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화는 걱정한 것만큼 나쁘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 그리고 이 책의 저자 에릭 오르세나는여기에서 물음표를 던진다. 전 세계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고, 전 세계의 사람들 모두가 생활로 받아들이는 이 세계화가 정말 옳은 것인지 잘되고있는 것인지. 그는 우리 모두의 가까이에 있으며 생활 전반에 두루 쓰이는 천연 자원 목화를 나침반 삼아 다섯 대륙 여섯 나라로 자신만의 탐색을떠난다.
에릭 오르세나는 세계화에 대해 긍정적인 전망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는 함부로 속단하거나판단을 강요하지도 않는다. 이 책에서 그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 두고 정직하게 자신이 느낀 바를 토로한다. 미국의 지원 정책을 불공정하다고말하면서도 어째서 그런 보호를 받고 있는 미국의 목화 생산 농민이 부자가 아닌지 궁금해하고, 우즈베키스탄의 목화 생산을 위한 인구 동원을부정적으로 보면서도 중국 다탕의 가족 중심 노동이나 말리의 가족 중심 농업을 자연스럽게 보는 시선에 혼란스러워하며, 전 세계를 위협하는 중국시장 노동자들의 환경과 임금에 당혹해하면서도 프랑스의 목화 관련 사업자들의 상태를 안타까워한다.
그의 이 망설임과 혼란이야말로 "세계화"에 대한 의문이다. 자본주의 강대국에서 내세우는"세계화"가 정말 지구에 사는 모든 이들을 잘살게 할 수 있을 것인가. 다 같이 잘사는 데에는 오로지 "세계화"라는 답밖에 없는가. 획일적인기준으로 모든 사람을 달리게 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 에릭 오르세나가 "맺는말"에서 갈등하듯 세계화의 앞에는 다층적이고도 다면적인 문제가수도 없이 노정되어 있다. 목화는 그 솜은 몹시 부드럽고 폭신폭신하지만 수확기의 잎은 손가락을 자를 정도로 날카롭다고 한다. 이 책도 그렇다.에릭 오르세나의 글은 유려하고 부드럽지만 그가 말하는 세계화의 비밀들은 날카로운 날과도 같다.
■ 저자 에릭 오르세나
대학에서 철학과 정치학을공부하다가 런던 정경 대학에서 경제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뒤, 파리 제1대학과 고등사범학교에서 국제 금융과 개발 경제학을 가르쳤다. 1981년국제협력부의 고문을 맡아 사회당 정부와 인연을 맺었고, 미테랑 대통령의 문화 보좌관 겸 연설문 초안 대필자, 최고행정재판소 심의관, 국립고등조경학교 학장, 국제해양센터 원장 등 주요 공직을 두루 거쳐 왔다. 1998년 프랑스 학술원의 회원으로 지명되었다. 저서로 『로잔에서 산것과 같은 삶』『식민지 전시회』『로욜라의 블루스』『어떤 프랑스 희극』『큰 사랑』『아홉 대의 기타로 엮은 세계사』『오랫동안』『새들이 전해 준소식』『문법은 감미로운 노래』『두 해 여름』 등이 있다.
■ 역자 양영란
서울대학교 불어불문학과와 동 대학원을졸업하고, 1986년 파리 제3대학에서 공부했다. 「코리아 헤럴드」 기자, 「시사저널」 파리 통신원으로 근무했다. 옮긴 책으로 『남자는디저트』『서기 1000년과 서기 2000년, 그 두려움의 흔적들』『잠수복과 나비』『테오의 여행』『나의 연인 뒤라스』『사라진 도시우루아드』『『엄마 집에서 보낸 사흘』『미래의 물결』『현장에서 만난 20th C: 매그넘(MAGNUM) 1947~2006』 등이 있다.
■ 차례
추천의 말
책머리에
I 말리 : 옷감 짜기, 말하기, 민영화하기
"소이"라는 단어 | CMDT의 나라 | 쿠티알라 | 부르키나에서 얻은 교훈 | 페티시스트 | 바마코 | 중고 의류는저주나 받아라!
II 미국 : 로비 활동에 영광을!
