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아 그래?

   
김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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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클라우드
   
13000
2015�� 09��





■ 책 소개


그 속에 ‘삶’과 ‘사람’ 그리고 ‘사랑’이 있었다
편견과 경계를 허무는 “일상의 종교학”


2014년 가을부터 매주 금요일자 조선일보에 실렸던 칼럼을 엮은 책. 종교전문기자 김한수가 개신교.불교.원불교.천주교 등 여러 종교에 얽힌 흥미로운 에피소드를 담백하게 담아냈다. 소탈하면서도 개성 넘치는 성직자들의 일상을 비롯해 사찰음식에 된통 당한 뒷이야기, 노량진 수산시장만큼이나 활기찬 각 종교시설의 새벽 풍경 등 무거움을 벗어던진 일상의 종교학이 다채롭게 펼쳐진다.


더불어 스님들의 법명이나 천주교 신자의 세례명에 담긴 의미, 왜 여기서는 ‘하느님’이라 하는데 저기서는 ‘하나님’이라 하는지, 해마다 부활절 날짜가 달라지는 까닭 등 종교가 없는 이들은 물론, 해당 종교의 신자들도 한번쯤 궁금해 했을 내용에 대해 전문기자답게 명쾌한 해설을 곁들였다. 유쾌한 웃음과 묵직한 울림을 선사하는 71가지 이야기들을 통해 엄숙함을 내려놓은 종교의 진짜 얼굴을 만날 수 있다.


■ 저자 김한수
서울 출생. 서울 양정고와 고려대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고 1991년 조선일보에 입사했다. 편집부를 거쳐 1993년 11월부터 문화부에서만 20년 넘게 근무하고 있다. 학술, 출판, 미술담당 등을 거쳐 2003년부터 2010년까지 만 7년간 종교를 담당했고, 2014년부터 종교전문기자로 일하고 있다.


대표 저서로는 『종교, 아 그래?』, 『우리 곁의 성자들』이 있다.


■ 차례
이야기 하나_ 목욕탕에선 절하지 말랬지!

전화번호, 왜 자꾸 바꾸세요? | 싱거운 자연의 맛? 아닐 수도 있습니다 | 이판사판 야단법석 | 너희 집 대(代) 끊겨 어떡한다냐? | 아령이 교회 종에서 나온 거라고? | 여기, 침묵의 그늘에서 그대를 맑히라 | ‘하느님’과 ‘하나님’ 사이 | 스님의 고무신 | 미사주(酒)의 비밀 | 햇병아리 시절은 누구에게나 눈물겹다 | 청량한 우정을 꿈꾸다 | 목욕탕에선 절하지 말랬지! | 알고 보면 재미있는 수호성인 | 남녀칠세 ‘기역자’ | 옷 한 벌의 무게 | 부처의 서광이 서린 성당? | 과연 새벽은 뜨거웠다


이야기 둘_ 돌아보면 아련한 그 시절
미워할 수 없는 너, 천 원짜리여! | 선방 풍경 | 그들이 효도하는 법 | 왜 스님만 ‘님’자를 붙이나요? | 냉담의 빙하, 녹을까 안 녹을까 | 38만 원에 싱글벙글 | 휴지 한 칸이 몇 cm인지 알아? | 또 하나의 이름, 세례명과 법명 | 돌아보면 아련한 그 시절 | 기도하고 노동하라 | 열반송, 평생의 깨달음을 담다 | 믿으세요? | 출제자의 의도를 생각해야 합니다 | 방장이 뭐길래 | 300년째 밀당중입니다 | 스님은 국수를 좋아해 | 괜히 드리는 게 아닙니다 | 이냐시오의 굴, 달마의 굴


이야기 셋_ 어쩐지 닮았더라니
충성! 두 번째 입대를 신고합니다!! | 어쩐지 닮았더라니 | 6×7-6+4=? | 모두가 부러워하는 것을 갖는 비결 | 이게 바로 ‘명품 달력’ | 우리는 이렇게 추모합니다 | 선문답인데 왜 그리 대답하셨소 | 매서인, 쪽복음 그리고 권서인 | 성직자의 아내로 산다는 것 | 빛과 어둠 | 튀는 스타일은 어디에나 있다 | 평화의 등불 들고 108산사를 가다 | 부활절에는 왜 달걀을 주고받을까? | 죽어도 좋고, 살면 더 좋고! | 성직자의 유학 | 세상에서 가장 센 기도발 | 상징을 알아야 보물이 보인다 | 깨달음은 그렇게 익어갑니다


