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를 읽어라

   
최성욱
ǻ
스포츠인코퍼레이션
   
14000
2006�� 06��



■ 책 소개
오늘날 폭발적인 성장을 거듭하는 스포츠에얽힌 다양한 얘기들을 담은 책이다. 이 책은 겉으로 보이는 화려한 승부의 세계 뒤편에 숨은 정치 자본의 논리와 흐름을 추적하고 있다. 그 동안스포츠 100배 즐기기 등 오락적인 관점에서 스포츠를 접근한 책들은 많지만 이 책은 스포츠를 좀 더 깊게 바라보고 있다. 어떻게 스포츠가 이처럼폭발적으로 성장해왔는지, 또 그 성장의 원동력과 미래는 어떤지, 또 그 과정에서 과연 문제는 없는 지에 대해 폭넓게 접근하고 있다. 이 책은오랫동안 스포츠기자를 지내며 보고 느꼈던 스포츠 현장의 경험과 미국에서 직접 스포츠 커뮤니케이션을 공부한 학문적 지식이 잘 어우러져 나온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스포츠에 관심 있는 독자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필독서가 될 것이다. 

 


■ 저자 최성욱 
스포츠 전문 기자 및 자유기고가.강원도 원주출생. 고려대 서어서문학과 졸업. 스포츠조선, 스포츠투데이 체육부 기자로 활동하며, 98방콕아시안게임, 2000년 유럽선수권대회,2002월드컵 일본 취재, 안정환 이탈리아 무대 데뷔전, 하승진 NBA 데뷔전 등 국내외 굵직한 스포츠 이벤트를 취재했다. 또한 히바우두단독인터뷰, 황선홍 일본 진출, 송종국 페예노르트 입단, 등의 특종을 보도하기도 했다. 그 후 미국 포틀랜드 주립대학에서 스포츠 커뮤니케이션을전공하여 석사학위를 취득하였고, 졸업 후 오리건주 포틀랜드에 소재한 나이키 본사에서 근무했다. 


현재는 야후코리아 스포츠 팀에서 기자로 활동하고 있으며, 판초(Pancho)라는 닉네임으로스포츠중계 및 해설을 담당하고 있다. 저서로는 『월드컵 4강 신화의 비밀(2002년, 공저)』『재미와 행운이 터지는 스포츠토토(2000년,공저)』가 있고, 홍명보의 『영원한 리베로(2002년) 』의 국내 및 일본판 기획, 출간에 참여했다. 현재 <주간동아&&에 "스포츠로본 미국, 미국인"을 연재하고 있으며, 그밖에도 각종 온?오프라인 매체에 다양한 스포츠 칼럼을 기고하며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 차례
1. 황금알을 낳는 스포츠 
할리우드영화도 추월한 스포츠 비즈니스 / 미국과 유럽, 어느 스포츠 시장이 더 클까 / 영국 선수들의 몸값 / 구장 이름 팔아먹는 "봉이" 마이클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되놈이 번다 / 인터넷 공룡 MLB.com / 축구 비즈니스의 양극화 / 부자구단의 독점을 막아라 / 유명무실한 사치세/ 치솟는 몸값, 그 끝은 어디인가 / 구단 운영에 뛰어드는 부자들 / 알부자들의 밑지는 장사? / 혈세로 유치하는 국제대회 / 미국에 부는스타디움 건립 붐 / 한국 기업들의 축구마케팅 / 축구복권이 유럽축구를 키웠다? / 일본축구, 엔화의 위력 / 경제, 월드컵 손안에 있소이다


