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론에서 실천으로

   
김영명
ǻ
한국학술정보
   
18000
2011�� 07��



■ 책 소개
2011년 문화체육관광부우수학술도서 선정!

지금까지의 담론에서 한 걸음 더나아가 실제로 한국적인 정치학 연구를 실천하려는 시도를 보여주는 책. 저자가 그동안 연구한 결과물을 한데 모아 제시하고, 한국적 정치학이란무엇인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 살펴보고 있다. 1부에서는 지금까지 한국에서 나타난 정치학 연구의 대외 의존성을 분야별로 비평하고 대안을모색한다. 2부에서는 저자가 그동안 시도해 온 몇몇 분야에서의 한국적 정치학 연구 결과물을 소개한다.

■ 저자김영명
서울대학교 외교학과 졸업, 뉴욕주립대학교 졸업, 정치학 박사 및 한림대학교 사회과학대학 학장, 국제학대학원 원장역임하고 한글문화연대 대표를 역임하였으며 현재 한림대학교 정치행정학과 교수로 있고, 한글문화연대 공동대표이다.
한국적 정치학에 관련된 저서로는 『나는 고발한다』『우리 눈으로 본 세계화와민족주의』『신한국론』『한국의 정치 변동』『우리 정치학, 어떻게 하나?』 등이 있다.
&nbsp&
■차례
머리말 

제1부담론과 실천 방안 
제1장 한국의 정치와 문화: 연구 현황과 새로운 방향 모색 
제2장 한국적 국제정치 연구의 주요사례와 바람직한 방향 
제3장 패권과학의 반발 
제4장 한국적 정치학의 주요 쟁점과 실현 방안 

제2부 실천의 모색 
제5장 단일사회 정치론 서설
제6장 한국 정치 변동 연구를 위한 분석 틀 
제7장 한국 정치의 특수성 연구 서설: 분단, 압축 성장, 단일사회 문화
제8장 세계화와 민족주의: 약소국의 시각 





담론에서 실천으로


담론과 실천 방안

한국의 정치와 문화: 연구 현황과 새로운 방향 모색

서론

한 나라의 정치는 그 나라의 문화에 큰 영향을 받는다. 이런 현상은 학계에서 주로 정치문화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이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정치문화 연구는 한국 정치학계에서도 그동안 중요한 자리를 차지했으며, 한국 정치의 여러 측면을 이해하는 데 큰 기여를 했다. 한국 정치문화 연구의 경우 큰 문제점이 존재하는데, 그것은 미국 학계가 제기한 문제 영역을 별다른 비판 없이 그대로 따르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런 문제 영역들이 거의 모두 미국인 시각에서 나타났고 미국인의 현실과 관심을 반영한 것이기 때문에, 때로는(전부는 아니겠지만) 우리 현실에서 덜 중요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한국의 정치문화 연구가 정말로 한국적 적실성을 가지려면, 다시 말해 한국 정치에 중요한 문제 영역 위주로 연구를 하려면 선진 학계의 동향을 비판 없이 따를 것이 아니라 정말로 한국에서 중요한 정치문화 현상이 어떤 것인지에 대한 세밀한 관찰부터 해야 한다. 한국의 정치문화 연구는 기존의 연구 동향에서 좀 더 지평을 확대하여 연구 분야와 방법을 넓혀 나갈 필요가 있다.


정치문화의 연구 방법

지금까지의 정치문화 연구는 크게 나누어 두 가지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하나는 주류 방법론으로서 사회 구성원들에게 설문조사를 실시하여 이를 통계분석으로 비교하는 방법이다. 다른 방법은 참여관찰이나 서지 연구를 통한 것이다. 이는 인류학적인 방법과도 상통하는데, 주로 한 지역에 능통한 전문가에 의해 이루어진다.


