헐크 바지는 왜 안 찢어질까

   
김세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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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04��



■ 책 소개
영화 주간지 「Film2.0」에 3년 동안 매주 연재되었던 Q&A 칼럼을 책으로 묶었다. 독자들이 날리는 질문들은 엉뚱하고 날카로우며 때론 허를 찌른다."자다가 꼭 영화가 끝날 때 깨는 이유는 뭔가요?", "시나리오 작가는 왜 그렇게 배가 고픈가요?", "미국 영화 예고편에서 맨날 목소리 까는그놈은 누군가요?" 등등등. 영화 사전을 찾아봐도 나올 법하지 않고, 누구에게 물어보기도 그런 질문들에 능청맞게 답을 하는 저자는 그 답을 통해우리가 알고 있던 피상적인 영화계가 아닌, 영화를 만드는 각계 각층의 사람들의 땀과 목소리가 배어 있는 또 다른 영화계를 엿보게해준다.

 


■ 저자 김세윤
성균관대 사회학과를졸업했다. 영화 주간지 「FILM2.0」에 "궁금증 클리닉"을 연재하고 있다.


■ 차례
영화 속的 궁금증 
형사는 왜모두 바바리코트를 입나? / 미국 경찰은 왜 FBI 요원을 싫어하나? / 외계인은 왜 늘 파충류 모습인가? / 마침내 밝혀진 전화국번 555의비밀 / 헐크의 바지는 도대체 왜 안 찢어지나? / 미국 영화에 천식 걸린 애들이 많은 이유 / 미국 영화에서 연필을 많이 쓰는 이유 / 왜미국 영화엔 흑인 여성 판사가 많나? / 왜 탐정은 꼭 흑백 사진을 찍나? / 한국 영화엔 왜 오바이트 장면이 많나? / 왜 불륜 커플들은 닭을많이 먹나? / 왜 흑백 영화의 배우들은 눈 밑이 검은가? / 왜 미국 전화기 줄은 긴가? / 영화 속 죽은 동물은 진짜 죽인 건가? / 왜영화 속 흑인 아줌마는 다 뚱뚱한가? / 왜 꼭 토마토를 던지나? / 멕시코로 넘어간 범인은 못 잡나? / 왜 주인공은 총 맞고도 바로 안죽나? / 장군의 명령이 멀리서도 잘 들렸을까? / 왜 누아르 영화는 밤마다 비가 오나? / 외계인은 왜 미국만 가나? / 왜 미국 영화에선매킨토시만 쓰나? / 왜 꼭 장바구니엔 대파 한 단이 들어 있나? / 왜 미국 영화엔 문어 모양 괴물이 많나? / 외국인들은 정말 바로친해지나? / 미국 배우들은 왜 왼손으로 글을 쓰나? / 왜 한국 코미디는 막판에 꼭 눈물을 짜내나? 


영화 밖的 궁금증 
싸우는 소리는 어떻게녹음하나? / 성기 노출 장면은 어떻게 찍나? / 세트 철거하면 소품은 다 어디로? / 스크린 상단에 나타난 K-222의 비밀은? /스크린에서는 왜 얼굴이 부어 보이나? / 똑같은 촬영 현장만 보도하는 이유 / 영화 판권은 누구에게 사나? / 러닝 타임 100분, 대관절 왜?/ 왜 한국 영화 화면은 촌스러운가? / 특수 분장의 비밀 / 간접 광고, 영화는 되고 TV는 안 되는 이유 / 도로가 막히는 장면은 어떻게찍나? / 전쟁 영화의 무기는 어디서 구하나? / 환경오염 장면 뒤처리는? / 왜 영화는 늘 코닥 필름으로만 찍나? / 애니메이션 대사가 입모양과 딱 맞는 비결 / 붐 마이크 보이는 장면, 왜 그냥 쓰나? / 정말 오디션을 하기는 하나? 


영화인的 궁금증 
운전 못하고 엑셀 못하면제작부 못하나? / 사운드에디터는 누구? / 예고편의 목소리 까는 그는 누구? / 크레딧에 등장하는 영문 약자의 정체는? / 기자와 영화평론가의차이는? / 유독 미국에 형제 감독이 많은 이유 / 시나리오 작가가 배고픈 이유 / 미국 영화는 모두 이미도가 번역하나? / 영화감독의 벌이는?/ 한국 영화 스태프들의 수입은 왜 낮나? / 엔딩 크레딧에 왜 매니저 이름이? / 정말 영화는 감독 건가? / 아역 배우가 아무 역할이나연기해도 괜찮나? / 캐스팅 디렉터가 하는 일은? 


