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이고 싶어서, 북유럽

   
송경화
ǻ
와이겔리
   
16500
2022�� 05��



■ 책 소개


홀로 북유럽의 방방곡곡을 누빈 저자가 전하는, 나를 찾아가는 여행 이야기

『혼자이고 싶어서, 북유럽』은 저자가 여행을 통해 자기 자신을 찾아가며, 삶의 상처를 치유한 기록이다. 저자에게 북유럽 여행은 인생의 가장 큰 선물이었다. 저자는 여행하는 동안 노트에 꼼꼼히 기록한 메모를 바탕으로 이 책을 썼다. 여행의 순간순간을 기록한 만큼 이 책이 들려주는 여행 이야기는 생생하다. 잊을 수 없는 풍경을 마주하고, 낯선 사람을 만나는 등 저자가 여행지에서 경험한 사건들이 바로 눈앞에서 펼쳐지는 듯하다. 또한 이 책은 꼼꼼한 여행의 기록으로서 훌륭한 북유럽 여행 가이드이기도 하다. 『혼자이고 싶어서, 북유럽』은 북유럽이 궁금한 당신에게, 북유럽 여행을 꿈꾸는 당신에게, 혼자 있기를 두려워하는 당신에게, 여행을 망설이는 당신에게, 그리고 일상에 파묻혀 잊고 지냈던 자기 자신을 만나고 싶은 당신에게 훌륭한 나침반이 되어줄 것이다.

■ 저자 송경화
국립대 사범대학을 졸업하고 수도권에 있는 중학교에서 국어교사 생활을 시작했다. 전공과 무관하게 방학이면 입시미술학원에 등록하여 그림을 그려왔기에 미대 대학원에 진학하여 자유롭게 그림을 그리며 살고 싶었다. 그러나 졸업 후 바로 결혼하여 일밖에 모르는 남편과 살면서 육아와 일을 병행하니 삶의 목표도 사라지고 점점 무기력해져만 갔다. 이런 나를 따뜻하게 위로해주고 치유해준 것이 여행과 그림이었다. 핀란드를 시작으로 스웨덴, 노르웨이, 아이슬란드, 페로제도 등 북유럽을 다섯 차례나 혼자 여행한 시간은 내게 잊지 못할 좋은 날들이었다. 이 책은 그 여행의 기록으로 내가 고독을 직면하며 내게 맞는 삶의 방식을 찾아가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를 담고 있다. 그림을 그리면서 그동안 단체전에는 여러 번 출품해왔다. 멀지 않은 시기에 여행의 추억이 담긴 그림과 이 책이 함께하는 개인전도 열고, 소설 쓰기에도 도전해보고 싶다.

■ 차례
프롤로그

I 혼자 여행을 떠나는 나만의 이유-5년간 여름마다 북유럽
2014, 2016년 핀란드 여행과 카모메 식당
2017년 노르웨이 여행과 질투는 나의 힘
2018년 아이슬란드 여행, 모든 길은 책을 통해 열렸다

II 2019년 페로제도
덴마크에서 페로제도로
삭순, 포사 3단 폭포, 툐르누비크 마을
놀소이 섬, 키르큐보르 마을
레이티스바튼 호수와 트레라니파 절벽 그리고 가사달루르 마을
큰 마을 베스트마나와 비가 와서 더 아름다웠던 크비빅 마을
다시 방문한 삭순과 툐르누비크 마을, 지코브 선착장
칼소이 섬 등대와 물개 여인 마을 미크리달루르 그리고 쿠노이 섬
비도이 섬의 비다레이디 마을과 푸글로이 섬
푸글로이 섬의 등대, 하타르비크에서 키르키아 마을로
바가르 섬 산다바구르, 다시 간 레이티스바튼 호수와 트레라니파 절벽
미키네스 섬의 퍼핀과 순박한 스페인 아저씨 알베로

