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를 보고 미래를 연다

   
신광순
ǻ
지상사
   
18000
2011�� 04��



■ 책 소개
우리나라의 위생관리와보건행정이 어떻게 진보해왔는지를 보여주는 이 책은 우리나라가 아직 낙후되어 식품위생관리가 허술하고 보건행정도 치밀하지 않던 시절에 발생하여 적지않은 인명을 앗아간 식중독, 전염병을 관리할 때 빚어진 혼란상이나 식품 관련 각종 규정을 제정할 때의 상황의 이면 등을 가감 없이 기술했다.과거 우리가 먹어온 음식물의 내용과 새로운 음식물의 탄생에 얽힌 이야기 등을 소개하고, 저자 자신이 공직에 있으면서 겪은 사건들의 속사정도자세히 밝혀놓았다.

■ 저자신광순
1956년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보건대학원에서 보건학석사, 건국대학교에서 농학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1965년 일본 국립공중위생원에서 환경위생기술과정을 수료했다. 국립의료원 영양과장, 보건사회부 식품위생과장, 국립보건원 위생부식품기준연구담당관을 역임했으며, 서울보건대학 교수를 거쳐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 교수로 정년퇴임했다. 
사단법인 한국식품안전협회 회장, 보건복지부 식품위생심의위원회 위원장, 식품의약품안전청식품기술자문관, 한국HACCP연구회 회장, 한국식품위생안전성학회 회장, 한국수의공중보건학회 회장, 사단법인 대한보건협회 부회장을 역임했다.「식품위생학」 「수의공중보건학」 「미국 FDA의 제도와 기능」 「HACCP 이론과 실천모델」 「국가 식품 안전성 확보와 HACCP의 역할과전망」「미생물 관리 Q&A :식품생산 현장 실무용」 등 다수의 저서와 논문이 있다. 국민훈장 모란장과 대한보건협회 학술대상을 받았다.

■ 차례
제1장 우리나라 초창기식품위생 관리제도
 
1950년대의 위생 관련 법규 
식품위생법의 공포와 그 역사적 배경 
식품위생행정의 선진화를위한 규격 기준 제정 
최초의 식품위생법 개정과 수입 식품 신고 제도 운영 
위생관리 업무 처리 기준의 제정 
부정, 불량식품추방 지시와 위생관리관실의 탄생 
보건 3대 악 추방을 위한 ‘보건범죄 단속에 관한 특별조치법’ 공포 
불량상품 전시회와우수식품(SF) 지정 규정 공포 
우수식품(SF) 지정 제도의 시행과 남긴 교훈 

제2장 보건사회부 식품위생과 시절의 회고 
영양사 제도 도입 경위와 숨은이야기 
국민영양조사 제도의 기틀 마련 
최초의 국민영양조사 및 전담 행정기구 설치 
WHO 주최 식중독 세미나 참석과 보고서발표 
한국식품공업협회의 탄생과 식품 관련 협회들 
식품위생관리 사업의 초석을 세우다 
행정처분 일원화를 위한 식품위생법 개정시도 
1970년도 식품위생관리 정책의 현황과 개선 방안 
1971년은 ‘식품위생행정 발전의 해’였다 
한국 1971년CODEX(국제식품규격위원회) 가입 
1973년 식품위생법 개정에 담긴 뜻을 되살리자 
제3장 1960∼70년대 식품위생·안전성 논쟁
롱가리트 사건과 식품위생 전담과의 탄생 
대한의사협회와 보건사회부 간의 색소 검출 논쟁 
라면 생산의 선두 주자 삼양식품에얽힌 이야기 
곰팡이독소(Aflatoxin)의 발암성 문제 
미국 코카콜라의 한국 시장 상륙에 얽힌 이야기
화학조미료(MSG)·인공감미료의 안전성 논쟁 
장염비브리오 식중독의 원인을 밝히기 위한 노력 
혼선으로 얼룩진 콜레라와비브리오 식중독 
콜레라 발생 현지에서 생긴 일들 
최초의 선진국형 아이스크림 해태 ‘부라보콘’에 얽힌 이야기 
최초의 유산균음료 ‘한국야쿠르트’에 얽힌 이야기 
목장우유의 대장균 검출 파동 
라면의 실험쥐 급여 시험과 유해론 시비 
롯데 껌의 철편검출 사건 
월남전 파병과 김치통조림 수출 
최초의 스낵제품 ‘농심새우깡’에 얽힌 이야기 
삼천리식품의 석회두부 사건
양조식초인 환만식초의 유해성 시비 
고름우유 사건과 파스퇴르유업의 선전 술수 
수입 우지 유무해 판정은 검찰의월권행위

