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에 등장하는 14인의 여성 CEO들은 가정에서 직장에서 여러 이유로 좌절하고 있는 이땅의 여성들에게 자신이 겪었던 어려움과 이를 극복한 과정을 담담하게 들려주며 힘내라고, 당신도 할 수 있다고 이제는 당신 차례라고격려를 아끼지 않는다. 이것은 자신을 자랑하기 위한 무용담이 아닌, 다른 여성들에게 힘과 용기를 북돋워주는 응원가를 불러주는것이다.
이들은 결코 슈퍼우먼이 아니라고 고백하며 바쁘게 일하면서 겪게 되는 자녀 교육 문제,시댁과의 관계 등을 풀어가는 자신만의 노하우를 공개한다. 여성 CEO들은 쉽게 "창업"을 권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창업" 그 자체가 아니라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철저한 준비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은 "창업"을 꿈꾸는 예비 여성기업가뿐 아니라 인생 제2막을꿈꾸는 이 땅의 모든 여성들에게 꼭 필요한 지침서이다.
■ 저자 정민정
1974년생. 고려대학교 한국사학과를졸업했고, 2005년 현재 서울경제신문사 정보산업부에서 일하고 있다.
■ 차례
서문
1장 새로운 세계로
1. 로고나 코리아 이진민 사장 -고객의 마음을 얻어라
2. 메디포스트 양윤선 사장 - 올바른 방법으로 올바른 길을 가자
3. 이지디지털 이영남 사장 - 미니스커트가내 전투복이다
4. 헤리트 한미숙 사장 - 눈과 귀를 열어 과감히 결단하라
5. 아이에프 네트워크 김해련 사장 - 오늘이 10년 후결실을 맺는다
6. 우암닷컴 송혜자 사장 - 꿈꾸는 자만이 미래를 얻는다
2장 맨 몸의 승부
1. 이오에스 김미경 사장 -새우, 고래를 삼키다
2. 컴투스 박지영 사장 - 옥탑방에서 대박의 꿈을 키우다
3. 베베하우스 전미숙 사장 - 내가 잘하면 직원과고객이 행복하다
4. 클리오 한현옥 사장 - 브랜드를 목숨처럼 지켜라
3장 시련을기회로
1. 하영그린 하현영 사장 - 10년차 전업주부, 꽃재벌이 되다
2. 모든넷 신순희 사장 - 불편한 다리로세상에 우뚝 서다
3. 한국인식기술 송은숙 사장 - 넘어질지언정 눕지는 않겠다
4. 도도가구 길준경 사장 - 못 듣는 내 아이를 위해새 길을 개척하다
추천사
그녀들은 어떻게 CEO가 되었나
1. 새로운 세계로
메디포스트 양윤선 사장 - 올바른 방법으로 올바른 길을 가자
공부와 비즈니스의 공통 원칙
양 사장은 어린 시절 군인이자 육군사관학교 교수로 근무했던 아버지를 따라 군대 관사에서 생활했다. 다양한 시설과 넓은 잔디밭이 있는 육군사관학교는 그와 동생들에게 신나는 놀이터이기도 했다. 그는 어릴 때 친구들과 몰려다니며 골목대장 노릇을 했다. 밖에서 노느라 온 몸에 상처를 달고 사는 첫째 딸 때문에 부모님은 걱정도 많았지만 굳이 딸이라고 해서 여성다움을 요구하지는 않았고 오히려 장남처럼 든든하게 여겼다고 한다. 가정 환경 덕분인지 아니면 타고난 기질 때문인지 그는 여자이기 때문에 특별한 한계를 느낀 적은 없고 오히려 주도적으로 남들을 이끄는 역할에 익숙하단다.
그는 서울대 의대 출신이다. “아버지 당신이 공부를 잘해서인지 1등을 제외한 2등부터는 아버지한테는 매한가지였어요. 집안 분위기상 공부는 당연히 잘해야 했지요. … 공부도 그렇고 업무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과가 잘 나오기 위해서는 머리 좋은 것보다 더 중요하고 핵심적인 요소들이 많습니다. 성취하고자 하는 열정, 즐겁게 집중할 수 있는 정서적 안정감, 올바른 방법을 선택하고 지켜 나가게 하는 곧은 가치관 등이 바로 그것입니다. 제가 공부하면서 깨달은 원칙들은 비즈니스 세계에서도 어느 정도 통하더군요.”
오로지 비즈니스에 ‘올인’
“발만 살짝 담그려고 했어요. 그러나 내가 새로운 사업 모델을 제안하니 처음 의도와 관계없이 직접 책임지고 나서야 하는 상황이 되더군요.”
