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은이들은 1907년 선교사들에 의해 주도되었던 ‘평양대부흥운동’을 기독교 보수화의기원으로 보고, 한국전쟁과 유신체제를 거치면서 특징화된 한국 기독교 보수주의의 본질은 힘을 향한 신앙, 성장주의, 배타적 도덕주의라고 평가한다.미국 기독교 복음주의를 모방해온 한국 기독교의 보수화, 정치화 과정을 미국과 비교하며 연대기별로 살펴보고 있는데, 특히, 민주화 이후 날로강화되는 보수 기독교의 사회적 발언과 행동들을 통해서, 무례하고 배타적인 기독교의 심상 풍경을 분석한 것이 인상적이다.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세 명의 지은이들의 좌담을 기록해 기독교 뉴라이트 운동을 비롯한기독교계 합리적 우익의 등장이 가져올 정치사회적인 파장을 분석하고 이념적 분화를 겪고 있는 진보적 교회의 대안으로 ‘자발적 가난을 실천하는유의미한 소수’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 저자
최형묵 - 연세대 신학과, 한신대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한국신학연구소 연구원,「신학사상」 편집장, 한신대 강사를 지냈다.현재는 천안 살림교회 목사,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운영위원,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신앙과 직제위원, 「진보평론」 편집위원으로 있다. 저서로『사회 변혁운동과 기독교 신학』『보이지 않는 손이 보이지 않는 것은 그 손이 없기 때문이다』『뒤집어 보는 성서인물』『죽은 민중의 시대 안병무를다시 본다』가 있고, 역서로 『예수시대의 민중운동』『무함마드를 따라서』등이 있다.
백찬홍 - 한국외대 법학과, 감신대 신학대학원을졸업하고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인권위원 및 국제위원, 정의평화를 위한 기독인연대 집행위원, 개혁을 위한 종교 NGO네트워크 기획위원장,제3시대그리스도연구소 상임위원을 지냈다. 현재는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및 옴부즈맨포럼 운영위원으로 있다. 저서와 논문으로는 『역사 • 예수 •교회』「미국기독교우파와 이라크전쟁」「보수교회 극우행보, 어떻게 볼 것인가」「한국기독교 기복신앙의 현재와 미래」등이있다.
김진호 - 서강대 수학과, 한신대 신학대학원을졸업하고 한국신학연구소 연구원, 『진보평론』 편집위원, 「당대비평」 편집주간, 민중신학자 안병무 선생이 설립한 한백교회 담임 목사를 지냈고,현재는 제3시대그리스도연구소 연구실장으로 있다. 저서로는 『함께 읽는 구약성서』(공저) 『함께 읽는 신약성서』(공저) 『실천적 그리스도교를위하여』 『예수 르네상스 : 역사의 예수 연구의 새로운 지평』(편저) 『예수 역사학 : 예수로 예수를 넘기 위하여』 『반신학의 미소』 등이있다.
■ 차례
들어가는 말
1. 한국 기독교의 보수화, 힘을 향한 부절적한 동경 -최형묵
기원 : 1907년 평양대부흥운동
유신체제•군사정권기의 뒷골목 거래
미국식 정치세력화라는 꿈 :‘도덕적 다수’
욕망과 배제의 교묘한 앙상블, 교회의 신앙
민주화 이후 기독교 사회운동, 보수화에 맞서라
2. 미국제 복음주의와 한국 교회 - 백찬홍
미국 근본주의 기독교의 발전과 몰락
근본주의와 초기 한국 교회 : 선교사, 신학, 반공주의
신복음주의와한국 교회 : 부흥사, 교회성장신학, 유신체제
근본주의 부활과 정치참여 : 기독교 우파와 네오콘
한국 교회의 정치참여 :기독교정당과 뉴라이트
3. 권력을 향한 욕망, 그 배타적 실천 - 김진호
무례한 자들의 정치세력화
무례한 자들의 크리스마스
군사주의를 미화하는 신학
민주화 시대, 합리적기독교 우익의 탄생
커피 한 잔의 회개
성령의 도구화 : ‘평양대부흥운동의 영’ 대 ‘성서의 영’
한국 개신교의 미국주의,그 식민지적 무의식
4. 좌담 : 자발적 가난을 실천하는 유의미한 소수에게 미래가있다
러일전쟁과 평양대부흥운동
양대인 의식과 선교사
친미 성향, 친이스라엘 성향
진보기독교의 정치이념적분화
도덕적 의제를 정치화한다
‘잃어버린 양 한 마리’에 대한 관심
기독교 뉴라이트 운동을 어떻게 볼 것인가
유의미한소수
무례한 者들의 크리스마스
좌담 : 자발적 가난을 실천하는 유의미한 소수에게 미래가 있다
김진호 : 한국 교회는 평양대부흥운동 100주년을 맞이해 대대적인 준비를 하고 있다. 이 평양대부흥운동은 기독교의 보수적이고 성공 지향적이며 친미적인 특성을 정초한 ‘초석적 사건’이었다. ‘어게인 1907’이라는 슬로건이 시사하듯이, 교회는 이 사건의 근본정신을 오늘에 재현하여 신앙인들의 보수적 통합을 도모하려 한다. 평양대부흥운동에 관한 기억의 정치는 기독교를 이해집단의 차원을 넘어서 신앙 공동체로서, 나아가 사회로 외화시키는 선교 공동체로서 활성화하려는 데에 있다. 바로 이것이 기독교 엘리트들이 행사를 기획한 핵심 의도다.
