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이건희 시대"다. 그러나 삼성과 이건희는 자신들의비판세력에 대해 몸을 낮추는 자세를 보이긴 했지만, 이를 "관리"하려 들 뿐 그것과 "소통"할 뜻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이 또한 고단수 "레드오션" 전략이다.
삼성과 이건희가 앞으로 계속 "레드 오션" 전략으로 버틸 수 있다면 그쪽 입장에선 좋은일이겠지만, 그건 힘들 수밖에 없다. 그것은 삼성의 과도한(?) 성공으로 삼성이 감당해야 할 몫이 커졌기 때문이다. 이 책은 모두가 "윈-윈"하는 "블루 오션(Blue Ocean: 경쟁 없는 시장 창출)" 전략을 염두에 두면서 이건희와 이건희 시대를 살피고 있다.
■ 저자 강준만
1980년 성균관대학교경영학과를 졸업하고 1984년 미국 위스콘신대학교 신문방송학과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1988년 미국 위스콘신대학교 신문방송학과 박사학를 받고2005년 현재 전북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지은 책으로『인물과 사상』시리즈,『문학권력』『서울대의 나라』(1999),『노무현과국민사기극』(2001),『이문열과 김용옥』(2001),『노무현과 자존심』(2002),『한국 현대사 산책』시리즈,『한국인을 위한 교양사전』『나의정치학 사전』 등이 있다.
■ 차례
머리말 - 우리는 정말 이건희를알고 있는가?
제1장 이건희는 누구인가?
"나는 유치원때부터 혼자였다"
재벌가는 왕가와 비슷하다
"오그라질 뒷다리 잡기"
"이건희 타운" 파동의 의미
이건희의 "코쿤"기질
이건희의 "다중적 품성"
제2장 이건희의 경영관
이건희의 "본질주의경영"
이건희의 "질(質) 경영"
이건희의 "암묵지 경영"
이건희의 "디자인 경영"
이건희의 "포스트모던"경영자
이건희의 인간성 개조론
제3장 이건희 리더십의 정체
이건희의 제왕적카리스마
이건희는 왜 대학생들의 존경을 받는가?
언론은 이건희의 "순한 양"인가?
삼성은 이건희 없으면 쓰러지나?
삼성의"코쿤화"
한국 정치는 4류다
제4장 이건희의 나라
왜"삼성공화국"인가?
왜 "이건희 시대"인가?
"이건희 시대"와 "정치중독"
이건희의 "사회 경영론"
"삼성이 만들면 표준이된다"
이건희와 경로의존성
제5장 이건희와 한국 사회의 충돌
이건희의"초현실적 권위"
왜 노조는 안 된다는 건가?
삼성자동차 사건
"오너 경영"의 딜레마
삼성의 소유지배구조논쟁
"이재용 시대"를 위하여
맺는말 - "불신의 소용돌이"에서 탈출하자
이건희 시대
제1장 이건희는 누구인가
‘나는 유치원 때부터 혼자였다’
이건희는 1942년 1월 9일 대구에서 출생했다. 아버지 이병철과 어머니 박두율의 8남매 중 끝에서 두 번째인 3남(아들 중 막내)으로 태어났다. 이건희 위로는 맹희, 창희 등 두 형과 인희, 숙희, 순희, 덕희 등 네 명이나 되는 누나와 여동생 명희가 있었다. 이건희는 출생 직후 사업에 바쁜 부모 곁을 떠나 경남 의령 생가로 보내져 할머니 밑에서 3년을 자랐는데, 철들 때까지 할머니가 어머니인 줄 알았다고 한다. 그는 1947년 서울로 올라와 혜화초등학교에 입학했지만, 6?25전쟁으로 마산, 대구, 부산으로 옮겨 다니다가 5학년 때 아버지의 강력한 뜻에 따라 일본으로 건너가 그곳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했다.
당시 맹희와 창희도 일본 유학 중이었지만, 동경대 농과대에 다니던 맹희는 학교가 멀어 하숙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건희는 창희 및 일본인 가정부와 같이 지냈다. 그러나 창희(1933~91)는 건희와 아홉 살 차이였기 때문에 건희는 같이 놀아 줄 사람도 없이 사실상 혼자 지내다시피 했다. 이건희는 그 어린 나이에 일본에서 중학교 1학년 때까지 3년을 지냈다. 한국에서 초등학교를 옮겨다닌 것까지 합하면 그는 초등학교를 여섯 번이나 옮겨다녀야 했고, 그 바람에 친구를 사귀기도 어려웠다. 일본에선 ‘조센징’ 이라고 이지메까지 당했다.