제4장 제도 개선에 기울인 노력과보람 
1987년 ‘식품관리청’의 필요성을 최초로 주장하다 
FDA 필요성 주장과 식품의약품안전본부의 탄생
HACCP제도 도입과 한국HACCP연구회의 발족 
HACCP제도 정착과 활성화에 기여한 활동 
식품의약품안전청의 발족과식품기술자문관 위촉 
미국 FDA 수준의 식품의약품관리청 신설을 주장하다 
식품안전정책의 방향과 HACCP의 역할을 촉구
식품안전 정책상 필요한 식품위생법 개정안을 제시 
식품안전기본법을 최초로 만들어 제출하다 
제5장 앞날을 인도한 보건·영양·위생과의 만남
국방부 공채로 시작된 보건직과의 인연 
메디컬센터 영양과의 기틀을 세운 보람 
WHO 장학생으로 선발되는 행운
1965년 일본의 보건위생 분야 현황과 견문기 
1965년 WHO 연수 시절의 일들을 다시 회고하며 
제6장 전공 분야 사회 활동과 기여한 일들
서울대 보건대학원 동창회의 기반을 닦다 
초창기 식품위생심의위원의 구성과 위촉의 역사 
대한보건협회의 발족과보건대상 수상 
수의공중보건학회 설립으로 학문의 초석을 다지다 
식품위생안전성학회의 설립과 이룩한 업적 
식품 관련 언론보도의중요성과 소신을 밝히다 
‘보건의 날’ 기념식에서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다 

인명색인 
신광순 박사 프로필 




과거를 보고 미래를 연다


우리나라 초창기 식품위생 관리제도

식품위생행정의 선진화를 위한 규격 기준 제정

1962년 식품위생법이 공포되었지만 그 시행을 위한 후속 법규가 없는 상태로 몇 년을 지낼 수밖에 없었던 것이 당시의 상황이었다. 특히 동법 제6조(현 7조) 및 제8조(현 9조)의 기준과 규격은 실무적으로 절대 필요한 조항인데도 별도의 규정이 없었다. 여기서 그 전후의 경위를 간추려 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우리나라의 최초의 기준 및 규격은 1966년 3월 23일 자로 공포한 식품첨가물의 제조·가공·사용에 관한 기준과 그 성분의 규격에 관한 규정(보사부령 제175호)이었다. 최초로 정해진 식품첨가물은 식용색소 19종(1957년 보사부 공고 제197호)을 포함하여 총 40품목이었다. 그 후 식용색소에 대한 만성 독성 문제가 제기되어 1966년 11월 26일 식품위생법시행령 개정(대통령령 제2808호)으로 식용색소 등 11종을 삭제하여(경과 조치:1967.3.26) 29품목이 남았다.


그 후 이 규정은 몇 번의 개정을 거친바 1차(1966.12.20:부령 제190호) 때는 파라옥시안식향산부칠의 사용 기준이 개정되었고, 2차(1967.10.25:부령 제204호) 때는 소르빈산 및 그 염류의 사용 기준이 개정되었으며, 3차(1967.12.30:부령 제209)에 이어 4차 개정(1968.2.27:부령 제214호) 시에는 대상 첨가물 113품목을 추가하여 함께 142종의 규격 기준이 정해졌다. 다시 63품목의 추가(1969.4.15:부령 제248호) 및 한글화(1969.8.1:부령 제329호 및 통합)로 총 205품목(당시 고시 첨가물 수 224종)이 되었다. 또한 이 규정의 명칭도 식품첨가물의 규격 및 기준(1969.10.29:부령 제337호)으로 개칭되었다. 그 후 54품목의 추가 및 4품목(사이클라민산나트륨 및 칼슘, 식용색소 녹색 제1호, 메칠나프토퀴논)의 삭제(1971.9.10:부령 제380호)로 총 255품목(화학적 합성품 250종, 비화학적 합성품 5종-젤라틴, 카라멜, 효모 및 그 혼합제제, 타알색소제제)에 대한 규격이 기준화되어 현 식품첨가물의 체제를 이룩하였다.


한편 일반 식품의 규격 기준은 1967년 12월 23일 자로 공포한 식품의 규격 및 기준(부령 제206호)에서 최초로 간장 1품목만을 대상으로 설정됐다. 그 후 1차 개정(1968.7.29:부령 제228호) 시 청량음료수, 분말청량음료, 얼음, 식육제품, 어육연제품 등 시중 유통이 많고 위생상 우려성이 높은 5품목을 추가하였다. 2차 개정(1969.10.29:부령 제336호) 때에는 45품목을 추가하여 총 51개 주요 식품의 규격 기준을 제정하였다.