모든 것이결정되는 도시 워싱턴 | 유령들과 위대한 신 | 메두사들과 더불어 | 개, 기계 말, 그리고 바람 | 세계적인 수도
III 브라질 : 미래의 농장
마투그로수 | 진보로인한 현기증 | 거물 코디네이터 | 우리는 중국이 두렵지 않소
IV 이집트 : 부드러움에 대하여
무함마드 엘호세이니 엘 아카드 | 스페인 기차 | 찬란한 모자이크 | 앙프뢰르 씨와 보낸 오후 | 가족의 효용성
V 우즈베키스탄 : 눈이 가져다준 선물
훌륭한 교수법| 낭만적Ⅰ | 낭만적 II | 타타르학 | 아흐메도프 씨 | 눈이 가져다준 선물 | 중앙아시아에서 돈이 유통되는 방식에 대한 간략한 설명 |기다림의 나라 | 호킴과 토이 | 이고르 비탈리에비치 사비츠키 | 죽어 버린 아랄 해 | 지정학
VI 중국 : 공산주의식 자본주의
상처 입은 농촌 |세계적인 양말의 도시 | 호평 받는 품질 | 불타는 기업가 정신 | 결별 | 미래를 생각하기
VII 프랑스 : 최일선
맺는말
감사의 말
옮긴이의 말
코튼로드
말리 : 옷감 짜기, 말하기, 민영화하기
‘소이’라는 단어
도곤족은 서부 아프리카 중앙, 바니 강이 니제르 강과 합류되는 신비스러운 곳으로부터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산다. 반디아가라가 이 나라의 수도이다. ‘반디아가라’는 ‘코끼리들이 물을 마시는 물통’을 의미한다. 코끼리들은 사라졌지만 이름만은 아직도 남아 있다.
도곤족은 기하학적 문양의 거대한 마스크, 가파른 절벽 끝에 매달리게 지은 창고 등으로 유명하다. 인류가 만들어 낸 우주 생성 이론 중에서 가장 풍요롭고 유머러스하며 복잡하고 시적인 그들의 우주관 또한 그에 못지않게 유명하다. 이 이야기 속에는 흰개미 집과 여자의 음핵, 쌍둥이 시조, 근친상간을 범하는 말, 일곱 번째 정령, 언어를 완벽하게 아는 자, 약간 저주받은 대장장이, 구름을 낚는 꼬챙이, 섹스에 열중하는 개미를 비롯하여 지극히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중에는 목화도 들어 있다.
현재 도곤족은 관광 수입과 양파 재배로 연명하는데, 이 두 가지만으로는 기근을 몰아내기에 충분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1970년대 중반 열 가구 정도는 절벽 끝의 창고를 버리고 남쪽으로 정처 없이 길을 떠났다. 이들에게 제공된 부르키나파소와의 국경 부근 토지는 이들이 떠나온 땅보다도 곡물을 재배하기에 더 척박했다. 하지만 그 땅에서는 목화 재배가 가능했다.
이렇게 기쁜 소식을 전해 듣자 남아 있던 다른 가구들도 이곳으로 속속 몰려들었다. 현재 이곳에는 주민이 약 600명가량 되는 제법 큰 마을이 형성되었다. 마을 이름도 지어야 할 필요가 생겼다. 누구나 쉽게 짐작할 수 있는 이유로, ‘반디아가라2’라는 이름이 제일 많은 호응을 얻었다. 도곤족의 목화 선호 사상은 그 뿌리가 깊다. 나이 든 눈먼 사냥꾼 오고템멜리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날이 밖아 오면 태양 아래서 일곱 번째 정령이 여든 개의 목화 실을 뱉어 낸다. 정령은 자기 윗니를 이용해서 이 실을 방적기의 빗살에 끼운 것처럼 고르게 분배한다. … 정령은 아랫니를 이용해서 똑같은 동작을 반복하는데, 이번엔 이렇게 해서 짝수 번째 실의 위치를 잡는다. 턱을 벌렸다 오므렸다 반복하면서 정령은 방적기의 움직임에 따라 날실 쪽의 무늬를 만들어 냈다. 실들이 교차되었다가 흩어지기를 반복하는 동안 정령의 갈퀴 혀의 두 부분에서는 번갈아가며 씨실이 만들어져 나온다. … 정령은 말했다. … 그는 기술을 통해서, 그 기술이 인간들에게 전달되도록 하기 위하여 자기의 말을 전달했다. 정령은 이처럼 물질적인 동작과 정신적인 힘이 지닌 정체성, 아니 그 두 가지가 협력을 해야만 하는 필요성을 보여 주었다. 정령이 목청을 가다듬어 말을 하면 그의 말은 이내 실과 함께 옷감으로 짜여 나왔다. … 그의 말은 옷감 그 자체였으며, 옷감은 말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나라 말에서는 ‘옷감’을 나타내는 단어도 ‘소이’이며, ‘말’을 뜻하는 단어 역시 ‘소이’이다.”