이 두 가지 방법은 방법론의 면에서 매우 다른 철학적 기반을 가짐을 알 수 있다. 앞의 것이 경험주의, 실증주의의 철학적 입장이라면, 뒤의 것은 현상학적이거나 참여관찰의 기반을 가진 방법론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철학적 기반이 다르다고 해서 둘이 화합하지 못하리라는 법은 없다. 실제로 한 지역의 대표적 정치문화로 지목되는 현상을 역사적으로 추적할 수도 있고, 설문조사의 방법으로 증명할 수도 있다.


정치문화의 특수성과 보편성

지금까지 한국의 정치문화 연구는 유교문화-전근대성의 우위나 그 우위의 약화에 대한 조사가 대부분이었다. 이를 한국 특수성에 대한 강조라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전통-근대 구분이라는 서구적 보편성을 무분별하게 적용한 결과 한국의 특수성이 제대로 드러나지 않은 측면이 크다. 즉 한국의 전통사회나 근대화 도상 국가의 하나로 인식되었지 한국만의(또는 한국에 고유한) 특수성에 대한 관심이 지배적이었다고 볼 수 없다는 말이다.


이런 논의를 하다 보면, 한국 정치문화 연구에서 글쓴이가 생각하는 아주 중요한 논점 하나가 떠오른다. 그것은 한국의 정치문화 연구는 우리가 현실에서 상식적으로 느끼는 한국의 문화현상에서 출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사실이다. 그런 것들이 개인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흔히 지적하는 것으로는 타협의 서투름, 지나친 명분론, 연고주의, 권력 지향성, 빨리빨리 - 대충대충주의, 부패, 휩쓸림, 바람의 정치 등등이다.


외국인이 현대 한국인의 일상문화 가운데 가장 먼저 지적하는 것이 빨리빨리 문화이다. 그것은 얼마나 사실이고, 만약 사실이라면 그것은 한국 정치에서 어떻게 나타나는가? 이런 연구가 필요하다. 또 한국인이 감성적이고 정서적이라는 인식 역시 얼마나 사실인지 확인할 필요가 있고, 또 그 요소가 한국 정치에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고 한국 정치과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연구할 필요가 있다. 민족 정서와 사대주의가 동시에 강한 독특한 한국인의 정치문화 역시 탐구의 대상이 되어야 하며, 이것이 국제비교의 토대가 될 수도 있다. 그 연구는 계량적일 수도 있고 구조관찰적일 수도 있다. 국가 간 비교연구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결론

이 연구에서 글쓴이가 개진한 주장은 다음과 같다. 첫째, 한국 정치문화 연구는 지금까지 지나치게 설문조사와 통계분석 위주였다. 이러한 연구는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므로, 한국 역사와 한국인의 행동에 대한 세밀한 관찰에 따른 질적인 연구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둘째, 설문조사 위주의 주류 정치문화 연구는 지나치게 미국 학계의 연구를 답습하였다. 미국 학자들이 제시한 지표를 거의 그대로 사용하거나 정작 한국 정치 현실에서 중요한 문화현상은 소홀히 다루었다. 미국 학계의 앞선 연구들을 도입하더라도 한국 현실에 대한 이해와 관찰에 입각하여 독창적인 연구도 해야 한다. 셋째, 지금까지의 연구는 한국의 정치적 태도나 가치관, 의식구조 등 마음 상태에 대한 조사에 집중하였는데, 앞으로는 실제로 그런 마음 상태가 한국 정치과정에서 어떻게 나타나는지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이 세 가지 점을 염두에 두고 한국 정치문화 연구는 기존의 연구방식을 보완하면서 새로운 연구의 지평을 열어 나가야 하리라 본다.


