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살고 싶은 마음이 어렵게 느껴질 때

   
일홍
ǻ
필름(Feelm)
   
16500
2023�� 03��



■ 책 소개


나는 나라서, 우리는 우리라서 가능한 것들

첫 책 《그게 너였으면 좋겠다》에서 사랑과 위로에 대해서 중점적으로 기술했다면, 이번 책 《잘 살고 싶은 마음이 어렵게 느껴질 때》에서는 일, 나, 인생, 관계, 가족 등에 대해 더 짙고 내밀한 감정을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우리는 모두 아직 잘 모른다. 어떤 걸 드러내고, 어떤 걸 누르며 살아가야 하는지. 그것도 저것도 모두 다 나였다가 내가 아니었다 한다. 나의 모습 중 어느 하나만 ‘나’라고 부를 수 없다. 매년 알게 모르게 내 모습은 조금씩 변하고 또 다른 혼돈이 찾아온다. 원하는 게 달라지고 놓아준 것들도 늘어난다. 지나고 나면 내가 낯설어질 때도 있다.

그래서 작가는 “나는 나라서, 우리는 우리라서 가능한 것들이 도처에 널렸다는 사실을 명심합니다.”라고 말한다. 우리 어떤 후회도 겁내지 말고 각자의 정상에서 만나자고 약속한다. 분명 또 질리고 불편하고 귀찮아질 수 있지만 그만큼 더 행복해질 수도 있으니 스스로를 기대하며 나아갈 씩씩한 발걸음을 독자들에게 권한다.

■ 저자 일홍
@illhong_
따뜻한 이름 뒤에 숨은 극한의 게으름뱅이. 로봇처럼 무심하지만 친근한 사람. 은혜는 꼭 갚으려는 사람. 삶을 긍정하기 위해 발버둥치던 비관자. 계속해서 잃어버린 용기를 찾아다니는 사람. 그 용기로 아끼는 당신을 가득 안아주려는 사람. 《그게 너였으면 좋겠다》를 쓰고 그렸다.
우리가 더는 작아지지 않도록, 더 잘 살아갈 수 있도록.

■ 차례
Part 1 일이 뭐라고
이렇게 살면 안 되는데
블라인드
알량한 소망 뒤엔 부서진 우리만 남았네
지도에 없는 길
진정한 해방이란
게으른 나를 다루는 법
이런 사람인 줄 몰랐다는 말

Part 2 내 안에 오래도록 숨은 나
단출한 식사
평범한 하루
혼자가 익숙해지며
보호색
내 안에 오래도록 숨은 나
반성록
생의 물결에 맞게 춤추는 법

Part 3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뜻
불편을 피하는 버릇
방심해도 좋을 사람
지나야만 느끼는 것들
이면에 대하여
돌아보면 그곳엔 우리가 있었고
나를 견디게 하는 것들
사연으로 빼곡한 도시
moonlight
마지막 잎새
당신을 건너온 당신에게

Part 4 모르고 싶은 날
백일몽
7월
방문
은둔 생활
시들더라도 피어보기로
군중 속의 고독
사라지는 꿈
멈춘 시곗바늘
저장강박증

Part 5 무엇도 되지 않았으므로
태어난 김에 사는 사람
거울아, 세상에서 누굴 제일 사랑하니
들리는 말들
우리가 어떤 이유로 여기서, 치즈케이크를 먹고 있는 건지 몰라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
자연히 피어나는 꽃잎처럼
오히려 좋아, 가보자고
다짐
원고를 마감하며

마치며
Interview

 




잘 살고 싶은 마음이 어렵게 느껴질 때


일이 뭐라고

이런 사람인 줄 몰랐다는 말

책과 일러스트를 먼저 접하고 나를 알게 된 사람들은 빠짐없이 내가 이런 성격일 줄 몰랐다고 말한다. “제가 상상했던 이미지랑 너무 달라서 놀랐어요.” 누군가는 우스갯소리로 환상이 깨졌다고도 했다만 인사처럼 듣는 소리라 이젠 익숙하다. 한때는 그들이 기대할 법한 표정과 말투로 대하려던 시절도 있었는데, 그건 내게 공과 사를 구별하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불편이었다.


