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의 종말, 세계의 탄생

   
에르베 켐프(역자: 권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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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포리아
   
15000
2013�� 04��



■ 책 소개
이 책은 탈성장 시대에접어든 세계를 돌아보고 선택과 해법을 제시한다. 저자는 과거의 수익이 더 이상 기능하지 않게 될 것이고, 성장은 되돌아오지 않으며, 에너지가격과 생태학적 손실은 결국 경제 주조를 바꿀 것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미래를 밝히기 위해 인류 역사의 뿌리를 굽어보며, 현재를 명쾌하게 진단하고, 붕괴해가는 사회를 재건할 수 있는생각과 수단을 진지함과 분노와 희망으로 그려내고 있다.

■ 저자 에르베 켐프
프랑스 최고의 지식인이자 가장 유력한 저널리스트. 경제 불평등,국제 분쟁, 생태 분야의 전문가로 1992년부터 1995년까지 국제시사 전문지 「쿠리에 앵테르나시오날」에서 과학 분야를, 1995부터1998년에는 과학 전문지 「라 르셰르슈」에서 기술 및 환경 분야를 담당했다. 1998년부터는 프랑스의 대표적인 일간지인 「르몽드」에서활동했으며, 그의 대표적인 저서 『부자들이 지구를 어떻게 망쳤나』의 성공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2012년에는 대안을 제시하는 기자에게수여하는 ‘희망의 기자상’을 수상했다. 

그밖의 저서로는『소수의 지배는 이제 그만, 민주주의 만세』『지구를 구하려면 자본주의에서 벗어나라!』 등 10여 종이 있다. 
■ 역자 권지현 
한국외국어대학교 통번역대학원한불과를 나온 뒤 파리 통번역대학원(ESIT) 번역부 특별과정과 박사과정을 마쳤으며 현재 이화여자대학교 통번역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다.옮긴 책으로 『꼬마 탐정 미레트 ② 런던의 괴물 문어』『꼬마 탐정 미레트 ③ 바르셀로나의 황금 축구화』『직업 옆에 직업 옆에 직업』『글쓰기가재미있는 글쓰기 책』『판타스틱 행복백서』『나의 큰 나무』『아이 마음속으로』『르몽드 세계사』『2033 미래 세계사』『길 모퉁이 카페』『내 어머니의모든 것』 등이 있다. 

■차례
1. 무한한 대지 위에 맨발로 서서

2. 엄청난 격차, 대분기
여러 세계 중 하나였던 유럽 | 유럽인들은 왜 세계를 뒤흔들었을까? | 놀라운 발전 |비정상적으로 벌어지는 격차

3. 위험한 추종,대수렴
도약과 추격 | 상상과 모방 | 불평등이라는 독

4. 탈성장 시대
로스토의 마법의 세계 | 성장의 피로 | 비싼 에너지 | 자원 소모를 바탕으로 한 성장 | 환경의벽 | 갑작스러운 성장은 스스로 멈춘다 | 탈성장 시대와 서양의 빈곤화 |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소비수준은얼마인가?

5. 경제 위기의 본질
서양의 빈곤화 |위기는 어떻게 닥쳤나 | 경제 위기의 역사적 원인

6.자본의 덫에 걸린 정책
쇼크 독트린(Shock Doctrine) | 자본주의의 ‘바이오경제’적 변화 | 생태 공간을 위한 투쟁 | 신흥국의불평등과 소수 지배 체제 | 폭력 사용 | 함정에 빠진 서양의 좌파

7. 변화의 길
물질 소유에서 행복으로 | 탈자본주의의 세 가지 축 | 실업을 폐지하라 | 수백만의 일자리를 창출할농업 | 검소함을 위한 고용 | 유형재산의 분배에서 풍부한 공공재산으로 | GDP를 포기하라 | 과학이 인류에게 다시 봉사하도록 하자 | 문화전쟁 | 남반구 국가들의 변화

