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바리 부인이 탱고를 배웠었다면

   
송경화
ǻ
와이겔리
   
16500
2023�� 04��



■ 책 소개


저자는 스스로 탱고에 빠져들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탱고는 슬픔과 외로움에서 태어난 춤이기 때문이다. 부에노스아이레스 항구의 빈민가 이민자들의 비애와 고통을 담은 춤, 탱고. 이 책은 춤을 추며 삶의 의미와 기쁨을 찾은 저자의 좌충우돌한 탱고 입문기다. 또한 탱고를 막 배우기 시작한 이들을 위한 탱고 가이드이기도 하다.

탱고를 추기 전까지 저자의 삶은 불행했다. 저자는 태어나서 단 하루도 행복하다고 느껴본 적이 없었다고 고백한다. 설레는 일라고는 전혀 없이 폐쇄적인 일상만이 반복되어 인제 그만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 저자를 찾아온 것이 바로 춤이었다.

춤은 모든 것이 너무나 슬퍼서 제정신이 아니었던 저자를 구원했다. 격렬하게 몸을 쓰며 우울증을 이겨냈고,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며 그간의 외로움과 따분함 그리고 지루한 삶을 떨쳐낼 수 있었다. 늦은 밤 온몸이 땀에 흠뻑 젖어 집으로 돌아올 때마다 즐거움이 머리끝까지 차고 넘쳐 발걸음이 날아갈 것만 같았다. 삶의 고통과 슬픔이 춤을 만나 위로받고, 춤으로 얻은 에너지로 다시 삶을 이어갈 수 있었다.

인생이 끝난 것 같고, 지루하고 따분한 날들이 죽을 때까지 이어질 것만 같아서 두려울 때. 저자는 탱고 안에서 살아남았고, 춤을 추었으며, 태어나서 처음으로 뜨겁게 살았다. 중년의 나이에도 심장이 터질 만큼 즐겁고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무엇보다 춤은 저자가 ‘스스로 되고 싶은 자기 자신’이 될 수 있도록 해주었다. 저자는 춤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며, 그동안 잊고 지냈던 삶의 진정한 의미와 가치를 발견했다.

■ 저자 송경화
국립대 사범대학을 졸업하고 수도권에 있는 중학교에서 국어 교사 생활을 시작했다. 대학 시절 그림을 배우며 미대 대학원 진학을 꿈꾸었으나, 졸업한 그해에 바로 결혼을 해버린다. 결혼 후 삶의 목표를 상실하고 극심한 무기력증에 빠졌다. 겨우 말을 배우게 된 아이가 “우리 엄마는 너무 울어서 싫어요.” 하고 남들에게 말하고 다닐 정도였다.

그러던 어느 날 크루즈 여행에 필수라는 동네 연장자들의 꼬임에 넘어가 우연히 춤의 세계에 입문한 것이 삶을 송두리째 바꾸어놓았다. 살사와 키좀바, 아르헨티나 탱고 등을 추면서 그 에너지로 그림도 다시 시작할 수 있었고, 어린 시절부터 따라다니던 어두운 감정의 그림자를 말끔히 걷어낼 수 있게 되었다. “춤의 마지막이 탱고”라는 말 그대로 어려움도 많았지만, 이제는 탱고와 탱고 음악에 푹 빠져 살고 있으며, 탱고가 발생한 부에노스아이레스도 다녀왔다.

유화 작품으로 개인전을 열겠다는 계획은 점점 뒤로 미뤄지고 있으나 단체전에는 여러 번 출품했으며, 다섯 차례의 북유럽 여행을 책으로 엮어낸 『혼자이고 싶어서, 북유럽』이 있다.

■ 차례
프롤로그

1장 탱고의 도시 부에노스아이레스와 양조위
바 수르와 로드리고 1
바 수르와 로드리고 2
카페 토르토니에서 생긴 일
부에노스아이레스 탱고, 밀롱가 맛보기

2장 어느 날 춤이 다정하게 다가왔다
비운의 댄스스포츠 선생님
몰포드 아저씨와 영화 〈더티 댄싱〉
치마가 너무 짧아요, 선생님

3장 어쩌다 보니 중년에 탱고를
사랑은 가도 옛날은 남는 것
탱고는 시장 입구의 댄스 교습소에서 남몰래 배우는 춤이 아니다
스웨덴 여행의 악몽과 키좀바
보바리 부인과 결혼 우울증

