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소개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선 나부터’를 이야기하는 책
개발 소용돌이의 변화에 대해 우리는 과연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까? 세상이 그렇게 변하는 건 당연하고 어쩔 수 없으니 재빨리 적응해서 나부터라도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길을 찾는 게 최선인가, 아니면 잘못된 방향으로 변하는 세상에 대해 근본적 문제 제기를 하며 원래의 마을 모습을 되찾는 운동을 해야 할까? 혹시 다른 어떤 길이 있을까?
『살림의 경제학』 이후 5년 만에 저자 강수돌의 정규 칼럼집이자, ‘지속가능한 사회’에 대한 저자의 생각을 집대성한 책이다. 경제민주화, 생활방식, 거대자본, 노동생활, 노사문제, 생활문화, 정치행위, 환경생태, 도·농문제 등 9개 주제로 묶어냈다. 저자는 말한다. 나부터 고민하고 실천하되 나만의 독선을 버리고 겸손한 자세로 손을 내밀자고, 잘못된 구조와 관행을 타파해 더불어 행복한 사회를 만들자는 데 동의하는 한 모든 이들과 소통하고 연대할 필요가 있다고, 갑갑한 현실이지만 노동-교육-경제-생명을 패키지처럼 풀어내야 돌파구가 열린다고 확신한다.
■ 저자 강수돌
아침마다 생태 화장실에 똥을 누고 “똥아, 잘 나와 고마워”라 인사하며 하루를 시작하는 대학 선생이다. 세 명의 아이들을 비교적 자유롭게 키웠고 자신의 꿈을 찾아 일류 인생을 살도록 격려하며 산다. 갑갑한 현실에 안타까워하면서도, ‘노동-교육-경제-생명’을 일종의 패키지처럼 풀어내야 돌파구가 열린다고 확신한다. 자본의 힘이나 국가의 힘보다 풀뿌리 민초의 힘을 믿는다. 돈의 학문 대신 삶의 학문을 추구하고, 죽은 이론이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실천을 추구한다. 2005년 5월부터 2010년 6월까지 조치원 신안1리 마을 이장을 하며 주민들과 함께 고층 아파트 반대 운동을 했다. 현재 고려대 세종캠퍼스에서 돈의 경영이 아니라 삶의 경영을 가르친다.
저서 및 역서로는 『살림의 경제학』『나부터 교육혁명』『팔꿈치 사회: 경쟁은 어떻게 내면화되는가』『노동을 보는 눈』『경제와 사회의 녹색혁명』『글로벌 슬럼프』『시속 12킬로미터의 행복』『이장이 된 교수, 전원일기를 쓰다』『한국 경제의 배신』『내가 만일 대통령이라면』『나부터 마을혁명』『자본을 넘어, 노동을 넘어』 등이 있다.
■ 차례
프롤로그 - 지속가능한 삶, 지속가능한 공동체!
1장 행복한 경제 시스템에 결코 공짜는 없다
2장 “부자 되세요!”가 아니라 “행복하세요!”
3장 트리클다운 효과? 펌핑업 효과!
4장 ‘이윤’보다 ‘사람’을 보라
5장 불안과 분주함 사이에서 열심히 일한 죄
6장 참된 인간성을 찾아서
7장 우울한 노예가 아닌 행복한 주인으로 거듭나기
8장 자연도 공짜는 아니다
9장 공생을 위한 대안적 삶의 상상력
나부터 세상을 바꿀 순 없을까?
행복한 경제 시스템에 결코 공짜는 없다
박근혜 정부에서 실종된 경제민주화 구하기
경제성장을 향해 달려온 지난 50년 동안 한국 경제는 물리적으로 250배나 덩치가 커지고 세계 10대 경제대국을 자랑할 정도가 되었다. 하지만 갈수록 심화되는 사회경제 양극화나 빈부 격차, 재벌의 지배력 강화 및 사회 불만 증가, 노동 억압과 노사 갈등 등 구체적 현실은 민초들의 삶을 낭떠러지로 내몬다.