이야기 넷_ 모든 이에게 따뜻한 풍경
명동성당 강아지가 삼종기도하는 법 | 법문 읊는 래퍼들 | 사경(寫經), 글자로 말하는 신앙심 | 스님은 축구광, 사제는 야구광? | 그 모습 그대로, 좌탈입망 | 하나님도 모르시는 것? | 템플스테이 그리고 소울스테이 | 삼소회 | 문화재가 문화재를 지킨다고? | 알바 뛰는 목사님 | 어려운 한자말, 많아도 너~무 많아! | 3년만 더 할 걸 그랬어요 | 머리 기른 북한 스님? | 마지막 순간을 함께하는 사람들 | ‘되기’는 쉬워도 ‘살기’는 어렵다 | 사찰을 넘어선 사찰음식 이야기 | 기적을 보여준 소망교도소 | 다시, 순례길을 생각하다


 




종교, 아 그래?


이야기 하나 - 목용탕에선 절하지 말랬지!

하느님과 하나님 사이

초보 종교 담당 기자들이 곤욕을 치르는 경우가 있다. 기사에서 하나님과 하느님을 혼동했을 때다. 천주교 기사에 하나님이라고 쓰거나 개신교 기사에 하느님을 썼다간 순식간에 무식쟁이로 찍힌다.


"우리 천주교에 관심을 가져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만, 우린 하느님이라고 씁니다", "개신교는 하나님이에요. 하나님! 하느님이 아니라구욧!" 하는 전화를 아침부터 받는다고 상상해 보라. 이런 경우 반드시, 재빨리 정정해야지 미적거리다간 더 혼난다. 그런데 자신들을 다룬 기사에 하나님을 쓰건, 하느님을 쓰건 아무 말이 없는 곳이 있다. 성공회다.


알려진 대로 성공회는 16세기 영국의 왕 헨리 8세가 자신의 이혼 문제를 두고 교황청과 갈등을 빚다가 파문 당하자 영국 교회를 만들어 독립하면서 생겨났다. 천주교에 뿌리를 두되 교황의 통제권을 벗어나나 것이다.


모태가 천주교이다 보니 닮은꼴도 많다. 부제 - 사제 - 주교 - 대주교로 이어지는 직제도 같고 제의도 비슷하며, 말씀의 전례와 성찬으로 이어지는 예식 순서도 유사하다.


그러나 천주교의 모든 사제와 주교 임명권이 교황에게 있는 반면, 세계 각국의 성공회는 인사와 재정의 자율권을 갖는다. 또한 주교는 사제와 신자가 함께 투표권을 갖고 뽑는다. 그래서 선거 운동(?)도 있다.


성공회 사제서품식에 참석할 기회가 있었다. 모든 순서는 천주교와 같았다. 그런데 나머지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예를 들어 천주교 사제서품식은 꼭 군대사열식 같다. 서열별로 딱딱 줄 맞춰 발 맞춰 입장한다. 반면 성공회 사제들은 줄도 대충에 발을 더더욱 맞지 않고, 심지어 주변의 아는 사람들에게 인사하느라 바빴다. 속으로 아, 이런 게 바로 천주교와 성공회의 차이구나 싶었다.


대한성공회는 스스로 개신교로 분류한다. 그러면 다른 교단처럼 하나님으로 써야 할 것 같은데 하느님으로도 쓴다. 주일 미사와 주일 예배라는 용어도 섞어 쓴다. 천주교는 남성 사제를 고수하고 국내 개신교계에서도 보수적 교단은 아직 여성 목사를 인정하지 않지만, 성공회는 여성 사제뿐 아니라 여성 주교도 나왔다.


또한 성공회는 남녀 사제 모두 결혼할 수 있다. 그래서 수년 전 영국 성공회는 천주교 사제가 결혼하면 그냥 성공회 사제로 받아주겠다고 한 적도 있다. 반대의 경우, 그러니까 성공회 사제가 이혼하고 천주교 사제로 오겠다는 경우도 없지만 설령 그런 이가 있다고 해도 천주교는 받아 주지 않는다.


수녀로 40여년을 지내다 2007년 사제 서품을 받은 오인숙 카타리나 수녀사제처럼 성공회는 수녀도 사제가 될 수 있다. 또 천주교는 바오로, 개신교는 바울로 부르는 성인을 성공회는 바울로라 부른다. 1970년대 천주교와 개시교가 공동 번역한 성경 용어에 근거한 것이다. 지금 대한성공회 김근상 주교의 세례명이 바울로이다. 다만 신부라고 하지 목사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성공회 기광준 신부는 "성공회는 개신교와 천주교 사이에 묘한 중간지대에 있으면서 형제를 통합하려는 에큐메니컬(교회 일치) 전통을 지키려 노력하고 있다"며 "그런 점에서 공식적으로는 하느님으로 쓰지만 하나님으로 쓰는 것도 문제 삼지 않는다"고 했다.


