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다

   
로저 서로우·스코트 킬맨(역자: 이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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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지21
   
18000
2010�� 07��



■ 책 소개
기아를 종식시킬 수 있는지식과 도구 자원이 마련된 21세기에도 일 년에 수백 만에 이르는 사람들이 기아와 영양실조, 기타 관련 질병으로 사망하고 있다. 어떻게 이렇게풍요로운 시대에도 굶주리는 사람들이 방치되고 있는 걸까? 

국제적인 주목을 받고 있는 월 스트리트 저널리스트 로저 서로우와 스코트 킬맨이 철두철미한 조사를 통해 기아에 대한 서방세계의 편견과 오류들을 꼼꼼하게 정리했다. 실질적인 조사와 실제 인물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통해 아시아와 라틴 아메리카를 바꾸어놓은 농업혁명이아프리카에서는 왜 갑자기 중단되었는지, 무지와 방치를 오가는 이른바 선의의 전략이 어떻게 세계의 극빈층을 계속 굶주리게 했는지, 또 어떻게이들을 자급자족할 수 없게 만들었는지를 알려준다. 아프리카, 개발, 농업 등을 다룬 기사로 국제적인 주목을 받은 두 저자가 철저한 조사를바탕으로, 기아 문제에 이해 관계가 걸려 있는 강력한 집단들에 맞서 비판점을 제기한다. 

■ 저자 로저 서로우·스코트 킬맨

로저 서로우는 20년간 「월 스트리트저널」 해외특파원으로 근무하면서 아프리카 20여 개국을 비롯해 전 세계 20개국이 넘는 나라에서 보도 활동을 했다. 스코트 킬맨은 20년간 「월스트리트 저널」에서 농업 부문을 취재했다. 서로우와 킬맨이 공동 취재해 「월 스트리트 저널」 1면에 실은 수많은 기사는 기아 이면에 도사린세력을 이해하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했다. 2003년 기아 당시 이들이 보도한 세 편의 기사는 "2004년 퓰리처상 국제 보도 부문" 최종 후보로선정되기도 했다. 2005년 서로우와 킬맨은 식량 안보와 농촌 개발 문제에 여론을 환기시킨 공로로 유엔 산하 식량농업기구(FAO)가 수여하는"A. H. 보어마 상"을 수상했다.

■역자 이순주

한국외국어대학교 동시통역대학원 한영과를 졸업하고 배화여자대학교 강사 및 MBC 통역기자실 근무를 거쳐 현재전문 번역인으로 활동 중이다. 번역서로는 『맥킨지는 일하는 마인드가 다르다』『에어프레임』 『1분이 만드는 백만장자』『푸른 항해』『바로 이 몸에서이 생에서』『아프리카 파워』 등 100여 권이 있다. 월간지 「내셔널지오그래픽」 한국어판 번역가이기도 하다.

■ 차례
프롤로그 - 경건한 후회
2003년에티오피아 보리차 고지 

제1부 미완성혁명
제1장 변화의 씨앗 : 1944년 멕시코 
제2장 녹색혁명의 흥망성쇠 : 1970년 노르웨이 오슬로
제3장 아프리카 속으로 : 1984년 에티오피아 북부 
제4장 농업 보조금 : 2002년 말리 파나 
제5장 풍작과 재앙 :2003년 에티오피아 아다미 툴루 
제6장 누가 누구를 돕고 있는가? : 2003년 에티오피아 나사렛 
제7장 여기도 물, 저기도 물: 2003년 에티오피아 바히르다르 
제8장 애벌레로 허기를 달래며 : 2003년 수단, 스와질란드, 짐바브웨

제2부 더 이상 두고 볼 수없다
제9장 분노를 터뜨리며 
제10장 이 문제에 대해 우리가 할 일이 있을 것 같습니다. : 더블린 그리고시애틀 
제11장 식사 후 복용하세요 : 케냐 모소리오트 
제12장 일진일퇴 : 전 세계 각지 
제13장 잃어버린 고리 : 케냐그리고 가나 
제14장 시작종 : 시카고에서 아디스아바바와 카차의 넥으로 357 
제15장 기업의 구호활동 : 다보스에서 다르푸르로
제16장 작은 행동, 큰 영향 : 케냐, 오하이오, 말라위 
제17장 그들을 저버려서는 안 됩니다. : 워싱턴 D.C.