이때 일반 식품과 별도로 우유 및 유제품(16품목)에 대하여는 유등의 성분 규격과 보존 방법의 기준(1968.7.22:부령 제226호)에서 다루었다. 또한 기구, 용기, 포장에 대한 규격 기준(1969.4.15:부령 제249호)은 기존의 식품의 규격 및 기준에 추가하여 제4. 기구·용기 및 포장의 제조 기준 및 원재료의 규격 항목에 삽입하여 단일화하였다. 그 후 그때까지 규정한 모든 규격 기준을 통합할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그리하여 기존의 일반 식품 51품목에 새로 8개 식품을 추가하고, 여기에 다시 유제품 16품목과 기구, 용기, 포장 및 완제품(장난감)까지 포함하여 총 91품목이 망라된 식품 등의 규격 및 기준(1971.6.1:부령 제376호)을 공포함으로써 최초의 식품공전을 탄생시켰다.


당시의 이러한 시도는 낙후된 우리나라 식품위생행정의 선진화와 과학화에 크게 기여한 업적이라 할 수 있다. 그 식품공전은 우리나라 식품위생법 제정의 모태 역할을 한 당시 일본의 규격 기준(유제품, 청량음료, 얼음, 식육 및 어육제품 등) 보다 품목 수가 많았다. 또한 국제식품규격위원회(CODEX)에서도 기준 규격에 대한 작업을 시작할 무렵에 이루어진 작품이기 때문에 더욱 가치가 있었다. 그러한 업적을 이룩한 것은 당시 공직자의 사명감과 노력의 소산임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당시는 지금처럼 우선 연구 사업을 수행한 후 그 결과를 활용하는 식의 한가한 세상이 아니었다. 물론 예산도 한 푼 없었고 시간의 여유도 없었으며, 오직 열과 성을 다해 밀어붙인 결과였다.


위생관리 업무 처리 기준의 제정

당시의 식품위생법에는 현행과 같이 위법 사항에 대한 시정명령이나 허가취소 등 행정제재에 대한 구체적인 규정이 없었다. 따라서 중앙이나 지방을 막론하고 일정한 통일된 기준이 없이 주관적 판단으로 시행하다 보니 사회적인 물의는 물론이고, 불필요한 오해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모순을 시정하고 보다 합리적인 행정행위를 수행하기 위한 통일된 기준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식품 등 위생관리 업무 지침(보사부훈령 제69호)이 공포된 것은 1968년 4월 1일이다. 물론 당시의 내용은 지금의 행정처분 기준과 달리 항목별로 상세히 규정하고 있지 못했다. 단지 위생관리의 대상인 식품 등(식품, 첨가물, 기구·용기 및 포장)의 수거, 검사 및 처분의 기준을 강화하고 일원화하는 데 초점을 두고 만든 지침이었다. 그렇지만 이 지침은 중앙과 지방 시도의 행정처분 방법을 단일화하기 위한 최초의 규제로써 행정행위의 과학적 수행에 기틀이 되었다.


얼마 후 이 훈령의 시행상 문제점을 보완한 1차 개정(일자 미상:제85호)이 이루어졌는데, 보다 구체적인 내용을 추가하고, 훈령의 명칭도 식품 등의 위생관리 업무 처리 규정(1970.6.23:보사부훈령 제111호)으로 현실화하였다. 이후에도 몇 차례의 개정(1970.12.14:제131호 및 1973.11.24:제178호)이 계속되었다.


한편, 이 규정의 시행이 행정처리의 표준화를 기하는 데는 기여했으나, 융통성 없이 획일화되다 보니 지나친 처분을 강요당하는 영업자도 종종 생겼다. 그러나 부정·불량식품 근절이 지상 과제였던 당시의 시대상으로 볼 때 다소의 무리는 감수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특히 일선에서 법을 집행하는 공직자들의 적당주의와 뇌물 수수 등의 비리를 사전에 예방하는 수단이 되기도 하였다.



이와 같이 단순히 행정처분 기준을 정하여 훈령 형식의 별도 부령으로 운영하다 보니 시행 과정에서 법률적 문제가 대두되었다. 즉 모법인 식품위생법에 근거하지 않은 행정제재는 불가능하다는 유권해석이 내려져 그때까지 훈령에 규정한 내용을 모법에 반영하였다. 그 결과 현행 식품위생법 제11장(시정명령, 허가취소 등 행정제재)이 신설되었으며, 제55조(시정명령), 제59조(품목의 제조 정지 등) 및 제63조(면허 취소 등)에 그 내용이 명시되었다. 그 후 시행규정인 동법 시행령 및 시행규칙(제53조; 행정처분의 기준)의 개정과 추가 보완을 거쳐 현재에 이르고 있다.



