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방위 지배

   
윌리엄 엥달(역자: 유지훈)
ǻ
에버리치홀딩스
   
19500
2010�� 05��



 책 소개
미 국방부가 지난 1960년대 냉전 시절부터현재 오바마 행정부까지 암암리에 실행해온 "전방위 지배(Full Spectrum Dominance)" 프로젝트를 파헤친다. 전방위 지배는육.해.공을 비롯하여 우주와 사이버공간에 이르기까지 지구의 전 영역을 삼킬 미 국방부의 가장 비밀스럽고도 위험한 계략이다. 이 프로젝트는 사실전체주의를 지향하지만 "자유시장과 민주주의"의 탈을 쓰고 레이더망을 교묘히 피해 세계 곳곳에 침투해 자원을 뺏는 전략을 쓴다. 이 책은 미국방부의 전략에 가려진 어두운 과거와 앞으로 다가올 재앙을 파헤치기 위해 역사·지정학적인 관점에서 냉전이 끝난 1991년부터 현재 오바마행정부까지 지난 20년을 조명한다. 

■ 저자 윌리엄엥달
독일계 미국인으로 1944년 8월 9일 미국 미네소타 주 미니애폴리스에서 태어났다. 프린스턴 대학에서 공학과법리학을, 스웨덴에 있는 스톡홀름 대학원에서 전략경제학을 전공했다. 졸업 후 경제학자이자 프리랜스 기자로서 뉴욕과 유럽 등지에서 활동해왔다.그는 미국 주류 사회가 싫어하는 대표적인 좌파경제학자 지정학자 역사학자다. 수많은 국제회의에서 지정학 경제 에너지를 주제로 강연하고, 각종 좌익매체에 출연하거나 글을 연재하고 있다. 세계화 연구를 주도하는 글로벌서치(globalresearch.ca), 일본의 「니혼게이자이신문」,시사월간지 「포사이트」, 그랜트의 인베스터(investor.com), 「유러피언 뱅커」「비즈니스 뱅커 인터내셔널」을 비롯하여 다수의 간행물에정기적으로 기고해왔다. 『석유 지정학이 파헤친 20세기 세계사의 진실』 『파괴의 씨앗 GMO』『Gods of Money: Wall Streetand the Death of the American Century』등의 저서가 중국과 러시아 등에서 번역 출간되었다.

■ 역자 유지훈
경기대학교 영어영문과를 졸업하고 외국어학원에서 리스닝과 회화 강의를했으며, 백석대학교에서 히브리어를 감수한 바 있다. 현재는 엔터스코리아에서 출판기획 및 전문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옮긴 책으로는 『미정보기관의 글로벌 트렌드 2025』 『식량전쟁』 『걸어서 길이 되는 곳, 산티아고』 『하나님의 부자학』『마음으로 이끌어라』『성공을 리드하라』『팀장님, 회의 진행이 예술이네요』등이 있다.

■차례
머리말
1장 그루지야 전쟁과 푸틴
2장 색깔 혁명과 스워밍 전술로 러시아를 장악하라
3장"사이비 민주주의"로 중국을 정복하라
4장 인권을 무기로 삼다: 다르푸르에서 티베트까지
5장 기지가 난립하는 제국
6장스타워즈의 역사
7장 핵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미국
8장 닥터 스트레인지러브는 살아 있다!
9장 전쟁 로비의 망령이출몰하다
10장 요다의 "군사 혁신"
11장 전방위 지배




전방위 지배


그루지야 전쟁과 푸틴

2008년 8월 8일, 조그마한 그루지야가 남오세티아 주에서 벌인 교전은 1962년 핵전쟁으로 번질 뻔했던 냉전 라이벌(미국과 소련) 간의 쿠바 미사일 위기 이후 가장 위험한 사건이었다.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는 소련이 플로리다에서 90마일 떨어진 쿠바에 미사일 기지를 건설하던 중 미 정찰기가 이를 포착하면서 불거졌다. 기지가 완공되었다면 러시아는 미국이 손을 쓰기도 전에 핵무기를 날려 보낼 수 있었을 것이다. 사실 이는 미국이 소련의 핵 실험장과 매우 가까운 터키(나토 회원국)에 토르와 주피터 핵미사일을 설치한다는 결정에 러시아가 맞대응한 것이었다.


