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아, 과학이야

   
임소정
ǻ
필름(Feelm)
   
15000
2022�� 12��



■ 책 소개


그래프 뒤에 서 있던 사람의 이야기

이 책에서 과학은 공부하고 외우는 ‘지식’이 아니라 변화하는 세상을 이해하는 ‘방법’이다. 고정관념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비판적으로 풀어가는 작가의 글은 모든 문제의 해결은 정확한 질문을 찾는 데에서 출발하며, 능동적인 사고방식이 얼마나 삶의 방향성을 더 선명하게 만들어주는지 보여준다.

열등감을 가지게 만든 것도, 절망에 빠진 자신을 구원해준 것도 과학이었다. 작가는 오랜 기간 과학을 배우고 익힌 전문가이지만, 현재 연구실에서 실험을 하는 연구자는 아니다. 그래서 남들은 화려하게 피어나는 커다란 꽃봉오리들 같았고, 자신은 비척대다가 말라비틀어진 잡초 같았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작가는 더 이상 꽃이 피네 마네를 고민하지 않는다. 때 이른 발아는 식물을 죽이기 때문이다. 씨앗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싹을 틔우는 것이 아니라 싹을 틔우는 타이밍을 아는 것이다. 작가는 발아 호르몬 농도가 임계점에 도달할 수 있도록 하루를 충실하게 살아낸 뒤라면 세상으로 한 발 삐죽 내밀 수 있는 날이 오리라 믿는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을 때쯤이면 누군가를 이해하는 일도, 자신의 마음을 달래는 일도 조금은 달라질 것이다.

■ 저자 임소정
포항공과대학교에서 식물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지만 학위의 적절한 쓰임은 찾지 못했다. 타고난 예민함과 감수성이 연구를 업으로 삼기에는 악조건이라는 사실에 한때 좌절했으나, 진진하게 인생을 숙성시키는 데에는 최적의 조건임을 이제는 안다. 듣는 이의 눈시울이 붉어지는 과학을 이야기하며 사는 것이 연구하지 않는 과학자로서의 마지막 꿈이다.

과학 커뮤니케이터
2016년 페임랩 코리아 출전
팟캐스트 〈과장창〉, 〈매불쇼〉 출연
KBS 라디오 〈조우종의 FM대행진〉 출연

■ 차례
추천의 글
프롤로그

01 나는 너를 죽이려 했다
02 싹을 틔우는 것보다 중요한 씨앗의 일
03 그 겨울의 도서관
04 왜냐는 질문
05 논문은 결론으로 끝나지 않는다
06 껍데기 없이 존재하는 생명은 없다
07 전업주부 유전자
08 사람이 없는 공상과학
09 인종은 없다
10 가장 가깝기 위한 거리두기
11 그들만의 축제
12 머리를 잘랐다
13 산 자에게 주어진 가장 중요한 선택권
14 부처님과 클로닝
15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
16 물이 사라졌다
17 여전히 참 쉬운 손가락질들
18 나까지 그럴 필요는 없다
19 에메랄드 인간
20 애피컬 도미넌스
21 유전적 독립
22 잊으려 할수록 가까워지는 절망에 대응하여
23 문제적 구성원
24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
25 닿지 않아도 느낄 수 있어요
26 돌 속에 갇힌 오로라

에필로그

 




괜찮아, 과학이야


나는 너를 죽이려 했다

가장 불편하고 받고 싶지 않은 선물이 있다. 바로 화분이다. 2년 전, 집들이 선물로 들어온 손바닥만 한 화분이 내가 직접 받은 마지막 화분 선물인데, 그때까지는 살아있는 생명을 정성으로 기르고 내 집의 일원으로 함께할 수 있는 몸과 마음의 에너지가 충만했다. 이 화분은 우리 집에 거의 나와 비슷한 시기에 입주를 해서 2년간 온갖 우여곡절을 다 겪었다. 일단, 선물을 준 친구가 식물의 이름을 적어 놓은 푯말을 잃어버린 까닭에 아직도 무슨 식물인지 모른다. 덕분에 볕을 좋아하는지, 음지를 좋아하는지, 물을 많이 주어야 하는지, 적게 주어야 하는지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매일 들여다보면서 화분이 온몸으로 보이는 삶의 신호를 살뜰히 체크하고 그에 따라 물을 주거나, 볕을 쬐게 해 주거나 했다.