이론, 용어的 궁금증 
오프닝 크레딧,with와 &의 차이 / 상영 시간이란? / 충무로가 한국 영화를 상징한 건 언제부터? / 미국 등급제도는? / 제작 기간은 언제부터언제까지? / 웰메이드는 무슨 뜻? / "16미리 에로 영화" 호칭의 기원 / 할리우드 스튜디오 시스템이란? / ‘보호자 동반시 관람가’에서보호자란? / ‘제공’과 ‘투자’의 차이는? / 할리우드 영화사 로고의 숨은 뜻은? / 특수효과와 시각효과의 차이는? / 미스터리와 스릴러의차이 / "스탠바이 큐!" 할 때 큐의 뜻은? / "B급 감성"이라는 게 뭔가? / 패러디와 표절의 차이는? / "키치적 발상"이란? / 무비,필름, 시네마의 차이는? / 제작과 총제작의 차이는? / 엔딩 크레딧의 역사는? 


제목, 이름的 궁금증 
〈FinalFantasy〉의 올바른 한글 표기는? / 중국어의 한국말 표기 기준은? / 장만옥은 장만위냐 쩡만욕이냐? / 제목은 저작권에 안 걸리나? /중국 영화 제목 네 글자의 비밀 / 외화의 개봉 제목 어떻게 정하나? / 킴 베신저인가, 킴 베이싱어인가? / 왜 할리우드 속편에는 부제가붙나? / 외국 여배우는 왜 남편 성을 따르지 않나? 


극장的 궁금증 
세로 영화 자막의 비밀 /자막은 왜 꼭 흰색에 같은 글씨체? / 그 많던 프린트들은 다 어디로? / 왜 극장에서는 하필 꼭 팝콘을 먹을까? / 대통령은 어느 극장에서영화를 보나? / 동시 상영 영화 수익금, 어떻게 배분되나? / 극장 입간판을 갖고 싶다면? / 극장 의자는 왜 빨간색일까? / 박스오피스가궁금하다 


TV, 비디오的 궁금증 
무삭제판, 하나도삭제하지 않았나? / 극장 상영 후 비디오로 나오기까지 / 자다가 엔딩 크레딧 때 깨는 이유? / "서울극장 개봉작" 문구에 담긴 사연 /공중파, 영화 더빙을 선호하는 까닭은? / TV 명절 영화가 늘 같은 이유? / 어떻게 TV에서 개봉 전 영화를 다 보여주나?


기타的 궁금증 
영화 잡지에 취직하려면? /스포츠 영화는 망한다는 징크스는 왜? / 중국 영화냐 홍콩 영화냐 / 미국 영화, 왜 일본보다 한국에서 먼저 개봉하나? / 왜 포스터는 다세로인가? / 주연과 조연을 가르는 기준은? / 별점 평가는 누가 처음 시작했나? / 왜 할리우드는 안 예쁜 동양 배우를 선호하나 / 왜평론가는 재미없는 영화만 좋다고 할까? / 중국 영화 음악은 〈소오강호〉뿐인가? / 실화를 영화로 만들 때 돈을 주나? / 왜 미국에선 대박나도 한국 오면 쪽박인가? / 게이들은 왜 바브라 스트라이샌드를 좋아하나? / 미국 영화 속의 욕, 그 종류와 뜻 / 한국 영화에 욕이 많은이유 / 영화제에 어떻게 진출하나? 




헐크 바지는 왜 안 찢어질까?


영화 밖的 궁금증 - 촬영, 특수효과, 녹음, 소품, 후반작업, 배급 등 스크린 바깥세상에 대해 알고 싶은 것들
스크린에서는 왜 얼굴이 부어 보이나?
스크린에서는 왜 실제보다 크게, 혹은 부어 보이죠? 알다시피 양조위나 멜 깁슨, 톰 크루즈 같은 배우들 키가 실제로는 무지 작잖아요. 그치만 영화에서는 표준처럼 보이잖아요. 여배우들 얼굴도 실제로 보면 정말 조막만하다던데. pspaya (jmhpocari)


사람 얼굴이 부어 보일 때는 보통 세 가지 가능성을 의심해 볼 수 있다. 첫째, 콩팥 기능이 안 좋은 경우, 둘째 뭔가에 단단히 심통이 난 경우, 셋째 전날 밤 라면 끓여 먹고 잔 경우다. 스크린 속 사람 얼굴이 부어 보인다면 다음 네 가지 가능성이 추가된다. 첫째 카메라 앵글이 성의 없을 경우, 둘째 조명이 시원치 않을 경우, 셋째 화장이 개판일 경우, 넷째 실제 얼굴 사이즈가 장난이 아닌 경우다. 이중 마지막 케이스는 유전적 결함(글 쓰는 이의 자전적 결함이기도 하다)에 해당하므로 환경적 변수를 취급하는 이 글에선 논외로 치자. 글 쓰는 이와 일면식이 있다는 이유로 졸지에 도움 주는 이로 간택당한 김우형 촬영감독(이하 ‘김 촬감’)은 “화면 속 배우 얼굴이 어떻게 보이느냐는 메이크업과 조명, 피사체를 찍는 카메라 각도에 달려 있다”고 말한다. 특히 조명이 결정적이어서 배우들의 각기 다른 얼굴 윤곽을 간파, 적재적소에 빛을 때리는 기술력이 필수적이다.


