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풍부한 자료 고증과 역사적 사실에 충실한 실증주의적 접근 방법은 진정한 한국광고사로서 신뢰성을 높였고, 광고 창의성과 문화에 주목한 해석주의적 접근 방법은 개별 광고물의 표현 양식과 문화적 의의를 밝혀 내용적 깊이를더했다. 정치 광고, 변형 광고, 기사형 광고, 유머 광고, 티저 광고, 경품 광고, 의견 광고 등 오늘날의 모든 형태의 광고 원형을 찾아볼 수있는 것도 특징이다. 또한 국어(한글), 영어, 일어, 한문 등 다양한 언어로 쓴 기발한 아이디어의 카피들도 접할 수 있다. 이 책을 통해독자들은 당시 광고의 흐름은 물론 그 시대를 살아간 우리 선조들의 삶과 문화를 접할 수 있다. 특히 광고인들은 우리 광고의 정체성을 발견하고,그 속에서 오늘날에도 변용해 쓸 수 있는 신선한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 저자
신인섭 - 현재 한림대학교 언론정보학부 객원교수이다. 평양사범, 평양교원대학 국문과를 졸업한 후 현대경제일보와LG그룹(희성산업)을 거쳐 광고계의 여러 방면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국 광고사 연구의 산 증인이다. 서울카피라이터스클럽(SCC) 창립회장,제14차 아시아 광고대회 사무총장, 제35차 IAA 세계광고대회 사무총장을 역임했으며, 한국광고학회, 한국광고홍보학회, 한국언론학회,미국광고학회, 미국PR협회, 일본광고학회 회원이다. 지은 책으로는 『Advertising in Korea』『한국광고사』 『한국광고발달사』 등다수가 있다.
김병희 - 현재 서원대학교 광고홍보학과 교수이다.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 언론홍보대학원 석사를 거쳐 한양대학교 광고홍보학과에서 광고학 박사를 받았다. 광고회사 선연에서카피라이터 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일한 바 있다. 미국 일리노이대학교 광고학과 방문연구교수를 역임했으며, 현재 한국광고학회 이사,한국광고홍보학회, 한국언론학회, 미국광고학회 회원이다. 지은 책으로는 『광고카피창작론』『광고 오디세이』『크리에이티브의 길을 묻다』『광고와대중문화』등이 있다.
■ 차례
머리말
제1장 연구과제와 연구방법
1. 근대 광고분석의 틀
2. 시대구분 문제
3. 광고물 평가준거와 선정기준 및 절차
1) 광고물 평가의 준거 | 2) 광고물 선정의기준 | 3) 광고물 선정의 절차
제2장 근대 광고 태동정착기(1876 ~1910)의광고
1. 개관
2. 언론과 광고 매체
3. 이 시기의 광고
001 세창양행의 고백 | 002하마다 상점 광고 | 003 「독닙신문」의 광고 | 004 「The Independent」의 광고 | 005 죠일주쟝의 청주와 사꾸라 정종 광고| 006 부르너 모튼의 소다 광고 | 007 전차 지붕에 붙인 오루도 히이로의 옥외광고 | 008 하와이 정부의 이민 포스터 | 009솔표석유의 비교 광고 | 010 민영환의 자결에 대한 부고 의견 광고 | 011 룡표, 꼿표, ◇표 물감 광고 | 012 천연당사진관 광고 |013 국채보상 의연금 수입 광고 | 014 한미전기회사의 연종서 | 015 대한수도회사의 전단 | 016 간판제조소의 광고 | 017옥호서림의 모자 광고 | 018 황성기독교청년회학관 야학원 모집 광고 | 019 제생당의 청심보명단 광고 | 020 한양상회의 신년축하 광고 |021 한양상회의 통신판매 광고
제3장 일본제도 도입기(1910 ~1920)의광고
1. 개관
2. 언론과 광고 매체
3. 이 시기의 광고
022 일본전보통신사의「조선신사명감」예약 광고 | 023 부인다옥 박정애의 광고 | 024 동서연초상회 스포-트 담배의 티저 광고 | 025 영미연초주식회사의기차박람회 광고 | 026 인형표 밀크 광고 | 027 조선연초의 신축낙성 축하 광고 | 028 기린 삿뽀로 사꾸라 맥쥬 광고 | 029 신년축하 광고 | 030 신문사 기획 광고 | 031 태양됴경환의 증언형 광고 | 032 중장탕 광고 | 033 라구도-겐포스터
