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프라 현상으로 윈프리를 읽다

Oprah Winfrey And The Glamour Of Misery

   
에바 일루즈(역자: 강주헌)
ǻ
스마트비즈니스
   
20000
2013�� 10��



■ 책 소개
자신의 고통으로 세상을치유하다!

100kg의 흑인, 사생아로 태어나 계부 밑에서 가난하게 자랐던 어린 시절, 아홉 살에 사촌 오빠로부터강간, 계속되던 친척들의 학대, 열네 살에 미혼모가 되고 2주 후 그 아이의 죽음…. 그리고 자산 28억 달러의 갑부, 토크쇼의 여왕,「보그」지의 패션모델, 영화배우, 영화와 TV 프로그램 제작은 물론 출판과 인터넷 사업까지 망라하고 있는 ‘하포 엔터테인먼트 그룹’의 대표.「타임」지 선정 ‘20세기의 인물’. 두 여자는 하나의 이름으로 불린다. ‘오프라 윈프리’.
오프라 윈프리를 사회문화적으로 접근한 책으로, 그녀가 독특하면서도 복잡한, 한 마디로기존의 모든 경계를 허물어뜨린 인물이란 관점에서 접근해 새롭게 조명하고 있다. ‘오프라 윈프리 쇼’를 꾸준히 시청하면서 100여 개의 프로그램대본, 오프라 윈프리의 전기와 잡지기사, 오프라가 발행하는 잡지 『오 매거진』, 오프라 윈프리 북클럽이 선정한 책들, 오프라 윈프리 쇼에서소개된 책들, 오프라 윈프리 쇼 웹사이트에 올라온 수백 개의 게시물을 분석함으로써, 소외된 사람들을 중심에 세워 그들과 세상을 치유하고 있음을낱낱이 밝혀낸다.

■ 저자 에바 일루즈
모로코에서 태어나 열 살 때 프랑스로 이주해 파리10 대학교에서 사회학, 커뮤니케이션, 문학을 공부하고 히브리 대학교석사과정에서 커뮤니케이션을 공부했으며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아넨버그 스쿨 박사과정에서 커뮤니케이션과 문화이론을 공부했다. 파리 사회과학고등연구원,프린스턴 대학교 등에서 강의하고, 베를린 지식연구소 교수를 지냈다.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히브리어, 아랍어 5개 국어를 자유자재로구사하며, 2013년 현재 예루살렘의 히브리 대학교 정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낭만적인 유토피아를 소비하기(Consuming the Romantic Utopia)』는 전미사회학회 2000년(감정사회학분야) 최우수도서로 선정되었고, 『오프라 윈프리와 고통의 광휘(Oprah Winfrey and the Glamour of Misery)』는전미사회학회 2005년(문화사회학 분야) 최우수도서로 선정되었다. 2005년에는 프랑크푸르트 사회과학연구원에서 ‘아도르노 강의’를 진행했고, 그내용을 『감정 자본주의(Cold Intimacies)』로 펴내 학계와 출판계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2009년 독일의 유력 일간지『디자이트』는 에바 일루즈를 ‘내일의 사유를 바꿀 12인의 사상가’들 중 한 명으로 꼽은 바 있다. 한국에서 번역된 책으로는 이 책 『오프라현상으로 윈프리를 읽다』『사랑은 왜 아픈가 : 사랑의 사회학』 『감정 자본주의 : 자본은 감정을 어떻게 활용하는가 』 등이있다.&nb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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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자 강주헌&nbsp&&nbsp& 
한국외국어대학교 프랑스어과를졸업하고, 같은 학교에서 석사 및 박사 학위를 받은 뒤, 프랑스 브장송 대학교에서 수학했다. 한국외국어대학교와 건국대학교 등에서 강의했고, 현재전문 번역가로 활동하면서 ‘펍헙 번역 그룹’을 통해 후진 양성에도 힘쓰고 있다. 2003년 ‘올해의 출판인 특별상’을 수상했다. 지은 책으로『기획에는 국경도 없다』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촘스키의 『촘스키, 우리가 모르는 미국 그리고 세계』, 『권력에 맞선 이성』, 『지식인의책무』,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어제까지의 세계』, 얀 마텔의 『20세기의 셔츠』 외에도 『컬처쇼크』『습관의 힘』『유럽사 산책』『슬럼독밀리어네어』 등 100여 권이 있다. 