당시 함께 한 동료 대부분이 의대 교수와 회사 운영을 겸하고 있었고 그 역시 재직하던 대학병원에서 겸직을 권유받았다. 그러나 그는 교수직과 의사직을 모두 포기하고 비즈니스에 ‘올인’하기로 했다. 집중해도 될까 말까 한 일인데 이도 저도 아니게 대충 해서는 안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2000년 6월, 13억 원의 자금을 모아 ‘메디포스트’를 차리면서 경영자로서 그의 고난이 시작됐다. 국내에서는 제대혈이라는 개념 자체가 생소해서 일반인은 물론 제대혈 공급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할 산부인과 의사들조차 “제대혈이 뭐냐?”고 묻기 일쑤였다. 자금 유치도 큰 난관이었다. 13억 원이라는 적지 않은 자본금으로 시작했지만 워낙 초기 설비 투자가 많아 얼마 지나지 않아 돈이 바닥났다.
메디포스트는 경영진들과 직원들이 한마음 한 뜻으로 뭉쳐 어려운 가운데 희망의 싹을 틔웠고 그렇게 버티는 동안 최악의 상황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산업자원부가 줄기세포 치료제를 부품 소재 개발 사업으로 선정하면서 국가에서 상당한 규모의 연구비를 받아 자금 부족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동시에 기술력을 인정한 여러 투자 회사에서 투자를 받게 된 것이다. 때마침 매출이 늘면서 투자금을 쓸 필요도 없을 만큼 회사의 재정 상태는 정상 궤도에 올랐다.
긍정적인 에너지를 갖춘 인재를 키워라
“기업이 초창기에 겪는 시련을 이겨내는 원동력은 사람인 것 같습니다. 모든 일은 결국 사람이 하는 것이고, 어느 한 명이 아닌 좋은 기운을 가진 사람들이 뭉치는 힘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실전을 통해 깨닫게 되었지요. 창업 초기부터 함께 한 경영진과 직원들의 단결력이 있었기에 시련을 견뎌 냈고, 그 문화가 계속 메디포스트를 이끌어 간다고 생각합니다.”
양 사장에게는 나름대로 채용 기준이 있다. 첫째, 긍정적인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이어야 한다. “긍정적인 에너지가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과 속해 있는 조직, 사회에도 그러한 에너지를 전파하거든요. 일에 미친 듯 빠져들어 해내고야 마는 열정적인 사람, 타인을 비난하기보다는 칭찬하고 용서할 줄 아는 관대한 사람, 실패해도 금방 회복해 새로운 희망을 만들 줄 아는 낙천적인 사람, 미래를 꿈꾸며 현재의 어려움을 극복할 줄 아는 사람과 일하는 것은 너무나 즐겁고 보람찬 일이거든요.”
둘째, 회사가 원하는 능력을 갖춘 사람인가 하는 점이다. 그는 능력에 대해서도 두 가지로 설명한다. 전문적인 능력과 좀 더 통합적인 업무 수행능력, 즉 리더십이다. 직원 가운데는 자신이 맡은 일에는 탁월하지만 좀 더 높은 자리에서 조직을 이끄는 역할에는 미숙한 경우도 많다. 리더십은 조직의 발전적인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동시에 부하 직원들을 원만하게 통솔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그는 강조한다.
“이제 여성들도 폭넓은 시각으로 조직을 이끌고 도전하는 자세를 갖춘다면 목표한 것을 성취할 수 있고, 각 분야에서 지도자의 위치에 오를 수 있을 것으로 믿습니다. 다만 지금까지 여건상 여성에게 불리한 점이 많았으니 여성 특유의 전략이 필요합니다. 자신의 약점을 오히려 강점으로 승화시키고 조그만 강점이라도 이를 극대화할 수 있는 전략을 세워야 합니다. 여성만의 강점을 잘 살리면서 남자들보다 더 노력하고 집중하면 오히려 여성이 만들어 낸 성과가 더 빛나 보이는 것도 사실이거든요.”
2. 맨 몸의 승부
컴투스 박지영 사장 - 옥탑방에서 대박의 꿈을 키우다
창업, 까짓 한 번 해 보자!
고려대학교 컴퓨터공학과 4학년이던 1996년 여름, 그에게도 진로를 결정할 시기가 왔다. 그도 처음에는 대기업에 들어가 직장 생활을 하는 것을 당연한 수순으로 여겼다. 그러나 전산학을 전공하고 모 대기업에서 근무하고 있던 언니로부터 직장 생활이라는 것이 자신의 생각과는 거리가 멀다는 얘기를 들었다.