대개 “광원이 크고 밝을수록, 그 광원이 얼굴에 가까울수록, 조명 앞에 설치한 실크(빛을 ‘뽀사시하게’ 만들어주는 일종의 필터)가 크고 좋은 것일수록 얼굴 윤곽이 예쁘게 잘 살아난다”는 게 이 바닥의 커먼센스라 한다. 그러나 늘 촉박한 개봉 일정 맞추느라 바쁜 촬영현장에서 커먼센스는 종종 난센스에 자리를 내주게 마련, 잠시 소홀한 틈을 타 공주님 얼굴이 마님 낯짝이 되고, 스몰 사이즈 페이스가 엑스 라지 마스크로 돌변하는 일이 다반사다. 결국 우리는, 배우의 ‘화면발’이 ‘조명발과 화장발의 변증법적 결합’에 다름 아니라는 고전적 정의를 새삼 확인하는 찰나, 21세기 남기남(한국 영화사에 길이 남을 전설의 빨리 찍기 달인 - 글쓴이 주)을 양산하는 현 충무로 제작 시스템이 한국 배우들의 카메라‘발‘, 조명‘발‘, 화장‘발’의 3족(足)을 멸하는 주범임을 또한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조막 얼굴 달덩이化’ 현상은 충무로 제작 관행이 빚은 토착적 문제일까? 이상하게도 그렇지 않다. 할리우드 배우들도 실제보다 퍼져 보이긴 매한가지. 영화에서 통통한 볼 살을 자랑하는 드류 배리모어와 르네 젤위거를 직접 알현해보니 ‘필시 왕사탕을 물고 영화에 출현했으리라’는 억측을 낳게 할 만큼 ‘날씬 볼따구니’의 소유자였다. 이제껏 글 쓰는 이의 지적 수준을 생각해 애써 쉬운 말로 설명하려던 김 촬감이 마침내 진실을 털어놓는다. “영화라는 게 말이죠, 3차원 입체 곡면을 2차원 평면에 옮겨놓는 작업이라서 어느 정도 화상이 왜곡되는 건 피할 수 없어요. 그래서 배우들 얼굴이 일반인보다 작아야만 화면에서 그럴듯한 사이즈가 되는 거예요.” 덜 부어 보이게 만드는 거라면 모를까 제 아무리 할리우드라도 ‘실제보다 부어 보이는 현상’ 자체를 원천 봉쇄할 수야 없다는 말씀. ‘화면에서 통통한 배우들이 실제로 보면 말라깽이더라’는 민담에는 이런 과학적 근거가 숨어 있는 것이다. 혹시 디지털 와이드로 TV로 일반 방송을 볼 때처럼 시네마코프 영화가 더 퍼져 보이는 건 아닐는지요? “필름 사이즈에 맞지 않는 방식으로 영사한 경우가 아니라면 그건 이유가 안 되죠.”


좌우로 퍼지는 건 그렇다 치고 상하로 커지는 현상은 뭣 때문인가. 김 촬감은 이번에도 허를 찌른다. “배우들 눈높이에 맞춰 찍기 때문이에요.” 눈높이? 모 학습지스러운 발언의 이면에는 알고 보면 몹시 평범한 원리가 숨어 있다. 누가 나보다 크다, 혹은 작다는 걸 판단하는 기준은 자기 눈높이, 지가 올려다보는 분은 커 보이고 내려다보는 넘은 작아 보이게 마련이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등장인물의 눈높이에 맞춰 찍는 게 원칙이기 때문에 관객이 배우들의 표고 차를 느낄 수 없고, 그래서 작아도 보이지 않는 것이다. 많은 영화 이론서들이 배우를 우러러보는 로(Low)앵글로 찍으면 인물이 우월해 보이고 굽어살피는 하이앵글을 쓰면 왜소해 보인다는 따위의 설명을 늘어놓는 것도 따지고 보면 같은 원리인 셈이다. 세상 모든 일이 원칙을 지키며 산다는 게 참 힘들다는 건 김 촬감만 봐도 알 수 있다. 〈바람난 가족〉촬영 시 그는 주연 배우 황정민보다 현저하게 작은 키 때문에 발밑에 15cm짜리 나무토막을 붙인 통굽신발을 자체 제작해 신었다. 어깨에 둘러메고 찍는 핸드헬드 기법이었던 탓에 김 촬감이 가제트가 아닌 이상 배우 눈높이에 맞추려면 그 방법밖에 없었던 것이다.


뿌듯한 마음으로 수화기를 내려놓으려는 찰나, 김 촬감이 매우 무심한 목소리로 툭, 한마디 던지신다. “근데요, 극장에서 너무 앞에 앉으면 (얼굴이든 키든) 다 커 보여요…….”(2003.3.11)



영화인的 궁금증- 영화, 스태프, 평론가, 작가, 번역가 등 영화 한다는 사람에 대해 알고 싶은 것들
아역배우, 아무 역할이나 연기해도 괜찮나?

