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려라 정봉주

   
정봉주
ǻ
왕의서재
   
13500
2011�� 11��



■ 책 소개
팟캐스트 <나는꼼수다&&든 강연이든 그 어떤 형태로든 정치를 즐겁고 재미있는 영역으로 더 끌어내려 누구나 참여의 장으로 만드는 대장정에 돌입한, 나꼼수4인방 중 유일한 정치인인 정봉주 전 의원의 책이다. 현 정부의 아킬레스건이라고 할 수 있는 저축은행비리를 비롯해 등록금 인하와 직접 관련 있는사학법 문제, 아직 끝나지 않은 BBK의 진실공방 등이 수록돼 있다. ‘나꼼수 신드롬’을 한국의 정치·사회·문화현상과 관계 지어 살펴보고,‘나꼼수’ 4인방의 역사적 의미를 짚어봄으로써 한낱 해적 라디오 방송에서 막강한 영향력의 미디어로 탈바꿈한 ‘나꼼수’의 미래를 엿본다. 더불어17대 국회의원 생활을 회고하고, 국회의원 생활 중 기억에 남는 다양한 에피소드를 수록하여 사적이지만 깊은 자신만의 이야기를 담아냈다.

그리고 독자들을 배려해 그동안 열심히 달려온 인간정봉주의 희로애락, 유쾌한 웃음의 종국에는 ‘깔때기’를 들이대는 호탕한 웃음코드도 빼놓지 않았다. 저자는 희망한다. 정봉주가 국민을 대신해 뛰는전무후무한 정치인으로 국민의 뇌리에 박히길.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을 ‘달려라 정봉주’로 지었다.
■ 저자 정봉주
노원구 공릉동을 지역기반으로태어났다. 청소년기는 축구와 쿵푸에 빠져 매일매일 행복하게 노셨다. 결국, 재수학원에 들어가지만 명랑 생활을 끝내지 못했다. 어느 날 자신이멘토로 삼았던 친구의 진심 어린 충고를 듣고 매일 3시간씩만 자면서 공부에 전념하기를 2년. 마침내 한국외국어대학교 영어과에 입학했다. 대학입학 후, 학생운동에 매진했다. 막내아들이 걱정된 경찰공무원 아버지는 억지로 ROTC에 입단시켰다. 나름 1년 반 동안 착실히 장교교육을받았지만, 4학년 때 학내 시위에 연루돼 도피 생활을 하다가, 그해 9월 28일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구속되어 1년 6월의징역형을 선고 받았다. ROTC 출신 최초로 학생운동에 연루되어 감옥을 오랫동안 지켰다. 아버지는 거의 돌아버리실 지경이었다는 후문. 이렇게반독재 민주화운동을 하다가 시국사범으로 수감돼 병역을 만류당하고 대학 졸업 후, 군사독재 시절 전설적인 진보 성향의 정론지 월간 「말」지 기자로활동했다.

1990년,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교(U. C.Riverside)에서 영어교육전문학위(TESOL)를 취득했지만 귀국 직후 운동권 선배들의 꼬임에 빠져 서른두 살의 젊은 나이에 노원구 공릉동지역에서 서울시의원 후보로 출마했다. 당시 모아두었던 피 같은 사업 자금과 여기저기서 빌린 돈을 합해 2억 원이 넘는 돈을 쓰고 200표 조금안 되는 표차로 아쉽게 낙선했다. 크게 절망하여 돈을 벌어 정치하겠다는 각오로 사업에 매진했다. 결국 전국에 80개의 프랜차이즈를 둔(주)한국외국어대학교 외대어학원 대표이사로 성공했다. 이렇게 성공한 사업가로 관성에 따라 살다가 운명과도 같이 자신의 본성과 조우했다.