“언니는 대기업 조직이라는 게 각자가 꿈을 펼칠 수 있는 공간이라기보다는 자신의 의지나 바람과는 상관없이 조직이 원하는 일을 해야 한다고 조언하더군요. 나는 컴퓨터 공학 전공이니 필시 프로그램을 짜는 일을 맡길 텐데 당시 생각에는 그다지 미래 지향적이지도 창조적이지도 않은 거예요. 그래서 까짓것 창업해 보지 뭐! 아직 젊은데 뭐가 걱정이야. 해 보고 안 되면 그때 가서 취업해도 늦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지요.”
남편인 이영일 이사와 기숙사에서 알게 된 현유진(현재 퍼블리싱팀 팀장) 영문과 선배, 박 사장 이 세 명이 의기투합해 창업에 뛰어들었다. 평범한 대학생 세 명은 각자 500만 원씩을 마련해 학교 근처 보문동에 사글세로 옥탑방을 얻어 사무실을 차렸다. 컴퓨터의 첫 글자와 ‘우리에게 오면 모든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는 의미를 담아 회사 이름을 ‘컴투스(com2us)’라고 지었다.
실패, 실패, 실패
MP3 플레이어 제작, 통합 검색 엔진 개발, 컴퓨터 하드웨어 제조 사업 등을 시작했으나 실패를 거듭하던 그에게 기회가 왔다. 이영일 씨가 병역특례로 근무하던 인포뱅크 박태형 사장이 무선 인터넷의 가능성을 읽고 2억 원을 투자한 것이다. 그는 제대로 될 만한 분야 하나를 선택한 후 모든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돈이 될 만한 아이템을 생각해야 했다.
“PC 통신 업체에 정보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배운 게 있다면 네티즌들이 여간해서는 주머니를 열지 않는다는 거예요. 인터넷이 활성화되고 인터넷 무료 서비스가 나오면서부터 돈을 낸다는 생각 자체가 불가능했으니까요. 그나마 돈을 지불하는 것은 게임이나 주식 같은 거라는 걸 알게 됐지요.”
휴대폰에 게임을 접목한다는 아이디어는 어떻게 나왔을까. “지하철이나 버스 안에서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는 젊은이들을 보면서 이들이 무료하지 않게 휴대폰으로 게임을 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면 인기를 끌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휴대폰 액정도 흑백이고 기능도 단순했지만 휴대폰 기술이 날로 발전하고 있으니 그 성장 속도에 맞춰 모바일 게임도 진화할 수 있다고 판단한 거지요.”
처음에는 오목이나 다마고찌, 퀴즈, 심리 테스트 등 아주 단순한 형태의 게임을 만들어 LG텔레콤에 납품했다. 휴대전화의 빠른 보급과 기술 발전은 모바일 게임 시장의 확대를 가져왔고 이듬해부터 컴투스도 돈을 벌기 시작했다.
‘붕어빵‘ 팔아 15억 벌다
그는 업계에서 붕어빵 장수로 통한다. 이 회사 게임 ‘붕어빵 타이쿤 2’시리즈가 다운로드 100만 건이라는 모바일 게임 사상 초유의 히트작으로 떠오르며 ‘붕어빵=컴투스’라는 공식을 만들어 냈기 때문이다. 2001년과 2002년에 걸쳐 5000만 원의 개발비를 투입한 이 게임이 지금까지 벌어들인 돈은 수십억 원에 달한다. 이 게임은 단순한 보드류 일색이라는 모바일 게임의 고정관념을 깨고 창작 시대를 연 게임으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휴대폰 키(숫자 1~9, *, 상하좌우 화살키)를 모두 활용한 진행 방식은 휴대폰의 장점을 십분 살렸다는 평가다.
“어느 날 일본 파트너 사가 한국 게임은 모두 일본 것을 베낀 거라고 하는 거예요. 너무 자존심이 상해 있자, 개발 팀장이 그날 당장 직원들을 불러 놓고 아이디어를 모으자고 독려했지요. 그렇게 해서 붕어빵이 나오게 된 거예요.”
직원들의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대박을 터뜨리게 된 그는 수시로 사내 아이디어 공모전을 여는 한편 이색적인 직업인을 초청, 강연을 개최하는 등 창의적인 회사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열성이다. 사내 공모를 통해 개발한 3차원 게임 ‘크레이지 버스’가 문화관광부가 선정하는 ‘이달의 우수 게임’으로 뽑히는 등 그의 노력은 결실을 거두고 있다.
3. 시련을 기회로
도도가구 길준경 사장 - 못 듣는 내 아이를 위해 새 길을 개척하다
아동용 가구가 왜 필요해요?