사제의 결혼과 여성의 사제 서품 그리고 하느님과 하나님 호칭 문제까지, 모두 성공회의 열린 자세를 보여 주는 사례들이다.



이야기 둘 - 돌아보면 아련한 그 시절

300년째 밀당 중입니다

"친애하는 시진핑 주석과 중국 국민의 축복을 바라며, 중국에도 평화와 행복의 은총이 있기를 기원합니다."


지난 8월 14일 방한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전세기가 중국 영공을 통과할 때 이런 메시지를 보냈다. 비행 중 통과하는 국가에 축복을 담은 메시지를 보내는 것은 교황들도 해온 관행. 하지만 이날 프란치스코 교황의 메시지는 특별했다. 역대 교황을 통틀어 중화인민공화국 영공을 통과하며 교황이 보낸 첫 메시지였기 때문.


교황청은 1949년 중국 건국 이래 중국과 국교가 없다. 이 때문에 외신들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메시지를 놓고 바티칸과 중국의 관계 개선 신호인지 촉각을 곤두세우기도 했다.


종교를 부정하는 공산주의 체제는 바티칸과 중국의 외교 관계에 있어 가장 큰 걸림돌이다.


지난 2005년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선종 당시, 중국은 외교부 대변인을 통해 이렇게 말했다.


"바티칸이 대만과 단교하고 종교를 내세워 중국의 내부 문제에 개입하지 않는다면 언제든지 수교할 준비가 돼 있다."


대만과의 단교 그리고 내정 불간섭, 이렇게 두 가지 조건을 못 박은 것이다. 그런데 이런 장면은 낯설지 않다. 청나라 강희제의 재위 중에도 교황 특사가 찾아온 적이 있었다. 파견 목적은 각 수도회별로 중국에 파견된 천주교 선교사들을 총괄하고 통제할 감독자를 파견할 터이니 받아달라는 것이었다. 조너선 스펜스의 책 『강희제』에 따르면 강희제의 대답은 이랬다.


"감독자로는 중국에 10년 이상 거주한 자로서 내가 보기에 중국인의 생활과 언어, 풍습을 익히 아는 자가 임명되어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부분은 내가 보기에이다. 교황이 감독자를 임명해서 보내겠다는데, 강희제는 자신이 직접 임명하겠다고 응수한 것. 여기에 클레멘스 11세 교황의 교령 사건까지 겹쳤다. 이것은 교황이 중국인 신자들에게 제사를 지내지 말라고 명령한 것으로 중국 사정을 전혀 모르고 한 조치였다.


격분한 강희제는 명나라 말기부터 마테오 리치 등이 다져 온 천주교 선교 기반을 통째로 흔들어 버렸다. 이처럼 바티칸에 대한 중국의 태도는 뿌리 깊은 중화사상과도 관련 있다.


강희제 이후 300년의 시간을 건넜어도 내정 불간섭 요구는 변함이 없다. 중국이 교황청과 상의도 없이 자국 내에 관립교회 격인 애국교회를 만들고 정부 차원에서 주교를 임명하는 것도 문밖에서 얼쩡대며 왈가왈부하지 말라는 강희제의 연장선 위에 있는 셈이다.


스님은 국수를 좋아해

매년 음력 정월 26일 법정 스님의 추모법회 때에는 일반적인 다례제나 추모법회와는 다른 특별한 음식이 오른다.


간장 국수, 다시마와 버섯으로 연하게 국물을 내고 간장으로 간을 맞춘 지극히 간단한 음식이다. 법정 스님이 송광사 불일암에 머물던 시절부터 즐겼던 음식으로, 갑자기 들이닥친 손님들에게도 내주곤 했던 게 이 간장 국수다. 법정 스님의 담백한 삶을 응축적으로 보여 주는 음식이기도 하다. 매년 스님의 추모법회에 오르는 것도 이런 상징적 의미가 더해져서다.


법정 스님뿐 아니라 스님들의 국수 사랑은 유별나다. 노스님들은 몸이 편찮을 때 제자들이 "스님, 죽끓여 왔습니다" 하면 "됐다, 생각 없다" 하시다가도 "스님, 국수 삶아 왔습니다" 하면 "그래?" 하며 일어나신다고 한다. 오죽하면 국수와 고수를 싫어하는 스님은 좀 이상한 사람이란 말까지 나올 정도다.


