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아름답다

   
정연호
ǻ
지상사
   
14000
2014�� 02��



■ 책 소개
불편한 감정의 근본적인 해소를 위해
동양고전에서 뽑아낸 심리치유 이야기

감정은 생각의 그림자이며 의식과 무의식의 생각을 드러내 주는 나침반이다. 마음병의 근본치료를 위해서는 감정을 외면하고 억누를 것이 아니라 감정을 통해 그러한 감정을 일으키는 생각을 알아차려야 한다. 

이 책은 동서양의 다양한 사례를 들어 우리의 마음을 치유하는 방법에 대해 알아보는 책이다. 저자는 동양고전인 『대학』에서 이야기하는 격물치지, 성의, 정심, 수신을 언급하여 마음을 치유하는 순서를 제시하고 있다. 

■ 저자 정연호 
동국대학교 한의과대학과 동대학원을 졸업했으며, 동국대학교 한방병원 일반 수련의 수료 후, 제일한방병원(부산)에서 진료과장과 진료원장을 지냈다. 

2006년 마음편한의원을 개원하고 현재까지 진료와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1998년 동국대학교 국선도 단전호흡 동아리에서 수련을 시작했으며 현재까지 수련을 이어오고 있다. 호흡을 통한 명상의 치료적 활용에 뜻을 두고 마음병을 연구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강박증은 없다』가 있다. 

마음편한의원 www.openmaum.com, yeono74@hanmail.net 

■ 차례
책머리에
추천의 글/탁의수(한의학 박사) 제일한방병원장
prologue

1장 심리학과 정신의학
세상에 믿을 사람 하나도 없네 | 중독에서 빠져나오기 위해서 필요한 것 | 요즘 우리의 공기는 참 탁하다 | 반드시 이름부터 바로 잡겠다 | 나는 참 슬프겠다 | 누구나 삶에는 문제들이 있게 마련 | 비록 슬프지만 받아들이자 | 본능은 옳고 그른지 이미 알고 있다 | 부끄러운 줄 모르면 변할 수도 없다 | 짧은 시간 행복했으나 긴 시간 불행

2장 정신의학을 말하다
생각의 그림자인 감정 | 마음만 바꿔 먹으면 된다 | 생각이 멈추면 감정은 고요해진다 | 불안할 때 불안한 것은 병이 아니다

3장 마음병 근본치료 명상-지지知止
한 구석에 남아 있는 찝찝한 마음 | 하나의 대상에 마음을 모으는 것 | 참을 수 없는 사람의 마음 | 지혜롭게 대처해 나갈 수 있는 능력

4장 출발은 나로부터-격물치지格物致知
사람과 삶에 대한 진실 찾기 | 고난이 없는 인생이 그 어디에 있으랴 | 밤 한 톨을 다투는 세상 | 무엇이 우리에게 가치 있는 것인지 | 마음이 없으면 이해와 실천이 불가능하다

5장 생각의 적절함-성의誠意
혼자 있을 때의 생각 | 누구나 삶에는 각자의 시련이 있다 | 뿌리가 오래된 습관 | 마음은 양심에서 비롯된 선한 본성 | 돈에게 제자리를 돌려주자 | 가난이 불편하긴 했지만 부끄럽진 않던 시절

6장 생각과 감정의 적절함-정심正心
빛은 대상에 닿은 뒤에 그림자를 만든다 | 조화로운 생각은 이런 것이다 | 상대의 입장에서 사람다움의 표현 | 당신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아름답다 | 생각이 불편한 감정을 만들어 내고 있다 | 피할 수 없는 시련과 실패는 인정

7장 생각과 감정, 말과 행동의 적절함-수신修身
무능한 사람이 행복할 수는 없다 | 무의식은 상당히 걱정한다는 뜻 | 허물을 고치기 위해서는 먼저 | 허물을 인정 | 마음은 자연스럽지 못하기에 편하지 않다 | 들키지만 않으면 괜찮아 | 부끄러워할 줄 모르면 사람이 아니다

Epilogue




당신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아름답다


심리학과 정신의학

중독에서 빠져나오기 위해서 필요한 것

시련이 없는 스토리는 지루할 수밖에

누구나 삶을 살아가다보면 시련을 만난다. 주인공의 시련이 없는 영화는 지루할 수밖에 없는 것처럼, 나의 삶 역시 시련이 없다면 편안은 하겠지만 지루할 것이다. 하지만 다행히 시련이 없는 삶은 없으며 우리의 삶은 시련을 통해 빛나며 성숙한다. 과거의 시련이 없었다면 오늘날 성숙한 나도 없는 법이다. 2013년 7월 28일 6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제인 로터가 장애물이 바로 길이라고 말한 이유다.