최형묵 : 평양대부흥운동은 비정치적 신앙 운동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잘못된 견해다. 선교사들은 평양대부흥운동 당시 비정치화를 표방했으나 오히려 고도의 정치적 효과를 노렸다. 일제에 순응적인 신앙을 주입시키고 이런 신앙을 내면화하는 계기로 삼았던 것이다. 이 대부흥운동을 계기로 선교사들이 헤게모니를 장악했다고 볼 수 있다. 그렇게 보면 한국 교회는 처음부터 정치적이었다. 그리고 그런 추세가 해방 이후 독재정권으로 이어진 것이다. 물론 민주화 이후에는 다른 방식으로 표현되고 있지만, 그 이전까지는 대체적으로 비정치화를 통한 ‘역설적 정치화’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러일전쟁과 평양대부흥운동
김진호 : 그동안의 어떤 연구도 주목하지 않은 점인데, 대부흥운동 이전의 기독교 팽창은 ‘러일전쟁’의 직접적인 결과라는 사실이다. 교회는 미국인 선교사들 덕에 일본 군대의 직접적인 폭력을 피해 갈 수 있는 상대적으로 안전한 공간이었다. 게다가 선교사들은 신자들에게 쌀을 제공함으로써 전쟁 기간은 물론 전후에도 교회는 삶의 안전이 보장될 수 있는 최적의 공간이었다. 문제는 당시 교회가 급작스런 신자들의 팽창을 소화할 만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는 데 있다. 다양성에 대해 닫혀 있었다. 그리고 전쟁의 상처가 가져온 정신적 공황을 치유하기에는 신자들의 삶에 대한 몰이해가 심각했다. 종교적 흥분 상황은 주변 사람들을 하나둘씩 기도회에 동참하게 했고, 얼마 가지 않아서 교회 전체를 엑스타시적 상황으로 몰입하게 하는 데 성공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교회로 들어온 이들은 하나로 통합되었다. 중요한 것은 이 과정에서 선교사들의 헤게모니가 결정적으로 확고해졌다는 것이다.
백찬홍 : 평양대부흥운동이 있던 1907년은 헤이그 밀사사건으로 고종이 퇴위당하고 정미7조약으로 국권이 거의 일본으로 넘어갔으며, 이에 항거하는 의병운동과 애국운동이 전국 각지에서 들불처럼 일어난 해였다. 일제는 애국 인사들의 활동 거점이었던 교회가 눈에 거슬렸다. 일본의 협조를 받지 않고는 종교 활동이 어렵다는 것을 깨달은 선교사들이 교인들의 눈을 돌릴 만한 곳을 찾았다. 바로 그게 평양대부흥운동이었고, 이후 한국 교회는 본격적인 보수화의 길을 걸었다.