제4장 근대 광고 성숙기(1920 ~1940)의 광고
1. 개관
2. 언론과 광고 매체
3. 이 시기의 광고
034 제일양복상회 및 광신양화점의 광고 |035 한성모자점의 광고 | 036 경성전당포조합 광고 | 037 「소개란」에서 시작된 안내 광고 | 038 광고회사 ‘백영사’의 광고 |039 ‘현대 신사의 일일’ 협동 광고 | 040 일본전보통신사의 협찬 광고 | 041 아까다마 포트와인 광고 | 042 포르노 책 광고 |043 박가분 화장품 광고 | 044 경성방직의 광고 | 045 레-도 백분의 설명형 광고 | 046 구라부 백분의 정서형 광고 | 047「개벽」의 광고 | 048 「동광」, 「님의 침묵」, 「조선문단」, 「별건곤」 광고 | 049 고무신 광고전 | 050 한국 최초의 광고 공모전고지 광고 | 051 모모야쥰텐캉의 백색미안수 광고 | 052 데-무수 광고 | 053 1926년 식 정치 광고 | 054 서선고무공장 이승두의사죄 광고 | 055 유한양행과 유한의원의 첫 광고 | 056 천일약방의 됴고약 광고 | 057 신포-드 자동차 광고 | 058 일본 제너랠모-터-스의 신시보레호 광고 | 059 리꾸레 취잉검 광고 | 060 스모가 치마 광고 | 061 「수양전집」과 「강담전집」 광고 | 062인단 광고들 | 063 단성사의 영화 프로그램 브로슈어 | 064 아지노모도의 등롱 광고 | 065 전보통신사 주최 전국대표미인 선발 광고 |066 라이온 치마분 판촉 광고 | 067 거북션표 고무신 광고 | 068 모리나가 캬라메루 광고 | 069 가오 비누 광고 | 070 가루비스광고 | 071 영화 「님자업는 나루배」 포스터 | 072 인단의 변형 광고 | 073 빅도로라 축음기 광고 | 074 우진 구명환 | 075조선글 타자기 광고 | 076 와까모도 광고 | 077 인단 치약 광고 | 078 직감식 통신교수법 광고 | 079 화신백화점 광고 | 080신문의 제호돌출 광고 | 081 간장 광고들 | 082 유한양행의 네오톤 토닉 광고 | 083 삼용토닉과 동화약방의 마라톤 우승 축하광고 |084 아지노모도 조미료 광고 | 085 란란 포마-도 광고 | 086 유한양행 네오톤의 필기체 광고 | 087 명색미안수 광고 | 088킨쯔루 포마-도의 광고 | 089 대학목약 최승희 모델 광고 | 090 영화 「선황당」 포스터 | 091 상업미술전람회 뽀스다 신문 광고도안모집 광고 | 092 미쓰와 비누 광고 | 093 치요다 네오토닉 광고 | 094 헤지마고론, 금학향유, 우데나 바니싱 크림 화장품 광고 |095 대학목약 광고
제5장 근대 광고 쇠퇴기(1940 ~1945)의광고
1. 개관
2. 언론과 광고 매체
3. 이 시기의 광고
096 양명주 광고 | 097 와까모도조선출장소의 광고문안계 모집 광고 | 098 유한양행의 네오톤과 코프시로 광고 | 099 헌납 광고 | 100 작아지는 광고들
참고문헌
최종 선정 광고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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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근대 광고 걸작선 100 : 1876~1945
세창양행의 ‘고백’
1884년 12월에 일어난 개화파의 갑신정변은 사흘 만에 실패함으로써 이른바 ‘3일천하’에 머물렀다. 이에 따라 한 해 전에 개화파의 주도로 창간된 「한성주보(漢城旬報)」 역시 수난을 겪게 되는데, 신문 발행처인 박문국은 수구파에 의해 파괴되었다. 열흘에 한 번씩 나오던 한국 최초의 근대 신문 「한성순부」가 폐간되었으나 한지에 인쇄하여 끈으로 묶어 발행했으며, 가로 17cm에 세로 24cm의 크기였다.
