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을 사랑한 여행자

   
한돌 (지은이)
ǻ
열림원
   
18000
2025�� 12��



■ 책 소개


한 구절 일기처럼, 한 곡절 노래처럼 일상에서 길어 올린 빛나는 이야기들

국민 애송곡 〈홀로 아리랑〉 〈개똥벌레〉를 탄생시킨 작곡가 한돌이 일상에서 길어 올린 성찰을 담아낸 산문집이다. 오랫동안 많은 이들의 마음을 울린 노래를 만든 사람답게, 그의 문장은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깊은 울림을 지닌다. 한돌은 명곡을 만들었던 순간들뿐 아니라, 고단했던 어린 시절과 수차례의 위기, 그리고 세월이 더해지며 조금씩 발효된 마음의 진실들을 담담하게 풀어놓는다. 그의 노래 구절과 산문이 나란히 놓여 있기에, 우리는 한 예술가의 삶과 사유가 어떻게 서로를 비추며 한 인간을 만들어왔는지 자연스럽게 읽어낼 수 있다.

■ 저자 한돌
‘작은 돌멩이 하나’라는 뜻을 지닌 순우리말 이름인 한돌은 1953년 거제에서 태어나 강원도 봄내(春川)에서 자랐다. 어린 시절, 삼팔선이 가로막혀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했던 부모님을 보면서 그의 가슴속에는 자연스레 북녘땅에 대한 그리움이 싹텄다. 대표곡인 〈홀로 아리랑〉 〈터〉 〈꼴찌를 위하여〉 〈못생긴 얼굴〉 〈외사랑〉 〈여울목〉 〈조율〉 등을 비롯해 그는 분단의 상처와 통일에 대한 열망, 한국의 아름다운 자연, 소외된 이웃에 대한 노래를 만들어왔다. 지은 책으로는 『꿈꾸는 노란 기차』 『늦었지만 늦지 않았어』가 있다.

■ 차례
글쓰기에 앞서

새잎
빈 마음
국화와 붕어
길 끝
사막, 고비에서
불씨
섬진강
제다움
가지꽃
개밥에 도토리
슬픈 우리 아빠
길은 멀어도
비 오는 날의 가단조
껍데기 세상
새나알뫼
아무도 없는 학교
금강초롱
무궁화
뒤돌아보는 길
헛꿈
쓸쓸한 사람
하루살이
아리랑꽃
숨은그림찾기
해 지는 소리
갈 수 없는 고향
들에 핀 꽃
험한 산 넘어서
헛살았네

글을 마치며

 

 

 




슬픔을 사랑한 여행자


빈 마음
옷장을 깨끗이 비우는 게 비움인가 입지 않는 옷을 버리는 게 비움인가

예전엔 빈 하늘 보고 하늘도 외로울 때가 있구나, 했는데 이제는 생각이 좀 바뀌었다. 하늘이 하늘을 비우는 건 뭉게구름, 비구름, 꽃구름이 마음껏 놀다 가라고 그러는 거다. 고요한 바다에 큰바람 찾아와 모든 걸 휘저어놓아도 바다는 찌푸리지 않고 품는다. 그런 바다를 보면 모든 걸 다 받아주는 것이 비움의 근본이라는 걸 알게 된다. 사람이 날마다 새롭지 않은 건 비우는 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없는 들판은 없다. 가난한 마음이라 말하지 마라. 있던 게 사라졌다 해서 초라한 것은 아니다. 푸른 들판을 보다가 겨울 들판을 보니 그러한 게지. 언 땅 밑에서 봄을 기다리고 있는 희망을 보라. 빈 들판을 어찌 가난하다 하리오. 땅도 건강해야 비울 수 있고 새잎 돋는 기쁨도 누릴 수 있는 거지, 마음이 병약한데 어찌 마음을 비울 수 있으며 새잎 돋기를 바랄 수 있겠는가?

