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소개
아빠랑 손잡고 걸어간 800킬로미터 산티아고 순례길,
한 달하고도 열흘의 이야기를 담아 낸 성민이의 사진 일기
키 큰 아빠와 아홉 살짜리 꼬마 성민이가 나란히 손잡고 800킬로미터에 달하는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었다. 걷는 동안 아빠와 아들은 하루하루를 꼼꼼하게 메모해 두었고, 한국으로 돌아와 거기에 살을 붙여 한 권씩 책으로 동시 출간하는 데 성공했다. 순례길의 아름다운 풍경과 아빠의 진지한 성찰이 담긴 《아빠랑 산티아고》(문예춘추사)와 아들 성민이의 발랄한 장난기와 뜨거운 우정이 녹아 있는 《아빠, 오늘은 어디서 자요?》가 그것이다.
성민이가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이뤄야 할 목표는 많기도 하다. 아무리 덥고 힘들어도 처음에 약속한 대로 집에 가고 싶다는 말하지 않기, 산티아고까지는 꼭 걸어서 가기, 프랑스 친구 클리머와 함께 정오 미사에 맞춰 산티아고 성당에 들어가기 등등. 그렇지만 언제나 아들에게서 눈을 떼지 않는 아빠와 새로 만난 친구들의 도움을 받으면서, 성민이는 삶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성취’를 일구어 내는 과정을 익혀 간다.
외국으로 여행을 떠나 보고 싶은 초등학생, 조금 불편하더라도 아이들과 함께 추억으로 남을 여행을 계획하고 있는 부모님들에게 아홉 살 성민이의 천진난만한 생각이 가득 담긴 이 책을 적극 권한다.
“아빠, 한 번 도전해 볼게요. 우리 같이 가요.”
어른들에게도 힘든 800킬로미터나 되는 산티아고 순례길을 무사히 완주해 낸 아홉 살 성민이. 하루하루 고되고 힘들었지만 그날을 마무리하기 전에 자기 생각을 메모해 두는 것은 잊지 않았다. 그 메모가 모이고 사진이 더해져 성민이만 쓸 수 있는 멋진 사진 일기장이 완성되었다.
그 먼 길을 걸었다고 해서 성민이가 유독 특이하거나 건강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성민이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호기심 많고 이야기 좋아하는 평범한 아이다. 다만 아무리 덥고 힘들어도 포기하지 않고 아빠 손을 잡은 채 꿋꿋이 발걸음을 내딛을 뿐이다.
강아지를 좋아하면서도 무서워해서 뒷걸음질 치던 성민이가 처음으로 커다란 개를 쓰다듬을 수 있게 된 날, 말이 안 통할까 봐 축구하는 아이들을 물끄러미 쳐다보던 성민이가 프랑스 친구 클리머와 헤어지며 눈물짓던 날, 아빠랑 싸우고 삐쳐 혼자 걷던 성민이가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아빠 옆에 앉을 수 있게 된 날 등등…….
이런 날들이 지나가고 산티아고를 향한 한 발짝이 더해질 때마다 성민이는 아빠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행복이란 무엇인지, 정말 자기가 원하는 미래가 어떤 모습인지 조금씩 깨달아 간다. 다른 친구들이 학교나 학원에 앉아 열심히 읽고 쓰는 공부를 할 때, 성민이는 길 위를 걸으면서 사람을 만나고 정을 나누며 살아 꿈틀거리는 인생 공부를 한다.
한 달하고도 열흘 동안 성민이는 어떻게 먹고, 어디서 자고, 뭘 느꼈을까? 성민이의 마음속을 고스란히 비춰 주는 이 책은 강렬한 바람과 뜨거운 햇살과 따스한 우정과 재미있는 추억으로 가득하다.
여기에 더해서 성민이와 함께 800킬로미터를 누빈 아빠의 책 《아빠랑 산티아고》도 같이 읽어 보자. 더욱 다채로운 순례길 풍경 사진을 감상하면서, 똑같은 여행을 하고도 아빠와 아들의 느낌이 얼마나 다른지 비교하는 재미도 누릴 수 있다.
■ 저자 서성민·서정균
저자 서성민은 호기심이 많다. 그래서 말이 많다. 호기심 때문에 낯선 사람에게도 말을 쉽게 거는데, 이번 여행에서 만난 외국 친구들과 말은 거의 통하지 않았지만 특유의 친화력으로 한두 시간 만에 친해져 나중에는 산티아고 가는 길, 까미노에서 최고 유명인사가 됐다. 야구를 좋아해서 야구선수가 되는 것이 꿈이다. 승부욕이 많지만 시험 성적에 대한 욕심은 별로 없는 평범한 초등학생이다. 대신 책을 많이 읽는 편이라 학교에서 독서 관련 상을 몇 번 수상한 적이 있다. 아빠와 함께 산티아고 가는 길을 걸으며 매일 일기를 썼고 그게 책으로 나오게 되어 벌써 작가가 된 꼬마이기도 하다. 현재, 남양주 구룡 초등학교 5학년에 재학 중이다.