에필로그 - 하기르소

 




기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다

프롤로그 - 경건한 후회 : 2003년 에티오피아 보리차 고지 
아사는 결핍, 즉 생명에 꼭 필요한 요소 중 하나가 결여되어 죽는 것이다. 아사는 사고나 충동적 폭력의 결과도 아니고, 창궐하는 질병이나 노화에 따른 어쩔 수 없는 쇠약의 결과도 아니다. 이는 풍요의 그늘 속에 살아야만 하는 이들에게 생기는 현상이다. 지난 몇십 년 동안 세계는 온 세상 사람들이 충분히 먹고도 남을 정도로 많은 식량을 생산했다. 인공위성을 이용하면 흉작을 예측할 수 있기 때문에 식량 부족을 피할 수 있다. 그 어느 때와 달리 요즘 세상에서는 대체로 기근을 방지할 수 있다. 기근이 발생한다는 것은 현대 문명의 집단적 실패를 의미한다.


1984년 1200만 이상의 에티오피아인들이 아사 직전에 있었고, 그중 약 100만 명이 사망했다. 세계는 두 번 다시 그런 기근이 발생하지 않게 하겠다고 맹세했다. 그러나 그로부터 20년도 채 지나지 않아 “두 번 다시 발생하지 않게 하겠다”던 기근이 보리차와 에티오피아의 여러 지역에서 다시 발생하고 말았다. 이번에는 그전보다 더 많은 1400만 명이 아사 직전에 있었다.


아시아와 라틴 아메리카 전역의 기근을 정복할 수 있었던 녹색혁명이 아프리카에도 도입되었다. 그런데 뭔가 단단히 잘못되었다. 잉여 농산물은 시세 폭락만을 가져왔고, 기록적인 수확은 오히려 농민들을 더욱 비참하게 만들었다. 아프리카에 수확 곡물 이외에 녹색혁명의 다른 중요한 요소들이 도입되지 못한 것이 문제였다. 곡물이 풍부한 곳에서 그렇지 못한 곳으로 곡물을 운송할 수 있는 농촌 인프라에 대한 투자가 없었고, 농민들이 공정한 가격을 받을 수 있게 해주는 시장이 발달하지 못했고, 농민들을 지원해주는 대출도 없었고, 농산물 가격 하락을 완충해주는 보조금도 없었고, 기상 재난 시 농민들에게 보상해줄 농작물 보험 같은 것도 없었다. 기아를 종식시키겠다는 정치적 의지도 결여되어 있었다. 아프리카 농업과 에티오피아 농민들과 그들의 아이들은 죽어가는 상태로 방치되었다.


과학의 발달과 수십 년에 걸친 수많은 사람들의 피땀 어린 노력에도 불구하고 기아는 물러가기는커녕 온갖 형태로 확산되고 있었다. 유엔 산하 보건 및 식량 기구들은 개발도상국 전역에서 매일 2만 5000여 명이 기아, 영양실조, 기타 관련 질병으로 사망하는 것으로 집계하고 있다. 이것은 죽음의 축제가 열렸던 100일간 하루 평균 8000명이 살해되었던 1994년 르완다 집단 학살 때보다 세 배 더 많은 사람이 매일 죽어나간다는 의미이다. 유엔 세계식량계획 관계자들은 이를 두고 매일 점보제트기 60대가 추락하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제1부 미완성 혁명
변화의 씨앗 : 1944년 멕시코
 