추수를 한 날 저녁이면 시골에서는 당나귀들이 끄는, 수도 없이 많은 짐수레들을 만나게 된다. 다음 날 목화 업체의 트럭이 도착하면 동네는 온통 잔치 분위기로 들썩거린다. 뭉치별로 하얀 보물들의 무게를 잰다. 그런 다음 계산을 한다. 그리고 무언가 숫자를 발표한다. 목화 업체 사람은 주머니에서 두툼한 돈다발을 꺼낸다. 그가 돈을 세면 주위 사람들의 얼굴이 환해진다. 젊은 사람들의 환호 속에서 트럭이 공장을 향해 떠날 때, 나이 든 사람들의 얼굴에서 느껴지는 이 서글픔은 나만 느끼는 것일까? 예전에는 수확한 목화를 마을 밖으로 내보낼 필요 없이 마을에서 직접 직조를 하고 염색을 하곤 했다. 요즘에는 추수가 끝나자마자 목화가 마을 밖으로 사라져 버린다. 그리고 멀고 기나긴 여행 끝에 티셔츠가 되어서야 마을로 되돌아온다.
그래서인지 몇몇 특별한 날에는 마을 아낙네들이 화려하기 그지없는 부부(전통 의상) 차림으로 마을의 중심에 자리한 집 앞에 돗자리를 깔고 모여 앉아 오래된 전통을 재현한다. 여러 시간이 소요되는 과정을 거치는 동안, 아낙네들은 손가락으로는 어릴 때부터 익혀 타향에 살아도 절대 잊을 수 없는 동작을 계속하면서, 수다를 떨고 쿡쿡거리고 웃기도 하며, 숨 돌릴 새도 없이 이야기를 계속한다.
나이 든 눈먼 사냥꾼 오고템멜리는 죽은 자들의 거처에서 살면서 이 광경을 보면 안도의 한숨을 내쉴 것이 분명하다. 오늘날의 도곤족도 예로부터 그들이 간직해 오던 가장 큰 비밀 중의 하나인 이것만은 절대로 잊지 않는다. 말하기와 옷감 짜기는 같은 행위이며, 그렇기 때문에 이 두 행위를 표현하기 위해서는 같은 단어를 사용한다는 사실이다. ‘소이’라는 단어 말이다.
CMDT의 나라
아프리카에서 목화 재배는 아주아주 오래 전에 시작되었다. 세기를 거듭하면서 그 전통은 지속되어 왔다. 마을에서는 필요한 옷을 만들기 위해 목화를 심었다. 그러다가 식민지 역사가 이 평화스러움을 모두 망쳐 버렸다. 프랑스의 공장들은 원료를 필요로 했다. 식민지 행정 기관에서 이른바 ‘노동 반장’이라고 불리는 작업반장들을 주축으로 하여 ‘원주민 예측 회사’를 설립했다. 이름은 그럴 듯하지만 그 이름 하에 진행되는 일은 끔찍했다. 농부들은 언제나 많은 목화, 좀 더 많은 목화를 생산해야 했다. 덕분에 가죽 끈(물소나 하마의 가죽)을 매듭지어서 만든 채찍은 한시도 이들 작업반장의 손을 떠나지 않았다.
1950년대 초에 들어와 이 같은 혹독한 작업 조건은 약간 인간적으로 변했다. 하지만 프랑스의 섬유 야심은 변하지 않았다. 이 무렵 회사가 하나 태어났다. 공공 부문에서 자금을 대는 회사였다. 이 회사는 목화에 대한 모든 에너지를 한 곳으로 모으기 위해 만들어진 회사였다. 식민지 상태에서 독립을 했다고 해도 크게 달라질 것은 없었다. 프랑스 회사에서 말리 회사로 이름만 바뀌었기 때문이다. 자본금은 내내 공공 부문에 속했다(프랑스 정부 40퍼센트, 말리 정부 60퍼센트).
1972년, 마마두 시세는 말리섬유개발회사(CMDT)라는 이름의 이 회사에 입사했다. 그는 갓 역사 공부를 마친 스물다섯 살의 청년이었다. 회사에서 그에게 농부들에게 글자를 가르치라는 임무를 부여했다.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문맹자들에게 글을 가르치는 것이 CMDT의 일이었단 말이에요?” “글을 읽을 줄 모르는 농부는 목화를 제대로 재배할 수가 없으니까요! 목화 덕분에 나는 마을 전체가 무지에서 깨어나는 과정을 지켜볼 수 있었습니다. 마을은 하나씩 둘씩 깨어났습니다. 바로 이 카니코라고 하는 마을에서 시작되었지요. 나는 이곳에서 글을 가르치기 시작했어요.” 마을 주민들은 앞 다투어 그에게로 몰려들었다.