지난여름 장맛비가 내리던 날, 빗물을 마시게 해주고자 베란다 화분 걸이에 녀석을 내어놓았다. 다음날 비가 개었는데, 나는 화분을 들이는 것을 깜빡했다. 이틀이 지나서 창문을 열었는데, 맙소사, 식물이 새카맣게 타들어 가고 있었다. 억장이 무너졌다. 화분이 뜨끈뜨끈했고, 37도에 육박하는 한여름 날씨에 직사광선을 그대로 맞은 식물은 이파리가 새카맣게 타버린 채로 죽어가고 있었다. 혼비백산에서 바로 욕실로 들고 들어가서 찬물을 줬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자 잎들이 우수수 떨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곧 식물이 죽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확실하게 말라 죽지 않은 식물을 쓰레기통에 넣고 싶지 않아서 명을 다하고 바싹 마르기 전까지는 화분을 책상 위에 두고 보고 또 봤다. 아직 살아있는 식물을 쓰레기통(정확히는 유전자 변형 생물을 분리수거하는 통)에 처박는 일은 대학원에 있으면서 진저리가 나게 했다. 그래서 다시는 숨이 붙어 있는 식물을 쓰레기통에 처박는 일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자 까맣게 탄 잎이 떨어진 자리에 새로운 잎의 순이 돋아났다. 2~3밀리미터밖에 되지 않는 그 쪼끄마한 연두색은 바로 옆의 까만색과 무척이나 대비가 되며 ‘다시 살아남’을 너무도 분명하게 표시하고 있었다. 너무 고마웠다. 잎을 잡고 우리 다시 잘 살아보자고 악수했다. 그 뒤로 이 식물은 꽃대도 아닌 요상한 잎대를 올리며, 자라나는 아이가 부모에게 온갖 재롱으로 기쁨을 주듯, 내게 소소한 즐거움을 주었다. 한여름의 직사광선을 그대로 맞고 반쪽이 그대로 날아가버린 덕분에 새순이 돋은 뒤에도 머리가 찌그러진 듯한 요상한 생김새를 하고 있는데, 그마저도 나한테는 세상 이쁜 내 새끼였다.


몹시 지친 어느 날이었다. 화분이 부리는 재롱을 보기는커녕, 뜨문뜨문 물을 주는 정도로 녀석과의 관계를 유지하던 차였다.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실망하는 일이 생기며 정신적인 피로가 극에 달했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일들이 몰리면서 평일 밤늦게까지, 주말에도 아침부터 저녁까지, 쉴 새 없이 일을 하게 된 때가 있었다. 내 한 몸 건사하기도 버거웠다. 집은 정말 잠만 자는 곳이었다. 그런데 나는 회사 일 외에도 벌여놓은 외부 활동이 많아서 집에서조차 편하게 쉴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시간은 없고, 몸은 피곤하고, 예전처럼 새벽 3시나 4시까지 버티며 일을 해낼 수 있는 체력도 아니었고 정말 미치고 팔딱 뛸 노릇이었다. 그 불똥이 애먼 곳에 튀었다. 내가 몇 주를 까먹는 사이에 살짝 시들해진 화분을 보자, ‘녀석을 이제는 보내줘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녀석을 죽이기로 마음먹었다. 내 한 몸 건사하기도 버거운데, 책임져야 하는 생명이라니. 사실은 물만 주면 되는 것인데, 그때는 ‘목숨’을 하나 더 책임진다는 사실이 너무 짐스러웠다. 정신이 지쳐 제대로 된 판단을 하지 못한 것이다. 그렇게 나는 화분을 일부러 말렸다. 너무도 예뻐했던 잎대 끝의 얇고 넓은 잎이 가장 먼저 바싹 말라버렸다. 죽어가는 과정을 보면서도 방치했다. 녀석이 알아서 말라 죽으면 종량제 봉투에 넣어서 버릴 참이었다. 이 집에 내가 책임져야 하는 그 어떠한 산 것도 있어서는 안 됐다.