노먼 블로그가 처음부터 굶주린 세상 사람들에게 식량을 제공하겠다는 야망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가 듀폰에 취직했던 것은 농화학 약품을 개발하기 위해서였는데, 전쟁통에 임무가 바뀌어 그는 동료 과학자들과 함께 콘돔을 비롯한 군사용품들이 태평양 전쟁터의 열대 기후에 얼마나 내구성이 강한지를 테스트하고 있었다. 1944년 봄, 어느 날 볼로그가 일하고 있던 실험실에 ‘특별 연구 사무국’에서 나온 관계자가 찾아왔다. 용건은 멕시코에서 그의 병역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었다.


특별 연구 사무국의 임무는 미국경 남쪽의 기아와 불안정을 방지하기 위해 멕시코에 옥수수, 밀, 콩 등 곡물을 증산하는 것이었다. 볼로그를 멕시코로 불러들인 헨리 월리스는 1940년 프랭클린 D. 루스벨트의 부통령으로 당선된 식물학자였다. 월리스와 멕시코는 공유하고 있는 열정이 있었다. 월리스는 옥수수 품종 개량이 취미였고, 멕시코는 옥수수 먹기를 좋아했다. 옥수수는 멕시코인들의 주식으로 산비탈에서 인공섬 소치밀코에 이르기까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곳에 구석구석 재배되고 있었다.


옥수수는 바람에 날려 온 꽃가루와 이화 수분을 하는데, 꽃가루는 수백 미터 밖에서도 쉽게 날아올 수 있다. 농민들에게 더 나은 수확을 약속하며 개량 품종을 판매하는 식물 육종가들은 이런 특성 때문에 옥수수를 선호한다. 옥수수를 몇 세대 동안 강제로 자가 수분시켰더니 우성 인자가 지배하게 되어 동종 교배한 계열은 생산성이 떨어지는 듯 보였다. 그런데 동종 교배한 계열을 역시 동종 교배한 다른 계열과 이종 교배시키면 옥수수의 생산성이 급증했다. 이것이 잡종 강세라고 알려진 역학이다. 또 한 가지 불가사의한 일은 생산성 급증이 단 한 세대 동안만 일어난다는 것이다.


미국 옥수수 농장의 생산성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잡종 종자를 사용하기 전에는 아이오와 주의 단위 면적당 생산량이 60여 년 동안 거의 변하지 않았다. 그런데 1930년 34부셸이었던 아이오와 주의 단위 면적당 옥수수 생산량이 1940년 52.5부셸로 급증하게 되었다.


20년 전에 끝난 피비린내 나는 멕시코 혁명은 독재자를 몰아내고 소수의 부자들에게서 농지를 빼앗아 가난한 농민들에게 재분배했다. 새 정부는 농민들이 식량을 자급자족할 수 있기를 바라며 농지가 없는 농민 170만 명에게 농지를 조금씩 나눠주었다. 그러나 토지 개력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월리스가 멕시코를 찾아갔을 당시 멕시코는 기아와 빈곤에 허덕이고 있었다. 멕시코 농장은 미국 농장에 비해 옥수수와 콩을 3분의 1밖에 수확하지 못했고, 그나마도 생산성이 떨어지고 있었다. 토양은 영양분이 고갈되고 심하게 침식되고 있었다. 트랙터는 몇 대 되지도 않았다. 밀 농민들이 멕시코에서 가장 앞선 농민이라고 했지만, 그들의 생산성은 미국 밀 농민들에 비하면 3분의 2밖에 되지 않았다. 더구나 병충해가 자주 발생해 멕시코는 밀 필요량의 절반을 수입에 의존해야 했다.


월리스는 1941년 부통령으로 취임한 직후 록펠러 재단에 전화를 걸었다. 월리스는 록펠러 재단의 레이먼드 B. 포스틱 이사장에게 어떻게 하면 멕시코의 곡물을 증산할 수 있는지 방법을 연구해달라고 부탁했다. 이렇게 해서 1943년 멕시코 정부와 합작으로 “특별 연구 사무국”이라는 이름의 합동 연구 프로그램을 출범시켰다.


