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식의 종횡무진 걸리버 과학 탐험기

   
이인식
ǻ
랜덤하우스중앙
   
9500
2006�� 07��



■ 책 소개
조나선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는릴리퍼트(소인국), 브롭딩나그(거인국), 라푸타(하늘의 섬나라), 후이님의 나라(마인국)를 다녀온 이야기로 구성된 책으로, 매우 흥미진진하고교훈적이며, 당시 영국 정치와 사회의 타락, 부패를 고발한 풍자적인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책은 『걸리버 여행기』 중에서 과학기술이 많이 묘사된 3부 라푸타 편을 중심으로, 과학적해설을 덧붙여 읽기 쉽게 꾸민 것. 이야기를 대화체로 재구성하고 40개의 과학과 역사 키워드를 골라 "걸리버 백과사전"이라는 코너도 넣었다.


걸리버가 일본 해적선에 붙잡혀 하늘을 날아다니는 섬 라푸타에 도착하고 나서 겪는 일들 중에과학 기술을 묘사한 내용을 위주로 설명했는데, 화성의 별을 예측하고 연금술을 이용하여 만병 통치약을 만들고, 엉덩이에 바람을 불어넣어 복통을치료하는 등 신기한 일들을 과학적으로 풀어냈다. 특히 화성의 별 두 개를 예측하고, 뉴턴의 법칙이 훗날 도전받게 될 것이라고 단언한 대목 등을통해 원작자 조나단 스위프트의 상상력과 선견지명을 엿볼 수 있다.


■ 저자 이인식
1945년 광주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공과대학 전자공학과를 졸업했다. 1971년부터 정보통신업계에 종사하고, 1992년 월간 「정보기술」 발행인을 지냈다. 「동아일보」 「한겨레」「조선닷컴」 등에 기명칼럼을 연재하기도 했다. 2006년 현재 과학문화연구소 소장과 국가과학기술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하이테크 혁명』『사람과 컴퓨터』『이인식의 과학생각』『미래는 어떻게 존재하는가』『성이란 무엇인가』『이인식의 성과학 탐사』『제2의창세기』『21세기를 지배하는 키워드』『신비동물원』『걸리버 지식 탐험기』 등이 있다. 


■ 차례
제1장 이상한 섬에 상륙하다
일본해적선에 붙잡히다
하늘을 날아다니는 섬


제2장 라푸타 왕국의 사람들
하인이 주인을 때린다
천문학이 발달하다
지상으로 사라진 귀부인


제3장 라푸타 섬은 땅을 지배한다
천연자석의 힘으로 떠다닌다
린달리노 시민들의 저항


제4장 발니바르비 왕국에 가다
라푸타 섬을 떠나다
낯선 풍경들
뜨거운 개혁의 열기


제5장 라가도 아카데미의 연구, 그 하나
연금술로 만병통치약 꿈꾼다
항문 속에 바람 넣어 복통 치료
문자 조합장치의 원대한 목적
물건으로 대화한다