저자 서정균은 딸 하나, 아들 하나를 둔 대한민국의 평범한 아빠. 아홉 살짜리 아들 성민이와 함께 산티아고를 걷기 위해 오랫동안 조금씩 준비했을 만큼 세심한 아빠이기도 하다. 그렇지 않아도 호기심 많고 사람 좋아하는 성민이가 산티아고 여행을 통해 더 큰 세상을 경험하고, 자연을 맛보며, 사람 사이의 정을 느끼는 아이로 성장하기를 바란다. 아이들을 좋아해서 주일학교 교사로 봉사하고 있으며 나중에 대안학교를 꾸려 아이들에게 행복한 삶을 일깨워 주고 싶은 소박한 꿈이 있다. 성민이와 함께 걸으며 만든 36일간의 800킬로미터. 평생을 추억할 이야깃거리가 생긴 것에 감사하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으며 앞으로 성민이와 또 어디를 같이 걸을까 고민 중이다.
■ 차례
1. 800킬로미터를 걸어야 한다고요?
2. 국경이 뭐 이래? (1일째)
3. 용서의 언덕에서 누구를 용서할까? (4일째)
4. 누르면 와인이 콸콸콸 (6일째)
5. 제발 우리 좀 재워 주세요 (7일째)
6. 조금만 더 맛있게 해 주세요 (10일째)
7. 마을아, 마을아 어디에 있니? (14일째)
8. 하늘과 땅이 맞닿은 곳으로 (17일째)
9. 퍼붓는 빗속의 아빠와 나 (19일째)
10. 그래도 난 아빠가 좋아 (22일째)
11. 누군가의 간절한 기도 (24일째)
12. 이글대는 태양, 지쳐 가는 나 (25일째)
13. 날 꼬드기지 마세요 (26일째)
14. 이제 남은 거리는 100킬로미터 (29일째)
15. 아빠, 사랑해요 (32일째)
16. 스페인의 땅끝에서 (33~36일째)
17. 고마워요, 아빠
아빠, 오늘은 어디서 자요?
800킬로미터를 걸어야 한다고요?
프랑스 파리의 날씨는 화창했다. 비행기로 겨우 한 시간 떨어져 있는 런던 날씨와는 완전히 달랐다. 런던에 있었던 사흘 동안에는 날씨도 흐렸고 수시로 빗방울이 떨어졌지만, 파리의 날씨는 그런 날이 있었냐는 듯이 맑고 따뜻했다. 내가 그렇게 보고 싶어 하던 에펠탑도 봤고, 그렇게 먹고 싶어 하던 마카롱도 먹었으니 파리에서 할 건 다 한 것 같았다.
이제 이번 여행의 주목적지인 스페인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갈 때가 왔다. 파리에서 고속 철도인 테제베를 타고 남쪽으로 다섯 시간을 달리면 바욘이라는 곳에 도착한다고 했다. 이곳에서 기차를 갈아타고 1시간 20분쯤 더 가면 산티아고를 향한 출발점인 생장 피에드포르에 도착하게 된다. 프랑스의 생장에서 스페인의 산티아고까지는 약 800킬로미터라고 하는데, 그 머나먼 길을 다른 교통수단 없이 오직 두 다리로만 걸어가야 한다. 이미 각오는 했지만 막상 시작한다고 생각하니 벌써부터 눈앞이 캄캄해졌다. 아~ 이제 고생길 시작인 걸까?
"성민아, 아빠랑 여행 갈래?"
"어디로요?"
"스페인."
"스페인에요? 왜요?"
"예수님의 제자 중에 야고보라는 분이 있잖아? 이분이 복음을 전하기 위해 걸었던 길이 스페인에 있는데, 아빠는 성민이랑 같이 이 길을 걸으면 좋을 것 같아."
"베드로, 안드레, 야고보 할 때 나오는 야고보죠? 그럼 얼마나 걸어야 되는데요?"
"800킬로미터. 서울에서 부산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거리야. 제법 멀지?"
"우아, 그렇게 멀어요? 그럼 며칠이나 걸어야 되는데요?"
"한 35일?"