“태어나면서부터 떨어져 사는 게 버릇이 되어 내성적인 성격을 가지게 되었고, 친구도 없고 그러니까 혼자 생각을 많이 하게 됐고, 생각을 해도 아주 깊이 하게 됐다. … 가장 민감한 나이에 민족차별, 분노, 외로움, 부모에 대한 그리움, 이 모든 걸 절실히 느꼈다.”
이건희는 일본에서 중학교 1학년을 마치고 아버지를 졸라 귀국해 서울사대부중에 편입했다. 그곳에서도 그는 고독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는 일본에서 ‘조센징’이라고 놀림받았던 것처럼, 사대부중에선 서툰 한국발음과 무의식적으로 익혀진 일본식 태도로 인해 ‘일본놈’이라는 놀림을 받아야 했다. 그는 오나가나 홀로 서지 않으면 안 되는 ‘왕따’였던 것이다. 이건희는 서울사대부고를 졸업하고 61년 연세대에 입학했다. 그러나 그는 곧장 다시 일본으로 보내져 와세다대학 상학부를 졸업했다. 선진국을 배워야 한다는 아버지의 확고한 신념 때문이었다. 그는 이어 미국 조지워싱턴대 경영대학원을 전공한 뒤 66년 뒤에야 귀국했다. 그의 부전공은 매스컴학이었다.
머리가 좋고 고독한 사람은 기계에 빠지는 경우가 많은데 이건희도 그런 경우였다. 그는 기계와의 사랑에 빠진 첨단 기술 지향적 인간이었다. 그게 아예 그의 취미다. 그가 미국 조지워싱턴대 경영대학원에 다닐 때는 차를 여섯 번이나 바꿨는데 그 이유가 차를 분해?조립해 연구하는 데 취미를 붙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는 기계에 대한 관심이 많고 그 분야의 전문가다. 각종 전자제품의 구조를 훤히 꿰고 있으며, 지금도 각종 기술 관련 서적이나 잡지를 애독한다. 이건희 자신도 "사실 나는 어려서부터 전자와 자동차 기술에 남다를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일본 유학 시절에도 새로 나온 전자제품들을 사다 뜯어보는 것이 취미였다“고 말했다.
반도체의 성공도 그 덕분에 가능했을 것이다. 이건희는 주변의 만류를 무릅쓰고 74년 아버지의 동의를 얻어 반도체 사업에 뛰어들었다. 파산 위기에 직면한 한국반도체를 인수해 10개월 만에 손목시계용 반도체 개발에 성공하였고, 77년에 흑백TV용 트랜지스터, 81년 컬러TV용 집적회로 개발에 이어 83년 11월 64K D램 개발에 성공하면서 오늘의 터전을 닦게 되었다. 이건 결코 우연이라고 볼 수 없는, 이건희의 신념과 체질의 산물인 것이다.
천재는 고독하며 편집광적이다. 인간관계에도 큰 문제가 있다. 그러나 천재에겐 탁월성이 있다. 이건희는 천재형의 강한 집중력?집착력을 갖고 있다. 많은 이들이 이건희의 집착력은 상상을 초월한다는 증언을 내놓았다. 좀 과장된 이야기가 아닌가 하는 의아심이 들긴 하지만, 이건희는 몇 년 전 미국 LA의 로데오 거리에 있는 유명한 파이프 담배 가게를 오후 2시쯤에 들어가 오후 7~8시에 나왔다고 한다. 그 가게의 지배인을 붙잡고 “왜 파이프에 장미목을 쓰는지, 장미목은 어떤 게 좋은지”등에 대해 원리와 근원을 꼬치꼬치 캐묻느라 그랬다는 것이다. 지배인은 배웅하러 나와서 “당신(이건희)은 내가 30년 동안 배운 노하우를 하루만에 다 빼앗아갔다”고 감탄했다나.
이건희는 무슨 생각으로 93년 7월 오사카에서 열린 중앙일보사 간부 대상 특강에선 “미국 출장을 갈 때 필요하다 싶으면 서울에서 LA까지 12시간 동안 중앙일보를 본다. ‘중’자에서 끝 페이지 광고까지 한 글자도 안 빼놓고 읽는다”고 말했다. 이건희가 무슨 생각으로 그런 말을 한 건지는 알 수 없으나 솔직히 ‘엽기적’이라는 느낌을 준다. 그의 엽기 발언은 하나둘이 아니다. 이 또한 93년 7월 오사카 회의에서 나온 발언인데 섬뜩한 느낌마저 존다.
