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가장 대중적이라고 할 수 있는 ‘영상 예술’중 하나인 드라마를 어떻게 보고,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를 유쾌하고 행복하게 풀어 가는 본격적인 드라마 비평서이다. 드라마의 대중적 영향력에 비해 예술 작품으로서 ‘좋고나쁜’ 것에 대한 평가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던 현실에서 저자는 드라마에 대한 전문적 비평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내 이름은 김삼순>의 ‘김삼순’과 <하얀 거탑>의 ‘장준혁’은작가가 최근 3년 동안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드라마의 주인공이었기 때문에 제목에도 반영되었다고 한다. 총 4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각 장마다 핵심적인 관전 포인트를 ‘김삼순’과 ‘장준혁’의 공방전 형식으로 새롭게 구성했다
■ 저자 윤석진
2000년 여름 한양대에서「1960년대 멜로 드라마 연구 연극 • 방송극 • 영화를 중심으로」로 문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2004년 가을 「시사저널」에 「‘캔디렐라’따라 울고 웃는다」를 발표하면서 드라마 평론 활동을 시작했다. 『한국 멜로 드라마의 근대적 상상력』『한국 대중 서사, 그 끊임없는 유혹』 등의저서와 「디지털 시대, 스토리 텔러로서의 TV드라마 시론(試論)」「TV 드라마의 현실성 확보 방식 고찰」「극작가 한운사의 방송극 연구」「한국멜로 드라마와 가부장제 이데올로기의 길항 관계 고찰」「‘조폭’ 소재 영화 서사의 흥행 코드 연구」등 다수의 논문이 있다. 현재 MBC-TV옴부즈맨 프로그램
■ 차례
저자의 글
ROUND 1 등장인물이 살아 있어야 드라마가재미있다
MBC <커피프린스 1호점> : 2007년 여름, ‘캔디렐라’가 돌아왔다 | MBC <하얀거탑> : 나는 ‘장준혁’이다, 당신은 누구인가? | SBS <쩐의 전쟁> : 법이나 주먹보다 강한 ‘쩐’의 세계 | KBS2<경성스캔들> : 1930년대 경성, 스캔들 혹은 항일투쟁 | SBS <내 남자의 여자> : ‘뻔뻔한’ 그녀(들)의 사랑,그러나 불륜 | MBC <메리대구 공방전>, KBS2 <꽃 찾으러 왔단다> : 웃기는 이야기, 그러나 슬픈 현실의 주인공들| MBC <고맙습니다> : 어른을 부끄럽게 만드는 천사, ‘봄’이 | MBC <히트>, KBS2 <마왕> :연쇄살인범을 쫓는 형사, ‘그녀’와 ‘그’의 대결 | KBS2 <쾌걸 춘향> : ‘백마 탄 왕자’의 멸종 | KBS2 <부모님전상서>, MBC <한강수타령> : ‘그들’을 품에 안은 ‘그녀들’의 자화상 | SBS <파리의 연인>, KBS2<풀 하우스> : 현실과 판타지, ‘캔디렐라’ 따라 웃고 울다
ROUND 2 구조적 완결성이 뛰어나야 좋은 드라마가 된다
KBS2 <장밋빛 인생>, MBC <주몽> : ‘좋은’ 드라마를 평가하는 기준은? | MBC<안녕, 프란체스카> : 슬퍼서 웃고, 허 찔려 박장대소 | MBC <하얀 거탑> : 자본주의의 바벨탑, ‘하얀 거탑’ |MBC <여우야 뭐하니> : ‘선정성’과 ‘음란성’을 구분하자 | SBS <연애시대> : 어, 영화 보는 맛 나네 |SBS <마녀유희> : 스타 파워와 시청률 공방 | KBS2 <봄의 왈츠> : 화려한 무대 위 ‘엇박자 왈츠’ | KBS2<이 죽일 놈의 사랑> : 미안하다, 전작이 낫다 | SBS <프라하의 연인> : ‘삼순이’ 열풍 잇는 드라마는 없었다 |SBS <패션 70s> : 사랑 놀음에 묻힌 패션 현대사 | KBS (HITV 문학관> : 드라마의 젖줄, ‘단막극’의 힘을아는가 | KBS2 <미안하다, 사랑한다> : ‘캔디렐라’ 뜨고, 죽음은 넘치고… | MBC <주몽> : 끝나지 않은드라마 <주몽>의 신화