2. 미디어가 키운 스포츠 
초창기 미디어 신문의 파워/ 스포츠 산업을 업그레이드시킨 라디오와 TV / 마케팅 혁명과 스포츠 / 30초 광고료가 무려 24억 원 / 자존심까지 내팽개친 스포츠 / 돈없으면 스포츠도 못 보는 세상 / 경기장은 아무나 가나 / 천정부지로 치솟는 티켓 값 / 야구야? 광고야? / 갈수록 교묘해지는 TV광고 /TV는 왕이다 / TV 맞추기에 여념 없는 스포츠들 / NFL과 TV의 찰떡궁합 / 미디어에 맞추려는 축구의 몸부림 / 스포츠 취향까지 바꿔버린미국 상업TV / 지역 미디어 장악한 뉴욕 양키스 / 월드컵과 TV / FIFA의 최대 돈줄, TV 중계권료 / 미디어가 만든 대회 투르 드프랑스 


3. 스포츠 글로벌화 
국경 없는 스포츠 / 미국의 신스포츠 제국주의 / 쿠바와 메이저리그 / 메이저리그의 도미니칸 마피아 / 선수 수출국 도미니카공화국 / 스포츠 제국주의의 메신저, ESPN /시청률 급락에 태연히 웃는 NBA 사무국 / 21세기 축구노예, 아프리카의 아이들 / 안정환이 본 이탈리아 축구문화 / 축구 세계화와 훌리거니즘/ 글로벌 시티즌, 타이거 우즈 / 축구 세계화의 최고 수혜자 FIFA / 현대축구와 내셔널리즘 / 축구 세계화의 현장, 레알 마드리드 구장 /약물로 만드는 미국 프로레슬링 


4. 영원한 라이벌 축구와 야구 
야구는 어떻게 미국에정착했을까? / 메이저리그 야구의 뿌리 / 축구가 유럽에서 발달한 이유 / 명암 엇갈린 축구와 야구의 세계화 / 야구가 일본에 정착한 배경 /스포츠 내셔널리즘 / 미국축구를 가로막은 장애들 /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상업TV / 축구 르네상스, 북미축구리그 / 최근 미국에 불고 있는축구 붐 / 다크호스로 떠오른 미국축구 / 축구는 고급 스포츠다 / 축구는 백인 스포츠? / 사커맘, 그들은 누구인가 / 미국 여자축구의 30년혁명 / 축구에 살고 축구에 죽는 유럽 


5. 스포츠의 나라 미국 
MLB는 자본주의, NFL은사회주의 / 대도시를 떠나는 멍청한(?) NFL 구단주들 / 부시 대통령과 텍사스 레인저스 / 알링턴 시를 협박해 얻어낸 스타디움 / 미식축구의인기 비결 / 미국의 승리 지상주의 / 스포츠에 열광하는 양키 / 한국은 300만, 미국은 양키스 혼자 400만 / 카레이싱의 폭발적 인기 /여성 드라이버 전성시대 / 폭력의 미학? 헬멧이 무기로 / 메이저리그의 3천억 원 비자금 / NACC의 인기 비결 / 전통과 상업화의 대립,리글리 필드 / 펜웨이 파크의 그린 몬스터 / 골프장 입장권 위조로 30년 징역살이 / 샴페인 대신 우유 마시는 자동차경주 우승자


6. 스포츠와 인종차별 
애써 외면했던 화두, 인종차별/ 재일동포 선수들의 설움 / 미국의 조직적인 인종차별 / 미국 스포츠의 인종차별 역사 / 포지션으로 드러나는 인종차별 / 흑인은 구단주가 될수 없다? / 아메리칸 드림, 그 허와 실 / 애초부터 공정한 기회란 없다 / 미셸 위는 한국인인가 미국인인가 / 미국에는 흑인 수영선수가 없다/ 그 많던 흑인 야구선수들은 어디 갔나 / 인디언은 마스코트가 아니다 / 학부형이 코치를 총으로 쏘는 나라 / 골프 티 발명에 얽힌 인종차별/ 은혜를 배신으로 갚은 미국인




스포츠를 읽어라! 