마음병의 근본치료에 필요한 것은 바로 이러한 삶에 대한 통찰이 아닐까? 이러한 통찰이 단지 지식으로 한쪽 귀로 들어와서 한쪽 귀로 흘러나가는 것이 아니라, 귀로 들어와서 마음에 자리 잡고 뿌리 내려 싹을 피워내고 또다시 꽃과 열매를 피워내는 것. 그리고 그 꽃과 열매로 그것을 실천하는 삶을 살 수 있게 되면 그것이 바로 마음병 근본치료의 길이 아닐까?


모든 병에 대한 치료는 의료의 영역이지만, 정신과 치료는 형이상학적인 마음을 다루기에 일반적인 의료와는 구분되는 특이한 영역이다. 마음병의 근본치료를 위해서는 자기 마음을 돌아보는 반성과 성찰, 그리고 그를 통해서 얻게 되는 삶에 대한 통찰이 필요하다. 만약 마음병을 치료한다고 하면서 이러한 핵심적인 부분은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고, 정신과 의사는 다만 신경전달물질을 조절하는 약을 처방해 줄 뿐이며 자신의 역할은 거기까지라고 생각하는 의료인이라면 그 치료가 장기적이며 근본적인 관점에서도 유용할 것인지 스스로에게 되묻고 숙고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누구나 삶에는 문제들이 있게 마련

찾아온 시련

지금 마음병이 있다면 증상에 대한 관리는 받아나가되 앞에서 이야기한 근본적인 치료에 대한 관점 역시 놓치지 않으면 좋겠다. 다행히 지금 마음병이 없다면 좋은 일이나, 평소 마음의 유연성을 확충해 나가 혹여 앞으로 만나게 될지도 모를 시련과 역경에 대비해나가면 좋겠다. 삶에 시련과 역경이 없으면 좋지만 그런 사람은 없다. 있다 하더라도 시련을 겪어보지 못했던 사람은 성숙하지 못해 함께 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시련을 일부러 만들 필요는 없는 일이지만 내 뜻과 관계없이 찾아온 시련이라면 이런 뜻을 살펴 잘 통과해나가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 자기 마음의 성찰은 중요한 부분이다.


누구나 삶에는 문제들이 있게 마련이다. 하지만 자신의 마음이 그 문제를 포용할 정도로 크다면 그때는 문제가 더 이상 문제되지 않는다. 그리고 동양고전에는 각자의 마음을 넓힐 수 있는 많은 이야기들이 있다. 21세기에 새롭게 인문학, 그중에서도 동양고전이 주목받는 것에는 이러한 이유도 함께 있을 것이다.



정신의학을 말하다

마음만 바꿔 먹으면 된다

같은 것을 보아도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다. 같은 상황에 처해도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다. 애초에 그가 가지고 있는 생각의 토양(삶의 철학, 가치관, 신념)에 따라 상황과 사건에 처했을 때 그에 근거한 생각이 자동적으로 떠오른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은 자신이 그 생각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을 뿐 아니라 이미 습관화되어 있는 것이라 애써 그것을 찾아보지 않는 이상 의식적으로는 인식되지 않은 것이 보통이다.


그리고 서로 다른 생각은 서로 다른 감정을 만들어 낸다. 졸업식에도 어떤 사람은 울고 어떤 사람은 웃는다. 우는 사람은 친구와 선생님과의 이별이 아쉬워 슬픈 것이고, 웃는 사람은 새로운 출발이 기대되어 기쁜 것이다. 이처럼 같은 상황에서도 각자가 쥐고 있는 생각에 따라 서로 다른 감정이 일어난다.


생각을 바꾼다는 것

이것을 아는 사람은 마음병이 있는 사람에게 마음만 바꿔 먹으면 된다.고 말하며 생각을 바꾸라.라고 주문한다. 하지만 그렇게 주문하는 그도 마음을 바꾸는 구체적인 방법을 알지 못하기에 조언은 거기까지이며, 바꾸지 못하는 상대를 보며 답답해할 뿐이다.