ROUND 3 좋은 드라마에는 지금 우리들의 삶이 녹아 있다
강남엄마 VS 강북엄마 | ‘사랑’에서 ‘결혼’으로, 연애전선의 변화 | ‘청춘드라마’를 다시 보고 싶다 | 다양성의시대, 가족이 변하고 있다 | 아버지는 살아 있다 | 드라마, 새로운 가족을 이야기하다 & | 우리시대의 자화상, 드라마는 끝나지 않는다| 영상시대 천일야화, 시청자를 유혹하다
ROUND 4 드라마는 아홉 개의 꼬리로 시청자를 유혹한다
드라마의 진수 보여준 작가, 그들은 여자였다 | 드라마, 그 화려한 변신의 비밀 | 역사드라마의 변신은 무죄 | 연기자‘정지훈’, 가수 ‘비’를 넘어서라 | 약육강식의 결과물, ‘국민드라마’ | 중독성 강한 아침드라마의 몇 가지 법칙 | 드라마를 욕하면서본다고? | 잠수함의 토끼 같은 드라마, 단막극 | 새로운 짝짓기, 드라마는 재미있다
김삼순과 장준혁의 드라마공방戰
ROUND 1 등장인물이 살아 있어야 드라마가 재미있다
SBS <내 남자의 여자> : ‘뻔뻔한’ 그녀(들)의 사랑, 그러나 불륜
그녀가 뻔뻔해졌다. ‘나’와 내 ‘남자’, 내 남자의 ‘여자’의 끈적끈적한 애정 구도를 전면에 내세운 SBS 월화드라마 <내 남자의 여자>(김수현 극본, 정을영 연출)의 그녀 ‘이화영(김희애 분)’이 “나한테는 지금 이 순간만 있어. 색정녀가 돼버린 느낌이야”라고 속삭이면서 여고 동창의 남편 ‘홍준표(김상중 분)’를 유혹한다. 그리고 한정 없이 착한 천사표 여고 동창 ‘김지수(배종옥 분)’에게는 그녀의 남편을 사랑한다고 뻔뻔하게 말한다. 이처럼 아침부터 밤까지 일주일 내내 불륜 일색의 드라마가 방송되는 현실에서 ‘불륜’을 전면에 내세운 또 한 편의 드라마, 그것도 대중적 흡입력이 뛰어난 작가 김수현의 신작이라는 점에서 <내 남자의 여자>는 시청자의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했다.
여자의 바람기 때문에 남편이 자살했다고 뭇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으면서 외로움의 바닥으로 떨어진, 그러나 내면의 열정을 어쩌지 못하는 여자 ‘이화영’, 남부럽지 않을 만큼 안락한 가정을 꾸렸지만, 언제부터인가 반복되는 일상과 아내에게 지루함을 느끼면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고 싶은 남자 ‘홍준표’. 그런데 이상하게도 친구의 남편이고, 아내의 친구로 만나 사랑에 빠진 불륜 남녀에게 돌팔매질보다 연민의 시선이 먼저 간다. 불륜의 피해자를 동정하고 그녀의 입장에서 분노를 해도 시원찮을 판국에 불륜 남녀가 가련하게 느껴지다니, 이게 어찌 된 조화인가?
<내 남자의 여자>는 기존의 불륜 소재 드라마와 두 가지 측면에서 다른 색깔을 가지고 있다. 첫째, 구조적인 측면에서 드라마의 도입부에 이화영과 홍준표의 불륜을 폭로함으로써 ‘불륜’ 이후의 문제를 다루겠다는 의도를 분명히 하고 있다. 둘째, ‘운명적 사랑’이라는 말로 불륜을 치장하지 않음으로써 역설적으로 ‘사랑’과 ‘욕망’, 그리고 ‘가족’의 문제를 객관화시키고 있다. 이 같은 두 가지 색깔이 드라마의 제목 <내 남자의 여자>에서의 ‘나’를 ‘이화영’과 ‘김지수’를 동시에 의미하는 인칭대명사로 해석하게 만들고, 가해자와 피해자를 기존의 이분법적인 구도에서 벗어나게 만든다. ‘진부한’ 소재인 불륜을 전면에 내세운 드라마 <내 남자의 여자>가 새롭게 느껴지고, 불륜 남녀에게 연민의 시선을 보내는 것도 이 때문이다.