제6장 라가도 아카데미의 연구, 그 둘
의사가 정치를수술한다
정치적 음모를 적발하는 방법


제7장 마법사들의 섬, 글룹둡드리브
저승에서 불려나온 사람들
영웅들의 유령


제8장 유령들과 역사를 말하다
호메로스와 아리스토텔레스를 만나다
명문가들의 속사정
악티움 해전의 숨은 이야기


제9장 루그나그 왕국에 가다
네덜란드 사람으로 속이다
왕실의 이상한 의전 절차


제10장 불멸의 인간, 스트룰드브루그
세 가지 인생목표
스트룰드브루그를 만나다


제11장 일본을 거쳐 귀국하다
십자가를 밟는 의식
긴 여행을 끝나고 집으로


걸리버 백과사전 찾아보기





이인식의 종횡무진 걸리버 과학 탐험기이상한 섬에 상륙하다1706년 6월 어느 날, 아폴로 호의 선장인 윌리엄 로빈슨이 나를 찾아왔다. 브롭딩나그 왕국, 즉 거인들의 나라에서 돌아온 지 채 열흘이 지나지 않았을 무렵이었다. 제우스 호는 아시아로부터 향신료 따위의 특산품을 실어나르는 상선으로, 윌리엄 로빈슨은 동인도 제도로 곧 떠날 예정인데, 외과의사가 얼마 전 그만두었다며, 나에게 그 자리를 맡아줄 것을 부탁했고, 나는 그의 요청을 받아들였다. 아폴로 호는 1706년 8월 5일 영국을 떠나 세인트 조지 요새를 거쳐 북부 베트남의 통킹으로 갔는데, 필요한 향신료를 선적하려면 3~4개월간 기다려야 했다. 그동안 원주민들로부터 배를 한 척 사서 통킹 사람들이 이웃 섬들에 내다 파는 상품을 잔뜩 싣고 선원 11명을 차출하여 항해를 시작했다. 그러나 통킹을 떠난 지 열흘째 되던 날 새벽에 해적선을 만났다. * 걸리버 백과사전 - 해적은 아직도 활동 중이다서양에서 가장 악명 높은 해적으로 바이킹과 버커니어(buccaneer)를 손꼽는다. 바이킹은 8~10세기에 스칸디나비아에서 남쪽으로 내려오면서 해적 행위를 일삼았고, 버커니어는 17~18세기에 카리브해역의 스페인 식민지와 스페인 선박을 습격했다. 한편 동양에서는 섬나라 일본의 해적이 악명 높았다. 해적은 19세기 말에 완전히 쇠망했으나 21세기 들어 다시 출현하여 국제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2005년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타이 등이 해상무역의 길목이자 해적의 소굴로 알려진 말라카 해협을 감시하고 있지만 해적들의 세력들은 줄어들지 않는 실정이다.나와 부하들은 두 패로 나뉘어 해적선 두 척으로 각각 끌려갔다. 네덜란드 해적의 화를 돋군 나는 4일치 식량과 함께 통나무배에 실려 홀로 표류하게 되었다. 바다 한가운데에 내팽개쳐진 지 사흘째 되는 날, 무인도에 닿았다. 갑자기 해가 가려지면서 커다란 그림자가 섬 위에 드리워졌다. 주머니에서 소형 망원경을 꺼내 그 물체를 관찰해보니 섬처럼 보이는 그 물체의 경사진 옆면을 수많은 사람들이 오르락내리락하고 있었다. 이윽고 그 섬이 속도를 올리며 내 쪽으로 다가왔다. 수많은 사람들이 회랑과 계단에 올라서서 나를 내려다보았다. “제발 절 구해주세요!” 나는 더없이 간절한 목소리로 애원하면서 도움을 요청했다. 우두머리로 여겨지는 사람이 손짓으로 바닷가로 걸어오라는 신호를 보냈다. 그 섬의 가장 낮은 회랑에서 쇠사슬이 나를 향해 내려왔다. 그 끄트머리에는 의자가 달려 있었다. 내가 그 의자에 앉자마자 도르래가 쇠사슬을 감아 순식간에 위쪽으로 끌어 올렸다. 무인도의 작은 만에 정박해둔 통나무 배가 자그마한 점처럼 시야 밖으로 점점 사라져갔다.라푸타 섬은 땅을 지배한다하늘을 나는 섬나라에 첫발을 내딛자 여러 사람들이 나를 둘러쌌다. 그들은 나를 자세히 훑어보면서 한편 놀라고 한편 궁금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나 역시 그들의 특이한 생김새와 옷차림에 놀랐지만 웃음을 참느라고 진땀이 났다. 생김새는 유럽 사람들과 완전히 딴판이었다. 우선 머리가 오른쪽이나 왼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머리통의 크기가 영국인들보다 별로 큰 편이 아니어서 무게 때문에 기울었다기보다는 그 종족의 유전적 특성이 아닌가 싶었다. 하늘을 나는 섬나라의 사람들은 천성적으로 사색을 좋아하는 종족이었다. 일단 사색에 몰입하면 입과 귀를 어떤 물체와 접촉시켜 자극을 주지 않는 한 말을 하지도 못하고 들을 수도 없었다. 따라서 사람을 고용할 만한 재력을 가진 상류층에서는 클레메놀레를 하인으로 거느렸다. 