최근에 알게 된 작가 동생은 누가가 작가들 중에 제일 이상하다고 말했다. 아무래도 좀 이상한 건 맞으니까, 인정했다. 꽤 알고 지낸 오빠는 내가 적는 글과 그림 때문인지 겉으론 밝고 쿨한 척, 털털한 척하는 사람인 줄 여전히 오해하고 있다. 모두 다 내 모습인데 말이다. 밝은 척이 아니라 당신을 만나 자연히 밝아지는 거고 쿨한 척이 아니고 그땐 쿨했던 거다. 다른 작가 언니는 분명 사람들이 실제 네 모습을 더 좋아할 텐데, 하며 아쉬워했다. 타인이 나를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상대의 판단에 맡길 수밖에 없었다.


작가 일홍과 인간 정지은은 같은 사람이지만 오프라인에 실재하는 나도 여러 갈래로 나눠진다. 대외적인 페르소나와 홀로 있을 때의 얼굴. 메시지를 주고받을 때와 통화할 때의 어조. 낮에 만났을 때와 밤에 만났을 때의 무드. 작년과 올해의 나. 어제와 내일의 표정. 당신을 대하는 나와 나를 대하는 나.


모두 같은 사람이지만 이게 같은 사람일까 싶을 정도로 다르게 느껴질 때. 한 사람의 입체성. 나를 모조리 들키고 싶으면서도 누군가 나를 간단히 파악하고 판단하게 되는 일이 내심 두려웠던 걸지도 모르겠다. 이런 사람인 줄 몰랐다는 말이 가장 듣고 싶으면서도 듣기 두려운 말이었다.


오해받는 불편을 느낄 때마다 더욱 솔직하게 굴었다. 때때로 표정을 감추는 나를 스스로 이겨내려던 방도였다. 털털하다가도 소심하고 익살스럽다가도 진지하고, 차갑다가도 다정한 사람으로. 바보 같고 지질한 모습까지. 어떠한 평가 앞에서도 떳떳해지려면 투명히 드러내야 했다. 내가 가진 결핍과 직면해 싸우고 용서하며 더 나은 사람이 되어야만 했다.


하찮아 보일지언정 꾸며낸 모습이 아니라면 모든 순간을 진실한 마음으로 살아낼 수 있을 거라고. 가려진 나를 부정하지 않고 펼쳐내어 고쳐야만 했다. 해가 바뀔수록 변해가는 나를 관찰하며, 내가 어떤 사람이었고 지금은 어떤 사람인지 끊임없이 파헤쳤다.


나란 인간은 어쩜 겪으면 겪을수록 카오스였다. 귀찮아서 학교도 습관처럼 결석하던 애가, 늦게 들어간 대학에서는 웬일로 매 학기 장학금을 타며 다녔고, 매달 꼬박꼬박 적금 잘 들던 애가 갑자기 모아둔 돈을 흥청망청 다 쓰고 거지꼴이 되기도 했다. 불가능해 보였던 걸 해내기도 했고 가능할 일을 수포로 만들기도 하며, 자만과 반성, 상실과 실망을 반복해서 느꼈다. 나로 살아간다는 건 참으로 위태로운 일이었다.


사람들은 어찌나 다들 똑 부러지고 부지런한지, 누구한테 빚지지 않고 잘 살려면 참고 이겨내야 하는 것들이 태산이었다. 다들 이 귀찮은 인생을 어떻게 참고 사는 걸까, 하면서도 이렇게 원고를 쓰고 있는 나를 보니 또 할 건 하게 될 때가 있나 보다. 찝찝함을 못 참고 씻으러 들어가는 것처럼.


차기작을 위해 출판사와 미팅할 당시, 굳이 돈을 안 줘도 볼 수 있는 뻔한 위로나 단상은 지양하자는 의견이 오갔다. 나는 부끄러움을 깨기 위한 생각들을 적고 싶다고 했고, 팀장님은 내가 말한 부끄러움을 사람들 앞에서의 낯가림, 쑥스러움 등으로 받아들인 듯했지만 그게 아니었다.  나의 방어적이거나 이기적인 면모, 게으름으로 인해 벌어진 사달, 누군가 미워질 때, 강하고 똑똑하게 이겨내지 못할 때, 내게 없는 마음을 글로 적을 때, 그 글로 인해 누군가 위로를 받았다고 말할 때 등. 내가 옳지 않음을 느낄 때 부끄러웠다.


계속해서 더 나은 사람이고 싶었고, 옳고 싶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자꾸 부족해졌고 작아졌다. 글로써 누군가에게 위로의 문장을 건네거나 조언할 자격이 없다고 여겼다. 이번 책은 차라리 이런 베짱이 같은 면모와 어두운 표정을 드러낸 채, 밥 먹는 거 빼곤 다 귀찮은 나를 그래도 살아가게 만든 것들이 뭔지, 어떻게 해야 잘 살아낼 수 있을지 떠올리며 적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그러곤 지난 기억과 잃었던 마음들을 하나씩 가져오기 시작했다.