<내 남자의 여자>의 차별화된 색깔은 기존의 불륜 소재 드라마와 비교할 때 보다 분명해진다. MBC 일일연속극 <나쁜 여자 착한 여자>(이홍구 극본, 이대영?이동윤 연출)는 첫사랑을 잊지 못하고 각기 다른 남녀와 결혼한 ‘윤서경(성현하 분)’과 ‘송건우(이재룡 분)’의 불륜 때문에 ‘김태현(전노민 분)’과 ‘이세영(최진실 분)’이 불행해진다는, 기존의 이분법적인 구도를 반복한 ‘불륜’ 소재 드라마이다. KBS2 주말연속극 <행복한 여자>(박정란 극본, 김종창 연출) 역시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어렵게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아가던 ‘최준호(정겨운 분)’와 ‘이지연(윤정희 분)’ 부부가 최준호를 잊지 못하던 고교 동창 ‘조하영(장미인애 분)’의 적극적인 애정 공세 때문에 이혼하는 것에서부터 이야기를 풀어가는 ‘불륜’ 소재 드라마이다.
<나쁜 여자 착한 여자>의 윤서경이나 <행복한 여자>의 조하영은 ‘첫사랑’의 환상을 가지고 있으며, 자신의 불륜 행각으로 피해를 입은 상대 여성에게 죄의식을 느끼기는커녕 오히려 당당하고 세련된 태도를 보인다는 점에서 비슷한 인물이다. 그러나 이들의 ‘불륜’이 ‘첫사랑’의 환상과 겹쳐지면서 사랑 앞에 당당한 새로운 세대의 출현을 반영한 것처럼 포장되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심각한 문제이다. 이와 달리 <내 남자의 여자>는 ‘불륜’을 통해 사랑과 결혼, 가정의 의미를 성찰하게 만든다. 친구 남편과 아내 친구가 불륜에 빠진다는 점에서 파격적이기는 하지만, 기존의 불륜 소재 드라마처럼 ‘첫사랑’의 환상이 있는 것도 아니고 불륜 행각의 발각에 초점을 맞춘 이야기도 아니기 때문이다.
김수현과 정을영은 이미 2000년 봄에 결혼을 앞둔 네 명의 미혼 남녀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불꽃>을 통해 “사랑이라는 이름 속에서 혼돈과 혼란을 겪으면서 진정한 사랑을 찾기 위한 삶의 이야기”를 성찰한 바 있다. 그로부터 7년이 지난 2007년, “또 하나의 사랑 앞에서 흔들리는 남녀를 통해 삶의 의미와 사랑의 무게를 가늠”하겠다는 기획 의도 아래 김수현과 정을영이 다시 호흡을 맞춘 <내 남자의 여자>는 <불꽃>의 연장선상에 있는 드라마라고 할 수 있다.
그런 만큼 청순가련형의 대명사 격이었던 배우 이영애가 <불꽃>을 통해 파격적인 이미지 변신을 했던 것을 기억하면서 순종적인 현모양처의 대명사 격인 배우 김희애의 파격적인 이미지 변신을 비교해 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다.
ROUND 2 구조적 완결성이 뛰어나야 좋은 드라마가 된다
MBC <여우야 뭐하니> : ‘선정성’과 ‘음란성’을 구분하자
MBC 수목 미니시리즈 <여우야 뭐하니>와 케이블 텔레비전 tvN의 시추에이션 드라마 <하이에나> 방송을 계기로 드라마의 선정성을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여우야 뭐하니>와 <하이에나>의 선정성 문제는 드라마에서 다룰 수 있는 소재와 표현의 수위를 둘러싼 논쟁이다.