박근혜 대통령은 2012년 7월 10일, 새누리당 대선 후보 출마 선언을 할 때부터 이렇게 강조했다. "저는 (국정 운영의 기조를 국가에서 국민으로 바꾼 위에서) 경제민주화 실현 일자리 창출, 그리고 복지의 확대를 국민 행복을 위한 3대 핵심 과제로 삼겠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경제민주화는 "중소기업인을 비롯한 경제적 약자들의 꿈이 다시 샘솟게" 하고 "공정하고 투명한 시장경제 질서"를 확립하는 것을 내용으로 한다.
마침내 2012년 11월 16일, 박근혜 당시 대선 후보는 경제민주화 공약을 발표했다. "저는 경제민주화를 통해서 모든 경제 주체들이 성장의 결실을 골고루 나누면서, 그들이 스스로 변화의 축을 이루어 조화롭게 함께 커가는 나라를 만들겠습니다." "공정하고 투명한 시장질서를 확립하고, 균등한 기회와 정당한 보상을 통해 대기업 중심의 경제의 틀을 중소기업, 소상공인과 소비자가 동반 발전하는 행복한 경제 시스템으로" 만들겠다고 했다.
이를 위해 경제 민주화를 5대 분야로 나누고 전체적으로 35개 실천과제를 제시했다. 5대 분야는 경제적 약자 권익 보호, 공정거래 관련법 개선, 대기업 집단 관련 불법행위와 총수일가 규제, 기업지배구조 개선, 금산분리 강화 등이다. 그 배경으로 박 후보는 "저는 우리 경제의 패러다임을 그동안의 양적 성장에서 질적 발전으로 전환하고, 성장의 온기가 온 국민에게 골고루 퍼지게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경제민주화를 실현해야 한다고 굳게 믿습니다"라고 했다.
2012년 12월 19일, 제18대 대통령 선거가 있었고 박근혜 후보가 51.6퍼센트의 지지로 당선되었다. 과반수의 국민들은 경제민주화, 일자리, 복지 중심의 공약이 구현되어 국민 행복 시대가 열릴 것을 기대했다.
그런데 2013년 2월 21일, 취임식 나흘 전에 제시된 박근혜 정부의 5대 국정 목표에서는 경제민주화가 사실상 제외되었다. 경제민주화 전도사 김종인 전 새누리당 중앙선대위 국민행복추진위원장도 실망한 듯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참여하는 사람 중에 경제민주화에 대한 개념을 아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그렇게 되었다고 말했다. "인수위가 국정과제를 발표하며 원칙 있는 시장경제가 경제민주화를 포괄한다고 했는데, 이는 경제민주화에 대한 기본 지식이 결여된 것"이라 꼬집었다.
2월 25일 취임사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창조경제가 꽃을 피우려면 경제민주화가 이뤄져야만 한다"고 했지만 "열심히 노력하면 누구나 일어설 수 있도록 중소기업 육성정책을 펼쳐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상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제가 추구하는 경제의 중요한 목표"란 말에서 드러나듯, 시장경제 질서 확립 및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 정도로 규정되었다.
여기서 나는 크게 두 가지를 우려했다. 하나는 대선이라는 국가 중대사 과정에서 제시했던 공적인 약속을 엄격히 지키려 노력하기보다는 마치 그건 대선용 낚시에 불과하다는 듯 은근슬쩍 피해 가려 하면 안 된다는 점이다. 두 번째 우려는 선거 전 공약이 지켜진다 하더라도 농민이나 노동자, 일반 시민 등 국민 대다수의 눈높이에서 볼 때 과연 그것이 참된 경제민주화를 구현하는가 하는 점이다. 가장 구체적이라 할 수 있는 경제민주화 공약(2012년 11월 16일)에서조차 공정한 시장질서 확립과 대기업의 불합리한 관행 개선 정도에 그치고 있어, 농민의 황폐화나 노동자의 비인간화 등의 문제는 대통령이나 새 정부의 시야에서 배제되었기 때문이다.