김진호 : 대부흥운동 이후 선교사들은 학생 선발이나 교과 과정, 교수 채용, 목사 안수 등 일체의 교육 과정을 장악하면서 한국 교회의 신학과 신앙 형태를 규정해 나갔다. 그런데 1930년대 후반 일제와 우호적인 협력관계를 맺어왔던 선교사들이 신사참배 건으로 충돌을 빚었고 끝내 일제에 의해 추방을 당한다. 이때 김재준 목사를 중심으로 조선신학교가 설립된다. 학교 설립에 즈음 김 목사가 기초한 5개 강령은 선교사들이 장악했던 권력을 자주화시키려는 노력이었다. 그러나 해방이 되고 나서 보수적인 학생들이 김재준의 자유주의 신학을 고발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이 학생들은 대부분 서북 지역 출신이 아니었다. 즉 교회는 이미 오래전에 범서북화가 이루어져 있었던 것이다. 교파 분열이 그렇게 심한 데도 신앙과 신학은 서북 지역의 것으로 표준화되었다는 점이 한국 기독교의 특징인데, 이것은 평양대부흥운동의 효과로 볼 수 있다.
양대인 의식과 선교사
백찬홍 : 교회는 전통적인 유교적 가부장 질서에 선교사의 근본주의를 수용하면서 보수 기독교의 기반을 다졌다고 할 수 있다. 기독교가 근대 교육을 도입하고 남녀차별을 없애려했다지만 기독교 근본주의도 살펴보면, 부권을 강조하고 여성을 배제시키는 논리를 가지고 있다.
최형묵 : 평안도 사람들이 교회를 찾았던 것은 ‘양대인(洋大人) 의식’에서였다. 양대인은 구한말 서구열강을 등에 업고 권력을 행사했던 선교사들의 별칭이었다. 봉건 사회가 해체되고 공공의 질서가 무력해져가던 구한말에 각종 수탈에 알몸 그대로 노출되어 있던 민초들이 교회에서만은 선교사의 보호를 받을 수 있었고, 여기에서 양대인들이 탐관오리보다는 낫다는 의식이 생겨났다. 어떻게 보면 양대인 의식은 사대주의의 변형이었고, 여기에서 한국 기독교의 특징인 ‘힘에 의존하는 신앙’이 싹텄다고 할 수 있다. 자생적인 근대화가 이루어지고 이를 통해 규율되는 사회가 형성되었다면 달랐을 것이다. 또 이런 기독교를 전하고 일본을 개항시켰던 미국은 강대한 나라라는 인식이 퍼지게 되었다. 해방 후 일제를 패망시킨 미국이 한반도에 들어오자 교회의 미국 의존도는 더욱 심화되고 체질화되었다.
김진호 : 한국 기독교는 원래부터 질이 안 좋은 기독교로 시작했다. 힘을 위해 교섭하고 타협하고, 힘없는 자를 배려하지 않는 방식으로 자기를 주체화시키면서 발전했다. 힘이 필요하고 자기들에게 유리한 것을 취하기 위해 유교, 불교, 샤머니즘을 이용했는데, 그 중에서 가장 못된 요소들을 취하면서도 좋은 것은 다 갖다 버렸다. 예를 들어 평양대부흥운동은 영적 각성을 도덕적 재무장으로 통합시켰다. 이것은 한국 전통에 있는 유연하고 융통성 있는 도덕관을 악용한 것이다. 그런데 신사참배와 부딪치면서 파열음이 생겼다. 신사참배 때 대다수 기독교인들은 근본주의 신앙을 수용했음에도 불구하고 신사참배를 그대로 승복했다. 강한 신앙과 강한 정책이 부딪치고 한쪽이 일방적으로 관철되었으니, 이러한 신앙의 위기는 많은 기독교도들에게 트라우마로 남게 되었다. 그 상흔은 공산주의라는 새로운 악마를 발견하면서 극렬한 반응을 보였고 공격성으로 표출되었다. 신사참배에 승복한 얼치기 악마인 자기들과는 다른, 진짜 악마를 찾아낸 것이다. 해서 반공주의는 한국 기독교의 전매상표가 되었다.
백찬홍 : 교회는 대부흥운동을 기념하면서 길선주, 주기철 같은 인물들을 부각시키고 있다. 이들은 평양대부흥운동과 관련이 있고 신사참배를 거부했던 이른바 순교했던 인물들이다. 사실 한국 교회가 신사참배에 대해 역사적 참회는 제대로 하지 않으면서 대부흥운동과 이들을 집중적으로 연계시키는 것은 잘못이다. 한국 교회는 기득권은 움켜진 채 정통성을 조작하고 역사를 왜곡하고 있다.