“한 손을 묶고 24시간을 살아 봐라. 고통스러울 것이다. 그러나 이를 극복해봐라. 나는 해봤다. 이것이 습관이 되면 승리감을 얻게 되고 재미를 느끼고, 그 때 바뀐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이건희가 편집광적이라고 하는 건 부정적으로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미국의 시사주간지「타임」이 ‘97년 올해의 인물’로 선정했던 인텔(Intel)회장 앤드류 그로브는 『편집광만이 살아남는다 Only the Paranoid survive』라는 책을 내가면서 기업경영에 대한 ‘편집광적 집착’을 찬양했는데, 그런 맥락에서 보면 된다.
“오직 한 가지 일에만 몰두하는 편집광만이 살아남는다”는 그로브의 구호는 곧 인텔의 기업정신이며, 이는 흔히 ‘그로브의 법칙’으로 불린다. 흥미로운 건 이건희와 그로브 사이엔 공통점이 많다는 것이다. 그로브가 직원들의 출퇴근 시간에서부터 청결에 이르기까지 꼼꼼히 따지고 챙긴 것, 기록?자료를 중시하고 직관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 알맹이 없는 회의를 길게 하는 걸 혐오한 것 등은 이건희를 그대로 빼닮았다. 그건 아마도 편집광적 집중력을 갖고 있는 사람들의 공통된 특성으로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제2장 이건희의 경영관
이건희의 ‘질(質) 경영‘
이건희는 88년 3월 22일 그룹 창립 50주년을 맞아 “삼성의 당면 문제는 국내 제일이라는 막연한 제일주의에 젖어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내가 어디에 와 있는지, 남보다 얼마나 뒤져 있는지에 대한 정확한 현실 인식 없이는 초경쟁 시대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위기의식으로부터 출발해 세계 초일류기업으로의 진입을 목표로 하자”고 ‘제2창업’을 선언했다. 이건희는 93년 신경영을 주창할 때에도 그러한 ‘위기의식’을 강조했다. “우리는 진다는 것을 너무 모른다. 올림픽 100m 달리기에서 1등과 2등의 차이가 0.01초밖에 안 된다. 그래도 1등과 2등은 엄연히 다르다. 그걸 인정할 줄 알아야 한다. 우리는 2류다.”
이건희는 ‘위기의식’을 강조하기 위해 이른바 ‘메기 경영론’이라는 걸 내놓았다. 아버지가 직접 들려준 경험담이다. 논에다 미꾸라지만 모아 키운 것과 메기를 함께 넣어 키운 것을 수확할 때 비교하면 메기를 넣은 쪽 미꾸라지의 살이 통통한 반면 미꾸라지만 키운 쪽의 미꾸라지들은 신통치 않다는 것이다. 왜냐? 메기와 같이 키운 미꾸라지는 메기에게 먹히지 않으려고 항상 긴장하고 계속 움직이며 많이 먹어대 튼튼하다는 것이다. “개인이건 조직이건 위기감 속에서 문제의식이 싹트고 적당한 긴장감은 활력을 가져다준다”는 게 이건희의 평소신념이다.
“프랑크푸르트에서 양을 100% 버리라고 한 것은 달을 보라는 것이지 손가락을 보라는 것이 아니었다. 질이나 양, 양의 반대가 질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하는 게 좋을 것이다. 양이나 질이 서로 반대가 아닌 것은 분명한데 이때까지 양 100%, 양 위주, 양을 향한 양, 양을 위한 양, 매상을 위한 양이 기업의 본질, 경영자의 관심이었음에 틀림없다.”
이건희는 개념 혼동의 원인을 이렇게 분석했다. “양을 위해서 질을 희생해도 좋다고 생각하는 데서부터 문제가 생겼다. 양이 많은 것 자체가 최상은 아니지만 나쁜 것도 아니다. 기업이라는 것은 기본적인 양 위에 질이 존재하며 최소한의 질을 위해서 양이 있다. 또 경제 단위에서도 어느 정도 양이 돼야 질이 따르는 것인데, 지금 이런 양과 질의 개념 자체를 혼동하고 있다. 정치적으로 보나 사회구조로 보나 모든 것이 흑백론과 양극론, 복종과 상의하달로만 끝나 버렸기 때문에, 이러 오해를 쉽게 받아들인 것이다.”