행복이 찾아오면 불행이, 기쁨이 찾아오면 슬픔이 기웃거린다. 마음속을 채웠던 그 무엇이 사라지면 또 다른 무엇이 채울 준비를 하고 있다는 거겠지. 인생은 되풀이다. 피면 지고 지면 피고, 기울면 차고 차면 기울고……. 그 되풀이를 받아들이면 새로움이 생겨난다. 날마다 걷는 산길도 아침 길이 다르고 저녁 길이 다르지 않던가? 하루하루가 허전하고 즐거움이 없다는 건 오늘 해를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겨울 들판에 움트는 저 귀여운 초록을 보라. 언제쯤 내 귀는 저들의 노래를 들을 수 있으려나. 한쪽으로 나는 새는 없다.

외로운 그림자여, 마음을 닫지 말고 차분히 걸어보세.

밤하늘에 보석은 새벽빛이 잡아먹고 풀잎 위에 보석은 아침 햇살이 잡아먹네. 아름다움이라는 것도 저렇게 사라지는데 나무를 부러트린 바람을 어찌 탓할쏜가. 마음속에 천사가 살든 악마가 살든 대하기 나름이다. 악마 이야기로 가득한 책, 천사 이야기로 가득한 책, 무슨 책을 읽든 천천히 읽어 빈 마음에 씨 뿌리세. 사랑 없으면 잡초 생기고 사랑 있으면 꽃이 핀다네.

술을 마시다 보면 은연중 몸 밖으로 새어 나오는 게 있다. 눈물, 웃음이 그렇고 노여움, 거짓말이 그렇다. 화를 내면 자기도 모르게 속에 있는 걸 토하게 되고, 거짓 눈물을 흘리면 속에 있는 내숭이 배어 나온다. 술은 마음속에 있는 모든 걸 취하게 만들어 저절로 기어 나오게 하는 재주가 있으니 술사랑은 본인이 알아서 할 일이다. 내 마음 한구석에 잠자고 있던 슬픔이 햇볕을 쬐러 기어 나왔다가 내가 잠든 사이에 다시 마음속으로 돌아갔다. 아, 슬픔이 나의 빈 마음을 지켜주고 있었구나.

어젯밤에 쓴 글을 오늘 아침에 읽어보니 욕심으로 가득하다. 지우고 다시 쓴 걸 밤에 보니 또 글 같지 않다. 덮어버리고 한 달 뒤에 보니 유치하기까지 하다. 마음을 비운다고 해놓고서는 멋을 부리니 그리되었다. 이렇듯 지난 글을 보면 내가 얼마나 겉치레로 살았는지 금방 알 수 있다. 억지로 마음을 비우는 건 내리는 눈을 치우는 것과 같다.


섬진강
미움을 도려낸다고 해서 사랑이 보이는 건 아니다

새잎을 보면 순수하고 아름답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나도 새잎일 때가 있었지. 첫울음, 첫걸음……. 하지만 지금은 늙은 잎사귀! 순수로 살고 싶어도 뜻대로 되지 않는다. 나무들은 해마다 새잎이 돋는데 사람들은 왜 그러하지 못할까. 명상하면 마음속에 새잎이 돋으려나? 강물도 처음에는 새잎처럼 순수하고 맑았겠지? 설레는 마음으로 풀숲을 헤치고 올라가 섬진강의 처음을 본다. 웅덩이 풀잎 사이로 노란 양지꽃이 귀엽다. 순수함은 보았으나 숨어 있는 아름다움은 끝내 찾지 못하고 내려왔다. 내가 아름답지 못하니 남의 아름다움을 보지 못하는 게지.

철쭉나무 속에서 하얀 꽃 예닐곱 송이가 고개를 내밀고 인사를 한다. 어찌나 귀여운지 걸음을 멈추고 한참 동안 쳐다보았다. 초록 잎 바탕에 흰 꽃이라, 자세히 보니 하얀 꽃은 달걀꽃이었다. 누구를 돋보이게 해준다는 거, 그거 쉬운 일 아니다. 철쭉이 품어주지 않았더라면 달걀꽃이 이처럼 예쁘게 보였을까? 섬진강 걸으면서 아름다움이라는 게 뭔지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섬진강이 아름다울 수 있는 건 섬진강을 사랑하는 산과 구름과 하늘이 있기 때문이다. 인생은 아름다운 거라고 쉽게 말하지 마라. 나 혼자 그렇게 산 게 아니다. 묵묵히 나를 지켜준 누군가가 있었음이니 그들을 잊어서는 아니 된다. 그림자를 보라. 달빛, 햇빛이 있었기에 그림자로 살 수 있었던 거다. 거울을 보고 자기가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적잖이 이기적인 사람이다.

