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이너 생각 위를 걷다
2000
03 01 | 의뢰받지 않으면 디자인을 하지 않는 그런 디자이너는 필요 없다.
사람은 다른 사람으로부터 의뢰가 들어와야 비로소 행동에 나선다. 대부분의 사람이 그런 느낌, 그런 식으로 살아간다. 그러나 사람은 다른 사람으로부터 의뢰가 들어오지 않은 상태에서도 창작을 할 수 있어야 비로소 창조가가 될 수 있다. 업무로서 의뢰가 들어온 일을 한다면 그것은 업무일 뿐. 하지만 그것을 창조라고 착각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업무라는 영역 안에서 일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업무라는 영역 안에서 창조를 추구하기는 정말 어렵다. 아무도 의뢰하지 않은, 돈도 받을 수 없는, 자기와의 싸움이기 때문이다. 디자이너의 일은 꿈이 가득했으면 한다. 의뢰를 받은 ‘일’이라 해도 의뢰를 한 사람의 상상을 초월하는 창조적인 결과물을 내놓아야 한다. 이런 말을 해서는 안 되겠지만, 수지가 맞지 않는 일의 대표선수는 디자이너가 아닐까 싶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은 문제가 없을까. 다른 사람을 납득시키는 과정을 만들어내고 있을까. 결과도 중요하지만 그 일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클라이언트에게 안도감과 만족감을 안겨 줄 수 있을까. 완성된 것은 단순한 성과물에 지나지 않는다. 그 과정에서 어느 정도의 열의와 심혈을 기울였는가 하는 점이 중요하다.
2001
10 03 | 직원 모집을 할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 이력서에 첨부되어 있는 사진 속의 눈매을 보고 판단하는 것.
나는 주변 사람들이 잘 알고 있듯 완전연소파다. 매일 최선을 다해 나를 완전히 연소시키는 데에 얽매인다. 그리고 완전히 지친 상태에서 잠이 든다. 그래도 10년 후에 마흔여섯이 되어 현재 서른여섯 살의 나에게, ‘그때 좀 더 노력했으면 좋았을 텐데’ 하고 분명 후회 비슷한 마음이 들 것이다. 그래서 더 노력한다.
〈FROM A〉의 권두특집으로, D&DEPARTMENT에 관한 모집 공고가 내 사진과 함께 실렸다. 잡지사의 기획 ‘인기 가구 상점에서 일하자’와 비슷한 감각으로 공고를 내자 100통 가까운 이력서가 들어왔다. 이력서만으로 6분의 1정도는 탈락을 시켰다. 내가 이력서를 보는 포인트는 사진 속 눈매에 긴장감이 있는가 하는 점, 그리고 이력서 자체에서 신념을 느낄 수 있는가 하는 점, 크게 이 두 가지다. 이력서의 사진이 면접의 시초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러나 의욕이 없는 사람은 아무리 사소한 표정도 사진 속에 그대로 드러난다. 이것이 바로 진짜 첫 인상이다. 예술가나 저명인사가 자신의 초상화에 얽매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리고 신념. 의욕이 없는 이력서는 한시라도 빨리 내게서 떼어놓고 싶다.
면접에서는 말을 하고 싶어지는 사람을 찾는다. 태연한 표정으로 자신이 취직하고 싶은 상점에 면접 당일 처음 와 보았다고 말하는 사람은 그 시점에서 탈락이다. 면접 결과가 나오기 전에 자신이 일하고 싶은 상점에 다시 한 번 방문해 보지 않는 사람도 탈락이다. 가능하면 면접 전날 저녁에라도 애인과 함께 차라도 마시러 오는 사람이 이상적인 인재다. 우리는 인재를 채용하는 데 필사적이다. 모두가 회사라는 집단에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영향력이 바람직한 방향으로 행사되기를 바란다.
2002
05 15 | 집단 안에 존재하는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그 집단에 존재한다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다.