이건희는 군사문화 비판을 즐겨 하는데, 이 경우에도 역시 군사문화 비판이 동원되었다. “양과 질은 소위 군사문화에서 얘기하는 ‘흑과 백’이 아니다. 군사문화 중 가장 나쁜 것이 흑백논리에 의해서 명확히 구분해 버리는 일이다.“
이건희는 ‘삶의 질’까지 내달았다. “어떤 면에서는 나 개인을 위해서라도 이런 것을 투자해서 삼성과 국가와 민족이 일류로 가지 않는다면, 나 개인의 존재도 별 게 아니다. 자기가 속해 있는 민족, 국가, 재계 전체가 이류에서 일류로 올라서야 전세계에서 인정을 해주고 인간대접을 받는데, 사람이 사람 대접을 못 받을 때가 가장 비참하고 화가 난다. 이것이 바로 ‘삶의 질‘ 문제다.”
질 경영에 따라 붙는 건 ‘선택과 집중’이었다. 쳐낼 것은 과감히 쳐내고, 살릴 것은 모든 역량을 집중해 살린다는 것이다. 이건희의 ‘질 경영’은 작업 현장에선 “불량은 암이다”라는 구호로 나타났다. 이건희는 ‘100대 0’이라는 강조법만으론 먹혀들지 않을 것을 알고 매우 드라마틱한 의식(儀式)을 선보였으니 그게 바로 그 유명한 ‘애니콜 화형식’이었다. 휴대폰 불량제품을 공개 화형에 처한 것이다.
95년 3월 9일 삼성전자 구미사업장 운동장엔 2천여 명의 직원이 ‘품질 확보’라는 머리띠를 두른 비장한 모습으로 집결했다. 현수막엔 ‘품질은 나의 인격이요, 자존심!“ 이라고 씌어 있었다. 현장 근로자 10명의 손에는 해머가 들려 있었다. 휴대전화, 무선전화 등 15만 대의 제품들을 운동장 한복판에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해머질을 해댔으며, 그리고 나서 화형식을 거행했다. 모두 500억 원어치였다. 이는 ”시중에 나간 제품을 모조리 회수해 공장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태워 없애라고 하시오“라는 이건희의 단호한 명령에 다른 것이었다.
흥미로운 건 당시 대우 회장 김우중의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애니콜 화형식’이 거행된 지 4개월 후인 95년 7월 김우중은 외교안보연구원 특강에서 “자동차는 하이테크가 아니라 미들테크다. 우리는 미들테크 분야에서의 경쟁이라면 결코 뒤지지 않는다. 싼 차를 만들어 판매량을 늘린 이후 서서히 질을 높여 가는 것이 유리하다”고 말했다. 반면 이건희는 “질이 나쁘면 수십만 대라도 쓰레기통에 버려라”라고 말했으니, 이 차이는 ‘자동차’와 ‘휴대폰’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었을까? 김우중이 틀렸다고 말할 순 없지만, 이건희가 옳았다는 건 결과로 입증되었다. 그러나 아직 멀었다. 삼성전자는 한 해 기술 로열티로 2천억 원 이상을 지급하고 있는바, 갈 길이 멀다.
제3장 이건희 리더십의 정체
언론은 이건희의 ‘순한 양‘인가
이건희가 생존경쟁에 허덕이는 일반인들뿐만 아니라 대학생들의 존경까지 받는 데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지만, 언론의 호의적 보도가 크게 한 몫 하고 있다는 것도 빼놓을 순 없을 것이다. 이건희는 자신을 포장할 줄 안다. 삼성 구조조정본부 부사장 이순동은 “이 회장은 학창시절 커뮤니케이션을 공부하셨고, 중앙일보에서도 근무한 경험이 있어 신경영 철학이 어떻게 전파되고 공유돼야 하는지 누구보다 훤히 꿰뚫었다”고 말했다.
그렇다. 이건희의 홍보 감각은 그 어떤 재벌 총수보다 더 탁월하다. 그는 93년 1월 4일 신년사에서 “첨단 경영시대의 승리자가 되기 위해서는 남보다 앞서는 정보력과 기업안보 차원의 홍보력 강화가 필수 요건” 이라면서 “홍보를 기업안보 차원에서 기업 생존전략의 하나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여기에 언론의 밥줄이라 할 광고를 이용하는 ‘정치’까지 가세하니 삼성의 언론플레이는 탁월할 수박에 없다. 매출 규모와 업종을 감안하고 분석해 보더라도 삼성은 다른 재벌에 비해 광고비를 더 많이 지출한다. 이는 그만큼 언론에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걸 의미하는 것이다. 그래서 언론은 이건희와 삼성의 ‘순한 양’이라는 말까지 나오게 되었다. 삼성의 탁월한 언론플레이에 대한 증언은 무수히 많다.