클리메놀레는 ‘때리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주인을 때리는 일이 직업인 하인으로, 말을 해야 할 사람의 입이나 그 말을 들어야 하는 사람의 오른쪽 귀를 오줌통으로 살짝 때리는 일을 했다.이 섬나라의 명칭은 그들의 언어로 ‘라푸타’였으며, 하늘을 날아다니는, 혹은 떠다니는 이 섬나라는 완전한 원형으로 지름은 7837야드(약 7200미터)이고, 전체 면적은 1만 에이커(40평방킬로미터) 정도였다. 두께는 270미터였다. 아래쪽에서 올려다보는 사람에게 보이는 섬의 밑바닥, 곧 아래쪽 표면은 한 장의 평평하고 반듯한 금강석 판인데, 그 높이는 대략 200야드(약 183미터)였다. 그 금강석 판 위에 여러 가지 광물이 차례대로 쌓여 있었고, 그 광물들 위로 10~12피트(3~3.6미터) 높이의 비옥한 부식토가 깔려 있었다.섬의 중심부에는 지름이 약 50야드(46미터) 가량 되는 갈라진 틈이 있었는데 천문학자들은 그곳을 통해서 거대한 돔 속으로 내려갔다. 이 돔은 바닥의 금강석 판 표면으로부터 아래로 100야드(약 91미터) 내려간 곳에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에 플란도나 가뇰레, 즉 천문학자의 동굴이라고 불렸다. 이 동굴 속에 있는 것들 중 가장 호기심을 자극한 것은 그 섬의 운명을 좌우하는 신비한 물건, 곧 직조기의 북처럼 생긴 엄청나게 거대한 천연자석이었다.이 천연자석은 길이가 6야드(5.49미터)나 되었으며, 가장 두꺼운 부분은 그 굵기가 적어도 3야드 이상 되었다. 라푸타 섬은 천연자석의 힘으로 상승과 하강이 가능했으며, 한곳에서 다른 곳으로 이동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국왕이 지배하고 있는 지상의 영토에 대해서 자석의 한쪽 끝은 끌어당기는 힘이 작용하고 다른 쪽 끝은 밀치는 힘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끌어당기는 힘이 있는 쪽이 지상을 향하도록 자석을 똑바로 세우면 섬은 아래로 내려갔으며, 밀치는 힘이 있는 쪽이 지상을 향하도록 자석을 세우면 섬은 수직으로 위로 올라갔다. 자석의 위치가 비스듬하게 놓이면 섬도 비스듬한 방향으로 움직였다. 이 자석 안에서 힘이 항상 자석의 방향과 평행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라푸타 섬은 이렇게 비스듬한 움직임에 의해 국왕이 통치하는 영토 안의 다양한 지역으로 이동할 수 있었다.천연자석을 지평성과 수평이 되도록 위치시키면 라푸타 섬은 공중에 정지해 있었다. 그런 경우에는 자석의 양쪽 끝이 지상으로부터 똑같은 거리에 있게 되므로 아래로 잡아당기는 힘과 위로 밀치는 힘이 서로 똑같이 작용하게 되어 결국 섬이 멈추어 서게 되는 것이다. 라가도 아카데미의 연구, 그 하나라푸타 섬의 신기한 것들을 모두 본 탓인지 그곳을 떠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국왕의 출국허가를 받아 그 섬으로 끌어 올려질 때와 똑같은 방식으로 지상으로 내려갔다. 라푸타의 귀족이 소개해준 친구의 집을 찾아가서 그에게 소개장을 내밀었더니 그는 아주 친절하게 나를 맞아주었다. “어서 오십쇼. 무노디라고 합니다.” 무노디와 함께 시내 구경을 한 뒤 그의 친구 설리번과 함께 마차를 타고 시내 외진 곳에 있는 아카데미로 향했다. 500개의 연구실 가운데 가장 연구가 활발한 곳을 골라 보기로 했다. 연구실로 향하다가 갑자기 배가 살살 아파 오기 시작해 안내원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는 나를 풀무의 상반된 두 가지 기능을 이용하여 복통을 치료하는 의술로 유명한 의사의 연구실로 데려갔다. 그는 길고 가느다란 상아 주둥이가 달린 커다란 풀무를 갖고 있었다. 먼저 그 주둥이를 복통 환자의 항문 속으로 20센티미터까지 박은 다음에 복통의 정도에 따라 두 가지 방법 중에서 한 가지를 선택하여 치료했다.환자가 나타나면 먼저 항문 속에 박은 풀무로 몸 안이 바람을 빨아들여 내장 속을 마치 마른 오줌보처럼 쪼그라들게 하였다. 복통이 한층 더 심해지면 풀무에 바람을 잔뜩 채운 뒤에 그 주둥이를 환자의 항문 속에 집어넣고 몸 안으로 바람을 불어넣었다. 이처럼 환자의 몸에 바람을 넣었다가 항문 입구를 막는 일을 서너 차례 반복하면 몸 안으로 들어갔던 바람이 노폐 물질과 함께 밖으로 뿜어져 나오기 때문에 환자의 복통이 치유된다는 것이었다. 