강 건너 산허리에 어울리지 않는 집 한 채가 보인다. 제 집 제 마음대로 짓고 사는데 누가 뭐라 하겠느냐마는 아무리 그렇더라도 풍광을 해쳤다면 좀 미안하지 않을까? 하지만 이 나라에는 이렇다 할 규정이 없다. 생태 보존은커녕 사람 위주로 강산이 변해가고 있으니 앞으로 뭇 생명의 보금자리가 걱정이다. 강산은 본디 사람의 것이 아니다. 설령 사람의 것이라 우겨도 그건 백성들 것이지, 어느 특별한 누구의 것이 아니라는 거다. 매화가 아름다운가, 매화마을이 아름다운가? 매화마을에 줄지어 서 있는 관광버스를 보노라면 스스로 무너지는 아름다움이 안타깝기만 하다. 아름다움의 바탕은 어울림이다. 꽃들이 아름다운 건 서로 어울림이 있기 때문이다. 빛깔과 모양은 서로 다르지만 튀는 꽃은 없지 않던가.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울 수 없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사람도 있지만 혼자 돋보이려는 사람도 있다. 어릴 때도, 학교 다닐 때도, 어른이 되어서도 그렇다. 보일 듯 말 듯 작은 들꽃이 아름다운 건 잘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거기가 어딘지 모르겠으나 논바닥에 교회가 우뚝 서 있는 걸 보았다. 꼭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 논바닥을 짓밟고 우뚝 선 교회는 과연 훌륭한 교회일까? 하늘도 노할 일이었다. 여행하면서 큰 교회들은 많이 보았지만 이처럼 무섭게 생긴 교회는 처음 보았다. '다움'은 잘 드러나지 않음에 있다는 것을 그들이 모를 리 없다. 내가 존경하는 신경외과 의사 한 분이 있는데 몇십 년을 지켜봐도 의사 같지 않다. 그동안 고통받는 환자들을 꽤 많이 고쳐주었는데도 여전히 의사처럼 보이지 않는다. 본인이 아름다운 사람이라는 걸 모르고 있으니 참으로 아름다운 사람이다.

강이 흘러가는 것처럼 사람도 흘러간다. 어디로 흘러가느냐에 따라서 아름답게 보이기도 하고 지저분하게 보이기도 한다. 예쁜 마을을 지나는 강은 예뻐 보이지만 지저분한 곳을 지나는 강은 지저분하게 보인다. 사람도 나쁜 사람 만나면 나쁜 사람 되는 거다. 도둑 잡는 경찰이라 하여 고마운 거지만 경찰도 좋은 경찰, 좋지 않은 경찰이 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 역시 고맙지만 좋은 선생님, 좋지 않은 선생님이 있고 말씀을 전하는 성직자도 좋은 성직자, 좋지 않은 성직자가 있다. 섬진강이라고 섬진강이 다 아름다운 건 아니라는 거다. 사랑이 지나치면 미움이 보인다. 섬진강을 해친 사람들은 섬진강을 사랑한 사람들이다. 미움을 도려낸다고 해서 사랑이 보이는 건 아니다.

기다림과 그리움의 바탕은 참음이며 참음의 다른 말은 아름다움이기도 하다. 500리를 흘러 바다와 만나려고 했던 강은 만나기도 전에 바다가 되었다. 바다를 만나면 주려고 했던 선물이 눈 깜짝할 사이에 부서지고 강의 기쁨도 허무하게 사라졌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어떤 사람이 말했다. 만남이 어수선해진 건 서로 참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그자의 얼굴을 쳐다보며 나는 한숨을 쉬었다.