그 후 2002년 극적으로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되는것을 보면서 세상에 커다란 정치 개혁의 물결이 오고 있음을 직감하고 출마를 결심했다. 국회의원 출마를 위한 제반 교육을 일주일 만에 속성으로마스터한 후 드디어 2004년 4월 15일, 노원구 공릉동 월계동을 지역기반으로 하는 제17대 국회의원 정봉주가 탄생했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의바람을 타고 당선됐다 하여 ‘탄돌이’라 불렸다. 당선 후, 대한민국에서의 삶이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교육이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믿음 위에교육위원회 소속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사학법 개정에 온몸을 던지고, 비리 사학, 교육 권력과 맞서 싸웠다. 이렇게 현역으로 바쁜 가운데에도연세대학교 교육대학원에서 교육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뼛속 깊이 교육의 DNA가 흐르고 있는 것이다. 이랬던 그가 임기 말에 다시 몸을 던진사건이 있었으니(실제로 몸을 던졌다), 당시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였던 이명박의 BBK 주가조작 및 횡령과 관련된 의혹 제기가 그것이다. 국가와사회가 투명하고 건강하려면 지도자가 도덕적으로 흠결이 없어야 한다는 상식 아래 철저한 자료와 증거를 가지고 의혹을 제기했고 검찰 수사를촉구했다. 당시 당선이 유력했던 이명박 후보의 도덕성 검증을 위해 최선을 다한 그는 국민들로부터 ‘BBK 스나이퍼(저격수)’라는 별명을 얻었지만동시에, 대한민국 사법부로부터는 징역 1년의 실형을 선고받고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2011년 11월 현재)

언제나 우리에게 ‘쫄지 말라’며 입바른 말과 호탕한웃음으로 유쾌ㆍ통쾌ㆍ상쾌함을 선사하지만, 실제로는 감옥에 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두려움에 떨기도 하는 약한 ‘인간’이기도 하다. 그 두려움을이기려고 자신의 집 드레스 룸에서 일주일간 감옥 연습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두려움의 본질을 깨우치고 나니 다시 희망이 생겼다. “이 땅의모든 국민 한 분 한 분이 주인공인 정치의 시대가 왔습니다. 이제 주인공인 여러분은 한없이 높아지고 저는 한없이 낮아지겠습니다”라는 진지한멘트를 날리고는 언제나처럼, 자신의 아름다운 영혼과 치명적인 매력에 스스로 감탄하는 깔때기를 들이댄다. “신이시여, 진정 이렇게 멋진 말을 제가했단 말입니까?”

■차례
프롤로그; 책을 썼다 

1부 정봉주의 通통 
위대한 탄생 <나꼼수&& 
<나꼼수&&대첩 
‘통’하다 
<나꼼수&& 사회학 

2부 정봉주의 情정 
탄돌이 
“나의 단식을 알리지 마라” 
GreatAmerica 
정봉, 주장 
MBC ‘정봉주 기자’입니다 
빈처(貧妻) 
내가 부르다 죽을 이름이여 
달려라 정봉주

3부 정봉주의 熱열
히틀러 싱크로율 100% 
주인공 정치 
민주당 VS 민주당 
‘간지’ 진보 
봉도사가 다 말해주마2012 대선 

4부 정봉주의 快쾌
국가지도자는 반드시 검증받아야 한다 &&&& 
최후진술 
BBK 저격수 
도대체 BBK가 뭔데?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어머니가 아니라 Oh! Money 
기획입국썰(舌)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BBK2012 보고서 

서민의 삶 울린 저축은행 비리사건&&&& 
부산저축은행 사건 
삼화저축은행 사건

자원을 담보로 한 꼼수 외교&&&& 
뻥튀기 홍보의 진실 
청년들의 당당한 요구&&&& 
대학등록금 
에필로그; 당신과 함께 달리는 한 사람을기억하라





달려라 정봉주


프롤로그; 책을 썼다

많다, 참 많다.

할 말이 참 많다. 내 정치 인생을 관통한 BBK 얘기며 교육 문제, 이 정권의 문제점 등등……. 기회와 무관하게 다시 온몸을 드러내놓고 부딪치고 싸우고 싶은 그런 주제들이 글을 쓰다 보니 수도 없이 튀어나오려 한다. 열정에 불이 붙는 것 같은 느낌이다.


하지만 이 글은 다시 전투 모드로 들어가는 출정 선언문은 아니다. 다시 시작할 인생을 포괄적으로 얘기할 뿐이다. 해야 할 말과 다음에 할 말을 구분했다. 시끄럽고 줄기차게 깔때기만 들이대는 정봉주가 무슨 생각으로 사는지, 또 내 마음속에 똬리 틀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보여주고, 그게 보탬이 되고 힘이 된다면 한번 소통해보자는 소통의 제안서이다.