III 2019년 페로제도를 떠나 다시 아이슬란드로
다시 가본 골든서클(굴포스, 게이시르, 싱벨리어)
헤이마에이 섬의 화산 엘드페들
헤이마크레투르 산 등반 후 퍼핀 보러 스토르회프디로
돌고래 수족관과 민속박물관, 비바람 속의 헤리올프스달뤼르 캠핑장
크리프 산과 하하 산 등반 후 엘드헤이마 화산박물관으로
헤이마에이 섬을 떠나 스카프타펠 빙하를 보고 레이캬비크로
라우가베구르 트레킹 전날 밤 모든 짐을 맡기다
란드마나라우가르 주변 트레킹과 노천 온천
빙하와 물이 끓는 곳을 지나 도착한 흐란핀티무스커 산장
맨발로 물을 건너 도착한 알프타바튼 캠핑장
신발을 신은 채 물길을 건너 도착한 엠스트루르 캠핑장
한 커플을 필사적으로 따라가 도착한 솔스모르크
셀랴란드포스 폭포를 거쳐 레이캬비크로 돌아오다
비 내리는 날 아이슬란드를 떠나다

에필로그

 




혼자이고 싶어서, 북유럽


혼자 여행을 떠나는 나만의 이유-5년간 여름마다 북유럽

2014, 2016년 핀란드 여행과 카모메 식당

핀란드는 내가 처음으로 여행한 북유럽국가다. 그곳을 꼭 가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영화 <카모메 식당>을 보고 나서였다. 제목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방송작가 출신의 저자가 쓴 수필집을 우연히 읽다가 그 영화를 알게 되었는데 너무 좋아서 몇 번을 보았는지 모를 정도로 여러 번 보았다.


핀란드에서 카모메라는 이름의 자그마한 식당을 하는 주인공 사치에는 자신이 만난 상처 있는 사람들에게 특별한 위로를 건네지 않는다. 그저 미소를 머금고 이야기를 들어주고 맛난 음식을 해서 같이 먹는 것이 전부다. 그런데도 상처를 안고 헬싱키로 온 주변 인물들은 거기서 큰 위로를 얻는다. 전혀 말이 통하지 않는 현지인도 사치에와 그 주변 사람을 만남으로써 마음의 상처를 치유한 후 모두 친구가 된다.


마음이 복잡할 때마다 이 영화를 보고 나면 비누로 영혼을 씻은 듯 마음이 맑아지고 볼 때마다 위로받은 것 같아 마음이 울컥해지고는 했다. 슬픈 내용이 특별하게 나오는 것도 아닌데, 이 영화를 촬영한 곳이 핀란드의 수도 헬싱키라서 내게는 영화에 나오는 곳들을 가보는 것이 여행의 가장 중요한 일정이었다.


여행을 준비하다 보니 유럽에서 핀란드처럼 가기 쉬운 나라도 없었다. 핀란드 국적기인 핀에어만 타면 러시아 상공을 거쳐 최단 거리의 직항으로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카모메 식당의 ‘카모메’는 일본어로 갈매기라는 뜻이다. 실제로 헬싱키는 바다에 접해 있고 시내가 그리 크지 않아서인지 어디서나 쉽게 갈매기를 볼 수 있었다. 영화에서 사치에는 사람들을 핀란드 갈매기처럼 잘 먹여 통통하게 만드는 것이 목적이라는 의미에서 식당 이름을 카모메라고 짓는다. 그 때문에 나는 핀란드 갈매기들이 실제로도 통통한지 유심히 보게 되었다. 헬싱키 주변 섬으로 떠나는 작은 페리들을 탈 수 있는 항구 시장 카우파토리의 방파제에 앉아 있는 갈매기들은 정말 영화 속 갈매기같이 통통했다.