■차례
옮긴이의 글 - 오프라 윈프리, 자신의 고통으로 세상을 치유하다!
감사의 글 
프롤로그 - 오프라 현상으로윈프리를 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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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특별함과 평범함의 경계를 허물다
제2장 상처로 승화시킨 삶의 가치를 선물하다
제3장연민으로 카타르시스의 미학을 꽃피우다
제4장 변화로의 의지가 당신의 삶을 치료한다
제5장 고통받는 사람들을 통해 우리의 모습을투영하다
제6장 오프라 윈프리의 힘은 어디에서 출발하는가
제7장 오프라를 제대로 비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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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 보통사람들을 위한 치유의 텔레비전





오프라 현상으로 윈프리를 읽다


특별함과 평범함의 경계를 허물다

사회적 경계를 넘어

오프라 윈프리는 1954년 미시시피 주에서 태어났다. 그 해는 연방대법원이 학교에서의 인종차별을 위헌이라 판결한 해이기도 했다. 따라서 미국 사회에서 평등이란 문제가 공개적으로 토론되던 때였다. 이런 환경에서 오프라는 흑인과 백인을 구분하는 장벽과 차별을 의식하며 자랐다. 그러나 그 장벽을 뛰어넘을 수 있는 시기이기도 했다.


1960년대 인종차별을 철폐하려는 실험의 일환으로 흑인 아이를 교외의 백인학교에 입학시키는 정책에 따라, 오프라는 백인 일색의 학교에 입학한 첫 세대의 흑인 학생이었다. 그녀는 부유한 학교에 다니면서 급우들이 사는 아파트의 청소부였던 어머니와 함께 살았다. 얼마 후 그녀는 성폭행을 당했다.


사회적으로나 도덕적으로 판이한 두 세계를 신속하게 넘나들어야 했던 조건은 그녀의 아비투스(habitus, 행위자가 주변 사람들에게도 의미 있는 혁신적 행위를 꾸준히 창출할 수 있게 해주는 습관과 태도 및 기능)를 형성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


그녀는 자아관리의 달인이 되면서 사회적으로나 도덕적으로 크게 다른 환경을 이해하면서 올바로 처신하는 데 대한 재주를 키워갔다. 예컨대 토크쇼가 우후죽순처럼 생기고 그녀의 토크쇼에는 비판이 쏟아지는 반면에 다른 토크쇼들은 눈부시게 발전했을 때 오프라는 토크쇼의 구성에 혁신적 변화를 주어 토크쇼의 질을 향상시키는 식으로 대응했다.


한 저널리스트가 지적했듯이, 그녀는 대중에 더 가까이 다가서는 전략을 채택하면서 갑자기 등장해서 텔레비전 화면을 휩쓸고 있던 역겨운 토크쇼들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토크쇼의 중심을 천박하고 논쟁적인 이슈에서 영적이고 본질적인 이슈로 전환시켰다. 이런 식으로 오프라는 자신의 문화적 정체성에 변화를 주면서 새로운 상황의 요구에 부응하는 놀라운 융통성과 재능을 과시해왔다.


사회적 경계를 넘나드는 이런 재능은 다른 부문에서도 명백하게 찾을 수 있다. 그녀가 누누이 주장하듯, 다양한 환경을 경험한 덕분에 그녀는 다른 사람들이 겪은 문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었다. 달리 말하면 오프라는 변덕스런 관점들을 받아들여 다른 방식의 삶을 이해하는 데 전문가이다.