처음부터 직접 다 썼다.

청춘들에게, 인생의 도전 현장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을 젊은 세대에게 바치는 나의 마음도 담았다. 좌절하지 말라며 그들의 지친 손을 잡아주는 심정으로 내 마음을 담았다.


젊은 그들에게 주장한다.

지금까지 냉소를 입에 문 채 팔짱 끼고 고집스럽게 앉아 있던 자리에서 박차고 일어나라. 주인공 정치의 1인으로 모드 전환하라. 젊은이들이 나서지 않으면 후진하는 대한민국의 현실을 결코 되잡을 수 없다. 그리고 당당하게 성공하고 싶은 당신의 인생을 더욱 멋지게 빛내기 위해서라도 주인공 정치의 새로운 문을 열라고 목청 높여 주장한다.


함께 달리는 여러분.

이 책이 쓰러질 때 다시 일어서겠다는, 힘들 때 고개 들어 하늘을 다시 바라볼 수 있는 힘이 되기를 빌어본다. 모두들 힘들어도, 달리고 또 달리자!



정봉주의 通통

위대한 탄생 <나꼼수>

김어준 총수에 대한 기억은 「딴지일보」가 막 뜰 때였던가? 한 10년도 더 된 것 같다. 「한겨레 21」기자로 있던 친구한테 들었다. 김어준이라는 특이한 놈이 하나 나왔다고. 스스로 언론사 사주이며 총수라고 하는 놈인데 아주 물건이라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다. 특이한 기획으로 지랄 맞은 이 시대에 통쾌한 똥침을 날리고 있다고.


그 시절은 사업하면서 돈 잘 벌고, 등 따습고, 배 부르게 탱자탱자하면서 잘 지내고 있을 때였다. 별 관심도 없었다. 술이나 마셨다. 그렇게 잘난 척하는 놈들은 밤하늘의 수많은 똥별처럼 한번 스쳐지나갈 뿐이란 것이 내 지론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세월은 지나갔고, 노무현 대통령이 탄생했으며 난 사업을 접고 느닷없이 국회의원이 되고 이러저러하게 언론에서 주목까지 받는 정치인이 되었다. 아마도 당시 김 총수가 CBS에서 <저공비행>인지 뭐지 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을 때 우연히 출연한 것이 계기가 된 듯하다. 김 총수에게는 나를 알게 된 것이 벼락같은 축복이었을 것이다. 그것이 인연이었다. 그 이후로 각 방송국을 떠돌 때마다 같이 묶여서 다녔다. 김 총수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이면 일주일에 한 번은 꼭 고정출연하면서 17대 내내 날카로운 이빨을 갈고닦았다.


한동안 각자 도생의 길을 걸었다. 만나는 것도 뜸해졌다. 낙선의 충격이 조금 가시고 한가해질 무렵 여의도에서 다시 만났다. 만나자마자 김 총수가 대뜸 "개인 미디어 시대가 열린다. 어떻게 할 거냐? 뭐라도 준비해야 되지 않겠느냐" 하며 함께 고민을 요청했지만, 정봉주한테 진지한 게 어울렸겠는가.


답답한 마음으로 시간만 죽이고 있었다. 어느 날 김 총수가 느닷없이 목사 아들 돼지를 합류시키자고 제안했다. 그리고 그다음 주에 돼지 김용민이 나타났다. 당시에는 그렇게 뛰어나고 품성이 훌륭한 피디인지 몰랐다. 점심에 밥을 두 그릇 추가로 시켜 먹었던 기억밖에 안 난다. 그때는 모든 식대를 내가 계산할 때였다. 벼룩의 간을 빼 먹지, 낙선 백수 의원을 그렇게 빨아먹다니. 그렇게 몇 번을 더 만났다. 만날 때마다 밥값을 걱정해야 했다. 그러던 중에 녹음실을 확보했으니 녹음을 하자고 했다.


그렇게 <나꼼수> 1회 녹음을 시작했다. <나꼼수>라는 제목도 녹음 당일에 떠들어 대다가 겨우 만들었다. 사실 녹음하면서도 시큰둥했다. 어느 플랫폼에 올릴지 확정도 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이게 과연 될까 하는 회의가 많이 들었다. 녹음을 열심히 하긴 했지만 별로 흥이 나지는 않았던 기억이 난다. 워낙 말하기를 좋아하니깐 그냥 즐겁게 한 것 같다. 말하기를 얼마나 좋아하면 광고를 주겠다는데도 떠드는 시간 줄어들까 봐 안 받는 방송이다.