8. 공동의 운명 앞에 선세계, 미래는 가장 큰 조언자
주고받기의 약속 | 지정학의 새로운 룰 | 보편적 가치 | 새로운 지정학의 중심 | 유럽의 아름다운 미래 |미국의 약화 혹은 대혼란 | 미친 사람들이 개의치 않는 것





서구의 종말, 세계의 탄생


위험한 추종, 대수렴

도약과 추격

19세기와 20세기 후반까지 서유럽과 북아메리카, 일본, 러시아는 힘찬 경제성장을 거두었고 그 덕분에 세계 리더의 자리에 올랐다. 나머지 나라들은 갑작스러운 변화를 지켜보는 구경꾼일 뿐이었다. 1950년부터 20년 이상 선진국 경제는 매년 5퍼센트씩 성장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다른 나라들도 빠르게 성장하기 시작했다. 라틴아메리카와 막 독립을 쟁취한 아프리카 신생국들이 선진국과 동일한 속도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1980년대에는 큰 변화가 일어난다. 아프리카 경제는 늪에 빠지고 라틴아메리카 경제는 서양과 일본처럼 침체되었다. 반면 중국과 인도는 성장 경쟁에 뛰어들기 시작했다. 양국의 경제성장률은 크게 신장되었고 때로는 10퍼센트를 훌쩍 뛰어넘기도 했다. 그러자 주변 국가와 원자재를 공급하는 나라도 덩달아 빠른 경제성장의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들기 시작했다. 1992년부터 2010년까지 세계 GDP는 75퍼센트나 성장했다. 거기에 가장 많은 기여를 한 국가는 우리가 신흥국이라고 부르는 나라들이다. 반면 선진국의 경제성장률은 크게 위축되었다.


세계 경제는 다시 균형을 잡기 시작했다. 서양과 일본이 세계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10년에 50퍼센트 밑으로 떨어졌다. 아시아(일본 제외)가 세계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950년에 15퍼센트를 넘지 못했지만 2010년에는 30퍼센트에 근접했다.


신석기 시대가 끝나면서 시작되었던 대분기는 이제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대분기와는 반대 방향의 현상이 일어난다. 벌어진 격차를 좁히는 대수렴이 시작된 것이다. 200~300년 동안 지속된 유럽의 독주가 끝난 뒤 역사의 물결은 정상적인 흐름을 되찾았고 서양의 패권은 해체되었다.


인류의 행보에서 그 기간이 차지하는 비중은 아주 적다. 7만 년 역사에서 기껏해야 300년이 될까 말까 하고, 호모 사피엔스 시절까지 합치면 1,000분의 1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것은 찬란하고 결정적인 시기였다. 서양은 세계를 변화시킨 뒤 제자리로 돌아갔다.



탈성장 시대

갑작스러운 성장은 스스로 멈춘다

신흥국이 빠른 속도로 계속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은 있을까? 그것이 있을 법한 일인가? 서양은 유럽의 금융 위기 이후 정체되어 있다. 그러나 신흥국의 경제성장도 두드러지게 완화되고 있다. 신흥국도 에너지와 원자재 가격 상승과 최대 시장인 선진국의 침체로 타격을 받았다. 환경 파괴가 지속되는 것도 후진국의 희망에 먹구름을 드리운다.


한 번도 사라진 적이 없었던 식량 문제도 늘 걱정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인구가 증가해서 가용 농지 면적이 줄어든 것이다. 특히 중국과 인도에서는 경작지가 부족해서 식량의 해외 의존도가 계속 높아지고 있는 실정이다. 중국의 농지는 1억 3,000만 헥타르가 넘지 않으며 그중 100만 헥타르가 해마다 사라진다. 도시화와 중국 북부의 사막화가 원인이다. 인도에서는 비교적 인구밀도가 낮은 동부 지역이 문제다. 낙살라이트 운동이 시작된 이곳에서는 농민과 정부가 무력 충돌을 일으키고 있다. 한편 중국 지도자들은 중국 역사상 가장 극심했던 민중 봉기가 식량 위기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유념하고 있다.