내 안에 오래도록 숨은 나

생의 물결에 맞게 춤추는 법

이따금 생에도 주기가 있는 것처럼 물밀 듯 들어왔다가 빠져나가는 슬픔이 야속했다. 화장실에 처박혀 숨을 게워내는 동안에도 창밖으론 무지개가 뜨고, 내가 당신 손을 잡고 수면으로 나오는 동안에도 수평선 너머에는 울음이 부딪힌다. 한없이 유랑하고 침잠하던 내가 “괜찮아”라고 말하는 당신 한마디에 가뿐히 일어서는 날도 있었다.


세상일은 정말이지 아무도 모른다. 평생 가난에 허우적거릴 것 같던 사람이 크나큰 존경을 받으며 부를 얻게 되거나, 늘 여유롭던 사람이 한순간에 초라해지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운명이라 생각할 만큼 사랑했던 사람을 지난 추억으로만 간직하게 될 수도 있고, 몰랐던 당신을 사랑하게 될 수도 있다. 꼴도 보기 싫던 사람과 언제 그랬냐는 듯 웃으며 마주할 수도 있다.


누구도 오늘의 고난과 행복이 언제까지일지, 몇 년이 지난 내 삶은 또 어떻게 바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내가 바라던 삶을 살아내기 위해, 지난 여정을 자주 돌아보고 내게 주어진 하루를 기쁘게 써야 한다는 것만은 우리 모두 알고 있다. 그리고 겪기 전까진 모른다는 것 또한 잘 알고 있다. 몰디브 바다의 아름다움처럼, 돌고래의 입꼬리처럼, 당신의 맑게 웃는 입속에 부서진 언어가 가득 차 있는 것처럼.


그러니 깊은 우울에 빠졌다면 유연히 헤쳐 나올 수 있을 관성을 키우고, 다가올 날들을 단단히 마주할 지구력을 기르자. 파도에 휩쓸리길 걱정하기보단 거친 물살을 교묘히 즐기며 살아가자. 지나간 일들을 유유히 놓아주고, 내게 흘러온 사랑과 시간에 마음껏 머무를 용기를 가지자. 왼발로 서든 오른발로 서든, 흐르는 물결에 따라 춤추듯 살아내자.


세찬 파도와 먹구름 낀 하늘, 발이 닿지 않는 꿈과 부표 없는 대해에서도, 지난 계절이 알려준 몸짓으로 우리는 더 우아하게 헤엄치기로 한다. 앞으로 어떤 삶을 살게 될지, 내일의 내가 어떤 기분일지 아무도 모르지만, 누가 뭐래도 내 삶을 희망하기로 한다. 밖으로 손을 내밀고 내게 뻗은 손을 잡아주기도 하면서, 사라지도 떠나가더라도 당신 바다는 메마르지 않도록. 무방비한 세상에 걸려 넘어지더라도 웃으며 털고 일어날 수 있도록. 누구보다 특별한 사람이 되지 않아도 홀로 움츠리지 않도록.


많이 넘어져 본 사람은 많이 일어서본 사람이라는 것을 기억하자. 맑기만 하면 사막과 다를 게 없다는 것을 새겨두자. 꿈 없이 지나가는 새벽일지라도 우린 계속해서 나아지고 있다는 걸 잊지 말자.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뜻

마지막 잎새

언니가 궁금해진 건, 능청스러운 말투로 돈이 없어서 명품 가방을 팔러 가는 중이라 했을 때다. 아나운서처럼 단정한 목소리와 하얗고 단아한 얼굴, 하루도 허투루 보내지 않고 분주히 지내던 그녀는 알면 알수록 해박한 사람이었다. 또 신기하리만큼 부끄러울 만한 말들을 숨기려 하지 않았다. 매사에 솔직하고 진실했으며 젠체하는 법도 없었다. 그러나 어딘가 묽은 외로움이 그녀를 오래도록 감싸고 있는 듯한 동질감은 나를 단시간에 열어냈다. 겨울이 되면 안으로 발을 내밀 듯, 내게도 온기가 필요했던 것이다.