나지막한 산에서 흰 진달래를 보았다. 소문을 들은 사람들이 그 꽃을 보러 갔고 나는 거짓말쟁이가 되었다. 그새 누가가 캐 갔다. 따지고 보면 내가 잘못했다. 내가 말하지 않았더라면 흰 진달래는 그 자리에서 곱게 살았을 텐데……. 아름답다고 말하면 아름다움이 사라지는 우리나라! 울릉도, 제주섬에 사는 사람들은 어떨지 몰라도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사라진 아름다움이 너무 그립고 안타깝다. 섬진강도 야금야금 망가지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변화는 당연한 게 아니다. 재첩이 사라지는 걸 어떻게 변화라고 할 수 있는가? 변화에 잘못 엮이면 후회만 남는다. 담배 피우는 사람은 제 몸에서 담배 냄새가 난다는 걸 모른다.


숨은그림찾기
해돋이 사진을 찍는 사람은 해를 기다리지 않는다

큰 나무 아래 누워서 나무를 올려다보니 가지 사이로 파란 하늘도 보이고 흰 구름도 보이고 잎사귀에서 튕기는 햇살도 보인다. 하늘만 보면 그냥 하늘인데 가지 사이로 하늘을 보니까 마치 하늘의 비밀을 찾아낸 것처럼 새롭게 보인다. 나무 잎사귀도 그냥 보면 잎사귀인데 누워서 보니까 잎사귀 들이 나부끼며 하늘에 묻은 먼지를 털어주고 있다. 이렇게 잎사귀들의 노고가 있었기에 파란 하늘이 되었나 보다. 보이는 게 다가 아니라는 말이 있는데 실제로 우리가 찾아내지 못한 것들이 의외로 많다. 여행도 많이 하고 책도 많이 봐야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나무 아래 누워서 올려다보지 않았다면 나뭇잎들이 하늘의 먼지를 털어주는 비밀을 어찌 알았겠나? 한 살 땐가? 온종일 누워 자다가 잠이 깨서 천장을 보면 도배지 무늬가 여러 가지 모양으로 바뀌면서 호기심을 자극했던 기억이 난다. 어떻게 생각하면 숨은 그림은 없는 거다. 뻔히 보이는 걸 보지 못하고 자기한테 필요한 것만 보니까.

꽃이 피면 사람들은 꽃을 피운 나무를 잘 안다는 듯이 반가워한다. 그러다가 꽃이 지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이름을 기억하지 못한다. 잎사귀가 다 떨어지고 앙상한 가지만 남으면 이름은커녕 아예 모르는 나무가 된다. 이렇듯 사람은 자기에게 필요한 것만 본다. 꽃이 사랑이라면 잎사귀는 그리움이다. 잎사귀는 꽃을 그리워하다가 물든다. 사람들은 꽃만 보고 잎사귀는 지나친다. 꽃이 기쁨이라면 잎사귀는 슬픔이다. 사람들은 기쁨만 보고 슬픔은 보려고 하지 않는다. 초등학교 때였나. 부모님 말씀에도 선생님 말씀에도 숨은 그림이 있고 옛 어른들의 말씀과 자연 속에도 책 속에도 숨은 그림들이 있는데 뒤늦게 큰일을 겪고 나서야 깨닫게 된다. '아, 그때 그 말이 그런 뜻이었구나!' 부모님 살아 있을 땐 잘 보이지 않던 효가 부모님 떠나고 나면 또렷이 보이고 사랑할 땐 잘 보이지 않던 사랑이 이별의 노래가 울려 퍼지고 난 뒤에야 또렷이 보이게 되는, 그러니까 잘 알지 못했다는 것은 보이는 것만 보고 살았다는 거다. 관심이 없어서 지나친 것들, 초점이 맞지 않아 제대로 보지 못한 것들 우리 눈에 들어오지 않은 모든 것들은 숨은 그림이 되어 우리를 기다린 것이다.