진보 기독교의 정치이념적 분화
백찬홍 : 과거에는 보수 교회가 민족대성회나 조찬 기도회 같은 간접 방식으로 정치에 참여를 했다면, 개혁 진영 일부 성직자들은 국회 진출이나 입각, 평통자문위, 과거사청산위원회 같은 조직에 직접 참여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정치 참여 그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왜, 어떻게 정치에 참여하느냐가 문제인 것이다.
최형묵 : 진보개혁 진영이 정치에 직접 참여하자 권력을 두고 진보?보수 양 진영 간에 일종의 경합 또는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과거에는 독재 권력을 지지한 대가로 보수 교회가 권력과 뒷거래를 했다. 하지만 민주화 이후 그 거래 루트가 차단되자 그동안 진보 교회의 반정부 투쟁을 비난해 왔던 보수 교회가 오히려 거리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상황이다.
최근 들어 진보개혁 인사들 안에서 권력 지향성을 분명히 내 비추며 신자유주의적 성장주의를 비판 없이 수용하는 발언들이 흘러나오고 있다. 이들은 절차적 민주화에 대해서는 투옥을 불사하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지만, 경제 자유화의 폐해에 대해서는 피상적 이해에 머물러서 현 정부의 성장주의 정책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조희연 교수는 한국의 사회 운동을 보수-진보-자유주의로 분류하는데, 기독교 내부를 진단할 때도 과거와 같은 진보와 보수 단순 도식으론 다 설명이 안 된다. 이제는 이념적 스펙트럼을 넓게 펼쳐놓고 보아야 할 시점에 온 것 같다. 여러 사람이 지적한 것처럼 과거 민주화 운동 시절 자유주의자가 진보주의자가 될 수밖에 없었던 맥락을 면밀히 살펴봐야 한다.
김진호 : 보수와 진보에 관한 문제의식이 변화한 것도 유념할 필요가 있다. 권위주의 시대에 진보라는 감각은 반독재와 관련되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의 진보는 ‘사회적 자원의 배분’과 보다 밀접한 연관이 있다. 그런데 권력에 진출한 많은 과거의 진보 인사들은 사회적 배분에 관해서는 보수적 태도를 가지면서 스스로는 아직도 진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민주화 이후 진보와 보수에 대한 감각이 아직 합의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역사적으로 민주화 문제는 두 개 차원에서 얘기될 수 있다. 곧 ‘시민의 퇴출 가능성’과 ‘퇴출된 비시민들의 권리 박탈 위기’, 그리고 이에 대응하는 제도화 과정이 민주화의 내용으로 나타났다고 할 수 있다. 이 제도화는 두 가지 안보 시스템으로도 설명할 수 있다. ‘시민적 안보’의 장치와 ‘비시민적 안보’의 장치가 그것이다. 후자의 대표적인 것이 복지 문제라면, 전자는 시민의 퇴출억제 장치의 확보라고 할 수 있다. 시민적 안보와 비시민적 안보 간에 갈등과 경합, 교섭이 진행되면서 민주적인 제도화가 이루어진다. 보수주의는 시민적 안보와 비시민적 안보를 갈등 관계로 보면서 시민적 안보를 우선에 두었다. 진보는 이 두 가지가 연계되었다고 보는 경향이다. 그러면서 구체적으로는 지형에 따라 내용이 형성된다. 오늘날 보수주의는 신자유주의와 결합되어 있다. 신자유주의적 보수주의가 미국을 중심으로 형성되고 체계화되고 있는데, 한국 사회는 IMF 체제 이후 거기에 깊숙이 휘말려 있다. 그런데 한국의 교회는 이러한 미국식 신자유주의적 보수주의의 열렬한 추종자로 조직되고 있다.
최형묵 : 지금은 보수와 진보로 그 이념 지형을 단순하게 구분하기 어려운 상태다. 민주주의 자체가 불안하고 유동적인 상황이다. 이 점은 한국 교회 내에서도 마찬가지다. 과거에는 보수 세력과 헤게모니를 다투는 것으로 충분했을지 모르나 민주화 이후에는 권력 자체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그런데도 진보 세력은 둔감하다. 그러니 교회 구조나 신앙 풍토나 바뀌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 점에서 과거 진보로 불리던 세력이 여전히 진보일 수 있는지 되물어야 한다.