할리우드 영화도 추월한 스포츠 비즈니스



퀴즈 하나. 미국에서 스포츠와 영화 산업 가운데 어느 것이 더 클까? 미국의 할리우드 영화가 전 세계를 장악할 만큼 엄청난 규모를 자랑한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 그렇다면 그런 영화 산업과 비교할 때 미국의 스포츠 산업은 어떨까? 정답은 스포츠 비즈니스가 영화 비즈니스보다 훨씬 더 크다는 것이다. 그것도 무려 일곱 배나 된다. 이처럼 요즘 미국에서 가장 잘 나가는 유망 사업은 바로 스포츠다. ‘스포츠가 잘 나가 봤자지’라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미국에서 스포츠는 이제 더 이상 단순히 놀고 즐기는 대상이 아니다. 스포츠를 이용한 수많은 비즈니스가 성행하고 있다. 그것도 천문학적인 이익이 창출되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다.


스포츠 비즈니스는 미국에서 가장 빠르고 비약적으로 성장하는 사업 중 하나인데, 그 규모 면에서는 미국이 자랑하는 자동차 산업의 두 배가 넘고, 또 할리우드 영화 산업보다 무려 일곱 배가 넘는 규모를 자랑한다. 미국 스포츠 시장이 얼마나 큰지 쉽게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미국 <비즈니스 스포츠저널>에 따르면 2004년 미국 스포츠 산업의 총 매출 규모는 무려 2,130억 달러(약213조 원)에 달한다. 여기엔 스포츠 광고, 중계권료, 스포츠 용품, 입장 티켓, 구단 운영비 등이 포함된다. 그럼 구체적으로 이 스포츠 산업의 규모가 얼마나 큰지 분야별로 살펴보자.


미국 스포츠 산업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스포츠 광고 분야로 전체의 14.3%를 차지한다. 여기에는 경기장 안의 광고판, TV 및 라디오 중계 광고, 스포츠 잡지 광고 등이 모두 포함된다. 경기장 여기저기에 붙어 있는 광고가 얼마나 가겠냐고 하겠지만, 이 스타디움 광고 시장은 무려 160억 달러(약 16조 원)로 스포츠 광고 시장 중에서 가장 크다. 그 다음이 전국 네트워크 TV의 스포츠 프로그램 광고인데 그 액수는 47억 달러(약 4조7천억 원)다. 이 밖에 라디오(2조4천억 원), 케이블TV(1조8천억 원), 스포츠 잡지(1조5천억 원) 등에서도 광고 수익을 챙기고 있으며, 심지어 지역방송 광고 수익도 5,700억 원에 달한다.


순수 관중 수입도 무시할 수 없는데 경기장에서 거둬들이는 관중 수입은 총 260억 달러(약 26조원)로 전체 스포츠 산업의 13.4%를 차지하며 당당히 2위에 랭크되어 있다. 순수 티켓 판매만 연간 약 120억 달러(약 12조 원)이고, 주차 및 경기장 내 각종 먹거리 판매로 벌어들이는 수입도 무려 100억 달러(10조 원)에 달한다. 또 프리미엄 고급좌석 판매로도 연간 38억 달러(3조8천억 원)를 번다.


그 다음이 각종 스포츠 용품 사업 분야다. 미국 최대의 스포츠 용품 회사인 나이키를 비롯해 리복, 아디다스, 푸마, 콜롬비아 등이 미국에서 파는 스포츠 용품은 연간 총 250억 달러(약 25조 원)에 달한다. 여기에는 각종 스포츠 장비를 비롯해 유니폼, 신발 등이 포함되는데 프로에서부터 아마추어까지 각 분야의 스포츠가 골고루 발달하다 보니 자연히 스포츠 용품 시장도 하루가 다르게 커지고 있다. 실제로 나이키의 경우, 2005년에 창립이래 최고 수익을 올린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스포츠 용품 시장이 얼마나 빠르게 성장하는지를 잘 보여주는 예라 할 수 있다.