두 아시아 대국의 식량 사정을 악화시키는 골칫거리는 그뿐만이 아니다. 물자원에 대한 긴장이 확대되면서 농업 생산이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아프리카는 상황이 좀 달라서 식량 문제가 중국이나 인도보다는 심각하지 않다. 아프리카의 인구는 2050년까지 50퍼센트 이상 증가해서 약 15억 명에 달할 것이다.


생물다양성이 빠르게 감소하는 데에 따른 영향은 쉽게 눈에 띄지 않는다. 인류에게 가장 큰 위협이 되는 것은 동물 혹은 식물 전염병이 빠르게 확산되어 농업 생산이 줄어들고 더 나아가 인류의 사망률이 높아지는 것이다.


해수면 상승은 인구밀도가 가장 높은 도시가 몰려 있는 연안 지역 국가에게 가장 큰 골칫거리이다. 기니 만의 아비장에서 라고스까지 거의 하나로 연결된 도시 지역에서는 2,500만 명의 주민이 바다를 앞에 두고 작은 모래언덕 하나에 의지한 채 살고 있다. 2050년 해수면이 지금보다 0.5미터 상승할 방글라데시도 국토 11퍼센트를 상실할 것이고 1,500만의 이재민을 양산할 것이다. 이집트에서도 해수면 상승 때문에 1,400만 명이 다른 지역으로 이주할 것이고, 나일 강의 염도 상승으로 관개 경작지가 감소할 것이다.


기후변화가 물의 순환, 가뭄과 홍수의 증가, 태풍의 강도 증가에 영향을 미쳐 많은 제약을 낳게 되면 수많은 나라들이 삶의 조건을 개선하려고 노력하기보다는 어쩔 수 없이 방어하거나 적응해나갈 수밖에 없게 될 것이다. 2040년이면 아시아와 북아프리카의 기온이 2도 상승할 것이라는 연구 결과도 있다.


지구 생태계의 오염 속도가 빨라지면 가장 가난한 나라들은 더 큰 부담을 갖게 된다. 기후변화의 영향에 가장 많이 노출되어 있으면서도 그에 대비할 방법은 하나도 마련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빈곤 감소와 수명 연장이라는 50년 동안 진행될 긍정적인 변화가 물거품이 될 위험에 처했다.


탈성장 시대와 서양의 빈곤화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세계 경제성장―전통적 의미의 성장―은 크게 줄어들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보면, 선진국의 성장이 멈추거나 아니면 반대로 신흥국과 후진국의 성장이 침체되거나 아예 멈출 것이다.


그러한 변화를 상전이(相轉移)라는 개념을 이용해서 전망해보면 좋을 것이다. 물리학자들이 말하는 상전이란 외부 변수가 변해서 발생하는 시스템의 변환이다. 외부 변수가 일정 수준에 이르면 시스템의 상이 변한다. 달라진 시스템은 예전의 법칙과는 달라진 법칙을 준수해야 한다.


상전이는 우리 시대에 꼭 들어맞는 개념이다. 피크오일이 바로 상전이에 해당된다. 석유 시대, 값싼 에너지 시대는 갔다. 기후도 상전이 단계에 접어들었다. 온실가스가 증가하면서 대기의 상태는 1만 년 전과는 확연히 달라졌다. 아마존 밀림에서 대양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활동으로 균형을 잃은 지구의 거대 생태계들도 상전이를 일으키기 시작한 것 같다. 이러한 현상들은 경제 분야로 확산되고 있으며 경제 자체도 상전이 단계에 접어들었다.