1989년, 냉전은 끝났고 미국을 위시한 서구 사회는 동유럽 공산국가를 비롯하여 세계 여러 지역에 자유와 민주주의 및 경제적 번영을 가져다줄 승전가를 불렀다. 미국 정부는 여론을 조성하고 경제개혁을 기회로 삼아 주도권을 잡을 수 있는 기술을 터득했다. 예컨대 CNN과 같은 언론 매체를 통해 글로벌 미디어를 장악했고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 등 여러 금융 기관으로 경제개혁을 조종했기 때문이다.


소련이 붕괴된 후 미국이 확산시키려 했던 민주주의는 나토의 비호 아래 정치/경제/문화적 패권을 쥐려는 해괴한 전체주의적 민주주의였다. 미국 정부와 서방 동맹국들은 사회주의/계획경제 국가였던 소련에 충격 요법을 도입했다. IMF가 즉각적인 시장 개혁을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한마디로 국가 전체를 뜯어고치라는 뜻이었다.


IMF 관계자들은 바르샤바 조약 가입국(불가리아, 체코슬로바키아, 동독, 헝가리, 폴란드, 루마니아 등)과 소련의 15개국 간에 얽히고설킨 경제를 바꿀 재간이 없었다. 그럼에도 월스트리트 출신인 미 재무장관 로버트 루빈의 지휘 아래 그들은 국영기업을 모조리 민영화하고 루블화와 기타 6개국 통화의 평가절하를 강력히 요구했다. IMF와 조지 소로스, 마크 리치, 그리고 크레디트 스위스, 체이스 등의 금융기관은 석유와 니켈, 알루미늄 및 백금에 이르는 러시아의 왕관보석(Crown Jewel, 가장 매력적인 사업 부문이나 자회사를 일컫는다)을 말 그대로 돈 몇 푼에 취득하도록 원인을 제공했다.


1990년대에 실시된 IMF 정책의 여파로 러시아의 실업률은 폭증했고 생활수준은 곤두박질했으며 남성의 평균 수명은 56세로 급감했다. 노인들은 연금이나 의료 서비스를 기대할 수 없었고 몇몇 학교는 문을 닫아야 했다. 일부 주택은 심하게 파손되어 복구가 불가능했으며 청소년들 사이에 알코올/약물 중독과 에이즈가 확산되기 시작했다. 이 밖에도 IMF는 육아에서 의료 서비스에 이르기까지 각종 사회 보장 혜택을 국가의 명목 비용이나 무상으로 지원했던 국가에 보조금을 대폭 낮추라고 주문했다.


러시아판 나토인 바르샤바 조약이 해체되고 주둔군이 동유럽과 기타 소련 지역에서 철수하자 소련의 위성국가와 소비에트 공화국들은 독립을 선언할 담력을 얻었다(실은 EU 회원국에 가입할 수도 있다며 구슬린 서방세계의 꾀에 넘어간 것이다). 1917년 러시아 혁명에 앞서 차르(Czars, 황제) 집권 시절부터 러시아 제국의 요충지였던 그루지야 공화국도 신규 독립 국가 중 하나였다.