멕시코의 작업 환경은 볼로그가 미국에서 연구원으로 활동하면서 만났던 그 어떤 환경보다 열악했다. 전쟁 때문에 농기구에서 휘발유까지 모든 물자가 빠듯했다. 볼로그가 녹병균 전염을 방지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온 세상을 샅샅이 뒤져 자연 면역력을 지닌 밀을 찾아 그 형질을 멕시코 밀과 교배시키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이는 녹병균이 만연한 지역에서 수백 가지 품종의 밀을 재배하면서 바람에 날려 온 균류 포자에 전염되지 않는 품종이 있는지 관찰하며 기다려야 한다는 뜻이었다. 볼로그는 그런 방식으로 찾은 밀 품종을 멕시코 환경에서 잘 자랄 수 있도록 개량했다.


몇 달이 지나 다음 생육기가 다가오자 볼로그는 그 종지를 심었다. 이런 식으로 멕시코를 위해 내성이 강한 품종을 개발하려면 10년은 족히 걸릴 수 있었다. 녹병균체는 너무도 빨리 돌연변이를 일으키기 때문에 일 년에 일모작으로는 녹병균을 퇴치할 수도 그것을 앞서가는 새로운 품종을 개발할 수도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볼로그는 한 농민에게서 멕시코의 태평양 연안 북서쪽에 있는 야키 계곡에서는 밀을 10월에 심어 봄에 수확한다는 말을 듣게 되었다. 그것은 멕시코 중부 고지에 있는 주요 밀 지대의 재배 주기와 정반대되는 것이었다. 볼로그는 야키 계곡과 멕시코시티 근처에 있는 자신의 시험 경작지를 오가며 새로 수확한 종자를 왕복 교배시켜 새로운 품종을 개발하는 과정을 단축시켰다.


이것은 4년 만에 성과를 내기 시작했다. 그는 4개국의 밀을 사용해 녹병균에 내성이 강한 밀을 최초로 생산하는 데 성공했다. 1951년 멕시코 밀 수확의 70%가 볼로그가 개발한 밀에서 나왔고, 농민들은 그를 “슈퍼 사비오”, 즉 슈퍼 현인이라고 불렀다. 멕시코는 더 이상 밀을 수입할 필요가 없게 되었고 지역적으로 경제 붐이 일기 시작했다. 밀 생산량이 증가함에 따라 농민들의 정치적인 세력도 커졌다. 멕시코 정부는 농촌에 도로를 건설하고 관개 사업을 시작했다. 1960년 야기 계곡의 밀 농장은 단위 면적당 50~74부셸을 수확했다. 볼로그가 처음 왔을 때 단위 면적당 11부셸을 수확했던 것에 비하면 비약적인 발전이었다.


1960년을 기해 많은 개발도상국들이 굶어 죽을 운명에 처한 듯했다. 유럽 강대국들은 식민지에 식량 생산을 위한 투자를 게을리 했고, 신생 독립국에서는 전례 없는 속도로 인구가 급증하고 있었다. 거기에 잇단 가뭄이 아시아 일부 지역을 강타했다. 미국은 대량 기아를 막기 위해 자국 밀 전체 수확의 5분의 1을 인도로 보냈다. 인구 증가율이 인류가 충분히 먹고도 남을 식량을 생산할 수 있는 대지의 수용 능력을 앞지르는 것 같았다.