하지만 마음의 이치를 알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다. 사람의 마음에는 서로 다른 두 가지 이상의 생각이 공존할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의 감정, 말과 행동은 자기가 더 많이 믿고 따르는 생각으로부터 비롯된다. 내가 애써서 A를 하려고 하지만 자꾸 B의 감정, 말과 행동이 나오려고 한다면? 그것은 A의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자신의 현재 마음은 B가 주도권을 쥐고 있다는 말이다. A를 위해 애써서 노력하지만 그 노력쯤은 우습게 볼만큼 B를 믿고 신뢰한다는 말이다.


이러한 설명에도 불구하고 생각을 바꾼다는 것은 여전히 쉬운 일이 아니다. 익숙한 것이 아니고 게다가 눈에 보이지도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른 이해를 넓혀 나가면 쉬운 일이 될 수도 있다. 사실 알고 보면 쉽다. 어렵다의 차원이 아니다. 원래부터 자기 집 새장에 있었던 파랑새와 마찬가지로 내가 본래 가지고 있었던 것이 바른 생각 바른 견해 바른 시각 바른 철학 바른 신념 바른 가치관이었다. 이제껏 자신이 가지고 있었으면서도 그것을 몰랐을 뿐이다. 그러니 바꾸고 말고 할 것도 아니고 자신이 가진 그것을 정확히 들여다보고 읽어내기만 하면 된다.



마음병 근본치료 명상-지지知止

하나의 대상에 마음을 모으는 것

명상의 핵심은 하나의 대상에 마음을 모으는 것이다. 1970년대 초반 하버드 의과대학의 순환기 내과 교수인 허버트 벤슨의 사마타 명상에서는 특정한 단어를 선택해서 마음을 모으며, 1980년 매사추세츠 대학교 메디컬 센터의 행동의학 교수인 존 카밧진의 위파사나 명상에서는 보디스캔이라고 하여 자신의 신체를 전체적으로 점검하며 몸에 마음을 모으거나, 들숨 날숨의 호흡에 마음을 모은다. 그리고 보행명상이라고 하여 자신의 걸음에 마음을 모으기도 하는데 이것들이 모두 대상에 마음을 모으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을 내려두고 대상에 마음을 모으면 감정적인 편안함이 따라온다. 일상의 감정은 생각의 그림자인데 하나의 대상에 마음을 모으며 일체의 생각을 쉬면 감정도 함께 고요해진다.


한편 명상에서 생각을 그치고 대상에 마음을 모으는 것은 또 다른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얼핏 그것은 객체인 대상을 뚜렷하게 드러내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대상을 바라보는 주체인 바라보는 자를 드러낸다. 명상을 처음 배울 때에 하나의 대상이 중요한 까닭도 여기에 있다. 명상이 익숙해지면 집중하는 대상이 변해도 바라보는 자를 쉽게 놓친다. 바라보는 자를 드러내는 것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중요한 의미가 있다.


대상에 마음을 모으는 명상을 반복하면 반복할수록 바라보는 자인 주체가 더욱 뚜렷해진다. 그리고 뚜렷해질수록 바라보는 힘은 커진다. 바라보는 힘이 커질수록 명상 중 배경에 잡념이 올라와도 그 잡념은 무시하거나 내버려둔 채 자신이 원하는 대상에 마음을 모으는 것이 쉬워진다. 같은 원리로 바라보는 힘이 커지면 집중이 길어지며 대상을 바라보던 그 바라봄은 확장되어 호흡과 같은 대상뿐 아니라 자신의 감정과 생각도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생각과 감정의 생성과 소멸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바라볼 수 있게 되면 감정과 생각이 일어나지만 그것에 휩싸이지 않을 수 있다. 이전에는 바라보는 주체를 인식하지 못했으며, 그랬기 때문에 대상인 객체와 주체 사이에서 일어나는 생각과 감정에 전적으로 의지하며 그것을 중요시했다. 바라보는 자인 주체가 중요한데 그것의 존재를 알지 못했으니 생각과 감정을 자신에게 있어서 가장 본질적인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런 까닭에 한 생각이 올라오면 그 생각에 휩싸이며, 한 감정이 올라오면 그 감정에 휘둘렸다. 하지만 바라보는 자를 인식하게 되면 이전보다 더 큰 시각에서 한발 물러나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바라볼 수 있다. 생각과 감정은 바라보는 자인 주체와 대상인 객체 사이에서 일어난다. 바라보는 자가 충분히 밝아지면 생각과 감정의 생성과 소멸을 알아차릴 수 있다. 그래서 생각과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내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구나. 내가 화가 나려고 하는구나와 같이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볼 수 있다.