조지 H. W. 부시와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나토를 동방으로 진출시키지 않겠다는 서약을 무시하고 바르샤바 조약 가입국을 하나둘 꼬드겨 나토의 세력을 점차 키워나갔다. 소련의 영토였던 그루지야 공화국(1990년에 독립을 선언함)에는 미군이 주둔해 있다. 부시 행정부가 2003년 9월 이후 미군과 자문단을 파견해왔기 때문이다. 허울 좋은 탄도미사일 방어 시설을 이들 국가에 배치키로 결정한 까닭이 이란과 같은 불량국가를 의식한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자 러시아 정부는 이에 강력히 대응했다. 엄밀히 말해서 미국이 세운 미사일 방어 시설의 목적은 방어라기보다는 향후 러시아와의 대결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겠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러시아를 군사/경제적으로 통제하겠다는 미 외교정책의 목표를 아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미국의 대외정책 1순위는 수많은 기구(군수업체와 다국적 에너지 기업, 그리고 국방부와 CIA를 비롯하여 국가안보국)와 연합하여 대러시아 통제력을 확보하는 것이었다.


2001년 9월 11일 이후, 조지 W. 부시 행정부에 포진한 도널드 럼즈펠드와 딕 체니, 폴 울포위츠 및 신보수파들은 핵공격의 야심을 다시 불태우기 시작했고 선제공격을 뜻하는 부시 독트린에 선제 핵공격까지 추가했다. 미 군수 업계 지도부와 정책 지식인들은 핵공격의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때문에 2008년 8월, 그루지야에서 벌어진 분쟁은 유럽 각국에 치명적인 결과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허위 정보를 흘리고 언론의 입을 막은 백악관 덕분에 미국인들은 대부분 이를 모른다.


2007년 주요 정책입안자들은 유라시아의 중심에서 러시아를 기필코 도려낼 거라며 이를 미결안으로 처리했다. 미국 100년사의 걸림돌이 되고 있는 유일한 강대국을 제거하는 것이 그들의 유일한 목표였다. 국방부는 이를 전방위 지배라고 불렀다. 2007년 푸틴 대통령이 독일에서 연설할 때 전 세계는 이미 신 냉전에 돌입한 상태였다.


2007년에 들어서면서 폴란드와 체코 공화국에 대규모 탄도미사일 방어 시스템을 배치하겠다는 미 당국의 발표를 의식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북한이나 이란과 같은 불량국가의 핵 위협에 자국을 방어하겠다는 허위 주장 때문이다. 그해 3월, 미사일 방어국 사무총장인 오버링 장군은 나토 본부에서 캅카스 산맥에 미사일 레이더 시스템을 구축하려는 미국 정부의 입장을 발표했는데, 당시 나토 회원국이 아닌 소련 영토였던 그루지야나 우크라이나가 지목될 공산이 컸다.


미국 정부는 탄도미사일을 생산하는 국가를 20개도 넘게 열거했지만 러시아와 중국을 제외하고 유럽이나 미국에 피해를 입힐 만한 미사일을 보유한 나라는 없었다. 또한 북한과 이란을 제외하면 미국에 협조하거나(러시아, 인도, 이스라엘 등) 오랫동안 인연을 맺어온 나라(프랑스, 영국)가 전부였다. 그런 데다 이란이 핵탄두를 탑재한 장거리 미사일을 개발하려면 아마 몇 년은 더 기다려야 할 테고, 북한이 핵을 개발했다는 설도 뜬구름 잡는 소리에 불과하므로 위험 국가로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 서방 군사 전문가들의 분석이었다.


2007년 3월 10일 푸틴 대통령은 향후 8년간 육해군에 첨단 무기를 공급하는 데 1900억 달러를 투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푸틴은 신 냉전의 도래를 선언하는 미국 정부에 그렇게 대응할 수밖에 없었다. 러시아의 생존을 위해서는 냉전의 새 국면을 방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세계는 신 군비경쟁에 돌입하게 되었다. 2007년 봄 미국/소련 간의 냉전이 막을 내린 지 17년이 지난 마당에 핵 기반 군비경쟁의 막이 오른 것이다. 



인권을 무기로 삼다: 다르푸르에서 티베트까지

이라크의 정권 교체(9.11 테러가 터지기 훨씬 전부터 이미 정해졌다)를 결정할 무렵, 미국은 정책을 바꾸어 중국을 노리기 시작했다. 미국은 중국에 소프트 파워 전략을 구사했다. 민주주의와 인권이 중국을 압박하는 주요 무기였던 셈이다. 워싱턴은 미얀마와 티베트 및 다르푸르의 인권을 문제 삼기 시작했다.