그날도 집에 늦게 들어왔다. 화분 자리에 녀석이 없었다. 화들짝 놀라서 찾고 있으니 먼저 퇴근한 남편이 “네가 화분을 까먹은 거 같길래 내가 물 줬어.”라고 했다. 맥이 탁 풀렸다. 꼭 저렇게 한 번씩 안 하던 짓을 한다. 욕실 세면대에서 녀석은 아주 오랜만에 물을 먹고 있었다. “나 걔 죽여서 버리려고 했는데….”라고 하니 남편은 “아, 그래? 몰랐어.”라고 했다. 그렇게 또다시 화분은 며칠 동안 욕실 세면대 위에 원래 거기가 제자리인 양 방치되어 있었다. 한여름의 화염 속에서도 살아남은 화분의 생명력은 어마어마했다. 일부러 말려 죽이려 해도 죽지 않고, 다시 살아났다. 몰골은 더욱 처참해졌지만, 여전히 녀석은 살아있었다.


이제 화분은 다시 원래의 자리인 창가의 테이블 위에 놓여 있다. 흙이 마르면 물을 준다. 나는 다시 녀석과 끝까지 한번 살아보기로 마음먹었다. 앞으로는 내가 아무리 힘들고 버거워도 저 친구를 벗 삼아 힘을 얻으며 견뎌보기로 했다. 이렇게까지 학대하고 모질게 굴었는데도 기어이 파란 잎을, 새순을 끊임없이 보여주다니. 여름이 오면 분갈이도 해줄 참이다. 아무리 힘들어도 이 친구와의 인연은 이제 끝까지 가져가려 한다.



그 겨울의 도서관

과학 커뮤니케이터로 활동한 지 3년 차가 되던 해의 겨울, 특이하게도 도서관에서 강연 요청이 왔다. 대구의 고산 도서관이었다. 강연 요청을 받으면 가장 먼저 원하는 주제가 있는지, 청중은 어떤 사람들인지를 알아본다. 그간 학교에서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과학 강연만을 해왔던 터라, 도서관 강연의 청중은 도저히 가늠할 수 없었다. 지역 사회의 다양한 사람들이 참석한다는 이야기만 듣고, 전공이었던 식물을 주제로 ‘어디서도 들어본 적 없는 식물 이야기 - 식물잡썰’이라는 제목의 강연을 준비해 갔다.


어느 정도 짐작은 했지만, 실제로 가보니 강당에는 꽤나 넓은 스펙트럼의 청중이 모여 있었다. 200명이 앉을 수 있다던 강당이 가득 차 있었다. 강연 내내 발 장난을 치거나 큰 소리로 까르르 웃던 유치원생 아이부터, 도대체 평일 이 시간에 어떻게 온 건지가 궁금한 교복을 입은 학생, 주부, 돋보기를 쓰고 뭔가를 계속 받아 적으시던 할머니, 중절모를 쓰신 할아버지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그날, 강연을 하며 정말 많은 눈들과 마주쳤다. 강연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나는 꼬리를 무는 생각들에 발목을 잡혀 점성이 높은 꿀 속을 걷듯 느릿느릿 걸었다.


강연을 요청한 도서관 관장님은 열정적인 분이었다. 어떻게 하면 도서관이 지역 사회에서 더욱 필요로 하는 커뮤니티의 역할을 할 수 있을까를 끊임없이 고민했고, 그중 한 가지 시도가 교수급이 아닌, 젊은 과학자들이 하는 새로운 스타일의 과학 강연이었다. 강연이 끝난 뒤, 예상치 못했던 주민들의 높은 관심과 호응에 몹시도 감동했던 나는 “노인과 주부들의 참여가 인상 깊었어요.”라고 운을 뗐다. 그리고 되돌아온 관장님의 대답에 나는 뭔가 야단을 맞은 듯한 묘한 죄책감을 느꼈다.


“어떤 노인분들은 강연만 있으면 꼭 참석하세요. 젊어서는 먹고살기 바빠서 배우지 못한 아쉬움을 이제라도 풀어보고 싶으신 거죠. 어떤 분은 본인도 젊어서는 과학을 전공하셨대요. 그런데 애 낳고 키우며 사느라 그런 걸 포기하고 살다가 이런 강연 들으며 후배 과학자들의 모습에서 뿌듯함을 느끼신대요. 엄마들이 자식들 공부시키려고 데려왔다가, 자기가 더 많이 공부가 되었다며 돌아가기도 해요.”