<카모메 식당>에 나오는 또 다른 장소인 아카데미아 서점 안의 카페 알토도 갔다. 핀란드의 유명한 건축가이자 디자이너인 ‘알바 알토’의 이름을 딴 이곳은 사치에가 미도리라는 인물을 처음 만나는 곳이기도 하다. 미도리는 상처가 있는 여자로 나오는데, 세계 지도를 펴서 아무 곳이나 찍었더니 그곳이 헬싱키였다는 이유로 헬싱키를 찾아온 독특한 사람이다.


카페 알토에서 미도리처럼 커피와 케이크를 시켜 먹으니 너무 행복해서 가슴이 다 콩닥거렸다. 피자처럼 두툼해 보이는 케이크를 시켰더니 세상에나, 큰 접시에 케이크와 함께 토마토, 양상추, 오이가 들어 있는 먹음직스러운 샐러드까지 담겨 나와 행복해질 수밖에 없었다.


영화에서 사키에가 운영하는 카모메 식당의 실제 촬영 장소는 당연히 찾아가 보아야 하는 곳이다. 중고품을 판매하는 세컨드 숍에서 가위를 산 후 카운터를 보는 아가씨에게 식당 위치를 물어보았더니 여행객들이 많이 물어 보는 곳인지 정성껏 지도를 그려 준다. 헬싱키 도심에서 한참이나 외곽으로 걸어가야 했지만 그려준 지도대로 찾아갔다.


영화에서는 가정식 전문 식당이지만 지금은 핀란드 대중 음식을 취급하는 평범한 식당이고 영화에 나온 가게 모습과 완전히 다르다. 영화 속 분위기를 내기 위해서는 시나몬 롤과 커피를 시키는 게 맞겠지만 점심시간이라 식사류를 시켰는데 메뉴를 잘못 골랐다. 돼지 간 비슷한 식감이 나는 퍽퍽한 고기와 감자튀김이 뜬금없이 베리 잼과 곁들여 나왔는데, 고기와 함께 먹을 소스를 잘못 가져와 그걸 끼얹었더니 세상에 없는 최악의 맛이 되어 결국 거의 남기고 왔다. 하지만 영화 속 여주인공 3명과 핀란드 청년, 집 나간 남편 때문에 마음고생을 하는 핀란드 여성을 생각하면서 그곳을 다녀온 것이 나에게는 소중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카페 우르슬라는 <카모메 식당>의 제일 끝부분에 나오는 카페다. 영화에서는 친구가 된 동양인 여자 3명과 핀란드 여성이 한껏 멋을 낸 옷차림에 모자와 선글라스까지 끼고 이 카페의 의자에 편안하게 누워 있는데, 그 모습이 너무 멋져 보였었다. 항구에 있는 카우파토리 노천 마켓을 좌측으로 보면서 계속 걸어가면 엄청나게 큰 카이보프이스트 공원의 시작 부분에 이 카페가 있다.


중심가인 에스플라나디 거리에서 골목으로 들어가도 카이보프이스트공원에 갈 수 있는데 이 경우에는 천문대처럼 생긴 돔 모양의 노란 건물을 지나 언덕을 넘어야 한다. 바다가 있는 곳까지 가서 좌측을 보면 삼각형 천막이 하늘을 가린 카페 건물이 꽤 크게 보이고 주변에 다른 상가나 집은 없다. 그 어느 곳으로 가든 이곳은 도심에서 접근하기에는 상당히 많이 걸어야 하는 곳인데, 나는 두 가지 길을 모두 걸어서 2014년과 2016년 두 번이나 방문했었다.


오픈샌드위치와 도넛, 커피를 사서 노천카페에 앉아 먹으면서, 앞에 보이는 바다와 사람들의 모습을 스케치하기도 했다. 카페 바로 앞으로 섬과 바다가 보여 눈이 시원하고 번지점프장도 보인다. 여름철에만 임시로 설치된 번지점프장에서 울려 퍼지는 즐거운 비명이 카페에서도 들리는 듯하다.