이 방법을 개에게 실험했더니 그 개는 현장에서 즉사하고 말았다. 하지만 의사는 의기양양하게 이 개를 살려낼 수 있다고 했다. 우리는 서둘러 그 방을 빠져나왔다. 우리는 길을 건너서 아카데미의 다른 쪽 건물로 이동했다. 나는 가장 먼저 만난 학자의 연구실에서 가장 넓은 벽과 거의 크기가 같고 액자처럼 생긴 큰 틀을 쳐다보았다. 그는 그것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말했다. "이 장치를 이용하면 아무리 무식한 사람일지라도 그리 비싸지 않은 수업료를 내고 약간의 육체적 노력만 한다면 철학, 문학, 정치학, 법학, 수학, 신학 분야의 저술을 할 수 있습니다.“방의 한가운데에 놓여 있는 그 장치의 크기는 6제곱미터였다. 장치의 표면에는 크기가 서로 다르면서 주사위 크기만 한 여러 개의 나무 조각들이 달려 있었다. 모든 나무 조각 위에는 종이가 붙어 있었으며, 그 종이에는 그 나라 언어의 모든 단어가 법과 시제, 이를테면 직설법, 가정법, 명령법과 과거, 현재, 미래 등 각각에 따라 씌어 있었으며, 격의 변화에 따라 순서 없이 적혀 있었다. 그리고 40명의 제자들이 장치의 가장자리에 부착된 40개의 철제 손잡이들을 돌릴 때마다 단어들은 새로운 위치로 자리들을 바꿔나갔다. 주사위처럼 생긴 나무조각들이 위아래로 뒤집히도록 고안된 장치였기 때문이다. 학자는 그동안 불완전한 토막 문장들을 수집하여 편집한 오절지 크기의 책들을 여러 권 보여주었다. “이 문장들을 잘 배합한 뒤 이 풍부한 자료를 기초로 해서 세상 사람들에게 모든 예술과 학문의 완전한 체계를 제시할 생각입니다. 이 장치를 500개 만들어 라가도에 설치할 수 있도록 기금이 조성되고, 또 설치된 이후 운영책임자들이 이 장치로부터 수집된 문장들을 제공해준다면, 우리가 꿈꾸는 모든 예술과 학문의 완벽한 체계가 더욱 개선되고 더욱 신속하게 완성될 수 있을 것입니다.”그 장치에 대해 감탄하자 그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내가 종이에 그 장치의 형태와 동작 원리를 그리는 것을 허락했다. 나는 한마디를 덧붙였다. “유럽에서는 학자끼리 서로 남이 발명한 것을 훔치는 못된 관습이 당연시되어 훔친 사람이 발명가의 특권을 누리는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누가 진짜 발명품의 주인인지를 놓고 분쟁이 끊이질 않아요. 하지만 이 장치만은 그야말로 확실하게 아무런 경쟁자 없이 저명하신 학자께서 유일한 발명가로서 모든 영광을 누리시도록 최대한으로 노력을 기울이겠습니다.” “고맙소. 고국으로 돌아가는 행운이 함께하길 바랍니다.”걸리버 백과사전 - 과학자들의 선취권 다툼과학자들에게 발견의 선취권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다. 따라서 과학자들은 새로운 발견이 분명히 자신의 이름으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갖은 노력을 하게 된다. 영국의 아이작 뉴턴은 수학 역사상 가장 큰 진보를 이룩한 미적분 발견의 선취권을 놓고 독일의 철학자이자 수학자인 고트프리트 빌헬름 라이프니츠와 격렬하게 다투었다. 누가 먼저 미적분을 개발했는지를 두고 30년 동안 벌어진 싸움은 유럽의 전 지역을 휩쓸어 과학자는 물론이고 왕들까지 격렬한 논쟁에 끌어들였다. 오늘날 라이프니츠의 미적분 발견은 뉴턴과 아무런 상관없이 독자적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밝혀졌다.마법사들의 섬, 글룹둡드리브글룹둡드리브는 크기가 영국의 와이트 섬의 3분의 1가량이었으며 땅이 대단히 비옥한 곳이었다. 한 종족의 우두머리가 지배하고 있었는데, 이 종족은 모두가 마술사들이었다. 총독은 강신술에 능통하여 죽은 사람들을 자기 마음대로 불러내어 24시간 동안 시중들게 하는 능력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24시간을 초과해서 시중들게 할 수는 없었으며,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한번 불러낸 사람을 3개월 안에 다시 불러낼 수 없었다.* 걸리버 백과사전 - 강신술강신술(necromancy)은 기도나 주문을 외어 죽은 자들의 영혼을 불러내 미래를 예견하는 마법으로, 그리스 신화나 성경에 나올 정도로 유구한 역사를 지녔다. 