언니는 맨날 방에 틀어박혀 혼자 막걸리를 마시고 있는 내가 너무 귀여웠다고 한다. (막걸리에 꽂혀서 매일 마시던 때가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하루에 한 번씩 서로를 찾아 목소리를 나누며 영상 통화를 했다. 나에게 경사가 생긴 날엔 가장 먼저 축하해 주고, 미세하게 달라진 내 목소리에도 오늘 컨디션이 어떤지 금세 알아차리는 언니였다.


사려 깊은 언니의 배엔 커다란 흉터가 있다. 그리고 언니의 기억 속엔 죽음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수술실로 들어가던 스물여덟이 있다. 주변을 자세히 둘러보고 아낌없이 사랑을 전할 줄 아는, 스스로 박애주의자라 칭하는 언니에게 생은, 다시 주어진 기회였다.


그런 언니가, 오늘도 내가 없었으면 어떻게 살았을지 모르겠다고 말했지만, 철없는 동생에게 사랑한다, 보고 싶다 닳도록 말해주지만, 나야말로 언니를 만나 얼마나 많이 배우고 있는지 그녀는 모를 것이다.


매 순간 감사한 마음으로, 사랑 앞에서도 용기를 잃지 않고 나아가던 언니, 박한 세상에도 희망을 쥐고 꿈을 좇던 언니, 타인의 슬픔에도 기꺼이 엉엉 울어낼 수 있는 언니를 겪으며 내 세계가 얼마나 넓어질 수 있었는지를 말이다.


“그냥 보고 싶어서 전화했어.”


전화를 끊을 때마다 언니는 꼭 저렇게 말해준다. 어떤 사랑도 겁내지 말라고, 인생이 그렇게 길지 않다고. 유한한 인생에 대해 일깨워주는 문장이 장난스러운 전화 한 통에도 여럿 섞여 있다. 사랑과 감사, 미안을 제때 전할 수 있는 용기를 전염시킨다.


그러니까 언니는, 아직도 병원에서 쓰라린 흉터를 치료하며 삶을 여실히 견디는 중이겠지만, 한 쪽 신장을 도려내고 약해진 몸으로 애쓰는 중이겠지만, 그럼에도 다시 살아내준 덕분에 나같이 무른 애도 살아갈 수 있다고, 덕분에 우리와 세상을 더 아끼게 되었다고, 자주 찾아오는 작은 행복들을 잘 담아두며 살자고, 나의 서투른 마음을 전한다.



무엇도 되지 않았으므로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

오랜 시간 내가 사물처럼 느껴졌다. 자연스레 웃어지지 않고 죽도록 울고 싶어도 울어지지 않는 고체 덩어리. 점화되지 않는 근육과 심장 아래에 눌린 목소리. 무언가 다 잃어도 될 것만 같은 기분. 나를 제외하고 모두가 그럴듯하게 살아가는 것처럼 느껴질 때. 아홉수라는 게 정말 실재하는 걸까. 이유도 방법도 모른 채로 아무런 희망 없이 흘려보내는 시간. 하고 싶은 것도 해야 할 이유도 못 느낀 채, 텅 빈 어항처럼 눈만 껌뻑였다.


당시엔 도무지 나아질 방도가 보이지 않았다. 살아 생전 처음 겪는 긴 슬럼프엔 내가 납득할 만한 이유가 없었다. 쉬지 않고 일을 한 게 한두 번도 아니고, 슬픈 일이 생긴 것도 아닌데, 어디에도 집중하지 못했다. 몇 달간 드라마 한 편도 완주하지 못했으며 밥을 먹다가도 멍해지는 내가 낯설었다. 물론 일도 제대로 할 수 없어서 들어오는 외주를 모두 거절했더니, 완전히 끊겨버렸다. 어떤 핑계도 변명도 댈 수 없었다.


내가 왜 이러는지 무엇인지 아무것도 모르고. 내겐 아무 일도 생기지 않았는데, 어느 것도 할 수가 없었다. 멀쩡했던 일상은 점점 망가졌다. 친구는 내게 잠시 쉬어갈 때도 있는 거라 말했지만, 쉬어가는 기분과 죽어지는 기분은 엄연히 달랐다. 흐려진 의식으론 누구와도 연락할 수 없었다. 혹시 이게 우울증일까. 우울할 일이 없는데 우울증일 수가 있나. 나는 호르몬 문제라 여겨 세로토닌과 도파민을 어떻게 늘려야 하는지나 찾아보는 게 전부였다.


친구들은 하나둘 음지에 처박혀 입을 틀어막은 나를 바깥으로 끌어냈다. 말도 없이 제주도 티켓을 끊어 비행기에 태우는가 하면, 가평에 있는 카라반으로 데려가 모닥불을 피웠다. 몇 명은 일이 끊겨 백수가 된 나에게, 내 작업물이 꼭 필요한 척 외주를 맡겼다.