『미디어 오늘』95년 6월 28일자는 “일부 기자들은 삼성 비판 기사를 출고한 뒤 아예 호출기를 꺼버리고 삼성 측의 로비를 피해다니는 경우도 있으며 삼성은 기사 수정이나 삭제가 뜻대로 이뤄지지 않을 경우 심지어 이미 예약되어 있는 광고를 ‘빼겠다’면서 언론사에 으름장을 놓은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지난 2월 말과 3월 초 서울신문이 본지와 자매지 뉴스피플에 ‘삼성그룹 제일제당 장악 음모’, ‘한남동 택지 투기의혹’ 등 비판적인 기사를 게재하자 이 같은 사실을 안 삼성 측은 즉시 집요한 로비를 시작했고 3월 9일자로 예정된 광고를 빼겠다는 압력을 가했다. 서울신문 측의 강한 문제제기로 다시 광고를 게재하는 선에서 이 문제는 일단락됐지만 ‘기사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언제든지 광고라는 무기를 쓸 수 있다’는 삼성의 오만함을 그대로 보여준 사건이었다. 삼성그룹의 이같은 일련의 행태는 재벌의 언론통제라는 점에서 매우 심각하고도 위험한 측면을 지니고 있다.”
방송매체도 이건희와 삼성의 굴레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건 마찬가지였다. KBS 노동조합의 95년 9월 23일자 성명서 〈KBS가 삼성재벌 총수 이건희의 홍보부대인가!〉는 “공영방송에 참으로 해괴한 일들이 자행되고 있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지난 21일자 9시 뉴스는 ‘대기업 지방 경영’이라는 그럴 듯한 제목의 보도를 내보냈다. 그러나 보도의 실질적인 내용은 삼성그룹 총수 이건희의 지방 나들이를 일방적으로 홍보하는 것이었다. 앵커 멘트는 ‘지방자치 시대를 맞아 지방사업장을 찾는 재벌 총수들이 부쩍 늘고 있다’며 제법 명분을 내세웠지만 실제 보도된 내용은 온통 이건희의 부산 공장 나들이에 대한 기사와 그림으로 다 채웠고, 뉴스 가치가 있는 내용은 전혀 없었다. 이에 대해 보도본부장도 사실을 인정했다. 이 해괴한 보도의 뒷이야기는 이렇다. KBS가 마라도나 축구팀을 유치하는 데 삼성이 5억 원을 협찬했고, 그 대가로 이 뉴스 가치 없는 홍보 기사가 급조됐다는 것이다. 이런 식의 행태가 광고를 조건으로 홍보기사를 게재하는 일부 상업언론과 무엇이 다른가. 돈을 받고 뉴스를 팔아넘기는 일이 과연 공영방송 KBS의 떳떳한 모습인가.”
2005년, 삼성은 “유능한 언론 인재를 확보하라”는 이건희의 지시에 따라 기자들을 적극 영입하였는데, 5월 MBC 앵커 이인용이 삼성전자 홍보담당 전무로 자리를 옮긴 사건은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오마이뉴스는 “삼성이 자본을 앞세워 기자사냥”에 나섰다고 비꼬았고, MBC 기자 이상호는 “MBC의 ‘간판’을 떼어내 삼성 이건희 회장의 연단 받침대로 끌어간 것”이라며 “MBC의 기자사회는 자본의 태풍에 간판이 날아갔는데도 놀랍도록 침착”하다고 비판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전규찬은 “삼성 프로야구 축구팀이 좋은 선수들을 싹쓸이해 ‘호화군단’을 꾸린 것과 같아 보인다”고 비판했다.
2005년 6울 28일 새언론포럼(화장 김영신)이 ‘삼성 그리고 대한민국 사회와 언론’을 주제로 개최한 토론회에서『한겨레』대기업 전문기자 곽정수는 “한국 언론은 삼성의 논리가 사회의 지배 이데올로기로 확산, 강화, 재생산되는 데 주요한 매개역할을 하고 있다”며 “언론이 자본의 품안에 안긴 것 같다”고 비판했다.