진정으로 국민이 행복한 희망의 새 시대를 열고자 한다면, 지난 50년간의 경제성장 과정에서 소외되어 온 사람들(노동자, 농민, 서민, 학생, 여성, 이주민, 자영업자, 영세중소기업인)에게 겸손하게 다가가 그들의 목소리를 충분히 들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이 주체적으로 나서서 토론하고 협의해 바람직한 제안을 하면 정부는 그 실현을 도와주는 형태로 개입해야 한다.
재래시장에 가서 상인들과 악수하며 표를 달라고 부탁할 때의 마음(기득권을 버리겠다는 마음)을 절대 잊지 않되 10년 뒤, 20년 뒤에 사람들이 진실로 행복한 나라가 되었다고 칭송할 수 있을 정도로 중장기 비전을 갖고 그 속에서 향후 몇 년 동안이라도 철저히 경제민주화를 이뤄야 한다. 그 과정에서 재벌이나 보수 기득권층과 정면 대결하느냐 아니면 그들의 요구에 순치되고 마느냐, 바로 이것이 문제다. 강자 앞에 순치되지 않고 정도를 걷는 것, 바로 이것이 실종된 경제민주화를 구하는 유일한 길이다.
트리클다운 효과? 펌핑업 효과!
대학은 돈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ㆍ문화적 문제다
수백만 유대인이 학살당하던 나치 시절, 히틀러 세력은 헝가리 부다페스트에도 몰려왔다. 그때 나치의 고위 간부에게 천문학적 뒷돈을 주고 밤기차로 스위스로 탈출한 헝가리 갑부가 있었다. 이후 그 부자는 새 삶을 찾으라며 아들을 캐나다로 보냈다. 그 아들은 1952년 토론토 대학 전기공학과를 졸업했다. 그에게 캐나다의 토론토 대학은 평생의 은인이다. 그 뒤 그는 사업에 성공해 큰돈을 벌자 "사회에 돌려주려 한다"며 사상 유례없는 기부금을 내놓기 시작했다. 그가 바로 86세의 피터 뭉크(Peter Munk)다.
피터 뭉크 자선재단은 1992년 설립된 뒤 지금까지 약 1억 달러(약 1200억 원) 정도를 기부했다. 기부금은 건강과 교육 분야에 가장 많이 사용되었다. 토론토 제너럴호스피털에 심장센터 건립을 위해 4300만 달러를 기부했고, 국제학 뭉크센터를 설립하기 위해 650만 달러를 내놓고 이를 글로벌 뭉크스쿨로 바꿔 석사 학위를 주는 대학원으로 격상시키면서 2017년까지 3500만 달러를 기부하기로 했다. 2011년 3월, "이익공유제 같은 건 듣도 보도 못했다"고 큰소리치던 한국의 모 기업 회장에 견주면 뭉크 회장은 사회주의자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렇게 관대한 그에게도 다른 얼굴이 있다. 그 막대한 돈의 원천이다. 그 천문학적인 돈은 그가 1983년부터 운영한 금광회사 바릭골드가 아프리카와 파푸아뉴기니, 호주, 아메리카 등 세계 각지의 금광에서 노다지로 건진 것이다. 바릭골드의 홈페이지를 보면 금광 개발과 지역발전이 하나로 통합되는 듯 보고하지만 그 지역 개발의 이면에는 반드시 자연환경 훼손과 야생동식물 서식지 파괴, 전통적 토착 공동체 파괴, 정겨운 인간관계의 소멸, 강제 이주, 광산 독극물로 인한 질병과 식수 오염, 농업 파괴, 생태 및 인권 운동가의 암살과 공포 분위기 조성 등이 따른다.
그런데 피터 뭉크의 바릭골드 자본과 토론토 대학의 관계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천문학적인 기부금을 통해 학문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고 나아가 대학의 상업화에 기여하기 때문이다. 일찍이 이를 깨달은 토론토 대학의 해럴드 이니스 교수는 "기업이 대학을 산다는 것은 대학을 파괴하는 것이며 마침내 대학 존립의 이유인 문명을 파괴하는 것"이라 일갈한 바 있다. 대학은 곧 공익이란 말이다.