이 밖에 보험, 법률서비스, 매니지먼트, 마케팅, 컨설팅 등 프로스포츠를 뒷받침해주는 각종 사업도 무척 활발하다. 이 사업 분야도 연간 무려 150억 달러(15조 원)의 시장으로 전체 스포츠 산업의 7.8%를 차지하고 있다. 이벤트 매니지먼트와 구장 관리만 67억 달러(6조7천억 원)이며 법률, 보험 등 서비스도 58억 달러(5조8천억 원)의 시장이다. 이런 사업들과 비교하면 각종 라이선스 비즈니스나 중계권 수입은 적어 보인다. 미국 스포츠의 라이선스 사업 규모는 총 100억 달러(약 10조 원)로 전체의 5.4%를 차지한다. 미식축구리그와 메이저리그야구가 각각 25억 달러(2조5천억 원)와 23억(2조3천억 원)을 매년 라이선스 사업으로 거둬들이고 있다. 또 NBA는 10억 달러(1조 원), 북미 아이스하키리그(NHL)는 9억 달러(9천억 원)를 각각 라이선스 수익으로 챙긴다.


또 중계권료는 총 70억 달러(7조원) 규모로 전체의 3.6%를 차지한다. 야구, 농구, 미식축구, 아이스하키 등 네 개의 빅리그와 자동차경주(NASCA)의 중계권료만 무려 53억 달러(5조3천억 원)에 달한다. 이 밖에 스타 선수들의 각종용품 및 협찬 계약이 약 9억 달러(9천억 원)의 시장을 형성하고 있는데, 전체 스포츠 시장을 놓고 볼 때 0.5%에 해당한다. 이 가운데 미국의 톱클래스 선수 및 감독 75명이 각종 협찬으로 받는 금액은 무려 6억 달러(6천억 원)나 된다. 초특급 스타들은 엄청나게 많이 받고 인기 없는 선수들은 조금밖에 못 받는, 전형적인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볼 수 있다. 또한 최근 미국 스포츠 리그들이 의욕적으로 투자하고 있는 인터넷 사업은 총 2억 4천만 달러(2,400억 원)로 전체 규모에서는 0.1%에 불과하다. 하지만, 인터넷의 잠재력을 확신하고 점차 인터넷 사업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는 추세다.



FIFA의 최대 돈줄, TV 중계권료


TV 중계권료는 FIFA의 최대 돈줄이다. 만약 TV로 전 세계에 중계되지 않았다면 월드컵이 오늘날처럼 어마어마하게 커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TV 보급이 일반화되기 시작한 것은 60년대. 월드컵은 70년 멕시코대회 때 사상 최초로 TV를 통해 전 세계에 중계됐다. 이후 컬러 TV의 보급과 함께 월드컵 시청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기 시작했고, 이와 함께 TV중계권료도 천장부지로 치솟기 시작했다.


87년 FIFA는 90년부터 98년까지 국제 TV컨소시엄과 3차례 월드컵대회의 TV중계권 장기계약을 맺었다. 전 세계 420억 명이 넘는 엄청난 누적 시청 인구와 함께 탁월한 광고 효과를 바탕으로 월드컵 중계에 수많은 스폰서들이 붙었고, 자연 중계권료에도 탄력이 붙었다. 90년 이탈리아월드컵의 중계권료는 9,500만 스위스 프랑(약 722억 원)이었지만, 98년에는 1억 3,500만 스위스 프랑(약 1,026억 원)으로 증가했다.


월드컵 TV 중계권료의 획기적인 ‘사건’은 96년 7월에 터졌다. 당시 독일의 미디어그룹 키르히와 스위스의 월드컵마케팅 대행사 ISL은 2002년과 2006년 월드컵 중계권료로 무려 22억 달러(약 2조8천억 원)를 제시, 25년 동안 유럽지역 월드컵 중계권을 행사한 유럽공영방송협회(EBU)를 따돌리고 독점권을 따 낸 것이다. 이것은 98년 프랑스대회보다 무려 10배가 폭등한 액수. 순식간에 천문학적인 액수로 껑충 뛴 액수 탓에 자연 2002월드컵 중계를 위해 98년 때보다 무려 45배 인상된 211억 엔 (약 2,110억 원)에 계약했고, 한국도 2004년 10월 전 대회 때보다 47배가 폭등한 6천만 달러(약 600억 원)에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계약을 했다.