4장 밀롱가 밀림 정복 프로젝트
나는야 거울 나그네
까베세오와 두통약
수학과 고틀란드섬
사뿐히 즈려밟고 갈게요. 감사하다는 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키가 작아서 슬픈 짐승이여
정년까지 가실게요
혹시 제가 블랙은 아니겠죠?
밀롱가와 도시락
로로랜드, 라라랜드

5장 나의 취향, 타인의 취향
직업은 알아서 뭐 하게요
멋짐과 새로움
크루즈 여행 참혹사
겨울 스페인 여행과 스타킹
또 공단 원피스로 할게요
양복과 구두 그리고 레콜레타 공동묘지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밀롱가 춤 애증기
시몬스 침대와 어장
여름은 싫지만, 쿠바는 좋아
헬스장에서 푸글리에세 음악을 듣다니요?
밀롱가에서 그림 감상도 함께

6장 이상한 코로나 나라의 엘리스
영국 항공이 사라졌다!
아, 헬스장 너마저
코로나와 솔땅
이제 마스크는 화장?
뜻밖의 이별 알마 님
나의 동무들은 어디에 있나요?

에필로그

 




보바리 부인이 탱고를 배웠었다면


탱고의 도시 부에노스아이레스와 양조위

부에노스아이레스 탱고, 밀롱가 맛보기

탱고를 배워 본 적 없는 클래식 애호가가, 오직 탱고 때문에 부에노스아이레스를 일부러 찾아가서 공연을 관람하고 자신의 경험을 쓴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저자는 시종일관 감탄사를 연발하며 탱고에 가까이 다가가고 싶어 한다. 책을 다 읽고 저자가 너무나도 안타까웠다. 만약 탱고를 출 줄 알았으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뜨거운 심장에 더 가까이 갈 수 있었을 텐데 하는 마음에서였다. 연인을 사랑하지만, 눈으로만 뜨겁게 사랑하고 손 한 번 잡아보지 못한 그런 사람을 바라보는 심정이라고 해야 할까.


3주간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머물며 네 번의 탱고 쇼와 수많은 길거리 공연을 보았지만 시종일관 내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소규모 공연이었다. 스테이크를 써는 코스 요리의 정찬을 끝낸 후 본 화려한 탱고 쇼도 나에게는 길거리 공연만 한 감흥도 주지 못했다. 화려한 탱고 쇼의 관객들은 주로 투어 버스를 타고 온 관광객들이었으며, 그들의 눈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 무대는 화려하고 댄서들의 동작은 마치 서커스단같이 일사불란하고 현란했다. 이런 쇼를 위한 탱고를 ‘에세나리오’라고 하는데 잘 모르는 사람들은 탱고는 모두 그런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탱고의 발생지 부에노스아이레스라고 어디에서나 길거리 탱고 공연을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산텔모 지역의 디펜서 거리에 가야만 제대로 볼 수 있다. 라 보카에서는 레스토랑 두세 곳에서 공연해서 서서 볼 수는 있지만, 호객 행위로 맘 편하게 보기는 힘들다. 맘 놓고 편하게 어딘가에 기대어 거리 공연을 볼 수 있는 곳은 디펜서 거리의 거의 끝에 있는 ‘도레고광장’이 제격이다. 건장한 체격의 중년 남자의 현란한 발재간이 있는 춤도 재미있지만, 탱고에 대한 설명(물론 스페인어여서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지만)은 제법 아카데믹한 분위기를 풍기기도 한다.


하지만 서울에서와 마찬가지로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탱고의 진수는 밀롱가다. 나에게는 밀롱가에서 추는 탱고가 진정한 의미의 탱고라는 뜻이다. 탱고는 외로움 속에서 생겨났다고 한다. 일자리를 찾아 스페인이나 이탈리아 등에서 부에노스아이레스로 온 하층민 남자들은 주로 라 보카나 산텔모 지역에 거주했는데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남자들끼리 부둥켜안고 스텝을 밟으며 서로를 위로했고 그렇게 슬프게 태어난 춤이 탱고다. <해피 투게더>에서 여휘로 분한 양조위가 장국영을 끌어안고 외로움에 몸부림치며 탱고를 추듯이.