바로 그런 이유로 2011년 4월 초, 토론토 대학 학생회는 뭉크 재단이 글로벌 뭉크스쿨을 통해 학문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며 시위를 벌였다. 그때 미국 MIT 대학에서 온 촘스키 교수는 "비교적 가난한 멕시코의 국립대에서는 무상교육이 이뤄지는데, 미국이나 캐나다 등 부자 나라에서는 등록금만 1년에 수만 달러나 된다"고 한탄하며 이건 "돈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어떤 사회에 살고 싶은가 하는 사회․문화적 문제"라고 강조했다.
그렇다. 미친 등록금 문제로 몸살을 앓는 대한민국, 그리고 갈수록 장사꾼이 되어가는 대학, 과연 어떻게 살아야 자손 대대로 인간다운 삶이 가능할지 정신을 바짝 차리고 지혜롭게 결단해야 한다.
불안과 분주함 사이에서 열심히 일한 죄
스트레스와 우울증의 나라
대한민국은 우울증 공화국인가? 보건복지부의 2011년 정신질환 실태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에서 평생 우울증을 앓은 적이 있는 성인은 271만 명으로, 10년 전인 2001년의 166만 명에 비해 63퍼센트 늘었다. 인구 10만 명당 자살자 수도 2000년의 13.6명에서 2010년 31.2명으로 급증했다. 하루 평균 30명 이상이 자살한다. 교육도 훈련도 싫어하는 근로의욕상실자가 200만 명이라 한다. 과연 여기가 사람이 살 곳인가?
이런 얘기는 이미 2011년 여름, 미국 「뉴욕타임스」에도 나왔다. "과도한 업무와 스트레스, 불안에 시달리는 한국은 때때로 국가적인 신경쇠약이라는 벼랑 끝에 내몰려 있는 것 같다. 이혼율은 증가하고, 학생들은 과도한 학업에 짓눌린다.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자살률을 기록하며, 마초적인 기업문화는 여전히 필름이 끊길 때까지 술을 마시는 회식 문화를 장려한다."
왜 우리는 날마다 불안과 스트레스, 우울증에 시달릴까? 비밀은 날마다 경험하는 삶의 실상에 있다. 그것은 한편으로 무한경쟁에 내몰린 현실, 다른 편으로 진솔한 느낌을 억압하는 풍토와 연관된다. 그러니 제대로 된 해결책은 나오지 않고 겉치레에 불과한 임기응변만 온갖 눈부신 포장을 한 채 시장상품으로 나온다.
2009년 구조조정 파업투쟁 이래 스물네 번째 사망자가 나온 쌍용자동차 공장을 보라. 회사가 좀 나아지면 다시 취업할 것이란 희망을 안고 기꺼이 희망퇴직을 한 노동자들, 1000일이 지나면서 그건 환상임이 드러났다. 그래서 추운 겨울날에도 노동자들은 희망텐트촌을 꾸리고 농성을 계속했다. 국회의원 후보자 사무실 앞에서도 농성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복직을, 노동을 외치고 싶었던 것이다. 해고나 실업은 삶과 죽음의 갈림길이다.
2012년 충난 서산의 한 공장에서는 실직자가 엽총을 난사해 한 명 사망, 두 명 중상, 자신은 농약으로 자살하는 일이 발생했다. 그는 기아자동차 이름을 단 모닝과 레이를 생산하는 정규직 제로 공장인 동희오토의 하청사 대원산업, 그 회사가 만든 세진이란 공장에서 3년 전 3개월간 수습사원으로 일하다 부적응으로 잘린 이였다.
최근 한 연구는 한국의 대기업 비정규직은 차별받아 서럽긴 하지만 그 와중에도 중소기업 비정규직보다는 대우가 좋다고 한다. 한편 직장인 열 명 중 여덟 명은 하루 평균 세 시간씩, 그리고 일주일에 나흘은 야근을 한다고 한다. 한국 사회는 일을 해도 스트레스요, 일을 못 해도 스트레스다. 그놈의 생계 때문에 모두들 취업과 고용안정에 목숨 걸지만, 열심히 일하다 목숨을 예사로 잃으니, 이래도 큰일 저래도 큰일이다.