보건사회부 식품위생과 시절의 회고

최초의 국민영양조사 및 전담 행정기구 설치

1969년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시행한 국민영양조사는 보건사회부 주관으로 한국영양학회에서 실시하였다. 1967년 식품위생법 개정 시 국민영양조사 및 지도(제34조의 2)에 관한 조항이 추가된 지 2년이 지난 때였다. 지금은 1995년에 제정한 국민건강증진법 제16조(국민영양조사 등)에서 규정하고 있지만 원래는 식품위생법에 담긴 내용으로, 당시 식품위생담당관이었던 필자는 이 사업 추진을 책임지는 위치에 있었다. 그때 기울인 노력을 간추려 소개한다.


우선 국민영양조사를 실시하기 위한 예산을 확보하는 것이 선결 과제였다. 그 시대의 여건이나 정부의 보건정책의 비중으로 볼 때 신규사업을 위한 예산을 딴다는 것은 속된 말로 하늘의 별 따기였다. 당시 국민영양조사의 실시는 법적인 사항이지만 의무적인 규정은 아니었다. 즉 식품위생법 제34조의 2에서는 "① 보건사회부장관은 국민영양을 개선하기 위해 국민영양조사를 실시한다. ② 국민영양조사 사무에 종사하게 하기 위하여 서울특별시, 부산시 및 도에 국민영양조사원을 둔다."라고만 규정했을 뿐 "실시해야 한다."라거나 "두어야 한다."라는 의무를 규정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므로 이 규정에 의거해 국민영양조사를 실시하는 데 필요한 예산을 확보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또한 당시 보사부 식품위생담당관실에는 영양 업무를 전담하는 직원이나 부서도 없던 실정이어서 이 부분도 먼저 해결해야 할 과제였다.


우선 국민영양조사 및 영양 개선 사업의 당위성과 전담 기구의 설치 필요성을 포함한 국민영양 종합대책안을 만들었다. 그런 다음 위원회를 소집하여 전문가의 의견과 토론을 거쳐 최종안을 청와대에 보고하는 절차를 밟기로 하였다. 그 첫 단계인 위원회는 당시 영양 분야의 전문가인 허금(경희대 약대 학장, 전 국립화학연구소장, 한국영양학 회장), 채례석(전 국립화학연구소장), 유정열(덕성여대 영양학과), 보건 분야의 권이혁(서울대 의대 예방의학교실) 교수 등 권위자를 망라하여 구성하였다. 당초의 시안을 중심으로 전문가의 의견을 반영한 결과 훌륭한 국민영양 종합대책을 성안할 수 있었다. 그 자료를 청와대 보건사회 담당 박숙현 비서관(서울대 의대 출신, 경북 청도 출신 제8대 국회의원 역임)에게 전달한바 앞으로 실시할 만한 훌륭한 정책으로 검토 후 조치하겠다는 확답을 받아 내는 개가를 올렸다.


그 후 1968년 보건사회부 예산에 국민영양조사 사업비를 반영하고, 경제기획원의 예산심의를 거쳐 우여곡절 끝에 총 600만 원의 예산을 확보하였다. 그러나 세부 시행 사항인 조사 방법 및 대상의 결정, 조사원의 확보 등에는 당시 보건사회부와 각 시도 및 일선 보건소의 여건으로 볼 때 어려움이 많았다.


행정처분 일원화를 위한 식품위생법 개정 시도

1969년 8월 공포한 보건범죄 단속에 관한 특별조치법은 이름 그대로 단속 위주 법규에 불과한 것이었다. 특히 식품관리는 기술행정 분야로 단속만으로 성과를 기대할 수 없는 일이었다. 따라서 이 특별조치법은 입안할 때부터 기본법규인 식품위생법의 보완을 전제로 한 것이었다. 그때 입안한 식품위생법 개정 내용을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① 제3조(판매금지)를 개정하여 기존의 위생상 유해식품의 범위에 위조·변조식품을 추가하여 판매 금지 대상 식품으로 함

② 과대광고, 과대포장 및 허위표시 금지 규정 신설 <현 제11조(허위표시 등의 금지)>

③ 식품검사 결과 이의가 있을 경우 재검사 기능을 부여함 <현 제17조의 2(식품 등의 재검사)

④ 영업의 허가 사항을 신고 사항으로 변경함 <현 제22조(영업의 허가 등)>

⑤ 관계 공무원의 단속 행위에서 폐기처분에 앞서 압류조치가 가능하도록 함 <현 제56조(폐기처분 등)>

⑥ 축수산제품의 규격 기준 위반 시 보사부장관은 해당 제품을 인허가한 기관(예 : 농림부, 해수부 등)에 통보하여 영업허가 등을 취소할 수 있도록 함.