볼로그의 밀이 구조에 나섰다. 그는 독창적인 교배 방식으로 낯선 땅에서도 빨리 잘 자랄 수 있는 품종을 개발했다. 아시아의 농업혁명은 획기적인 일이었다. 1970년에서 1995년 사이 곡물 생산량이 이 지역의 인구보다 더 빨리 늘어났다. 녹색혁명은 식량을 자급자족하게 했을 뿐만 아니라 가난한 농민 수억 명에게 먹고 남은 농산물을 팔아 생긴 돈으로 교육비와 의료비를 대고 더 나은 생활을 할 수 있게 해주었다. 세계은행에 의하면, 인도에서는 농업 생산성이 급증해 농촌 빈곤율이 1967년 64%에서 1986년 34%로 급격히 감소할 정도로 농가 소득이 증가했다. 인플레이션을 감안한 농산물의 실제 가격은 꾸준히 하락해 가난한 사람들이 식량을 구입하기가 더욱 쉬워졌다.
     

제2부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다 
잃어버린 고리 : 케냐 그리고 가나
 
빌 게이츠가 창설한 세계 최대 자선단체 게이츠 재단의 보건 프로그램 전문가 라지브 샤와 그의 팀은 전략적 기회를 탐색하면서 세계 전역에서 농업과 위생에서 금융에 이르기까지 40개 이상의 잠재적 투자 표적을 검토했다. 샤는 팀원들에게 물었다. “지역사회가 빈곤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추진 요인은 무엇입니까? 세계에서 가장 불공정한 곳은 어디이며,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입니까?”


게이츠 팀은 일단 농업을 투자 목표로 정한 다음 농업 문제를 더 깊이 파고 들어갔다. 게이츠 프로젝트 조사관들은 아프리카 전역을 뒤지고 다니면서 많은 잠재력을 지닌 고귀한 노력들을 발견했다. 거기에는 신품종 종자 개발을 위해 들판에서 허리를 구부리고 연구하는 과학자들, 아연과 비타민 A 같은 미량 영양소로 주곡을 강화하려는 노력, 필수적이지만 저렴한 관개 장치 개발 등이 포함되었다.


게이츠 재단은 장장 16개월에 걸친 조사 끝에 마침내 그들의 의문에 대한 답을 얻었다. 그것은 기아를 정말 정복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샤는 보건과 농업 간의 중요한 차이점을 설명했다. 보건은 공익사업으로 누군가 어딘가에서 사업에 들어가는 비용을 지불해야 하지만, 농업은 스스로 지탱할 수 있는 시장 사업으로 사람들을 먹여 살릴 뿐만 아니라 소득과 부를 창출할 수 있다.


2006년 4월 게이츠 재단은 이미 아프리카에서 종자 개발과 토질 개선 사업을 하고 있던 록펠러 재단과 연합해 ‘아프리카 녹색혁명 연맹(AGRA)’를 발족했다. 그러나 신품종 종자를 농민들의 손에 전달하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록펠러 재단의 식물 과학자 조 데브리스는 ARGA가 가치 사슬의 다음 고리를 구축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신품종 종자를 상업적인 제품으로 전환할 종묘업체와 그것을 영세 농민들에게 판매할 오지의 소규모 종묘상을 육성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데브리스는 케냐에 있는 소수의 민간 종묘업체를 만나 그들이 신품종 종자의 생산과 판매를 맡아준다면 AGRA가 종자 개발에 필요한 자금을 제공해줄 것이라고 제안했다.


가장 먼저 케냐 서부에 본사를 둔 웨스턴 종묘사의 CEO, 살림 이스마일이 파트너십에 뛰어들었다. 대형 다국적 종묘업체들과 대조적으로, 웨스턴 종묘사는 취약한 재배 생태계와 그곳에 사는 가난한 농민들을 타깃으로 삼았다. 이스마일은 거기서 수익을 낼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이스마일은 말했다. “농민들에게 원하는 것을 주면 농사를 잘 지을 겁니다. 농민들이 원하는 것은 더 나은 수확, 더 많은 식량, 더 많은 비축량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한 가지 조건이 있었다. “농민들이 원하는 바를 제때에 주어야 하고, 가격도 그들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AGRA는 ‘농업 시장 개발 신탁(AGMARK)’ 기금을 통해 종자, 비료, 기타 농사에 필요한 물품을 다른 물품들과 함께 판매하는 ‘스토키스트’라는 소매상 네트워크를 형성하기 시작했다.