한국적 정치학의 주요 쟁점과 실현 방안

지금까지 한국 정치학의 정체성 문제는 많은 논의의 대상이 되었다(이용재·이철순 2006;김영명 2006a; 하용출 편,2008). 그 주요 내용은 한국의 정치학이 외국 특히 미국 정치학에 너무 의존하고 있어서 이를 탈피하고 한국 정치학의 독자적인 정체성을 확립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비슷한 내용의 담론들이 간간이 제시되는 가운데, 담론 자체가 더 구체화되지 못했고, 담론과 실제 연구가 유기적 관계를 맺지 못했다. 이 연구에서는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 토의하고 한국적 정치학을 실제로 수행하기 위해 바람직한 방향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한국정치학의 성격과 범위

한국적인 연구는 기본적으로 자아준거적인 연구이다. 곧 자기를 기준으로 하여 자기의 문제를 연구하고 자기에게 맞는 평가를 내리고 해결책을 강구하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한국적인 정치학은 정치 현상을 한국인의 눈으로 보고 한국인의 말로 연구하는 것을 말한다. 더 자세하게 말하면, 한국인에게 중요한 문제에 대하여 한국인의 시각을 확립하고 한국어로 된 개념을 개발하며 더 나아가서는 한국학계 고유의 이론이나 방법론을 수립하여 연구하는 것이다.


그러면 한국적인 정치학은 한국 정치만을 다루는 것인가? 그렇지는 않다. 국제 관계나 외국 정치, 기타 정치학 대부분의 분야를 한국적으로 연구할 수 있다. 그럴 경우에도 역시 국제관계, 여성 정치, 환경 정치, 일본 정치 기타 등등에서 한국인에게 중요한 문제가 무엇인지를 포착하고 이에 대해 고유한 개념, 분석 틀, 이론을 수립하면 이것이 바로 한국적인 국제관계론, 한국적인 여성 정치론, 한국적인 일본 정치론이 될 수 있다.


우리가 한국이라는 실체를 상정하고 거기서 출발하지 않으면 한국적 학문을 얘기할 수 없고, 대한민국의 국익을 얘기할 수 없으며, 한국과 일본의 관계에 대해 논의할 수 없음은 자명하다. 한국적 학문이 완전한 토착 학문이 아니라 외국 학문과 섞이는 것이라고 하더라도, 그 섞인 한국적 학문을 수행하는 당사자는 여전히 외국인과 구분되는 한국인이라는 실체이다.


이렇게 보면 진정한 문제는 한국(학문)과 외국(학문)의 단절이나 구분 여부가 아니라 둘 사이의 구체적인 관계와 탈식민성 또는 한국성의 정도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정치학이든 다른 문화 현상이든 어느 정도 한국적이면 이를 한국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다. 그리고 한국적인 것과 비한국적인 것의 경계, 또 그 차이는 무엇인가 하는 문제이다. 하지만 한국적인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경계가 모호하다고 하여 그 둘의 차이를 인식하지 못하라는 법은 없다. 한국적 정치학이 어느 정도 한국적인지에 대한 판단은 각각의 실제 연구 사례들을 보고 판단할 문제이며, 그 기준은 평가자 개인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


주류 정치학과의 관계

한국적 정치학과 아닌 것의 경계가 모호하다는 말은 한국적 정치학이 서양 주류 학문을 통째로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로 이어진다. 그러면 이 둘은 어떤 관계에 있을까? 그 관계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즉, 빠짐(매몰)에서 섞임, 겹침(절충, 혼합), 끊기(단절), 무관계까지이다. 이 가운데 한국적 학문은 외래 학문과의 섞임에서 무관계까지를 말한다. 하지만 기존 주류 학문과의 단절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따라서 현재 실현 가능한 범위를 잡아야 한다. 위의 용어로 보면 섞임과 겹침이다.


한국 정치와 외국 정치의 보편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서양 주류 정치학에서 발달한 이론과 방법론을 받아들이고 이용하면 된다. 이것으로 안 되는 한국의 특이한 상황에 대해서는 자아준거적 접근과 새로운 분석틀이나 이론이 필요한데, 이 경우에도 주류 정치학과의 단절이, 그럴 경우도 있을 수 있으나,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다. 한국적 특수성을 연구하기 위해서도 외국의 보편적 이론들을 활용해야 할 경우가 있을 것이다. 즉, 한국 정치의 특이한 현상에 주목하여 고유한 분석 틀을 시도하는 학자라도 미국 정치학의 선진 이론들을 활용해야 할 경우들이 있을 것이다.


