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른발왼발의 독서 학교

   
오진원
ǻ
북섬
   
13500
2010�� 06��



>& ■ 책 소개
어린이문학 사이트인오른발왼발의 운영자이자 어린이책 비평가로 활동하는 저자가 지난 10년간 독서지도 현장에서 활동한 경험과 자녀와 함께 직접 책 읽기를 한 결과를바탕으로 한 독서지도서. 자녀에게 어떤 책을 읽히느냐보다 어떻게 읽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보는 저자는 가장 바람직한 독서 습관은 놀이처럼 즐길 수있는 책 읽기라고 말한다. 

개인적인 체험을 기록한일기에 머물지 않고, 십여 년간 어린이도서연구회에서 활동하고 오른발왼발을 운영하면서 여러 학부모들을 만나 상담했던 경험이 녹아든 책이다. 저자는머리뿐만 아니라 오감, 즉 온몸으로 책을 읽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책을 통해 부모와 아이가 가까워지는 방법뿐만 아니라 전국의어린이전문서점 정보를 수록했으며, 권말 부록으로 좋은 어린이책들을 추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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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 오진원
어린이책으로 둘러싸인 집에서 책을 읽으면서어린이를 위한 글을 쓰고 있다. 사람들과 책 읽기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싶어 어린이 문학 사이트인 오른발왼발(& &www.childweb.co.kr& )을 운영하고있고, 어린이도서연구회에서 활동했다. 옛이야기 연구 모임 ‘팥죽할머니’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있으며, 지은 책으로 『책 빌리러 왔어요』 등이있다. 

■차례
머리말 - 아이와 함께 책 읽는 기쁨을 누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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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아이 + 책 + 엄마 
#1. 책, 온몸으로 느끼기 
놀이처럼 즐겁게 익히는생활 습관 | 먹을 것에 관심을 갖기 시작할 때 | 좋은 기억이 감수성을 키운다 | 아이들은 몸으로 말한다 | 온몸으로 책을 읽는다는 것

#2. 그림책에서 친구를 만나다 
위안을 주는친구와 만나다 | 아이의 말을 대변해 주는 친구 | 친구 사귀는 법 깨닫기 | 친구와의 관계를 배우다 | 책 밖에서 친구와 만나다 | 아이에게친구란? 

#3. 말놀이로 기르는 어휘력 
가르치지않고 놀도록 한다면 | 아이 스스로 기르는 상상력 | 언어의 의미는 몸으로 깨달아야 | 꼬리에 꼬리를 무는 어휘력 기르기 | 생활에서 찾은말놀이의 즐거움 | 말놀이란? 

#4. 매일 커나가는원동력, 자립심 
아이들은 매일 진화한다 | 언니 오빠들처럼 자립심 기르기 | 목표를 이루고 기르는 자부심 | 도전하는 사람이 아름답다

#5. 책 읽기는 신나는 놀이처럼 
아빠와함께하는 특별한 시간 | 아이의 상상력을 키우는 놀이책 | 이야기를 연극으로 만들기 | 아이들의 놀이는 계속된다 | 아이들은 놀기 위해 세상에온다 

#6. 과학책은 언제부터 읽어야 할까?
비가 오는 날 벌어질 일들 상상하기 | 과학에 처음 눈을 뜰 때 | 버스 여행을 통해 배우는 과학의 원리 | 때로는 과학보다 신화를생각한다 | 과학의 시대에도 신화는 필요하다 

#7.옛날이야기는 아이와 함께 진화한다 
옛날이야기는 아이와 함께 진화한다 | 옛날이야기로 얻는 교훈 | 창조적으로 이야기 읽기 | 아이가들려주는 옛날 이야기 