우간다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서부 케냐 고지의 날론도라는 마을에 갔다. 그때 그레고리 완자라 와욘고가 가게 밖을 내다보았다. 카운터 뒤 선반에는 종자 캔과 포대가 잔뜩 진열되어 있었다. 양파, 콜라드 그린, 수박, 토마토, 양배추 종자도 있고, 무엇보다도 잡종 옥수수 종자가 가장 많았다. 바닥에는 비료 봉지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배낭형 살충제와 소형 관개 펌프들도 있었다.


와욘고는 이 지역의 진정한 선구자였다. 그가 이 오지 마을에 가게를 열어 종자와 비료를 판매하기 전에는 농민들이 먼 길을 걸어가 농사에 필요한 물품을 구입해야 했다. 그는 AGMARK 세미나에 등록해 종자 과학과 토양 영양에 관해 배우고 부기 기술과 재고 조사 관리법도 배웠다. 그는 경작지가 1~2에이커밖에 안 되는 농민들을 위해 종자와 비료를 소량으로 재포장해 판매하거나 모내기 철에 농민들이 충분한 자금을 확보할 수 있도록 농민들과 저축 단체를 형성하는 등 농민들을 위한 조달 서비스도 배웠다. 와욘고는 월평균 매출이 30만 케냐 실링(약 5000달러)쯤 된다고 말했다. 이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루에 겨우 몇 달러로 살고 있는 농촌 지역에서 그를 진정한 거물로 만들었다. 
 
"그들을 저버려서는 안 됩니다." : 워싱턴 D.C. 


2008년 선거 캠페인 동안 ‘브레드 포 더 월드’ 산하 ‘기아 종식연맹’이 실시한 여론조사는 미국인들이 기아에 대해 정치인들이 행동해주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시사했다. 이 여론조사를 주도한 사람은 민주당 당선 의원들의 컨설턴트였던 토머스 프리드먼과 전국 공화당 상원 및 하원 위원회에서 일하고 있는 짐 맥래플린이었다. 두 사람은 빈곤과 기아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는 정책이 제정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이른바 ‘똑바로 하라(Do Right)’ 유권자 층이 대두되고 있다는 것을 파악했다. 이들은 또한 빈곤층에 도움이 되는 이슈에는 관심이 많지만 그것을 해결하는 정부의 능력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유권자 범주도 알아냈다.


프리드먼과 맥래플린은 “다음 중 가장 큰 도덕적 이슈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을 했다. 이 질문에 대해 기아와 빈곤 퇴치라고 응답한 사람은 41.8%, 환경보호라고 응답한 사람은 23.1%, 낙태라고 응답한 사람은 16.7%, 동성 결혼이라고 응답한 사람은 12.8%였다.


오바마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말 밤 실시된 또 다른 여론조사에서, 프리드먼과 맥래플린은 조사 대상이 된 유권자의 60%는 대통령 후보자들로부터 기아 감소에 관한 이야기를 더 많이 듣고 싶어 하며, 69%는 미국이 세계 최빈국의 필요를 해결하기 위한 원조를 위해 연방 예산의 1%를 추가 지출하는 것을 지지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들이 장기간에 걸쳐 추적해온 질문에서 미국이 세계 기아 감소를 위해 너무 적게 지출한다고 응답한 사람의 수는 2003년 27%에서 2007년 44%로 증가했다.


