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하는 냉장고

   
KBS <과학카페> 냉장고 제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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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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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11��



■ 책 소개
인간에게는 얼마나 큰냉장고가 필요할까? 

『욕망하는 냉장고』는 냉장고에보관되는 음식에 관련된 이야기 외에도 건강, 질병, 과학기술, 경제적인 가치, 전 지구를 지배하는 시스템의 문제, 현대인의 욕망과 습관, 그습관과 시스템에 대한 반성의 움직임까지 담은 책이다. 

냉장고는 어떻게 태어나고 우리 곁에 왔는지, 지금 인간의 삶에 어떤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지, 각각의 개인에게는 어떤 존재로머물고 있는지, 미래를 위해 진짜 가치 있는 냉장고는 어떤 형태여야 하는지 ‘냉장고에 대한 문화인류학’을 담았다.

■ 저자 KBS <과학카페&&냉장고 제작팀 
김은주 PD 
1995년 KBS에 입사해, <환경스페셜&&, 등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연출했고 현재 <과학스페셜&& 프로그램을 제작 중이다. 

최희주 
방송작가. <추적 60분&&, <특종 비디오 저널&&, <문화지대&&,<과학카페&& 등의 프로그램에서 구성 및 글을 썼다. 

김경미 
방송작가. <과학카페&&, <스타 인생극장&& 프로그램을 거쳐 현재 <과학스페셜&&의작가로 몸담고 있다. 

■차례
프롤로그 냉장고를 따라 떠난 흥미로운 여행 

1장 냉장고, 시대를 반영하다 
어느 냉장고의 독백│거대 냉장고 전성시대│자꾸만 덩치가 커지는이유│대형할인점과 냉장고의 관계│냉장고 음식만으로 살아보기 프로젝트 

2장 사치품에서 필수 가전제품으로 
나이지리아 겹 항아리│경주 석빙고│최초의 현대식냉장고│최초의 국산 냉장고 GR-120│한국인의 위암 사망률을 낮추다 

3장 변종 대장균 공포 
냉장고 균 VS 화장실 균│채소로부터 시작된 식중독 사건│장출혈성대장균 O-104:H4│최초의 사례자│새로운 매개체│마지막 퍼즐 조각│무서운 씨앗│그날 이후│농산물 검역의 한계│믿을 수 없는 유기농 식품

4장 푸드 마일
이제는 흔해진 열대과일│컨테이너의 비밀│안전한 먹을거리를 찾아서│세계 최대, 한국의 푸드 마일

5장 생산자와 소비자가 만나다
꾸러미를 운영하는 솔뫼 공동체│원주천의 농산물 직거래 장터│제철을 요리하는 레스토랑 

6장 뉴욕의 로컬 푸드 
저가의 중국산 농산물│로컬 푸드레스토랑, 마시│100마일 다이어트│지역 농장 살리기│정책적으로 정비해야 할 것들│하나의 추세가 되다 

7장 반소비주의를 향한 외침 
쓰레기를 먹는 사람들,프리건│잘못된 시스템에 대한 대안│마치 원시시대의 식사처럼│노 임팩트맨 

8장 변화를 담는 냉장고 
음식 재료에게 질문을 건네다│냉장고를 찍는사진작가│현실을 비추는 냉장고│냉장고 없이 살 수 있을까? 

9장 새로운 트렌드, 채집 
함께 걷고 맛보는 채집 여행│제주도 야생초로 차린 한 상│해녀에게배운 자연산의 맛 

에필로그 우리가 냉장고에 채워야 할것들 

 





욕망하는 냉장고


냉장고, 시대를 반영하다

자꾸만 덩치가 커지는 이유

경기도 남양주시에 있는 삼성전자의 물류 창고. 주문이 마감된 수백 대의 냉장고가 서울 지역으로 배달되기 위해 대기 중이다. 95퍼센트 이상이 양문형 대용량 냉장고다. 취재가 한창이던 2011년 여름, 이 회사는 경쟁 업체보다 10리터 큰 860리터급 냉장고를 막 출시한 상태였다. 배달을 나가는 860리터 양문형 냉장고의 뒤를 쫓아가보기로 했다.