회사의 페이스는 출근하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회사의 페이스나 수준은 한 사람 한 사람의 직원이 만들어 낸다. 사람은 누구나 여유 있게 일하고 싶어 하고 음악을 들으며 즐겁게 일하고 싶어 한다. 점심시간도 제한 없이 두 시간 정도 즐기고 초과한 만큼 잔업을 하면 된다고 생각하고 날짱거리는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이 가까이에 있으면 주위 사람도 즉시 영향을 받는다. 그리고 회사 전체적으로 늘어진 분위기가 가득 찬다. 문제는 불쑥 방문한 클라이언트가 그런 분위기를 순간적으로 간파한다는 것. 또한 그런 분위기는 전화 응대에도 영향을 끼친다. 그리고 의욕 없는 완전히 늘어진 회사가 만들어진다. “실적이 없어서 보너스를 지급할 수 없습니다.” 이런 말을 듣는다면 회사를 그런 식으로 만든 자기 자신을 먼저 책망해 보는 것은 어떨까.
쉴 틈 없이 열심히 땀 흘리며 일하는 A군. 사람들은 그 사람을 성가신 존재로 여긴다. A만 없으면 즐거운 직장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곳이야말로 직장이 아닌가. 누군가가 바람직한 직장으로 만들지 않으면 바람직한 일은 들어오지 않는다. 자신의 페이스를 버리고 회사의 페이스를 먼저 생각하면서 열심히 뛰는 A군 같은 사원이 있기 때문에 직장은 유지된다.
07 21 | 장벽은 지극히 평범한 현상이다.
누군가와 나름대로 관계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다가 장벽에 부딪힌다. 그 이상의 관계는 이루어지지 않을뿐더러 그 이상 무리하게 진행하려 하면 그 관계가 오히려 위험해질 수 있다. 사람들은 이런 경우 자기에게만 해당하는 장벽이라면 그 상황에서 무엇인가 해답을 내고, 인간관계와 관련된 성가신 문제 때문이라면 해결보다는 결렬 쪽을 선택하기도 한다.
‘장벽에 부딪힌 상태’의 장소를 어떤 사람은 ‘골’이라고 생각한다. 그 사람에게는 장벽에 부딪힌 것이 아니라 ‘여기까지 오다니 정말 잘했다’는 식으로 스스로를 칭찬하면서 그렇게 받아들이는 것인지도 모른다. 사람에 따라서는 골이 물리적으로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다는 장벽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그리고 또 어떤 사람에게는 그 골이 몇 개나 존재하기도 한다.
사람에 따라 인생은 각양각색이다. 어떤 문제 때문에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험악해졌다고 하자. 감정이 극단적으로 치달아 얼굴도 보기 싫다. 이 장벽에 대해 보통 사람은 ‘한동안 만나지 않는다’는 식의 대처 방법을 생각한다. 즉, 이 장벽은 물리적으로 넘을 수 없는 높은 장벽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것은 일반적인 평범한 생각이다. 물론, 평범함을 부정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하지만 제로 상태인 출발점에서 그 장벽을 뛰어넘으면 저 너머에 전혀 다른 세계관이 기다리고 있는 경우도 얼마든지 있다.
10 02 | 깨끗하게 닦을 것인가, 깨끗하게 칠할 것인가.
오사카에서 일을 하다 문득 생각했다. 녹이 슨 테이블 다리를 철솔로 문지르고 있을 때였다. ‘나는 지금 낡은 것을 새것에 가깝게 만들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낡은 것을 새것으로 만들고 있는 것일까?’ 하얀 벽이 더러워졌다고 하자. 이것을 다시 하얗게 만들고 싶을 때, 세제 등을 이용해 ‘얼룩을 닦는다’는 생각과, ‘하얀 페인트를 사용해 덧칠을 한다’는 생각이 있다. ‘새롭다’는 것은 무엇일까. 여기에는 두 가지 해석이 존재한다. 하나는 ‘새것’, 또 하나는 ‘낡지 않은 것’. 열심히 녹을 벗겨 내던 도중에 ‘너무 심하게 벗겨 낸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D&DEPARTMENT의 고객은 무엇을 원하는 것일까. 아마도 새것에 가까운 것이 아니라 고풍스러우면서 깨끗한 것이 아닐까.