2003년 기근과 2008년 식량 위기 때 얻은 교훈의 하나는 기아 증가가 집단적 해결을 요구하는 집단적 실패라는 것이었다. 이때 얻은 또 한 가지 교훈은 세계는 가급적 많은 식량을 생산하기 위해 아프리카를 필요로 한다는 것이었다. 2008년 식량 가격이 급등하면서 전 세계 국가들 중 4분의 1이 넘는 곳에서 폭동과 경제적 혼란이 일어났다. 그 원인은 중국과 인도 같은 신흥 중산층에서 나오는 수요든, 곡물을 원료로 하는 대체 연료 사용을 의무화한 선진국에서 나오는 수요든 전 세계 농민들이 식량 수요를 충족시킬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때마침 세계적인 경기 침체로 식량 수요가 한풀 꺾임에 따라 2008년 말 식량 가격이 내려갔다. 그러나 세계 경제가 회복되면 식량 위기는 다시 고개를 들 것이다. 다음에 식량 위기가 닥칠 때에는 먹여야 할 입이 그만큼 더 늘어나 있을 것이다. 아프리카는 지구 최후의 농업 미개척지로 곡물 생산량을 극적으로 증가시켜 세계적인 식량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귀한 곳이다. 아프리카 농민들을 계속 방치한다면, 전 세계가 고통을 겪게 될 것이다.


G8 국가들(미국, 영국, 캐나다,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일본, 러시아)은 금융 위기가 닥치기 전에도 2010년까지 아프리카에 지원하는 연간 개발 원조금을 250억 달러 늘리겠다고 2005년 글렌이글스 정상회담에서 했던 약속에서 크게 뒤처져 있었다. 이 약속의 실행 여부를 면밀히 추적하고 있던 감시 단체 DATA는 2008년 G8 국가들이 약속 중간 시점까지 250억 달러 중 30억 달러만 증가시켰다고 보고했다.

미국의 비만 전선에서 이런 비교 통계도 나왔다. 게이츠 재단이 아프리카 6000만 가구를 기아에서 구제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산정한 돈은 미국이 비만에 대처하기 위해 지출하는 돈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각종 다이어트 프로그램과 허브 제품을 비롯해 미국의 비만 치료 시장 규모는 연간 330억 달러로 추정되고 있다.


아프리카 영세 농민들을 지원하기 위한 글로벌 펀드를 만든다 : 에이즈, 말라리아, 결핵을 퇴치하기 위한 글로벌 펀드가 아프리카의 가장 심각한 건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수십억 달러를 쏟아 부었듯이, 농업을 위한 글로벌 펀드는 아프리카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영세 농민들에게 더 많은 지원금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인프라에 투자한다 : 오랫동안 강 건너 불구경하듯이 구경만 하고 있던 세계은행과 아프리카개발은행 같은 국제기구들은 도로, 전기, 관개 같은 아프리카 농촌의 인프라를 개선하기 위한 대규모 프로젝트에 대한 금융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 워싱턴 D.C.에 본부가 있는 시민단체 ‘아프리카 기아 및 빈곤 퇴치를 위한 파트너십’의 마이클 테일러가 작성한 인프라 투자에 관한 보고서에 의하면,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농촌 인구의 3분의 1만이 포장도로에서 반경 2.5km 이내에 살고 있고, 농경지의 4% 미만이 관개가 되고 있으며, 농촌 가구의 8%만이 전기를 사용한다.


아프리카 정부는 책임을 진다 : 아프리카 정부도 자신이 한 약속을 실행해야 한다. 아프리카 53개국 중 부르키나파소, 카보베르데, 차드, 에티오피아, 말리, 말라위, 니제르 등 7개국만이 2008년까지 전체 예산의 10%를 농업에 투자하겠다는 약속을 실행했다. ‘아프리카 개발을 위한 새로운 파트너십’의 채점표에 의하면, 30개국은 5~10%를 지출했다. 과학적 연구, 최신 기술을 농민들에게 전달하기 위한 확대 서비스, 농민들이 가급적 재배를 많이 하게 되는 인센티브 등에 지출의 최우선권이 주어져야 한다. 아프리카 정부는 더 많은 토지를 사유화할 수 있도록 허용해야 한다. 그래야 농민들이 땅을 담보로 대출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아프리카 대륙은 전쟁을 중단해야 한다. 아프리카에서 가장 크고 또 잠재적으로 가장 비옥한 나라인 수단과 콩고민주공화국은 오랫동안 전쟁에 시달렸으며 그 결과 방대한 농지에 농사를 짓는 것이 너무 위험해졌다. 이 두 나라는 한때 아프리카 남부의 곡창지대였던 짐바브웨와 함께, 해마다 엄청난 양의 국제 식량원조에 의존할 것이 아니라 식량을 자급자족하는 것은 물론 나아가 식량을 수출해야 할 것이다.


