 원로 장소가 찾아와 촉나라 유비가 복수하러 올 것이니 대비책을 서둘러야 한다고 말했다. 정신이 번쩍 든 손권은 대책회의 끝에 이번 관우 정벌을 위나라의 책임으로 돌리기로 했다. 그러려면 손권이 위나라에 납작 엎드려야 했다. 손권은 관우의 머리를 낙양에 있는 조조에게 보내면서 깍듯이 신하의 예를 차렸다. 그리고 머리 없는 관우의 시신을 당양에 정중히 묻어 주었다.
손권은 유비의 복수전에 대비해 대내적인 준비는 물론 대외적으로 치밀한 외교전을 편다. 양쪽에서 싸우는 부담을 덜기 위해 우선 위나라에 무릎을 꿇고 들어간다. 손권은 조조에게 사신을 보내 신하를 자처하면서 지금 천하가 모두 바라고 있으니 새 왕조를 세워 천자가 되라고 간곡히 청한다. 그러면 손권 자신은 영토를 바치고 항복하겠다는 것이다. 손권은 오나라에 도움이 된다면 자신의 자존심쯤은 문제 삼지 않았다. 철저한 실리주의다. 어떤 땐 조조 편이 되었다가 어떤 땐 유비 편이 되었지만 어느 쪽도 완전히 믿지는 않았다. 국제 정세를 세심히 살펴 어부지리가 되는 방향으로 국책을 펴갔다. 이런 줄타기 외교를 하려면 국내 기반이 튼튼하고 리더십이 확고해야 한다. 손권은 뛰어난 선견력과 평소의 감성 리더십을 통해 신하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면서 확고한 신뢰를 얻었다.
조조는 관우의 장례식 후 노환으로 시름시름 앓다가 결국 66세로 생을 마감했다. 조조 사후 큰아들 조비가 그 뒤를 이었는데, 바로 위 문제다. 이때도 손권은 제일 먼저 축하 사절을 보내 충성을 맹세한다. 촉나라 유비가 아직 준비가 안 되어 가만히 있지만 언젠가는 쳐들어올 것이므로 그때까지는 위나라와 제휴 관계를 유지해야 했던 것이다. 그래서 유능한 사신을 계속 보내 조비의 비위를 맞추면서 국제 정세를 살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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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권은 조비의 비위를 맞추면서도 만약의 사태엔 철저히 대비했다. 이때가 손권으로선 매우 위기였다. 촉나라 유비가 쳐들어오는 것은 당장의 문제고, 위나라 조비와는 다소 시간이 있으니 어떻게든 시간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손권은 유비의 복수전에 대한 대비책으로 도읍을 장강 중류 쪽으로 옮겼다. 유비가 쳐들어오면 장강을 타고 내려올 것이므로 서쪽으로 방위선을 이동한 것이다. 손권은 수도도 기동적으로 옮겼는데 이름이나 명분에 집착하지 않는 손권의 실용주의를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