오프라의 아비투스에서는 네 가지 요소가 중심을 이룬다. 첫째는 그녀가 아프리카계 미국인 공동체 소속이라는 점, 둘째는 그녀가 성장한 배경인 아프리카계 미국 교회의 수사적이고 도덕적인 세계관, 셋째는 독선적이고 비밀주의적이며 폭력적 제도로서 경험한 가족, 넷째는 직접 몸으로 경험한 다양하고 복합적인 세계들이다. 이런 경험 덕분에 오프라는 엄격한 관습을 지키면서도 휴대전화와 자본주의와 중산계급이 지배하는 문화에서 요구하는 조건을 적절히 수용하면서 사회적 경계를 능수능란하게 넘나들 수 있었다. 



상처로 승화시킨 삶의 가치를 선물하다

출연자에게 출연료를 주지 않고 삶의 가치를 선물하다

토크쇼는 상업 텔레비전이란 커다란 경제권에 포함되지만, 참가자들의 신상 이야기와 삶을 상품화시켜 전 세계 시장에 유통시킨다는 점에서 상업 텔레비전의 다른 프로그램들과 다르다. 가령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초대받은 작가와 비교해보면 그 차이가 뚜렷하게 드러난다.


어떤 인기 있는 프로그램에 출연한 후 그 작가는 1만에서 5만 권의 책을 더 많이 팔 가능성을 얻게 된다. 이런 경우에 미디어는 시장 메커니즘을 활성화시켜 텔레비전 프로그램, 작가, 출판사, 청중 등 관련된 당사자 모두에게 이익을 준 것일 수 있다. 오프라 윈프리 북클럽이 출판산업 전체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이런 메커니즘은 오프라의 경우에 더욱 확연히 작용한다.


그러나 일반인이 출연해서 삶의 이야기를 털어놓는 토크쇼들은 다르다. 이런 토크쇼들은 시장에서 이미 유통되는 상품을 광고하거나 알리지 않는다. 대신 이런 토크쇼들은 고통과 박탈감, 갈등을 겪는 참가자들의 이야기를 재료로 삼아 새로운 상품을 만들어낸다. 삶의 이야기가 광고주에게 팔린 텔레비전 프로그램으로 전환되는 셈이다. 이런 점에서, 토크쇼들은 우리 삶에 깊숙이 파고든 자본주의의 실상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이렇게 만들어진 상품은 비용을 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순전한 잉여가치가 된다. 오프라 윈프리의 웹사이트를 둘러보면 이야기가 중요한 상품으로 인식되고 있지만 그에 대한 보상은 결코 이루어지지 않는다. 자본가에게 이익을 안겨주는 동력은 이제 인간의 피와 살과 뼈가 아니라 인간의 신상 이야기와 가족의 비밀이 되었다.


오프라 윈프리 쇼와 필 도너휴 쇼의 특징은 상품 숭배에 있지 않고 인간 숭배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두 쇼는 커다란 차이를 갖는다. 도너휴는 로드니 킹을 구타한 혐의로 기소당한 두 경찰에게 2만 5,000달러의 출연료를 흔쾌히 주었다. 조지 메이어의 표현을 빌리면, 도너휴는 "타임워너와 제너럴 일렉트릭과 같은 다국적 기업이 이런 인터뷰를 통해 시청률을 높여 얻는 돈이 주주들에게 확실히 이익을 준다면 소프트웨어(게스트)를 무료로 구해야만 할 이유가 무엇인가? 나는 그렇게 한다고 도덕적으로 문제가 될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반면에 오프라는 게스트들에게 출연료를 지급하기를 한사코 거부해왔고, 어떤 경우에는 돈 문제에 연루되기보다는 독점 인터뷰 건을 기꺼이 포기했다. 모니카 르윈스키의 경우가 대표적인 예이다. 따라서 오프라는 자신의 토크쇼에 출연하는 상징적 인물에게 비행기 티켓, 호텔 체재비만을 상품으로 취급해왔다는 점에서, 그녀가 보통 사람들의 삶을 상품화하는 방식은 도너휴의 방식과 다르다. 오프라 윈프리 쇼는 사회자와 청중을 더 중요시하고, 사회자와 청중 사이의 공생적 관계를 만들어간다는 점에서 필 도너휴 쇼와 다르다. 