한 사회를 이해하는 데에는 보편성 못지않게 특수성이 중요할 수 있다. 자아준거적인 한국 정치학을 수행하는 효과적인 한 방법이 바로 이런 특수성에 주목하는 것이다. 한국 정치 현상에도 보편적인 것이 특수한 것보다 더 많을지 모르지만, 한국적인 정치학은 그중 보편적인 면모보다는 특수성에 입각한 연구를 수행함으로써, 그 독자적 정체성을 더 잘 살릴 수 있다. 보편적 정치학 연구는 미국 학자들이 풍부하고 정교하게 하고 있기 때문에 이를 이용하면 되지만, 한국의 특이한 현상들에 대해서는 한국 학자들 스스로 이론 개발을 할 수밖에 없다.


결론

한국적 정치학에 도달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으나, 특히 한국인에게 중요한 문제를 한국인의 시각으로 보고 이를 설명하기 위한 고유한 분석 틀을 개발하는, 실용적 접근법을 제안했다. 그것은 학문의 보편성을 위배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한국의 대내외적 특수성에 주목한다. 이는 더 근본적인 인식체계의 전환과 역사·전통의 바탕을 강조하는 근본적 접근과 대비된다.


이러한 노력들은 사실 기존 주류 정치학, 즉 패권과학의 무관심이나 공격에 직면해 있으나, 그것은 학문 발달 단계에서 언제나 나타나는, 극복해 나가야 할 현상이다. 한국적 정치학을 세우기 위해서는 주류 정치학과 단절하려고 하기보다는 이를 적절히 활용하면서 독창성을 가미하여 부분적·점진적으로 토대를 쌓아 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앞으로 한국 정치학의 독자적 정체성을 살릴 수 있는 실제 연구 작업들이 많이 진행되기를 기대한다.



실천의 모색

단일사회 정치론 서설

머리말

지금까지 한국 정치에 대한 연구는 주로 서양, 그 가운데서도 주로 미국 정치학의 분석 방법과 이론에 입각하여 연구되어 왔다. 보편성을 전제한 그런 분석들은 한국 정치를 이해하고 설명하는 데 매우 필요하다. 그러나 서양 이론으로 설명되기 어려운 특수한 부분들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인지라 그런 부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한국의 특수 상황을 살펴보아야 한다.


정치문화 분야가 아닌 쪽에서 나타난 한국의 독특한 정치적 현실에 대한 관심은 주로 분단 상황에 대한 관심이라고 할 수 있으나, 그것이 한국 정치에 미친 영향을 전면에 내세워 본격적으로 탐구한 연구는 많지 않다고 할 수 있다(김영명 2006). 이 연구에서 글쓴이는 위 연구들에서 포착하지 못한 한국의 독특한 현실에 착안하여 그것이 한국의 정치 상황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탐구해 보고자 한다. 그러한 특수한 상황을 단일사회라는 조건으로 파악하고, 이것이 구체적으로 한국 정치에 어떤 특징을 부여하는지를 밝히고자 한다.


이 연구에서 우리가 말하는 단일성은 동질성과 비슷하나 좀 더 강한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단일민족 동질사회 등은 서로 교차하여 쓸 수 있는 말이지만, 여기서는 단일사회로 통일한다. 특히 흔히 사용되는 단일민족 개념과의 일관성을 생각할 때 이 용어가 더 적합한 것 같다.