"그렇게 오래요? 에이, 못할 것 같은데."
"그래, 쉽지는 않을 거야. 800킬로면 엄청 먼 거리니까. 그래도 아빠는 성민이랑 둘이 같이 가고 싶다."
… …
"아빠, 한 번 도전해 볼게요. 우리 같이 가요."
"그럼 아빠랑 한 가지 약속할 게 있어. 다치거나 아파서 못 걷는 건 어쩔 수 없지만, 걷다가 힘들 때 쉬었다 가자고는 해도 못 가겠다거나 걷기 싫다거나 집에 가고 싶다는 얘기는 꺼내지 않기. 약속할 수 있겠어?"
"네, 약속할게요."
그렇게 아빠와 나, 둘만의 여행을 계획하고 준비를 시작했다. 아빠는 우리 모두 걷기 훈련이 안되어 있으니 출발하기 전에 미리 연습해야 한다고 아침마다 조금씩 걷자고 하셨다. 처음에는 가벼운 배낭을 메고 조금 걸었지만 점점 무게와 거리를 늘렸다. 매일 한두 시간씩 걷는데 아빠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걸으니 별로 힘든 줄도 몰랐고, 걷기에 자신감도 붙어 갔다. 이렇게 준비를 마치고 아빠와 함께 영국 런던에 들렀다가 프랑스 파리에 도착한 것이다.
국경이 뭐 이래? (1일째)
한국을 떠난 지 6일째라 이제 시차 적응은 어느 정도 되었는데 낯선 환경 때문인지 아니면 설렘 때문인지 새벽에 잠을 두 번이나 깼다. 그러다가 다시 잠이 들었는데, 밖에서 사람들의 말소리와 마룻바닥 삐걱거리는 소리, 화장실 물소리에 잠이 깼다. 시계를 보니 6시가 좀 넘어 있었고 창밖에는 푸르스름한 빛깔이 감돌고 있었다.
"성민아, 잠 깼어?"
"네, 그런데 새벽에 두 번이나 깼어요."
아직 자고 있는 사람도 있고, 벌써 신발을 신고 출발하려는 사람도 있었다. 나도 아빠와 같이 준비하고 식당에 마련된 빵과 시리얼, 따뜻한 우유를 마시고 배낭을 챙겨 내려왔다.
나폴레옹이 넘었다는 나폴레옹 길은 눈이 잔뜩 쌓여서 다른 길로 돌아가야 한다. 이 길은 나폴레옹 길보다는 좀 더 쉬운 길이지만 그래도 거리가 꽤 된다. 며칠 전까지 춥고 눈도 많이 왔다고 들었는데, 다행히 오늘은 날씨가 좋아 걷는데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산티아고까지는 800킬로미터 정도인데 군데군데 그려져 있는 노란 화살표를 따라가면 된다고 했다. 길을 걷다가 갈림길이 나오면 화살표가 가리키는 쪽으로 가면 되고, 걸으면서 노란 화살표가 발견되면 그만큼 잘 걷고 있다는 뜻이었다.
얼마 가지 않아 프랑스에서 스페인으로 넘어가는 국경이 나왔다. 유럽은 전체가 한 나라와 같다고 하더니 국경인데도 국경선도, 군인도, 경찰도, 심지어 검문하는 사람도 없었다.
오늘 걸어야 하는 거리는 27킬로미터였다. 평지에서 어른 걸음으로 한 시간에 4∼5킬로미터 정도를 걷는다고 하니 여기 산길에서는 쉬지 않더라도 일곱 시간은 걸어야 하는 거리였다.
제발 우리 좀 재워 주세요 (7일째)
어제 저녁에 비가 제법 왔는지 길이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다행히도 오랜만에 아침 하늘이 맑았다. 어디서 왔는지 모를 예쁜 고양이 한 마리가 알베르게(순례자들이 이용하는 전용 숙소) 앞에 앉아서 아빠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오늘의 길을 배웅이라도 하듯이.
길은 젖어 있었지만 진흙길은 아니어서 걷기에 크게 불편하지는 않았다. 뒤를 돌아보니 등 뒤에서 비추는 햇살이 젖은 길 위의 물에 반사되어 눈부시게 반짝였다. 가는 길에 미국에 살고 계신 한국 아저씨와 아줌마를 다시 만날 수 있었다.
"아저씨는 성민이가 참 대단해. 성민이는 늘 우리보다 늦게 출발하는데 우리보다 빨리 도착하잖아. 그리고 여기서 뛰어 다니는 사람은 아마 성민이밖에 없을 거야. 아는 사람 만나면 뛰어갔다가 다시 아빠한테 오면서 왔다 갔다 하는데, 아저씨는 죽어도 깨어나도 그렇게는 못하겠어."