걸어오느라 더워서 냉커피를 마셨더니 7월 말이어서 가장 더운 날씨일 텐데도 해가 기울면서 한기가 느껴져, 더 앉아 있기가 어려워 자리를 떴다. 넘어가는 햇빛에 반짝이는 금발 머리가 정말 아름답게 느껴지는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 테라스 카페에서 차를 마시며 수다를 떠는 모습이 홀로 여행하는 나로서는 부러워지는 시간이기도 했다.


2019년 페로제도

덴마크에서 페로제도로

페로제도를 가는 가장 쉬운 방법은 코펜하겐의 카스트럽 공항을 경유하는 것이다. 처음부터 느린 여행을 하기로 마음먹은 나는 페로제도로 바로 가지 않고 코펜하겐에서 한 번 쉬어가기로 했다. 그래서 교통이 편리한 중앙역 부근에 숙소를 정하고 가보고 싶은 근교 마을들을 다녀왔다. 현지 투어 상품도 있었지만, 시간에 매여 다니는 게 싫어서 전철이나 기차를 이용하면서 물어물어 힐레뢰드에 있는 프레레릭스보르그 성, 어촌 마을 질레레제, 햄릿의 배경이 된 헬싱괴르의 크론스보르그 성과 훔레벡에 있는 루이지애나 미술관 등을 다녀왔다.


어촌 마을 질레레제는 일본의 옛날 집처럼, 갈대로 지붕을 한, 전통 가옥이 많이 보존되어 있어 다른 곳과는 많이 다른 분위기를 풍기는 곳이다. 거리에는 여름휴가를 즐기려는 사람들이 넘쳤고 스톡홀름에서처럼 와플을 직접 구워서 아이스크림을 만드는 가게도 있었는데 덴마크 다른 곳에서는 이런 집과 가게를 보지 못했다. 거리에는 동양인이라고는 나 혼자만 돌아다녀 시선을 한몸에 받았다. 햄릿 성으로 알려진 크론스보르그 성에서는 햄릿 연극의 명장면들을 연기하는 배우들을 수시로 볼 수 있는데 그걸 보려면 오후에 가야 한다. 성을 나와 슬금슬금 걷다 보면 도착하는, 인근의 고색창연한 헬싱괴르 마을 골목골목도 다시 가보고 싶을 만큼 매력적이었다.


코펜하겐 중앙역 바로 뒤에 있는 ‘Nebo 호텔’은 저렴한 가격에 비해 숙박비에 포함된 조식이 만족스러웠는데, 과일과 빵도 다양하고 중정도 넓고 관리가 잘 되어 있었다. 아침을 먹고 바로 출발했더니 페로제도로 가는 비행기는 정오인데 9시 정도에 공항에 도착했다. 물가가 비싼 덴마크이기 때문에 택시비도 많이 나올 것 같아 짐이 네 개나 되는데도 택시를 타지 못하고 공항에서 숙소로 올 때처럼 기차를 이용했는데 시간이 늦을까 봐 불안해서 빨리 출발했더니 너무 이른 시간이다.


안개가 자욱한 소르바구르 공항

자그마한 공항에 도착하니 공항과 주변의 산에 안개가 자욱하다. 공항이 얼마나 작은지 내려서 정말 몇 발자국만 걸어가면 건물 안으로 들어간다. 일단 차를 빌려야 하니까 공항 바로 옆의, 두 개의 업체가 함께 쓰는 단층의 자그마한 렌터카 사무실로 갔다. 짐이 너무 많아 몇 번씩이나 굴러떨어진 짐을 정리하면서 가느라 늦게 도착했더니 앞에 10명 정도나 있다.


줄은 도저히 줄어들 기미가 없다. 직원은 한 명뿐인데 준비해야 하는 서류가 어찌나 많은지. 드디어 내 차례가 되어 서류를 준비하고 내가 원하는 옵션을 체크하여 렌트비를 계산하니 차가 주차된 곳을 알려주며 차 키를 준다. 11박 12일간 페로제도에 머무르면서 12일간 차를 빌렸는데 소형차임에도 오토매틱이로 여름이 여행 성수기여서인지 하루 렌트비가 거의 20만 원이나 한다.