180센티미터에 가까운 높이, 거의 1미터가 다 돼가는 두께를 가진 냉장고는 장정 두 명이 붙어서 옮기기에도 벅차 보였다. 냉장고는 아파트에서 쓰는 8인용 엘리베이터에 꽉 끼듯이 들어갔다. 목적지는 100제곱미터 남짓한 중소형 아파트. 본체와 문짝, 뚜껑을 따로 떼서 부피를 줄인 상태였지만 그래도 본체가 집으로 들어갈 때는 과연 현관문을 무사히 통과할 수 있을지 마음을 졸이며 지켜봐야 했다.


드디어 주방에 도착. 원래 580리터 냉장고가 놓여 있었다는 자리는 860리터 냉장고가 들어가기에는 조금 좁아 보였다. 다행히 폭은 딱 끼듯이 맞았지만 두께가 두꺼워 앞으로 한 뼘도 넘게 튀어나왔다. 냉장고가 어디에 걸리지나 않을까 시종일관 조마조마해하며 지켜보던 집주인은 가까스로 자리 잡은 냉장고를 무척 만족스런 눈길로 바라보았다.


580리터 냉장고를 12년 이상 써왔다는 주부는 식구가 넷으로 늘고 살림도 커지면서 작은 냉장고가 늘 아쉬웠다고 했다. 그래서 이번에 큰마음 먹고 최대 용량을 선택한 것이다. 그녀는 왜 냉장고가 작다고 생각하게 됐을까?


“벌써 이웃들로부터 대형할인점에 가자는 연락을 받았어요. 그런 데 가면 큰 묶음으로 팔거든요. 냉장고가 작을 때는 나눠서 가지고 왔는데 이제는 다 채워 넣을 것 같아요. 아이들도 좋아할 것 같고…….”


꼭 아이를 키우는 주부가 아니라도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말에 깊이 공감할 것이다. 산더미처럼 많은 상품을 눈앞에 두고 마음껏 사고 싶지 않은 사람이 흔하겠는가?


냉장고가 자꾸 커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진정 가족이 늘고 살림이 커지기 때문일까? 한 전문가는 오히려 “핵가족화가 진행되면서 가구의 구성원은 줄어들고 혼자 사는 1인 가정이 늘어나고 있는데 냉장고가 대형화 추세에 있다는 것은 기현상 아닌가?”라는 의문을 제기했다. 이쯤 되면 깨달음이 온다. 가족이 늘어난다거나 음식이 너무 많다거나 하는 것은 2차적인 이유다. 자꾸 커지는 진짜 이유는 어찌 보면 참 단순하다. 너무나 많이 팔고 너무나 많이 사들이기 때문이다. 냉장고의 대형화! 그 주된 원인은 대량생산과 대량소비에 있다!



사치품에서 필수 가전제품으로

최초의 현대식 냉장고

현대식 냉장고를 만드는 데 필요한 냉동기술은 산업혁명의 나라 영국에서 개발됐다. 1784년 영국 글래스고 대학의 윌리엄 컬런이 알코올의 일종인 에틸에테르를 반 진공상태에서 기화시켜 냉동시키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당시의 기술은 지금처럼 음식물을 저장하는 데는 크게 못 미쳤다. 그저 얼음덩어리를 만드는 수준이었다.


그 후 90년의 세월이 지난 1834년, 영국의 발명가 제이콥 퍼킨스는 얼음을 인공적으로 만드는 압축기를 개발해 특허출원했다. 퍼킨스는 압축시킨 에테르가 냉각 효과를 내면서 증발했다가 다시 응축되는 원리를 이용했는데, 냉매의 재료만 바뀌었을 뿐 오늘날의 냉장고 냉각 원리는 퍼킨스의 압축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


냉장기술이 개발되고 특허가 출원되는 일이 여러 번 반복됐다. 그렇게 냉장에 대한 경험과 지식이 쌓여가던 1862년, 영국인 제임스 해리슨이 냉장고라 불리는 기계를 만들어 시판했다. 냉장고는 시장에 첫 데뷔를 하자마자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맥주업체와 육가공업체는 당장에 해리슨의 냉장고를 주문하기 시작했다. 당시는 대영제국이 식민지 시장에 세력을 확장하던 시기였다. 신대륙에서 나는 갖가지 음식을 맛보고 싶어하는 구대륙의 욕망이 끓어오르고 있었다. 때마침 시판되는 냉장고는 19세기 중반에 발명된 증기선과 결합하면서 그들의 욕망을 채우기에 충분한 능력을 발휘했다. 아르헨티나의 소고기가 영국으로 팔려나가고 서인도 제도의 바나나가 영국으로 유입돼 주변국으로 수출되는 놀라운 일이 실제로 이루어졌다. 냉장고가 불가능을 가능한 일로 만든 것이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냉장고는 너무 컸고 기술도 안정되지 못했다. 냉매가 유출돼 불이 붙거나 유독성의 냄새를 풍기는 일이 흔했고, 심하게는 폭발까지 하는 사건도 일어났다. 냉장고가 일반 가정으로 파고드는 것은 아직 요원한 일로 보였다.