또한 당시 보사부에서는 전술한 식품위생법 개정안에 추가하여 국회 보사분과위원회의 심의 과정에서 별도 수정안을 제출한바 그 내용은 ▲식품영업의 종류에 수출업을 신설 ▲수입식품에 추가하여 수출식품도 신고토록 의무화 ▲무허가 제조가공식품에 대한 압류 또는 폐기처분권의 부여 ▲영업허가 등 취소권의 단일화 ▲동업자조합 운영에 필요한 국고 보조 ▲업종의 분류 및 영업허가권에 관한 사항에 대한 보사부령 조정 등이다. 이들 식품위생법 개정안 중 특히 ⑥항은 지금도 우리나라 식품위생관리의 현안으로 대두되고 있는 관련 부처 및 관리 법규의 다원화 문제 등을 제도적으로 개선하기에 앞서 그 대안으로 제시한 차선책이라 할 수 있다.


그때 문제가 된 조항은 ① 축산물가공처리법, 수산업법(현 수산물품질관리법), 주세법의 허가를 받아 생산한 업소의 제품이라도 식품 위생법의 규정을 위반할 때에는 보사부장관이 해당 허가 관청에 행정처분을 요청할 수 있도록 한 것, ② 행정처분 요청을 받은 관청에서는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허가 취소 등의 처벌을 반드시 하도록 의무화한 것 등이었다. 즉, 부정·불량식품 등 위해식품의 경우 실질적인 행정 처분을 보사부장관이 행할 수 있도록 하려는 의도였다. 결과적으로 타법에 의한 허가권자의 권한을 식품위생법으로 규제함으로써 직접적인 행정행위를 가능케 하는 기발한 아이디어였다.


예상대로 이 개정안은 국무회의 심의 과정에서 관련 부처의 반대에 부딪혔으며, 총무처장관의 주관 하에 합의 도출 후 심의하기로 하고 일단 보류되었다. 결국 그 식품위생법 개정안은 3년 후 유신 체제 하의 비상국무회의를 통과하여 1973년1월 26일 자로 공포되었다. 물론 문제의 조항은 포함될 수 없었다. 지금도 그때의 아이디어를 한 번쯤 관심을 갖고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1960∼70년대 식품위생·안전성 논쟁

라면 생산의 선두 주자 삼양식품에 얽힌 이야기

2000년도에 발간한 『한국식품공업협회 30년사』에 수록된 내용을 정사라 한다면 여기 기술하는 이야기는 필자가 경험한 야사라 할 수 있다.


『한국식품공업협회 30년사』 296쪽에 실린 삼양식품(주)의 개요를 그대로 인용하면, "삼양식품은 1961년 정직과 신용을 모토로 창업한 이래 1960년대에는 식량난 해소에 공헌하였고, 1970~1980년대에는 식생활 개선에 앞장서며 국민건강 증진에 기여해 왔다. 삼양식품은 1963년 9월 15일 국내 최초로 삼양라면을 생산하여 당시 직면했던 식량난 해소에 적극 나섰다.(후략)"라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108쪽에는 "국내 라면 시장의 도입기인 60년대는 식량의 절대량이 부족하여 미국의 원조 식품인 밀가루를 이용한 정부의 혼분식 정책이 적극 장려되던 시기였다. 이에 힘입어 새로운 식품으로 개발된 삼양라면은 첫해인 1963년 100만 식에서 1966년 240만 식, 3억 2,400만 원을 시작으로 1967년 10억 1,400만 원, 1970년 97억 9,200만 원의 매출을 올리는 등 가히 천문학적인 성장을 거듭했다.(후략)"라고 기록되어 있다.


필자가 삼양식품(주)을 처음 알게 된 것은 내가 1967년 2월 보건사회부 식품위생과 식품화학계장으로 부임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였다. 당시 삼양식품은 파라핀 사건으로 홍역을 치르고 있는 중이었다. 라면 원료에 유화제로 사용하는 식품첨가물인 자당지방산에스텔이 파라핀으로 판명된 데서 생긴 문제였다. 그 경위를 요약하면, 당시 실무자였던 김주성 씨가 서울 성북구 월곡동에 소재한 삼양식품 공장(설립 초 공장으로 두 라인의 소규모 시설)에 감시·지도차 갔다가 의심이 생겨 수거한 샘플을 국립보건연구원에 시험 의뢰한바 파라핀으로 확인되어 즉시 시정조치를 내린 것이 화근이었다. 그러나 이 조치는 내가 부임하기 이전에 이뤄진 것으로 상세한 내용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삼양식품 입장에서는 전혀 예측하지 못한 사건이었고, 그냥 넘길 수 없는 일이었다. 하루는 그 회사 총무 담당 현병무(玄炳武) 이사가 나를 찾아와 경위를 설명하고 사실과 다르니 재조사하여 시비를 가려 달라고 요구하였다. 필자로서는 담당 계장으로 부임하여 미처 소관 업무도 다 파악하지 못한 시기였으나 책임상 그대로 넘길 사안이 아니었다.