Ⅱ. 책, 생활속으로 
#1. 자기만의 책꽂이 정리하기 
#2. 아이와 책으로 말하기 
#3. 아이와 함께하는 서점 나들이
#4. 자연과 더불어 놀기 
#5. 갈래별 책 읽기는 꼭 필요할까? 
#6. 잠자리에서 들려주는 이야기 
#7.읽어달라면 무조건 읽어줘야 할까? 
#8. 책은 언제까지 읽어줘야 할까? 
#9. 같은 책만 반복해서 보고 또 보는 아이
#10. 일기와 독서 감상문 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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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이럴 땐, 어떻게 할까? 
#1. 아이가 갑자기 책을 싫어할 때 
#2. 왜자꾸 어릴 때 보던 책을 볼까? 
#3. 우리 아이는 왜 다른 아이들과 다를까? 
#4. 정말 좋은 책에 관심이 없다면 
#5.책을 많이 읽어줬는데, 글자는 왜 모를까? 
#6. 아이가 만화책만 보려 한다면 
#7. 아이가 책에 전혀 관심이 없을 때

Ⅳ. 행복한 책 읽기
#1. 아이와 함께 책 읽기 
#2. 너무 일을 많이 하면 생각을 못하게 돼 
#3. 책, 새롭게 읽기
#4. 아이가 읽어주는 책 
#5. 아이에게 휴식이 되어주는 책 
#6. 아이가 권해주는 책 읽기 
#7. 아이와 친구되기 

오른발왼발의책꽂이




오른발왼발의 독서 학교


아이 + 책 + 엄마

책, 온몸으로 느끼기

아이가 책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건 기어다니기 시작할 무렵이었어요. 아이는 기어다니기 시작하면서 장난감들을 갖고 놀 듯 책을 갖고 놀기 시작했어요. 처음엔 책의 촉감을 느껴보는 것 같았어요. 아주 가끔은 살짝 맛을 보기도 했지만 한 장씩 넘겨보면서 좋아했어요. 딱딱한 합지 그림책, 양장 그림책, 엄마가 보는 책을 넘길 때 느껴지는 촉감이 달라서인지 아이는 여러 책들을 번갈아가며 넘기곤 했어요. 때로는 책을 반쯤 펼쳐 세워놓고 넘어뜨리거나, 여러 권을 블록 쌓듯이 쌓고서 넘어뜨리기도 했지요.


가끔은 책을 들고 와서 읽어달라는 시늉을 했죠. 그럼 저는 기꺼이 그 책을 받아들고 읽어줬어요. 하지만 늘 끝까지 읽어줄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어요. 방에 있는 책들이 모두 아이 수준에 맞는 책은 아니었으니까요. 이렇게 하루하루 지나면서 아이는 자기가 정말 좋아하는 책을 만나게 됐죠. 아이는 그 책이 마르고 닳도록 자꾸만 보여달라고 했어요. 그냥 책을 보기만 하는 게 아니었어요. 책과 하나가 되어서 온몸으로 책을 보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어요. 돌 무렵을 전후로 아이가 푹 빠져버린 책들을 소개해 드릴게요.


좋은 기억이 감수성을 키운다

아이의 성화에 못 이겨 하루에도 수십 번씩이나 읽었던 책이 있습니다. 바로 『달님 안녕』(하야시 아키코 글/그림 | 한림출판사)이지요. 아마 대충 어림잡아도 천 번 이상은 읽었을 거예요. 이 책에 대한 관심은 어느 날 갑자기 시작됐어요. 늘 방바닥에 놓여 있어도 본척만척했는데, 15개월쯤 된 어느 날 갑자기 이 책을 가져오더니 그 다음부터 손에서 놓질 않았죠.