예전부터 진정한 아름다움이란 얼룩을 벗기고 깨끗한 상태를 만들어 계속 사용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얀 것을 될 수 있는 한 하얗게 보존하면서 그대로 사용하는 노력. 이처럼 어려운 일도 없을 것이다. 호텔이나 여관도 그렇다. 수익성, 자금력, 즉 돈벌이만을 생각하고 신관을 새로 건축하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다.
낡은 것을 새롭게 만든다는 것은 지극히 평범한 사고방식이며 낡은 것 중에도 버려서는 안 되는 것들은 많다. 물론 불결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방이 더럽다면 어쩔 수 없는 문제지만. 낡은 호텔이나 여관을 정성을 다하여 손질하고 유지하는 쪽에 훨씬 더 많은 인건비와 일손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런 노력을 기울이는 쪽이 무조건 새것을 선호하는 쪽보다 가치가 있다.
2003
01 12 | 언뜻 무의미해 보이는 것이라도 사회의 숱한 장애를 헤쳐 나온 존재.
얼마 전 환경청에 다녀왔다. D&DEPARTMENT 프로젝트를 지원해 줄 것인지 그 가능성을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자금 지원은 애초부터 기대하지 않았다. 세상이 ‘정당한’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장려해 주길 바랄 뿐이다. 그렇게 생각하자 문득, ‘물건을 만들 때’에는 사회적인 접점을 진지하게 ‘현실적’으로 생각하고 실행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느낌이 들었다. 언뜻 무의미해 보이는 것도 사회에 배출된 이상, 의미 있는 존재가 되거나 사회에 배출되기까지 숱한 장애를 헤쳐 나왔다는 의미를 가지게 된다. 그것이 어떤 것이건, 그러나 그 이후에도 헤쳐 나가야 할 장애가 있는지 없는지가 그 나라의 수준에 영향을 끼친다.
어쨌든 지금은 ‘매장’이나 ‘판매 방식’에 관한 기준이 확립되어 있어야 하지 않을까. 디스카운트 사고만을 갖추어서는 ‘싸다’라는 생각 외에는 할 수 없게 된다. 설사 진품이라고 불리는 물건을 싼 가격에 구입했다고 해도 말이다.
12 25 | 해적룰렛 게임 ‘위기일발’은 사실, 칼을 찔러서 튀어나오는 쪽이 승리다.
‘위기일발’이라는 인기 게임이 있다. 통에 칼을 찔러 해적이 튀어나오면 패배하는 게임이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이렇게 말했다. “위기일발 게임이 있지요? 등에 칼을 찔러서 검은 수염의 해적이 튀어나오면 패배하는 게임 말입니다. 하지만 해적이 튀어나오는 것을 승리로 정하면 패배가 아닌 승리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럴 수도 있다. 규칙을 그렇게 바꾸면 간단한 것을. 그렇게 생각하면 지금까지 살아온 38년 동안, 나는 줄곧 착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 된다. 견해만 바꾸면 부정이 긍정으로 바뀌는 상황은 인생에 얼마든지 존재한다.
2004
03 03 | 믿음직스럽다는 것은 최고의 서비스.
자동차를 타고 이동할 일이 많은 사람은, 믿음직스럽지 못한 도로공사 관계자를 만나는 일이 있을 것이다. 유도하는 방식도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유도를 하고 있다. 사고를 방지하는 역할도 담당하고 있는 그는 오히려 사고를 유발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길을 모르는 택시기사를 만날 때도 화가 난다. 이런 사람들을 보면 왜 화가 나는 것일까 생각해보았을 때, 우리 온라인숍의 책임자 소토가와 씨의 말이 떠올랐다.
“상품을 판매하는 점원이라면 소비자가 어떤 상품을 원했을 때, 제고를 조사해 보고 언제 입하될 것인지 즉시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상점 점원이 취급하고 있는 모든 상품을 정확하게 파악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물론 잡화점 점원이 잡화에 흥미가 없다면 문제다. 그러나 흥미만 있어도 수만 가지에 이르는 모든 상품의 재고 상황을 파악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단, 그 어려운 일을 나름대로 연구하여 방법을 찾아낼 수 있어야 ‘믿음직스러운 점원’이 아닐까.