기원전 9세기에 쓰여진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에는 매혹적인 여자 마법사인 키르케가 살고 있는 섬에 오디세우스는 조국으로 돌아가는 여행 중에 오디세우스가 상륙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녀는 마술을 부려서 오디세우스의 부하들을 돼지로 둔갑시킨다. 오디세우스는 그녀의 저주를 풀어 부하들을 구출한다. 키르케는 오디세우스에게 죽은 사람의 영혼을 불러내는 방법도 가르쳐 준다.『성경』에는 혼백을 불러내는 대목이 나온다. 사울 왕이 블레셋과의 전투에 나가기 전에 엔도르의 무당에게 찾아간다. 이 여인은 사울의 간청에 따라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사무엘을 불러낸다. 사무엘은 마지못해 나와서 사울의 잘못된 행동 때문에 그가 블레셋과의 싸움에서 죽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사무엘상」28장)우리는 섬에 당도하여 총독을 만나기 위해 궁궐 문 안으로 들어섰다. 총독은 몇 가지 일상적인 질문을 던진 뒤 격식을 차리지 않고 나를 대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주위의 모든 신하를 물러나게 했다. 그가 손가락을 까딱하는 순간 갑자기 잠을 깼을 때 꿈속에서 보았던 장면들이 사라지는 것처럼 모든 신하가 홀연히 사라지는 것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우리는 날마다 낮 시간의 대부분은 총독과 함께 보내고, 밤에는 궁궐 밖에서 민박을 하며 열흘을 보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유령 하인들의 모습에 아주 익숙해졌기 때문에 서너 차례 맞닥뜨린 뒤에는 더 이상 아무런 감정의 동요도 일어나지 않았다. 왜냐하면 총독이 유령들을 상대할 기회를 주었기 때문이다."태초부터 지금까지 죽은 모든 사람 중에서 네가 원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숫자에 제한받지 말고 불러내어 물어보고 싶은 질문을 무엇이든지 해보려무나. 꼭 지켜야 할 조건이 한 가지 있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반드시 그들이 살았던 시대에 대해서만 질문을 해야 한다. 그리고 유령들이 틀림없이 진실만을 말할 것이라고 믿어도 좋다."* 걸리버 백과사전 - 타나토노트타나토노트(thanatonaute)는 죽음을 의미하는 타나토스(thanatos)와 여행객을 뜻하는 나우테스(nautes)의 합성어로, 영계를 탐사한 사람들을 가리킨다. 신화 속에서는 최초의 타나토노트인 길가메시를 비롯해서 오르페우스, 헤라클레스, 아이네이아스 등이 저승에 가서 살아 돌아온다. 실존 인물 중에서 지하세계를 다녀온 이야기를 가장 실감나게 들려준 사람은 이탈리아 시인 단테 알리기에리(1265~1321)이다. 그는 죽은 지 1000년이 넘은 고대 로마의 시인 베르길리우스(기원전 70~19)의 안내를 받아 지하세계를 다녀온 기록을 『신곡』으로 펴냈다. 『신곡』은 지옥 편, 연옥 편, 천국 편의 3부로 이루어졌는데, 단테와의 여행은 먼저 지옥의 문에서 시작된다. 그들은 지옥을 지나 연옥에 다다르고, 지상낙원에서 단테는 저승으로 돌아가는 베르길리우스와 헤어지고 하늘로 솟아오른다.나는 무엇보다 먼저 화려하고 웅장한 역사적인 장면들이 보고 싶었다.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 대왕을 만나고 싶습니다." 총독이 손가락을 까딱하자 우리가 서서 내다보는 창문 아래 큰 뜰에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모습을 드러냈다. "정말 궁금한 게 있습니다. 어떻게 적은 병력으로 몇 배나 많은 페르시아 군대와 싸울 생각을 했습니까?"라고 묻자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페르시아 정복에 성공한 비결을 털어놓았다. "한마디로 머리싸움에서 이긴 것입니다. 망치와 모루 전술 앞에 다리우스가 힘 한번 못쓰고 무너진 것입니다." 망치와 모루 전술은 적을 모루 위에 얹어놓고 망치로 후방을 친다는 개념에서 유래한 말이었다. 