유럽에서는 공중파 방송들이 자국경기, 개막전, 준결승, 결승 등 주요경기만 내보내고 나머지 경기는 유료방송국(Pay TV)에 팔아먹는 수법을 쓰고 있다. 이 추세는 나머지 나라들도 마찬가지인데 브라질의 경우 위성TV에 출자하고 있는 지상파TV국이 중계권을 확보하고 월드컵 생방송 유료화를 추진하고 있다. 월드컵을 돈 내고 봐야 하는 날도 멀지 않은 듯싶다.



미국 신(新) 스포츠 제국주의


19세기가 유럽, 특히 영국 제국주의의 팽창 시대라면 우리가 살고 있는 21세기는 미국 제국주의 시대라고 할 수 있다. 세계에서 가장 부유하며, 라이벌이 없는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이다. 그 영향력은 세계곳곳에 어마어마하게 미치고, 명분 없는 전쟁도 서슴없이 할 수 있는 무소불위의 힘을 가진 나라가 바로 미국이다. 정치, 경제뿐이 아니다. 문화도 마찬가지다. 할리우드 영화를 비롯한 미국의 엔터테인먼트 비즈니스는 이미 세계를 호령하며 문화 제국주의(Cultural colonialism)란 새로운 단어를 만들고 있다. 거대한 제작, 배급 망을 가지고 영화시장을 쥐락펴락 하는 할리우드의 공세에 전 세계가 속수무책으로 예속되어가고 있다고나 할까.


엔터테인먼트 비즈니스를 통해 세계를 ‘장악’한 미국은 스포츠에서도 그 영향력을 점차 확대해가고 있다. 이른바 미국 주도의 스포츠제국주의가 바로 그것이다. 미국 영화가 해외시장에 군침을 흘리기 시작한 것은 국내시장이 한계점에 다다르자, 해외시장 개척으로 더 큰 이익을 창출하기 위함이었다. 요즘의 미국 스포츠가 바로 그 모양이다. 국내시장이 포화 상태에 이르자 이제 눈을 해외로 돌리기 시작하는 것이다.


선두주자는 프로농구. NBA는 일찌감치 80년대부터 해외시장 공략에 나섰고, 이제 NBA의 세계화는 거의 성공 단계에 이르고 있다. 실제로 2005시즌 샌안토니오 스퍼스와 디트로이트 피스톤스의 NBA 챔피언 결정전은 전 세계 106개국에서 45개의 다른 언어로 30억 명이 시청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가히 미국만의 NBA가 아니라 세계 속의 NBA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NBA는 세계화에 박차를 가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해외 선수를 영입하고 있다. 2005시즌엔 무려 35개국에서 온 81명의 외국인 선수가 NBA에서 활약했다. 이미 야오밍을 수입해 거대한 중국시장에 NBA 바람을 일으켰고, 많은 유럽 선수들을 영입해 유럽시장 공략의 첨병으로 활용했다. 또 아르헨티나 출신의 지노블리(샌안토니오)는 라틴아메리카에 NBA 열풍을 일으키는 데 역할을 했다. 가까운 예로 한국도 하승진의 NBA 진출로 많은 사람들이 NBA에 관심을 갖고 있는 게 사실이다. 실제 NBA 공식 인터넷 웹사이트의 방문자 절반 이상이 미국 밖의 접속자인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NBA 성공에 자극을 받은 메이저리그 야구도 그 동안 착실히 글로벌 화에 초점을 맞춰왔다. 남미나 호주, 캐나다, 일본, 한국, 대만 등의 외국선수 수입에 박차를 가해왔고, 이제는 외국인선수가 전체 로스터의 30% 가량이 될 정도다. 이런 글로벌화의 ‘성공’을 발판으로 메이저리그 야구는 2006년 3월 세계월드컵 야구대회를 개회하는 야심 찬 계획을 짰던 것이다. 농구와 야구의 글로벌 화에 이어 다른 종목들도 글로벌 화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아이스하키리그도 오래 전부터 동유럽의 선수들을 수입하며 세계화를 꾀해 왔다.