2005년 7월 12일 한성대교수 김상조는 ‘잘못된 삼성 관련 보도, 어떻게 경제의제를 왜곡하나’ 토론회에서 “삼성이 ‘외국 자본의 삼성전자에 대한 적대적 인수합병’ 같은 터무니없는 주장을 통해 ‘사이비 민족주의’를 퍼뜨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삼성이 선동하는 ‘사이비 민족주의’ 강화는 독일, 스웨덴 등 유럽식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를 한국에 도입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되레 진보진영의 민족주의와 혼란을 일으킴으로써 언론의 비판정신을 마비시킬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올해 초 삼성경제연구소에서 발표한 코리아 디스카운트 관련 보고서의 경우 연구의 기초요건을 갖추지 못했음에도 언론들이 검증 없이 대서특필함으로서 삼성의 이데올로기를 전파하는 결과를 낳았다”고 주장했다.
언론이 이건희와 삼성 앞에선 ‘순한 양’이 되는 건 그 누구에게도 좋지 않다는 데에 동의하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 이건희와 삼성은 보수 신문들의 건강성을 재는 리트머스 시험지가 되고 있다. 사원들의 아첨을 싫어하고 직언을 좋아한다는 이건희의 태도가 언론에 적용될 수 없는 걸까?
제4장 이건희의 나라
‘삼성이 만들면 표준이 된다’
2002년 말 삼성전자 사장단 송년 모임에서 이건희는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삼성이 만들면 표준이 된다’는 점을 명심해서 대형화 못지 않게 휴대폰을 포함해 모바일용 소형 제품에 더욱더 신경을 써 주세요”라고 말했다. 전자제품만 표준이 되는 게 아니다. 삼성의 모든 게 다 표준이 되고 있다. 예컨대, 연공서열 문화가 강한 은행권이 새로운 형태의 성과급제를 도입하자 언론은 그걸 중시하는 ‘삼성식 경영’의 도입이라고 보도했다.
정부도 삼성을 표준으로 삼고자 한다. 2005년 1월 24일부터 26일 까지 2박3일간 기획예산처 과장급 이상 간부 전원(70명 가량)이 삼성그룹의 경영을 배우기 위해 삼성인력개발원에서 특별연수를 받았다. 이건희의 ‘표준 파워’ 덕분에 심지어 2005년 6월 23일 조광 페인트의 주가가 가격제한폭까지 뛰는 일이 벌어졌다. 신축된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이건희 자택에 조광페인트의 친환경 페인트 제품이 공급된 사실이 알려지면서 나타난 현상이었다. 이에 대해 “건축공사에 페인트가 쓰인 것은 지난해 10월이었지만 저택에 납품됐다는 사실 자체가 품질을 인정받은 것으로 투자자들에게 받아들여지면서 상한가를 기록하는 기염을 통해 이건희 회장의 파워를 짐작케 했다”는 해석이 나왔다.
이건희는 파워만 강할 뿐만 아니라 ‘표준 의욕’도 강하다. 이는 그의 독특한 어법을 통해 표출되고 있다. 그는 “인간미와 도덕성을 시급히 회복하고 예의범절과 에티켓을 지켜야 한다. 이것이 가장 중요하다. 인간미를 간직하고 도덕성을 지키면서 올바르게 가야만 한다. 절대로 여기에서 벗어나지 말아야 한다. 이것은 반드시 지켜야 하는 우리끼리의 약속이며, 곧 삼성의 헌법이다”라고 주장했다.
이건희의 ‘표준 파워’는 문화까지 바꾸었다. 그 대표적인 업적으로 화장실 문화와 병원 장례문화를 바꾸는 데에 크게 기여한 걸 들 수 있다. 이는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이건희의 양성 평등의식과 이공계 우대정책도 칭찬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삼성의 ‘표준 파워’는 그만큼 책임도 뒤따를 수밖에 없다. 예컨대, 삼성은 ‘나눔경영’을 외치지만, 장애인 고용률은 턱없이 낮다. 민간기업 고용률이 1.08%, 30대 기업은 0.79%인 반면, 삼성은 0.26%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게 ‘표준’이 되어서야 쓰겠는가.
『한겨레』 2005년 4월 29일자 기사 〈삼성 또 공정위 조사 방해 : 삼성 토탈 직원, 자료 빼앗아 도주〉는 “과거 정부 조사를 여러 차례 방해했던 삼성이 가격담합 조사를 벌이던 공정거래위원회 조사관에게 증거자료를 빼앗아 달아나 물의를 빚고 잇다. 공정위 직원들은 삼성의 상습적인 조사방해 행위는 공정위의 미온적인 제재 때문이라고 비판한다”고 보도했다. 이 또한 ‘표준’이 되어선 안 될 일일 것이다.