오프라의 페르소나에는 배려와 자립, 신비로운 매력과 친숙함, 힘과 평범함이 복합되어 있다. 이런 페르소나를 이용해서 오프라는 일탈과 일상적 삶, 규범의 파괴와 도덕, 개인적이고 친밀한 관계를 동시에 다룰 수 있는 모순된 장르를 만들어냈다. 오프라는 자신을 상징적 전형으로 꾸몄기 때문에 텔레비전이란 매개체의 가능성을 도너휴보다 훨씬 광범위하게 이용했다.


실제로 텔레비전은 다섯 가지 표면적 특징을 갖는다. 친숙하고, 상호적이며, 관례화된 것이고, 일상의 삶에서 한 부분이며, 살아있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텔레비전은 시청하는 순간과 방송하는 순간이 동시라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오프라는 이런 특징들 모두를 하나로 결합시켜 그녀만의 독특한 페르소나, 수사적인 어투, 이야기의 관례화와 극화, 그리고 토크쇼의 수행성을 창조해왔다. 따라서 오프라 윈프리의 본질적 특징은 토크쇼와 페르소나에서 도너휴보다 텔레비전이란 매개체를 훨씬 광범위하게 철저하게 사용했다는 점에 있다.



연민으로 카타르시스의 미학을 꽃피우다

연민으로 기록한 삶의 보관소

오프라 쇼는 고통을 표출할 터전을 제공한다는 뚜렷한 목표를 갖고 있기 때문에 쇼의 게스트들은 정신적 외상(trauma)을 가진 피해자라는 현대인의 원형(原型)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오프라의 주된 이야기 기법은 게스트의 삶이 재앙으로 빠져든 순간, 또한 게스트와 시청자들이 세상에 대해 갖는 존재론적 신뢰가 무너지는 순간을 게스트와 시청자 모두가 생생하게 절감하도록 만든 데 있다.


노숙자로 전락한 중산층 사람을 다룬 토크쇼에서 오프라는 한 여인에게 물었다. "정신적 고뇌에 대해 말씀해주겠어요. 당신을 다룬 비디오테이프에서, 당신이 지금껏 한 자원봉사를 기록한 공책을 살펴보는 장면이 있던데요. 아, 울고 있군요. 왜죠?"


여기에서도 오프라 윈프리는 이 게스트의 이야기를 함께 만들어가고 있다. 따라서 이 이야기에서 우리는 과거와 현재를 중첩시키고, 그녀가 과거에 중산층으로 살던 삶을 떠올리고 이제는 노숙자로 전락한 신세를 한탄하며 눈물짓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제도적 기관이 개인에게 가한 물리적 피해를 주로 다루는 인권조직과 달리, 오프라 윈프리 쇼는 심리적 상처를 이야기 형식으로 다룬다. 회복의 문화는 자아를 고통의 형식으로 이야기를 전개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해왔다.


뤽 볼탕스키는 『혁명에 대하여』에서, 한나 아렌트가 동정의 정치와 정의의 정치를 구분한다고 말했다. 동정의 정치에서 관심을 두는 것은 정의라는 추상적 규칙이나 제도가 아니라, 특정한 개인의 특이한 불행이다. 가난한 사람은 계량화될 수 있지만 고통받는 사람은 계량화될 수 없다. 또한 가난한 사람들은 가난이라는 개념으로 범주화될 수 있지만 고통받는 사람의 고통은 범주화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고통받는 사람은 각각의 특이성을 갖는다.


오프라 윈프리 쇼는 아렌트의 동정의 정치를 보여주는 전형이지만, 두 가지 점에서 크게 다르다. 아렌트가 언급한 고통받는 사람은 지진이나 정치적 격변의 피해자인 반면에 오프라 쇼에서 다루는 고통은 잘못된 인간관계에서 비롯된 자아의 고통이다. 한편 전통적인 동정의 정치는 제도와 개인 사이의 관계에서 비롯되는 고통을 기록하는 데 주안점을 두지만, 오프라 윈프리는 자아를 유지하면서 타인과 원만한 관계를 누리기 어려운 현실에서 비롯되는 고통을 주로 다룬다.