2007년 9월 미국은 우선 미얀마에서 첫 인권 캠페인을 벌여 중국에 올가미를 단단히 조였다. 당시 CNN은 진홍빛 승복을 입은 승려들이 미얀마 최대의 도시인 양곤에서 민주주의를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는 모습을 카메라에 생생히 담았다. 조지 W. 부시의 텍사스 목장 크기만 한 미얀마에서 일어난 사태는 워싱턴의 각본대로 방송된 한 편의 인권 드라마와도 같았다. 즉, 전국민주재단(NED)와 조지 소로스의 열린사회 재단, 프리덤 하우스 및 진 샤프의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재단이 머리를 짜내 완성한 작품을 CNN이 송출했다는 얘기다.


이 NGO들은 미국의 군사/정보 관련 자산으로, 전 세계의 비폭력 정권 교체를 실현할 수 있도록 핵심 간부들을 훈련시켰으며 러시아의 색깔 혁명(그루지야와 우크라이나 및 세르비아도 포함)에도 투입되었다. 우크라이나의 오렌지 혁명이나 그루지야의 장미 혁명처럼 미얀마의 사프란 혁명도 워싱턴의 정권 교체 본부가 조직한 행사에 불과했다.


그러나 CNN은 2007년 9월의 방송에서 미얀마 시위에 NED가 개입했다고 보도하는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이에 국무부도 미얀마에 파견된 NED를 지원했다고 솔직히 시인했다. 사실 NED는 외교정책을 지원하는 비밀 단체로, 냉전 시절 CIA의 역할을 대신 해왔다고 보면 된다. 다만 CIA보다는 NGO가 때 묻지 않은 인상을 준다는 점만 다를 뿐이다.


미 국무부는 미얀마의 정권 교체를 강행하려고 반정부기구 출신의 인사들을 대거 모집하여 훈련시켰을 뿐만 아니라, 2003년 이후에는 250만 달러를 매년 NED 활동비에 투입하기도 했다. 이런 물질적인 도움은 불교 승려들이 반정부 시위를 부채질한 군사정부에 종교적인 보이콧을 요구할 수 있도록 기틀을 마련하는 데 큰 보탬이 되었다. 20년 만에 일어난 최대의 반정부 시위였다. 승려와 주민들은 가난과 폭정에 항거했다. 열흘 동안 최대 10만 명이 거리로 몰려들어 15명 이상이 사망하고 수천 명이 체포된 후에야 진압되었다.


2007년 여름 워싱턴이 사프란 혁명을 일으키기 직전, 미얀마는 페트로차이나와 양해각서를 체결하여 벵골 만의 쉐 필드에서 천연가스를 대량 공급키로 합의했다. 계약 기간은 30년이었다. 미얀마/중국 파이프라인이 가동되면 말라카 해협의 관문을 경유하지 않고도 아프리카(수단 등)와 중동(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에 석유/가스가 공급될 수 있었다. 이 계약이 성사됨으로써 미얀마는 방글라데시와 중국 본토를 잇는 가교 역할까지 하게 되었다.


미국은 이를 어떻게든 막으려고 2007년에 사프란 혁명을 일으켰다. 그러나 이듬해 5월 사이클론 나르기스의 여파로 수천 명이 목숨을 잃자 워싱턴은 미얀마 정권을 와해시킬 또 다른 음모를 꾸며냈다. 구호단체를 현장에 보낸다는 명분으로 군대 파병을 강요한 것이다. 부시 행정부는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시기임에도 인도주의를 앞세워 미얀마를 압박했다.