아역배우가 자신의 나이에 맞지 않는 장면을 촬영하려면 어떻게 해야죠? 그런 장면이 꽤 있었던 것 같은데, 뭐 아이가 사람을 죽인다든지 아니면 아이가 죽는다든지 등등. 궁금! 승호미남 (seungho4001)  


〈바람난 가족〉에 출연한 아역 배우 장준영은 건물에서 떨어져 죽는 연기를 직접 했다. 물론 바닥에 매트리스를 깔고 몸에는 와이어를 달았다. 그걸론 부족했다. 툭 튀어나온 난간에 애가 부딪히는 날엔 금이야 옥이야 키운 아들, 에헤야 디야 열 살 나이에 요절 배우 될 판이었기 때문이다. 당초 정교한 인형을 만들어 아이 대신 집어던지자는 의견도 나왔다. 외국, 특히 할리우드에서는 아이를 살해하는 장면을 직접 묘사하는 게 금기시 되어 있다. 나아가 그걸 애가 직접 연기하는 건 경을 칠 일이다.


허나 한국에서는 박수칠 일이다. 작품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는 아이는 “대견하다”는 소리를 듣는다. ‘대견한’ 준영 군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너무너무 재밌을 것 같다”며 스스로 몸을 던졌다. 엄마 역시 내심 ‘이왕 하는 거면 제대로 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던 터라 도시락 싸들고 다니며 말리지는 않았다고 글쓴이와의 전화 통화에서 고백했다. 그러다 막상 자기 애를 건물 5층 높이에서 휙 집어던지는 장면을 목격한 준영 군의 어머니. 애 떨어지는 모습 보다가 정말 애 떨어지는 줄 알았다. 앞으로는 ”아무리 훌륭한 영화라도 정말 좋은 작품이라면, 무엇보다 아이가 하고 싶어하는 장면이라면 끝까지 뜯어말릴 자신은 없다, 사실 〈바람난 가족〉때도 뛰어내리길 잘했다“는 생각을 잠깐 했었으니.


정작 준영 군은 찍기 힘들어 한 장면이 따로 있었다. 홀딱 벗고 문소리와 목욕하는 장면이다. 비록 제2차 성징이 나타나기 전이라지만 바바리맨의 유년기가 아닌 담에야 사내 아이가 지 꼬추를 외간 여자에게 보여줄 적에는 적잖은 충격을 받게 마련이다(초등학교 2학년 때까지 여탕에 다녀봐서 그 심적 상처는 내가 잘 안다). 혹시 어른들의 쪼까 거시기한 촬영 장면을, 다음 촬영을 기다리던 아이가 목격하는 일은 없을까?


한국 제작진이 애들에게 아무리 무심해도 그렇게까지 콩가루는 아니라고 한다. 촬영 장소가 같을지라도 아이 촬영 분과 남녀상열지사의 촬영분은 스케줄을 따로 잡기 때문이다. 촬영 현장은 못 본다 쳐도 ‘그런’ 장면이 들어간 영화를 볼 수는 있나? 준영 군의 경우 아직 〈바람난 가족〉을 보지 못했다. 영화사에서 비디오테이프를 엄마에게 줬지만 애한테는 안 보여줬다. 기특하게도 아이 스스로 자기는 아이니까 아직 보면 안 되며 훗날 성인이 되면 보겠노라며 불타는 호기심을 잠재웠다고 했다. 역시 대견한 아이다.


반면 〈폰〉에서 눈 까뒤집고 열연을 펼친 아홉 살 은서우는 그 찜찜한 영화를 다섯 번이나 봤다. 보호자를 동반했으니 법적으로 문제될 건 없다. 엄마는 “아이가 보고 싶어해서” 영화를 보여줬다고 말한다. 자기가 출연한 장면은 아니까 하나도 안 무서운데 언니들 장면은 조금 무섭더라고 했단다. 〈폰〉에도 애가 연기하기엔 쪼까 껄쩍지근한 장면이 있다. 귀신에 홀린 아이가 아빠와 찐한 키스(뽀뽀가 아니라!)를 나누는 장면이다. 은서우는 “다른 연기는 어렵지는 않았는데 조금 쑥스러웠다”고 술회했다. 대부분 이런 식이다.