 


생각의 적절함-성의誠意

혼자 있을 때의 생각

마음은 생각과 감정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마음병의 증상은 생각에 관한 것, 감정에 관한 것, 말과 행동에 관한 것으로 각기 나누어 볼 수 있으나 어느 것이라도 생각에서 비롯되지 않은 것은 없다. 현대의학에서는 마음병을 증상에 따라 분류했다. 우울증, 불안증, 조울증, 공황장애, 공포증 등이 그것이다. 증상은 다르나 결국 그 근원은 생각이다. 사람이 느끼는 감정은 언제나 생각을 뒤따라 생긴다. 같은 상황에 처해도 사람마다 느끼는 감정은 다른데, 그 이유는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생각이 서로 다른 감정을 만들어낸다.


근본 원인을 본다면 감정의 어려움은 감정에 앞서 일어나는 생각의 문제이다. 생각 중에서도 상황에 처했을 때 자신도 모르게 불쑥 떠오르는 생각(意)의 문제이다. 상황에 처해서 자신도 모르게 불쑥 떠오르는 생각(意)은 자신의 속 깊은 믿음에서 나오며 평소의 가치관과 철학이 반영되어 있다. 이것의 유래는 평소의 격물이다. 평소 사람과 사물, 그리고 그것들이 만들어 내는 삶에 대해 자신이 생각하고 믿었던 것이 상황에 처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불쑥 튀어나온다. 그리고 이렇게 불쑥 튀어나오는 생각이 적절하며 참될 때 『대학(大學)』에서는 참된(誠) 생각(意)이라고 하여 성의(誠意)라고 했다.


상황에 처했을 때 너무나 당연한 듯 올라오는 그 이상한 생각들을 가만히 살펴보면, 병이 심해지기 전까지는 이상하다고 느끼지 못하며 자신이 습관적으로 반복했던 생각들이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습관이 된 뒤다. 이처럼 치우친 생각은 치우친 감정을 만들어내며, 습관화 된 치우친 생각을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은 이유를 알 수 없는 불안과 우울로 힘들어한다. 그래서 혼자 있을 때의 자기 생각을 신중하게 점검해보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혼자 있을 때 올라오는 것이 내 믿음의 중심에 있는 생각이다. 그 생각을 점검해보고 부끄럽다면 틀린 것이다. 하지만 틀렸다고 좌절하지 말자. 틀린 생각에 부끄러움을 느낀다는 그것은 비록 지금은 미약하지만 자신의 더 깊은 마음에 양심이 여전히 살아있다는 말이다. 마음의 중심에 선한 양심이 없다면 어디서 지금의 부끄러움을 일으키고 있겠는가?


틀렸다는 것을 안다면 새롭게 바른 격물을 하면 된다. 틀린 생각은 현실적인 빛을 쏘여주면 살아남지 못한다. 부끄러워서 숨는다. 만약 분명 틀린 생각임에도 불구하고 부끄러움이 느껴지지 않는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때는 부끄러워하지 않는 그 사실을 부끄러워하는 것부터 시작하도록 한다. 내가 그런 생각에도 부끄러움이 느껴지지 않는구나. 이래서 되겠는가?라는 생각이다. 틀린 생각을 고집한다면 그 마음으로는 타인과 어울려 살아가기 힘들다.


누구나 삶에는 각자의 시련이 있다

고통스러운 감정

피할 수 없는 시련은 인정하고 넘어가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다. 피할 수 없는 시련에 대한 부정이 미숙하며 현실적이지 않은 생각임을 알고, 더불어 자신이 피할 수 없는 시련을 계속해서 부정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채면 그 순간부터 마음의 변화는 시작된다. 이때 자신의 성숙하지 못한 무의식이 의식으로 드러날 때 느껴지는 것이 고통스러운 감정이다. 불안과 우울의 고통스런 감정은 나를 괴롭히기 위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무의식에 담겨있는 미숙하며 현실적이지 않은 생각을 돌아보게 하기 위한 몸의 자연적인 반응이다. 미숙한 생각에는 고통스러운 감정이 맞다. 만약 그때 즐겁거나 쾌감이 느껴진다면 우리는 미숙함을 놓지 않을 것이다.


감정은 생각의 그림자다. 따라서 자신의 생각이 무의식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을 때 감정을 역추적해보면 가려져 있던 생각이 무의식으로부터 드러난다. 이때 드러난 생각이 이치에 맞지 않는 생각이라면 격물을 통해 바로 잡아나간다. 격물을 통해 생각의 질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그 후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바른 생각이 바로 성의이다. 감정은 생각의 그림자이므로 성의에는 바른 감정이 그림자처럼 뒤따른다. 바른 생각과 바른 감정을 아울러『대학』에서는 정심으로 표현했다. 격물치지와 성의, 정심. 이것이 마음병 근본치료의 원리이며 방법이다.