스님들은 왜 국수를 좋아할까? 불교계에선 과거 어렵던 시절, 절에서 맛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별미였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지금이야 사찰 음식이 웰빙 음식으로 각광받고 있지만 불과 수십 년 전만 해도 절에선 직접 기른 채소와 밥 외에는 이렇다 할 먹을거리가 없었다. 오죽하면 수챗구멍에 빠진 콩나물이나 쌀을 본 노스님들이 이를 주워 와서 시주 무서운 줄 모른다고 불호령을 내렸다는 전설이 각 사찰마다 전해 내려올까.


당시엔 의식주 전체가 최소한이었다. 대강백으로 꼽히는 무비 스님은 "우리가 옛날에 수행할 때에는 이불도 없어서 좌선할 때 깔고 앉았던 좌복을 배에 얹고 맨바닥에서 그냥 잤다"라고 회고할 정도다.


노스님들이 죽을 싫어하는 것도 양식이 부족하던 시절, 쌀을 아끼기 위해 하도 자주 먹었기 때문이다. 그런 생활 속에서 가끔씩 먹는 국수는 단순한 음식을 넘어 생활의 활력소 역할을 했던 것.


최근 원로 스님을 모시고 여행을 다녀온 한 스님은, 여행 중 10인분 국수가 나왔는데, 노스님께서 어디 한번 먹어볼까 하시더니 혼자서 거의 다 드시는 것을 받다고 했다. 이렇게 스님들이 국수를 좋아하다 보니 절집에서 국수의 별명은 승소僧笑다. 국수 생각만 해도 슬며시 웃음이 나온다는 뜻이다.


그래서인가, 지난 2011년 조계사 경내에 문을 연 국숫집은 아예 옥호 자체가 승소다.



이야기 셋 - 어쩐지 닮았더라니

어쩐지 닮았더라니

"손목에 찬 그거, 불교야? 아님 천주교?"


나무 구슬을 실에 꿰어 만든 팔찌를 한 사람을 보면 주변에선 종교부터 묻는다. 손목에 차는 것을 불교는 단주, 천주교의 경우는 묵주라 부른다. 이름은 다르지만 겉모양은 비슷하다. 왜 두 종교는 똑같이 나무 구슬을 실에 꿴 묵주와 단주를 갖게 됐을까.


이를 위해서는 먼저 염주를 알아야 한다. 염주에 관해서는 경, 즉 부처님의 말씀이 전해진다. 바로 목환자경이다. 부처님은 근심거리가 끊이지 않는다는 어느 작은 나라 왕의 호소를 듣고 이렇게 권한다.


"번뇌와 인과응보의 장애를 없애려는 사람은 마땅히 목환자(나무구슬) 108개를 꿰어서 항상 걷거나 앉거나 눕거나 늘 지극한 마음으로 뜻이 흩어지지 않게 하고, 부처와 법과 승가의 이름을 부르며 하나씩 목환자를 넘겨라. 20만 번을 채우면 몸과 마음이 어지럽지 않고, 100만 번을 채우면 108번뇌가 끊어진다."


다시 말해 염주는 불교 발생 초기부터 부처의 가르침에 따라 번뇌와 고민을 끊기 위해 기도하는 도구로 만들어진 것이다. 이렇게 시작된 염주는 다양하게 변주돼 왔다. 보통은 콩알만 한 나무알로 만들지만 숫자를 줄이는 대신 알 크기를 호두알만 하게 만든 염주도 있고, 알을 옥이나 크리스탈 등으로 만든 것도 있다. 염주보다 구슬 수를 줄여 손목에 휴대하기 간편하게 만든 것이 단주다.


혜자 스님이 이끄는 108산사 순례단은 방문할 때마다 그 사찰의 이름을 새긴 염주알을 한 알씩 나눠 준다. 2006년부터 시작해 매월 한 사찰씩 순례하며 108산사 순례를 모두 마치게 되면 108개 알로 된 염주 하나를 얻게 되는 셈이다. 10년 기도의 공력이 108염주 하나에 담기는 것이다.


천주교의 묵주 역시 그리스도교 역사와 거의 동년배다. 초대 교회 당시, 이집트 사막에서 고독하게 수행하던 수도자들은 죽은 이와 순교자를 위해 구약성경 중 시편을 50, 100, 150편씩 매일 외면서 기도했다. 이때 몇 번 외웠는지 계산하기 쉽도록 곡식 낱알이나 과일 열매 구슬 등을 150알씩 줄에 꿰어 쓰기 시작했다. 굳이 입으로 한 번, 쉰 번 하지 않아도 한 바퀴가 돌아가면 150번이 되도록 한 것으로 이것이 묵주의 기원이다.