영국에서 개발된 냉장기술은 미국으로 건너가 빛을 보기 시작했다. 1915년 미국의 알프레도 멜로우즈가 위험하지 않고 크기도 아담한 가정용 냉장고를 만들었다. 이듬해부터는 회사를 설립하고 냉장고를 생산하기 시작했는데, 당시의 냉장고 생산량은 연간 40대가 고작이었다. 그것이 100퍼센트 수작업으로 만들 수 있는 최대의 양이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냉장고는 상류층만 소유할 수 있는 무척이나 귀한 물건이었다.


귀한 사치품에서 가정의 필수품으로, 냉장고 역사의 전환점이 마련된 것은 1918년, 멜로우즈의 기술력을 높이 산 미국의 제너럴 일렉트릭 사가 멜로우즈의 회사를 인수하면서부터다. 냉장고의 대량 생산의 길이 열리면서 너나없이 채소와 신선한 식품을 즐길 수 있는 식생활의 혁명이 시작됐다. 동방의 나라 한국이 미국처럼 냉장고의 혜택을 폭넓게 누리게 된 것은 그로부터 반세기 후의 일이다.



푸드 마일

컨테이너의 비밀<
/P>예전엔 드물었던 이국의 과일들이 어디에나 흔하고 값이 싸진 데에는 거대화의 공식이 숨어 있다. 산지에 있는 거대한 농장들이 대량 생산 방식으로 과일, 채소, 곡물 등의 농작물을 지배한다. 이들 농장의 풍경은 공산품을 대량생산하는 공장과 흡사하다. 이렇게 생산된 농작물을 세계적인 거대 식품 회사들 몇몇이 전 세계로 공급한다. 거대한 독점 구조가 세계의 농산물 시장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 거대화 시스템을 무리 없이 돌아가게 하는 톱니바퀴중 하나가 냉장고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냉장고는 대체 무슨 일을 하는 것일까?


독일의 고속도로에서 만난 트럭들이 짊어진 컨테이너 안에 그 비밀이 숨어 있다. 농산물을 운반하는 컨테이너 안에는 냉각장치가 설치돼 있는 것이다. 즉, 컨테이너는 거대한 냉장고 그 자체다. 컨테이너 냉장고로 음식을 운반하면서부터 더 오래 더 멀리까지 보낼 수 있는 시스템이 완성됐다. 거대한 냉장고가 세계화된 농산물 시장의 시스템을 떠받치고 있는 셈이다.


수출입 물품들이 드나드는 항구에 가보라.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대형 컨테이너들을 볼 수 있다. 컨테이너 안에 든 다양한 수출입 품목 가운데는 채소와 곡물 등의 농작물도 있다. 컨테이너는 배를 통해 먼 거리까지 식품의 운송이 가능하게 했다.


냉장 컨테이너의 역할은 단지 운송거리를 늘이는 데 그치지 않았다. 운송 과정에서 드는 비용을 낮추는 데도 혁혁한 공을 세웠다. 예전에는 물품을 옮겨 싣거나 부리기 위해서 많은 노동력이 필요했다. 사람의 힘으로 물품을 트럭, 바지선, 기차, 화물차에 옮겨 실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부두에서는 일하는 사람들을 거의 볼 수 없다. 오직 대형 크레인만이 컨테이너를 배나 부두로 옮겨 싣는다. 이제는 정예 인력 12명 정도만 있으면 철도 차량 크기의 네모난 컨테이너 6천 개를 화물선으로 실어 나를 수 있다고 한다. 컨테이너 덕분에 화물을 싣고 내리는 일이 수월해졌을 뿐 아니라 거기에 드는 운임 비용도 획기적으로 낮아졌다. 요컨대 냉장 컨테이너라는 대형 냉장고는 먼 나라에서 재배되는 이국의 과일들을 넘치게 가져다 놓을 뿐 아니라 거기에 드는 비용마저 크게 낮추었다.