날이 어두워지면서 지붕 위로 달이 떠오르는 과정을 숨죽인 듯 지켜보다가, 구름에 달님 얼굴이 가릴 때면 안타까워 어쩔 줄을 모르다가, 구름이 걷히고 다시 달님 얼굴이 나오면 좋아서 팔짝팔짝 뛰곤 했어요. 그러다 하루는 집 밖으로 나와서 달님을 보는 사람들을 보게 되었죠. 검게 윤곽만 드러난 작은 모습이지만 달님을 바라보는 사람과 지붕 위에 있는 고양이의 모습이 가슴에 다가왔나 봐요. 아이는 밖에만 나가면 달님을 찾게 됐어요. 만약 달님이 구름에 가려 있기라도 하면 책에서처럼 이렇게 외치곤 했죠. "구름 아저씨, 비켜주세요. 달님 얼굴이 안 보여요."


덕분에 한동안 어둑어둑해질 무렵 산책을 나가는 게 하루 일과가 됐지요. 이 산책은 아이에겐 굉장한 경험이었어요. 아이는 가르쳐주지 않아도 달님 얼굴이 날마다 바뀐다는 사실을 눈치챘지요. 그리고 그 사실에 열광했고요. 다시 동그란 달님이 될 때는 그 어느 때보다 기뻐했죠.


아이는 이 책을 다섯 살 무렵까지도 꾸준히 보곤 했어요. 그러더니 어느 날 더 이상 찾지 않게 되었어요. 이 책을 갑작스럽게 보기 시작했듯이, 이 책을 더 이상 안 보게 된 것도 갑작스러워서 아이가 학교에 들어갈 무렵 이 책을 보여주며 물었죠. "이 책 기억나니? 네가 아기 때 가장 좋아하던 책인데."


아이는 이 책을 전혀 기억하지 못했어요. 저는 그 사실이 조금 당황스러웠죠. 그래서 책 속의 내용을 그대로 읽어줬죠. 그랬더니 좀 전까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던 아이가 책을 그대로 따라서 외웠어요. 책은 기억 안 나는데 내용은 기억이 난다면서요. 책은 아이의 기억에서 멀어졌지만 그 책의 내용과 느낌만은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던 거지요.


초등학교 5학년이 된 지금까지도 아이는 달님을 아주 좋아해요. 날마다 바뀌는 달님의 모습과 색깔을 보며 너무 예쁘다며 감탄사를 연발하곤 해요. 그럴 때마다 저는 『달님 안녕』을 다시 떠올리죠. 아무래도 이 책이 없었다면 아이가 달님을 이렇게 좋아하게 되진 않았을 것 같습니다.


온몸으로 책을 읽는다는 것

아이는 책을 볼 때 오감을 모두 열어놓은 채로 봐요. 아이에게 책은 재미있는 놀잇감이자 탐구대상이고 또 엄마와 관계를 이어가는 끈이기도 하고, 세상을 배우는 학습도구이기도 해요. 이 모든 건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로 이어져 있죠. 몸으로 직접 해보고, 감정을 느끼는 대로 표현해 보고, 마치 책이랑 이야기하듯 자기 이야기를 넣어보기도 하고……


이렇게 온몸으로 책을 느끼고 받아들이면서 아이는 책을 보지요. 책은 그냥 그때그때 읽는 데 그치지 않고 아이의 생활 그 자체가 되지요. 아이는 책을 안 보고 있는 동안에도 늘 책과 함께 있는 셈입니다. 책의 내용을 온몸으로 표현하는 과정은 곧 책과 하나가 되는 과정이었던 것이지요.



책, 생활 속으로

일기와 독서 감상문 쓰기

아이가 학교에 들어간 지 석 달 째 접어드는 5월의 어느 날이었어요.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의 표정이 심상치가 않았어요. 무슨 일이냐고 묻자 아이는 시무룩해서 말했어요. "일기 써 오래." 순간 올 것이 왔구나 싶었어요. 사실 아이는 한글을 읽기는 해도 쓰는 건 전혀 못하고 학교에 갔어요. 네 살 때부터 학교 입학 전까지 자기 이름과 엄마, 아빠밖에 쓸 줄 몰랐어요. 그래서 얼마 전부터 시작된 받아쓰기 시험 때문에 어지간히 고생하고 있었죠. 그러니 이 상태에서 일기를 써야 한다는 건 아이에게 너무도 끔찍한 일이었죠.