짧은 기간이지만 밀롱가를 여기저기 다니다 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랑 달리, 어떻게 보면 낡아빠진 옛날 노래와 춤일 수도 있는 탱고를 이곳 사람들은 왜 이렇게 사랑하는 걸까. 단지 역사와 전통을 지키기 위해서인가? 오래 머무르지는 않았지만, 이곳에서 폰을 소매치기도 당하고 유심을 바꾸는 사소한 일에도 긴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하는 짜증스러운 상황 등을 경험했다. 식물원 입장료는 공짜지만 관리할 돈이 없는지 모든 온실 문이 굳게 닫혀있어 들어갈 수 없었다.


지하철 요금은 싸지만 거의 굴러다니는 수준으로, 범죄가 발생할 여지가 있는 지하철역의 출입구는 밤 8시에 벌써 굳게 셔터가 내려져 있어 사람들과 함께 출입구를 찾아 헤매었다. 인플레이션이 1년에 거의 50%에 육박하니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어버린 사람들은 돈이 생기면 그냥 다 써버린다고 한다. 그리도 도난을 방지하기 위해 도서관 서가에도 책이 안 보였고, 사물함에 모든 짐을 맡기고 필기구 정도만 들고서야 도서관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러니 따뜻한 시선과 포근한 아브라소가 있는 탱고 밀롱가가 아니면 이곳 사람들 중 영혼이 여린 사람들은 어디에서 삶의 고통을 위로받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러니 태어나서 하루도 행복하다고 느껴본 적 없이 없는 나도 그들처럼 춤에, 탱고에 빠져들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외로움 속에서 생겨난 춤이 탱고이니까.



어쩌다 보니 중년에 탱고를

보바리 부인과 결혼 우울증

나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내가 굉장히 시간이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끊임없이 여러 가지 춤을 배우고 그림을 그리며, 지금도 주 3회 이상 탱고를 추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결코 한가한 사람이 아니었다. 독박육아에, 남편은 그 흔한 학원 픽업 한 번 해줄 수 없을 정도로 매일 자정이 넘어서야 퇴근을 했다. 아이가 서울에 있는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부터는 다섯시쯤에 일어나 아침밥을 준비하고 스쿨버스에 태워 보낸 후, 집에서 한 시간 이상 걸리는 먼 곳으로 출근을 했다. 그때도 밤에는 살사나 키좀바를 추러 살사 바나 홍대까지 다녔고, 화실에서 그림을 그렸다. 그것들이 나를 살아가게 하는 힘이었기 때문에 살기 위해서라도 계속하지 않을 수 없었고, 힘든 순간도 많았지만 즐거운 순간이 더 많았다.


아이가 어릴 때는 가사도우미를 써본 적도 많았고, 함께 살기도 했다. 하지만 나보다 나이가 더 많은 가사도우미를 쓴다는 건, 남에게 이래라저래라 요구하는 성격이 아닌 나에게는 거의 시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것과 마찬가지로 힘든 일이었다. 그래서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고부터는 더는 사람을 쓰지 않았다. 차라리 몸이 부서지게 일하는 편이 더 속이 편했다. 그러면서도 한시도 책을 손에서 놓지 못했다. 어릴 때부터 습관이 되어 책을 읽지 않으면 마치 밥을 굶은 듯 안절부절못하기 때문이다.


최근에 프랑스 작가 귀스타브 플로베르의 소선 『보바리 부인』을 다시 읽었다.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면 “그거 불륜 이야기잖아요.” 하는 바로 그 책이다. 소설가 김영하는 책 『읽다』에서 “누구나 책을 읽으면 어느 정도는 돈키호테나 엠마 보바리처럼 된다.”라고 책의 영향력을 언급하면서 주인공 엠마 보바리의 삶을 속속들이 조명했는데, 그 내용이 흥미로웠기 때문에 원작을 다시 읽고 싶어졌다. 도서관에서 빌린 책은 대략 650쪽이 넘게 두꺼웠다.


김영하 작가의 말대로 엠마는 기숙학교에서 금서인 연애소설을 몰래 탐독하며 거기에서 인생의 길을 발견한다. 그런데 그녀가 읽던 소설 속 남자들은 현실의 남자들과 달리 하나같이 말쑥하게 차려입은 용감한 신사들이다. 그들은 박해받는 귀부인과 사랑을 나누고, 사자같이 용감하지만 양처럼 유순하고, 눈물이 많고 멋진 키스로 여자를 황홀하게 할 줄 아는 한없이 다정자감한 사람들이었다. 이런 소설들을 읽으면서 엠마는 극적인 일이라곤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 진부한 삶이 아니라 연애소설 속 주인공들처럼 극적이고 화려한 삶을 살고 싶었다. 흰 깃털로 장식한 멋진 기사들이 검정말을 타고 자신에게 달려오는 것을 즐기며 인생을 보내고 싶었다고나 할까.