미국 스포츠의 글로벌 화에서 가장 힘든 종목은 아마 미식축구일 것이다. 미식축구는 잘 알려지다시피 미국 이외에서는 거의 하지 않는 종목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이상한 ‘조짐’이 보이고 있다. 미식축구가 조금씩 인기를 얻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이란 거대한 힘을 등에 업고 말이다. 그것은 바로 미국 미디어의 힘이다. 이미 미국 미디어는 전 세계에 걸쳐 엄청난 위력을 보이고 있는데, 이 미국 미디어 망을 통해 미식축가 전 세계에 활발히 소개되면서 덩달아 ‘낯선’ 스포츠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럭비로 통하는 영국에서도 비스카이비(B sky B) 등 미국 미디어의 미식축구 중계방송 횟수를 늘리면서 미식축구가 점차 인기를 얻고 있다고 한다. 다른 유럽 지역에서도 영국과 마찬가지로 미식축구에 대해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또 NFL도 유럽에서 미식축구 대회를 활발히 후원하는 등 유럽에 미식축구를 알리기 위해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일본이나 한국 등 아시아 국가도 예외는 아니다. ESPN 등 미국 미디어의 영향력이 커지고, 또 미국스포츠를 볼 기회가 많아질수록 새로운 스포츠에 대한 팬들의 관심도 자연히 늘어나게 될 것이다. 이것은 곧 스포츠 제국주의에 다름 아니다. 알게 모르게 할리우드 영화에 익숙해지다 점차 예속되어버리듯, 미국 스포츠에 예속될 날도 멀지 않았다는 얘기다.


지난 97년 메이저리그에서 뛰는 박찬호의 플레이를 볼 때 한국은 고작 30만 달러(약 3억 원) 정도의 중계권료를 지불했다. 그런데 이것이 매년 조금 씩 오르더니 급기야 올해는 무려 1천만 달러(약 100억 원)까지 뛰었다.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해외시장 개척으로 100억 원이란 가외수입을 거저 올린 셈이나 마찬가지다. NBA 커미셔너 데이비드 스턴은 2005시즌 NBA 챔피언 결정전의 시청률이 밑바닥을 기었음에도 불구하고 태연한 모습이었다. 미국에서는 부진하지만 아시아, 남미, 유럽 등 해외 마케팅이 국내 부진을 충분히 만회하고도 남는다는 계산이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NBA 사무국은 향후 10년 안에 NBA TV 중계권 수익의 절반이 외국에서 나올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런 추세로 가면 할리우드 영화처럼 미국의 스포츠가 세계를 ‘지배’할 날도 멀지 않았다. 할리우드 영화에 치여 국내영화가 많은 어려움을 겪었듯, 향후 미국 스포츠의 영향력이 커지면 커질수록 국내 스포츠도 심각한 위기에 직면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축구가 유럽에서 발달한 이유


미국에서 야구가 발달할 때 유럽에는 축구가 발달했다. 현대축구의 발상지는 영국. 한동안 너무 과격하다고 천대받던 축구는 1800년대 중반, 영국 학교의 체육활동으로 각광 받으면서 급속도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특히 축구는 성격형성이나 리더십 등을 배우는 데 좋다는 인식과 함께 학교에서도 적극 권장하기 시작했고, 이것이 영국에서의 축구 인기에 불을 당기는 역할을 하게 됐다. 이때만 해도 축구는 요즘의 골프처럼 돈 좀 있고 여유가 있는 상류층의 전유물로서 사교를 위해 이용되곤 했다.


영국 축구가 본격적으로 국민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일반 대중 스포츠로 전환된 계기는 FA(Football Association)컵의 문호를 모두 개방하면서부터다. 1963년 설립된 FA는 맨 처음에는 몇몇 소수 클럽에 의해 운영됐으나, 1871년 FA컵을 창설하며 FA의 모든 멤버들에게 출전을 허용했다. 이 말은 즉, 상류층의 축구클럽은 물론 중산층 및 하류층이 만든 축구클럽도 축구협회에 가입만 하면 무조건 FA컵에 출전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큰 의미가 있다.