도덕적 의제를 정치화한다
김진호 : 최근 강남과 신도시를 중심으로 한 신흥 대형교회들, 그리고 복음주의권을 중심으로 한 기독교 NGO가 등장하면서 보수 기독교권에 새 지형이 짜지고 있다. 이들은 1960~1970년대 성장한 순복음교회나 금란교회 같은 선발대형교회보다 합리적이고 도덕적인 모습으로 세력을 형성하고 있다. 예를 들어 ‘기독교윤리실천운동(기윤실)’은 윤리 문제를 사회적 이슈로 만들고 있고, 보수적 정치 운동인 뉴라이트 경향의 ‘기독교사회책임’은 정권 창출 후에 도덕 문제를 정치화할 수 있다. 즉 미국의 기독교 우파가 낙태 같은 도덕적 이슈를 정치화한 것처럼 한국 기독교도 정치의 도덕화를 추진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도덕적 의제가 정치적 의제가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 가능성을 염두에 둔다면 한국 기독교의 정치적 태도는 한국 사회의 보수주의 움직임에 중요한 역할을 할 가능성이 있다. 보수주의가 정치 영역을 넘어서 일상화되고 그것이 다시 정치화되는 양상이 한국 기독교의 정체 세력화와 연관해서 상상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기독교 도덕주의는 대화적이라기보다는 도그마적이다. 상대를 존중하기보다는 자기 중심의 도덕을 배타적으로 관철시키려는 태도다. 그것을 정치화한다는 것은 곧 특정한 집단의 이해를 법적, 제도적으로 일반화하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치의 도덕화’는 일상을 정치화하는 것이며, 동시에 정치를 일상화하는 것이다. 그러한 과정을 통해서 일상적 문제를 둘러싼 정치 투쟁이 전개될 수 있다. 그런데 정치의 도덕화는 이러한 대화를 합리적 방식보다는 도그마적 방식으로 풀어내려 한다. 그것은 시민의 합의를 이벤트식으로 도출하려는 경향을 강화한다. 현재 한국 기독교가 지지하는 후보가 이벤트의 귀재라는 점은 한국 기독교적 보수주의의 정치 세력화가 왜 우려스러운지를 시사한다. ‘손상된 민주주의’가 한국 민주주의의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백찬홍 : 1987년 이후 개혁 또는 진보 세력이 약진하다가 IMF 사태 이후 국민들의 경제 불안과 현 집권 세력에 대한 실망으로 보수 흐름이 더 강해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금보다 더 수구적인 정권이 들어서면 이들과 연대했던 기독교 보수 세력의 영향력이 지금보다 훨씬 커질 것으로 보인다. 독재 시절 강력한 전선을 구축했던 진보 기독교권이 오히려 상당히 위축되어버린 반면, 보수 기독교권은 여전히 물적?인적 자원이 탄탄하다. 이 때문에 향후 보수 기독교권이 윤리, 도덕을 앞세워 주도권을 장악할 가능성이 높다.
‘잃어버린 양 한 마리’에 대한 관심
최형묵 : 보수주의가 도덕적 의제로 정치화하고 생활 영역을 지배하려는 것과 다른 차원에서 진보 역시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기독교 진보 진영은 정치권력의 문제에 집중하면서 다른 문제에 대해서는 도외시하는 경향이 있다. 일상 삶의 관계에 대해서 진보적 의식이 어떻게 표출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성찰이 없다. 1970~1980년대 진보적인 목회자들도 여전히 가부장적인 교회 구조를 유지하고 있다. 실제 일상 영역에서 관계의 변화는 체화되지 않았다.
백찬홍 : 한때 반독재 인권운동의 상징이었던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의 경우 민주화 이후에 오히려 총무 자격을 목회자에게만 주기로 하는 등 제도적으로 후퇴했고 다른 조직도 비슷한 실정이다. 현재 진보 기독교 운동권에서는 목사가 되어 남든지 아니면 떠나든지 양자택일해야 할 상황이다. 민주화가 제도화로 변질되면서 운동성은 사라지고 역사만 남은 것이다. 이것은 진보를 포함해 한국 기독교가 가진 한계라고 할 수 있다.
최형묵 : 정치 과잉이 모든 것을 왜곡시킨다. 진보적 기독교라면 시민-비시민화 과정에서 거창한 것보다는 ‘잃어버린 양 하나’와 ‘유의미한 소수’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즉 삶의 관계를 어떻게 짤 것이냐, 기독교에서 제시할 수 있는 진보의 관점과 배려를 어떻게 사회적으로 발전시켜 나가느냐가 큰 과제다.