저는 아이에게 필요한 건 일기에 대한 부담감을 없애주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아이에게 일기라는 건 그냥 그날 있었던 일 가운데 기억에 남는 일을 쓰는 거라고 말해 줬어요. 하지만 역시 쓴다라는 말 때문에 아이는 몹시 거북해했죠.


이번엔 아이에게 그날 있었던 일 가운데 기억나는 일이 있는지를 물어봤어요. 그리고 엄마한테 이야기해 보라고 했죠. 아이는 그야말로 그날 있었던 일들을 쭉 이야기했어요. 저는 아이가 하는 말을 그대로 받아 적었지요. 아이의 첫 번째 일기는 마치 일지 같아요. 몇 시에 뭘 했고,몇 시에 뭐가 끝났고 하는 식이죠. 아이의 일기를 보고 아쉬움은 있었지만, 다음번 일기를 쓸 때는 기왕이면 한 가지 일에 대해서만 써보자 하고 넘어갔어요. 그래도 아이는 나름대로 만족하는 것 같았어요. 자기가 한 일이 정리되어 있었으니까요. 하긴 아이가 일기 쓰기를 어려워하지 않게 된 것만으로 충분하지요.


다음 날부터는 일기에 제목을 붙여보기로 했어요. 제목을 붙이면 써야 할 일이 좀 더 분명해지니까요. 그리고 날마다 아주 조금씩 일기에 대해 이야기를 해줬어요. 때로는 『내가 처음 쓴 일기』(윤태규 엮음 | 김성민 그림 | 보리)나 『일기 쓰기 어떻게 시작할까』(윤태규 | 보리)에 실린 다른 아이들의 일기를 함께 보기도 했고, 그날 있었던 일들을 마구 수다처럼 풀어놓으면서 글감을 찾아보기도 했죠.


그리고 아이가 일기에 쓰고 싶은 내용을 이야기하기 시작하면 옆에서 열심히 받아 적었어요. 그럼 아이는 제가 받아 적은 걸 소리 내서 읽으면서 이상한 부분을 찾아 고쳤죠. 이렇게 고친 글이 자기 마음에 들면 일기장에 옮겨 적었어요. 일주일 만에 일기를 어떻게 써야 할지를 알게 된 것 같았어요. 아이는 일기를 쓸 때면 자연스럽게 제목을 먼저 쓰게 되었어요. 즉 자기가 쓰고 싶은 이야기를 고르는 거죠. 아이는 제가 받아 적어 놓은 걸 읽어보고 모르는 글씨를 물어가며 스스로 고치기 시작했죠. 그리고 2학기 무렵에는 드디어 혼자서 일기를 쓰기 시작했어요.


아이는 일기라는 게 그날 있었던 일을 누군가에게 자연스럽게 이야기하듯 쓰면 된다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처음 일기를 쓰기 시작하며 그냥 이야기만 하게 한 것이 도움이 된 것 같았습니다. 이야기가 글이 되는 걸 직접 확인했고, 글을 가다듬는 법은 지금껏 책을 읽는 과정에서 알게 됐으니까요.


아마 일기를 쓰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을 때일 거예요. 아이에게 새로운 숙제가 또 하나 등장했죠. 독서감상문 말이에요. 사실 독서감상문은 일기만큼 부담스럽지는 않았어요. 학교에서 나눠준 독서기록지가 있었거든요. 십여 종이 넘는 독서기록지 가운데는 그림으로 표현하는 활동이 참 많았어요.


독서감상문의 가장 큰 문제는 선생님께 검사를 맞고 통과를 해야만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것이었어요. 통과한 개수만큼 학기말 혹은 학년말에 금장, 은장, 동장을 받았어요. 그러다 보니 상을 타기 위해 엉터리로 써오는 아이가 종종 있었고, 선생님은 이런 문제를 조금이라도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규칙을 정하셨던 거지요. 그런데 아이에게는 이런 규칙이 잘 맞지 않았어요.