새언론포럼(화장 김영신)이 개최한 ‘삼성 그리고 대한민국 사회와 언론’을 주제로 한 토론회에서 성공회대 교수 김동춘은 “현재 삼성경제연구소는 복지, 교육, 인구문제 등 미래 담론까지 선점해 가고 있으며, 이 자료를 받는 회원만 100만 명이 넘고 있다”며 “이것이 우리 사회의 담론을 만들어 내고 있다”고 우려를 표명했다.
삼성은 이제 이념과 정보의 표준화까지 시도하려는 것인가? 문제는 이건희와 삼성의 그 모든 시도에 ‘성찰성이 있는가?’ 하는 것이다. 성찰성(省察性)이라는 말은 원래 인식론에서 사용되던 철학 용어로 내가 어떤 주장을 하려면 그것이 내 주장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건희와 삼성은 요즘 유행하는 접두어 ‘성찰적’을 원용해 ‘성찰적 경영’에 주목하는 건 어떨까?
여기서 울리히 벡의 ‘성찰적 근대화’와 ‘위험사회’라는 개념이 그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성찰적 근대화’는 “제도는 그것의 성공으로 말미암아 붕괴한다”는 몽테스키외의 화두와 통하는 것이다. 쉽게 말해, “성공이 제 무덤을 판다”는 뜻이다. 벡은, 산업사회는 그것의 성공적인 완성으로 인해 몰락한다고 본 것이다. 이와 관련된 ‘위험사회’의 도래란 기존 근대화 모델에 기초한 경제성장이 발생시키는 편익을 넘어서는 임계점을 의미하는 것이다.
전혀 엉뚱한 이야기처럼 들리 수도 있겠지만, 바로 이런 이치가 삼성과 이건희에게도 들이닥치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삼성의 ‘나홀로 독주’의 시대가 유발하는 ‘미처 예상치 못한 비용’과 ‘의도하지 않는 결과’ 때문이다. 삼성의 발전이 늘 한국의 발전일 수는 없는 역설도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건희의 탁월한 경영 능력 덕분이기도 하겠지만, 일단 키워진 덩치에 의한 자동적인 ‘눈덩이 효과’로 인해 더욱 강화된 삼성의 독주로 한국의 경제기반이 불안해지고 안정성이 떨어지고 독과점의 폐해가 우려된다는 목소리가 높다. 그런데 그건 국가적인 재앙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삼성을 두려워하는 언론에 잘 보도되지 않고 있을 뿐 그건 괜한 우려가 아니다. 이건희는 “10년 후 무엇으로 사업할까 생각하면 잠이 오지 않는다”고 했는데. 그런 문제를 생각하는 데에도 조금만 더 생각을 기울여 달라고 말하는 건 미련한 짓일까?
그게 미련하다면, 이를 본격적인 사회적 의제로 삼을 필요가 있겠다. 이건희의 코쿤 모델은 한국 사회 특유의 엘리트 모델과 통하는 점이 있기에 더욱 그렇다. “오직 자기 집단만 생각하기”라는 점에서 그렇다. 이건희는 코쿤 밖으로 나와 사회와 소통해야 한다. 이건희와 삼성이 하면 표준이 되기 때문이다.
제5장 이건희와 한국 사회의 충돌
‘오너 경영’의 딜레마
이건희가 감명 깊게 읽었다는 앨빈 토플러의『권력이동』은 관료체제를 대체할 ‘탄력회사(flex- film)’의 하나로 가족회사에 주목했다.
“가족회사에서는 아무도 남을 골탕먹이지 않는다. 모두가 모두를 너무나 잘 알며 ‘연줄’을 통해 아들이나 딸이 성공하도록 돕는 것은 당연시된다. … 가족제도에서는 주관?직관력?정감(情感)이 사랑과 다툼을 지배한다. … 사업에서 가족관계가 역할을 수행하는 경우에는 관료적 가치관과 규칙이 파괴되고 이와 함께 관료체제의 권력구조도 파괴된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오늘날 가족기업의 부활은 단순한 일시적 현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 ‘관료주의 이후’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토플러는 파키스탄의 경영전문가 사이드(Syed Mumtaz Saeed)가 서방에서의 산업주의 시대의 탈인간화는 가족을 순전한 사회적?비경제적 역할로 강등시킨 결과로 빚어진 것이므로, 제3세계 국가들은 관료체제의 비인격성과 서방식 반가족주의를 거부하고 가족에 기초한 경제체제를 구축해야 하며 고전적 온정주의를 보전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에 동의를 표했다.