방송 올리자마자 어떻게들 찾아보았는지 바로 대박 조짐이 보였다. 그리고 몇 회 올리기도 전에 대박이 났다. <나꼼수>의 탄생은 그렇게 적지 않은 시간이 흐른 뒤에 벼락처럼 찾아왔다. 어느 날 아침에 눈을 떠보니 느닷없이 스타가 되어 있었다고 생각하는 분, 인생이 그리 쉽게 술술 풀려왔는지 묻고 싶다. 아마도 아닐 것이다. 각고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나꼼수> 사회학

한순간 바람으로 지나갔을 수도 있었던 <나꼼수>가 이제 이 시대의 정치 사회적 현상을 이해하는 데 필수 요소가 되었다. 그렇다면 국민이 <나꼼수>를 받아들이고 <나꼼수>에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나꼼수>에서 가장 민감한 사회적 이슈를 속 시원하게 제대로 다루면서 언론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본 것이다. 다시 말하면 MB 정권 들어서 언론이 제 역할을 못 해냈거나 더 극단적으로 말하면 언론의 자유가 죽었다는 것을 <나꼼수> 열풍이 정확히 반증하고 있는 것이다.


<나꼼수>가 언론의 자유가 억압된 사회에서 참 언론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또 다른 근거는 다루는 주제나 내용 밖에서도 찾을 수 있다. 언론이 제 역할을 다하기 위해서는 권력으로부터 독립해야 하지만 또 자본권력으로부터의 독립도 중요하다. <나꼼수>는 철저히 자본으로부터 독립적이다. 서버 호스팅 비용 등 막대한 비용이 들어가지만 <나꼼수>는 철저하게 스스로 존립해 가고 있다.


<나꼼수>의 사회현상을 이해하는 또 하나의 좋은 근거가 있다. 바로 쌍방향 소통의 매체, 즉 개인 미디어의 등장이다. <나꼼수>의 사회적 현상은 IT 및 SNS 발달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특히 개인 미디어인 SNS의 발달은 결정적 요인이다.


트위터나 페이스북은 <나꼼수> 현상이나 <나꼼수>에서 다루어진 내용을 공론의 장으로 끌어냈다. 내용의 진위와 사회적 의미를 논의하고 토론하면서 소통한다. 그리고 확산시킨다. <나꼼수>가 폭발적 확장성을 가지는 근거가 바로 SNS이다. 단순한 확장의 도구가 아니고 토론과 소통의 도구인 것이다.


<나꼼수>가 폭발적 관심과 영향력을 갖게 된 데는 이러한 객관적 상황만 있는 것은 아니다. 주체의 역량이 이런 사회적 현상을 받아들이거나 주도할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나꼼수>의 사회적 현상을 이해하려면 <나꼼수> 4인방이라는 주체 역량도 함께 분석해야 한다.


요즘의 사회적 관점에서 보면 <나꼼수> 4인방은 전형적인 루저(Loser, 패배자)이다. 이들이 모여서 하는 방송은 이들의 삶에서 우러나온 저항의 목소리이고, 패자에게 용기 내라고 하는 패자부활전의 메시지이다. 또 권위주의 정권에 짓밟히고 있는 국민에게 힘내라!고 격려하는 희망의 함성이다. 그래서 <나꼼수>는 사회의 객관적 산물이기도 하지만 주체의 적극적 역량이 빚어내는 저항의 산물, 새로운 세상을 향해 외치는 희망의 산물이기도 한 것이다. 이것이 <나꼼수>가 갖는 객관적 환경과 주체적 역량이 만들어낸 독특한 사회현상의 측면이다.


앞으로 <나꼼수>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가. <나꼼수>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는 참으로 변화무쌍하다. 적어도 현 정권이 미리 파악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일단 단기적으로 본다면 총선 국면에서는 철저하게 참 언론의 역할을 수행할 것으로 판단된다. 총선은 전면전이기도 하지만 지역적으로 펼쳐지는 국지전적 성격도 강하다. 이런 국면에서는 사회적 거대 담론보다도 지엽적으로 파고드는 보수 언론의 왜곡에 대응해야 한다. 양측 언론의 역할 중 어느 진영이 더 위력적일 것인가가 다가오는 19대 총선의 관전 포인트일 것이다. 보수 진영에서는 눈엣가시인 <나꼼수>를 총선 이전에 어떻게든 해보려 할 테지만 시대의 흐름을 역행한다는 것이 큰 부담이 될 것이다.