처음엔 주로 기억에 남는 한 장면만 그리던 아이가 1학년 2학기가 지나면서 네 칸짜리 그림을 그리기 시작할 때였어요. 네 칸짜리 그림은 이야기 차례에 따라 중요 장면을 네 칸의 그림에 그리는 것이었죠. 즉, 이야기의 기승전결 순서에 따라 줄거리를 요약하는 훈련을 하는 거예요. 하지만 이런 형식을 처음 접해 보는 아이는 이야기 전체의 중심 내용이 아니라 자기가 좋아하는 장면을 네 칸의 그림으로 그렸어요.


저는 아이에게 콩쥐팥쥐 이야기를 해달라고 했어요. 아이가 말로 들려주는 줄거리는 좀 어설프긴 해도 위에 그린 그림과는 전혀 다를 수밖에 없었죠. 저는 이럴 경우에는 좋아하는 장면을 나눠서 그리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 전체를 나눠서 그리는 거라고 말해 줬어요. 아이도 고개를 끄덕였어요. 원님이 떠나는 장면에서 끝나는 이야기는 아이도 원치 않았으니까요. 하지만 애써 그린 독서기록지를 포기하진 못했어요. 힘들게 한 거니까 그냥 내기로 했죠. 아이는 다음부터 확실히 달라졌어요. 아마도 그날 독서기록지를 억지로 고치게 했다면 이렇게 달라지진 않았을 것 같아요. 힘들게 한 걸 잘못했다고 처음부터 다시 하는 것만큼 맥빠지는 일도 없으니 말이에요.


1학년 말쯤 되자 아이는 드디어 독서감상문에 도전했어요. 저는 아이가 처음 일기를 쓸 때와 같은 방법을 썼어요. 엄마한테 이 책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했어요. 그리고 아이가 말하는 대로 그대로 받아썼어요. 아이는 제가 받아쓴 글을 읽었어요. 말로 하다 보니 받아 적어 놓은 글이 너무 많아 싶었나 봐요. 아이는 빼고 싶은 부분은 빼고, 이상한 부분은 고치고 하면서 글을 완성해 갔어요. 저는 아이가 하는 걸 그냥 지켜보기만 했고요.


이후 아이는 더 이상 독서감상문 때문에 고민하는 일이 없었어요. 신나게 책을 읽다 하고 싶을 때 한 번씩 하다 보니까 학년이 올라갈수록 독서기록지를 하는 일이 점점 재미있어졌나 봐요. 학년이 올라갈수록 독서장에서 상을 타는 아이들이 점점 줄어들지만 아이는 늘 꾸준했어요. 독서장 시상이 끝나고 난 뒤에는 독서감상문을 더 이상 안 쓰는 아이들이 대부분인데, 독서장과 상관없이 쓰고 싶을 때마다 독서감상문을 썼어요.


이게 다 독서감상문에 대한 부담이 없기 때문일 거예요. 책 읽기가 즐거운 놀이이듯 독서감상문을 쓰는 것도 아이에겐 나름대로 즐거움을 주는 것 같아요. 이쯤 되면 잘 쓰고 못 쓰고는 아무 문제도 안 되겠지요?



이럴 땐, 어떻게 할까?

왜 자꾸 어릴 때 보던 책을 볼까?