오늘날 한국에서 저 먼 열대의 농장에서 재배된 바나나를 원하기만 하면 언제나 먹을 수 있게 된 것은 농산물의 대량재배, 거대 식품기업의 독점 구조, 그리고 거대 냉장고. 이 거대한 시스템이 맞물려 돌아가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안전한 먹을거리를 찾아서

이제는 동네의 작은 상점에 가도 저 먼 미국의 과일을 만날 수 있다. 대량재배, 대량생산, 세계화의 바람을 타고 식품의 이동거리는 자꾸만 늘어나고 있다.


미국 시카고의 한 도매시장은 농장에서 식탁까지, 농산물의 이동 거리가 1980년대에 비해 25퍼센트 이상 늘어났다는 통계를 발표했다. 영국 또한 현재 소비되고 있는 먹을거리가 20년 전보다 평균 50퍼센트 더 멀리 이동한다는 통계를 내놨다.


가히 획기적이라 할 만큼 놀라운 변화는 새로운 걱정거리를 낳았다. 미국의 오렌지를 한국의 소비자가 먹으려면 운송 거리만큼 화석 에너지가 소비되고 탄소가 배출된다. 다시 말해 운송 거리가 멀면 멀수록 녹색의 지구를 궁지에 몰리게 하는 꼴이 되는 것이다. 이런 현실을 어떻게 소비자에게 알릴 것인가! 경제적인 가치를 담고 있는 가격과는 달리 환경의 메시지를 담아 농산물의 가치를 표시할 수는 없을까? 이 같은 고민의 결과로 생겨난 새로운 잣대가 ‘푸드 마일’이다.


푸드 마일을 계산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농산물의 무게(운송량)에 운송 거리를 곱하면 된다. 양과 거리를 표시하는 푸드 마일의 단위는 ‘톤킬로미터(t-km), 킬로그램 킬로미터(kg-km)를 사용한다. 푸드 마일은 표시된 숫자만큼 많은 석유가 소모되고, 탄소가 배출됐다는 뜻을 포함한다.


푸드 마일은 영국의 NGO ‘서스테인(Sustain)’이 벌인 시민운동에서 생겨난 개념이다. 영국은 식품 수입률이 높은 나라인데 수입한 농산물에서 안전 사고가 자주 발생하자 되도록 지역에서 생산한 식품을 사서 먹자는 의미로 푸드 마일을 고안한 것이다. 운송 거리가 멀면 어디에서 어떤 과정을 거쳐온 것인지 어떤 문제에 노출된 것인지 알아내기가 어렵다. 즉, 긴 푸드 마일은 그 식품이 안전하지 않았다는 메시지를 포함하고 있는 셈이다.



뉴욕의 로컬 푸드

100마일 다이어트

만약 당신이 오늘부터 로컬 푸드만을 먹겠다고 결심한다면 무엇부터 해야 할까? 먼저 슈퍼에서 먹을거리를 살 때 원산지를 확인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확인하면서 수차례에 걸쳐 좌절을 경험할 것이다. 원산지를 확인하는 것은 내가 즐겨 먹는 커피, 치즈, 올리브유, 밀가루와 콩 등 많은 것이 수입산이라는 것을 알아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원산지 확인을 다 하고 나면 과연 ‘로컬 푸드만으로 살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며 자신이 없어지지만 일단 마음을 다잡는다. 하지만 장을 볼 때마다 결심이 흔들리다가 ‘없던 일로 하고 맘 편이 살자’며 원래의 일상으로 돌아가기 십상이다. 도시에서 로컬 푸드만을 먹으며 살아가기란 웬만한 각오 없이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결심이 흔들리지 않기 위해서는 확고한 의지와 함께 실천을 위한 구체적인 가이드라인과 계획이 서야 한다. 캐나다 밴쿠버에 사는 부부 작가 엘리사와 제임스가 시작한 ‘100마일 다이어트’는 100마일(약 161킬로미터)이라는 수치를 부여해서 다소 모호한 로컬 푸드의 한계를 명확히 했다. 그래서 ‘대체 어디까지가 로컬 푸드란 말인가?’하는 의문을 없애주었다.