신석기 시대 이후의 경제사도 그러한 방향으로 이해할 수 있다. 19세기 초 발생한 산업혁명은 급격한 상전이였다. 그때부터 서양은 성장을 거듭하며(연간 1.5~2퍼센트 성장) 세상을 새로운 에너지와 기술 체계로 나아가게 했다. 1929년과 1945년에 발생한 심각한 경제 위기와 대규모 전쟁으로 세계는 강한 충격을 받았다. 그 이후에는 빠른 성장(연간 3.5퍼센트)을 보이며 서양 국가가 먼저 발돋움하고 신흥국이 그 뒤를 이었다.


오늘날 우리는 새로운 상전이 단계에 들어섰다. 인구 성장률보다 조금 높거나 낮은 경제성장 단계에 접어든 것이다. 세계 경제성장률은 연간 1.2퍼센트에 그친다.


그렇다면 현 시대가 겪고 있는 두 가지 중대한 역사적 현상의 결합, 다시 말해서 생활수준의 세계적 수렴 현상과 생물권의 한계점 도달은 무엇을 의미할까? 우리가 손을 놓고 있으면 세계 불평등, 자원 경쟁, 환경 악화로 인해 대규모 분쟁이 발생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상전이가 평화적으로 진행되리라고 전망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렇다면 대수렴이란 세계의 평균적인 수비수준이 선진국 수준보다 낮아야 하고 또 낮아질 것임을 의미한다. 따라서 선진국의 평균적인 소비수준도 낮아져야 하고 또 그렇게 될 것이다. 선진국 국민은 에너지와 물질 소비를 줄여야 하고 또 줄이게 될 것이다.



자본의 덫에 걸린 정책

쇼크 독트린(Shock Doctrine)

2007년 시작된 서양인의 생활수준 하락은 가장 바람직하지 않은 방식으로 전개되었다. 모든 부담을 빈곤층과 중산층이 지게 된 것이다. 그것은 우연도 아니었고 운명도 아니었다. 고의적인 선택의 결과였다.


나오미 클레인이 『쇼크 독트린』에서 증명해 보였듯이 사회가 흔들리는 위기 상황에서 자본주의는 사회의 악을 고치려 들지 않는다. 오히려 구성원이 처해 있는 어려운 상황을 이용해서 전면적인 경제 자유화라는 이데올로기를 철저히 적용하려고 한다. 금융 위기가 최고조에 달했을 때 IMF가 취했던 입장도 그랬다. "시장의 압력은 다른 방법이 실패한 지점에서 성공을 부를지도 모른다. 시장이 열악한 상황에 처했을 때 정부가 그 기회를 잡아서 어렵다고 여겼던 개혁을 단행한 나라가 많다."


어렵다고 여겼던 개혁은 무엇일까? 국민이 반대해서 어렵다는 것일까? 우선 노동시장의 자유화로 고용주가 아무런 제약 없이 고용과 해고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사회 연대를 보장하는 도구였던 사회보장제도와 연금제도가 개인 건강보험과 연금저축을 운영하는 연기금으로 대체되었다. 마지막으로 자본주의자들은 공기업(아직 남아 있거나 한다면)의 민영화를 원한다.


2010년대로 넘어오는 전환기에서 그리스는 쇼크 독트린의 가장 충격적인 실험 무대가 되었다. 정도는 다를지언정 포르투갈, 에스파냐, 이탈리아, 영국에서도 실험이 진행 중이다. 동기는 똑같다. 막대한 공공 지출을 감당하기 위해 국가가 진 과도한 부채를 상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공공 지출이 지나치게 많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OECD 회원국의 공공부채는 경제 위기가 시작되었을 때 은행을 구제하고 경제를 활성화하는 데 쓰이면서 증가했다. 또 경제성장을 위해 정부가 지난 몇 십 년 동안 고의적으로 공공 지출을 늘린 탓도 있다.