김진호 : 우리 사회에서 시민은 국가와 거래를 시작하자마자 자기를 소비자로 부르는 광고 산업과 직접 대면하고 있다. 과거 권위주의 시절에는 자기 가족을 위한 희생과 국가의 굳건한 발전을 동일시하고 욕망했다면, 요즘은 ‘자기에 대한 인정 투쟁’이 주된 욕망의 내용이다. 자신이 잃어버린 것에 대한 과도한 강박에 빠져 있다. 한데 후발 대형교회는 적극적인 자아에 대한 욕망을 신앙화하면서 선교적 성공을 거두었다. 그런데 이러한 신앙 문화의 문제는 타자가 망각되어 있다는 점이다. 치열한 인정 투쟁의 사회에서 낙오된 ‘잃어버린 한 마리 양’과의 연대성은 우리가 저지른 죄의 회개와 연대성을 의미한다.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구하는 것이 우리 사회 모두에게 필요한 것이고 이런 논리가 시민 영역으로 확장되어야 한다. 그런데 한국 기독교 보수주의는 끊임없이 자신의 생존에만 관심을 둔 적극적 자아만을 유포한다.
백찬홍 : 지난 39년 간 압축 성장을 해온 우리 사회는 산업화에 걸맞은 주체적 시민이 형성되지 못했다. 오히려 시민 사회가 형성되기도 전에 신자유주의의 파도에 휩쓸리면서 잃어버린 양을 돌볼 시간이 없어진 것이다. 사람들의 마음이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마모되고 있다. 이제는 유치원 때부터 여든 살까지를 고민해야 하고 사회적으로 모럴해저드가 확산되고 있다.
김진호 : 그런 점에서 문민화 과정에서 정권을 잡은 김대중, 노무현 정권은 역사적 흐름을 바꿀 수 있는 과제를 짊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오히려 지난 10년간 시민적 안보 시스템만 강화시키고 비시민적인 안보 시스템을 악화시킨 주역이 되었다. 신자유주의 모델을 통해 양극화를 초래하고 한미 FTA를 추동하는 역할에 앞장섰다. 우리 사회 진보 또는 개혁 세력이 가지고 있는 내용의 부재가 낳은 결과라고 할 수 있다. 한국 사회는 압축적인 경제 성장만큼이나 매우 극적인 민주화 과정을 겪었다. 수많은 전통적 가치가 와해되었고 많은 사회적 행위자의 권력이 해체되었다. 한데 그 카니발적 과정에서 비교적 잘 작동하고 있는 조직화된 세력은 무엇보다 자본이었다. 해서 민주화 이후 시민의 형성은 뼈 속 깊숙이 자본 친화적으로 주체화되었다. 이제 거의 모든 시민은 자본가적으로 스스로를 생각하고 삶의 전략을 구상한다. 이럴 때 진보는 어렵지만 진보 나름의 틀을 구축해 나가야 했다. 그러나 현재까지 진보는 잘 형성되지도 못했고 방향조차 찾지 못하는 듯하다. 진보도 권력 게임에 몰두하면서 자본주의적인 시민적 욕망을 부추기고 있다.
기독교 뉴라이트 운동을 어떻게 볼 것인가
최형묵 : 흔히 민주화를 정치 절차의 합리성과 민주주의 제도화로 얘기하는데, 민주화 과정은 경제적 자유화도 동반한다. 한국 민주화의 과정은 정치적 자유가 민중의 삶을 안전하게 보장해 주는 것과 상관없이 진행되었다. 신보수주의, 뉴라이트는 정치 절차의 합리화에 대해서는 적극 옹호하지만 경제적 자유가 가져오는 폐해에 대해서는 별다른 대안 없이 1970년대식 개발담론과 성장주의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과거 보수 세력이 경제 성장을 위해서 민주화보다 권위적 질서를 옹호했다면, 신보수나 뉴라이트 세력은 시장 경제와 민주주의는 병행 발전하는 것이라는 입장을 가지고 있다. 이런 입장이라면 앞으로 개혁 세력 내에서도 비슷한 주장이 나올 가능성이 있다. 기독교 경우는 현 정권에 참여한 기독교 인사들이 그렇게 변할 가능성이 높다. 진짜 합리적인 보수는 과거 진보 진영 또는 정권에 참여하고 있는 인사들 쪽에서 나올 것이다.