우선 실무자에게 경위를 확인하고 시험을 실시한 보건원에도 결과를 알아보는 등 그 처리 과정을 추적해 보았다. 수거한 시료의 시험의뢰 서류를 보니 검사 항목이 파라핀이었으며, 보건원 담당자도 공정시험법에 따라 실험한 결과 파라핀으로 확인한 것으로 보아 외견상 처리에 큰 하자는 없었다. 그러나 삼양식품 측에서는 절대 파라핀을 첨가물로 사용한 사실이 없다고 항변하면서 억울함을 호소하는 것이 아닌가? 이때 나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공직자의 도리이며 전문기술 분야 담당자의 책임임을 절감하였다.


그냥 유야무야로 넘길 수 없는 일이었기에 끈기와 신념을 가지고 문제를 파헤쳐 보기로 마음먹었다. 그 결과 보사부의 시험 의뢰 시 실무자가 육안 소견만으로 파라핀으로 판단하여 일방적으로 확인 시험을 요구하였고, 보건원 시험 담당자도 확인 시험 시 예상 시험 방법 등의 검토 없이 경솔하게 일을 처리한 것이 확인되었다. 그리고 필자가 한국의 공정시험법과 일본의 위생시험법주해 등을 자세히 검토한 결과 파라핀과 자당지방산에스텔의 시험 방법이 거의 일치함을 찾아내었다. 즉, 파라핀 시험법을 적용하면 파라핀으로, 자당지방산에스텔 시험법을 적용하면 자당지방산에스텔로 확인됨을 알아내었다. 즉시 동일한 샘플을 재수거하여 자당지방산에스텔 시험을 의뢰하니 이번에는 파라핀이 아님을 확인할 수 있었다. 외형상으로는 파라핀과 자당지방산에스텔을 구별하기 어렵다 보니 시험 담당자 개인의 주관적 판단으로 일을 키워 버린 셈이었던 것이다.


당시 이 사건이 보사부의 신중한 대응으로 잘 처리되었기에 망정이지, 만일 그때 삼양라면 원료에 공업용 파라핀을 사용한 것으로 잘못 처리하였다면 엄청난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을 것임은 자명한 일이다. 특히 당사자인 삼양식품은 초창기의 어려움을 딛고 일어날 때로 마치 돋아나는 새싹이 잘릴 뻔한 아찔한 순간이었다.


곰팡이독소(Aflatoxin)의 발암성 문제

이 사건은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식품 위해 문제에 대하여 대통령이 직접 관심을 나타낸 최초의 일로 기록할 수 있다. 문제의 발단은 1968년 5월 당시 전주기독병원 원장이었던 Seel 박사의 조사 보고에서 비롯되었다. 그는 한국인의 암 발생에 관한 임상조사에서 전체 암 환자 3,330명 중 위암 환자가 32%나 점함을 밝혔다.


또한 위암 환자와 정상인을 각각 170명씩 선정하여 그들의 식이 섭취 상황을 조사한바 위암 환자가 정상인보다 훨씬 많은 양의 된장(2.2배)과 간장(2.6배)을 먹고 있었다는 사실을 밝혀내었다. 그 즉시 재래식 된장과 간장의 원료인 메주를 미국 농무성의 북부지역연구소(Northern Regional Research Laboratory, Peoria, Illinois)에 보내 검사를 요청하였다. 그 결과 메주에서 곰팡이 균인 Aspergillus flavus-oryzae가 발견되었다.


이러한 결과에 근거하여 그는 한국인 중 위암 환자가 많은 원인이 이들 곰팡이 균이 분비하는 독소인 Aflatoxin 때문일 가능성이 있다고 언급하였으며, 그 내용이 유명 잡지인 「The Time」(1969.5.9,p.48)에 보도되었다. 물론 우리나라 언론에도 기사화되었으며, 당시 박정희 대통령도 큰 관심을 가졌다. 특히 박 대통령께서는 우리 고유 식품인 된장을 즐겨 드셨기에 청와대 비서진에게 사실 여부를 알아보도록 하였으며, 그 결과 보건사회부 정희섭(鄭熙燮) 장관에게 지시가 떨어졌다.