그래서 가장 취약한 국가에 대출을 다시 해준다. 과거에 진 부채중 일부를 대출 장부에서 지워주는 셈이다. 대출을 해주는 기구인 IMF, 유럽중앙은행, EU집행위원회는 그 대신 해당 정부에게 공공지출을 크게 줄일 것을 요구한다. 특히 보건 지출 감소, 임금 삭감, 민영화를 요구한다. 민영화는 전기, 물, 교통, 항만, 항공 등 모든 분야에서 헐값에 이루어지도록 한다.


같은 정책이 적용된 영국의 일부 주는 범죄 수사, 죄수 이송, 지역 순찰 등 경찰 업무까지 민영화하려고 나섰다.


자유화와 민영화 논리가 환경에 적용되는 것은 그냥 지나칠 일이 아니다. 대출 기구의 권고 사항을 따른 그리스는 환경 예산을 없애버렸다. 그러자 규정을 어긴 건축물이 합법적으로 승인을 받고 자연 지구를 보호하는 규정들이 완화되는가 하면 공유지는 구매자 찾기에 나섰다. 이제 그리스는 2만 헥타르에 달하는 땅에 거대한 태양열 발전소를 건설할 계획을 세우는 등 에너지를 위한 토지 개발을 시작했다. 태양열 발전소에서 생산된 전기는 독일로 수출될 예정이다.


경제는 성장을 할 때도 환경을 파괴하지만 위기에 처했을 때에도 환경을 파괴한다.



변화의 길

물질 소유에서 행복으로

서양에서 소비가 줄어드는 것은 바람직하기도 하지만 피할 수 없는 현상이기도 하다. 풍요로운 사회에서 행복감이 줄어들지 않고도 소비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이 문제는 정치적 문제를 수면 위로 다시 떠오르게 한다. 이제는 풍요와 성장이 약속한 무한한 부를 어떻게 나누느냐가 관건이 아니라 검소함을 조직화하는 것이 문제다. 그런 획기적인 변화는 소비사회의 지배적인 문화와는 정면으로 충돌하는 것이어서 반대에 부딪히지 않을 가능성은 적다.


지도 계층은 100퍼센트 기술에 의존한 쇼크 독트린의 길로 들어섰다. 그러나 대안은 가능하다. 전체의 이익을 고려하고 새롭게 인식된 공공재에 대한 접근성을 향상시켜서 물질로부터 얻는 만족감의 상실을 상쇄해야 한다.


그것은 좌파에게 어려운 선택이다. 서양 국가의 모든 국민처럼 좌파 역시 수십 년 동안 집단의식을 만들어 온 프로파간다와 30년 동안 경쟁 상대 하나 없이 세상을 지배한 자본주의가 심화시킨 개인주의에 물들어 있기 때문이다. 소비사회의 모든 구성원과 마찬가지로 좌파도 삶의 조건 향상과 사용 가능한 재화의 증가를 구분할 줄 모르게 되었다.


좌파는 과두 지배 계층의 존속과 환경 정책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보수주의자들은 은연중에 최악의 상황은 아직 닥치지 않았다 그럭저럭 시스템은 굴러간다는 논리를 내놓는다. 한편 환경주의자들은 인류가 임계점에 가까이 다가가고 있고, 그 선을 넘으면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린란드 빙모가 녹기 시작했다 해수면이 몇 미터씩 올라갈 것이다라는 식이다. 그들의 맹점은 임계점이 정확히 언제 닥칠지 답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좌파는 일어날 수 있는 결과가 워낙 심각하기 때문에 한시도 지체해서는 안 된다. 두 입장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이것이 오로지 좌파와 관련된 문제인가? 공공의 이익과 인류의 평화적인 미래를 꿈꾸는 자, 기존의 정치적 전통과 뜻을 같이 하지 않는 자 모두가 나서야 하는 것은 아닐까? 사실 상관은 없다. 사회정의를 행동의 중심으로 삼고, 그것을 그들이 꿈꾸는 평화로운 세상의 중심에 놓는 사람들이 서로를 인정하고 함께 일하면 되는 것이다. 세계의 불평등은 끝없이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선진국의 소비를 참고 견디기보다는 줄여나가는 길을 선택해야 한다.