케이블 방송과 지상파 방송의 차이만큼 청춘남녀의 성적 욕망 자체에 집중한 <하이에나>와 우리가 애써 숨기려 했던 성을 소재로 ‘사랑’에 다가서려는 <여우야 뭐하니>를 같은 등급에 놓긴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방송’ 프로그램이라는 점에서 우리 사회가 요구하는 도덕과 윤리를 따라야 하는 것은 이들 드라마가 처해 있는 공통의 현실이다. 드라마의 선정성이 문제되는 것은 극적 상황이나 장면이 우리 사회의 도덕과 윤리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소재적인 측면과 부분적인 장면 연출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선정성 논란을 극복하지 않고서는 드라마가 영상 예술로서 제대로 자리매김하기 어렵다. 그런 만큼 드라마가 영상 예술 시대의 대표적인 극예술 양식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선정성’에 대한 새로운 관점이 필요하다.
‘선정성’의 사전적 정의는 “어떤 감정이나 욕정을 북돋워 일으키는 성질”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선정성을 이야기할 때 주목하는 부분은 ‘욕정(欲情)’이다. 그래서 ‘선정적인 것’을 ‘야한 것’과 동일시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선정성’의 사전적 정의에서 정작 주목해야 할 부분은 ‘북돋다’라는 타동사이다. 무언가 외부의 자극을 받고 감정이 과잉되어 불편해지는 것이 선정적인 것이다. 따라서 엄밀히 말해 일반적으로 이야기하는 ‘선정성’은 대부분 ‘음란성’과 같은 의미로 보아야 한다. 한마디로 ‘성적(性的)’인 것이 ‘선정적’인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성(性)’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이중적인 태도가 ‘선정성’을 오해하게 만든 것이다.
남성 성인 잡지 「쎄시봉」의 노처녀 기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산부인과와 비뇨기과를 주요 공간적 배경으로 설정한 <여우야 뭐하니>에서 성과 관련한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이 같은 극적 상황 설정을 통해 <여우야 뭐하니>는 그동안 연애와 결혼을 소재로 한 드라마들이 주로 사랑에 대한 환상을 조장했던 것과 달리 자궁과 성에 대한 환상에 정면으로 맞서고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주목할 필요가 있는 ‘새로운’ 드라마이다. 다만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이 틀에 박힌 연상연하 커플 관계에만 의지하고 있기 때문에 ‘재미있는 이야기’로서 드라마의 매력이 살아나지 않고, 그래서 애초 기대와 달리 제2의 <내 이름은 김삼순>이 되지 못한 것이 아쉬울 뿐이다.
이처럼 선정성과 별로 상관없는 <여우야 뭐하니>를 두고 자꾸 선정성을 문제 삼는 것은 우리가 마음속으로만 상상하고 애써 숨기려 했던 것들을 극중 주인공의 상상을 통해 적나라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드라마를 보면서 불편한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기 감정에 솔직하지 않기 때문이다. 솔직하지 않고 자꾸 숨기려 드니 문제다. 그래서 숨기려 했던 것들이 공공연히 드러나는 순간 민망해지는 것이다.
<여우야 뭐하니>를 둘러싼 선정성 시비는 그동안 숨겨왔던 성에 대한 담론을 공론화시키는 과정에서 발생한 부산물이다. 산부인과와 비뇨기과의 장면, 성인잡지 제작과 출판을 둘러싼 극적 상황들을 보면서 눈살을 찌푸릴 필요가 없다. 드라마의 주인공 ‘고병희(고현정 분)’가 의학실험용 자궁 모형을 들고 자신의 몸에 대한 무지를 반성하는 장면을 선정적이거나 음란하다고 할 수 없다. 오히려 그런 장면을 통해 우리가 몰랐던 육체의 한 부분을 새롭게 인식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정말 선정적인 것은 ‘성적’인 것이 아니라, 시청자의 시선을 사로잡기 위해 극적 상황에 맞지 않는 장면을 연출하고 이를 통해 불필요한 감정의 과잉을 유발하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ROUND 3 좋은 드라마에는 지금 우리들의 삶이 녹아 있다
‘청춘드라마’를 다시 보고 싶다
낭만을 생각할 수 없는 시대, 대학생이 사라지고 있다. 물론 현실이 아닌 드라마에서 말이다. ‘한국과학기술원(카이스트)’ 학생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한국 과학기술의 꿈과 희망을 이야기했던 SBS 드라마 <카이스트>가 마지막 방송을 했던 2000년 가을 이후로 드라마에서 대학생을 찾아보기 어려운 상황이 된 것이다.