주변에서 멱살을 잡고 아무리 끌어내도 돌아오면 없던 일이 되었다. 바닥을 향하는 통장 잔고, 가득 쌓인 메시지, 일이 끊겨 고요한 메일함, 아몬드를 씹어 먹으면서도 그냥 죽을까, 하고 수없이 스치는 자멸감. 나는 그것들이 두렵지 않아서, 두려웠다. 여태 살아오게 만든 것들이 모두 무의미해졌으며 어느 것도 절박하지 않은 내 존재가 무서웠다.


일어서야만 했다. 이대로 죽어도 아쉽지 않단 생각으로 살아왔지만, 실은 그래도 살고 싶어서, 아끼던 것들을 더 오래 아끼고 싶어서 오늘을 버티고 내일을 맞이했던 것이다. 아침이 되면 사라지길 빌고 또 빌었어도, 봄날의 햇살과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이면 키야 그래도 이게 인생이지, 하며 살아지는 게 인간이라고.


그리고 이 시간이 지나면 증발한 기억들을 틈틈이 기록했다. 손가락만 움직이면 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한 거다. 가장 강하게 느껴지는 감정, 떠오르는 기억, 눈앞에 보이는 것, 지금 바라는 것……. 어떠한 주제나 맥락 없이, 무언가 떠오르면 닥치는 대로 적었다. 그렇게 몇 달을 기록했다. 그날의 메모들을 지금 펼쳐보면 마치 다른 사람의 일기를 훔쳐보는 듯 상당히 자학적이고 절망적이다. 그러니 자연히 ‘내가 이걸 왜 기록하고 있지.’하는 의문을 품었다.


아빠 손을 잡고 도서관에 다닐 때부터, 나는 좋은 글을 쓰고 싶었다. 흩어진 활자들을 모으고 모아, 언젠가 나도 훗날 길이 남을 문학을 하겠다고. 흘러가는 세상을 부단히 겪고 기억하려던 내게 ‘쓰는 일’은 살아갈 이유였고 꿈이었다. 나를 더 들여다보려던 날들, 타인에 대한 호기심, 오랜 학문에 대한 지적 갈증, 견문을 넓히고 혜안을 얻으려는 발악, 특히나 굳이 안 할 것 같은 짓들을 하고 다닐 때. (갑자기 아르바이트를 하러 갈 때라든지) 그 모든 게 글의 재료를 모아두려던 계략이자 생의 수단이었다.


여름이 가고 또 하나의 여름이 갔다. 나는 아주 조금씩 나아지고 있었다. 운동도 다시 시작하고 미용실에도 들렀다. 나의 가장 연약한 부분들에 새살을 돋게 만든 건, 마음먹지 않아도 하게 되는 것들이었다.


음악을 듣고 역사와 세상을 구경하며 글을 쓰는 일. 심장을 뛰게 만드는 일. 시키는 사람도 없고 돈이 들어오는 것도 아니지만 하게 되는 일. 그리고 암연 속으로 함몰되지 않도록 틈틈이 나를 두드리고 바깥으로 끌어내던, 마음 빌 곳 없도록 내내 채워주던 다정한 사람들이었다.


결국, 사랑하는 사람들이 나를 움직이게 만든 것이다.


오히려 좋아, 가보자고

지방에만 근 십 년을 옮겨가며 살다가, 드디어 상경한다. 나의 첫 자취는 옷가지 하나 챙기지 않고 집에서 나온 날 시작되었고, 몇 개의 계절을 넘긴 지금은 차 한 대로는 절대 옮기지 못할 정도로 물건이 늘었다.


한껏 꾸며놓았던 작업실을 넘기고, 고대해서 구했던 저렴한 전셋집을 넘기고, 서울 월셋집으로 간다. 서울 집값 더럽게 비싸더라.


혼자 살 집을 구하다가, 친구들과 셋이서 함께 살기로 했다. 나에게 사랑과 여행을 알려준 친구들이다. 작년까지만 해도, 이곳에서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채 서울로 가는 걸 실패라 느꼈다. 이젠 새로운 출발이다. 잔류한 나를 더 찾고 앞으로 나아가는 일만 남았다.


분명 또 질리고 불편하고 귀찮아질 수 있다. 그러나 더 행복해질 수도 있다. 나를 기대하며 나아갈 수 있다.


* * *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