아역 배우 보호자에게 ‘나이와 맞지 않는 장면은 어떻게 촬영하죠?’라고 물어보면 대충 이런 대답들이 나온다. 잘해야죠.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감독님을 믿고 맡기는 거죠. 애가 하고 싶다면 시켜요…. 그 누구도 ‘절대 안 하겠다’는 말은 하지 않는다. 날이면 날마다 오지 않을 기회, 한 번 왔을 때 올인의 투지를 불사르는 건 나이를 불문하고 모든 배우들의 공통된 속성이기 때문이다. 심의 규정에 애가 애답지 않은 연기를 할 경우 개봉할 때 애를 먹는다, 어쩐다 하는 규정도 없으니 남 눈치 볼 것도 없다. 결국 연기하고 말고는 전적으로 아이와 그 부모의 선택 사항이다. 그건 외국이라고 크게 다를 성싶지 않다. 실제로 할리우드 영화에서도 과감한 아역 배우의 예는 적지 않기 때문이다.


정작 아이들을 힘들게 하는 건 자신의 나이와 맞지 않는 장면을 찍는 게 아니라 나이와 맞지 않는 노동 강도를 참고 견디는 일이다. 〈클레멘타인〉 촬영차 미국에 간 은서우와 엄마에게 현지 촬영 분을 담당한 할리우드 스태프들은 이렇게 물었다. “미국에서 아역 배우는 하루 4시간 이상 연기할 수 없다는 조항이 있는데 한국엔 그런 게 없니?” 금시초문이요 난생처음의 법규로다. 밤새 촬영에 애 어른 따로 없는 한국의 제작 환경에서 일일 4시간 근무는 꿈같은 얘기다. 〈해리 포터〉 시리즈에 출연한 아역 배우들은 ‘최소 하루 3시간에서 5시간은 수업을 받아야 한다’는 영국의 법령 때문에 촬영 현장에서 이동 수업을 받았다. 촬영에 동원한 2천 여명의 어린이 엑스트라를 위해 영화사는 스튜디오 한쪽에 아예 대형 천막 학교를 세울 정도였다. 그런 호의는 바라지도 않는다. 소위 스타라는 자들의 스케줄 때문에 한 장면 찍고 집에 갈 애를 하루 온종일 붙들어 두지나 말기를, 아이의 엄마들은 간절히 바라고 있다.(2004.6.22)



이론, 용어的 궁금증 - 영화를 따라다니는 용어, 이론, 역사 등 학습지的으로 알고 싶은 것들
웰메이드는 무슨 뜻?
요즘 영화 기사를 보면 웰메이드 영화라는 말을 자주 보는데요, 그게 정확히 무슨 뜻이죠? 그냥 잘 만들었다는 건가요, 아님 또 다른 뜻이 있나요? 임영근 (서울시 강남구 대치동)


박찬욱 감독의 〈올드 보이〉와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 이른바 ‘박?봉‘의 쌍끌이 시네마가 평단과 흥행의 두 마리 토끼를 잡아채던 2003년 무렵, 글쓴이도 숱하게 써먹은 보캐뷸러리가 바로 웰메이드(well-made)되겠다. 당시 이 땅의 기자 양반들은 드디어 한국에 웰메이드 시대가 도래했다 어쨌다 흥분을 감추지 못했던 것인즉, 이때 웰메이드 영화란 글자 그대로 ’잘 만든‘ 영화를 말한다. 어렵게 말하면 ’장르의 관습, 스타 시스템 등을 활용하되 감독의 개성적인 스타일과 문제의식을 겸비함으로써 대중의 호응까지 얻어낸 잘 만들어진 상업 영화‘라는 뜻이며, 쉽게 말하면 죽이는 영화를 일컫는다. 한마디로 님도 보고 뽕도 따고, 방귀도 뀌고 응가도 하는 일석이조 일거양득 일타이피의 팔방미인 시네마, 그것이 바로 작금의 영화사들이 저마다 만들고 싶어하는 웰메이드 영화의 정체다.


외국에서는 새삼스러울 것 없는 보캐뷸러리 ‘웰메이드’가 마치 신조어라도 되는 듯 한국의 인구에 회자되는 건 여태껏 이 땅의 영화들이 그다지 ‘웰메이드’하지 않았다는 반증이기도 하여 남세스럽다. 굳이 변명하자면 제아무리 날고 기는 감독이라도 기술의 한계는 어찌할 수 없었을 것이다. 특수 효과가 일천하여 실제 수류탄을 투척하고, 녹음 테이프가 부족하여 다 쓴 테이프 다시 쓰고, 필름 관리가 허술하여 스크린마다 하염없이 흰색 빗줄기가 흩날리던 저개발의 기억. 그러나 불과 10여 년 사이 일취월장한 테크놀로지에 힘입어 마침내 떳떳하게 웰메이드 영화라 이름 붙일 만한 기본기가 이제사 마련되었다. 혹자는 〈살인의 추억〉을 21세기 웰메이드 한국 영화의 시작으로 보는 반면 일각에서는 〈공동경비구역 JSA〉로 거슬러 올라가기도 한다. 예전에도 웰메이드 한국 영화가 없지는 않았을 것이나 어쨌거나 사람들이 일상용어처럼 자주 들먹이는 게 요 근래의 풍경인 것만은 분명하다.