1886년 2월 22일, 한국 최초의 신문 광고가 등장했는데 광고주는 세창양행(世昌洋行)이었다. 광고의 구성은 2쪽에 걸쳐 24행이었으며, 카피는 모두 한문이다. 헤드라인은 “덕상세창양행고백(德商 世昌洋行 告白)”으로 되어 있는데, 독일상사 세창양행의 광고라는 뜻이다. 왜 광고가 아닌 고백이라고 썼을까? 1860년대부터 일본에서 쓰이기 시작한 광고(廣告)라는 단어가 한국에서는 아직 보편화되지 않았으므로 대체로 ‘고백(告白)’이라는 말을 사용했는데, 이는 한중일 3국의 근대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었다. 일본 최초의 신문인 「요코하마매일신문」에도 ‘고백’이라는 말이 광고의 뜻으로 사용되었고, 동양 3국의 광고사에서 최초의 근대 광고주는 모두 외국계였다.
세창양행 광고는 크게 한국에서 사가는 물건 목록인 앞부분과 한국에 들여와 파는 물건 목록인 뒷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가는 물건은 소, 호랑이, 말, 수달피 등의 가죽, 오배자, 동전 따위며, 수입품은 염료, 천, 허리띠, 서양 못, 램프, 성냥 등 갖가지 서양 물건이다. 여기에서 ‘자래화(自來火)’라는 성냥 이름이 재미있는데, 부싯돌에 불을 펴 쓰던 것에 비해 불이 스스로 켜지는 것과 흡사해서 붙여진 이름일 터이다. 글자 사이를 떼서 제품(물건) 이름을 손쉽게 볼 수 있도록 배치한 것이 인상적이다.
세창양행 광고는 단순한 마케팅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경제?문화사적 맥락에서도 한국 사회에 영향을 미쳤다. 독일은 세창양행을 통해 우리 경제를 지배하고자 했으며, 세창양행 광고는 그 과정에 일조한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이 광고 이후에 계속된 세창양행 광고는 새로운 유행을 창조하는 순기능을 발휘하기도 했으나 독일의 경제적 첨병 역할을 하는 역기능을 수행하기도 했다.
이렇게 해서 한국 근대 광고의 시대가 열렸다. 광고라는 말이 보다 대중적으로 쓰이게 된 것은 10년 후 미국에서 돌아온 서재필이 「독립신문」을 창간한 다음부터이다. 1886년 2월 22일 이후 우리 광고는 그 찬란한 여명을 밝히기 시작하는데, 이 광고는 우리나라 광고의 시작을 알렸다는 점에서 한국 근대 광고 100선의 첫 번째 광고로 선정되었다.
룡표, 꼿표, ◇표 물감 광고
전통적으로 우리 민족은 흰옷을 즐겨 입었다. 그래서 백의민족(白衣民族)이라는 말이 나왔을 것이다. 그런데 20세기 들어 개화의 물결로 인하여 옷에 물감을 들여 입는 풍습이 시작되었다. 「만세보」 1907년 6월 27일자에 게재된 룡표(용표), 꼿표(꽃표), 그리고 ◇(마름모꼴)표 물감 광고를 보면 옷에 물감을 들여 입으라는 권고가 설득력 있게 제시되었다. 이 광고에는 헤드라인이 없으나 다음과 같은 바디카피를 통하여 광고 주장을 차분하게 전달하고 있다.
“이 물감은 빗도 곱고 드리기도 쉬운 상등 물감이니 사다드려 보시오”(A)
“룡표와 꼿표와 ◇표난 세상에 뎨일 물감”(B)
“이 물감은 빠라도 빠지지도 안코 벗지도 아니하난 참 죠흔 물품이오”(C)
이 광고의 가장 큰 매력은 그림과 카피를 재치 있게 연결하고 있다는 점이다. 광고 메시지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첫째, 할머니가 화로 위에 양푼을 올려놓고 옷감에 물을 들이며 양 손으로 옷감을 쫙쫙 펴는 장면을 제시하고 (A)와 같은 카피를 제시했다. 특히 카피를 직접 말하는 듯이 입에서 튀어나가는 것처럼 구어체로 처리한 레이아웃이 주목할 만하다. 둘째, (B)와 같은 카피를 제시하며 룡표와 꼿표와 ◇표가 세상에서 제일가는 물감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셋째, 며느리로 보이는 여성이 직접 방망이를 두드리며 빨래를 하면서 (C)와 같은 카피를 자기 입으로 직접 말하듯이 표현하고 있다.