2008년 7월 부시 대통령은 민주화 운동가인 아웅 산 수 치 여사의 가택 연금 해제를 촉구하는 한편, 미얀마 정부를 두고 "심히 걱정스러울 따름"이라고 언론에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이는 이라크 전쟁을 일으키고 관타나모 기지의 고문을 비호하는 등, 국제법을 위반하고 여론의 뭇매를 맞은 점으로 미루어 부시 대통령의 성품은 의심스럽기 짝이 없다. 결국 인도주의 계략은 워싱턴이 인권을 정권 교체의 무기이자 제국주의의 명맥을 잇는 수단으로 삼고 있다는 방증이다.



핵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미국

냉전이 종식된 후에도 미국 정부는 핵 패권을 쟁취하려는 노력을 중단하지 않았다. 즉, 워싱턴과 정치/재계 인사들은 여전히 냉전 중이었다는 얘기다. 전 세계의 에너지/석유 파이프라인을 장악하고, 유라시아에 군 기지를 다수 배치하며, 군 현대화를 추진할 뿐 아니라 핵 잠수함과 B-29 폭격기 사령부를 증강하려는 움직임은 핵 패권을 쥐겠다는 심사가 아니라면 당최 이해할 수가 없다.


미국은 재래식 미사일 방어체제로도 러시아의 미사일 격납고와 잠수정을 파괴할 수 있었고, 러시아는 자신들이 보유한 소수의 핵미사일로 미국에 대응할 수 없었다. 따라서 미국은 러시아를 두려워해야 할 까닭이 조금도 없었다.


냉전 당시 상대를 섬멸할 수 있는 군사력을 보유한 양국(바르샤바 조약 기구와 나토)은 군 전략가의 말마따나 상호 확증 파괴(Mutually Assured Destruction, MAD)라는 교착상태에 빠진 적도 있었다. 물론 끔찍한 상황이긴 하나 향후 핵 패권을 추구하려는 미국의 독단적인 행태를 감안할 때 오히려 MAD가 나을지도 모를 일이다. 서로를 쑥대밭으로 만들 수는 있으나 그래봤자 득이 되는 쪽이 없으니 핵전쟁은 상상도 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 정부는 지금 상상해볼 만한 핵전쟁을 계획하고 있으니 미쳤다(MAD를 이용한 말장난)고 볼 수도 있을 듯싶다.


잔뼈가 굵은 국방부 관계자들이라면 럼즈펠드와 체니 및 부시 일행은 전방위 지배와 세계 질서, 그리고 경쟁 상대인 러시아 제거에만 혈안이 되어 있다는 것을 알 것이다. 미국이 미사일 방어 기지를 서둘러 배치하려는 까닭은 북한이나 중동의 테러 공격 때문이 아니었다. 미국은 러시아를 겨냥할 뿐 아니라 핵전력이 훨씬 낮은 중국도 염두에 뒀다. 또한 2004년 군 장교 49인이 대통령에게 보낸 서한에서 밝혔듯이, 미국은 불량국가의 지하 벙커나 동굴을 파괴하거나 오사마 빈 라덴을 색출할 수 있는 핵탄두를 충분히 보유하고 있었다.


미국 군사 전문가 2인이 내린 결론도 이와 같았다. 외교 위원회가 발행하는 「포린 어페어스」에서 그들은 다음과 같이 밝혔다.


미국은 50년 만에 처음으로 핵 패권을 거머쥐게 되며 선제공격으로 러시아와 중국의 장거리 핵 시설을 파괴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세계의 핵 균형이 크게 기울어진 까닭은 무기고가 크게 감소한 러시아와 핵전력 현대화가 더디게 진행되는 중국과는 달리 미국이 핵 시스템을 꾸준히 개발해왔기 때문이다. 워싱턴의 정책이 달라지지 않거나, 러시아와 중국이 군대의 규모와 전력을 키우지 않는다면 양국은, 아니 전 세계는 향후 수년간 핵 패권의 그늘에서 살게 될 것이다.