차를 렌트한 뒤 페로 유심을 사기 위해 짐 덩어리 4개를 조심조심 끌고 아무도 없는 공항 안으로 다시 들어갔다. 유심을 산 곳의 남자 직원은 부탁도 안 했는데 친절하게 유심을 끼워주고 인터넷 연결까지 해 준다. 유심을 바꿔 끼운 후 카드에 쓰인 곳으로 전화를 한 후, 알아들을 수 없는 덴마크어 지시에 따라 인터넷을 연결해야만 해서 힘들었던 덴마크와 너무나 대조적이었다.


이제 여행의 모든 준비가 끝났다. 마지막으로 쌀을 살 차례다. 햇반은 간편하기는 하나 여러 개를 가져가면 그 무게가 만만치 않아, 나같이 짐이 많은 장기 여행자는 가져가기가 힘들다. 공항 안내소 직원에세 물으니 소르바구르에 있는 가게 주소를 종이에 써 주었다. 하지만 시간이 늦어 쌀은 내일 사기로 하고 숙소로 가기 위해 주차장으로 갔다. 숙소 주변에 가게가 없는 곳이 많아 샌드위치나 누룽지, 아보카도만 먹고 다니던 작년 아이슬란드에서와는 달리, 이번엔 나의 야심작, 비장의 무기인 차량용 전기밥솥을 챙겨왔으니 이젠 매일매일 밥을 해 먹을 수 있다. 야호!


주차장에 가니 내 차는 회색의 자그마한 토요타 아리스 5도어 차다. 미리 세팅된 라디오 채널에서는 늘 그레고리 성가 같은 분위기의 음악이 은은하게 흘러나와, 안개에 싸인 페로제도 분위기와도 어울리고 여행하고 있는 나에게도 큰 위안을 주었다. 하리브리드 차라서 그런지 나중에 보니 기름도 조금밖에 먹지 않아 12일간의 렌트 기간 중 주유를 딱 두 번밖에 하지 않았다.


놀소이 섬, 키르큐보르 마을

내가 혼자서 여행하는 이유

차를 주차하고 숙소에 돌아오는데 주인 남자가 신나게 수다 떠는 소리가 밖에서도 들려 웬일이지 하고 식당에 가보니 젊은 투숙객이 새로 들어와 있다. 방에 짐을 두고 부엌에 내려갔더니 호주에서 온 젊은 투숙객이 식당에 혼자 앉아 책을 들여다보고 있다. 차를 렌트해서 혼자 여행한다는 말에 자신은 가난해서 버스를 이용해서 여행하는 배낭 여행자라고 하며 나에게 왜 혼자 여행을 다니느냐고 묻는다. 이런 질문이 나오면 항상 나오는 나의 고정 레퍼토리가 있다.


남편은 심각한 일 중독자다. 남편과 성격이 맞지 않아 아이가 성인이 되면 집을 나가고 싶었다. 가방을 싸서 아무 곳이나 먼 곳으로 가서 새롭게 살고 싶었다. 하지만 이아가 아직 덜 자랐는데 극심한 우울증이 와서 여름마다 가출하는 마음으로 긴 여행을 하게 되었는데 집을 떠나 떠돌다 돌아오면 예전보다 집이 더 좋게 느껴진다는 것을 깨달았다. 결과적으로는 혼자서 여행했던 것이 남편하고 이혼할 뻔한 고비들을 넘길 수 있었던 데에 중요한 역할을 한 것 같다.