게다가 전통적인 동정의 정치는 고통받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뚜렷이 구분한다. 누군가를 동정한다는 것은 우리와는 직접적 관계가 없는 고통을 받기에 동정하는 것이다. 따라서 어떤 어머니가 죽은 아들을 동정하지 않는 이유는 그 비극에 그 어머니가 직접 관계된 것에 있다. 반면에 오프라는 고통받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사이의 간격을 최소화시키려고 애쓴다. 따라서 오프라가 해석하는 동정의 정치에서는 고통받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언제라도 교체될 수 있다.



변화로의 의지가 당신의 삶을 치료한다

오프라 제국의 영향력

오프라의 쇼는 다른 토크쇼와 달리 개인의 자긍심과 자선행위에서부터 유가공산업과 아동학대에 대한 입법활동에 이르기까지 아주 다양한 사회 영역에 침투해서 변화를 유도한다. 오프라는 노숙자의 삶을 변화시키는 힘을 과시하기도 했지만 유가공산업과 출판산업 전체를 바꿔놓는 위력까지 보여주었다 또한 오프라의 쇼는 다양한 사회 영역과 꾸준한 관계를 맺고 있어, 텔레비전의 프로그램으로는 아주 희귀한 사례이다. 오프라는 게스트의 삶을 토크쇼의 소재로 사용하듯이 정치와 기업에도 개입해서 영향력을 행사하며, 텔레비전이 다른 사회 영역들과 복잡하게 뒤얽히면서 어떻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지 보여주고 있다.


오프라 윈프리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시민사회와 마케팅, 자선행위와 시장전략을 혼란스러울 정도로 뒤섞을 때 가장 확연히 나타난다. 1993~1994년 오프라가 창립한 더 좋은 삶을 위한 가족(Families for a Better Life, FBL)을 예로 들어 설명해보자.


오프라는 빈곤한 가정 100곳을 선정해서 그들을 노동현장에 재투입시키고 정상적인 가정생활을 꾸려가도록 돕기 위해서 정부와 기업에서 자금을 후원받았다. 또 자선단체, 텔레비전, 시장을 복잡하게 결합시킨 경우도 있었다. 스타벅스는 오프라의 북클럽과 손잡고, 메리 맥개리 모리스의 『일상의 노래(Song in Ordinary Time)』를 1,200곳의 매장에서 쌓아두고 팔았다.


스타벅스의 슐츠 회장은 오프라 북클럽에 선정된 책을 팔아 얻은 수익금을 미국에서 문맹을 퇴치하는 기구에 기부할 것이라고 밝혔다. 자선행위가 판매를 신장시키는 데 도움을 주고 선전효과와 이미지 제고라는 잉여가치를 가지므로 오프라는 자선행위를 더 자주 베풀 수 있게 된다. 이런 이유에서 기업행위와 자선행위는 자유롭게 결합된다.


오프라는 애타정신과 자선을 세 차원에서 행사한다. 거시적 차원과 개인적 차원 그리고 텔레비전이 임의적으로 만들어내는 공동체이다. 예컨대 엔젤 네트워크는 가난한 사람들을 돕고 장학금을 수여하며, 오프라가 내놓은 옷을 경매에 붙여 얻은 수익을 자선단체에 기부하고, 장애인 아이들에게 생일 선물을 하라고 주변 사람들에게 독려한다. 그래서 오프라의 자선행위는 널리 알려지고 전설이 된다.


오프라는 전국적으로 혹은 지역적으로 자선행위와 자기역량 강화를 위한 노력을 기울임으로써 시민사회에서 공동의 협력 행위를 유도하고 만들어가고 있다. 오프라는 자신을 표본으로 제시하고 텔레비전을 가정에 접목시킴으로써, 자선행위와 경제적 이익을 결합시키고 텔레비전과 출판산업과 웹을 한 덩어리로 묶어 공동체를 만들어냄으로써 시청자들에게 실천을 요구할 수 있었다.