2006년 봄에 방송되었던 20편이 넘는 일일연속극과 아침연속극, 주말연속극과 미니시리즈에도 대학생이 등장하는 드라마는 거의 없었다. 법대생과 이제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재수생의 사랑과 결혼을 중심축에 놓고 있는 MBC 일일연속극 <사랑은 아무도 못 말려>와 1960년대 정치외교학과 학생을 중심으로 젊은이들의 사랑과 야망을 그리고 있는 SBS 특별기획드라마 <사랑과 야망>이 전부일 정도로 드라마에서 대학생을 찾기가 어려운 것이다.
대학생의 사랑과 우정, 신분 차이 등의 갈등을 극복하는 과정을 통해 이상적인 대학생의 모습을 제시했던 <아들과 딸>, <마지막 승부>, <젊은이의 양지>, <첫사랑> 등의 드라마가 1990년대를 풍미했던 것과 비교하면 말 그대로 격세지감을 느낄 정도이다. 한국 드라마의 고질적인 병폐라 지적받기도 하는 ‘출생의 비밀’, ‘불치병’과 같은 소재는 지금도 여전한데, 변한 것은 주인공의 신분이 대학생이 아니라는 것뿐이다.
상황이 이러하다 보니, 대학생이 보지 않는 대학생 드라마로 비판받았으나 중고등학생들의 높은 관심 속에서 방송되면서 수많은 청춘스타들을 배출했던 KBS 드라마 <사랑이 꽃피는 나무>나 MBC 드라마 <우리들의 천국> 같은 드라마가 언제 있었던가 싶을 정도로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드라마에서 대학생을 찾아보기 어려운 상황은 IMF 이후 좀처럼 해소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청년실업 문제와 직결되어 있다. 드라마는 현실을 반영하거나 재현한 듯하지만, 기본적으로 시청자의 심리적 만족감을 채워줄 수 있는 극적 환상에 충실한 대중예술이다. 1990년대까지 대학생활을 보여줬기 때문에 중고등학생들이 대학생활에 대해 환상을 갖게 만들었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일명 ‘청춘드라마’들이 청춘스타의 산실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드라마의 이런 특성 때문이었다.
그러나 대학교 1학년생을 고등학교 4학년생이라 부를 정도로 삭막한 경쟁의 시대, 게다가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취업 걱정을 해야 하는 청년실업 시대는 ‘대학’과 ‘대학생활’의 낭만을 거세시켰다. 그리고 낭만이 사라진 자리에는 토익 책만이 뒹굴고 있다.
이제 대학은 한국 사회에서 특별한 공간이 아니며, 대학생 역시 특별한 계층이 아니다. 오히려 험난한 사회로 나아가기 두려운 대학생들이 자신의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시간을 벌어주는 공간에 지나지 않을 정도로 비참한 상황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2000년대 이후 청춘드라마는 물론이거니와 남녀 주인공의 신분이 대학생인 드라마를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다.
각박한 현실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의 원천은 청춘의 꿈과 낭만이다. 꿈과 낭만을 잃어버린 우리 시대의 대학생들이 다시금 꿈을 꿀 수 있도록 드라마가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은 없는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 꿈과 낭만이 살아 있는 대학을, 대학생을 보고 싶다. 세상에 적합한 인재보다 세상을 개척해 나가는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대학생을 만나고 싶다.
ROUND 4 드라마는 아홉 개의 꼬리로 시청자를 유혹한다
약육강식의 결과물, ‘국민드라마’
멸망한 고조선의 유민을 이끌며 한나라에 맞섰던 ‘해모수(허준호 분)’의 영웅적 면모로 시청자의 시선을 사로잡은 뒤, ‘주몽(송일국 분)’의 고구려 건국 신화를 흥미진진하게 펼쳐 보인 MBC 창사 45주년 특별기획드라마 <주몽>(최완규?정형수 작, 이주환?김근홍 연출)이 방송되었던 2006년 5월부터 2007년 3월까지의 월화드라마 시장은 한마디로 약육강식의 처절한 전쟁터였다. <주몽>과 맞붙어 살아남은 드라마는 KBS2 <포도밭 그 사나이>가 유일할 정도로 대부분의 월화드라마들이 <주몽>의 거침없는 화살에 맞아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죽어갔다.