돈벌이 경제가 범지구적으로 우리 삶을 옥죄는 이 시대에 결코 손쉬운 해결책은 없다. 목숨 걸 각오로 바꿔야 한다. 그래서 침묵을 깨고 말하기 시작해야 하고 느낌을 공유해야 한다. "더 이상 이렇게 살 수 없다!"고 말해야 한다. 그러면 어떻게?
경제의 원리를 바꾸고 사회를 바꾸고 교육을 바꿔야 한다. 돈벌이가 아니라 살림살이가 중심인 경제, 경쟁과 출세가 아니라 협동과 나눔이 중심인 사회, 100점과 1등을 위한 교육이 아니라 자신만의 꿈과 공동체를 위한 교육, 이런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이런 변화를 앞당기려면 가장 먼저 풀뿌리가 대동단결해야 한다. 성별, 직업별, 지역별, 학력별 차이를 넘어야 한다. 또 풀뿌리와 진심으로 함께하는 철학과 소신이 있는 일꾼도 필요하다. 그러므로 4년마다 돌아오는 국회의원 선거와 대통령 선거는 물론 각종 지자체 선거에서 우리는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물론 선거만으론 불충분하다. 아무리 훌륭한 자를 높은 자리에 뽑아준다 하더라도 그가 기득권층의 저항이나 포섭 시도를 물리치면서도 진정한 대안을 펼칠 힘이 없다면 죽 쑤어 개 주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힘은 어디서 나올까? 결국은 풀뿌리 민초들이 대거 깨어나서 두 눈 크게 뜨고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광장의 정치를 펴는 수밖에 없다. 희망버스나 촛불광장이 그 생생한 사례이자 사회적 힐링의 과정이다. 안 그러면 또다시 (설사 배는 부를지 모르지만) 우울한 노예가 되리니!
우울한 노예가 아닌 행복한 주인으로 거듭나기
자아 배신의 투표행위, 무엇 때문인가
정당 정치를 한다지만 이념과 철학에 따라 자유롭게 모이는 풍토가 아니다. 오로지 한 권력 잡을 수 있는가 하는 점을 기준 삼아 제왕적 권력을 가진 사람 주변에 모였다 흩어졌다 하는 철새들이 너무도 많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정리해고 당하지 않으려면 칼자루를 쥔 사람 주변에서 아부를 잘해야 한다. 정치건 경제건 온 사회에서 그렇게 권력자 주변에 줄을 잘 서는 것이 생존을 결정하는 문제처럼 되어버렸다. 이게 우리의 솔직한 현실이다.
나는 이런 풍토가 2012년의 제18대 대선 결과를 읽는 하나의 열쇠라고 본다. 말하자면 이렇다. 부자들은 확실히 부자다운 계급의식을 가졌다. 부자들의 공통된 이익을 지키기 위해 그들은 부자 옹호 정당에 거침없이 투표한다. 이른바 계급 투표를 하는 셈이다. 그런데 부자가 아닌 이들은 어떤가? 이들은 부자가 아닌 중산층이나 노동계급을 지지하는 정당에 투표를 하는가? 아니면 이들도 대부분 부자 정당에 투표하는가?
그렇다. 결과를 보더라도 중산층이나 노동계급에 속하는 (또는 속할) 사람들도 대부분 부자 정당에 표를 던졌다. 한마디로 "계급 배반적인" 투표 행위를 한 것이다. 그리고 이 부분은 새 정치를 한다고 잘 바뀌지 않을 것이다. 예를 들면, 5060세대 중 대부분은 "경제가 어려워지고 안보가 불안해지면 안 된다. 대기업을 불안하게 하는 민주주의나 복지 위주로 가서는 안 된다"는 생각으로 부자 정당에 표를 던졌다. 그렇다면 2040세대는 어떤가? 이들 역시 크게 보면 "일자리와 민생을 걱정하는 정당, 힘 있는 정당"이라는 논리에 넘어갔다. 나이나 지역에 무관하게 민주주의가 밥 먹여주나?라는 생각이 컸던 셈이다.