당시 보사부에서는 즉시 전문가들에게 자문을 구하는 등 신속한 대응을 하였다. 우선 곰팡이 균 및 독소에 대한 연구 경험이 있는 분들의 협조를 구하는 일부터 시작하였다. 그들의 면면과 논문을 보면, 서울대 사대 이태영(李泰寧) 교수팀의 「식품 중의 산생독성 대사에 관한 연구-한국 발효 대두 식품 중의 Aflatoxin의 검출 연구」(한국식품과학회지, 1:78-84, 1969), 연세대 의대 권숙표(權肅杓), 정용(鄭勇) 교수팀의 「한국 발효식품 중 Aflatoxin의 함유에 관한 연구」(예방의학회지 제1권 제1호, 1969), 과학기술처 산하 원자력연구소 이근배(李根培) 박사팀의 「한국식품 중의 발암물질의 검출에 대한 연구」(과기부 연구보고서, 49p, 1970), 건국대 생물학과 이배함(李培咸) 교수팀의 「Aspergillus균의 한국산업주에 의한 Aflatoxin의 생산성」(건국대 논문집, 10:807∼814, 1971) 및 「한국에서 Aspergillus flavus에서 분리한 Aflatoxin 생산」(응용미생물연구소 보고서, No.2, 1971) 등이 전부였다.


한편, 이 사건이 터진 후 과학기술처의 지원으로 한국종균협회가 조사위원회를 구성하고 국외 자료 200여 편과 전술한 국내 자료를 분석하여 한국의 아프라톡신(1971년 12월)이란 보고서)를 발표하였다. 그 내용 중 「8. 한국에 있어서 Aflatoxin의 연구」를 보면 "각종 발효식품에서 Aflatoxin이 검출되지 않았다."라고 기술하고 있다. 특히 이근배 박사 등의 실험에 사용한 균주들은 25℃에서 5~6일간 배양한 배양액에서도 검출되지 않았다.


이 보고서에서는 또 "전주예수병원 Seel 박사의 한국산 메주에 발암물질이 있을 것이라는 추정은 아직 뒷받침할 만한 증거가 없다. 우리나라 메주는 11월 이후 제조하며 3~4월에 간장독에 넣는바 메주 발효 시기의 기온은 적어도 20℃ 이하로써 그 온도대에서는 Aflatoxin 생산 균주의 활성이 떨어져 독소를 분비할 수 없음이 공인되고 있다. 또한 메주의 원료인 콩은 Aflatoxin 생산 기질로 적당치 않으며, 특히 자가 생산용 메주에는 여러 가지 곰팡이가 혼생하므로 일단 생산된 Aflatoxin이 전환(micro bial transformation)될 것으로 생각한다. 이상의 조건을 고려할 때 우리나라 된장과 간장에서 Aflatoxin이 검출될 수 없음을 입증할 수 있다."라고 기술하고 있다. 그러나 이 보고서의 9. 결론 부분을 보면 "우리나라에서 발효식품은 식생활에서 절대적인 비중이 있으며, 환경 조건에 따라서는 Aspergillus flavus의 오염으로 인한 Aflatoxin의 생산 가능성을 부인할 수 없기 때문에 보다 깊이 있는 조사·연구가 필요하다."라고 강조하고 있다.


한편, 보사부의 실무자였던 필자는 당시의 상황으로 보아 이 발암성 논쟁을 직접 감당할 능력이 없다고 판단하였다. 박정희 대통령은 이 문제에 대해 당시 암 전문 병원인 한국원자력병원을 중심으로 조사와 연구를 시작하게 하였으며, 연구비도 과학기술처에서 지원하였다. 솔직히 보건사회부에서는 이러한 사업을 수행할 엄두도 낼 수 없는 여건이었고, 과기처의 결과만 기다리는 상태였다. 이 사건 이후 곰팡이독소에 대한 조사·연구가 일부 학자들(방사선의학연구소 이장규, 방사선농학연구소 연세대 이서래, 한국화학연구소 노정구)에 의하여 수행되었다. 결국 한국의 전통 발효식품인 장류에는 발암물질이 존재할 수 있다는 실험 결과를 얻었다.