정부 당국 관계자와 우리는 대나무로 지붕을 엮어 ‘수다 사랑방’으로 쓰는 나무 밑에 자리를 잡았다. 시장이 입을 열었다. “우리는 모두 마마두에게 감사해요. 학교며 도로, 의료 센터, 네 번째 우물, 살충제에 관한 연수 등이 모두 마마두 덕분이거든요.” 겸손한 마마두는 잠자코 듣고 있다가 이의를 제기했다. “그건 내가 한 게 아니라 CMDT가 한 일이죠.”
“마마두는 그렇게 이야기하지 않을 테지만, 카니코는 순전히 마마두의 자식이나 마찬가지예요. 이 나무들만 해도 그래요. 선생님은 아프리카 마을 중에서 이렇게 나무가 많은 마을을 본 적이 있으신가요? 다른 곳에서는 벌써 오래 전에 땔감으로 쓰기 위해 나무들을 모조리 베어 버렸지요. 여기, 우리 마을에서는 나무를 아낍니다. 왜냐하면 마마두가 우리에게 나무가 그들을 만들고, 비를 부른다고 가르쳐 줬거든요. 그리고 목화에는 그늘과 비가 필요하다고도 가르쳐 주었습니다. 목화는 나무만 좋아하는 게 아니지요. 다른 식물들도 모두 목화의 친구예요. 목화는 매우 까다로운 식물입니다. 목화를 잘 지배할 수 있는 사람은 다른 작물들도 잘 기를 수 있어요. 우선 옥수수나 수수 같은 곡식들을 기른 다음 목화를 기르는데, 목화는 해마다 씨를 뿌려야 해요. 여러 해씩 기르는 커피나 카카오 같은 작물과는 달라요. 목화를 재배하는 사람은 자유로워요. 작물을 바꿀 수 있으니까요. 더구나 작물을 바꾸어야만 하기도 해요. 그렇게 하지 않으면 땅이 너무 피곤해하니까요. 목화는 우리 마을의 기관차입니다.” “네, 뭐라고요?” “우리 마을 발전의 기관차라는 말입니다. 목화는 우리에게 돈만 주는 게 아닙니다. 목화 덕분에 우리는 마을의 평화와 주민들 간의 이해심도 얻었습니다. 목화가 아니었다면 우리는 지금보다 훨씬 가난했을 거예요. 자연히 자주 싸움이 벌어졌겠죠….”
나는 쓰레기 더미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마을의 광장 한구석에 있는 상점을 가리켰다. ‘카포 지지뉴’라는 간판이 달려 있었다. “‘카포’는 ‘연합’을 의미하고, ‘지지뉴’는 ‘창고’를 의미합니다. 두 단어를 붙이면 창고 연합, 그러니까 우리의 은행입니다. 우리 농부들이 운영하는 은행이죠. 살충제가 없다면 목화도 없습니다. 은행 대출을 못 받으면 살충제를 살 수 없습니다. 이런 금융의 기초를 누가 우리한테 가르쳐 주었는지 한 번 알아맞혀 보십시오.”
마을 사람들은 끈기와 자부심을 가지고 나에게 설명했다. 정부에서는 목화 수매가를 정해 놓고 있었다. 그러므로 은행에서는 예상 가능한 수입을 근거로 대출을 해 준다. 이 대출금은 목화 재배(필요할 때 살충제와 제초제 등을 구입한다), 또는 다른 작물의 재배(농기구, 종자, 짐승 등)를 위해 쓰인다. 이것이 바로 목화가 대출이라는 장치를 통해서 이 고장을 발전시킨 과정이다!
우리가 지금 말리에 있는 건 틀림없는 사실인가? 그런데 자꾸만 말리가 아니라 CMDT라는 나라에 있는 것 같은 기분이다. 모든 공공 서비스가 이 회사에 의해 보장되는 나라. 면적(공식적으로 인정되는 말리 남부 지역의 3분의 1)으로 보나, 인구의 수(약 300만 명)로 보아 상당히 비중이 큰 나라. 특혜를 받은 나라. 왜냐하면 목화를 재배하지 못하는 다른 지역, CMDT가 지배하지 않는 지역의 주민들의 삶은 대체로 가난하고 헐벗었으며 아무런 대책 없이 방치되었기 십상이므로, 이곳에서의 삶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열악하다. 이런 ‘나라’가 ‘민영화’라는 끈질긴 복병에 의해 위협을 받고 있다.