기숙학교를 졸업한 엠마는 보바리라는,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거의 독학으로 공부하다시피 해서 의사가 된 남자와 결혼한다. 하지만 결혼하고 나서 바로 실망한다. 남편은 성실한 사람이었으나 잘생기지도 않았고, 외모를 돌보는 데도 관심이 없었고 결혼생활이 엠마가 꿈꾸던 정열과 행복으로 가득한 삶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사랑을 위해 위험을 불사한다든가, 사치스러운 생활과 대담한 쾌락 등 책에서 읽었던 그토록 아름다운 것들이 결혼생활에는 없었다.


결혼 후 자기 삶에서 더는 아무것도 새로운 것이 일어날 가능성이 없자, 그녀는 무기력증에 빠져 까다롭고 변덕스러워진다. 엠마를 사랑하는 남편은 아내의 신경증을 치료하기 위해 환경을 바꾸려고 이사까지 해보지만, 엠마는 자신이 행복하지 않은 원인을 모두 남편에게 돌려 그를 증오한다.


이사한 곳에서 딸이 태어나지만 엠마는 자녀에게도 전혀 관심이 없다. 한편 안정적으로 자리 잡았던 병원을 포기하고 오직 아내를 위해 낯선 동네로 이사해서 다시 병원을 개업한 남편 보바리는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게 된다. 동네 사람들의 신임을 한 몸에 받는 약사가 몰래 불법으로 의료 행위를 하여 정작 병원으로는 환자가 거의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느 날 이웃 마을에 사는 독신이고 바람둥이인 로돌프가 환자인 농부를 데리고 병원에 왔다가 젊고 아름다운 엠마가 남편에게 이미 싫증이 나 있다는 걸 알아챈다. 두세 마디 다정한 말만 해줘도 금방 넘어올 거라는 걸 눈치채고, 꿈과 정열, 운명적 사랑 이야기 등을 달콤하게 하면서 로돌프는 그녀를 쉽게 유혹한다. 애인이 있다는 생각이 엠마를 달라지게 해 그녀는 점점 적극적으로 변하고, 남편의 수입은 형편없는데 자신의 치장과 선물 등에 엄청난 돈을 쓰니 점점 빚이 늘어나기 시작한다.


결국 엄청난 빚더미에 모든 것이 경매에 넘어가게 되고 남편도 그 사실을 알게 되자 그녀는 비소를 먹고 생을 마감하고 만다.


엠마가 연애소설 속의 삶을 현실에서 실현하고 싶었던 것처럼, 내가 고향을 떠나 혈혈단신 수도권으로 온 이유도 책의 영향이 절대적이었다. 대학교 3학년 때였다. 어느 날 같은 과 친구가 자신이 좋아하는 책이라며 읽어보라고 책 한 권을 내밀었다. ‘장 그르니에’라는 프랑스 작가가 쓴 『섬』이라는 책이었다. 그리고 그 책을 건너 받은 이후로 『섬』이라는 책은 내 인생을 완전히 바꾸어버렸다. 너무나 좋아서 품에 안고 수도 없이 읽은 그 책으로 인해 어릴 때부터 낯선 곳을 동경하던 나는, 집을 떠난다는 사실에 두려움은커녕 기대와 행복감으로 벅차올랐다. 특히 이 구절을 읽으면서는 숨을 몰아쉬어야 할 만큼 상상만으로도 황홀했다.


혼자서,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낯선 도시에 도착하는 공상을 나는 몇 번씩이나 해보았다. 무엇보다도 그렇게 되면 비밀을 간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부모님 몰래 원서를 제출하고 더 멋지게 살기 위해 그림까지 배우면서 드디어 집을 떠나왔다. 엠마처럼 책의 영향력이 절대적이었던 나는, 책 속에서처럼 타향에서의 앞으로의 삶이 낭만적일 줄 알았다. 결혼생활도 마찬가지로 낭만적이고 아름다울 줄 알았다. 하지만 실제 결혼생활과 육아는 책이나 영화가 아니었다.