이 광고는 이른바 전형적인 증언형(testimonial) 광고 형식을 취하고 있는데, 그림과 카피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며 멋진 증언형 광고 한 편을 완성시키고 있는 것이다. 20세기 초반에 주로 카피 위주의 광고가 많았음에 비춰보면 이 광고에서는 적절한 시각적 표현 방법을 모색함으로써 차별화에 성공했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이 광고에서 1907년 당시의 정치경제적 상황을 알 수 있다. 1905년 10월, 경무사 신태휴는 흰옷은 비위생적이며 미개의 징표요, 검은 옷은 위생적이며 문명의 징표라며, 흰옷 대신 검정색 등 색깔 있는 옷을 입으라는 법령을 반포했다. 이는 일본의 염료 산업이 한국에 진출하는 발판이 되었는데, 흰옷 금지조치 이후 사람들은 일본산 옷과 염료를 많이 구입했으며, 이로 인해 일본의 염료 산업은 조선 진출의 발판을 다지게 되었다.
부인다옥 박정애의 광고
카페 또는 다방의 역사를 알려주는 광고 역시 당대의 사회상을 알려주는 좋은 자료가 된다. 20세기 초 서울 종로의 다방 주인은 여자였다. 「매일신보」는 1911년 6월 7일자에는 “한번 구경하시오”라는 헤드라인 아래 다방에 한번 들르라는 광고가 게재된다. 한글로 쓴 바디카피를 보면 다음과 같다.
“본 다옥(茶屋)에셔 동셔양 각죵 과자와 모과슈와 젼복과
소라와 아이쓰크림과 사이다 각죵 차도 구비하압고
쳐소도 졍결하오니 여러 신사와 부인은 차져오시면 편리토록
슈응하겠사오니 한번 시험하심을 쳔만 바라나이다.
鐘路魚物廛7房 종로어물전칠방
婦人茶屋 朴貞愛 부인다옥 박졍애 고백.”
이 광고는 다방에 한번 들르라는 판매 메시지보다 광고에 나타난 조선 근대의 풍경이 놀랍다. 1911년이면 거의 100여 년 전의 옛날인데, 다방이 있었고 그 주인은 남자가 아닌 박정애라는 여자이다. 당시의 다방에서는 차만 파는 게 아니라 소라와 전복도 팔았으며, 그 시대에 벌써 아이스크림도 판매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나아가 신사와 부인이 함께 찾아오시라고 권하고 있는 것을 보면 여성의 다방 출입도 상당히 보편화된 듯하다. 이 광고는 한자를 모르는 여성을 고려하여 한글로 카피를 썼는데 며칠 뒤인 6월 10일에는 내용은 비슷한데 한자를 섞어 카피를 쓰고 있다. 그 후 이 광고는 여러 차례 반복적으로 게재된다.
식민지 조선에서의 카페 또는 다방은 의미 있는 근대의 풍경이다. 1911년에 우리나라 최초의 카페인 ‘타이거’가 남대문통 3정목(丁目, 남대문로 3가)에 오픈한 이후, 발전을 거듭하여 1930년대에 들어 카페의 황금기를 누리게 된다. 당시의 카페는 문인과 지식인을 비롯한 남자들이 젊은 여급(女給)들과 함께 자유연애를 즐기는 ‘청춘의 위안지’ 구실을 했다. 당시 카페나 다방의 종업원들을 대상으로 하는 「여성」이라는 잡지가 발행될 정도였다.
카페의 여종업원들은 일제 강점기 동안 ‘여급’이라는 비하적인 호칭으로 불렸으나, 이들은 식민지 근대라는 역사적 특수성 속에서 우리나라 여성의 근대적 자의식을 형성하는 데 여러 맥락에서 많은 기여를 한다. 부인다옥 박정애의 광고는 단순한 다방 광고의 의미를 넘어 당대의 일상을 증거하는 동시에 근대 여성의 자의식 형성의 단초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경성전당포조합 광고
식민지 시대에는 은행에서 돈 꾸기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으니 일반 시민들 입장에서는 전당포가 가장 편리한 은행 대용이었다. 돈 될 만한 물건만 있으면 전당포에 맡기고 흥정해서 돈을 꿀 수가 있었는데, 예컨대 시계가 귀하던 시절에는 손목시계를 맡기고 돈을 빌리는 일도 많았다. 그러나 전당포는 가난한 서민에게 일종의 은행이나 마찬가지였다.