제도 개선에 기울인 노력과 보람

HACCP제도 도입과 한국 HACCP연구회의 발족

우리나라에 HACCP시스템이 최초로 도입된 것은 1995년 12월 30일 식품위생법(제32조의 2: 위해요소 중점관리기준)에 근거 조항을 신설한 것이 계기라 할 수 있다. 그 후 정부의 구조조정 시책으로 축산물 위생관리 업무가 보건복지부에서 농림부로 이관됨에 따라 축산물가공처리법(제9조: 축산물 위해요소 중점관리기준)에 관련 조항을 신설(1997.12.13)함으로써 법률적 조치가 마련되었다. 그러나 이 제도의 적용 대상인 식품업계에서는 아무런 준비가 없었으며, HACCP란 용어 자체도 생소한 감이 있었다. HACCP제도는 식품의 위생적 안전성 관리의 새로운 과학적 기법으로써 선진 각국은 이미 그 도입을 추진하고 있을 때였다. 특히 WTO 협정으로 국가 간의 식품 교역 시에는 HACCP시스템의 원칙을 적용하는 추세였기에 이 제도의 도입은 식품업계의 당면 과제이기도 하였다.


마침 필자는 대학에 재직하면서 농림부의 의뢰로 HACCP제도 도입에 대비한 연구를 1995년 말부터 3년간의 용역사업으로 실시하고 있었다. 연구과제는 식육처리장(도축장 및 도계장)과 유통 과정에서의 축산식품에 대한 위생적 안전성 관리 대책 수립을 위한 종합적 조사연구로 본인이 연구 책임을 맡고, 이문한(잔류물질) 서울대 교수, 홍종해(오염미생물) 강원대 교수, 박종면(유해물질) 가축위생연구소 검정화학과장, 김옥경(수입축산물) 국립동물검역소장 등이 분야별로 연구를 맡아 공동으로 수행하였다. 연구 목적은 대부분의 선진국과 마찬가지로 HACCP시스템의 우선 적용 대상인 축산물 작업장에 대한 실정을 조사하고 그 개선책을 제시하기 위함이었다.


이 연구사업의 일환으로 1996년 4월 9일에는 HACCP시스템 연구를 위한 산·학·연·관 합동 모임을 한국식품위생연구원(현 한국보건산업진흥원) 소회의실에서 가졌고, 그 결과 우리나라 최초로 HACCP연구회를 설립하는 데 합의하였다. 그 후 연구회 창립을 겸한 제1회 동물성식품의 안전성 확보를 위한 한·일 국제심포지엄을 1996년 5월 8일 서울 교육문화회관 3층 거문고홀에서 개최하였다.


제1회 행사 주제는식품산업과 HACCP로 한국식품위생연구원의 협찬과 농림수산부 및 보건복지부의 후원으로 진행됐다. 당일 행사에는 각계 전문가들이 고루 참여하였으며, 소요 경비 일체는 전술한 연구비에서 지출하였다. 발표 주제는 ① 일본의 HACCP방식 도입의 현황과 앞으로의 동향(일본식품보전연구회 가와바타 회장), ② 한국 식품산업의 HACCP제도 도입의 현황과 전망(한국식품위생연구원 천석조 박사), ③ 일본의 식육검사에 있어서 HACCP 도입의 필요성(후생성 생활위생국 식품위생과 다카야 과장보), ④ 일본의 HACCP 승인제도의 식육제품에의 적용(국립공중위생원 위생수의학부 도요후쿠 수석연구원). ⑤ 게맛살의 위생미생물 제어를 위한 Critical limits 설정 연구(한국식품위생연구원 김창남 선임연구원), ⑥ 살균우유 제조 공정에서의 HACCP 적용(고신대 식품영양학과 정동관 교수), ⑦ 식육처리장(돼지)에서의 미생물 오염과 그 방지법(일본 이와테대학 수의학과 시나가와 교수). ⑧ 한국 축산물처리장의 실태와 HACCP 도입 방향(강원대 수의학과 홍종해 교수), ⑨ 식육위생검사소에서의 식육 중의 잔류항생물질의 관리시스템(일본 가나가와현 식육위생검사소 하라타 과장) 등이었다.


이 행사 후 한국 HACCP연구회 창립총회를 열어 회칙을 확정하고, 임원을 구성하였다.


여기서 새로 발족한 한국 HACCP연구회 회칙 중 목적과 사업 내용을 소개한다.

* 목적(제2조) 본회는 식품의 위생적 안전성 확보를 위하여 HACCP제도를 연구 개발하고 상호간의 정보 교류를 통한 학술 활동과 식품산업의 발전을 위한 산학 연관의 협동을 도모함으로써 국민보건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


* 사업(제4조) 본회의 회칙 제2조의 목적 달성을 위하여 다음의 사업을 수행한다. ① 제도 확립과 시행을 위한 연구 개발, ② 국내외 정보교류 및 조사, ③ 현장 종사자를 위한 연수 교육 및 훈련, ④ 정기간행물 및 관련 자료 발간, ⑤ 산학협동의 위한 학술 및 기술 지원, ⑥ 학술 발표 및 국제 협력,⑦ 기타 본회 발전을 위한 제반 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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