이 지구상에서 웰메이드라는 말이 대관절 언제부터 쓰였는지는 내 알 바 아니요, 실은 알 방법도 없으나 좌우지간 무진장 오래 전부터 써온 것만은 분명하다. 무릇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를 찾는 것이 만국 소비자의 본성이거늘, 유독 영화 소비자라 하여 같은 값에도 굳이 월남치마를 고집할 리는 만무할 터. 보기에 좋은 떡이 먹기에도 좋다고 좋은 때깔, 좋은 사운드, 좋은 연기, 좋은 연출력을 간절히 원하는 건 당연하다. 특히 영화 제작의 표준 공정을 마련한 할리우드 스튜디오 시스템 하에서 같은 예산으로 누가 더 질 좋은 제품을 생산하느냐는 감독의 자질을 가늠하는 중요 평가 기준이었다 하니 평론가 김영진은 그 시절 웰메이드 영화를 만든 대표적 감독으로 존 포드를 꼽았다. 따라서 그 당시 어떤 영화를 웰메이드라 함은, 달리기 1등한 어린이 손바닥에 꾹 눌러 주는 ‘참 잘했어요’ 도장처럼 선명한 칭찬의 멘트라는 점, 의심의 여지가 없겠다.


그러나 웰메이드가 꼭 좋은 뜻으로만 쓰인 건 아니란다. 이른바 1950~1960년대 즈음 창궐한 작가주의 신봉자들이 언젠가부터 웰메이드의 뜻을 달리 쓰기 시작해서 그렇다. 그들이 ‘아따 저 영화 웰메이드구만‘ 하면 천상 웰메이드 영화, 그래 봐야 결국 웰메이드 영화라는 뉘앙스였던 바, 이는 결국 영상 미학이나 주제가 그다지 급진적이지 않은, 감독이 현실과 적당히 타협한 산물이라는 뜻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몇 차례 논쟁을 거쳐 바로 정리되었다 하는데, 이에 대해 평론가 김영진은 이제는 고인이 되신 평론가 폴린 카엘의 주옥같은 비유를 인용하신다. “웰메이드 영화가 작가주의 영화보다 못하다니. 그럼 스컹크의 방귀 냄새가 장미꽃의 향기보다 낫다는 거냐?” 즉 웰메이드 영화는 영화감독이 마땅히 함양해야 할 미덕이지 지양해야 할 악덕이 아니라는 말씀. 딱히 새로울 건 없지만서도 딱히 흠잡을 데 없는 웰메이드 영화의 완성도는 여전히 무시할 수 없는 대중 영화의 경지라는 것이다.


2004년 〈돈텔파파〉라는, 몹시 나이트클럽스러운 제목을 내건 영화가 자기들은 ‘웰메이드 영화임을 포기했다’며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친 적 있다. 영화를 목격한 자들의 전언에 따르면 웰메이드 영화를 포기했다기보다는 아예 영화임을 포기했다 한다. 스컹크의 방귀도 아니고 장미꽃의 향기도 아닌, 그저 허풍선이의 입 냄새만 나는 케이스라 하겠다.(2004.10.26)



제목, 이름 的 궁금증 - 그 영화 제목, 그 사람 이름에 대해 알고 싶은 것들
외국 여배우는 왜 남편 성을 따르지 않나?

외국에서는 여자가 결혼하면 남편 성(姓)으로 바꾸는 게 일반적입니다. 그런데 할리우드 여배우들은 왜 결혼해도 남편 성을 따르지 않죠? 박희경 (경기도 구리시 토평동)


얼핏 보면 남편 성을 따라 제 성을 바꾼 여배우가 없는 것도 같다. 그러나 얼핏 봐서 그렇다. 드미 무어(Demi Moore)만 해도 ‘무어’가 남편 성이다. 무어라? 그럼 브루스 윌리스의 본명이 무어? 아니다. 그녀 나이 열여덟에 결혼한 첫 남편이 록 뮤지션 프레디 무어였기 때문이다. 드미 무어는 1984년 결혼 4년 만에 이혼한 뒤에도, 브루스 윌리스와 눈이 맞아 재혼한 뒤에도, 눈은 맞았지만 성격이 안 맞아 이혼한 뒤에도 20년 가까이 첫 남편 성을 쓰고 있다. 수전 서랜든 역시 전 남편의 성을 쓰는 케이스다. 본명이 수전 애비게일 토멀린(Susan Abigail Tomalin)이었지만 1968년 동료 배우 크리스 서랜든과 결혼한 뒤 수전 서랜든이 되었다. 1979년 그와 갈라선 후에도 원래 성을 다시 쓰거나 새로운 성을 갈아탄 적 없다. 1988년부터 배우 겸 감독 팀 로빈스와 한 이불을 덮고 자는 사이가 되었지만 정식으로 결혼을 하지 않은 일종의 ‘동거 커플’이므로 수전 로빈스로 바꿀 이유는 더더욱 없다.