KBS2의 <봄의 왈츠>, <미스터 굿바이>, <구름계단>, <눈의 여왕>, <꽃피는 봄이 오면>과 SBS의 <101번째 프로포즈>, <천국보다 낯선>, <독신천하>, <눈꽃>, <사랑하는 사람아> 등이 <주몽>의 희생양이 된 드라마들이다. ‘스타’ 연기자도, 작가도, 연출자도 <주몽> 앞에서는 모두 무릎을 꿇어야만 했다. 백약이 무효였다. <주몽>이 ‘국민드라마’로 등극해 월화드라마 시장을 평정하는 사이, KBS와 SBS는 와신상담하며 <주몽>이 끝나기만을 기다려야 했다.
평균 시청률 40%대, 최고 시청률 50%를 넘기면서 고구려를 중국에 복속시키려는 중국의 동북공정에 맞서 한민족의 자긍심을 고취시키고 문화적인 대응 가능성을 보여준 <주몽>이 ‘국민드라마’의 반열에 오른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국민드라마’는 배우와 작가, 연출, 방송사 모두가 꿈꾸는 영예로움 그 자체이다.
지금까지 전 국민적 공감대 속에 최고 시청률 50%를 넘기며 국민드라마의 영예를 누린 드라마는 <허준>, <대장금>, <내 이름은 김삼순> 등 몇 편에 불과하다. ‘국민드라마’는 지금 현재 우리들의 삶을 되돌아보고 바람직한 삶의 방향을 제시해야만 비로소 얻을 수 있는 영예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많은 화제를 뿌리며 시청률 1, 2위를 다툰다 하더라도 <하늘이시여>나 <소문난 칠공주>를 ‘국민드라마’로 부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국민 통합 기제로서 ‘국민드라마’가 마냥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국민드라마’는 약육강식의 결과물로서 ‘드라마 독과점’의 또 다른 표현이기 때문이다. 드라마 독과점은 국민의 절반 이상이 서로 다른 곳에서 같은 드라마를 보고 비슷한 생각을 하게 만드는 부작용을 가져오기도 한다. ‘국민드라마’ 한 편 때문에 ‘많은’ 작가들이 창조한 ‘각양각색’의 등장인물을 ‘여러’ 배우가 연기하면서 만들어낸 ‘다양한’ 이야기가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채 사라지는 안타까운 상황은 분명 ‘국민드라마’의 어두운 이면이다. 따라서 자신의 취향보다 많은 사람이 즐기는 드라마를 관습적으로 시청하는 것은 아닌지 우리 모두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물론 전체주의적인 성향만으로 ‘국민드라마’가 탄생하는 것은 아니다. 내용이나 형식적인 측면에서 의미가 없고 완성도가 떨어진다면 시청자의 선택을 받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청률 50%라는 괴물 같은 수치는 드라마 내적인 요소보다 많은 사람이 시청하는 드라마를 봐야 할 것 같은 우리의 전체주의적 성향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
시시각각으로 올라오는 인터넷 포털 사이트의 드라마 관련 보도는 이 같은 성향을 더욱 부추긴다. “어떤 드라마가 몇 %의 시청률을 기록했으며, 상대 방송사 드라마와의 시청률 격차는 몇 %”라는 식으로 시작하는 드라마 관련 보도는 시청률이 높으면 좋은 드라마, 시청률이 낮으면 나쁜 드라마라는 이상한 선입견을 만들면서 드라마에 대한 시청자의 선택에 중요한 변수로 작용한다. 많은 사람이 보는 드라마가 재미있을 거라는 아주 단순한 논리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드라마에 대한 이 같은 보도 관행은 수많은 드라마에 대한 올바른 평가를 방해한다.
이른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하루 종일,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일주일 내내 방송되는 드라마를 보면서 ‘드라마 공화국’이라 비판하기도 하지만, 이것은 뒤집어 생각하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그만큼 드라마를 좋아한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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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전체 방송 프로그램 가운데 드라마의 편성 비율이 높은 것을 비판하기보다, 그 많은 드라마를 제대로 즐길 수 있도록 시청자의 의식을 고양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수많은 시청자가 각양각색의 드라마를 자신의 취향에 따라 다양하게 즐길 수 있는 풍토를 조성하기 위해서 드라마, 특히 ‘국민드라마’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