「동아일보」 1920년 7월 6일자에게 게재된 경성전당포조합(京城典當鋪組合) 광고를 보면 전당포 업주들에게도 고민은 있었던 듯싶다. 즉, 전당 기한을 90일로 정하고 그 기한이 지나면 잡힌 물건을 팔아버린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결정을 지키지 않는 회원에 대해서는 처벌을 한다는 결정문이니, 이 광고는 동업자에게는 담합을 하자는 내규를 선포하고 일반인에게는 90일 이내에 맡긴 물건을 꼭 찾아가라는 영업 원칙을 발표하는 이중의 목적을 위해 만들어졌다고 하겠다.
재미있는 전당포 광고 2개가 있는데 모두 일본인이 운영하는 다까기(高木) 대금업소의 것이다. 하나의 광고는 옛날의 엽전 모양의 동전 안에 한글로 광고 카피를 썼는데, 내용은 담보물 없이 돈을 빌려 준다는 것이다. 다음과 같은 광고에서도 편하게 돈을 빌릴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일슈 월슈 대금광고(貸金廣告)
본소(本所)에서 착실(着實)한 인(人)에게난
전당(典當)업시 돈을 대급(貸給)할 터이니
차득(借得)하자는 인(人)은
본소(本所)로 내의(내의)하시오.”
1920~1930년대 당시 전당포는 조선 사람도 운영했지만 신문에 광고를 낸 광고주는 주로 일본이었다. 1894년 이후 조선에 전당포가 설치된 이래 1901년에 서울에만 40호 정도가 있었는데, 1927년 9월말에는 조선인 799명, 일본인 606명, 외국인 1명 등 모두 1,406명이 전당업에 종사할 정도로 전당포가 급증했다. 여기에서 알 수 있듯이 일제 강점기 동안 전당포는 고리대금업의 성격을 띠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서민 금고의 성격도 가지고 있었다고 하겠다.
레-도 백분의 설명형 광고
아름다운 얼굴은 모든 사람의 꿈이다. 비싼 값에도 불구하고 화장품이 잘 팔리고 불황이 없는 것을 보면 화장품 산업은 시대를 초월하는 꿈의 산업인 듯하다. 1920년대 중반의 화장품 광고에서도 이런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레-도 백분(白粉)의 광고를 보면 먼저 화장대 앞에 앉아 있는 한복 차림의 여인이 눈에 띈다. 그리고 거울 위에 “아름다워지는 화장법4”라는 헤드라인을 제시하고 있다. 전 2단 크기의 신문기사 같은 설명형 광고인데, 광고 같지 않은 느낌을 주려고 애쓴 흔적이 역력하다. 상품의 장점을 드러내서 강조하는 당시의 광고 스타일과는 달리 우회적 방법으로 설득하고 있다. 당시 조선의 지식수준을 감안하면 광고를 끝까지 읽고 나서도 신문기사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았을 것 같다.
바디카피는 세 단락으로 구분되어 있는데, 첫 번째 단락의 제목은 “짓튼(짙은) 화장법”이다. 즉, 광고라는 느낌을 숨기기 위한 장치로 곧바로 레-도 백분을 설명하지 않고 일반적인 화장법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다. 전 2단 중에서 거의 전 1단을 ‘짙은’ 화장을 하는 방법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으며, 그 내용은 너무 세세하여 화장법의 매뉴얼이라 할 만하다.
두 번째 단락에서는 본론으로 들어가 “전매특허 동양 졔일의 레-도 백분”이라는 제목으로 상품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다. 즉 레-도 백분은 전매특허를 받은 상품으로 살결을 곱게 하는 기능이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백분의 분자는 녹거나 떨어지지 않고 오래오래 아름다움을 유지하게 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설득의 논리는 오늘날의 화장품 광고에서도 자주 발견되며 당시로서는 퍽 앞선 메시지 구성 원리라 하겠다.
세 번째는 “밑 화장에 대하여”로 세 가지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맨 끝에는 상품의 그림이 있는데 그 앞에는 “순 무연(純無鉛) 전매특허”라는 말이 있다. 즉 납 성분이 전혀 없는 화장품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데, 여기에서 당시의 화장품 가운데 납 성분이 들어 있는 상품도 상당수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박가분 같은 이전에 나왔던 납 성분이 함유된 화장품들은 여자들의 얼굴 피부를 망치게 하여 사회문제가 되었던 것이다.