오프라는 시민 사회에서 널리 확산되는 형태의 행동, 즉 기존질서 내에서 거짓 의식이나 타협하는 의식의 형태로는 이루어낼 수 없는 행동을 장려하는 듯하다. 사회를 변화시키고 개량시키며 고통을 완화시키려는 욕망은 도덕적 삶의 전제조건이고, 그 욕망이 상업 텔레비전의 후원으로 실현될 때에는 쉽게 포기될 수 없다.


오프라는 자기개선과 자제, 연대의식, 해방, 평등을 끊임없이 강조하면서 미국 사회의 핵심적 도덕을 다루었기 때문에 문화분석에 중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오프라가 개인의 선택과 자수성가하는 삶을 강조하면서 자본주의의 이데올로기를 긍정하고 있지만 오프라의 생각이 곧 자본주의 이데올로기라고 할 수는 없다. 오프라 윈프리와 그녀의 자기계발정신은 미국 시민사회의 근본적인 윤리의식을 포착하고 있어, 그녀의 쇼까지 합리화시키고 있다.



오프라 윈프리의 힘은 어디에서 출발하는가

희생당한 집단의 일상

벨 훅스가 지적한 대로 "여성이 성차별적 억압에 대부분 희생당한 집단"이라면, 흑인 여성은 과거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가장 억압당하고 있는 집단이다. 억압의 두 형태, 정치적 억압과 가정의 억압은 정체성과 자신에 대한 믿음을 발달시킬 가능성에 악영향을 미친다. 이 때문에 백인 여성에 비해 흑인 여성이 자신의 외모를 싫어하는 편이다. 여기에는 백인을 기분으로 한 아름다움의 기준이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피부색, 머리카락의 결, 이목구비를 조직적으로 지워버리거나 폄훼해온 것도 큰 몫을 차지한다.


몸은 자기인식에서 근원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에, 검은 머리카락과 검은 피부가 아름답게 여겨지지 않는 문화에서 산다는 것은 정체성과 자긍심의 확립에 큰 위협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흑인의 외모에 대한 백인 문화의 조직적인 공격에서, 오프라가 자신의 외모를 바꾸려고 노력한 이유만이 아니라 토크쇼에서 육체와 정신의 변화라는 주제를 집요하게 다룬 이유를 해석하는 중요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흑인 여성의 정체성에 대한 공격은 외모에만 국한되지 않고, 사회적 실존을 위한 다른 면과도 관계가 있다. 도시거주 지역의 차별, 노동의 차별, 빈곤 등이 복합된 결과로 아프리카계 미국인 공동체는 온갖 사회적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다.


만성적 실업, 열악한 주거 조건, 정신질환, 학대. 대체로 아프리카계 미국인은 경제와 문화의 생산에서 주류에서 벗어나 소외당하고 있고, 특히 여성은 일상의 삶에서도 구조적으로 학대받고 있기 때문에 심리적 장애가 흑인 남성보다 흑인 여성에게 더 빈번하게 발생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현대 사회는 그야말로 온갖 형태의 고통에 짓눌려 있다. 그런 고통은 자본주의에 의해 삶이 전격적으로 와해된 탓이지 경제적인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그런 고통은 독립적이고 가치 있는 자아를 구축하는 능력과 관계가 있기 때문에 심리적인 문제라 할 수 있다.


실제로 산업자본주의와 후기 산업자본주의의 주된 차이는 다른 식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즉, 산업자본주의는 경제적 고통을 크게 양산해낸 반면, 후기 산업자본주의는 우리에게 물질적 풍요를 주었지만 온갖 형태의 심리적 고통을 안겨주면서 자아의 도덕적이고 정신적인 근거를 심각하게 위협하고 훼손시켰다.


남성에 비해 여성이 모순된 역할을 더 많이 강요받기 때문에, 또한 가부장제도가 여전히 여성의 사회적, 경제적, 도덕적 근거를 억압하기 때문에 여성이 남성에 비해 심리적 장애의 피해자가 될 가능성이 훨씬 높다. 다른 어떤 문화적 명사보다 오프라는 여성이 정체성을 구축하고 문화의 재생산에 참여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는 현실을 솔직히 인정하는 편이다.