2000년대 들어 가족회사는 전세계적인 유행이 되고 있다는 느낌마저 준다. 2004년 12월 외신은 스위스 기업 10개중 9개는 가족에 의해 운영되고 있고, 가족기업(Family Business)의 60%는 가족이 경영에 대해 완전한 통제력을 행사하고 있는데, 이들 기업의 실적이 상당히 좋다고 전했다.
2005년 6월 5일 「아시안월드스트리트저널」과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는 가족기업에 대한 연구 붐이 전 세계적으로 불고 있으며, 특히 미국과 유럽에서 이 같은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전세계 1,000대 기업 가운데 3분의 1 가량이 가족기업이며 유럽은 물론 미국에서도 많은 기업들이 가족기업으로 건재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가족기업의 장점은 오너의 확고한 주인의식, 가족 전통을 바탕으로 한 강력한 리더십,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과감한 투자, 신속한 의사결정 등이며, 단점은 가족 내 갈등, 기업가 정신 약화, 외부인력 활용 미흡, 경영권 승계 문제 등이 지적되었다.
이건희는 가족회사의 장점을 주장하진 않는다. 그러나 그는 ‘오너 체제’의 장점은 역설하며, 사실 그건 그의 기업경영관의 ‘본질’이다. 이건희는 “현재 우리 실정에서 오너가 회장이 아니면 회사가 흔들립니다. 은행?종업원이 불신합니다. 이게 현실이지요. 삼성은 내가 없어도 흘러갑니다. 그럼 뭐가 다르냐. 5년 후에는 흐물흐물해지고, 10년 뒤에는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삼성인들을 대상으로 한 이건희의 훈시에도 ‘오너 체제’의 장점을 암시하는 게 자주 들어가는데, 그게 바로 ‘오너 의식‘이다. 그는 93년 6월 13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제대로 하자. 하루 2~3시간 일해도 된다. 나머지는 집에 누워도 좋다. 마누라, 자식 빼고 다 바꾸자. 내가 회장 자리에 앉는다는 생각 가져보자”고 호소했다.
‘오너 체제’의 장점에 대한 증언은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 「중앙일보」2005년 3월 30일자 ‘중앙경제’ E1면의 머릿기사 제목은 “일본 기업 성장 멈춘 건 오너 없는 탓”이다. 일본의 미디어 그룹인 후지산케이와 후지TV 경영권 쟁탈전을 벌이고 있는 라이브도어의 사장 호리에 다카후미(32세) 인터뷰 기사다. 그는 “일본의 대기업들이 성장을 멈춘 것은 한국의 삼성 같은 강력한 지도자(오너)가 없기 때문” 이라고 주장했다. 이런 기사를 크게 내보낸 「중앙일보」의 속셈이 거슬리긴 하지만, ‘오너 체제’의 장점에 동의하긴 어렵지 않다.
그런데 문제는 유능한 오너를 만났을 때엔 ‘오너 체제’의 장점이 십분 발휘되지만, 무능한 오너를 만났을 때엔 ‘오너 체제’는 죽음으로 가는 직행 코스일 수도 있다는 점이다. 오너에 대한 견제가 없기 때문이다. 이건희는 그렇게 수없이 많은 말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점에 대해선 말이 없다.
이건희를 비롯하여 삼성이 ‘오너 체제’의 장점을 역설하는 것이 출자총액제한제도의 무력화를 시도하는 차원에서 이뤄지고 있다는 것도 문제다. 그런 시도 자체가 나쁜 건 아니다. 그런 시도를 하더라도 왜 출자총액제한제도가 나오게 되었는지 그 필요성에 대한 대안도 제시해 가면서 규제 완화를 역설하면 좋겠는데, 영 그게 아니다.
예컨대, 삼성물산 회장 현명관은 2005년 7월 8일 전경련 산하 국제경영원이 주최한 최고경영자 조찬 강연에서 “이건희 회장과 승지원(삼성 영빈관)에서 오너 경영과 전문경영인 체제의 차이점에 관해 토론한 적이 있는데 결론은 주인의식에 커다란 차이가 있다는 것이었다”면서 “전문경영인은 아무리 혼신을 다해도 오너만큼 하지는 못한다”고 말했다. 이 주장엔 얼마든지 동의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못난 오너’나 ‘미친 오너’를 만날 경우엔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점에 대한 답이 없다는 데 있다. 그리고 이 주장은 출자총액제한제도를 비난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것도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