그런데 언론인 고종석 씨가 지적한 바 있듯, 투표 직후의 출구조사 결과와 실제 개표 결과가 달랐던 이유 중 하나가 "박근혜를 찍은 이들도 양심은 있어서 (박근혜를 찍었다고 하면) 욕을 먹을까 봐 문재인을 찍었다고 거짓말을 한" 탓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 우리는 양심을 속인다. 진정한 우리의 느낌을 속인다. 그래야 생존할 것 같으니까. 그렇게 양심을 속이면서 우리가 하는 것은 강자와의 동일시다. 돈과 권력을 가진 강자 편에 붙으면 뭔가 살아남을 확률이 높아질 것 같다는 착각 탓이다.
이른바 안철수 현상조차 결국은 새로운 강자를 찾으려는 몸부림이 아닐까? 그 과정에서 우리의 정서는 참된 자신의 느낌과 감정, 생각을 잃고 강자로부터 주입된 것을 마치 자기 것처럼 수용한다. 나는 이것을 정서적 프롤레타리아화 또는 정서적 사막화 현상이라 부른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계급 배반적인 투표 행위의 근본 뿌리가 아닐까 한다.
앞으로 새로운 정치를 하고자 하는 사람들, 새롭게 운동을 하려는 사람들, 참된 변화를 일구고자 하는 이들은 바로 이 문제를 제대로 극복할 방법을 대중적으로 찾아내야 한다. 이것이 우리 미래를 희망으로 이끄느냐, 아니면 계속 절망으로 내모느냐 하는 데 있어 일종의 시금석이 될 것이다.
공생을 위한 대안적 삶의 상상력
지역화폐, 대안적 상상력을 촉진하는 현실의 실험
이런 상상을 해보자. 어느 지역의 일터에서 부지런히 일을 해 먹고살던 사람들이 느닷없이 찾아온 경제 위기로 말미암아 온통 실업자가 된다. 몇 달 정도야 그간 조금씩 저축한 돈으로 버틸 수 있지만, 그 뒤에는 월세도 밀리기 시작하고 아이들 간식비도 벌지 못해 속이 탈 것이다. 마침내 주머니가 텅 빈 상태에서는 길거리에 나서기도 겁난다. 사람이 움직이면 가는 곳마다 돈이 들기 때문이다. 이 난감한 상황을 어떻게 타개할 것인가?
이런 상황에서 캐나다의 마이클 린턴이 아이디어를 냈다. 그는 원래 영국 출신의 프로그래머로, 1983년에 캐나다 코목스 밸리라는 작은 섬마을에서 경제 불황으로 실업자가 급증하자 현금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을까?라는 질문을 던지며 물물교환에 기초한 지역화폐(대안화폐) 운동을 시작했다. 그 단위는 녹색달러(Green Dollar)였다.
이것은 기존의 잉여 생산물이나 상품 교환이라는 시장거래 방식을 넘어 사람 그 자체가 가진 재능이나 노동력을 서로 교환해 삶의 문제를 공동체적으로 해결해보자는 아이디어다. 지역화폐를 레츠(LETS)라고도 하는데, Local Exchange and Trading System의 줄임말이다. 우리나라의 전통적 품앗이와 비슷해 결국은 상부상조하는 문화를 보다 체계적으로 구축하려는 것이라 보면 된다.
마이클 린턴은 전문적인 프로그래머답게 컴퓨터 계정을 만들어 사람들의 거래 내역을 플러스(+)와 마이너스(-)로 기록했는데, 최초 4년 동안 거래된 총량이 35만 달러에 이르러 정부나 일반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즉 거액이 드는 일자리 창출 프로그램이나 새로운 투자 재원의 투입이 없이도 지역 내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에 교류가 활성화하여 그 자체가 일자리 창출의 효과를 가짐과 동시에 그동안 고립되어 살던 개인들이 공동체적 관계망을 회복하는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그 뒤 1990년대 이후 영국에서만도 약 500여 건의 지역화폐가 개발되었고, 호주나 뉴질랜드에서도 300여 건이 창출되었다. 이어 유럽 대륙의 스위스, 이태리, 독일, 프랑스, 네덜란드 등지에서도 숱한 실험들이 이뤄졌으며, 일본과 한국, 그리고 남미 여러 지역에서도 지역화폐가 진행 중이다. 호주의 경우 멜라니 지역이 대표적이며, 한국의 경우는 대전의 한밭레츠, 과천의 과천품앗이가 가장 대표적이다. 최근엔 서울시에서도 S-머니라는 대안화폐(포인트)를 도입해 자신의 노동이나 서비스를 서로 선물처럼 나누는 문화를 장려한다.