정봉주의 情정

달려라 정봉주

여태껏 살아오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충고하고 힘을 주는 것에 인색했다. 모든 세상사가 그렇듯 온갖 어려움을 겪으며 결국은 혼자서 극복하고 뚫고 나가는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옆에서 누군가가 도와주거나 힘을 주는 격려의 말을 하면 오히려 맥 빠질 것이라 생각하고 주제넘게 충고하고 격려하는 것을 피해왔다. 하지만 사회의 구조적 문제로 절망에 빠진 젊은 세대의 고통을 더 이상 외면하는 것은 죄악이다.


이제부터라도 함께 어깨동무하고 걸어가야겠다. 청소년 시절 누구나 아픈 추억이 있겠지만 나 역시 늘 인정받지 못한 삶이었다. 공부는 멀리하고 어떻게 하면 짜릿하고 즐겁게 인생을 살 수 있을 것인가를 고민하던 철없는 청춘에게 남은 결과는 늘 사고뭉치라는 낙인뿐이었다.


이 학교 저 학교를 전전하다 우여곡절, 삼수 끝에 대학에 들어갔다. 대학에서 운동할 때는 그나마 인정을 받았다. 학교 측에서 본다면 눈엣가시였겠지만 말이다. 그런데 이상한 일은 동지들끼리 모인 운동권 내에서 느껴지는 묘한 감정이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천성이 가볍고 경박한 데다 품행까지 방자하여 권위와는 거리가 먼 캐릭터였으니 장엄하고 진중해야 할 운동권 분위기하고 맞았을 리 없었다. 까불어야 하는데 까불지 못해서 스트레스 받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쳐도 이상하게 정통 운동권이라고 자부하는 사람들한테도 인정받지 못했다. 중요한 결정이나 논의가 있을 때는 자기들끼리 따로 논의했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다. 어쨌든 산다는 것이 그냥 내 일만 열심히 하면 되는 것이고 인정받고 말고의 여부는 다른 사람들 몫이었다. 그러니 내가 어찌할 바 있겠느냐고 생각하면서 그때도 앞만 보고 열심히 달렸다.


정치권에 들어와서 이런 나의 스타일을 인정받지 못하는 분위기는 더욱 심해졌다. 정치권에서는 독특한 정서가 있다. 열심히 참여해서 일을 하는 사람은 당연히 그래야 되는 것처럼 인식하는 경우가 있다. 생색내는 사람이 오히려 더 열심히 일하는 것처럼 받아들여지는 것이 현실이다. 아내에겐 미안하지만 이런 일 저런 일 따지지 않고, 그래도 누군가 해야 할 일이라면 그저 묵묵히 열심히 하려 했고 지금도 그런 똘마니 정신으로 살고 있다.


2010년 지방 선거에서는 한명숙 서울시장 후보의 선거에 올인했다. 당에서 서울시장 선거 조직을 짰다. 나 역시 지역위원장이다 보니 이번만큼은 어떤 책임을 맡을 것 같았다. 그런데 아무도 무엇을 하라고 부르지 않았다. 궁금해서 캠프에 와 봤더니 이쪽저쪽의 계보와 관련된 사람들이 모두 와서 이미 조직이 짜여서 굴러가고 있는 것 아닌가. 또, 계보인가 싶었다. 지독했다.


언제 자리 따지며 일했나, 그냥 주어지면 열심히 하는 거지라고 마음먹고 의원 축구부 주장 맡을 때처럼 직접 인터넷 홍보본부장이란 직함을 만들어 그 자리에 앉았다. 물론 언제나처럼 아무도 임명해주지 않았다.