냉전이 종언을 고한 후, 미국 국방부 전략의 실태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우선 미군의 주둔 상황과 기지의 변화를 염두에 두고 동유럽에 배치될 미사일 방어 계획을 살펴봐야 한다. 국방부의 전방위 지배 원리가 정의한 미국의 공식 군사전력은 탄도미사일 방어가 결정적인 변수였다. 미 국방부는 공식성명에서 전방위 지배를 다음과 같이 풀이했다.


전방위 지배는 오늘날 군사력을 적용하는 포괄적인 개념이며 향후 합동작전의 비전을 제시한다. 이것을 성취하려면 군대는 작전을 완수하는 데 필요한 합동군의 전력을 끌어올릴 수 있도록 주요 역량에 혁신적인 노력을 집중해야 하며, 합동 군사력과 기능/작전 개념 및 다양한 상황과 목표에 적용할 수 있는 결정적인 모델을 확보해야 한다. 전방위 지배를 달성하려면 작전 활동과 해외 정부 기관의 활동을 통합할 수 있어야 한다. 동맹군이나 파트너와의 합동작전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전방위 지배는 지상과 우주 및 사이버공간까지도 아우른다. 미 국방부의 8대 과제 중에 우주와 영공, 영해 및 사이버공간에서의 작전이 있듯이 말이다. 미사일 방어 시스템을 우선 개발하라는 부시 행정부의 방침은 매우 충격적이었다. 국방장관이 대통령에게 신속한 전방위 공격권을 부여한다는 콘플랜 8022을 명령했으나 아무도 불안한 조짐을 눈치채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국방부는 핵전쟁을 한 가지 대안으로 내놓았다. 위험한 길에 이미 발을 들였다고나 할까. 



전방위 지배

발칸반도의 작디작은 코소보의 독립을 인정하겠다는 워싱턴의 기괴한 발상은 2001년 이후 전략적 요충지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미군의 마수를 뻗치겠다는 방증이었다. 2008년 초 세르비아에 인접한 코소보가 독립을 선언하자, 당시 탄자니아를 방문한 부시 대통령은 서슴지 않고 현지인들에게 코소보의 독립을 주지시켰다. 얼마 후에는 미국 정부도 몇몇 EU 회원국의 반대를 무릅쓰고 이를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국무부는 코소보의 독립과 이를 인정하는 것이 유엔 결의안과 국제법에 위배될 뿐 아니라 유엔의 위신에 먹칠을 할 수도 있다는 점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모양이다. 코소보를 접수한 하심 타시 총리는 마약 밀매와 금품 갈취 및 매춘 혐의로 인터폴과 독일 정보기관(BND)의 표적이 되었던 인물이다. 워싱턴에서도 잘 알려진 사실이었으나 당국은 이를 문제 삼지 않았다. 


유고슬라비아와 세르비아의 영토였던 코소보는 중동과 발칸 전체를 삼킬 수 있는 권한을 미군에 베풀기 위해 국제적으로 명성이 자자한 마약 밀매자가 운영하는 나토의 속국이 되고 말았다. 그렇다면 워싱턴과 나토, EU 및 독일 정부는 왜 그토록 기를 쓰고 코소보 독립의 정당성을 확보하려 했을까?


답은 어렵지 않다. 내부에 범죄 조직이 들끓는 코소보라야 통제하기가 쉽기 때문이다. 즉, 약체 국가인 탓에 나토가 지배하기 쉽고, 전략적인 요충지라는 매력도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는 얘기다. 1999년 세르비아 공격 직후, 미 국방부는 최대의 군사기지 캠프 본드스틸을 구축할 요량으로 마케도니아 접경지역의 코소보 대지 1000에이커를 강제 몰수한 뒤, 할리버튼(당시 CEO는 딕 체니)과 건설 계약을 체결했다. 보도에 따르면 캠프 본드스틸은 CIA의 고문실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로써 미국은 유럽 동남부의 전략적 요충지에 주둔한 병력을 강화하는 등 군사적 우위를 확보한 반면에, 나토는 유라시아(특히 러시아)의 지배권과 유럽에서의 입지를 굳게 지킬 수 있게 되었다.