100마일 다이어트란 말 그대로 자기 집에서 100마일 이내에 없는 음식은 먹지 않는 것이다. 조건을 제시한 엘리사와 제임스 부부는 100마일 이내에 있는 로컬 푸드를 조사해서 목록을 만든 다음 실제로 1년 동안 철저하게 100마일 다이어트를 실천했다. 그들은 완벽하게 그 기준을 지키며 빵을 비롯한 밀가루 음식을 1년 내내 먹지 않았다. 캐나다 밴쿠버의 100마일 반경 안에는 밀밭이 없기 때문이다. 설탕, 쌀, 맥주, 커피, 초콜릿, 모든 열대 과일을 포기한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부부가 100마일 다이어트 식단을 시작한 지 단 6주 만에 빠진 몸무게의 합이 6.8킬로그램이었다.


엘리사와 제임스 부부의 경험은 책으로 출간됐고 큰 방향을 불러일으켰다. 미국도 100마일 다이어트의 영향권에 들었다. 엘리사와 제임스의 취지와 방식에 크게 공감한 뉴욕 시의 셰릴 네커먼이 2006년 ‘9월 한 달 만이라도 로컬 푸드를 이용하자’는 슬로건으로 100마일 다이어트를 시작한 것이다.


지금 셰릴 네커먼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100마일 다이어트를 실천하고 있을까? 셰릴 네커먼은 뉴욕 주에 있는 한적한 주택가에 살고 있었다. 그녀는 여전히 100마일 다이어트를 실천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9월 한 달만 하려다가 1년 내내, 그러다 지금까지 계속하게 됐다고 했다. 강박적이 되지 않기 위해서 그녀는 80:20의 원칙을 세웠다. 융통성 있게 로컬 푸드는 80%, 나머지 20%는 신경쓰지 않고 먹는다는 자신만의 가이드라인을 만든 것이다.


100마일 다이어트를 하는 그녀의 냉장고에는 무엇이 들어 있을까? 부엌에 서 있는 그리 크지 않은 두 칸짜리 냉장고가 눈에 들어왔다. 안을 보여달라고 하니 셰릴은 스스럼없이 냉장고의 문을 열었다. 그녀의 냉장고는 반쯤 비어 있었다. 가공식품은 없었다. 우유와 치즈, 달걀이 있었고 감자, 상추, 고추, 당근 등의 채소가 많았다. 어디서 사느냐고 물었더니 유제품과 달걀은 농민시장에서, 채소는 텃밭에서 직접 길러 먹는다고 했다. 부엌에 난 창으로 바깥의 텃밭이 보였다. 제로 푸드 마일을 자랑하는 텃밭. 텃밭은 정말이지 여러모로 유익하다.


100마일 다이어트 운동을 시작한 첫해에는 모두 75명이 참가했는데 그 수가 1천 명 이상으로 늘어났다. 그날 셰릴은 100마일 다이어트를 함께하는 이웃 친구들과 점심약속이 있었다. 친구들은 어떤 품종이 이 지역에서 생산되고 있는지 알고 있었고, 장을 볼 때는 파머스 마켓, 즉 농민들이 직접 판매하는 직거래 장터를 이용했다. 요즘에는 파머스 마켓이 많이 늘어나서 로컬 푸드를 사는 일이 훨씬 쉬워졌다고 한다.


아무거나 먹어도 괜찮다고 생각했을 때는 가격이 기준이 됐다. 어디에서 생산되는지는 따지지 않았다. 100마일 이내의 로컬 푸드가 기준이 되니 많은 게 달라졌다. 사고방식은 습관을 바꾼다. 이렇게 개개인이 습관을 바꿔간다면 언젠가는 절대적으로 보이는 음식 문화도 바뀌게 될 거라고 셰릴과 그의 친구들은 믿고 있었다. 그들의 희망이 머지않아 실현될 수도 있겠다는 강렬한 예감이 들었다. 셰릴이 처음 100마일 다이어트를 시작한 2006년에는 보기도 어려웠다는 파머스 마켓을 이제는 그의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는 사실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



변화를 담는 냉장고

냉장고를 찍는 사진작가

그가 냉장고 사진을 처음 찍기 시작한 때는 2006년이었다. 무려 3년 6개월 동안 미국의 23개 도시를 돌며 약 50개의 냉장고 사진을 찍었다. 그는 왜 일반인의 냉장고를 작품의 소재로 삼았을까?