이제 걷는 것도 좀 익숙해졌고, 이 길을 걷는 사람들 모두 산티아고를 향해 걷는 친구들이라고 생각하니 외국인을 만나도 처음처럼 두렵거나 겁이 나지는 않았다. 오히려 내가 먼저 다가가 인사할 때도 많아졌다.
다리를 건너 로그로뇨로 들어왔는데 다시 비가 내렸다. 이번에는 비를 안 맞으려고 알베르게까지 뛰어서 도착했는데 아뿔싸. 정문이 닫혀 있고 자리 없음이라고 써 놓은 듯 한 종이가 붙어 있었다.
"성민아, 벌써 자리가 없대. 이런 적이 없었는데, 다른 데로 가 보자."
아빠는 예상치 못한 상황에 조금 당황해하며 지도를 들고 5분정도 떨어진 알베르게를 찾아갔다. 세상에나! 거기도 자리가 없단다. 이제 남은 알베르게는 두 개. 비를 맞으며 비에 젖어 너덜너덜해지는 지도를 들고 물어물어 10분쯤 떨어진 알베르게에 갔다. 우리 차례가 되었는데 다행히 자리가 있었다.
퍼붓는 빗속의 아빠와 나 (19일째)
나는 자느라 몰랐는데, 아침에 일어나니 어젯밤에 알베르게에서 도난 사고가 일어났다고 했다. 내가 자는 동안에 경찰도 왔다 갔다는데 범인은 못 잡았단다. 스페인 부부가 우리에게도 소지품을 잘 관리하라고 조언해 주었다. 도대체 누가 훔쳐갔을까?
아침의 소동이 지나가고 오늘 일기예보를 보니 비 올 확률이 70퍼센트나 된다고 했다. 그러니 조금이라도 빨리 출발하는 게 비를 덜 맞는 방법이라고 해서 서둘러 출발했다. 오늘은 주로 차도 옆으로 나란히 있는 길을 따라 걸어갔다. 출발할 때부터 하늘이 우중충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점점 빗방울이 굵어지고 바람도 강해졌다.
아빠 비옷은 많이 찢어졌고, 내 비옷은 그나마 나았지만 비가 새어 들어올 것만 같았다. 야속한 비바람은 더욱 거세졌다.
"성민아, 그런데 괜찮아? 걸을 수 있겠어?"
"그럼요."
"안 춥니?"
"좀 춥긴 한데 괜찮아요."
"그래, 우리 성민이 대단하다! 아빠는 비 맞는 것만 상상했지 이렇게 추울 거라는 생각은 못했거든."
찢어진 비옷 사이로 비가 들어와 아래로 흘러내렸다. 무릎 아랫부분에는 스패츠가 있었지만 이미 바지는 쫄딱 젖었고 신발은 말할 것도 없었다. 신발에 물이 잔뜩 고여 있어서 걸을 때마다 그냥 물웅덩이를 맨발로 걷는 느낌이었다.
이글대는 태양, 지쳐 가는 나 (25일째)
스페인의 햇볕은 아침부터 강렬하게 내리 쬐었다. 그 빛을 받아 길가에 피어 있는 꽃들은 더욱 화사해 보였고 집 창가에 나와 있는 화분의 꽃도 예쁘게 반짝였다. 그런데 작은 마을에 있는 포도밭을 지나가는데 작은 포도나무에 가지만 달랑 있고 잎은 하나도 없었다.
"아빠, 있잖아요, 스페인은 세계 3대 와인 생산국이라고 하지 않았어요?"
"응, 그런데?"
"벌써 5월이 다 됐는데 포도나무에 이파리 하나 없네요. 와인 담그려면 뭐라도 열려야 하는 거 아니에요?"
"그러게, 아빠도 저 나무들이 살아 있는지 계속 궁금했어."
맛있는 와인을 만들려면 맛있는 포도가 주렁주렁 열려야 할 텐데, 지금은 포도는 고사하고 이파리 하나 없으니 도대체 뭘로 와인을 담그려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포도 한 알 못 먹고 포도밭을 지나가는데 날은 점점 더 더워졌다. 도시처럼 가로수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양쪽 포도밭 사이로 난 길을 걸어가는 것이라 그늘도 없어 햇볕을 온몸으로 고스란히 받아야 한다. 그러다 보니 몸은 서서히 달아올랐고 발걸음도 무거워졌다.