그렇게 <한명숙 TV>를 시작했다. 첫날은 둘이서 12시간 이상 진행했다. 이후 날마다 적게는 6시간에서 많게는 8시간 동안 진행했다. 당연히 당 안이고 밖이고 간에 <한명숙 TV>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그런데 선거가 중반에 접어들면서 열기가 고조되자 점차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특히 젊은 유권자들 사이에서는 캠프와 소통하는 거의 유일한 디지털화된 창구였다. SNS 소통의 시작이었다. 시간이 가면서 더욱 관심이 집중됐고 <한명숙 TV>로만 선거운동을 하는 것처럼 착각할 정도로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되었다. 캠프에서 <한명숙 TV>를 공식 석상에서 언급하는 일이 잦아졌다. 선거 막바지에 대박이 터진 것이다. TV 운영을 할지도 결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자진해서 맡은 <한명숙 TV>는 천덕꾸러기에서 선거운동 최고의 효자로 태어나는 순간이었다. 개인적으로도 운명이 갈리는 순간이었다. 이렇게 달려온 <한명숙 TV>의 결과가 정봉주와 미래권력들의 결성으로 나타났다. 정봉주 팬 카페가 정식으로 탄생한 것이다.



정봉주의 熱열

주인공 정치

부패한 정치는 무관심이란 환경 속에 냉소주의란 옷을 입고 투표 불참이란 음식을 먹고 서식한다. 부패한 정치인, 부패하고자 하는 정치인에게 가장 훌륭한 서식 환경은 무관심이다.


선거 때 적당한 환심과 그럴듯한 관심만 유도해 적절하게 투표하게끔 하는 것으로 국민과의 대화와 소통은 끝이 난다. 그다음에는 관심이 부담스럽다. 관심은 감독이고 견제다. 부패할 환경적 여지가 없다. 부패정치는 무관심, 냉소주의를 절대 조건으로 요구한다.


이들 3자가 공범으로 참여해 기획한 사기극이 바로 정치 냉소주의다. 정치 냉소주의는 무관심이다. 투표 불참이다. 그리고 한발 더 나아가 투표에 불참한 자신의 행위를 자랑스레 얘기한다. 더러워서, 다 해 처먹으라고. 결과는 재벌과 극소수 부유층만의 이익을 대변하는 보수 정권의 마르고 닳도록 집권이다. 정경유착과 정치 부패이다. 그 결과 국민만 피해를 본다. 의도를 간파하지 못한 채 냉소하고 무관심했던, 자신이 선택한 행동에 대한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되는 것이다.


정치 상황이 급속도로 변해가고 있다. 개인 미디어 시대가 느닷없이 도래한 것이다. 기존 언론보다 더 바르고, 더 정확한 개인 미디어, 즉 SNS 시대가 열린 것이다. 2011년에 전 세계를 강타한 아랍 발 재스민 혁명의 도구는 의식화된 혁명 세력도, 무장된 군사력도 아닌 스마트폰으로 연결된 SNS였다. 이제 SNS는 그 무엇보다 강한 권력자로 등장하게 되었다.


개인 미디어인 SNS가 국민이 정치에 관심을 기울이고 참여하는 길을 텄다. 단순 참여가 아니라 SNS에서 유통되는 정보의 양과 정확성, 속도는 보수 언론의 능력을 뛰어넘었다. 정확하고 올바른 판단의 정보를 반나절이나 하루 빠르게 접하는 새로운 미디어의 힘으로 참여 정치의 새로운 장을 열어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SNS는 모든 사람을 주인공으로 만들었다. 타인의 행위와 정치적 결정에 반응하는 것보다 내가 한 이야기, 내가 펼친 주장에 대해 다른 청중들 나아가 70억 인구는 어떻게 반응하는가를 두고 기뻐하고 흥분하는 주인공의 입장으로 전환된 것이다. 이것은 정치 환경의 급격한 변화이다.


국민 모두가 주인공인 정치 시대가 오고 있다. 아니 이미 왔다고 믿는다. 그 속도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급격하다. 정치 환경이 변했고 국민이 변했다. 그들은 SNS로 무장하고 있다. 강력한 매체, 더 강력해진 주인공이 등장했고 이들이 이끄는 정치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한발 더 나아가 이들은 정치를 근엄한 주제로 접근하지 않는다. 즐기면서 신나게 접근한다. SNS 세대에게 정치는 문화이고 놀이가 됐다.