마크는 대학을 다닐 때 사회복지학을 전공하면서 먹을 게 없는 가난한 사람들과 깊은 대화를 나눌 기회가 많았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인간의 삶과 먹을 것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게 되었다고 한다. 예술가로 살게 된 건 2006년 친구들과 공동 작업으로 한 편의 다큐멘터리를 만들면서부터였다. 배고픔과 식품 사고처럼 먹을거리로 인해 위기를 경험한 사람들의 증언을 통해 현대인의 삶을 보여주는 <헝거 인 아메리카>였다. 이때부터 그는 한결같이 ‘식품과 현대인의 삶’이라는 주제를 다뤄왔다. 그는 모두가 그러려니 지나치는 일상 속에서 자신이 원하는 장면을 포착해내고 싶었다. 그래서 사진을 택했다. 개봉되어 풀어 헤쳐진 식품들을 찍기도 했고 식사 이전에 비어 있는 저녁 식탁과 식사를 마치고 난 뒤의 저녁 식탁을 찍어 대비를 시키기도 했다. 하지만 더 리얼한 현실을 보여주고 싶은 갈증은 해결되지 않았다. 그저 그런 사진들을 반복적으로 찍어대는 무의미한 날들이 이어졌다.


그러던 어느 날 밤이었다. 문득 잠에서 깨어보니 몇 명의 동료가 함께 자고 있었다. 그는 부엌으로 가서 냉장고 문을 열었다. 물을 마실 생각이었다. 그런데 불현듯 이 냉장고 속을 사진으로 찍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예고도 없이 들어선 반가운 손님처럼 냉장고에 대한 영감은 그렇게 불쑥 찾아왔다. 마크는 바로 짐을 챙겨서 길을 떠났다. 다양한 사람들의 냉장고를 프레임에 담겠다는 어찌 생각해보면 무모한 여행이었다.


그는 길 위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부자거나 가난하거나, 적극적이거나 소극적이거나, 쾌활하거나 우울하거나 각자의 성격과 처한 상황과는 상관없이 그들은 마크의 냉장고 이야기에 강한 흥미를 느꼈다. 70명에게 냉장고 사진을 찍게 해달라고 부탁했는데 완강하게 거절한 사람은 고작 3명뿐이었고, 다른 몇몇은 그저 시간이 맞지 않아서 사진을 찍지 못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허락해놓고도 정작 냉장고 사진을 찍겠다고 찾아가면 사람들은 많이 당황했다고 한다. 대부분이 “청소를 못 했어요”, “이건 제 것이 아니에요”, “제가 좀 바빴어요”라며 핑곗거리를 찾았고 사진을 찍기 전에 새로 정리를 하게 해달라고 부탁하던 이도 있었다. 하지만 그건 마크가 원하는 게 아니었다. 마크는 그들의 일상이 담긴 솔직한 냉장고를 찍고 싶었다. 그는 자신의 의도를 사람들에게 다시 잘 설명했고 마침내 현실을 담은 냉장고를 찍을 수 있었다.


현실을 비추는 냉장고

마크 멘지버가 찍은 적나라한 냉장고 사진들은 각기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무엇을 먹는지, 돈벌이는 어떠한지, 장보기를 즐기는지, 건강한 편인지, 정리하기를 좋아하는 꼼꼼한 성격인지, 정리를 모르는 털털한 성격인지……. 마크는 냉장고 사진과 함께 그들의 일상을 기록했고 이 독특한 냉장고 이야기는 <You are what you eat>이라는 제목으로 전시됐다. 그것은 마크가 간절히 찍기를 바랐던 먹는 것과 삶에 관한 이야기였다.


마크는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냉장고에 대해 전혀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됐다. 냉장고 안을 보면 자연히 주인이 어떤 사람인지 판단을 내리게 되는데, 그건 편견에 지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채소가 많은 걸 보니 건강한 사람이군’, ‘냉장고가 텅 빈 걸 보니 게으르거나 부지런한 사람인 모양이야’, ‘고기가 꽉 찼네. 음, 건강에 문제가 있겠어’ 이런 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냉장고는 겉보기보다 더 심오한 개개인의 일상을 담고 있다. 마치 사람에게 겉모습과 다른 참모습이 숨어 있는 것처럼. 냉장고는 그 사람을 보여주는 거울, 그 이상의 현실을 비춘다. 당신이 처한 현실이 어떠한지 알 수가 없을 때, 한번 냉장고를 열어보라. 어떤가? 내가 막연히 생각해본 내 모습과 전혀 다른 또 하나의 내가 거기에 있이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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