이들이 필시 꼴도 보기 싫을 전 남편의 성을 계속 쓰는 이유에 대해서는 해석이 분분하다. ‘한번 무어는 영원한 무어’라는 따위의 해병대적 법 조항이라도 있는가? 듣자하니 그런 법은 없다. 그런데도 이제 아무 관계도 없는 사람의 성을 몇 십 년씩 계속 고집하는 이유는 뭘까? “결혼을 해서 성을 바꾼 연후에야 배우 경력이 시작됐기 때문에 바꾸고 싶어도 바꾸지 못한다“ 는 주장이 제일 그럴 듯 하다. 가령 드미 무어의 경우만 해도 프레디 무어와 결혼 이듬해에야 배우로 데뷔한다. 수전 서랜든도 크리스 서랜든과 결혼한 이듬해에야 첫 배역을 따냈다. 드미 무어, 수전 서랜든이라는 이름 석 자, 아니 네댓 자를 할리우드 캐스팅 담당자들의 머릿속에 각인시키느라 죽을 고생을 했을 텐데, 한낱 사사로운 감정(?)에 연연하여 처음부터 시작할 엄두가 안 났을 만도 하다. 아마 내가 드미 무어라 해도 같은 선택을 했을 것이다.


이러한 추측은 결혼 후에 제 성을 고집하는 여배우들 대부분이 이미 어느 정도 배우 경력을 쌓은 후 결혼했다는 점 때문에도 더욱 설득력을 얻는다. 가령 멕 라이언의 경우 〈이너스페이스〉에 함께 출연한 데니스 퀘이드와 결혼했다. 당시 그녀는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에 출연하기 전이었지만 〈탑건〉에 출연한 후였다. 대단한 스타도 아니었지만 완전 무명도 아니었다는 뜻이다. 굳이 ‘경력 배우 멕 라이언’이라는 상표를 버리고 ‘신인 배우 멕 퀘이드’로 거듭날 필요가 있을 까? 당근 없다.


라이언 필립과 결혼한 리즈 위더스푼, 마이클 더글라스와 결혼한 캐서린 제타 존스, 그리고 톰 크루즈와 결혼했던 니콜 키드먼 역시 비슷한 이유로 자기 성을 유지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중 브래드 피트 마누라였던 제니퍼 애니스턴은 할리우드 여배우들이 일종의 자기 브랜드 유지 전략으로 결혼 전 성을 유지한다는 걸 보여주기도 했다. 그녀는 결혼하면서 공식적으로는 제니퍼 피트로 창씨개명을 단행했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출연한 작품의 크레딧에 이름을 올릴 때는 여전히 제니퍼 애니스턴이라는 표기를 사용할 거라 선언했던 것이다. 하긴, 얼굴값 하면서 이름값으로나 먹고사는 배우들이 자기 이름을 바꿔달 때는 럭키금성을 LG로 간판을 바꾸어 달 때보다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할 성싶다.


그러나 결혼 후에도 자기 성을 유지하는 게 단지 그런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남녀평등을 앞당기기 위한 사회적 실천의 일환이기도 하다. 흔히 외국 여자들은 결혼한 후 으레 남편 성을 따르는 걸로 알고 있는 사람이 많은데 사실… 으레 남편 성을 따른다. 미국, 영국,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독일, 스위스, 브라질 등 세계 각국에서 아내는 남편 성을 따르는 것이 통례다. 심지어 케네디 전 대통령의 부인 재클린이 훗날 선박왕 오나시스와 결혼 이후 ‘재클린 오나시스 케네디’로 이름을 바꾼 것처럼 자기를 거쳐 간 모든 남자들의 성씨를 따르는 것도 가능하다. 만일 8번이나 결혼한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재클린의 방식을 따라했다면 ‘김수한무거북이와두루미……’는 명함도 못 내밀 뻔했다. 그렇다고 남편 성을 따르는 데 무슨 법적 강제 조항이 있는 것도 아니다. 현재 많은 나라에서 본인이 원하면 결혼 전 성을 유지할 수도, 제 3의 성을 만들어 쓸 자유가 있으며 자식에게 엄마의 성을 물려줄 권리도 보장된다. 심지어 스웨덴이나 덴마크 등지에서는 자식의 성씨에 대해 부부가 합의에 이르지 못할 경우 무조건 엄마의 성을 따르도록 법을 개정하기도 했다. 어떤 사람들은 한국 여자들은 결혼 이후에도 자기 성을 유지하고 있으니 세상에 이렇게 여성의 지위를 보장해주는 나라가 어이 있느냐고 말한다. 그 성이 꼭 아버지의 성이어야 한다는 법적 강제 조항은 언급하지도 않은 채 말이다. 호주제가 왜 폐지돼야 하는지 알겠지!(2003.10.7)



TV, 비디오的 궁금증- TV, 비디오 등 홈에서 무비를 보다가 알고 싶어진 것들
무삭제판, 하나도 삭제하지 않았나?