선언하고 참여하는, 그리고 강력한 주인공의 위치로 돌아온 이들과 함께 정치하고 새로운 세상을 열어가기 위해서는 정치인과 정당이 변해야 한다. 그래야 살아남는다. 참여를 두려워 말고 국민과 동등한 위치에서 주인공으로 받아들이고 함께 즐기는 정치를 하는 주인공 정치의 시대가 열렸음을 인정해야 한다.



정봉주의 快쾌

도대체 BBK가 뭔데?

먼저 BBK를 간단히 정리하자면 BBK라는 회사의 대표인 김경준이 회삿돈 300억 원을 빼돌려 5200여 명의 소액주주들에게 씻을 수 없는 피해를 준 사건이다. 김경준은 투자자문업을 준비하면서 이명박  후보와 동업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중범죄행위에 해당하는 BBK 사건에 이명박 후보가 직·간접 개입되어 있다면 이는 공직자로서 도덕성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BBK의 실소유주가 누구인지 밝히는 것은 그만큼 중요한 일이다.


만일 이 내용의 진실이 밝혀진다면 단순히 도덕적 문제가 아니라 법적인 책임도 면치 못할 것이다. 이 문제로 김경준은 8년형을 선고받고 감옥에 수감돼 있다. 따라서 BBK 실소유자가 누구인가 하는 문제는 국민적 관심의 대상이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관심거리일 수밖에 없다. 특히 2007년 대선 당시 이명박 후보는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 과정에서 만일 자신이 BBK 사건에 연루된 것이 밝혀진다면 대통령에 당선이 되더라도 책임을 지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사실 때문에 10년이 지난 사건임에도 다시 한 번 깊이 잠든 BBK를 흔들어 깨우려는 것이다.


쟁점은 LKe뱅크와 BBK가 실제로 같은 회사인지 아닌지이다. 만일 LKe뱅크와 BBK가 실제로 같은 회사라는 것이 드러나면 BBK 사건은 해결된다. 즉, LKe뱅크의 실제 투자자이며 법적으로 대표이사까지 역임했던 MB가 BBK의 실소유자라는 사실 관계가 드러나면 모든 상황이 다 끝나는 것 아닌가!


우리 팀은 LKe뱅크와 BBK와의 관계를 밝혀내자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마침 하나은행을 조사하고 있던 여준성 보좌관이 은행의 심각한 문제점을 잡을 수 있을 것 같다는 보고도 있었던 차다. 하나은행이 2001년 6월, LKe뱅크에 5억 원을 투자한 것은 이미 알려진 내용이었다. 하지만 설립된 지 4개월밖에 되지 않았고 아무런 실적도 없었던 LKe뱅크에 어떻게 선뜻 5억 원이란 거액을 투자할 수 있었을까? 이 문제를 밝히기 위해 몇 년 동안 여러 명의 국회의원들이 하나은행에 자료 요청을 했지만 거절당했다. 사실상 이 일을 밝혀내는 것을 포기한 상태였다.


그런데 여 보좌관이 거래와 관련된 하나은행의 심각한 잘못을 찾아냈다. 자료 내용은 예상대로 충격적이었다. LKe뱅크와 BBK가 한 회사라는 것이 내부 자료에 나온 것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LKe뱅크가 지주회사이고 BBK의 주식 100퍼센트를 소유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LKe뱅크를 공동으로 소유하고 있던 MB가 결국 BBK도 소유하고 있는 것이 된다.


상식이 통하는 사회라고 한다면 하나은행 자료 하나만으로도 BBK 문제는 해결되고 정리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보수 언론의 대국민 의식 조작이 난무하는 야만의 시대에는 결정적 자료도 그 힘을 발휘할 수 없었던 것이다.


얼마 후 2007년 대선 직전, MB가 광운대에 가서 직접 강연한 내용의 동영상이 나와 다시 전세가 역전되었다. 동영상에서 MB는 "BBK를 설립했다"고 말하지만 당시 한나라당 나경원 대변인은 말도 안 되는 유명한 논평으로 이 사건을 덮었다. "설립했다고는 했지만 내가라는 주어가 없다"는 논평이었다.


검찰이 이 논평을 믿었는지 아니면 국민이 동의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이런 수많은 연관성을 말해주는 자료들에도 MB와 BBK는 관련이 없다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BBK 사건은 그렇게 허무하게 끝났다. 2007년 대선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탄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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