미국의 야구가 도시 연고를 바탕으로 한 리그를 만들고 일정 팀 이외에는 진입시키지 않는 독점적 형태를 띠면서 일반인과 일반 클럽들의 접근을 원천 봉쇄한 반면, 영국의 축구는 문호를 모든 일반인들에게 개방함으로써 축구가 국민 모두에게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기폭제를 만든 것이다. 즉 크리켓, 야구 등이 상류층의 고급 스포츠로 발전될 때 축구는 FA컵의 문호개방을 계기로 모든 계층이 즐길 수 있어 그만큼 유럽에서 발전 속도가 빨랐던 것이다.


이렇게 일반인들에게 개방적이었던 축구의 성격은 당시 창단된 팀의 면면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1870년대 기업에서 창단한 팀이 20개가 있었지만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한 축구클럽은 일반 직원들이 만든 것이었다. 오늘날 박지성이 뛰고 있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도 사실 당시에는 철도 직원들이 주축을 이뤄 만든 팀이다. 또 요즘 한국의 지역 조기 축구회처럼 동네 노동자들이 클럽을 만들기도 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축구클럽은 1882년에 일천 개에 달했고, 1905년에는 무려 일만 개에 달했다. 또 이 모든 클럽은 FA에 가입돼 FA컵 대회에 출전할 자격이 주어졌다. 축구는 당시 산업화의 영향으로 도시화가 가속화되면서 많은 관객을 동시에 만족시킬 수 있는 관객 스포츠가 필요했던 시점에 나온 것이다. 따라서 많은 근로자들 사이에 축구는 참여 스포츠, 그리고 관전 스포츠로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게다가 축구는 유럽의 인접한 국가들끼리 스포츠를 통한 경쟁을 벌이는 데 유용한 도구로 사용되었다. 축구 역사상 첫 공식 국제경기(A매치)는 1872년 11월 30일,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에서 벌어진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전. 당시 4천 명 관중이 지켜봤는데, 경기 결과는 0-0으로 끝났지만 시종 흥미진진하게 벌어졌다. 하지만 이렇게 경기가 흥미진진했던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당시 잉글랜드 축구협회는 A매치가 있을 경우, 각 클럽은 최고 선수의 차출을 허용해야 한다는 조항을 넣어 다른 나라와의 국제경기에는 당대 최고의 선수들이 뛸 수 있는 장치를 마련했던 것이다. 이것이 결국 A매치의 활성화와 폭발적인 인기를 가져온 원동력이 됐다. 이런 A매치는 1872년 첫 경기 이후 한동안 뜸하다가 1908년 영국 팀의 유럽투어 때 다시 재개되었고, 축구가 영국을 넘어서 다른 유럽 국가에 전파되어 정착하는 데 큰 공헌을 했다.


영국에서 시작된 현대축구가 다른 유럽 지역에 전파될 때 가장 큰 역할을 한 사람들은 세계 곳곳에 파견된 영국 회사의 주재원 및 주둔지 영국 군인들, 가히 이들 영국인들은 축구의 ‘외판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들은 해외에서 자기네들끼리 님을 짜 축구를 즐겼고, 이를 지켜보던 현지인 들도 자연스럽게 축구를 접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 셈이다. 여기에 영국에서 공부하고 온 유학파들은 고국에 돌아가 축구를 자기 나라에 알리기 시작했고 축구협회도 만드는 등 조직적으로 축구 알리기에 앞장섰다.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은 영국인들은 각 나라들이 축구협회를 만드는 데 큰 도움을 주고 그 권력을 모두 현지인 들에게 넘겼다는 것이다. 미국 야구처럼 비즈니스를 위해 소수 독점그룹이 모든 것을 움켜쥐는 것과 달리 축구를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려는 ‘순수한’목적이 더 강했다는 것이다. 즉, 돈벌이에서 비롯된 야구와 달리 축구는 전파과정에서 적어도 그런 불순한 의도는 없었던 것이다.