모루에 해당하는 군사는 중보병과 경보병이었다. 망치 역할은 기병이 맡았다. 보병이 적과 대치하고 있을 때 말을 타고 적진을 우회하여 후방을 공격하였다.다음엔 카르타고 제국의 명장인 한니발 장군을 불러내 칸나이 전투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다. 당시 한니발 휘하의 카르타고군은 오랜 전투로 피로에 지친 보병 4만 명과 기병 1만 명뿐이었지만 칸나이 전투는 한니발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났다. “나는 초승달 대형으로 군대를 정렬했습니다. 중앙에 상대적으로 약한 병사를 배치하고, 양 측면에 최강의 보병과 기병을 두었지요. 로마군은 정면충돌을 택했지만 우리의 중앙군대가 뒤로 밀려나면서 로마군은 차츰 초승달 모양으로 포위당하기 시작했습니다. 초승달 포위망에 갇힌 로마 병사 2만5000명 전원이 전사했고, 주변에 있던 1만5,000명도 살육당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전사자가 6000명에 불과했지요.”이후 로마 공화국의 율리우스 카이사르, 시저와 브루투스 등 지나간 모든 시대의 모습을 직접 보고 싶은 무한한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유명인사들을 불러냈는지 모른다. 내가 그들과 나눈 이야기를 전부 털어놓는다면 독자 여러분은 아마도 지루함을 견딜 수 없을 것이다.일본을 거쳐 귀국하다글룹둡드리브를 떠나 루그나그를 거쳐 루그나그와 활발히 교역하고 있는 일본에 상륙했다. 일본의 수도인 에도로 가서 일본 황제를 알현하고, 루그나그 국왕의 소개장을 전달했다. 통역관은 일본 황제의 명령을 나에게 통역했다. “황제 폐하께서는 당신이 요구사항을 말하면, 형제인 루그나그 국왕을 위하여 들어주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통역관에게 말했다. ‘나는 네덜란드 상인입니다. 배가 난파되어 아주 외진 어떤 나라에 갔다가 그곳에서 바다와 육지를 통해 루그나그에 오게 되었습니다. 루그나그에서 배를 타고 일본까지 오게 된 것입니다. 내가 알기로는 네덜란드 사람들이 교역을 하러 자주 일본에 온다고 합니다. 그들과 함께 유럽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길 희망합니다.걸리버 백과사전 - 17세기의 일본1543년 유럽 사람으로서는 최초로 일본에 도착한 포르투갈인은 난파선을 끌고 온 선원 몇 명에 불과했지만 총을 소개함으로써 일본에 변화를 가져왔다. 6년 뒤에는 가톨릭 선교사들이 들어와 몇몇 다이묘를 포함하여 수십만 명의 일본인들이 그리스도교로 개종했다. 선교사들이 유럽 지배의 토대를 닦기 위해 일본인들을 그리스도교로 개종시키려 한다는 소문이 나돌기 시작했다. 이에 격분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1597년 일본 최초의 순교자 26명을 십자가형에 처했다.1614년에는 그리스도교를 금지하고 선교사들과 신도들을 고문하고 처형했고, 4년 뒤에는 일본에 남아 있던 포르투갈인들을 축출했다. 1635년 이후 약 2세기 동안 일본은 다른 나라와의 통로를 전면 차단했다. 1638년 일본 정부로부터 교역상대로 허락을 받은 외국인은 네덜란드 상인들이 유일했다. 네덜란드인은 가톨릭에 반대하는 입장이어서 포르투갈인보다 덜 위험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네덜란드인들마저도 위험한 병균인 것처럼 나가사키 항으로 주거를 제한했다.1709년 6월 9일 나가사키에 도착해 암스테르담의 암보이나 호에 소속된 네덜란드 선원들과 일행이 되었다. 이 항해를 하는 동안에는 이야기할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우리는 순풍을 타고 희망봉으로 항해했으며, 거기에서 신선한 물을 배에 싣기 위해 잠시 정박했다. 1710년 4월 6일, 암스테르담에 무사히 도착했고, 곧 작은 범선을 타고 영국으로 떠났다. 그리고 5년 6개월 동안 떠나있었던 내 조국을 마침내 다시 보게 되었다. 나는 1710년 4월 17일 오후 2시에 집에 도착했다. 나를 맞이하는 아내와 가족은 모두 건강한 모습이었다.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