아빠는 덥다는 소리도, 힘들다는 불평도 없이 걸으면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이럴 때 보면 아빠도 참 대단하다. 그런데 눈앞을 보니 힘이 쭉 빠졌다. 오르막길… 안 그래도 오르막길이 싫은데 이렇게 덥고 지쳐 있을 때 나오니 그냥 싫은 걸 넘어서 너무 너무 싫었다. 어찌어찌 오르다가 난 그냥 멈춰 버렸다.
"성민아, 힘들어도 앉지 마. 앉았다가 다시 일어나서 가려면 더 힘들 거야. 나중에 그늘이 나오면 쉬고 지금은 그냥 서서 쉬는 게 좋겠다."
나는 말할 기운도 없었다. 오늘은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빙글빙글 맴돌았다. 하지만 참고 걸어야 한다. 그래서 두 발로 산티아고 성당까지 걸어갈 것이다.
이제 남은 거리는 100킬로미터 (29일째)
오늘 목표만큼 걸으면 산티아고까지 남은 거리가 두 자리 수로 줄어든다. 열심히 숲 속을 걷는데 안개가 자욱했다. 거기에 길가의 풀 위에는 이슬이 송골송골 맺혀 있고, 군데군데 보이는 거미줄에도 물방울이 매달려 있어서 마치 동화 속의 한 장면 같았다. 비가 많이 와서인지 도랑물이 거세게 흘렀다. 물살이 심한 곳에는 누가 큰 돌로 길을 따로 만들어 두어서 사람들은 기차놀이하듯이 한 줄로 차례차례 걸어갔다.
드디어 100킬로미터라고 쓰인 반가운 표석이 나왔다. 오늘로 이 길을 걷기 시작한지 29일째 되는 날이다. 처음에는 과연 내가 800킬로미터나 되는 거리를 걸을 수 있을까 싶었는데 어느덧 100킬로미터만 남았다. 작은 한 걸음, 한 걸음이 모여서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다.
아빠, 사랑해요 (32일째)
오늘은 길고 길었던 800킬로미터의 대장정을 마감하는 날, 드디어 산티아고에 도착하는 날이다. 가능하면 12시 예배(미사)에 참석하기 위해 일찍 일어났다. 이미 새벽 4∼5시에 출발한 사람들도 있다고 했다.
마냥 기쁠 것 같은 날이지만 막상 산티아고에 도착하면 그 다음엔 무엇을 해야 하나 하고 걱정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했다. 아빠는 한 달 동안 한 가지 목표에 매달리다가 그 일이 끝나면 공허함을 느낄 수도 있다고 하셨다. 나는 그저 산티아고에 도착한다는 사실에 기쁘고 설레기만 했다.
나는 들뜬 기분으로 한 발 한 발 나아갔다. 얼마 후 옹기종기 모여 있는 집들이 시야에 들어오고 점점 더 많은 집들이 보였다. 저기가 바로 산티아고인 것 같았다. 노란 화살표는 계속 걸어가라고 알려주었고, 드디어 SANTIAGO라고 적힌 이정표가 나왔다.
아, 드디어 산티아고다!
그렇지만 산티아고에 도착하년 금방 찾아갈 줄 알았던 산티아고 성당은 쉽게 보이지 않았다. 도로에는 차들이 많았고 길거리는 오가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계속 화살표를 따라 걷다 보니 산티아고 성당 같은 건물 꼭대기가 눈에 들어왔다.
"성민아, 저기가 산티아고 성당 같다. 이제 정말 얼마 안 남았어. 조금만 더 힘내자."
오직 도착하지는 못했지만 눈에 뭔가가 보이니 마음이 놓이고 마음이 설레기 시작했다. 골목으로 들어가자 살짝 모습을 보여주던 성당은 다시 모습을 감추었다. 골목을 누비다 보니 마침내 성당의 옆 부분이 나왔다.
아빠와 함께 산티아고 성당 앞에 있는 광장 가운데로 향했다. 사람이 많이 다니지 않는 곳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서로 마주보고 무릎을 꿇었다. 머리를 숙이고 아빠가 기도를 시작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지금껏 아무렇지도 않던 아빠의 목소리에 눈물이 섞였다. 아빠는 울고 있었다. 아빠의 기도는 울음이 섞인 채 계속되었고, 나도 같이 울었다. 나는 울면서 아빠의 기도를 들었다. 기도가 끝나자 아빠는 나를 끌어안고 계속 눈물을 흘렸다.
"성민아, 고맙다! 이렇게 잘 와 줘서."
나도 계속 울면서 아무 말 하지 않았다. 우리는 그렇게 한참을 서로 끌어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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