오프라를 제대로 비판하라

오프라의 도덕적 상상력에 대한 비판

오프라 윈프리는 치유자의 역할을 자임하며, 다양한 형태의 고통이 제기한 의미의 위기를 다루면서, 자기변화를 위한 기법과 자기계발 이야기를 제시해주었다. 오프라가 고통을 대중화시킨다고 비판받으면서도 자기계발을 독려한다는 점에서 칭찬받지만, 내 생각에는 오프라의 자기계발을 위한 문화적 행위가 실제로는 가장 큰 문제인 듯하다.


자기계발을 요구하는 치유가 고통을 긍정적 사건으로 변모시키기 때문에도, 자기계발을 이용해서 모든 고통을 해결하려는 시도는 부적절할 수 있다. 고통은 긍정적인 가치를 갖는다. 오프라의 진언(眞言) 중 하나가 바로 그것이다. 그녀의 쇼, 웹사이트, 잡지에서 끊임없이 반복해서 말하는 것도 바로 그것이다. "잘못되는 것은 없다. 교훈만이 있을 뿐이다."


고통을 자기변화와 자기학습이란 승리의 이야기로 재순환시키는 데 오프라 윈프리가 도덕적으로 실패했다고 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모든 고통이 적절하게 가공되면 긍정적인 가치를 갖는다는 그녀의 입장은 고통을 유용한 경험으로 둔갑시키기 때문이다. 고통이 정말로 교훈과 도덕적 지식의 근원이라면 당연히 교육적 지침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이런 입장은 우리 도덕 세계의 수많은 전제들과 충돌한다. 둘째, 오프라의 자기계발정신은 논리적으로나 감정적으로 분리되어야 할 두 경험, 즉 고통의 경험과 긍정적 학습, 변화, 개선의 경험을 뒤섞어버린다는 점에서 거짓이다. 또한 고통이 자기계발을 촉진하기 때문에 긍정적 가치를 갖는 것처럼 말함으로써, 오프라는 여성 조건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감정과 도덕의 혼돈을 영속화시키고, 여성에게 고통에서 삶의 이야기를 다시 쓰고 도덕적 강인함과 자율성을 요구할 가능성을 찾으라고 부추긴다.


그러나 더 꺼림칙한 문제가 있다. 오프라가 자주 말하듯이 실패한 삶이 실패한 자아를 가리킨다면, 그리고 강한 자아는 의지와 치유의 힘으로 언제나 실패를 이겨낼 수 있다면 우리의 불행에 대해 책임질 사람은 결국 우리 자신뿐이다. 따라서 우리가 불행을 자기변화의 긍정적 이야기로 재활용하지 못한다면 죄의식에 시달리고 불완전한 존재라는 자책감에 휩싸이기 십상이다. 결국 자아가 자신의 불행을 모두 짊어지고, 게다가 그 불행을 극복하기 위한 의미 있는 이야기까지 만들어내야 한다. 그렇게 하지 못하더라도 자아는 자신의 불행을 은밀히 즐기거나 바란다는 의심을 받는다.


자기계발정신이 모든 형태의 도덕적 딜레마와 고통을 동일한 감정적 명령, 즉 고통을 학습과 개선의 기회로 바꾸라는 명령으로 환원시키기 때문에 자기계발정신은 고통을 식상하게 만들고 모든 고통을 똑같이 취급하면서 각각의 이야기에 담긴 개성을 없애버린다. 또한 도덕적 삶을 진실로 매력 있게 만드는 딜레마를 무시하게 만들기도 한다.


결국 고통을 민주화시키려는 오프라의 행위는 호소력이 떨어지지만 그 이유는 다른 데 있다. 즉, 오프라의 토크쇼가 관음증을 자극하고 감정적이며 고통을 상품화시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고통의 현상성을 부인하며 힘겨운 불행의 불안한 모습을 정복된 고통으로 기계적으로 뒤바꿔버리려고 하는 데 있다. 따라서 얄궂은 일이지만 고통의 대중화가 갖는 의미를 훼손시키는 근본 요인은 바로 자기계발정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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