레-도 백분의 광고에서는 모든 카피를 한글로 썼는데 주요 소구 대상인 당시의 여성들 중 한자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한 결과이리라. 이 광고에서는 상품의 특성을 직접 강조하기보다 화장법에 대하여 친절히 알려주는 기사식 설명형 접근법으로 자연스럽게 소비자에게 다가간 카피라이터의 앞선 감각을 느낄 수 있다. 1988년 서울올림픽 이후 언론 자유가 회복되고 신문의 발행 면수가 폭증하면서 동시에 늘어난 기사식의 설명형 광고의 기본 골조가 지난 1920년대에 이미 세워졌음을 이 광고에서 확인하게 된다.
1926년식 정치 광고
이제 미디어 선거의 시대가 거의 일반화되었고 그 중심에 TV나 라디오 토론과 광고가 있다. 광고의 중요성이 갈수록 강조되고 있는 상황에서 정치인들은 1920년대 중반에 벌써 신문에 정치 광고를 하고 있었음을 보면 정치와 광고의 관계도 퍽 오래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선거와 관련된 정치 광고는 일반 상업 광고와 크게 두 가지 점에서 차이가 있다. 첫째, 목적의 절박함 정도에서 정치 광고는 반드시 1등을 해야만 할 정도로 생사를 거는 데 비해 상업 광고는 해당 상품이 1등이 아닌 2~3등을 해도 1등과 공존하며 시장의 파이를 키워나가므로 생사까지 걸지는 않는다. 둘째, 광고 효과의 시작과 유지 기간에 큰 차이가 난다. 상업 광고의 경우 론칭에서 유지 광고의 집행에 이르기까지 짧게는 3개월 이상에서 길게는 몇 년에 이르기까지 지속되는 데 비해, 정치 광고는 대략 1~2개월 정도의 단기간에 효과를 내야만 한다는 시간적인 촉박함이 있다.
정치 광고의 초기 사례를 「동아일보」 1926년 11월 22일자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정치 광고 중에서도 선거가 끝난 다음에 당선자들이 유권자에게 인사하는 ‘당선사례’ 광고이다. 광고를 보면 전 2단을 거의 같은 크기로 나누어 마치 명함처럼 9개의 광고를 배치하고 맨 아래 쪽에도 광고와 또 다른 비슷한 크기 광고가 하나 더 있다. 이름으로 미루어 일본인이 넷이고 나머지 여섯 명은 한국인이다.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금반(今般) 경성부(京城府) 협의원(協議員) 선거(選擧)에 제(際)하야
유권자(有權者) 제위(諸位)의 심후(深厚)하신 동정(同情)에 인(因)하와
행(幸)히 당선(當選)의 영광(榮光)을 몽(蒙)하얏삽기 자(玆)에
지상(紙上)으로써 근(謹)히 사의(謝意)를 표(表)하나이다.”
이상은 경성부(지금의 서울시) 의원에 당선된 것에 대해 유권자에게 감사하는 당선사례 광고 카피이다. 어이없게도 조선인이건 일본인이건 관계없이 글자 하나도 다르지 않은 같은 내용으로 되어 있다. 판에 박힌 인사말이라 독창성은 없지만 아마도 우리나라 정치광고사의 첫 장을 장식할 만한 광고라고 하겠다.
인단 치약 광고
식민지 조선에서의 가장 광고를 많이 한 상품은 아지노모도와 인단이었다. 인단 광고에서는 상품의 특성을 설명하는 것 말고도 다양한 표현 기법을 시도했는데, 이는 일정량 이상의 광고비가 있어서 가능한 일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색다른 표현을 시도하려는 광고주의 의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상품의 특성을 강조하다가도 때로는 저명인사를 등장시켜 유명인 보증형의 광고를 하기도 했으며, 증언형 광고를 하기도 했다.
「조선일보」 1934년 8월 16일에 게재된 인단 광고는 어린이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다. 광고를 보면 여자 어린이가 잠자는 동안 꿈을 꾸고 있는데 꿈속에 나타난 것은 인단 치약이다. 치약 튜브를 세로로 길게 제시하고 튜브 양쪽에 “닥고 자면 꿈에도 븨이는 상쾌(爽快)한 치마(齒磨)”, “아츰도 또 빨이 쓰고 십푼 그리운 치마(齒磨)”라는 대구법의 헤드라인을 제시했다. 카피와 비주얼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광고물의 완성도를 높였다.