그동안 아이는 늘 아기 책을 즐겨보곤 했어요. 예닐곱 살까지도 아기 책에 푹 빠져 지냈지요. 제가 읽어줄 때도 있었지만 혼자서 볼 때가 더 많았어요. 아기 때 그럭저럭 보던 책 가운데는 오히려 아이가 크고 나서 너무나 즐겁게 보는 책도 있었어요. 물론 아기 때 열심히 보던 책을 새삼스럽게 다시 꺼내 보기도 했고요. 하지만 어떤 책을 보더라도 아이는 아기 책에서 훨씬 더 많은 걸 보고 느꼈어요. 아이의 표정이, 아이의 행동이, 아이의 질문이, 책을 보고 하는 말이 그걸 증명해 주고 있었죠. 아기 때는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즐거움을 새롭게 발견하는 것 같았어요. 때때로 어리광을 피우고 싶을 때면 아기 책을 보고 놀면서 맘껏 아기인 척하며 해소하기도 했고요. 하긴 저 역시도 아기 책을 보면 색다른 재미를 느끼는데 아이라고 왜 안 그렇겠어요.


사실 아이가 아기 책을 보는 걸 여유 있게 봐줄 수 있었던 데에는 이유가 있었어요. 아이는 아기 책을 보는 만큼 자기 또래가 보는 책을 봤고, 때로는 아이 수준으로는 좀 어려워 보이는 책들에 빠져들기도 했거든요. 만약 아이가 아기 책만 보고 다른 책을 안 보았다면 저도 이렇게 여유 있게 봐주진 못했을 거예요. 그런데 가만 보면 저희 아이만 그런 게 아니라 대부분의 아이들이 책을 읽는 방식이 비슷한 것 같아요. 가끔은 이런 질문을 받곤 했거든요.


"아이가 아기 책을 볼 때가 훌쩍 지났는데도 자꾸 아기 책만 보려고 해요. 어떻게 하면 제 나이의 책을 볼 수 있을까요?" 그러면 저는 되묻곤 했죠. "아이가 아기 책만 보고 자기 또래의 책은 안 보나요?" 그럼 100% 이런 대답을 들었어요. "아뇨, 그건 아니지만 아기 책을 볼 때가 지났는데도 계속 보니까요."


많은 엄마들은 아이가 커나가면서 자연스럽게 책 읽기 단계도 발전한다고 생각해요. 마치 학교에서 학년이 올라가면서 자연스럽게 교과서도 달라지면 옛날 교과서는 들여다보지 않는 것처럼 말이에요. 마치 1학년이 3학년 교과서를 읽으면 그것만큼 기분 좋은 일이 없지만, 3학년이 1학년 교과서를 가지고 공부한다면 답답해하는 것처럼 말이에요. 다들 앞서가는 건 좋아하지만 뒤처져 따라가는 건 불안해해요. 하지만 3학년 것을 공부하다가도 1학년 때 배웠던 것 가운데서 기억이 나지 않는 게 있다면 다시 보는 게 더 도움이 돼요. 3학년인데 1학년 걸 보다니……, 하며 그냥 지나치면 나중에 문제가 되기도 해요. 더구나 책 읽기는 교과서를 공부하는 것과는 전혀 달라요. 내용만 정확히 알면 넘어갈 수 있는 교과서와는 다른 무언가가 있어요. 책이란 머리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보는 거죠.


엄마가 보기엔 이미 다 커버린 아이들이 아기 책을 보는 게 퇴행처럼 여겨질 수 있어요. 물론 일시적인 퇴행일 수도 있죠. 하지만 실은 다음 단계로 한 발 더 나아가기 위해 몸을 움츠리고 숨을 고르며 다지고 있는 것이지요. 아마 아이는 몸을 움츠리고 숨을 고르며 다진 만큼 더 높은 단계로 훌쩍 뛰어오를 거예요.



행복한 책 읽기

아이가 권해주는 책 읽기

아이가 2학년 때의 일이었어요. 아이는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가방을 열더니 책을 한 권 꺼내주며 말했어요.


"엄마, 이 책 읽었어?"

"아니."

"엄마, 그럼 이 책 꼭 읽어봐. 꼭이야."