또 다른 중요한 공통점 하나는 결혼한 뒤, 모든 게 너무나 슬퍼서 제정신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부모님의 결사반대에도 불구하고 혈혈단신 수도권으로 올라온 나는 자유로운 생활 대신 금방 결혼이라는 걸 해버린다. 지독한 향수병 때문이었다. 그래서 개천에서 용 난, 공대 오빠랑 결혼했다. 출신 지역이 같다는 오직 한 가지 이유만으로도, 모든 단점을 가리고도 남았다. 한강을 오가는 전철 안에서 한강물 오염 정도를 알려주는 PPM 수치 등을 그가 늘 이야기할 때, 나는 이미 알았어야 했다. 앞으로의 결혼 생활이 낭만이라고는 없는 메마른 생활이 될 것임을.


살사를 시작하기 직전에는 엠마처럼, 치료를 받아야 할 정도의 극심한 우울증을 겪었다. 삶이 폐쇄적인 자기 복제를 무한 반복하고 있는, 설렘이라고는 전혀 없는 따분한 일상 따위는 인제 그만 살고 싶었다. 그때 춤이 내게로 왔다. 살사에 입문하면서 정말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명색이 교사라지만 사회성이 젬병인 나는 살뜰하게 서로를 보살펴 주는 동호회라는 세계에 들어서면서 그간의 외로움과 따분함, 지루한 삶을 모두 떨쳐낼 수 있었다. 늦은 밤 온몸이 땀에 흠뻑 젖어 문을 나올 때마다 즐거움이 머리끝까지 차고 넘쳐 발걸음이 날아갈 것만 같았다.


만약 엠마 보바리 부인이 살사나 탱고를 알고 배웠다면 어떠했을까 생각해 본다. 땀에 흠뻑 젖어 춤이라는 운동을 하는 그녀. 아이 콘택트를 하며 살사를 추거나 포근하게 포옹하며 탱고를 추는 엠마 보바리. 그랬더라면 아마 그녀는 따분한 결혼생활과 조금의 설렘도 없는 밋밋한 일상생활을 충분히 견뎌낼 수 있었으리라. 물론 춤바람이 났을 수도 있다. 하지만 춤바람이 나도 최소한 죽고 싶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저 멋진 남자를 다음에는 놓치지 않고 꼭 잡을 거야.’ 하는 행복한 긴장감만이 그녀 엠마를 지배했으리라.



나의 취향, 타인의 취향

멋짐과 새로움

일반적으로 남자들은 시각에 약하고 여자들은 촉각에 약해서, 그렇게 어필해오면 이성에게 잘 넘어간다는데 나는 여자임에도 시각적인 것에 무척 예민하다. 그래서인지 멋을 낸 남자들을 보면 무한히 감동하고, 같은 여자들도 멋을 낸 사람이 좋다. 화장도 하지 않고 대충 입고 모임에 나타난 사람들을 보면 무례함마저 느낀다.


춤의 세계에서는 춤 잘 추는 게 최고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물론 춤실력이 뛰어나다면 상대를 배려해주는 마음의 여유도 가질 수 있어 매력적인 이성이 될 수 있다. 하지만 탱고를 잘 추지 못하더라도 왠지 끌리는 사람이 있다. 내게 그런 느낌을 주는 매력적인 땅게로는 항상 멋지게 자신을 꾸밀 줄 아는 분들이었다. 그런 멋진 분이랑 탱고를 추고 있으면 나 자신이 마치 공주나 왕비가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물론 나랑만 춤추는 건 아니지만 춤추는 순간만큼은 나를 위해 멋지게 꾸미고 온 것 같아 마음이 설레고 즐겁다.


숙소와도 가까웠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밀롱가 파리아에서 멋진 분이랑 까베가 된 적 있었다. 멕시코에서 왔다는 그는 단정한 슈트에 헤어스타일, 콧수염, 구두까지 빈틈없이 멋을 내었고 아브라소와 리드도 최고였다. 사랑하는 왕자의 곁에 있기 위해 마녀의 도움으로 두 다리를 가지게 된 인어공주가, 걸을 때마다 극심한 통증을 느꼈지만 참아낸 것처럼.