사실 당시 세계 경제를 움켜쥔 영국의 영향력이 엄청났다. 1804년대만 해도 대영제국은 전 세계를 통틀어 가장 큰 부자였고, 1850년부터 1914년까지 영국은 세계 경제를 장악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례로 전 세계 교역량의 4분의 1이 당시 영국에서 나왔을 정도였다. 이렇게 경제적으로 막강한 영향력이 있다 보니 은행, 상사 등 영국 회사들은 전 세계에 골고루 설립해놓은 자사에 자사 직원들을 파견했는데, 이 직원들이 영국 축구 전파의 일등공신으로 활약했다. 처음에는 영국과 교역이 활발했던 네덜란드, 벨기에, 덴마크, 스위스, 독일, 프랑스, 오스트리아, 포르투칼 등에 축구가 빠르게 전파되었다. 이후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과 교역이 늘어나면서 축구는 남미에도 쉽게 전파될 수 있었다.


게다가 당시 영국의 군사력도 엄청나게 커서 이들 영국 주둔군 군인들도 축구 전파에 큰 몫을 했다. 영국의 식민지였던 인도에서는 영국 군인들과 지역 팀간에 정기적인 축구경기가 열렸는데 이것은 축구가 어떻게 식민지 국가들에게로 전파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예다. 캐나다에는 스코틀랜드 이민자들이 축구를 소개했고, 아프리카에는 식민지 점령군과 그곳에 정착한 백인들이 축구를 소개했다. 특히 아프리카에서는 영국령에 속했던 나라들에서 일찌감치 축구가 발달했는데 가나의 경우 1903년부터, 이집트의 경우 1918년부터 일찌감치 축구가 일반화되었다.


초창기 때만 해도 영국의 축구클럽은 세계 최고로 인정받았고, 자연 다른 유럽국가들은 경쟁적으로 영국 축구클럽들을 불러들여 초청경기를 치렀고 영국에서 태동한 프로페셔널 축구팀들은 유럽, 남미 등으로 투어를 떠나 축구 보급에 앞장섰다. 당시 영국축구는 종주국답게 실력도 최고였다. 1899년에 독일을 13-2, 10-1로 이겼고, 1906년에도 영국 아마추어 선수들로 구성된 팀이 프랑스를 15-0으로 꺾는 등 당시 최강으로 군림했다. 한편 영국축구 클럽들은 오스트리아, 덴마크 등 중부 유럽뿐 아니라 스페인, 이탈리아, 프랑스 등 유럽 전역을 돌며 매년 친선경기를 벌임으로써 축구를 유럽에 전파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유럽뿐 아니라 남미까지도 친선경기를 다녔는데 에번튼, 토튼햄, 첼시, 사우샘프턴 등 명문 클럽들은 오프시즌에 거액의 초청비를 받고 남미 투어를 다녀오곤 했다. 요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아시아 투어를 생각하면 딱 맞다.


또 축구는 라이벌의 개념과 함께 발전을 계속해왔다. 기본적으로 ‘경쟁 게임’인 축구는 나라, 도시, 지역, 집단 등의 라이벌 전을 통해 흥미를 배가시켜 왔다. 더비로 불려지는 도시 라이벌 전은 축구의 흥미를 높이는 데 큰 기여를 했고, 라이벌 지역들도 축구를 통해 경쟁을 대신하기로 했다. 그런 지역, 도시간의 라이벌 전은 현대로 올수록 더 파괴력이 큰 국가 간 대항전으로 빠르게 발전해왔다. 축구의 역할은 각 지역마다 다른데, 사회의 단합과 결속 등에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하고 때로는 정치적으로 이용되기도 했다.


이처럼 축구의 초창기 역사는 당시 유럽과 세계의 헤게모니를 장악한 영국의 힘과 이데올로기를 반영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국에 의해 지배된 스포츠 제국이라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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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