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등, 은하에 들다
시인의 말
시를 빚는 일은 나를 숙성시키는 과정이다.
잠깐 숨돌리고 뒤돌아보니 발자국들 흐트러지지 않았다.
시는 내 길에 아름다운 무늬를 수 놓았다.
좀 굴곡져 보이면 어떠리.
그건 그것대로 질서가 있는 것이라고 위무한다.
문양이 아름답기를 바라며 두 번째 시집을 펼친다.
격려해 주시고 도와주신 여러분께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거미집을 걷다
울고 있는 거미를 본다
투명한 실로 엮은 거미줄에
눈물방울 매달려 있다
조심스레 기다리다 걸린 사랑을
붙들지 못했나 보다
눈부신 햇살을 매다는 거미집
하늘색으로 짤까 구름색으로 짤까
아니면 진달래색으로 어떨는지
꽈배기 무늬를 두 줄 세우고
바탕에 격자무늬를 넣자
설계한 집 모양을 그리며
푸른 실 뽑아 한 코씩 엮어가며 성글지 않게 짠다
실을 잣으며 정성이 흘러버릴까 봐
손가락을 날렵하게 조인다
손목 시리게 엮은 거미집
너무 크고 색은 여위다
하늘 아래 하나뿐인
명품 가디건을 꿈꿨지만
내 바람일 뿐이었다
머리가 금 가는 소리가 난다
거미집을 새로 짓는다
물방울 매단
낡은 거미집을 걷어버린다
막차
막차가 떠났다
은단지 달무리 끌고
달그림자
차창 너머로 흘려버리며
먼 산 넘어 떠났다
노래는 풀꽃향기에 얹혀 흐르고
달빛에 적셔진 강물은
연가에 빠져 흘렀다
터진 바이올린에 찢어진 음표를 발견하기에는
너무나 해밝은 가슴이었다
떠나고 난 후 알았다
넌 베짱이, 난 개미
늦여름 햇살이 서산머리에 걸리고
들판은 아직 여물지 못했는데
나의 연가를 미완성으로 남긴 채
막차는 설원을 향해 떠났다
그리고
돌아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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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