‘노인과 주부’, 나이 든 어른. 부끄럽게도 그동안 나는 그들을 과학 문화의 수요자로 고려해 본 적이 없었다. ‘나이 든 사람들은 과학적 호기심이 없나?’ 어쩌면 우리가 은연중에 아이들은 과학적 호기심으로 충만한 존재지만, 나이 든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고 쉽게 단정 지어 버린 것은 아닐까. 물론 나도 어느 모임에서 섣불리 과학 이야기를 꺼냈다가 분위기를 망친 대역죄인이 되어 입을 봉한 경험이 여러 번 있다. 그렇지만 이러한 반응이 단순히 연령 때문이라고 할 수 있나. 내가 그날 도서관에서 만난 어른들은 과학에 관심이 없어서가 아니라, 당장 먹고사는 문제가 더 급해서, 혹은 나 자신보다 더 챙겨야 할 존재들이 있어서, 자신의 호기심과 배움에의 의지를 뒤로 미뤄두고 살아온 사람들이었다.


뇌 신경세포의 형광 현미경 사진을 보며 마치 한 편의 예술 작품을 보듯 경탄하던 노인의 얼굴이 선하다. 입으로 감탄사를 내뱉으며 열심히 필기하던 어머니들의 분주한 손이 기억난다. 엄마들은 아이들보다 더 열심히 질문했고, 그 질문 하나에 앞서 차근차근 나름의 과학적 논리를 전개했다.


쌀밥 한 공기 배불리 먹는 것이 소원이던 시절을 살아내느라 배우고 싶은 마음은 포기하고 살아온 이와, 배 속에 품어 키울 때부터 양보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 나의 성취보다 가족과 자식의 성취를 우선하며 살아온 이들이 이제야 스스로를 위해 무언가를 해보겠노라며 도서관을 찾는 그 발걸음을 나는 진심으로 응원하고 싶다. 소통은 막히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내가 과학을 이야기할 때에는 학력, 나이, 직업, 성별 등을 불문하고 장벽도, 소외되는 이도 없기를 바란다.



에메랄드 인간

굳이 보석을 모으는 취미가 없더라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름이나 색깔 정도는 알고 있는 보석이 다이아몬드, 루비, 사파이어, 그리고 에메랄드다. 그만큼 유명한 보석인데도 우리가 잘 모르는 특징들이 많았다. 에메랄드는 사실 단점투성이의 보석이다. 태생적으로 내포물이 많다. 보석이란 모름지기 투명하고 깨끗해야 높게 쳐주는데 에메랄드는 그런 물건이 거의 없다. 명품관에서 합성석처럼 색이 진하고 깨끗한 에메랄드 반지를 본 적이 있는데 가격이 억 단위였다.


에메랄드는 맨눈으로 봐도 기포나 금과 같은 잡티가 많다. 그래서 투명도를 높이는 처리 방법이 발달했다. 대표적인 것이 오일 처리다. 삼나무 오일에 에메랄드를 넣고 열과 압력을 줘서 오일이 보석의 틈새로 스며들게 한다. 그러면 투명하고 매끈해 보이는 보석이 된다. 이런 처리법은 물질의 굴절률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것이다. 물이 든 유리 비커에 유리 막대를 넣으면 물의 표면에서 막대가 굽은 것처럼 보인다. 공기와 물에서 빛의 굴절률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둘 사이에 눈으로 구분할 수 있는 경계가 생긴다. 반대로 말하면, 서로 다른 물질이 있더라도 둘의 굴절률이 같다면 빛이 그냥 통과하므로 우리 눈으로 그 경계를 구분할 수 없다.


과학 마술 중에, ‘사라지는 유리 비커’ 실험이 있다. 투명한 액체가 들어있는 수조에 유리 비커를 넣으면 비커가 사라진다. 수조에 담긴 액체는 글리세린이다. 글리세린의 굴절률은 1.473이고 유리 비커의 굴절률은 1.517정도다. 둘의 굴절률이 비슷해서 글리세린에 유리 비커를 넣는 순간, 비커가 사라지는 것처럼 보인다.