바쁘게 살다 보면 마음속에 잡풀이 자라는 것을 알지 못한다. 사랑이라든가 용서라든가 꿈이라든가 이런 귀한 꽃들이 잡풀에 가려져 숨은 그림이 되었으니 그 꽃들을 잊고 살 수도 있겠다. 사랑하지 못하는 건 사랑이 보이지 않아서이고 용서하지 못하는 건 용서가 보이지 않아서이다. 욕망과 분노로 사는 사람들이 눈에 띄게 많아졌다. 꼭 그들만의 잘못은 아니다. 그들을 가까이에서 바라보는 사람들에게도 잘못은 있다.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고 용서를 실천하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다. 모두 어디에 숨은 걸까? 썰물을 기다렸다가 억지 눈물을 보이며 나타나는 비겁한 사람들이 많아졌다.
불행은 행복에 붙어 있는 숨은 그림이고 행복은 불행에 붙어 있는 숨은 그림이니 행복만 품으려 하지 말고 불행도 잘 품어줘야 한다. 미움 역시 사랑에 붙어 있는 숨은 그림이고 사랑도 미움에 붙어 있는 숨은 그림이니 사랑만 품지 말고 미움도 잘 보듬어줘야 한다. 미움은 사랑의 빛깔 속에 스며 있기 때문에 보여도 보이지 않는 것이고 불행이라는 것도 행복의 빛깔 속에 스며 있기 때문에 보여도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랑과 행복은 소유하려고 하면 아니 되는 것이다. 소유하면 숨어 있는 미움을 보게 되고 숨어 있는 불행을 보게 될 테니.

산길을 걷다 보면 숲속이 궁금할 때가 있다. 귀한 약초가 있을 수도 있고 뱀이 있을 수도 있고, 하지만 숲에 들어갈 생각이 없으면 궁금함은 궁금함으로 남는 거다. 마음속에도 내가 모르는 숨은 그림들이 살고 있을 텐데 알아보려고 하지 않으면 나이가 들어도 알 수가 없다. 산길을 걷다가 마주친 아주 작은 꽃, 이름을 알면 아는 체라도 해보겠는데 모르니 그냥 지나간다. 이름을 몰라도 나를 쳐다보는 꽃이 있으면 반갑게 인사하는 것이 좋다. 방황하던 시절, 내 얼굴을 어루만지던 햇살이 있었는데 나는 그게 멀리서 날아온 사랑인지도 모르고 어둠 속에서 햇살만 그리워했다.

마음속에는 나쁜 그림도 숨어 있고 좋은 그림도 숨어 있다. 말도 많이 하게 되면 하지 않아도 될 말이 튀어나온다. 어디에 쓰이는 말인지도 모르면서 입이 자주 열리니까 튀어나오는 것이다. 배우지 못한 게 무식이 아니라 알고 있는 걸 어디에 쓸 줄 모르는 게 무식이다. 잡풀이 자라듯 마음에도 쓸데없는 말들이 많이 자라고 있으니 그건 각자 알아서 할 일이다. 말을 적게 하는 방법은 경청이다.

아무리 멋진 사랑도 내버려 두면 바래고 아무리 멋진 집도 내버려 두면 삭는다. 집을 가꾸듯 사랑도 돌봐야 하는 까닭이다. 살다 보면 흠이 생기기 마련이다. 좋은 옷 입으면 흠이 가려지는 것 같지만 그 옷을 벗는 순간 마술처럼 흠이 나타난다. 죄는 숨길수록 흠으로 남고 내보이면 무늬로 남는다. 좋은 인연도 내버려 두면 끊어지는 법. 봄날 꽃을 노래하던 시인이 어느 겨울날 앙상한 가지만 남은 그 꽃나무를 알알아보지 못하고 지나친다. 영원히 사랑하겠다는 말, 그 말을 함부로 해서도 아니 되지만 함부로 믿어서도 아니 될 듯.