혹시 믿음직스러운 점원이 있다는 것만으로 물건을 사러 그 상점에 갔던 경험은 없는가. 현재 보유하고 있지 않은 상품의 재고 상황에 대해 언제 그 상품이 들어올 것인지 즉시 대답을 들을 수 있고 그 후의 대처도 순조롭게 진행된다면 스트레스를 받을 일이 없고, ‘정말 훌륭한 점원’이라고 칭찬하고 싶어진다. 프로라고 표현한다면 약간 부담스럽기는 하지만 누군가에게 ‘믿음직스러운 사람’이 되는 것만큼 삶의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일은 없을 것이다.
07 06 | 변하지 않는 것과 변해가는 시대. 이 두 가지의 균형을 잡는 것도 창조다.
우리는 롱 라이프라는 말을 자주 사용한다. 그러나 이 말처럼 해석이 어려운, 또 실현하는 데에 모순이 수반되는 말은 없을 것이다. 롱 라이프를 바꾸어 표현하면, ‘오랜 세월 동안 지속적으로 사용’한다는 느낌이 든다. 말은 간단하다. 그러나 우리의 생활은 ‘유행’을 전제로 모든 상황이 바뀌고 있다. 그리고 우리들 자신도 기호나 체형 등 세월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예전과 다른 모습으로 바뀐다.
옛날에는 먹을 수 없던 음식이 어느 틈에 기호 식품으로 변하거나, 어린 시절 ‘맥주는 쓰기만 한 음료’라고만 생각했던 사실은 까맣게 잊어버릴 정도로 성인이 되면 맥주의 시원한 맛을 사랑하게 되기도 한다. 이처럼 시간도 변하고 유행도 변하고 우리들 자신도 변한다. 이런 변화 속에서 ‘변하지 않는 것이 좋은 것’이라고 말하기는 쉽지 않다.
우리 D&DEPARTMENT도 ‘롱 라이프’나 ‘변하지 않는 디자인이 좋다’는 말을 자주 한다. 그러나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직원은 확실하게 나이를 먹고 있다. 창립 당시에 20대였던 직원도 어느 틈에 30대가 되었다. 게다가 주변은, 특히 도쿄는 중고가구 분도 막을 내렸고 미드 센추리 붐도 사라져 이제는 ‘일본식 복고풍’이 붐을 이루고 있다. 그렇게 인기를 끌었던 ‘롱 라이프 디자인’도 더 이상 인기를 끌지 못한다. 롱 라이프라고 해도 지속적으로 팔리지 않는다면 의미가 없다. 디자이너들이 아무리 디자인이 정말 좋다고 절찬을 해도 ‘팔리지 않는’ 경우는 분명히 있다. 즉, ‘변하지 않는 것’도 ‘어떻게 팔 것인가’ 하는 관점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물론 ‘레트로숍’이 되는 쪽이 더 간단하다. 특정 시대의 상품만을 모아 놓으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창조를 즐기고 싶고 새로운 제안을 하고 싶다. 그렇기 때문에 유행에 어울리는 롱 라이프를 그 시대에 맞추어 새롭게 제시한다. 이것은 매우 어렵고 중요한 일이다. 사실 롱 라이프는 ‘변하지 않는 것’과 ‘변해가는 시대’의 균형을 이루는 것이란 생각이 든다. 우리는 결코 레트로숍이 아니다.
2005
03 08 | 읽지 않은 책이나 잡지, 보지 않은 녹화테입, 촬영한 사진, 메모장. 결국 우리는 머릿속에 넣는 척 행동할 때가 많다.
도쿄는 정보의 양이 지나치게 많은 도시다.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모든 잡지를 독파할 수는 없다. 설사 그런 노력을 한다고 해도 읽어야 할 책은 갈수록 더 높이 쌓여갈 뿐이다. 한편, ‘지知’를 육성하는 책을 지나치게 많이 읽으면 이번에는 현장 직원들과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비즈니스 관련 책을 너무 많이 읽으면 창조와 관련된 동향을 간파하기 어렵다. 아마도 최첨단에 있는 사람은 정보에 대한 취사 선택이 간결하지 않을까.