내가 나를 알기에 극심한 우울증이 조금 지나간 다음부터는 가장 애를 써서 한 일이 외로움에서 슬픔을 제거하는 일이었다. 수첩에 항상 “외로움에서 슬픔을 제거한다”라는 말을 부적처럼 써서 가지고 다니면서 정말 온갖 노력을 했다. 그전에는 눈만 감으면 항상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혼자서 차를 운전하며 통곡을 하면서 울었다. 외로움에서 슬픔을 제거해서 외롭기만 하면, 외롭기 때문에 해야 하는 일이 너무나 많아지고 외로움도 서서히 사라지게 된다. 언제부터인가는 아무리 오래 혼자 여행해도 전혀 외롭지 않게 되었다. 외롭기는커녕 호기심이 발동하고 밤에는 그날 있었던 일들을 정리해서 메모하고 다음 날 일정을 수정하느라 외로울 틈이 없었다.


그런데 그냥 여행하면 외로움이 더 크게 자리 잡을 수도 있다. 혼자서 떠나는 여행을 시작하기 전, 나는 어느 날 『나는 런던에서 사람 책을 읽는다』라는 책을 우연히 읽게 되었다. 봉건적이고 벽 같은 남편을 두고 가방을 싸서 목적지 없이 기차를 탄 후 종착역에 내려 가난하고 소박하지만 자신이 원하는 삶을 꾸려가는 영국 할머니 이야기가 거기에 실려 있었다. 그 할머니라고 집을 쉽게 나온 건 아니다. 가방을 들고나온 후에도 수없이 집을 돌아보면서 다시 들어가 버릴까 하고 망설이다가, 자포자기한 기분으로 아무 기차나 타고 떠나 결국 원하는 자신의 삶을 얻게 된다.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나도 아이가 크면 그 할머니처럼 집을 나가자’ 그렇게 생각하니 삶이 좀 수월해졌다. 하지만 그때까지 기다릴 수가 없어, 아이가 중학교에 들어가자 조카에게 이것저것 물어가며 처음으로 혼자 다녀온 20일간의 스페인 여행은 즐겁지만은 않았다. 눈으로 관광지를 보고 쇼핑을 하며 차도 마시는 여행은 나에게 맞지 않았고 오히려 외로움을 가중했다. 집을 떠나도 나는 행복하지 못하구나 하는 생각에 마지막 출구를 잃어버린 느낌이었다.


그때 알랭 드 보통의 『여행의 기술』이라는 책이 구원처럼 다가왔다. 그림을 그리게 되면 사물을 스케치하듯 바라보게 되어 모든 것을 자신만의 새로운 눈으로 보게 되므로 지루할 틈이 없는 여행의 새로운 경지가 열린다는 것이다. 그래, 다시 그림을 그리자. 마침 그때 마음에 드는 화실을 만나 스케치부터 시작해 유화도 그리고 몇 차례의 단체전에도 참가하면서 여행에 대한 욕심이 다시 생겨났다.


2014년 핀란드 여행은 두 번째 나 혼자 떠난 장기간의 여행으로 스케치를 하고 그림의 소재를 찾으며 다니니 즐겁기만 했다. 더위를 싫어하는 내가 피서도 겸할 수 있으니 일석이조이고, 결혼 초부터 뜨개질을 시작한 나로서는 그들의 니팅 생활에도 관심이 생겨 그 이후로 5년간이나 북유럽의 여러 나라를 여행하게 되었다.


핀란드, 스웨덴에서도 도시 위주로 여행하던 나는 2017년 노르웨이 트레킹 여행을 계기로 자연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지면서 좋아하는 여행지도 달라졌다. 도시와 달리 자연은 무서울 때도 많았지만 찬바람 속에서 오들오들 떨고 있을 때도 집에 있을 때보다 행복했다. 그리고 시골이나 자연 속에서 만난 사람들은 모두 따뜻했다. 그림으로 표현할 수 있는 멋진 풍경을 눈으로, 카메라로 담으면서 내 눈은 반짝였고 늘 충만한 기분이 들었다.


지금은 심신이 너무나 건강한 사람이 되어 거실의 전망 좋은 자리에는 자그마한 책상도 가져다 놓고 평온한 마음으로, 그동안 수기로 써서 모아둔 여행기를 컴퓨터로 옮기고 있으니, 평화롭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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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