실직 후 부쩍 비디오 가게에 갈 일이 많아졌습니다. 요즘 출시되는 비디오 중에는 ‘무삭제판’이 있더군요. 〈원초적 본능 무삭제판〉 〈옥보단 무삭제판〉 〈차타레 부인의 사랑 무삭제판〉. 정말 하나도 삭제하지 않은 겁니까? 한우진(무직. 서울 종로구 명륜동)


무삭제판의 감춰진 진실을 본격적으로 파헤치기 전에 우선 세운상가 가판대에서나 만날 수 있는 ‘무삭제판’이라는 용어가 비디오 업계에 만발하게 된 정세부터 고찰해 볼 필요가 있다. 한 업계 관계자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다짜고짜 죽는소리부터 한다. “요즘 비디오 시장이 말이 아니에요. 뭐, 팔려야 해먹지. 힘들어 죽겠어요. 망하겠어요. 죽겠어….” 그만, 여기까지. 현재 비디오 시장이 말이 아니라는 얘기는 예전부터 들었다. 최근 출시되는 무삭제판이 이런 불황을 타개하려는 업계의 피나는 노력의 일환이라는 게 중요하다. 일단 철 지난 작품을 다시 출시하는 데는 돈이 별로 안 들기 때문이다.


작품별로 차이는 있지만 보통 비디오 판권의 시효는 3,4년. 그 이후에는 10분의 1 수준으로 떨어진 값에 영화 판권을 사들일 수 있다고 이 관계자는 귀뜸한다. 워낙 배팅하는 돈이 적으니 안 팔려봤자 크게 손해 볼 일 없고 운이 좋으면 대박을 터뜨릴 수도 있기 때문에 당신이 사장이라도 한 번 해볼 만하다고 생각이 들 것이다. 그 옛날 어르신들이 어련히 알아서 명장면을 색출하셨을라구. 일례로 〈원초적 본능 무삭제판〉은 이 참혹한 불황의 와중에 숨 가쁜 대여 횟수를 기록했다고. “먹어보니 땅콩이네”라는 CF로 패러디 되기도 했던 그 유명한 경찰 취조실 장면이 온전하게 복원돼 샤론 스톤의 음모까지 보인다는 입 소문 때문이었다. 몇몇 무삭제판이 인기를 끌면서 민폐를 끼치는 사례도 나온다. “정식 판권 계약을 맺지 않고 외국 DVD를 복사해서 버젓이 무삭제판으로 출시하는 나쁜 인간들도 있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제보다.


결국 최근의 무삭제판 붐은 요 몇 년 사이 급격하게 완화된 등급심의가 일으킨 기현상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비유하자면 지난날 필름을 조각내던 가위가 이제는 묵혀둔 고물 영화를 팔아먹는 엿장수의 가위로 변신한 셈이라고나 할까. 다음은 평소 무삭제판 비디오를 출시해 온 관계자가 털어놓는 격세지감이다. “옛날에는 볼 만한 건 다 잘려 나가고 그나마 모자이크 처리를 해도 엄청 크게 했잖아. 여자 가슴만 나와도 화면을 다 가려버리고. 이제는 웬만한 건 다 통과돼요. 모자이크도 쪼매나게 하고.” 모자이크? 그렇다. 아직도 허용되지 않는 장면들이 있는 것이다. 등급위에서 내세우는 근거가 명확하지 않은 관계로 멋대로 유추해보자면, 일단 성기 노출은 국민들에게 자신의 성기 크기에 대해 자괴감을 심어줄 우려가 있어서 안 되고, 음모 노출은 무모증 환자가 입을 상처를 고려해서 금하는 듯하다. 또한 근친상간이나 그룹 섹스는 일반인이 따라 하기 힘든 상태의 성 관계이기 때문에 교육적 효과가 낮다는 이유로 금하는 게 분명하다. 어쨌든 여전히 걸릴 건 걸린다.


그러므로 현재 출시된 무삭제판들 중에서 현 심의 기준으로도 묵과할 수 없는 표현 수위를 보이는 작품들의 경우엔 완전 무삭제판이 될 수 없다. 그저 덜 잘라냈을 뿐인 비디오에까지 무삭제판이라는 용어를 붙이는 상술은 수정되어야 마땅하다. 앞으로 우리는 이들을 가리켜 ‘덜삭제판’이라 불러야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논의는 한 가지 심각한 오류를 범하고 있다. ‘무삭제판=에로 영화’의 등식이다. 최근에는 〈디어헌터〉처럼 명작 영화들의 삭제 장면을 복원해 출시하는 ‘기특한’ 무삭제판도 있기 때문이다. 부디 이런 훌륭한 무삭제판에도 관심을 갖고 실직의 무료함을 건설적으로 달래시기를, 끝으로 하루빨리 재취업에 성공해 다시는 회사 직원명부에서 삭제당하는 일 없는 ‘무삭제’ 인생을 사시길 빈다.(2001.1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