한국 사회의 단일성과 그 정치적 의미

한국이 단일사회라고 하는 말은 한국이 다른 나라 또는 다른 사회에 비해 동질성 또는 단일성이 두드러진다는 말로 이해하면 된다. 그중에서도 한국을 단일사회로 만드는 가장 큰 요소는 무엇보다 우리가 단일민족이라는 사실이다. 한국 사회는 민족적 단일성뿐 아니라 문화적 단일성도 두드러진다. 한국 사람들은 적어도 천 년 이상 하나의 민족으로 하나의 역사를 공유하여 왔으며, 민족사의 영토도 그다지 크게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에, 한국은 문화와 언어, 관습, 전통에서 단일한 문화권을 형성했다. 게다가 한국은 땅덩이가 좁을 뿐 아니라 자연조건이 다양하지 않고 단일하다. 어디를 가나 뒷동산과 앞 냇물로 이루어져 있는 같은 모습이다. 네 계절이 구분이 뚜렷하여 연교차가 큰 편이지만, 이런 기온 조건이 한반도 전역에서 동일하다. 따라서 다른 기후나 풍토에 따른 사람들의 심성 차이는 없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도 한국과 한국 사람들은 단일하다.


어쨌든 한국 사회의 단일성이라는 조건이 야기한 획일성, 집중성, 안정성, 응집성의 정치적 속성들은 한국 정치에서 권위주의와 민주주의 변화 과정을 거치면서 계속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단일사회와 정치발전

이러한 속성들이 앞으로 한국 정치 발전에 어떻게 작용할 것인가? 이를 규명하기 위해서는 먼저 정치 발전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정치 발전은 국민 통합, 안정, 민주화, 제도화, 투명화, 효율성 제고 등 많은 요소들로 구성된다. 그런데 이 요소들은 수준별 차이가 있다. 국민 통합과 안정은 정치 발전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들이며, 이는 비단 정치 차원뿐 아니라 사회 차원에서도 기본적인 국가 형성과 발전의 요건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은 단일사회이기 때문에 국민 통합, 안정, 제도화에 유리하다. 그 반면 같은 조건이 정치이념 가치 선택 폭을 좁게 만들어 민주주의의 심화에 불리하게 작용한다. 이념적으로 좁고 중앙으로 쏠리면서 비교적 안정된 정치가 한국에서 계속될 것이다. 인권 강화나 정치 참여의 확대와 같은 민주주의 심화의 요건들은 단일사회적 조건과는 직접 관련이 없다. 소수민족 문제 같은 것이 없기 때문에 이 점은 한국 정치의 안정에 유리하다고 할 수 있다.


결론

이 연구에서 밝히고자 한 것은 단일사회라는 한국의 특수한 사정이 한국 정치의 일상과 그 변화에 어떤 작용을 하는지에 관한 것이었다. 지금까지 밝힌 한국의 단일사회적 조건은 말 그대로 조건이지 한국의 정치 구조와 한국인의 정치행동을 결정하는 결정요인은 아니다. 한국의 정치가 그 밖에 다른 요소들에게도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사실은 굳이 강조할 필요가 없다. 게다가 단일사회적 조건 자체가 변화할 가능성도 고려해 보아야 한다.


이 연구는 설명이 불충분한 하나의 시론에 불과하다. 이 시론에서 제시한 가설들이 더 큰 의미를 지니려면 많은 경험 연구들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설문조사와 심도 있는 관찰을 통해 한국인의 사고방식과 행동 유형 등 한국 사회의 다양한 측면에 대한 경험 연구가 뒷받침되어야 비로소 이 소론에 학술적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 판가름 나리라 본다. 그러기 위해서는 경험 연구를 실제로 해야 하며, 다른 사회들과의 체계적인 비교연구도 해야 한다. 그런 경험적 연구가 쌓일 때 이 단일사회 정치론의 진정한 값어치가 평가될 수 있으리라 본다.