여자 어린이는 침대에서 자고 있는데 그 무렵 방바닥이 아닌 침대에서 자는 어린이가 얼마나 있다고 그렇게 처리했을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한편으로 어지간한 가정이 아니고서는 치약을 쓰지 못하던 시절이었음을 감안한다면 이해가 되기도 한다. 치약 값은 25전, 35전, 50전으로 크기에 따라 값이 다른데, 1930년대 초반 쌀 소두 한 말(8kg) 값이 50전이었던 때였으니 살림살이가 어려운 가정에서 치약을 쓴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자 사치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사치도 식민지 조선에서의 근대 계몽의 담론의 한 축을 차지하게 된다. 이를 닦는다든가 목욕을 하든가 하는 위생의 개념은 처음에는 위생적 요구에 의해 제기되었으나 위생 그 자체보다는 ‘도시적 매너’의 의미가 있었다. 인단 치약 광고에서 알 수 있듯이, 근대 계몽기의 위생 담론은 위생이나 건강관리보다 다양한 차원에서의 도시적 매너를 갖추려는 맥락이 있었다. 이런 표피적인 인식들이 모여 나중에 세련된 도시인의 표상이 형성되었을 것이다.
킨쯔루 포마-도의 광고
일반적으로 광고 표현에서 부정적 접근(negative approach)을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한다. 메시지 프레이밍(message framing)에 관한 여러 연구에서도 긍정적 접근이 효과적이지 부정적 접근이 효과적인지에 대한 연구 결과가 상충되게 나타난 탓에 그 효과 여부를 단정 짓지 못하는데도, 광고 실무계에서는 부정적인 표현을 하면 결국 그것이 브랜드 이미지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이유로 가급적 부정적 접근을 피하려고 한다. 그러나 만약 부정적 접근이 긍정적 접근보다 아이디어를 구체화하는 데 효과적이라면 부정적 접근법을 굳이 회피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이를테면 「조선일보」 1937년 12월 6일자에 게재된 킨쯔루(金鶴) 포마-도 광고는 부정적인 접근법으로 아이디어를 표현하고 있다. 광고를 보면 ‘金鶴 포마-도’라는 상품 이름을 대담하게 X자로 지우고, “광고(廣告)를 그만 둔다”라는 헤드라인과 “세상(世上)이 이 ‘탈모예방법(脫毛豫防法)’을 묵살(?殺)할 지경이면!”이라는 서브헤드를 도치법을 활용하여 제시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세상 사람들이 이렇게 좋은 킨쯔루 포마-도를 몰라준다면 앞으로는 광고를 하지 않겠다는 퍽 대담한 논리를 전개한 것이다.
바디카피에서도 탈모의 원인을 가장 먼저 설명하고 이어서 예방책을 제시했는데, 말할 것도 없이 킨쯔루 포마-도에 포함되어 있는 ‘식물성 레시친’과 ‘코레스테린’ 성분이 탈모를 예방해 준다고 주장한다. 고딕체로 특별히 강조한 이 두 낱말 옆에는 각각 “머리를 기르는 성분”과 “털 나게 하는 호르몬”이라는 해설을 붙여 이른바 광고 주장에 대한 이론적 근거(rationale)도 제시하는 치밀함을 보였다.
이 광고는 오늘날의 크리에이티브 관점에서 보아도 손색이 없을 만큼 뛰어난 광고이다. 1937년 무렵에 광고에서 이렇게 당당하게 설명했으면 소비자의 신뢰를 얻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상품 포장 옆에는 “비슷비슷한 양모제 시장에 유일한 빛”이라는 카피가 있고, 지면의 왼쪽 상단에는 “오래 가고 번쩍거리지 안코 잘 빠집니다. 부인들이 쓰셔도 점잔코 조습니다”라는 캐치프레이즈성 카피를 덧붙임으로써 상품에 대한 신뢰감을 높이고자 했다. 이 광고에서 부정적 접근법이 나름대로 의미 있게 다가오는 힘은 상품의 특성을 바탕으로 설득력 있는 논리로 메시지를 전개하는 카피 파워에 숨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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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