잡지에서 잡학이나 최신 정보만을 얻고 싶을 때도 물론 있다. 유행하는 장소 한두 곳 정도는 알아두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그 노선에서 한 번 벗어나면 무슨 일이든 마찬가지겠지만, 쉽게 돌아가기는 어렵다. 직업이 단순하고 하는 일도 단순하면 얼마나 좋을까. 횩심을 내면 그만큼 ‘정보 선택’이라는 압박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05 11 | 장소와 디자인은 예로부터 밀접한 관계에 놓여 있다.
나오시마의 지추 미술관에 다녀왔다. 내가 감탄한 것은 ‘섬’이라는 수법이었다. 즉, 나오시마가 ‘외국’처럼 보였던 것이다. 그곳에 철저하게 세계관을 도입한 탓에……. 당했다. 자기 집에서 점차 멀어지면 사람은 일종의 ‘해방감’과 ‘불안감’ 등 평소에는 느끼지 않던 ‘기분’을 맛본다. ‘집’ 주변의 거리에서조차 그런 느낌을 받으니까 비행기를 타거나 배를 타면 그 감각은 더욱 증가한다.
예전에 건축가 마리오 보타가 “내게 일을 맡기고 싶으면 내가 있는 장소로 오라”고 말하고 취재에 응했다는 기사를 읽은 기억이 난다. 그것은 ‘맡기고 싶은 일’이 ‘잡무로서의 일’인지, ‘그 사람의 사고방식에 따라 탄생하는 작품’인지와 관련된 문제라고 생각한다. 후자에 해당한다면 고객은 당연히 그 디자이너에 관하여 충분히 이해해야 한다. 또 디자이너의 입장에서는 고객이 자신의 창작 환경을 살펴보고 판단해 주기를 바랄 것이다. 이것은 오만이 아니라 일종의 프레젠테이션으로서 판단 재료로 삼아달라는 메시지다. 이 이야기에 지추 미술관을 비유한다면 일부러 오사카에서 자동차를 이용하여 3시간, 카페리를 이용하여 20분이라는 시간을 들여 섬까지 달려가서 ‘베네세’라는 기업의 프레젠테이션을 구경했다는 것이 된다.
이 여행을 하면서 ‘입지’에 관해 생각해 보았다. 거리에는 ‘평범’, ‘관광’, ‘여행’이라는 요소가 존재한다. 내 위치에서 표현한다면, 가장 가까운 역인 ‘고마자와공원’ 부근은 ‘평범’에 해당한다. 즉, 티셔츠를 입고 편하게 외출할 수 있는 범위이다. ‘다이칸야마’나 ‘시부야’ 등은 ‘관광’이다. 자주 가지 않는 곳이며 일반적인 상품을 구입하기보다는 ‘특별한 상품’, ‘돈을 인출해서 구입해야 하는 상품’, ‘보기 드문 상품’을 구경할 수 있는 장소에 해당한다. 그리고 ‘가마쿠라’나 ‘요코하마’, 이번에 여행을 다녀온 ‘나오시마’ 등은 ‘여행’에 해당한다. 평소에 다니는 거리와 비교하면 매우 멀리 떨어져 있고 전혀 다른 분위기가 풍긴다. 가벼운 마음으로 다녀오기는 벅찬 거리로, 건강랜드에서 하와이의 ‘무무’를 걸친 그런 느낌. 그 때문인지 각오가 새롭게 다져지는 듯한 기분이 든다.
‘입지’를 생각할 때에는 자신의 가게가 어디에 해당하는지도 생각해 보아야 한다. 즉, ‘관광’객이 많은데 ‘평범’한 상풍만 판매하면 사람들은 구입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상품은 ‘평범’한 장소에서 얼마든지 구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관광’ 지역에 가게를 낸다면 당연히 ‘관광’객을 겨냥한 상품이나 서비스를 갖추어야 한다.
06 02 | 서두를 필요가 전혀 없는데도 쓸데없이 서두르고 있지는 않은가?