에메랄드의 오일 처리에도 동일한 원리가 적용된다. 일반적인 콜롬비아산 에메랄드의 굴절률은 1.57정도이고, 삼나무 오일의 굴절률은 1.51정도이다. 에메랄드 속 기포를 채우는 공기의 굴절률은 1정도이므로, 그 부분이 오일로 채워지면 기포가 완전히 사라진 것처럼 보인다. 물론, 이렇게 후가공이 된 에메랄드는 그 시장 가치가 떨어진다. 그래서 에메랄드를 살 때는 오일 처리 여부를 꼭 확인해야 된다.


내부에 얼이 많다 보니 에메랄드는 특히나 쉽게 깨진다. 경도는 여전히 높기 때문에 표면은 잘 긁히지는 않지만, 작은 충격에도 쉽게 깨져버린다. 그래서 세팅하기가 까다롭고, 특히 반지로 만들면 정말 조심해서 껴야 한다. 항간에는 에메랄드 반지를 끼고서는 박수도 치지 말라는 얘기가 있을 정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을 홀리는 초록색을 보고 있으면 에메랄드가 왜 굳건히 4대 보석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지 이해가 된다.


나는 에메랄드에서 나를 봤다. 일반적으로 에메랄드라고 하면 당연히 비싸고 귀한 줄로 안다. 그런 것도 있다. 하지만 보석 구실은 아예 못하는 그런 형편없는 에메랄드도 있다. 포항공대 박사라고 하면 으레 똑똑하고 유능한 연구자라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생각하지만, 박사라고 다 같은 박사가 아니다. 나처럼 연구자로서의 커리어는 막장에 처박힌 그런 박사도 있다. 속에 흠이 많아 보석 구실을 못하는 에메랄드가 박사로서의 나랑 꼭 닮아 보였다.


논문의 가치는 임팩트 팩터라고 하는 점수로 매긴다. 나는 그 임팩트 팩터가 아주 낮은 저널에 학위 논문을 간신히, 아주 간신히 내고 졸업했다. 교과서를 바꾸는 연구를 한 내 사수나 우리 연구실 후배와 내가 같은 대학의 학위증명서를 받았다고 한들, 우린 절대 똑같은 박사가 아니다. 그들은 여전히 연구를 계속하고 있고, 나는 졸업과 동시에 학계를 떠나서 화장품을 팔았다. 실상을 아는 사람은 줘도 안 가질 얼투성이 에메랄드. 나는 그게 내 박사로서의 가치라고 생각했다. 과학 커뮤니케이터의 일은 더없는 보람이고 행복이었지만, 딱 그만큼 나는 불안했다. 내가 그 일을 할 자격이 없다는 사실을 누군가가 지적할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감사와 자괴 사이에서 외줄 타기를 하며 꾸역꾸역 과학 커뮤니케이션 일을 하던 어느 날, 나는 갑자기 뻔뻔해졌다. 티 한 점 없이 완벽한 돌만이 사랑받는 게 아니었다. 천연석에 특징적인 내포물이 생긴 걸 선호하는 사람들이 있다. 지구상에 그런 보석은 단 하나다. 그래서 그들은 그 보석을 더 귀하게 여긴다. 그런 내포물을 보석의 ‘얼굴’이라고 불렀다. 나조차도 ‘얼굴’을 가진 보석을 모으고 있었다. 어떤 내포물은 아예 보석을 분류하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수정류는 다양한 내포물에 의해서 그 가치가 더 높아지기도 한다. 깨끗하고 투명해야만 가치를 쳐주는 보석 시장의 기준에서는 벗어났어도, 그 아름다움과 의미를 알아보는 누군가에게는 최고의 보석이 된다.


박사 학위의 가치가 졸업 논문의 임팩트 팩터만으로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나는 낮은 임팩트 팩터 대신 다양한 불운과 고생을 겪었다. 그리고 그걸 견디고 극복하는 과정에서 또 많은 것들을 배웠다. 나는 시장에서 비싸게 팔리는 에메랄드는 아니겠지만, 어떤 수집가의 마음을 울리는 에메랄드는 될 수 있다. 보석도, 사람도, 흠이 있기에 더 매력적일 수 있다. 나는 그걸 돌로부터 배웠다.