묵주 역시 크리스탈이나 은 등 귀금속을 비롯해 다양한 재료로 만들어진다. 염주와 마찬가지로 알의 숫자를 줄이는 대신 다섯 알에 하나씩 굵게 만들어 5단위로 끊어서 계산하기 쉽게 만들기도 하고, 손목에 차는 묵주는 오색 색유리로 만든 예쁜 것들도 많다. 또 성당 성물방이나 성지의 기념품점에서 사와서 사제들에게 축성받기도 한다.


이렇게 천주교의 묵주와 불교의 염주는 외모만큼이나 그 탄생의 배경 역시 닮은꼴인 셈이다. 그런데 주로 사용하는 재료 역시 그렇다. 두 종교 공히 구슬의 재료는 주로 나무로 만든다. 염주는 보리수, 향나무, 모간주, 흑단 등의 나무와 크리스탈을 비롯해 옥 제품도 있다. 묵주 알은 주로 대추나무로 만든다.


결국 염주든 묵주든 이들의 최종 목적지는 간절한 기도의 마음이라는 같은 곳인 셈이다.



이야기 넷 - 모든 이에게 따뜻한 풍경

사찰을 넘어선 사찰음식 이야기

2000년대 들어 웰빙 바람이 불면서 사찰음식이 크게 각광받았다. 비료나 농약을 쓰지 않고, 제철 재료를 사용하는 데다 첨가물 사용을 최소화하는 등 각종 성인병 예방에 좋은 것으로 알려지면서다.


조계종 종단 차원에서 사찰음식 전문점을 운영하는가 하면 시중에도 사찰음식을 응용한 음식점이 속속 들어섰다. 사찰음식 강좌와 레시피를 안내한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사찰음식 스타 셰프도 등장했다.


사찰음식이 각광받는 한편에서는 사찰 장류의 인기도 만만치 않다. 옛날처럼 집에서 메주를 띄워 된장이나 간장을 만들던 풍경이 거의 사라졌기 때문. 일반 가정에서도 된장, 고추장, 간장을 사서 먹다 보니 더 좋은 것, 더 믿을 만한 것을 찾게 된 것이다.


불교계에서 장류로 유명한 사찰은 통도사, 해인사, 영평사 등이다. 통도사는 서운암이 장류로 유명한데 웬만한 초등학교 운동장만 한 장독대를 보면 입이 떡 벌어진다. 이 장독에 담가 생산된 된장, 고추장, 간장, 막장을 일반에도 판매한다.


한편 해인사의 장은 국내산 콩과 해인사 23개 산내 암자 중 가장 높은 해발 900m 고불암 약수를 사용하고 콩도 가마솥에 삶는 등 전통 방식 그대로 만들고 있다. 매년 봄 된장과 간장을 나누는 장 가르기 때는 학인 스님 등 150명이 직접 운력에 나선다는 것도 해인사에서 빚은 장맛의 자랑. 해인사 스님들이 먹는 것과 똑같은 제품을 판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가을철 구절초축제로 유명한 영평사는 아예 영평식품이란 회사를 차려 스님과 재가자들이 함께 사찰음식을 만들어 판다. 인터넷 쇼핑몰 산사의 참맛 홈페이지에는 영업허가증도 올려놓았다. 죽염된장과 청국장이 유명하고 그밖에도 장아찌, 꽃차, 구절초와 헛개나무 추출액도 판매한다.


사찰에서 판매하는 음식을 맛본 사람들은 처음에는 "거칠다"라는 반응을 보인다. 된장, 간장은 짜다는 반응도 있다. 첨가물이나 조미료 등을 넣지 않고 전통 방식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차츰 익숙해질수록 깊고 구수한 맛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사찰에서 직접 장을 담가 파는 것은 사찰 재정에 도움이 된다. 또 사찰 된장은 믿고 먹을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면 결국 불교 전반에 대한 호감도를 높이는 부수적 효과도 있다. 이 같은 호응에 힘입어 한국불교문화사업단은 2014년 11곳의 사찰음식 특화사찰을 지정한 데 이어 2015년에도 선정에 나서고 있다.


서구의 천주교 수도원이 맥주, 치즈 등을 만들어 팔았던 전통과 비교해 본다면 우리 사찰들이 장을 담가 판매하는 것은 현대판 일일부작 일일불식(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도 말라)하는 자급자족 정신의 실천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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