서울대 산업디자인학과를 졸업하고 프랑스에서 실내건축을 전공하면서 선진국의 가구 시장을 체험한 그는 척박한 한국의 가구 현실에 대해 느끼는 바가 많았다고 한다. 그러나 처음에는 아동용 가구를 직접 만들겠다는 생각까지는 없었다. 그는 자신의 전공을 살려 인테리어 디자인 업무를 하면서 바쁜 나날을 보냈다. 그렇게 자신의 생활에 열중하던 그가 청각 장애가 있는 아들 때문에 가구와 인연을 맺은 것이다. 1991년 당시만 해도 아동용 가구는 생소한 분야였다. 그저 책상이나 의자, 아이들 신체 크기에 맞는 침대 정도가 전부였다.
“당시 한국에는 아동용 가구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어요. 그저 아버지나 형이 사용하던 책상을 물려받아 쓸 정도였지요. 그래서 사업을 시작한 초기에는 아동용 가구가 뭔지 묻는 사람이 많았답니다.”
그러나 그는 우리나라도 생활수준이 높아지고 있는 만큼 선진국처럼 아이들을 위한 가구가 필요한 시기가 조만간 올 것이라고 확신했다. 게다가 자식을 위한 부모의 마음은 마찬가지니 자신의 마음과 같은 부모가 있는 한, 아동용 가구 시장은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믿었다. 7년여의 직장 생활로 모은 1억 원으로 그는 아예 직접 공장을 차리기로 했다.
해외에서 인정받는 것이 먼저다
정교한 디자인과 까다로운 제작 공정 때문에 도도가구는 가격이 높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국내 가구 시장은 고가 제품은 이탈리아의 명품가구에 밀리고, 저가 제품은 중국이나 대만에 밀리는 형국이라 어정쩡한 한국 제품이 인정받기는 어려웠다. 돌파구가 필요했다. 그는 도도가구의 디자인과 품질의 우수성을 해외에서 먼저 인정받아야겠다고 결심했다.
“가구 산업의 역사가 길고 시장을 선도하고 있는 유럽에서는 가구 박람회에 참여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그 회사의 가치를 평가하는 중요한 척도입니다.”
목표가 정해졌다. 1998년 길 사장은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자신이 직접 디자인한 샘플을 들고 쾰른 가구박람회 조직위원회를 찾아간 것이다. 처음에는 말단 담당자조차 그를 만나주지 않았다. 그곳에서 그는 단지 ‘한국에서 온 이름도 생소한 가구업체 여사장’일 뿐이었다. 그렇게 문전박대를 당하면서 제품 소개에 매달리기를 1년.
1999년 10월 초순. 도도가구 사무실에 한 통의 팩스가 날아왔다. 팩스를 받아든 그는 환호성을 질렀고 전 직원이 부둥켜 안고 펑펑 울었다. “2000년 독일 쾰른 가구박람회 참가를 허락한다”는 게 팩스의 내용이었다. 디자인이 독창적이고 세련됐다는 조직위원회의 칭찬도 함께 담겨 있었다.
일단 물꼬가 트이니 기회가 이어졌다. 한국 업체로는 유일하게 2001년 이탈리아 밀라노 가구박람회에 초대받았고, 2002년에는 박람회 첫날. 세계적인 유아용품 전문 회사인 치코(Chico)사에 전시품이 모두 팔렸다. 피에로 카텔리(Piero Catelli) 치코 회장이 직접 그에게 어린이용 소파 샘플도 제작해 줄 것을 요청하면서 도도는 가구 종주국인 이탈리아에 역수출하는 유일무이한 가구 업체로 우뚝 섰다.
법적 기준 그 이상을 만족시켜라
도도가구의 성공 비결은 무엇일까. 그는 무엇보다 품질과 디자인에 대한 고집이라고 잘라 말한다. “법적 규제가 없어도 우리는 최고의 제품을 만들기 위해 처음부터 가격이 비싼 무독성 도료를 사용해 왔습니다. 원자재도 최고의 것만 씁니다. 또 주문 제작 방식으로 만들기 때문에 재고가 쌓이지 않고, 세일 행사를 할 필요도 없습니다.”
도도가구는 설립 이후 지금까지 단 한번도 할인 판매를 하지 않았다. 내 아이처럼 소중한 아이들이 사용하는 가구라는 생각을 놓친 적이 없는 그는 가격을 낮춰 매출을 늘리는 데 급급하기보다는 ‘정말 믿을 만한 가구’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청각 장애 아들을 위한 가구를 만들겠다는 ‘소박한’ 생각으로 창업까지 한 길준경 사장. 그는 모성애라는 출발점에 머물지 않고 시장에 대한 정확한 분석과 당찬 도전 정신으로 지금까지 왔다. 연간 매출 40여 억 원, 세계적인 권위를 자랑하는 쾰른 가구박람회와 밀라노 가구박람회 출품 등 도도가구의 화려한 이력 뒤에는 품질에 대한 그녀의 고집과 두려움 없는 개척 정신이 자리하고 있다.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