요즘 사람들을 보면, ‘왠지 모르게 사람들이 서두르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수면 시간도 줄어들었다. 한밤중에 활동하는 사람도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다. 어떤 일을 하면서 다른 일을 병행하는 경우도 많아졌다. 오토바이를 운전하면서 휴대전화를 사용하는 것은 그렇다 쳐도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사람도 있다. 정말 이상한 일이다.
그렇게 많은 수의 친구는 필요없다. 연락도 그렇게 자주 취할 필요가 없다. 메일이 있는데도, 얼굴을 대하는 만남의 양은 훨씬 더 증가하지 않았는가. 커뮤니케이션을 합리화하고 싶은 것인지, 커뮤니케이션을 늘리고 싶은 것인지, 아니면 그런 작업을 통해서 시간을 메우려는 것인지. 메일과 휴대전화는 15년 전만 해도 거의 볼 수 없었다. 그런데 이 두 가지 존재 때문에 지난 15년 동안, 무엇인가 설명하기 어려운 묘한 흐름에 떠밀리면서 살아가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시간’과 ‘장소’가 해방된다.
이런 말을 들은 기억이 난다. 물론 메일 덕분에 장소를 가리지 않고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15년 전에는 사생활에 소비하는 시간이 훨씬 더 많았다. 기계에 너무 익숙해져서는 안 된다는 느낌이 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10 06 | 형체가 있는 상품을 판매하려면 그 상품을 판매하기 위한 형체가 없는 ‘무엇인가’를 개발해야 한다.
형체가 있는 물건을 판매한다는 것은 형체가 없는 그와 같은 분위기라는 무형의 제품을 만들고 싶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기 때문에 좋은 디자인은 최종적인 ‘판매 요소’가 가장 중요하다. 향수로 표현한다면 ‘병’, ‘그래픽’, ‘향기’처럼.
자동차를 구입할 때, 세밀하게 들여다보고 카탈로그도 열심히 살펴보지만 막상 구입을 한 뒤에는 거의 보지 않고 대부분 자동차 안에서만 활동한다. ‘그 자동차를 타고 있다’는 무형이 무엇인가에 이미 대가를 지불했기 때문이다. 렉서스가 판매점의 분위기 형성에 지나칠 정도로 신경을 쓰는 이유는 바로 그런 점에 있다. “누가 이름만 바뀌었을 뿐인 도요타 자동차를 타겠는가?” 자동차를 좋아하는 나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대부분의 상점에서 가장 결여되어 있는 부분이 렉서스 판매점에는 존재한다는 느낌이 든다. 나에게 그것은 향수의 병처럼 보인다. 자동차는 액체 형태의 향수 자체다.
중요한 것은 그 이후의 ‘향기’라는 무형의 만족감. 그것이야말로 금액을 지불하고 손에 넣은 가치다. 그리고 그 판매점에서 끊임없이 반복 재현되는 ‘인상’이라는 진정한 상품이다.
마치며
어떤 업종에도 ‘업계’라는 것이 존재한다. ‘업계’를 의식하지 않으면 경제는 폭넓은 발전을 이룰 수 없다. 단, 그런 ‘업계’에는 마약과 같은 부작용이 있다. 내가 20년 동안 지속해 오고 있는 디자인 세계도 ‘디자인업계’라고 불린다. 업계에 있으면 가끔 ‘진실’을 보게 된다. 그렇게 절찬을 받았던 대상이 사실은 정말 볼품없는 존재였다는 사실을. 나는 열여덟 살부터 디자인업계에 종사했다. 업계의 화려한 부분을 동경하고 줄곧 그 부분을 지향해 왔다. 산으로 비유하면 60% 정도의 높이 근처에 이르렀을 때, 산 정상의 모습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좋은 점도, 그리고 나쁜 점도.
그때 나는 결심했다. 디자인을 사랑하고 업계의 발전을 의식하면서 업계의 단체에는 소속되지 않기로. ‘외부에서 응원한다.’, ‘외부에서 생각한다.’ 그것을 나가오카 겐메이의 생각하는 스타일로 삼자. 그런 생각으로 지금도 살아가고 있다.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