상대방 허물을 들추느라고 고생하는 사람들이 많다. 인생에서 숨은그림찾기란 자기 인생에 도움이 되는 것을 찾는 것인데 왜 남의 허물을 찾느라고 그 아까운 세월과 정열을 허비하는지 모르겠다. 자신의 흠이 드러나도 상대방의 흠은 감싸주고 덮어줘야 하는데 남의 흠으로 제 살길을 찾는 소인배들이 너무 많다. 다섯 살 먹은 손녀가 냉장고에 흠이 난 걸 보고는 거기에다 예쁜 스티커를 붙여준다.
사람을 미워하게 되면 그 사람이 쓰는 물건, 그 사람과 가까이 지내는 사람까지 미워하게 된다. 예쁜 사람도 미운 구석이 있고 미운 사람도 예쁜 구석이 있는데, 예쁜 사람은 미운 구석이 보여도 예쁘다 하고 미운 사람은 예쁜 구석이 보이는 데도 밉다고 한다. 나도 누군가에게 미운 사람이 될 수 있다. 사랑받고 싶은데 미움만 받는다면 얼마나 힘들겠는가. 지금 내가 누구를 미워한다면 그 사람의 가슴에 숨어 있는 그림을 먼저 찾아볼 일이다.


해 지는 소리
구름은 그저 흘러갈 뿐 노을에 얽매이지 않는다

사람들은 노을만 보고 해는 생각하지 않는다. 해가 있어 노을인데 꽃만 보고 나무는 보지 않음이다. 하루 일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해를 보면 수고했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해 지는 소리라고 하면 어둠과 절망을 떠올릴 수도 있겠지만 나 어릴 적 해 지는 소리는 하늘에서 들려오는 평화의 소리였다. 물론 그때는 평화라는 말이 뭔지도 몰랐지만 돌이켜보면 나지막한 산에 서 있는 나무들과 들길에 피어 있는 꽃들 그리고 노을에 물든 할머니의 얼굴과 굴뚝에 피어오르던 연기 등등 내 눈길 닿는 곳 모든 것들이 다 평화였다. 해 지는 소리는 논밭에 스며들어 곡식을 익어가게 하였고 내 마음에도 스며들어 앞날의 내 모습도 보게 해주었다.

서울로 이사 가던 날, 정다운 들판과 할머니 집 굴뚝에 피어오르던 연기가 아른아른 역까지 따라왔다. 기적이 울리고 기차가 떠나는데 설레는 가슴 한편에 뭔가 이슬 같은 것이 맺혔다. 차창 밖 지나가는 풍경을 바라보며 안녕이라고 말하는데 눈물이 고였다. 앞으로는 해 지는 소리를 들을 수 없겠구나! 그동안 재미있었던 시간표는 사라지고 이제는 다른 시간표로 살아야 한다.

기대했던 서울은 이상한 나라였다. 새벽부터 과외 공부 다니고 저녁 늦게야 집에 돌아왔다. 생각한 대로 해 지는 소리는 들을 수 없었다. 가끔 건물 숲에 걸린 해를 볼 때가 있는데 그때마다 고향에서 같이 놀던 해가 보고 싶었다. 해가 보고 싶을 땐 가끔 도화지에 해를 그리곤 했는데 아무리 잘 그려도 해 지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중학교에 들어가서 외로움을 만났고 외로움은 나를 데리고 해가 없는 어둠 속으로 떠났다. 그러다가 마음속의 평화는 점점 사그라졌고 나의 순수 시대는 서서히 저물어갔다.

고등학교를 어렵사리 마쳤으나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나날들, 내 눈길 닿는 곳마다 높은 벽들이 보였다. 내 젊음이 야위어가는 게 몹시도 괴로웠다. 방황의 늪에서 벗어나려고 우연히 올랐던 산에서 바라본 해거름, 평화의 소리는 간데없고 주파수 맞지 않는 라디오처럼 지지직거리는 소리가 귓가를 맴돌았다. 그제야 내 마음이 황폐해진 걸 알았다. 마음은 어둠으로 물들고 마음 산은 무너진 지 오래, 밍밍한 노을을 바라보며 나는 이 세상에서 아무 쓸모도 없는 존재라는 걸 알게 되었다. 별이 보이지 않는 건 어둠이 바랜 탓이라고 생각했지만 해 지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건 내가 평화에서 밀려났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었다.