현장 인터뷰 자료와 정보 공개 특별법 문건에 따르면, 미 국방부는 국무부 산하 USAID를 통해 비룽가 국립공원(콩고 민주공화국 동부 소재)의 고릴라 보호 운동에 책정된 수백만 달러를 석유/지하자원 탐사에 비밀리에 전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다이안 포시 고릴라재단과 보호재단에 지급된 공금이 엉뚱한 데 사용된 것이었다. 두 재단은 지난 2년간 500만 달러의 용처를 밝힌 회계 보고서를 제출하지 않았다. 고릴라를 보호하는 데 쓰라는 혈세를 키부에서 활동하는 무장단체들에 무기를 공급하거나 자원을 탐사하는 데 쓰고는 이를 은폐한 것으로 보인다. 서구는 아프리카에서 비밀리에 원자재 쟁탈전을 벌이고 있다. USAID의 자금이 NGO를 통해 세탁되어 무기고를 늘리는 데 쓰인다는 근거도 있다.


최근 우간다와 르완다는 국방부의 주요 군사동맹국으로 떠오르고 있다. 2007년 미 특수부대 150명이 미 국방부가 세운 우간다 병참기지에 추가로 파견되기 전부터 영/미 군사 전문가들은 현지의 우간다민중방위군(UPDF) 부대를 훈련해왔다. 미국의 아프리카 군사령부(AFRICOM)은 USAID의 고릴라 보호기금을 무기 매입에 전용하는 등 다양한 기교를 부리며 콩고 민주공화국에 진출한 중국을 상대할 심사였으나, USAID와 긴밀히 공조한다는 점에서 여타 미 군사령부와는 성격이 달랐다.


키부와 인근 전쟁 지역 주민들과의 인터뷰에 따르면, 콩고 유엔 평화 유지군(MONUC)은 연간 10억 달러의 콩고 주둔 비용을 합리화하려고 민병대에 무기를 보급했다고 한다. 한 콩고 관리는 "MONUC가 민병대에 무기를 제공했다"고 밝혔다.


부시 행정부는 8년간 집권하면서 보츠와나와 가봉, 가나, 케냐, 말리, 모로코, 나미비아, 상투메프린시페, 세네갈, 시에라리온, 튀니지, 우간다 및 잠비아 등과 기지 구축 협약을 맺었고, 딕 체니가 몸담았던 할리버튼과 KBR 자회사는 알제리의 국영 석유 기업 소나트락과 손을 잡고 브라운 앤드 루트 콘도르 합작 투자회사를 설립하여 타만라세트와 부사다에 공군 기지를 증설키로 했다. 또한 AFRICOM은 새로운 임무를 일사불란하게 수행할 수 있도록 모든 아프리카 주둔군을 총괄했다.


오바마 대통령이 외교/정보 내각을 임명하는 데 작용한 군산복합체의 위력은 미국이 군국화 과정에 돌입했다는 점을 시사한다. 알다시피 부시는 헌법이 규정한 견제/균형의 원칙과 권리장전을 무시하면서까지 9.11 사태를 내세워 애국법과 국토보안법 등을 밀어붙였다.


미국에 변화를 가져오겠다던 오바마 행정부의 지난 몇 개월을 돌이켜보면 발표 외에는 달라진 것이 없다. 유일한 강대국임을 자처한 미국은 전방위 지배를 유일한 의제로 삼은 듯 보이나, 대공황 이후 경제위기의 후폭풍이 절대권력을 실현하려는 워싱턴 정책 입안자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아직 미지수다.


미국과 전 세계는 베트남 전쟁 이후 미국의 100년사에 종지부를 찍느냐 마느냐는 갈림길에 서 있다. 현재 혈안이 되어 있는 군사 의제에서 손을 떼는 일이 쉽지는 않겠으나 자국과 전 세계가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존속하려면 그 방법 외에 뾰족한 대안은 없을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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