한편 국제적 차원에서도 최근 미국 달러화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고자 물물교환이나 자국 화폐의 가치를 높이기 위한 방법이 모색되기도 한다. 예를 들면 태국(쌀)과 이란(석유)은 자국의 대표적인 자원이나 생산물을 맞교환하기로 결정했다. 나아가 남미의 쿠바, 베네수엘라, 볼리비아 등은 자유무역협정이 아닌 민중무역협정을 체결해 각기 의료, 석유, 콩 같은 고유의 것을 맞교환한다. 이 사례들은 작은 지역만이 아니라 국제적 차원에서도 (돈이 아닌) 사람 중심의 공동체 문화를 만들려는 대안적 시도다.
"아, 돈 때문에 얼마나 많은 슬픈 일이 이 세상에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라는 톨스토이의 한탄(『전쟁과 평화』)은 지역화폐 시스템에서는 더 이상 찾기 어렵다. 물론 아직도 미국 달러를 위시한 중앙은행권의 권력은 어마어마하다. 그리고 이 권력은 좀처럼 붕괴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다음의 몇 가지 이유로 지역화폐는 마을 공동체, 지역 공동체, 세계 공동체의 활성화에 이바지하게 될 것이다.
첫째, 지역화폐는 근본적으로 사람과 사람의 친밀한 관계, 신뢰의 관계를 전제로 한 것이므로 상부상조의 공동체 문화를 활성화한다. 지금까지 우리는 중앙은행권(돈)을 벌기 위해 인간성을 상실하면서조차 피고용인으로 또는 사업가로 하루 종일 일했다. 그러나 그 대가는 너무 크다. 서로가 서로를 밀치며 먼저 나가려는 팔꿈치 사회에서 우리는 극심한 소외를 겪는다. 지역화폐는 이에 대한 대안의 가능성을 제공한다.
둘째, 지역화폐에서는 이자가 없고 이윤이 없으며 부채나 투기가 없기 때문에 원천적으로 타자를 희생시켜 자신의 이득을 취할 수 없다. 게다가 정말 가난한 자도 생필품 등을 마이너스 계정으로 구할 수 있기 때문에 인간적 품위를 잃지 않고 산다. 그 대신 그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도움을 주며 자부심을 느낀다. 돈의 경제가 아닌 삶의 경제, 죽임의 경제가 아닌 살림의 경제가 가능하다.
셋째, 지역화폐는 회원들 사이에서만 통용되는 것이기 때문에 특정 지역의 가치(화폐 또는 부)가 다른 곳으로 빠져나갈 수 없다. 일정한 범위 안에서만 통용되기 때문에 지역 경제 활성화에 기여한다. 게다가 교류가 활성화하고 공동체적 관계망이 회복될수록 부익부 빈익빈 같은 양극화도 줄어든다. 즉 달러 또는 중앙은행권 중심의 경제는 부의 집중과 독점을 부르는 데 반해 지역화폐 중심의 경제는 분권화와 평등화를 촉진한다.
물론 지역화폐가 아무 문제없이 공동체 활성화에 기여하지는 않을 것이다. 워낙 중앙은행권의 위력이 크고, 사람들 또한 기존 화폐에 대한 의존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특히 지역민 사이의 교류가 웬만큼 활성화하지 않는 한 지역화폐를 통해 생계를 포괄적으로 해결하긴 어렵다.
하지만 일본의 가라타니 고진 선생처럼 레츠 시스템을 기존의 자본주의나 사회주의의 모순을 모두 극복할 혁명적으로 보긴 어려울지라도, 적어도 우리에게 그것은 대안적 상상력을 촉진하는 현실의 실험임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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