돌 속에 갇힌 오로라

사는 동안 꼭 한 번은 내 두 눈으로 직접 보고 싶은 것들이 있다. 많다. 예능 <꽃보다 청춘>에 나왔던 빅토리아 폭포, 갈라파고스의 일광욕하는 이구아나들과 발이 파란 블루풋, 태즈메이니아 섬의 빛나는 해변, 몽골 사막에서 보는 밤하늘의 별, 스발라브 종자 보관소 내부의 씨앗 박스들, 마크 로스코의 그림, 그리고 북극의 오로라 같은 것들이다. 요즘은 각종 보석의 산지에 있는 광산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판지시르처럼 분쟁지역이 많아서 접근은 엄두도 못 낸다. 호주의 라이트닝 릿지 광산이나 캐나다의 래브라도반도 정도만 다녀올 수 있어도 좋을 것 같다.


뉴펀들랜드 래브라도주는 캐나다의 동쪽 끝에 위치한다. 뉴펀드랜드는 섬이고, 래브라도는 대륙에 붙은 반도다. 면적은 우리나라의 4배 가까이 되는데, 인구는 50만 명 정도다. 그나마도 대부분은 뉴펀들랜드 섬에 살고, 래브라도반도에 사는 사람은 고작 3만 명 정도라고 한다. 사람이 거의 살지 않는 척박한 기후의 툰드라 지역에서 1년 중 여행이 가능한 기간은 여름인데, 바로 이 여름 동안 래브라도반도는 오로라를 관측하기에 좋은 장소가 된다고 한다. 최소한의 문명의 이기에 생존만을 의지한 채로 혹독한 자연을 겪어보고 싶은 나의 이중적인 소망을 실현하기에 최적의 장소가 아닐까.


래브라도에 꼭 가고 싶은 이유가 하나 더 있다. 래브라도라이트라고 하는 돌 때문이다. 래브라도의 빛. 에메랄드와 더불어 래브라도라이트는 내가 가장 특별하게 생각하는 돌 중 하나다. 다른 보석에 비해 래브라도라이트는 굉장히 싸고 구하기도 쉽다. 손바닥만 한 커다란 돌 조각이 고작 몇만 원이다. 이 흔하고 싼 돌이 나에게 있어 별스러운 의미를 가지는 까닭은 언젠가 보았던 이누이트족의 전설 때문이다.


어느 날, 어느 용맹한 전사가 우연히 갇힌 빛들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는 창으로 돌을 쪼개서 갇혀 있던 빛들을 해방시켜 주었다. 빛의 무리는 하늘로 올라가서 오로라가 되었다. 하지만 갇혀 있던 모든 빛들을 해방시켜줄 수 없었기에 일부는 여전히 돌 속에 갇힌 채로 지상에 남아 있게 되었다. 그것이 래브라도라이트다.


우리나라에서 유통되는 대부분의 래브라도라이트들은 보석의 용도로 가공되어 원형, 타원형, 하트 모양, 물방울 모양 등의 형태로 깎이고, 표면은 매끈하게 다듬어져 있는데, 인터넷에서 가공되지 않은 원석 덩어리를 촬영한 동영상을 찾아보면 왜 그런 전설이 생겼는지 단박에 이해가 간다. 정말로 돌 속에 번쩍이는 오로라가 갇혀 있다.


래브라도반도에 가게 되면 꼭 하고 싶은 것이 있다. 래브라도라이트의 광산에 가서 가공되지 않은 상태의 거대한 래브라도라이트들을 본 뒤에 오로라 투어를 통해 밤하늘의 진짜 오로라를 보고, 그 특별한 전설을 만들어낸, 이누이트 족들이 느꼈을 그 기분, 자연의 경이로움에 대한 감정을 나도 느껴보고 싶다.


스위스 루체른의 필라투스 산에 간 적이 있다. 하늘, 구름, 눈. 특별할 것 하나 없는 흔한 것들 뿐이었는데, 필라투스 산에 올라서 눈앞에 펼쳐진 풍광을 본 순간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기분을 느꼈다. 먹먹하고 눈물이 났다. 거대하고 온전한 자연 앞에서 나는 벅차올랐고 겸허해졌다. 자주 보는 하늘과 눈, 구름이 그 정도였는데 하물며 오로라는 오죽할까. 꼭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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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