신품종 종자를 심는다 : 유전자 변형(GM) 종자 사용 여부를 놓고 미국과 유럽 간에 논쟁이 벌어지면서 아프리카, 그중에서 특히 남아공 이북에는 이 종자가 도입되지 않았다. 아프리카 국가들은 만약 그 GM 종자를 사용하면 유럽 시장을 잃게 될까봐 겁이 나 미국 슈퍼마켓에 흔히 볼 수 있는 GM 식품을 받아들이지 않으려 한다. 아프리카 정부들은 활발한 논의를 거쳐 자국의 필요에 따라 GM 작물을 받아들일 것인지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만약 GM 작물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한다면, 이런 작물의 시험과 안전성을 단속하기 위해 엄격한 관련 법규를 마련해야 한다.


식량을 연료로 전환하는 것에 대한 대안을 찾는다 : 식량을 연료로 전환하는 것은 경제적으로 이점이 있는지도 의심스럽지만 세계적으로 기아가 증가하고 있는 시점에 도덕적인 실망감을 안겨주기도 한다. 석유 에너지를 대체할 다른 대안이 없다면, 정부는 우리가 먹지 않는 식물이나 버리는 식물 부위를 이용해 바이오 연료를 개발하는 방안을 연구해야 할 것이다.


국제 식량 비축량을 고려한다 : 긴급 기아 사태에 대비해 식량을 충분히 보유해두는 ‘국제 식량 비축’이라는 개념을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한다. 세계적으로 식량이 충분히 비축되어 있었더라면 2008년 옥수수, 밀, 콩, 쌀 같은 주곡의 가격이 급등했을 때 많은 나라들에게 타격을 주었던 식량 부족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합리적으로 농업 보조금을 지급한다 : 농민들이 종자와 비료를 구입하도록 도와주는 한편 농산물을 취급하는 민간 부문 상인들의 비즈니스를 지원하는 현명한 농업 보조금은 생산을 크게 증대시키고 자급자족 농업의 발전을 가져왔다. 식량 생산은 국가 안보 문제다. 모든 나라는 국민들에게 식량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현지 구매가 가능하도록 미 식량 원조에 유연성을 준다 : 미국은 자국에서 재배한 식량만 보낼 것이 아니라 식량 원조 예산의 50%를 기아 지대에서 가장 가까운 지역에서 곡물을 구매하는 데 사용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식량 예산을 최소한 50% 늘려 새로운 기금으로 현지에서 곡물을 구매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굶주린 사람들에게 더 신속하게, 더 저렴하게 식량을 제공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수송 시간과 비용이 크게 줄어들기 때문이다) 아프리카에서 재배한 곡물을 위한 또 다른 시장을 창출할 수 있을 것이다.

 

참여한다 : 교회, 자선단체, 대학, 기업 등을 통해 기아와의 싸움에 적극 동참하라. 기아와의 싸움에서는 개개인이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아흔세 살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아직 기아와의 싸움에 참여하고 있는 녹색혁명의 아버지 볼로그는 자신의 시험 경작지를 떠나면서 다시 이곳을 찾아올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다. 그는 죽음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는 야키 계곡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나는 보통 사람들의 판단력을 믿습니다. 그들이 사실을 안다면 현명한 판단을 내릴 것으로 굳게 믿어요. 변화가 일어날 때에는 삽시간에 일어날 수 있습니다.”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