차라리 해 지는 소리를 잊고 싶었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서는 해 지는 소리를 찾아 떠나야 한다는 소리가 높았다. 세상에는 이상한 법칙이 있다. 찾으려고 하면 찾아지지 않는다는 것. 꿈을 찾아 떠난 사람 가운데 꿈을 찾은 사람 없고 사랑 찾아 떠난 사람 가운데 사랑 찾은 사람 없다. 찾았다고 말하는 사람은 착각하는 것이다. 꿈 껍데기를 꿈이라 하고 사랑 껍데기를 사랑이라 하는 것이다. 잊음의 경지는 사랑하면서 잊는 것이다. 사랑이 쇠하면 순수한 잊음만 남게 된다. 그리되면 찾으려고 했던 그 무엇이 찾아올지도 모른다.

세월이 한참 흘러 내 나이 예순여덟, 뜻하지 않게 해 지는 소리가 찾아왔다. 이산가족의 만남이 따로 없었다. 나는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그날은 원주에 일이 있어서 갔다가 돌아오는 날이었다. 버스 앞 유리창 너머로 붉은 해가 보였다. 그런데 내가 해를 보는 건지 해가 나를 보는 건지 모를 정도로 서로 마주 봄이 오래갔다. 마치 오랫동안 서로 찾아 헤매다가 만난 것처럼 반가워서 어쩔 줄 모르는 모습이었다. 해는 구름을 물들이면서 나에게 반갑다는 말을 전하고 있었다. 나도 반갑다는 말을 전해야 하는데 딱히 전할 방법이 없어서 마침 석양빛에 물든 논둑의 나무들에 내 마음도 전해달라고 말했다.

빠르게 달리던 버스가 느려지기 시작하더니 앞 유리창으로 기어가는 차들의 행렬이 보였다. 그런데 조금 전까지 있었던 해가 보이지 않았다. 어디로 갔나 했더니 바로 내가 앉은 옆 유리창 너머에서 나를 쳐다보고 있는 것이었다. 내가 그렇게 보고 싶었는가? 나도 그렇게 붉은 해를 쳐다보았다. 버스는 기어가고 붉은 해는 어느새 논에 붙어 있는 작은 둔덕을 지나가고 있었다. 해가 나무들을 어루만지며 지나가는 모습을 보니 어릴 때 코스모스를 어루만지며 걸어가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그때는 코스모스가 왜 그렇게 슬프게 보였던지…….

하늘빛도 아름답지만 저렇게 앙상한 가지를 어루만져주는 붉은 해 또한 아름답게 보였다. 마치 윈드차임(여러 개의 짧은 금속관이 나무막대에 연이어 매달려 있는데 그것을 막대로 긁듯이 살짝 밀어주면 아름다운 소리가 난다) 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것 같았다. 또다시 몇 분을 달렸을까, 들판에서 겨울이 익어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더니만 드디어 먼 산에 해가 넘어가는 것이 보였다. 그때였다. 생각지도 않게 해 지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이었다. 아, 얼마나 그리운 소리였던가. 버스 소리를 비집고 들려오는 은은한 소리는 분명 평화의 소리였다. 비록 어릴 때 들었던 그 소리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내 마음에 평화를 심어주고 사라지는 해가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부디 이 평화가 오래도록 머물러주었으면…….

해가 지고 나니 노을빛도 서서히 흩어졌다. 그 짧은 아름다움을 위하여 서쪽 하늘로 모여든 구름도 임무를 마친 듯 본연의 빛깔로 돌아갔다. 조금 늦게 도착하여 노을이 되지 못한 구름도 있었지만 그렇다고 노을이 된 구름을 부러워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흐르다 보면 노을이 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혹시 나야말로 노을이 되려고 했던 구름이 아니었을까? 나는 왜 아직도 그런 부질없는 것에서 벗어나지 못하는가. 인생은 빛나는 어둠이라는 걸 아직 깨닫지 못했던가? 비록 노을은 되지 못했어도 하루를 열심히 흘러온 저 구름을 보라! 구름은 그저 흘러갈 뿐 노을에 얽매이지 않는다. 내 마음속에 평화를 심어주고 사라진 해의 선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