생각과 감정의 적절함-정심正心

생각이 불편한 감정을 만들어 내고 있다

감정은 언제나 우리편

과거에 비해 자신에 대한 표현이 분명해진 것은 사실이나, 자신과는 다른 의견을 인정하고 포용하는 마음의 자세는 부족해졌다. 치우친 욕망의 결과 생긴 감정을 개인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분별없이 배설하면 그것이 옳을까? 혹시 남이 그러는 것은 틀린 것이라고 분명히 알고 있는데 자신의 치우친 시각과 분별없는 감정의 배출은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혹시 자신은 잘살고 있는데 남들로부터 받는 피해만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는 않는가?


사람은 더불어 살 수밖에 없고 그러다보니 성숙한 사람뿐 아니라 미숙한 사람도 함께 살며 이것이 현실이다. 성숙한 사람들만 있으면 물론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으니 사람다움이란 더불어 살기에 생기는 피할 수 없는 피해와 손해를 용납하는 것이다. 대비하고 피할 수 있는 것은 피하되, 그럴 수 없는 것은 수용하고 용납하는 수밖에 없는 일이다. 이에 비해 미숙함이란 남에게서 받는 피해는 결코 용납하지 않는 마음이다. 그 마음으로는 현실에서 편안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런 현실은 없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나는 성숙한가? 미숙한가?


생각과 감정의 관계는 앞뒤가 들어맞는 톱니바퀴와 같다. 현실적이지 않은 생각은 현실적이지 않은 감정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자신에게 습관화된 생각은 그 흔적을 남기지 않으니 이럴 때는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통해 생각을 역추적해봐야 한다. 알고 보면 감정은 언제나 우리 편이다. 이것이 성의 이후에 정심이 오는 원리다. 성의는 생각에 대한 것이며, 정심은 성의에 더하여 적절한 감정을 포함한 것이다. 조화로운 감정은 조화로운 생각에서 비롯된다.


피할 수 없는 시련과 실패는 인정

실패가 비록 좋진 않지만 피할 수 없는 실패를 만나게 되는 것이 우리의 삶이다. 그래서 이미 찾아온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이는가는 중요한 문제이다. 이것은 실패뿐 아니라 모든 시련과 역경에 공통되는 것인데 이미 찾아온 시련과 실패를 용납하지 못하는 사람은 그 자리에서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한다. 현재를 소진하며 과거와 함께 사는 꼴이다. 그렇다면 실패와 시련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혜민 스님은 「첫 번째 큰 실패를 맛본 그대에게」라는 칼럼에서 지금 찾아온 실패와 같이 내 계획대로 되지 않는 일이 무수히 많을 거라며 차가운 현실을 시리게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지금의 실패는 지극히 정상적인 경험이라 말한다. 또한 찾아온 실패에 대해서 아무 생각 없이 넘어가면 같은 실패가 되풀이된다.


진주조개가 이물질을 품고 빛나는 진주를 만들어내는 것처럼, 이미 찾아온 실패라면 용납하고 왜 그렇게 되었는지 돌아본 뒤 좌절은 짧게, 반성은 진하게 하자. 혹은 지난 실패를 부여잡고 과거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는 자신을 보고 있다면, 지난 실패가 내 인생을 망치는 것이 아니라 실패를 다루는 자신의 그러한 태도가 인생을 망치는 주범임을 명심할 일이다.


타협점에 나타난 기회

살다보면 피할 수 없는 시련이 있다. 피할 수 없는 시련이라면 그것을 통해 자신의 시련보다 넓어지는 계기로 삼으면 좋다. 비록 당시에는 충분히 넓어지지 못했더라도 뜻을 그렇게 세우면 피할 수 없는 일을 용납하기가 갈수록 쉬워진다. 생각의 방향이 중요하다. 피할 수 없는 시련과 실패를 인정하고 용납하는 방향이라면 감정도 그에 따라 편안할 것이지만, 이미 바꿀 수 없는 과거를 바꾸려고 노력하고 있다면 감정은 결코 편안할 수 없다.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그에 따른 감정이 따라온다. 내가 주장하는 생각은 성의인가? 나의 생각과 감정은 정심인가? 감정이 그 적절함을 벗어났다면 정심이 아니며 따라서 성의도 아님을 명심해야 한다. 감정은 생각의 그림자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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