아이가 건네준 책은 『영리한 폴리와 멍청한 늑대』(캐더린 스터 글 | 벤 코트 그림 | 햇살과나무꾼 옮김 | 비룡소)였어요. 아이는 학교에 갈 때 늘 읽을 책을 들고 갔어요. 교과서를 모두 학교에 두고 다니는 아이에게 아침 등교 준비는 읽을 책을 골라 가는 게 전부였어요. 오늘도 아이는 책꽂이를 10여 분간이나 샅샅이 살펴보고는 이 책을 뽑아갔어요.


이 책은 제가 오래전에 사두었지만 읽어보지는 못한 책이었어요. 저는 아이에게 책을 받아들었어요. 늘 봐야지 하고 못 봤는데, 이 기회에 꼭 읽어야겠다 마음먹었지요. 하지만 며칠이 지나자 책 읽는 걸 깜박 잊고 말았어요.


"엄마, 그 책 다 봤어?"

학교에 다녀온 아이가 물었어요.

"아니, 아직 못 봤는데……."

"엄마! 아직도 안 봤어? 그 책이 얼마나 재미있는데. 그럼, 일단 도로 줘봐. 다시 한 번 보게."


아이는 책을 다시 가져다 읽었어요. 그리고 저는 드디어 그 책을 봤지요. 아이 말대로 책은 정말 재미있었어요. 빨간 모자의 패러디라고나 할까요? 늑대는 폴리를 잡아먹으려고 하지만 번번이 폴리한테 속아 실패했어요. 그동안 책을 보며 늑대가 무섭기만 했던 아이들이라면 아주 속이 시원해지는 책이지요.


"엄마, 그 책 봤다."

"정말?"

"정말 재미있던데."

"정말이지? 그렇지?"


아이는 자기가 권해 준 책을 엄마도 읽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즐거워하는 것 같았어요. 한참 동안이나 책 이야기를 조잘조잘 늘어놓았지요. 그 후로도 아이는 저에게 책을 권해 주곤 했어요. 저는 아이가 권해 주는 책은 만사를 제쳐놓고 먼저 읽었지요. 아이가 권해 주는 책을 읽었을 때 아이랑 할 이야기가 더욱 많아진다는 사실을 알았거든요. 아이는 그 책이 그저 재미있기 때문에 권해 주는 것이지만 대개는 그 당시 아이의 관심을 대변하는 것이기도 했어요. 그러니 아이가 권해 주는 책을 읽고 함께 이야기하는 것은 아이가 지금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 왜 그 책에 관심을 보이는지를 이해할 수 있는 지름길이기도 했어요. 게다가 아이가 권해 준 책의 대부분은 공교롭게도 제가 안 보고 넘어갔던 책이었어요. 덕분에 저로서는 관심을 두지 않았던 책을 재발견하는 기회가 되기도 했지요.


아이가 커가면서 이렇게 책 읽기의 색다른 즐거움을 얻게 될지는 몰랐답니다. 책이란 늘 어른이 아이에게 권해 주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이렇게 아이가 어른들에게 권해 줄 수도 있습니다.


아이와 친구 되기

이제 5학년이 된 아이는 요즘 아주 심각한 사춘기를 겪고 있어요. 그러다 보니 예전과는 달리 아이와 실랑이를 하는 일도 자주 생기곤 해요. 아이도 삐치고 저도 삐치고 서로 냉전이 벌어지기도 해요. 이러다 앞으로 아이랑 다툴 일이 점점 많아지고, 사이도 점점 멀어지지나 않을까 겁이 나기도 해요. 하지만 마음 한구석엔 믿음이 있어요. 지금껏 아이와 친구로 지내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친한 친구로 남을 거라는 믿음이요. 친한 친구일수록 툭탁거리며 싸울 일도 많지만, 싸우는 만큼 정도 많이 들잖아요.


그리고 아이와 저 사이에 이런 믿음을 가능하게 해준 건 그동안 아이와 함께한 책 읽기 덕분임을 다시 한 번 깨달아요. 책을 함께 읽고 이야기하며 서로를 이해하고, 또 서로를 알아가며 새롭게 발견한 세계가 너무나 크니까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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