공동의 운명 앞에 선 세계, 미래는 가장 큰 조언자

주고받기의 약속

우리는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하나의 사회를 형성하고 있다. 그리고 컴퓨터 통신, 여행, 텔레비전, 무역으로 단일화된 문화를 가졌다. 우리가 환경 위기라는 하나의 정치적 문제로 결합된 것도 처음이다.


인류가 하나의 사회를 형성한다는 아이디어는 역사가 있다. 그 전환기는 인류가 우주에서 지구의 모습을 보았던 1960년대에 시작되었다. 그 모습은 마치 마법처럼 사람들에게 지구의 아름다움을, 지구가 품고 있는 생명이라는 기적을, 지구가 우주에서 차지하고 있는 평범하면서도 특별한 자리를 깨닫게 했다. 그렇다. 인간의 지구는 아름답고 소중하다.


그와 동시에 사람들은 지구가 나약하다는 것을, 혹은 인간의 행동이 지구의 놀라운 조절 능력을 혼란에 빠뜨릴 수 있다는 것도 깨달았다. 그리고 결국 그것 때문에 장기적으로는 인간의 모험이 지속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을 파악했다.


아이디어가 순간적으로 떠오른 것은 아니었다. 수십 년의 시간이 걸렸다. 1970년대 오일쇼크로 유발된 서양의 위기는 환경에 대한 경고가 내려진 뒤에 발생한 에너지 위기였다. 그러나 환경 문제는 제3세계라고 불리던 지역에서는 그리 심각하지 않았다. 반면 2007년 시작된 경제 위기는 환경 위기의 세계화를 보여주었다. 환경 위기의 신호는 세계 곳곳에서 감지된다. 경제 불균형과 환경 위기의 관계를 더 이상 무시할 수는 없다. 환경은 더 이상 백인들이 짊어져야 할 짐이나 부자들의 걱정거리가 아니다. 그것은 모두가 나서야 할 문제가 되었다.


지구에 사는 사람들은 서로의 차이를 넘어서서 공동의 문화를 가꾸었다. 그 문화는 물론 서로에 대한 지식과 표상의 공유를 통해 만들어졌지만 무엇보다도 모두에게 영향을 미칠 환경 위기에 대한 인식에서 비롯되었다.


환경 위기의 신호는 21세기 초입에 실질적으로 뒤흔들리기 시작한 평화다. 21세기의 상황은 20세기의 무자비한 폭력과는 다르다. 20세기의 폭력은 신석기 시대를 이룩해낸 1만 년 동안의 느린 진보 이후 산업혁명이 낳은 새로운 힘이 고삐가 풀려 분출된 결과였다. 히로시마 원자 폭탄에 경악한 인류는 공격성을 잠재웠다. 그리고 생산과 무역, 부의 축적에 에너지를 쏟아 붓기 시작했다. 그러나 인간과 인간 사이의 평화는 결국 자연으로 폭력이 우회되는 결과를 낳았다.


우리는 변해야 한다. 생태계에 행사했던 무자비한 폭력이 쌓여 그 살인적인 힘이 인류에게 가차 없이 행사되기 전에 말이다.


기후변화 예방, 전염병 차단, 천연자원의 합리적인 개발 등 모든 것들이 인류에게 본능적인 경쟁 심리와 지금까지 쌓인 분노, 대대로 전해 내려온 불신들을 벗어던지고 다 같이 하나가 되어 이성적으로 판단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성은 연대의 경험으로 탈바꿈되어야 한다. 그것은 세계의 문화가 될 것이다. 그 어떤 문화도 빈곤하게 만들지 않고 모든 문화가 풍요로워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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