한국 정치의 특수성 연구 서설: 분단, 압축 성장, 단일사회 문화

서론: 한국 정치학의 정체성과 한국의 특수성

한국 정치 연구는 그동안 제기되었던 한국 정치학 정체성에 관한 담론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그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한 독자적이고 한국적인 연구 업적을 축적할 필요가 있다. 그 하나의 방법이 다른 나라에서 보기 어렵거나 다른 나라에 비해 더 강하게 나타나는 한국의 특수한 정치 현상을 포착하고, 그 원인과 실제 모습, 그리고 변화 가능성을 분석하는 것이다.


한국에 고유하면서도 중요한 정치현상을 이론적으로 다룰 만한 분석 틀이 부족한 상황에서 이 연구는 이를 시도해 보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연구는 한국 정치의 어느 특정 요소에 주목하기보다는 전체를 조망하면서 그 특이한 면모들을 살피고 그것이 생성된 원인과 앞으로의 변화 전망을 모색해 보는 일종의 시론 형태를 띤다. 여기서 제시하는 분석 틀에 입각하여 앞으로 그 분석 틀의 각 요소들에 대한 더 세부적인 연구를 수행한다면, 그것은 한국 정치학이 그 정체성을 찾아가기 위한 실제 연구의 본보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한국 정치의 특수성과 연구 동향

그러면 한국 정치의 특수성은 어떤 것들일까? 이에 대한 판단은 관찰자의 개인적인 관심에 따라 다를 수 있다. 이 장은 한국 정치의 특수한 현상으로 ① 이념·계급·지역 쏠림, ② 당파 싸움의 지배, ③ 인물정치,④ 정서적 휩쓸림의 네 가지를 들고, 이를 일으키는 특수한 조건으로 ① 분단 상황, ② 압축 성장, 그리고 ③ 단일사회 문화의 세 가지에 주목한다.


이러한 한국 정치의 특수성들 가운데 조건들(분단, 압축성장, 단일사회 문화)이 현상(이념·지역·계급 쏠림, 인물정치, 당파 싸움, 정서적 휩쓸림)보다 더 한국적인 특수성인 것처럼 보인다. 전자의 경우는 다른 나라에서 거의 찾아보기 어려운 반면(압축 성장은 그나마 다른 곳에서도 조금 볼 수 있다.), 쏠림, 인물정치, 당파싸움, 휩쓸림 등은 다른 나라에서도 볼 수 있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앞으로의 과제 및 결론

앞으로 이 서설이 구체적인 연구로 이어지려면 많은 후속작업들이 필요하다. 우선, 여기서 사용한 개념들, 특히 쏠림이나 휩쓸림 같은 개념들이 사회과학적인 의미를 지니려면 더 정교하게 정의되어야 할 것이다. 이런 바탕 위에서 분석 틀의 각 요소들을 측정하고 국가 간 비교가 가능한 기준을 세워야 할 것이다. 또 여기서 제시한 각 조건들, 각 현상들, 그리고 그것들의 변화에 대해서 더 자세한 개별 연구들이 수행될 필요가 있다. 다른 나라와의 비교 연구도 필요하다. 이 연구에서 제시한 분석 틀이 한국 정치의 특정 면모들을 이해하고 설명하는데 얼마나 적절한지는 더 세부적이고 구체적인 연구를 통해 검증해야 할 것이다. 이런 방식을 통하여 이런 접근법이 좀 더 학술적 엄밀성을 갖출 수 있으리라 본다.


한국적 정치학에 관한 담론만 무성하고 실제 연구 작업이 미진한 상태에서, 이 연구는 그러한 작업의 첫걸음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


* * *


본 도서 정보는 우수 도서 홍보를 위해 원저작권자로부터 정식인가를 얻어 도서의 내용 일부를 발췌 요약한 것으로, 저작권법에 의하여 원저작권자의 정식인가 없이 무단전재, 무단복제 및 전송을 할 수 없으며, 원본 도서의 모든 출판권과 전송권은 원저작권자에게 있음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