김진호 : 과거 진보적 교회들도, 심지어 진보적 신학교의 학생들도 후발 대형교회가 주도하는 새로운 문화 목회들을 학습하고 모방하고 있다. 후발 대형교회는 수구 교회와는 다르다고 생각하지만 전체적으로 친미적 요소는 물론이고 자기 기준에 따라 타인, 타문화를 교화의 대상으로만 여긴다는 점에서 그 배타성은 선발 대형교회와 차이가 없다. 다만 다른 것은 대중들에게 접근하는 방식이나 행동이 보다 세련되고 설득력 있는 외양을 띠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은 구보수의 막무가내식과 다르게 합리적 언어를 가지고 대중을 설득하기 때문에, 도덕의 무기화나 정치화를 구체적으로 추진하면서 일상 삶에 끼어 들 가능성이 높은 편이다. 이 점을 염두에 둔다면 기독교 내 신보수주의 등장과 활성화는 우려스러운 지점이 될 것이다.
백찬홍 : 기독교 뉴라이트 세력은 노 정권에 대한 반발로 생겨난 정치 조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 외에 후발 대형교회나 기독교 NGO들이 도덕주의와 결합된 정치 운동이 될지 사회 운동으로 발전할지는 모르지만 현실 정치에 직접 개입하지는 않을 것 같다. 그것보다는 시민운동과 사회 운동의 형식으로 참여할 것으로 보인다. 이들이 본격적으로 사회 운동에 참여한다면 기존 시민운동과 경쟁 관계가 될 것이다.
유의미한 소수
김진호 : 기독교 단체 중에 평화 운동을 하는 ‘개척자’라는 단체가 있다. 이들은 어떻게 보면 한국 기독교의 반항아들이다. 이들은 공동 생활하면서 활동비라고도 할 수 없는 최소액의 비용으로 평화 운동을 한다. 자발적 가난을 실천하고 평화 교육을 하며 분쟁 지역에서 봉사 활동을 한다. 어떠한 권력적 요소도 개입시키지 않고 일상에서 수도자처럼 자발적 가난을 실천한다. 한국 교회 다수가 여전히 강고한 틀을 가지고 기득권에 안주하고 거룩한 전쟁이라는 이름으로 전쟁을 찬성하지만 이들은 묵묵히 자신들에게 맡겨진 일을 하고 있다.
최형묵 : 이 시대는 ‘의미 있는 소수’로 살아가는 것에 굉장히 익숙해질 필요가 있다. 특히 기독교 운동을 고민하는 사람들이 1980년대의 폭발성을 기대하는데, 이것 역시 권위주의 시대의 유산이고 힘에 의존하는 것이기에 이제는 지양해야 한다. 지금은 새로운 가치와 평화를 갈망하고 실천해야 할 때다.
백찬홍 : 진보나 보수나 어떻게 하면 주류로 편입될 수 있을지가 주관심사다. 진보 기독교 인사들 역시 과거에 민주화 운동으로 투옥되고 고생했으니 지금은 보상받아야 되겠다는 심리가 작용했는지, 교회 정치는 물론 현실 정치도 참여해야겠다는 강박감에 젖어 있다. 지금이라도 의미 있는 소수가 되는 일에 관심을 가지고 참여해야 한다. 현재 교회 일부에서는 외국인 노동자 지원, 생협 운동, 극빈층을 위한 소액대출운동 및 자활 사업 등을 활발하게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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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호 : 다른 예를 들면 ‘작은 예수 자매회’라는 곳이 있다. 이 수도회는 4명이 한 단위로 이루어지고 같이 살면서 공장에서 일한다. 큰 공장은 안가고 작은 공장에서 일한다. 열악한 노동 현장에서 일하고 또 명상과 기도를 함께 한다고 한다. 노동 강도가 너무 세서 그런지 나이가 들면 신경통으로 온몸이 지끈거린다고 한다. 하지만 그분들은 그게 수도라는 것이다. 이 수도회는 그룹이 작아서 권위적인 구조가 형성되지 않는다. 어떤 영상 작가가 취재하려고 해도 알려지길 원치 않는다면서 촬영을 거절했다고 한다. 이처럼 자본주의 틀에 순응하지 않는 이탈자들도 있다. 우리에게는 이런 소중한 실천들을 간직하고 의미화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