카니코 마을에서는 주민 그 누구도 이 정책의 운용 방식을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 정책이 ‘CMDT 나라’에 종말을 고하게 하리라는 점은 모두가 다 알고 있다. 마마두 시세에게 보여준 그 열렬하고 따뜻한 환대가 마법의 노래처럼 나를 감싼다. 축복받은 한 시대를 풍미한 남자를 그처럼 환영하다 보면, 그 시대와 영영 작별할 수 없는 건 아닐까?
부르키나에서 얻은 교훈
어째서 민영화를 해야만 하나? 어째서 삶이 팍팍한 서부 아프리카에서 그나마 상대적인 안락함이 보장된 이 구역마저도 파괴해야 한단 말인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세계 시장에 달려 있다. 목화가 높은 가격을 유지하는 동안은 CMDT가 자기들 뜻대로 운신할 수 있다. 이 거대한 집단 농장, 지구상에서 가장 큰 목화 기업인 CMDT는 경영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칭찬만 받을 형편이 아님은 누구나 잘 알고 있다. CMDT의 거래 내역은 물론, 그로 인한 부패 혐의도 누구나 잘 알고 있다. 공기업 하나의 매출이 국가 전체 수출입액의 절반을 차지할 때, 국가의 권력을 잡은 이들이 이 기업의 금고에 손을 뻗치고 싶은 유혹을 견디기 어려우리라는 점은 쉽사리 짐작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일단 1차적인 목표, 즉 농촌을 확실하게 발전시킨다는 그 목표를 달성했으므로, 정권 당국에서는 부패 현상을 알면서도 눈을 감기 예사다. 아니 정권 당국이 사실은 이 부패의 공모자 내지는 수혜자라고 하는 편이 더 정확하다.
그런데 목화의 시세가 폭락하면 사정은 완전히 달라진다. 농촌 지역 주민들의 분노가 폭발하는 것을 막기 위해 정부는 내린 값을 반영하지 않는다. 내리기 전 가격으로 목화 수매를 계속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CMDT의 적자가 늘고, 결과적으로 CMDT의 대주주인 말리 정부의 재정 적자도 늘어나게 된다. 이미 오래 전부터 출혈을 계속해 온 말리 정부로서는 외국에 손을 벌리는 수밖에 없다. 세계은행은 항상 조건부로 돈을 빌려 준다. ‘내가 도와줄 테니 민영화시켜라’가 그 조건이다.
바마코
나는 1992년 여름, 프랑스의 안시에서 아마두 투마니 투레를 처음으로 만났다. 그때 그는 민주주의의 영웅으로 소개되었다. 아프리카 대륙에서 그가 벌인 수많은 선행과 아픈 어린이들을 위한 지속적인 지원 사업 등 …. 말리인들은 마침내 그에게 국가 최고 권력을 맡겼다. 이번엔 그가 자신의 새로운 거처인 관저에서 나를 맞았다. 대통령은 내 앞에서 자신을 불안하게 하는 걱정거리를 감추지 않았다.
“예전에 우리나라에서는 목화를 ‘백색 금’이라고 불렀지요. 해마다 100톤이 넘는 ‘금’을 캐낸 셈이니까요. 오랫동안 목화는 우리의 가장 든든한 벗이었습니다. 하지만 요즘에 와서 이 백색 금은 우리에게 저주처럼 여겨지고 있습니다. 목화는 우리나라 인구의 3분의 1가량을 먹여 살립니다. 그런데 어떻게 우리가 목화를 단념할 수 있겠습니까? 물론 나는 농민들에게 세계 시장 가격보다 비싼 목화 수매가를 보장했습니다. 나한테 그것 말고 달리 무슨 방법이 있겠습니까?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농민들은 모두 들고일어났을 겁니다! 이게 바로 세계은행이 추구하는 정책입니다. 우리나라 남부 지역, 그러니까 코트디부아르로부터 피난민들이 꾸역꾸역 몰려드는 바로 그 지역에 정세가 불안한 지역을 또 하나 만들어 내는 것이 그들의 목표라는 말입니까? 나더러 어떻게 그 사람들을 먹여 살리라는 말입니까? 거기다가 우리나라의 목화업자 350만 명도 더 이상 먹을 것이 없어지면 우선 도시로 몰려올 것입니다. 그런 다음에 무슨 수를 써서라도 프랑스로 가려고 발버둥 치겠지요. 이게 바로 당신들이 원하는 건가요?”