춤을 추는 순간만큼은 누구나 자신이 되고 싶은 게 될 수 있다. 그러니 현실에서 살짝 벗어난 변화도 필요하지 않을까. 어쩌면 탱고를 춘다는 것은 꿈속의 멋진 남자처럼 황홀하게 안아줄, 이것을 꼬라손이라고 하던가, 그 누군가를 찾기 위한 과정으로 오디세우스의 방랑과도 같다. 그 아름답던 순간도 10분이면 끝나고, 또 다른 새로운 곳으로 떠나가야 하니까. 하지만 그 순간들이 하늘의 별처럼 내 인생에 점점이 찍힌다면 삶은 충분히 아름답다. 어쩌면 새롭고 멋진 사람을 만나 인생에 또 하나의 반짝이는 별을 찍기 위해, 오늘도 밀롱가로 발걸음을 향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에필로그

<에샤 바일라(Ella Baila), 탱고 신동의 추억> 이라는 기록 영화를 최근에 보았다. 아르헨티나의 유명한 탱고 댄서 ‘바일라’는 춤 중에서 가장 스펙터클한 춤이 탱고라고 말했다. 스펙터클은 쇼를 의미하는 라틴어 스펙타쿨룸에서 온 프랑스어로 탱고가 다른 춤에 비해 굉장히 화려하고 웅장한 춤이어서 그런 말을 한 것이다. 그런 화려하고 웅장한 춤을 일반인이 어느 정도 출 수 있게 되기까지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고, 힘든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그러나 비교적 쉽게 즐길 수 있는 다른 춤에 비해 탱고는 배울수록 더 많은 매력을 느낄 수 있어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다.


돌아보면 예술을 수동적으로 접하던 시기의 내 삶은 늘 우울하고 감정은 불안했다. 예술의전당까지 가서 전시회를 관람하거나 연주를 듣고 돌아오는 길에도 가슴이 뚫리는 시원함보다는 피로감이 엄습했다. 그것은 예술의 수준과는 전혀 상관없었다. 그런데 춤을 추고, 그림을 그리면서 나는 달라졌는데 거기에는 다 이유가 있다.


어느 날 우연히 천문학자 이명현 님의 EBS 특강을 듣게 되었다. 심리학자도 아닌데 행복에 관한 특강이라니 신기했지만, 그는 과학도답게 행복해지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알려주었다. 자신에게 맞는 재미있는 활동을 찾아 규칙적으로 반복할 때 사람은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의 말은 요즘 유행하는 ‘리추얼 라이프’, ‘갓생’과 의미가 비슷했다. 행동 패턴이 습관적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의식적으로 반복하여 심리적인 만족감과 성취감을 얻는 삶의 방식 말이다.


일회성인 공연이나 연주회 관람과는 달리, 그저 좋아서 살사나 탱고를 규칙적으로 추고 그림도 꾸준히 그리면서부터 심리적 만족감과 행복감이 느껴졌고 그 결과 우울증과 무력감도 사라진 것이다. 그리고 예술이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이라면, 춤과 그림이 나를 즐겁게 할 때가 많으니, 나는 진짜 예술가가 된 것이다. 나는 태생적으로 수동태인 사람이 아니라 능동태인 사람이었던 것이다.


탱고는 슬픔의 춤이다. 슬픔에서 잉태되었고 고통과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서 탄생하였다. 탱고가 발생한 라 보카 지역은 여행객이 바글대는 지역에서 한 발짝만 벗어나면 덧문도 다 망가진 좁은 쪽방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초기 이민자들이 살았고 지금도 도시 빈민들이 살고 있는 집들이 이어져 있었다. 부에노스아이레스를 여행하면서 나도 왜 그들처럼 탱고 음악과 춤에 점점 더 끌리는지를 생각해 보았다.


그러자 누구에게나 생의 한 시기에는 있을 수 있는, 잘 묻어두었던 어두웠던 시기와 감정이 떠올랐다. 물론 슬프고 고통스러운 순간이 많았다. 하지만 결핍에서 생긴 고통이 내 삶의 추진력이 되어 오히려 인생이 풍부해졌다는 사실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춤과 그림, 그리고 여행이 바로 그것이다. 삶의 고통과 슬픔이 춤을 만나 위로받고, 춤으로 얻은 에너지로 그림과 여행까지 다시 시작할 수 있게 되었으니 나의 삶은 앞으로도 더욱 풍부하게 계속될 수 있을 것이다.


* * *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