그는 대부분의 아프리카 지도자들이 즐겨 쓰는 과장된 수사라고는 전혀 없이 소박하면서도 명확하게 말했다. “우리나라의 적자 폭이 크다고 밖에서는 아우성들을 치지만, 이 적자의 원인을 살펴보려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나라로부터 받는 지원금이 없다면, 미국 농민들은 우리 농민들보다 훨씬 비싼 값에 목화를 생산할 것입니다. 독립 이후 우리의 목화 생산량은 20배나 증가했습니다. 지난 40년 동안 우리는 생산성 향상을 위해 불철주야 노력했습니다. 우리는 철저하게 경쟁 원칙을 준수했습니다. 제일 힘이 센 경쟁자는 규칙을 지키지 않는데 우리같이 힘없는 사람들만 규칙을 지키니 애초부터 이길 승산은 전혀 없는 게임이지요. 그뿐만이 아닙니다. 유럽과 미국 사이에 벌어지고 환율 전쟁에 대항해서 우리가 무얼 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프랑화 지역에 속하기 때문에 죽으나 사나 유로화에 손발이 묶인 상태입니다. 유로가 올라가면, 달러로 매매되는 우리 목화는 값이 덜 나갑니다. 선생님은 이런 현실이 정상적이라고 보십니까? 전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의 하나가 제일 비싼 화폐에 따라 경제를 운용해야 하는 이 현실 말입니다. 유로가 올라갈수록 우리는 점점 더 추락합니다. 아무도 여기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하지 않습니다. 세계은행이라는 곳은 더더구나 아무 말도 하지 않죠.”
그는 흥분한 탓인지 어색한 몸짓으로 수가 놓인 파란색 부부의 소매를 걷어 올렸다. 이윽고 대통령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민영화? 그런 거 다 좋습니다. 어쨌거나 우리한테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 같으니까요. 하지만 세계은행이 지나치게 서두르는 나머지 우리 목화 산업 전체를 그르치게 만드는 일은 절대로 용납할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이따금씩 그런 생각이 들곤 합니다. 혹시 우리나라 목화 산업 전체를 뿌리 뽑아 버리는 게 그자들의 목적은 아닌가 하고 말입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 경쟁자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요. 우리 경쟁자가 누구인지는 말씀드리지 않아도 짐작하시겠지요. 마침 선생님께서 워싱턴에 가신다니 그 사람들에게 가서 확실하게 말씀하세요. 시기 문제만큼은 내가 절대 양보할 수 없다고요.” 나는 대통령 관저에서 나오면서 시간, 아니 시간이라는 요소의 준비 없이 대면하게 되었음을 생각했다. 세계화란 지역과 공간만의 문제가 아니다. 시간까지도 고려에 넣어야 하는 전쟁인 것이다.
한 국가의 경제를 놓고 볼 때, 지난 세기에는 그다지 서둘러야 할 이유가 없었다. 경제란 매우 높고 견고한 관세라는 장벽을 쳐놓고 그 안에서 차츰 건설해 가면 되는 것이었다. 가장 조심해야 할 상대와 힘을 겨뤄 보기 위해 어쩌다 한두 번 큰마음 먹고 장벽을 열어 주면 그뿐이었다. 그렇지만 오늘날에는 이 같은 보호 장벽이나 교육을 빙자한 시간 끌기 작전이 더 이상 허락되지 않는다. 이제 겨우 걸음마를 배웠을 뿐인데 달리기 경주에 참가할 것을 종용하는 것이 오늘날의 경제다.
이 같은 가속화 현상은 무슨 의미를 지니는 것일까? 많은 전문가들이 앞으로 5년 후, 아니 적어도 10년 안에는 중국과 인도, 파키스탄 등의 국가에서 목화 생산을 줄여야 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좋은 토지는 귀하고 인구는 증가하기 때문이다. 식량 생산에 힘쓰지 않으면 증가하는 인구를 어떻게 먹여 살릴 것인가? 경작지 면적이라면 남부러울 것이 없는 아프리카에는 유리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앞으로 5년 후, 10년 후에 말리 목화 산업에는 무엇이 남아 있을 수 있을까?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